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cobhan.me
AI · 조직 · 경제사

사라진 생산성
AI 시대의 다이너모 역설

AI가 개인을 10배 빠르게 만들었다. 그런데 10배 가치 있어진 회사는 없다. 사라진 생산성은 어디로 갔는가.

2026년 6월 · 분석 보고서

실리콘밸리 엔터프라이즈 AI 기업 헤비아(Hebbia)의 창업자 조지 시불카(George Sivulka)가 최근 한 편의 에세이를 공개했다. 제목은 "생산적인 개인이 생산적인 기업을 만들지는 않는다"이다. 그가 던진 질문은 단순하지만 날카롭다. AI 도구가 그것을 다룰 줄 아는 개인의 생산성을 열 배로 끌어올렸다는 것은 누구나 체감한다. 그런데 그 결과로 기업 가치가 열 배 뛰었다는 회사는 보이지 않는다. 개인 단위에서 분명히 발생한 생산성이, 조직 단위의 성과로 집계되지 않고 어딘가로 증발해 버린 것이다.

시불카의 진단은 100년도 더 된 경제사의 한 장면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 진단은 자신이 파는 제품을 정당화하는 마케팅의 외피를 두르고 있긴 하지만, 골격만 떼어놓고 보면 경제학에서 이미 충분히 검증된 이론 위에 서 있다. 이 글은 그 골격을 경제사 이론과 2025~2026년의 실증 데이터로 보강해 다시 검토한다.


1100년 전에 이미 일어난 일

증기에서 전기로, 그러나 30년의 공백

1987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로버트 솔로(Robert Solow)는 한 문장으로 시대의 곤혹을 요약했다. "컴퓨터 시대가 도래한 것은 생산성 통계만 빼고 어디서나 확인된다." 컴퓨터가 사무실마다 깔렸는데도 거시 생산성 지표는 좀처럼 오르지 않던 1980년대의 현상, 이른바 솔로 역설(Solow Paradox)이다.

3년 뒤 스탠퍼드대 경제사학자 폴 데이비드(Paul David)가 그 역설에 답을 내놓았다. 1990년 논문 「다이너모와 컴퓨터」에서 그는 한 세기 전 전기화의 역사를 거울로 들이댔다. 전구는 1879년에 발명됐지만, 20세기로 넘어가는 시점까지 전등을 쓰는 가정은 전체의 3%에 불과했고 공장 동력 중 전기모터의 비중은 5%에도 미치지 못했다. 전기모터가 증기기관보다 압도적으로 우월한 기술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았다. 그런데도 생산성은 거의 30년간 꿈쩍하지 않았다.

이유는 기술이 아니라 공장의 구조에 있었다. 증기기관 시대의 공장은 천장을 가로지르는 하나의 거대한 회전축(line shaft)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었다. 증기기관이 그 축 하나를 돌리면, 벨트와 도르래가 그 회전력을 건물 전체의 기계로 분배했다. 초기의 공장주들은 이 구조를 그대로 둔 채 한가운데 있던 증기기관만 전기 다이너모로 교체했다. 모터는 갈았지만 공장은 그대로였다. 결과는 빤했다. 더 좋은 동력원을 달았는데 출력은 거의 늘지 않았다.

전환점은 1920년대에 찾아왔다. 공장이 옛 구조를 버리고 바닥부터 다시 설계되기 시작했다. 중앙축과 벨트를 걷어내고, 기계 하나하나에 독립된 소형 전기모터(이른바 '유닛 드라이브', unit drive)를 달았다. 동력 전달의 제약에서 풀려나자 기계 배치를 작업 흐름에 맞춰 자유롭게 바꿀 수 있었고, 여기서 조립라인이라는 새로운 작업 질서가 태어났다. 비로소 전기화의 생산성 배당이 터져 나왔다.

