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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분석 · WWDC 2026

애플 WWDC 2026: 제미나이를 스승 삼은 애플 인텔리전스 대전환

2026년 6월 8일, 애플은 인공지능 전략을 처음부터 다시 짜서 들고 나왔다. 핵심은 두 가지다. 구글 제미나이(Gemini)를 직접 돌리는 것이 아니라 '스승'으로 삼아 자체 모델을 빚었다는 점, 그리고 휴대폰 안에서 200억 매개변수(parameter) 규모의 모델을 돌리는 길을 열었다는 점이다.

이날 행사는 팀 쿡(Tim Cook)이 최고경영자 자격으로 진행한 마지막 개발자 회의이기도 했다. 쿡은 오는 9월 존 터너스(John Ternus)에게 자리를 넘기며, 키노트 말미에 짧은 작별 인사를 남겼다. 그러나 무대의 진짜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라 모델이었다. 지난 2년간 "곧 나온다"는 약속만 반복하던 차세대 시리(Siri)가 마침내 '시리 AI(Siri AI)'라는 이름으로 모습을 드러냈고, 그 밑에는 완전히 새로 설계한 모델 묶음이 깔렸다.

발표 내용은 풍성하지만 과장도 적지 않게 섞여 있다. 이 글에서는 검증된 사실을 중심으로, 무엇이 실제로 바뀌었고 무엇이 마케팅 수사인지를 구분해 정리한다.

다섯 개의 모델로 쌓아 올린 구조

애플은 이번에 AFM(Apple Foundation Model, 애플 파운데이션 모델) 3세대를 공개하면서 다섯 개의 모델을 명시했다. 2024년에 "온디바이스 모델 / 서버 모델" 두 가지로만 뭉뚱그리던 것과 비교하면, 모델을 역할별로 또렷이 나눈 것이 눈에 띈다. 기기 안에서 도는 모델 둘, 클라우드에서 도는 모델 셋으로 짜여 있다.

기기 안 (On-device) 프라이빗 클라우드 컴퓨트 (PCC) AFM 3 Core · 30억 가벼운 텍스트 처리 · 경로 배정 · 빠른 이해 AFM 3 Core Advanced · 200억(희소) 요청당 10~40억만 활성화 · 시리 AI 받아쓰기 · 음성합성 · 이미지 이해 AFM 3 Cloud 주력 클라우드 텍스트·이미지 이해 ADM 3 Cloud 이미지 생성 (플레이그라운드·리프레임) AFM 3 Cloud Pro 복잡 추론·도구 사용 (에이전트) 엔비디아 GPU · 구글 클라우드에서 구동 가벼운 작업은 기기에서 무거운 작업은 클라우드로 지연 시간과 난이도에 따라 자동으로 적절한 모델에 배정(라우팅)
AFM 3세대의 다섯 모델 구조. 온디바이스 두 모델만 크기가 공개되었고, 클라우드 세 모델의 매개변수 규모는 비공개다.

여기서 클라우드 모델 셋의 매개변수 규모는 공개되지 않았다. 크기가 밝혀진 것은 기기에서 도는 두 모델뿐이다. 그래서 분석의 무게중심도 자연히 온디바이스 쪽으로 쏠린다.

휴대폰 안에 200억 매개변수를 넣는 법

이번 발표에서 기술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모델은 AFM 3 Core Advanced다. 200억 매개변수짜리 모델이 휴대폰 안에서 도는데, 비결은 한 번에 약 40억 개를 넘기지 않도록 일부만 깨워 쓰는 데 있다.

이 기법을 애플 연구진은 IFP(Instruction-Following Pruning, 지시 추종 가지치기)라고 부른다. 2025년 1월에 공개한 방법으로, 희소성(sparsity)을 학습 시점에 고정해 두는 대신 작은 예측기가 들어온 질문을 읽고 그 요청에 필요한 신경망 부분만 그때그때 골라 활성화한다. 원논문이 내세운 결과는 이렇다. 활성 매개변수 30억 모델이 같은 크기의 일반 모델보다 수학·코딩에서 5~8점 앞섰고, 90억 규모 모델에 맞먹는 성능을 냈다. 곧 30억짜리 계산량으로 90억급 품질을 산 셈이다.

비유로 이해하기

대형 병원에 전문의 20명이 상주한다고 하자. 환자가 올 때마다 20명 전원을 회진시키면 비용이 감당이 안 된다. IFP는 접수창구에서 환자의 증상을 먼저 읽고, 그 사례에 필요한 두세 명만 호출하는 분류 간호사에 가깝다. 병원 전체 역량(200억)은 그대로 두되, 매 진료에 실제로 동원되는 인력(10~40억)은 최소로 줄인다. 덕분에 작은 기기에서도 큰 모델을 품을 수 있다.

