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 창업과 자본
좌절은 판결이 아니라 판독이다
창업을 접어야 할 때의 진단법, 그리고 'VC 렌즈'의 사각지대
찰리 오도넬은 트위터와 포스퀘어를 초기에 알아본 것으로 알려진 벤처투자자다. 유니언스퀘어벤처스(USV, Union Square Ventures)의 첫 애널리스트로 출발해 퍼스트라운드캐피털(First Round Capital)의 뉴욕 사무소 개설을 도왔고, 브루클린에 처음 자리 잡은 벤처펀드 브루클린브리지벤처스(Brooklyn Bridge Ventures)를 세워 100곳이 넘는 초기 기업에 첫 수표를 끊었다. 2026년 4월 펴낸 책 「Founder Unfriendly(파운더 언프렌들리)」와 그 후속 글에서, 그는 좌절한 창업자에게 평소와 다른 질문을 던진다.
"회사가 당신의 시간과 돈과 감정을 받아 마땅하다는 증거로 무엇을 보여주었는가?"
이 질문이 흥미로운 이유는 '이건 안 된다'거나 '나는 못 한다'는 즉결 판단을 미루기 때문이다. 좌절을 자기 자신에 대한 선고로 읽는 대신, 무엇 때문에 좌절했는지를 데이터로 끊어 읽으라고 요구한다. 오도넬의 표현을 빌리면, 떠날지 남을지는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판독의 문제다. 이 글은 그 진단법을 따라가며 어디까지가 쓸 만하고 어디서부터 전제를 의심해야 하는지를 짚는다.
가장 유용한 한 수 — 좌절을 판독으로 바꾸기
좌절은 모호한 감정 상태다. 오도넬의 방법은 이 상태를 "계속 베팅할 근거가 되는 신호를 한 문장으로 댈 수 있는가?"라는 반증 가능한 질문으로 환원한다. 댈 수 있으면 근거가 있는 것이고, 입이 막히면 그 침묵 자체가 지금 시점의 데이터다. 막연한 자기비하도, 막연한 희망도 같은 잣대 위에 올려놓는다는 점에서 이 한 수는 값이 있다.
01세 갈래로 끊어 읽기
오도넬은 좌절의 원인 후보를 셋으로 나눈다. 분야, 팀, 아이디어. 각각 판독법이 다르다.
분야(space). 가장 객관적으로 가늠할 수 있는 항목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평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미팅이 쉽게 잡히는가? 지금 이 영역을 적극적으로 사냥하는 투자자의 이름을 댈 수 있는가? 아니면 투자자들이 '여긴 무덤'이라고 말하는가? 차가운 분야는 당신에 대한 선고가 아니다. 다만 나머지 모든 항목의 통과 기준을 끌어올릴 뿐이다.
팀(team). 대부분이 움찔하는 대목이다. 오도넬은 채용을 긍정의 과정이 아니라 선별의 과정이라고 못 박는다. 모두에게서 가치를 보려는 선한 태도는 존중하지만, 어느 시점엔 골라야 하고 모두가 같은 잠재력을 가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서 기준은 "내가 우리 팀을 높게 보는가"가 아니라 "이 분야에서 실제로 활동하는 투자자가 최상급이라 부를 것인가"다. 그 판단은 대부분의 창업자가 도달하지 못하는 수준의 분야 지식을 요구한다. '제조 경험자가 필요하다' 정도가 아니라, 이긴 회사와 죽은 회사에서 제조를 누가 맡았고 어떤 실수를 했는지, 그 사람들과 직접 이야기해봤는지까지.
비유 — 도메인 전문성과 끈기
오도넬은 "끈기는 고르게 분포하지만 깊은 도메인 전문성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마라톤에 빗대면, 끝까지 버티는 의지는 출전자 대부분이 어느 정도 갖추고 있다. 변별력을 만드는 것은 코스의 굽이마다 어디서 힘을 아끼고 어디서 치고 나가야 하는지를 몸으로 아는, 그 코스를 수십 번 뛰어본 경험이다. 그가 말하는 '최상급 팀'은 재능의 총합이 아니라 불공정한 이점의 묶음 — 남이 갖지 못한 경험, 실제 관계, 승패를 직접 본 기억 — 이다.
