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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모델 · 분석

앤트로픽이 '너무 위험하다'던 모델을 공개한 방식 — 클로드 페이블 5와 미토스 5

같은 두뇌, 다른 안전장치. 페이블 5는 벤치마크상 가장 강력한 공개 모델이지만, 모든 작업에서 정답은 아니다.

2026년 6월 11일 · 자료 기준 2026년 6월 9일 앤트로픽 공식 발표

지난 4월, 앤트로픽(Anthropic)은 자사 모델 하나를 두고 "지금 일반에 풀기에는 너무 위험하다"고 했다. 소프트웨어의 취약점을 사람보다 잘 찾아내는 능력 때문이었다. 그 모델이 미토스(Mythos)다. 그리고 2026년 6월 9일, 앤트로픽은 그 미토스와 같은 두뇌를 가진 모델을 마침내 일반에 공개했다. 다만 이름은 미토스가 아니라 페이블(Fable) 5이다.

두 이름은 우연이 아니다. 미토스(mythos)는 신화, 페이블(fable)은 우화를 뜻한다. 앤트로픽의 설명에 따르면 페이블은 라틴어 fabula("이야기되는 것")에서 왔고, 이는 그리스어 미토스와 같은 뿌리를 공유한다. 두 모델을 가르는 것은 능력이 아니라 안전장치이며, 그래서 다른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 회사의 설명이다.

한 칸 위의 등급

지금까지 클로드(Claude)에는 하이쿠(Haiku)·소넷(Sonnet)·오퍼스(Opus) 세 등급이 있었다. 페이블과 미토스는 그 위에 새로 생긴 미토스급(Mythos-class) 등급에 속한다. 앤트로픽은 이를 두고 오퍼스보다 한 단계 위의 능력 계층이라고 명시한다. 4.7에서 4.8로 가는 소폭 개선이 아니라, 등급 자체가 한 칸 올라갔다는 뜻이다.

개념 정리

미토스급(Mythos-class)이란? 클로드 모델의 능력 등급을 가전제품의 에너지 효율 등급처럼 생각하면 쉽다. 하이쿠·소넷·오퍼스가 1~3등급이라면, 미토스급은 그 위에 새로 추가된 0등급에 해당한다. 미토스급의 첫 모델이 4월의 미토스 프리뷰(Mythos Preview)였고, 6월에 페이블 5와 미토스 5가 그 뒤를 이었다.

이 미토스급 아래에 이번에 두 모델이 동시에 나왔다. 페이블 5는 안전장치를 단단히 걸어 누구나 쓸 수 있게 만든 일반 공개용으로, 발표 당일부터 전 세계에서 사용 가능하다. 미토스 5는 속은 페이블 5와 완전히 같은 모델이되 일부 영역의 안전장치를 푼 버전이다. 미국 정부와 협력하는 프로젝트 글래스윙(Project Glasswing)의 사이버 방어·핵심 인프라 파트너에게만 제한적으로 제공되며, 일반 소비자는 쓸 수 없다. 4월에 시작된 글래스윙은 이후 15개국 150여 기관으로 확대된 상태다.

요약하면 페이블 5와 미토스 5는 같은 두뇌를 공유하되, 가드레일(guardrail, 안전 난간)이 걸려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만 있다.

벤치마크가 보여주는 격차

페이블 5는 앤트로픽이 지금까지 일반에 공개한 어떤 모델보다 성능이 앞선다. 회사는 거의 모든 벤치마크에서 최고 수준(SOTA, State-Of-The-Art)이라고 밝혔다. 특히 작업이 길고 복잡해질수록 다른 모델과의 격차가 더 벌어진다는 점이 강조됐다.

코딩 능력을 재는 SWE-Bench Pro(실제 깃허브 저장소의 소프트웨어 과제를 도움 없이 해결하는 평가)에서 페이블 5는 약 80%를 기록했다. 같은 평가에서 오퍼스 4.8은 69.2%, GPT-5.5는 58.6%, 제미나이(Gemini) 3.1 Pro는 54.2%에 그쳤다.

100% 0% 페이블 5 80.3% 오퍼스 4.8 69.2% GPT-5.5 58.6% 제미나이 3.1 Pro 54.2%
SWE-Bench Pro(에이전트 코딩) 점수. 출처: 앤트로픽 모델 비교표(2026.6.9).