실제 제품에서 바뀌는 것은 메모리를 다루는 방식이다. 애플은 모델 전체를 플래시 저장장치에 두고, 항상 켜져 있는 소수의 '공유 전문가'만 D램(DRAM)에 상주시킨 뒤, 예측기가 고른 전문가를 필요할 때만 D램으로 불러온다. 이 페이징 덕에 200억 모델이 배터리를 녹이지 않고 기기 안에 들어간다.

이것이 고전적 의미의 MoE(Mixture of Experts, 전문가 혼합)는 아니다. 토큰마다 학습된 라우터가 N개 중 K개를 고르는 방식과는 다르다. 그러나 사촌뻘이며, 무엇보다 소비자 기기에 실제로 탑재되는 형태로 다듬어 내보낸 것은 처음이다.

한 가지 짚어 둘 점이 있다. 애플은 이 모델을 GPT-5.5, 클로드 오퍼스(Claude Opus) 4.8, 제미나이 3.1 프로 같은 경쟁 모델과 비교하지 않았다. 모든 비교는 자사의 2025년 모델 대비다. 따라서 공개된 수치는 '세대 간 진전'의 증거이지 경쟁사 대비 우위를 보여 주는 순위표가 아니다.

제미나이는 스승이지 두뇌가 아니다

이번 협력에서 가장 오해가 많았던 대목이다. 애플과 구글의 관계를 정확히 정리하면 이렇다. 애플은 제미나이를 제품에서 직접 돌리지 않는다. 대신 제미나이의 출력을 후학습(post-training) 재료로 쓴다. 일종의 증류(distillation) 방식이다.

애플 임원들은 표현을 신중하게 골랐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담당 크레이그 페데리기(Craig Federighi)는 구글 어시스턴트를 가져다 쓴 분량은 전혀 없다고 못 박았다. 인공지능 담당 부사장 아마르 수브라마니아(Amar Subramanya)는 모델 전부가 애플 실리콘(Apple Silicon) 전용으로, 자체 데이터로 학습하고 제미나이 프런티어 모델의 출력으로 정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유로 이해하기

제미나이가 명장 도예가라면, 애플 모델은 그 밑에서 배운 제자다. 제자는 스승의 그릇을 그대로 가져다 파는 것이 아니라, 스승의 솜씨를 보고 익혀 자기 가마에서 자기 흙으로 굽는다. 완성품은 제자의 작품이지만, 그 안에는 스승에게서 배운 손놀림이 배어 있다. "제미나이로 학습했다"와 "제미나이다"는 이렇게 다르다.

정직하게 요약하면 제미나이는 교사 신호(teacher signal)이지 실행되는 모델이 아니다. 사실 이는 2026년 들어 자리 잡은 흐름이다. 최전선 연구소가 교사 모델을 학습시키면, 하류의 기업들이 그 출력을 증류해 자기 모델을 빚는다. 애플은 이 방식을 공개적으로 채택한 가장 큰 유통 채널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AFM 3 Cloud Pro에 한정하면 구글의 관여가 더 깊다. 여러 보도는 제미나이에서 파생된 학습 인프라를 쓰되 사전·사후 학습은 애플이 맡고, 추론은 엔비디아(NVIDIA) 하드웨어에서 돈다고 전한다. 애플은 이 설명을 반박하지 않았으나 무대에서 먼저 꺼내지도 않았다.

프라이빗 클라우드 컴퓨트, 구글 데이터센터로 확장되다

애플의 PCC(Private Cloud Compute, 프라이빗 클라우드 컴퓨트)는 2024년에 인상적인 보안 설계로 출발했다. 애플 실리콘 서버가 코드 감사를 거친 빌드만 구동하고, 애플조차 사용자 데이터에 닿을 수 없다는 암호학적 보장을 내건 구조였다.

2026년의 변화는 다소 의외다. 이제 PCC는 구글 클라우드 안에 있는 엔비디아 GPU 위에서도 돈다. 애플은 같은 데이터 처리 보장이 그대로 적용된다고 강조한다. 왜 자사 서버가 아니라 구글 데이터센터였을까. 보도에 따르면 애플은 새 Cloud Pro 모델을 자체 PCC 하드웨어에서 먼저 돌려 봤으나 너무 느렸고, 결국 구글 클라우드의 엔비디아 용량이 실제로 출시 가능한 경로였다.