비유로 이해하기

전기모터를 단 것은 경주마를 더 빠른 종으로 바꾼 것과 같다. 그런데 그 말을 여전히 옛날 마차에 그대로 묶어 두면, 마차의 최고 속도는 바퀴와 차체가 결정한다. 말만 바꿔서는 빨라지지 않는다. 마차 전체를 새로 설계해 자동차로 만들고 나서야, 그 동력은 비로소 속도로 바뀐다. 데이비드의 통찰은 이것이다. 범용 기술의 진짜 효과는 기술을 도입하는 순간이 아니라, 그 기술에 맞춰 조직을 다시 설계하는 순간에 나온다.

1890 · 증기 증기기관 중앙축 · 벨트 분배 1900 · 전기(모터만 교체) 전기 다이너모 구조 그대로 → 효과 미미 1920 · 유닛 드라이브 조립라인 · 배당 폭발
그림 1. 전기화 공장의 세 단계. 모터를 갈아 끼우는 것(가운데)만으로는 효과가 없었고, 공장을 바닥부터 재설계한 1920년대(오른쪽)에 비로소 생산성이 터졌다.

시불카의 핵심 주장은 이것이다. 2026년의 AI도 정확히 가운데 칸에 머물러 있다. 모터(개인의 도구)는 갈았으나, 공장(조직의 일하는 방식)은 아직 옛 구조 그대로다. 그래서 개인의 생산성은 분명히 올랐는데 조직의 성과로는 잡히지 않는다. 그가 보기에 대다수의 AI 활용은 트위터나 사내 메신저에서 "생산적인 느낌"을 연출하는 자기만족에 가깝고, 실제 가치 창출과는 거리가 멀다.


2통계가 진단을 확인하다

95% 대 5%, GenAI 격차

이 진단이 단지 비유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은 2025년 여름에 발표된 한 조사가 보여준다. 매사추세츠공대(MIT) 미디어랩의 프로젝트 난다(Project NANDA)가 펴낸 「기업 AI의 현주소 2025」 보고서는, 기업들이 생성형 AI에 쏟아부은 300~400억 달러에도 불구하고 도입 기업의 95%가 손익에 측정 가능한 영향을 전혀 얻지 못했다고 보고했다. 의미 있는 가치를 뽑아낸 곳은 5%에 불과했다.

95%

생성형 AI 파일럿을 도입한 기업 중 손익(P&L)에 측정 가능한 효과를 내지 못한 비율. 300~400억 달러가 투입됐지만 가치를 추출한 곳은 5%뿐이었다. — MIT 프로젝트 난다, 2025년 7월(리더 인터뷰 150여 건, 직원 설문 350여 건, 공개 도입 사례 300여 건 분석)

주목할 대목은 보고서가 짚은 실패의 원인이다. 모델의 성능이나 규제가 아니었다. 보고서는 그것을 "학습 격차(learning gap)"라고 불렀다. 챗GPT 같은 범용 도구는 유연하기 때문에 개인에게는 잘 먹히지만, 조직의 업무 흐름을 학습하거나 거기에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에 기업 단위에서는 멈춰 선다는 것이다. 이는 시불카의 진단과 정확히 겹친다. 문제는 도구가 아니라, 그 도구를 조직의 일하는 방식에 녹여 넣는 설계의 부재다.

같은 흐름을 다른 조사도 확인한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임원 1,800명을 대상으로 한 2026년 조사에서 AI 투자로 의미 있는 재무 가치를 만들어낸 기업은 26%에 그쳤고, 가트너(Gartner)는 2024년에 시작된 생성형 AI 프로젝트의 약 30%가 모호한 사업 가치 탓에 2026년 말까지 폐기될 것으로 전망했다. 흥미롭게도 MIT 조사에서 효과가 가장 낮게 나온 영역은 예산이 가장 몰린 영업·마케팅이었고, 실질 수익은 오히려 후방업무(back-office) 자동화처럼 사람들이 덜 주목한 곳에서 나왔다.

