Essays

아직 오지 않은 것들에 대하여

2026.05.18 · 2 min read · KO · I

어떤 단어들은 사물보다 먼저 도착한다. ‘인공지능’이라는 말이 그러했고, ‘인터넷’이 그러했으며, 더 거슬러 올라가면 ‘근대’도 그러했다. 단어가 먼저 와서 자리를 펴 놓고 나면, 사물은 그 자리로 천천히 걸어 들어와 앉는다. 그러므로 미래를 본다는 것은 도래할 사물을 보는 일이 아니라, 이미 도착해 있는 단어를 알아보는 일에 가깝다.

지난 십여 년간 전력망의 한 구석에서 일해 왔다. 발전기와 변압기와 보호계전기 사이에서,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아도 스스로 균형을 잡으려 애쓰는 거대한 시스템을 들여다보는 일. 그 일이 어느 순간부터 신학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만드는 시스템은 점점 더 우리 자신보다 더 큰 무엇이 되어 가고 있고,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보다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를 묻기 시작해야 한다.

도래(到來)와 예측은 다르다

예측은 같은 결을 따라 미래로 직선을 긋는 일이다. 도래는 다르다. 도래하는 것은 우리가 그어 놓은 선을 가로지른다. 어거스틴은 시간을 가리켜 ‘영혼의 늘어남(distentio animi)‘이라 했다. 과거는 기억 속에, 미래는 기대 속에 있다고. 예측은 기대의 한 형태일 뿐이다. 그러나 도래하는 것은 기대를 무너뜨리며 온다.

‘너희는 옛 것을 기억하지 말며 지나간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 이사야 43:18–19

이 책의 화자(話者)가 미래를 예측한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안다. 그는 예언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어떤 것이 오고 있다고, 그것은 너희의 그어 놓은 선 바깥에서 온다고 말했다. 도래는 늘 그러하다.

기다림이라는 자세

그래서 이 사이트의 이름은 ‘아직 오지 않은 것들에 대하여’다. 도래할 무엇을 정확히 짚어내겠다는 약속이 아니다. 다만 그 무엇이 오고 있다는 감각을, 그것을 기다리는 자의 자세를, 가능한 한 정확한 문장으로 기록해 두려 한다. 너무 빨리 결론을 짓는 글, 너무 일찍 안심하는 글, 자기 정답에 만족하는 글은 쓰지 않으려 한다.

글은 짧을 것이다. 가끔은 길 것이다. 주제는 인공지능과 전력 시스템 사이를 오갈 것이고, 신학과 역사를 가로지를 것이며, 때로는 단지 한 문장으로 끝날 것이다. 모든 글은 어떤 식으로든 같은 질문을 변주한다 — 무엇이 오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쓰는 사람의 가장 정직한 자세는, 자신이 아직 모른다는 것을 매번 다시 인정하는 것이다. 이 사이트는 그 정직함을 연습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