흥미로운 점은 키노트에서 애플이 엔비디아만 언급하고 구글은 거의 꺼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구글은 연구 발표문과 임원 인터뷰에서야 등장한다. 애플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애플 모델, 엔비디아 하드웨어, 애플 프라이버시"였던 셈이다. 그러나 실제 공급망은 더 얽혀 있다. 프라이버시 주장의 실체는 GPU가 어느 나라에 놓였느냐가 아니라 암호학적 증명 사슬에 있으므로, 위치가 바뀌었다고 보장이 깨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신뢰 모델이 더 많은 사업자에 걸치게 된 것은 사실이다.

이 협력 한 건의 비용은 애플 입장에서 연 10억 달러 안팎으로 알려졌다. 자체 모델을 고집해 온 회사가 외부의 손을 빌리기로 한 무게가 그만큼이다.

시리 AI: 별도 앱을 얻은 대화형 비서

겉으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시리다. 새 시리는 대화형으로 거듭나, 한 주제를 두고 앞뒤로 이어 물을 수 있다. 챗지피티(ChatGPT)나 제미나이를 쓰듯 웹 지식과 연결되고, 화면 인식과 앱 동작 연동도 지원한다. 별도의 시리 앱이 생긴 점도 새롭다. 애플은 이를 두고 분리된 챗봇이 아니라 흐름에 통합된 대화 도구이며, 아이폰·아이패드를 오가며 지난 대화를 다시 찾아 이어 가기 위한 자연스러운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이 비서의 진짜 무기는 개인 맥락이다. 내 문자, 사진, 일정, 메일을 가로질러 답을 만들어 낸다. 가령 가족에게 어떤 물건을 추천받았는지 묻는 데모에서, 시리는 문자 대화를 훑어 해당 브랜드를 찾아냈다. 이런 개인 정보를 외부로 넘기지 않고 답에 녹일 수 있는 회사는 사실상 애플과 구글뿐이다. 안드로이드와 아이오에스(iOS) 안에 사용자의 삶이 쌓여 있기 때문이다. 모델 자체의 절대 성능은 최상위권이 아닐지라도, 이 자리만큼은 애플이 쉽게 내주지 않을 위치다.

기기 분화: 12GB라는 새로운 선

여기서 자주 잘못 전해지는 대목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새 시리는 아이폰 17 프로나 에어부터만 된다"는 식의 정리가 떠돌지만, 이는 사실의 일부만 본 것이다.

애플이 처음으로 그은 12GB 통합 메모리 기준선은 가장 강력한 온디바이스 모델, 즉 AFM 3 Core Advanced에만 걸린다. 그리고 이 모델이 좌우하는 기능은 두 가지로 한정된다. 더 표현력 있는 시리 음성과, 시스템 전반의 고급 받아쓰기 정확도다. 이 둘만이 아이폰 에어·아이폰 17 프로·프로 맥스, M4 이상 아이패드(12GB↑), M3 이상 맥(12GB↑)을 요구한다. 기본 아이폰 17은 8GB라 여기서 빠지고, 한때 애플 인텔리전스를 앞세워 팔린 아이폰 16 프로도 이 선 아래에 놓인다.

그 외 거의 모든 기능, 곧 대화형 시리 AI 자체, 개인 맥락, 화면 인식, 웹 답변, 별도 시리 앱, 비주얼 인텔리전스, 작문 도구는 기존의 넓은 애플 인텔리전스 기기 목록에서 그대로 돈다. 그 목록에는 아이폰 15 프로, 16 시리즈, 그리고 기본 17이 포함된다. 정리하면 기본 아이폰 17 사용자도 새 대화형 비서를 쓴다. 다만 음성은 예전 것이고 받아쓰기는 덜 정밀할 뿐이다.

넓은 애플 인텔리전스 (8GB↑) · 대화형 시리 AI · 개인 맥락 / 화면 인식 · 웹 답변 / 별도 시리 앱 · 비주얼 인텔리전스 / 작문 도구 지원 기기 아이폰 15 Pro · 16 시리즈 · 17 (기본 17 포함) 최강 온디바이스 모델 (12GB↑) · 표현력 있는 시리 음성 · 고급 받아쓰기 정확도 — 단 두 기능만 해당 — 지원 기기 아이폰 Air · 17 Pro · Pro Max M4↑ 아이패드 · M3↑ 맥 (각 12GB↑)
12GB 기준선은 시리 AI 전체가 아니라 음성·받아쓰기 두 기능에만 적용된다. 출처 영상이 "신규 시리 전체가 17 Pro 이상"이라 전한 것은 이 두 층위를 합쳐 본 데서 비롯된 과장이다.