아이디어(idea). 오도넬이 보기에 창업자가 스스로 진단을 망치는 지점이다. 사람들은 제품부터 들이민다. '내가 이런 걸 만들었고 이런 기능을 한다.' 문제는 제품을 앞세우면 거절이 돌아왔을 때 그 거절이 아이디어 때문인지, 팀에 대한 암묵적 평가 때문인지, 애초에 분야에 아무도 흥분하지 않아서인지 구분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래서 그는 순서를 뒤집으라고 한다. 제품이 아니라 팀과 문제를 앞세워라. '우리는 누구고, 무엇을 해왔고, 어떤 문제를 쫓는다. 이런 팀이 이 문제를 푸는 데 얼마나 베팅하고 싶은가?' 답이 '뭘 만들지 보고 싶다'라면 드물게도 아이디어를 확정하기 전에 탐색 비용을 대줄 누군가를 만난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증명과 사람을 통과해야 하는 다른 트랙 위에 있는 것이다.
02사회적 자본의 함정
오도넬이 짚는 함정 하나가 특히 날카롭다. "아직 이르니 엔젤이나 당신을 이미 아는 사람들에게서 받아라"라는 말을 단순한 '단계' 문제로 치부하는 것이다. 지인에게서 돈을 모을 수 있다면, 그것은 쌓아둔 사회적 자본을 현금으로 바꾸는 것이지 낯선 투자자의 기준을 통과한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당신이 매력적인 이유는 관계 때문이고, 낯선 이에게는 차가운 거절 대상일 수 있다. 둘을 혼동하면 제도권 트랙에 자리도 얻지 못한 채 그 트랙 위에 있는 양 돈을 태우게 된다.
비유 — 사회적 자본
사회적 자본은 '신뢰의 잔고'와 같다. 오래 쌓은 관계에서 인출하는 호의는, 당신이 시장에서 객관적으로 검증되었다는 증거가 아니다. 잔고를 헐어 쓰는 것과, 새 손님이 제 발로 값을 치르는 것은 전혀 다른 신호다.
여기까지는 대체로 동의할 수 있다. 진단을 감정에서 떼어내고, 거절의 출처를 분해하고, 관계 자본과 시장 검증을 구분하라는 조언은 실무에서 흔히 관찰되는 함정을 정확히 건드린다. 문제는 이 진단법 전체가 한 가지 렌즈 위에 서 있다는 점이다.
03가장 큰 사각지대: 'VC 렌즈'
이 진단법의 모든 잣대는 결국 벤처투자자의 시선이다. '최상급 팀'의 기준도 투자자가 부를 이름이고, 분야가 차가운지도 투자자가 사냥하는지로 재며, 떠날지 남을지의 최종 심판도 투자자의 판독에 맡겨진다. 그런데 '계속할 가치가 있는가'와 'VC가 돈을 댈 가치가 있는가'는 같은 질문이 아니다. 이 진단법은 후자로 전자를 대신한다.
규모를 보면 왜 이것이 문제인지 분명해진다.
개념 — 벤처캐피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벤처캐피털(VC, Venture Capital)은 기관과 부유한 개인의 돈을 모아 수십 개 스타트업에 나눠 베팅하는 금융 상품이다. 작동 원리는 멱법칙(power law)이다. 대부분은 죽고, 소수의 거대한 성공이 펀드 전체의 손실을 메우고도 남는 수익을 낸다. 흔히 인용되는 패턴으로, 포트폴리오 10곳 중 6곳은 문을 닫고, 3곳은 적당한 값에 팔리며, 단 1곳만 의미 있는 성공에 도달한다. 펀드 수익의 60~80%가 상위 10% 투자에서 나온다는 집계도 있다. VC는 '대박 한 방'을 전제로 설계된 도구라는 뜻이다.
이 구조가 함의하는 바는 분명하다. VC는 모든 좋은 사업이 아니라 '거대해질 수 있는' 극소수의 사업에만 맞는 도구다. 실제로 VC에 도달하는 스타트업은 흔히 인용되는 추정치로 전체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집계 기준에 따라 0.05%에서 1% 미만으로 편차가 크다). 수익을 내며 멀쩡히 굴러가는 회사 상당수는 VC를 한 푼도 받지 않는다. 거꾸로 VC 투자를 받은 기업의 약 75%는 투자금을 회수해 돌려주지 못한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므로 차가운 분야에서 떠나라는 조언은 '벤처를 일으킬 작정이라면'이라는 단서가 붙어야만 성립한다. 자력으로 키워 탄탄한 마진을 내는 사업이라면, VC가 사냥하지 않는 '무덤 같은' 분야가 오히려 경쟁이 옅은 좋은 사냥터일 수 있다. VC 베팅으로는 형편없는 회사가 사업으로는 훌륭한 경우는 흔하고, 그 반대도 성립한다.