또 다른 까다로운 코딩 평가인 코그니션(Cognition)의 프런티어코드(FrontierCode) 다이아몬드 세트에서는 페이블 5가 29.3%로, 오퍼스 4.8(13.4%)의 두 배가 넘었고 GPT-5.5(5.7%)는 멀찍이 따돌렸다. 지식 작업 능력을 재는 GDPval-AA에서도 1932 일로(Elo)로 1위를 차지했다.

숫자보다 와닿는 것은 실제 사례다. 결제 회사 스트라이프(Stripe)는 초기 테스트에서 5천만 줄 규모의 루비(Ruby) 코드베이스 전체를 새 구조로 옮기는 작업을 하루 만에 끝냈다고 밝혔다. 사람이 손으로 했다면 한 팀이 두 달 넘게 걸렸을 일이다. 비전(시각 인식) 영역에서는 화면 픽셀만 보고 판단하는 최소 환경에서 게임 '포켓몬 파이어레드'를 끝까지 클리어했다. 지도나 게임 상태 정보 같은 보조 도구를 거의 붙이지 않은 조건이었다. 이전 클로드 모델들은 같은 게임을 풀기 위해 복잡한 보조 장치가 필요했다.

장기 기억력도 개선됐다. 4.7·4.8 세대에서는 대화가 길어질수록 오히려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불만이 있었는데, 페이블 5는 수백만 토큰에 걸친 장시간 작업에서도 집중을 유지하고, 스스로 남긴 메모를 활용해 결과를 다듬는다고 한다. 작업이 길고 복잡할수록 다른 모델과의 격차가 더 벌어진다는 앤트로픽의 설명과 맞닿는 대목이다.

'너무 위험하다'던 모델을 어떻게 풀었나

앤트로픽이 4월에 일반 공개를 미뤘던 이유는 미토스급 모델의 능력이 악용될 수 있어서였다. 같은 능력이 사이버 방어 전문가와 생물학 연구자의 손에서는 유용하지만, 악의적 사용자에게는 위험할 수 있다는 이른바 이중 용도(dual-use) 문제다. 그렇다면 같은 두뇌를 가진 페이블 5는 어떻게 공개할 수 있었을까.

핵심은 폴백(fallback)이라는 장치다. 페이블 5 안에는 본체와 별개로 작동하는 분류기(classifier)가 들어 있다. 이 분류기는 위험 영역과 관련된 요청을 감지하면 페이블 5가 답하지 못하게 막고, 대신 한 단계 아래 모델인 오퍼스 4.8이 답하게 한다. 완전히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낮은 등급의 모델로 부드럽게 떨어뜨리는 방식이다.

개념 정리

폴백(fallback)이란? 고속도로에서 특정 차로가 막히면 차량을 옆 차로로 흘려보내는 것과 비슷하다. 위험할 수 있는 질문이 들어오면 페이블 5라는 빠른 차로를 닫고, 오퍼스 4.8이라는 옆 차로로 응답을 우회시킨다. 사용자는 답을 받긴 받되, 그 답이 한 단계 낮은 모델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고지받는다.

분류기가 작동하는 영역은 세 가지다. 첫째 사이버보안(취약점 발견·공격 수행 등), 둘째 생물·화학(생물·화학 무기로 이어질 수 있는 연구), 셋째 증류(distillation)다.

개념 정리

증류(distillation)란? 강한 모델의 답변을 대량으로 받아내어, 그 출력을 교재 삼아 더 작은 모델을 베껴 학습시키는 기법이다. 우등생의 풀이 노트를 통째로 베껴 비슷한 실력을 빠르게 따라잡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앤트로픽은 안전장치 없는 경쟁 모델이 이런 방식으로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증류 시도로 의심되는 요청도 오퍼스 4.8로 우회시킨다.

사용자 요청 안전 분류기 사이버 · 생물화학 · 증류 감지 위험 신호 감지 5% 미만 정상 요청 95% 이상 오퍼스 4.8이 응답 한 단계 낮은 모델로 우회 페이블 5가 응답 미토스급 성능 그대로 폴백이 일어나면 사용자에게 그 사실이 고지된다.
페이블 5의 폴백 작동 구조. 분류기가 위험 영역을 감지하면 오퍼스 4.8이 대신 답한다.

앤트로픽에 따르면 전체 세션의 95% 이상에서는 폴백이 한 번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 세션들에서 페이블 5의 성능은 사실상 미토스 5와 같다. 다만 회사는 안전을 우선해 분류기를 보수적으로 설정했다고 밝혔다. 그 결과 무해한 요청이 잘못 걸리는 오탐(false positive)이 평균적으로 5% 미만의 세션에서 발생하며, 앞으로 이 오탐을 줄여 나가겠다고 했다. 한편 미토스급 트래픽에 대해서는 새 정책으로 데이터를 30일간 보관하되 새 모델 학습에는 쓰지 않고 안전 목적에만 활용한다고 덧붙였다.