개발자에게 더 중요한 변화

대중의 시선은 시리에 쏠렸지만, 개발자에게 직접 와닿는 변화는 따로 있다. 2025년에 나온 파운데이션 모델 프레임워크(Foundation Models framework)가 그것이다. 이는 앱이 별도의 API 키나 네트워크, 토큰당 비용 없이 기기 안의 모델을 호출하게 해 주는 스위프트(Swift) API다.

2026년 업데이트의 핵심은 이미지 입력 지원이다. 이제 텍스트와 함께 이미지를 넘길 수 있어, 사진에 설명을 달거나 영수증에서 항목을 뽑아내거나 화면 요소를 분류하는 작업을 클라우드 왕복 없이 기기 안에서 처리한다. 구조화된 출력과 도구 호출에 강하고, 네트워크 의존이 없어 오프라인에서도 안정적이다. 반대로 일반 상식 질의응답이나 최신 세계 지식, 최전선 추론처럼 무거운 작업은 설계상 클라우드 모델의 몫으로 남는다.

그 밖에 개발 도구도 손봤다. 엑스코드(Xcode)는 외부 인공지능 코딩 도구를 연결할 수 있게 되어, 클로드 코드(Claude Code)·코덱스(Codex)·제미나이를 붙여 이른바 '바이브 코딩'을 지원한다. 사파리(Safari)에서는 사용자가 원하는 확장 기능을 인공지능에게 말로 시켜 직접 만들어 내는 기능이 추가됐다. 시뮬레이터와 실기기를 한 화면에서 통합 제어하는 디바이스 허브도 새로 들어왔다.

유럽연합과 중국은 출발선에서 제외

지리적 제약은 애플 인공지능 기준으로도 이례적으로 깐깐하다. 유럽연합에서는 시리 AI가 출시 시점에 아이폰·아이패드에서 제공되지 않는다. 맥·애플워치·비전 프로는 포함되며, 애플은 DMA(Digital Markets Act, 디지털시장법) 준수 작업을 이유로 든다. 중국 본토에서는 애플 인텔리전스 전체가 규제 승인 전까지 막힌다.

같은 하드웨어가 애플 아이디(Apple ID) 지역에 따라 전혀 다른 기능을 수행하게 된 것이다. 애플 인텔리전스는 이제 지역에 걸쳐 '부분적 제품'이 되었고, 개발 문서 역시 지역별 기능 가용성에 따라 갈라질 수밖에 없다.

무엇이 바뀌었나

총평하자면, 성능이 단숨에 경쟁사를 제친 도약은 아니다. 애플 스스로 제3자 벤치마크를 내놓지 않았고, 비교 대상도 자사 전작뿐이었다. 모델의 절대 역량은 여전히 최전선 연구소들의 뒤를 따른다.

그럼에도 세 가지 변화는 분명하다. 첫째, 온디바이스 거대언어모델이 실용의 문턱을 넘었다. 이미지 입력까지 받는 200억 희소 모델이 휴대폰에서, 그것도 개발자에게 무료로 돌아간다. 구조화 추출·분류·요약·도구 배정 같은 작업을 위해 그동안 클라우드에 돈을 치르던 앱들은 이제 그럴 필요가 줄었다. 둘째, 최전선급 작업은 여전히 클라우드의 몫이다. 긴 맥락, 에이전트 반복, 고난도 추론은 Cloud Pro가 맡는다. 셋째, 애플조차 모델 한 곳에 묶이지 않는 다중 공급 구조를 택했다. 제미나이로 증류하고 엔비디아 위에서 돌리는 회사를 보며, 단일 벤더 종속이 점점 정당화하기 어려운 선택이 되어 간다.

관통하는 결론은 이렇다. 애플은 온디바이스 거대언어모델을 아이오에스의 기본 역량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되면 흥미로운 작업은 위 단계로 올라간다. 언제 기기에서 처리하고, 언제 클라우드로 우회하며, 그것을 어느 한 공급자에 묶이지 않고 어떻게 해낼 것인가. 모델의 크기를 묻던 질문이, 무엇이 기기에서 안 도느냐를 묻는 질문으로 바뀌었다.

2026년 6월 11일 작성 · 자료 검증: 애플 뉴스룸, 애플 머신러닝 리서치, MacRumors, 9to5Mac, CNBC, AppleInsider, Macworld 등 공개 보도 교차 확인. 모든 인용은 원문을 직접 옮기지 않고 사실관계만 풀어 정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