오도넬 자신도 다른 글과 인터뷰에서 "자금 조달은 창업자가 이기는 게임이 아니다", "벤처캐피털은 공정성 기계가 아니라 특정한 일을 하는 금융 상품"이라고 말한다. 진단의 전제를 그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다만 이 '떠날지 남을지' 안내문은 그 전제를 충분히 분리해 보여주지 않은 채, VC 적합성을 곧 사업 존속 여부의 잣대처럼 다룬다. 안내문을 따르는 창업자가 가장 먼저 점검해야 할 것은 세 진단이 아니라, 애초에 자신이 이 트랙 위에 서야 하는 사람인가다.
04"끈기는 고르고 전문성은 아니다"라는 수사
작은 지점 하나. "끈기는 고르게 분포하지만 깊은 도메인 전문성은 그렇지 않다"는 문장은 직관적으로 설득력 있지만, 사실 명제라기보다 수사적 단언이다. 끈기 역시 사람마다 편차가 크고, 무엇을 끈기로 볼지에 따라 측정이 달라진다. 이 문장의 진짜 기능은 통계적 주장이 아니라 강조다. '재능보다 불공정한 이점이 변별력을 만든다'는 메시지를 각인시키는 장치로 읽는 편이 정확하다. 좋은 비유는 종종 사실의 외피를 쓰고 등장하는데, 받아들이는 쪽에서 그 둘을 구분해 두는 편이 안전하다.
05편향 방어 논리의 낙관
오도넬은 받은 좌절이 정직한 평가인지 편향인지 확신하기 어려운 사람 — 여성, 유색인종, 나이 많은 창업자 — 에게 별도의 조언을 덧붙인다. 논거를 명시적으로 드러내게 하라는 것이다. "정직한 피드백에는 댈 수 있는 이유가 있고, 편향에는 없다"는 논리다.
방향은 옳지만 판별법으로서는 낙관적이다. 편향을 가진 사람도 사후에 그럴듯한 이유를 얼마든지 만들어낸다. 이유를 댈 수 있다는 사실이 편향이 아니라는 깨끗한 증거가 되지는 못한다. 그리고 편향이 실재한다는 점은 데이터가 말해 준다.
미국 기준으로 여성만으로 구성된 창업팀의 몫은 2024년 약 1%로, 오히려 직전보다 줄었다(PitchBook 집계). 의사결정 구조 자체가 기울어져 있다는 정황도 뚜렷하다. 미국 VC 회사의 약 73%에는 여성 투자 파트너가 한 명도 없고, 투자 의사결정 직위 중 여성 비율은 약 17%에 그친다. 이런 숫자 앞에서 '논거를 대게 하라'는 처방은 완벽한 판별법일 수 없다.
그럼에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 명시화는 편향을 가려내지는 못해도, 적어도 막연한 거절을 검증 가능한 주장으로 끌어내려 기록을 남긴다. 처방의 한계를 인정하되 폐기할 이유는 아니다.
06언제 쓰고, 언제 의심할 것인가
오도넬의 진단법에는 분명한 쓸모가 있다. 좌절을 자기 선고에서 떼어내 "계속 베팅할 신호를 한 문장으로 댈 수 있는가"라는 검증 가능한 질문으로 바꾸는 한 수, 거절의 출처를 분야·팀·아이디어로 분해하는 틀, 관계 자본과 시장 검증을 구분하라는 경고는 그대로 가져다 쓸 만하다.
다만 이 도구에는 사용 설명서가 빠져 있다. 모든 잣대가 VC의 시선이라는 점, 그래서 'VC가 댈 가치'와 '계속할 가치'가 슬그머니 포개진다는 점이다. 벤처 자금 조달이라는 좁은 트랙 위에 이미 올라선 창업자에게 이 진단법은 정직한 거울이다. 그 트랙 밖에 있거나, 트랙 자체가 자신에게 맞는지 먼저 따져야 하는 사람에게는 전제를 한 겹 의심하고 읽어야 하는 글이다.
좌절이 판결이 아니라 판독이라는 말은 맞다. 다만 판독에는 기준선이 필요하고, 어떤 기준선을 쓰느냐가 답을 절반쯤 정한다.
오도넬은 VC의 자를 건넨다. 그 자가 당신의 질문에 맞는 자인지부터 재 보는 것이, 진단의 진짜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