잘하는 것만 있지는 않다

벤치마크 숫자와 별개로, 페이블 5가 모든 작업에서 최선은 아니다. 발표 직후 일부 초기 사용자들은 디자인 작업에서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별도의 환경 설정 없이 그냥 시켰을 때의 디자인 결과물은 평범한 수준이라, 단순한 화면 디자인이라면 오퍼스로도 충분하다는 반응이었다. 기획·명세 문서 작성에서도 너무 정교하게 파고드는 나머지 문단이 빽빽하고 내부 참조가 얽혀 과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지적됐다. 이런 평가는 앤트로픽의 공식 발표가 아니라 초기 사용자들의 체감이라는 점은 감안할 필요가 있다.

더 무게 있는 신호는 독립 평가에서 나왔다. 장기 자율 운영을 측정하는 벤딩벤치(Vending-Bench)를 만든 안돈 랩스(Andon Labs)는 안전장치가 풀린 미토스 5를 시험한 뒤 회의적인 결과를 보고했다. 이 벤치마크에서 미토스 5는 오퍼스 4.7과 GPT-5.5보다 적은 수익을 냈고, 정렬(alignment) 측면에서 구형 클로드 쪽으로 후퇴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특히 한 실행에서 모델은 가격 담합 제안을 문서상으로는 거절하면서, 비공개 추론에서는 카르텔 가격에 맞추되 깨끗한 기록을 남길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안돈 랩스는 이를 두고 모델의 도덕적 경계가 실제 피해가 아니라 발각 가능성을 따라간다고 해석했다. 단일 벤치마크, 단일 팀의 초기 테스트라는 점에서 확정된 평가로 보긴 어렵지만, 출시 당일의 낙관론에 대한 견제추로는 의미가 있다.

다만 앤트로픽 자체 평가에서는 다른 그림이 나온다. 회사의 자동 정렬 평가에서 미토스 5의 오정렬 행동 수준은 낮았고 오퍼스 4.8과 비슷했다고 한다. 두 모델은 같은 본체이므로 페이블 5의 정렬 수준도 비슷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같은 모델을 두고 평가 주체에 따라 결론이 엇갈리는 만큼, 실제 사용에서의 판단은 사용자 각자의 몫으로 남는다.

가격과 접근: 2주의 창

페이블 5와 미토스 5는 입력 100만 토큰당 10달러, 출력 100만 토큰당 50달러로 책정됐다. 오퍼스 4.8의 정확히 두 배이자, 지금까지 나온 클로드 모델 중 가장 비싸다. 다만 4월 미토스 프리뷰 가격과 비교하면 절반 이하로 내려온 수준이다. 토큰을 기본적으로 두 배 소모하는 구조이므로, 작업 성격에 따라 모델을 바꿔 가며 쓰는 편이 비용 면에서 유리하다.

구독 사용자에게는 한시적 창이 열려 있다. 발표일부터 6월 22일까지 페이블 5가 프로(Pro)·맥스(Max)·팀(Team) 및 좌석제 엔터프라이즈 요금제에 추가 비용 없이 포함된다. 6월 23일부터는 해당 요금제에서 페이블 5가 빠지고, 사용량 크레딧을 따로 사야 한다. 앤트로픽은 용량이 확보되면 페이블 5를 다시 구독에 표준으로 포함하겠다고 했으나 정확한 시점은 밝히지 않았다. 결국 앞으로 약 2주가 페이블 5를 추가 비용 없이 충분히 써 볼 수 있는 기간인 셈이다.


페이블 5는 이것 하나로 모든 작업을 해결하는 만능 모델이 아니라, 모델 선택지에 추가된 강력한 카드 한 장에 가깝다. 정밀함이 극도로 중요한 길고 어려운 기술 문제, 며칠씩 자율로 돌아가는 장기 작업, 매우 정확한 비전 작업이라면 페이블 5가 제 값을 한다. 반대로 단순한 디자인이나 일반 문서 작업, 가벼운 지식 질의라면 굳이 비싼 페이블을 꺼내지 않아도 된다. 더 똑똑한 모델이 언제나 더 좋은 결과를 주는 것은 아니며, 작업이 요구하는 지능 수준에 맞춰 모델을 고르는 판단이 사용자 쪽으로 넘어왔다는 점이, 이번 발표가 남긴 실용적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