95% 효과 없음 측정 가능한 손익 효과 없음 — 95% 의미 있는 가치 추출 — 5% 투입액 300~400억 달러 실패 원인: 모델 성능 아닌 "학습 격차"
그림 2. 생성형 AI 도입 기업의 성과 분포. 대규모 투자에도 가치를 추출한 곳은 소수였고, 갈림길을 가른 것은 모델이 아니라 조직 통합이었다. (MIT 프로젝트 난다, 2025)

3'기관 지능'의 일곱 기둥

개인 AI와 조직 AI를 가르는 차이

시불카는 다음 10년의 기업용 AI 시장이 '개인 AI(Individual AI)'와 '기관 AI(Institutional AI)'의 차이 위에 세워질 것이라며, 둘을 가르는 일곱 가지 축을 제시한다. 원문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기보다 골자를 정리하면 이렇다.

1

조정 (Coordination)

개인 AI는 혼돈을, 기관 AI는 조정을 만든다

관리되지 않은 다수의 에이전트는 제각각 다른 방향으로 노를 젓는 격이라 조직을 정지시킨다. 역할·책임·소통 규칙을 정의하는 '에이전트 관리' 계층이 필요하다.

2

신호 (Signal)

개인 AI는 잡음을, 기관 AI는 신호를 찾는다

무엇이든 생성 가능해진 시대에 핵심은 '옳은 것'을 골라내는 일이다. 예측 불가능한 에이전트가 아니라, 검증 가능하고 결정론적인(deterministic) 에이전트가 잡음 속 신호를 추려낸다.

3

편향 (Bias)

개인 AI는 편향을 키우고, 기관 AI는 객관성을 세운다

사용자에게 무조건 동조하는 모델은 조직에 독이 된다. 미래의 핵심 에이전트는 비위를 맞추는 '예스맨'이 아니라, 추론을 캐묻고 위험을 들추는 '노맨'(AI 감사·컴플라이언스·이사회 역할)이어야 한다.

4

우위 (Edge)

개인 AI는 사용량을, 기관 AI는 우위를 최적화한다

범용 모델이 아무리 발전해도, 특정 도메인에서는 그 분야에 집중한 목적특화 솔루션이 깊이로 앞선다. 경제적 성과를 가르는 능력은 결국 목적특화 제품에 머문다.

5

성과 (Outcomes)

개인 AI는 시간을 아끼고, 기관 AI는 매출을 키운다

대부분의 AI 제품은 비용 절감을 판다. 그러나 경영진이 진짜 원하는 것은 매출 상승이며, 기술과 성과를 잇는 '솔루션 계층'에 지속 가치가 쌓인다.

6

활성화 (Enablement)

개인 AI는 도구를 주고, 기관 AI는 사용법을 보여준다

사람은 변화를 꺼린다. 조직의 프로세스를 에이전트에 인코딩하고 변화 관리를 수행하는 '프로세스 엔지니어링'이 핵심 역량이 되며, 여기서는 소프트웨어 전문성보다 업종·업무 전문성이 더 중요하다.

7

비프롬프트 (Unprompted)

개인 AI는 지시에 반응하고, 기관 AI는 먼저 움직인다

인간이 프롬프트해야 하는 한, AI의 성과는 '무엇을 물어야 할지 모르는 인간'이라는 약한 고리에 묶인다. 가장 가치 있는 일은 아무도 물을 생각조차 못한 위험과 기회를 AI가 먼저 찾아내는 것이다.

비유로 이해하기

최고의 직원을 복제해 조직 인원을 하루아침에 두 배로 늘린다고 상상해 보자. 한 명 한 명은 분명 유능하다. 그러나 각자의 습관과 판단이 미묘하게 다른 이들을 조율하는 관리·소통 체계가 없다면, 두 배가 된 인력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힘을 쏟다가 조직을 멈춰 세운다. AI 에이전트도 똑같다. 개인의 역량을 곱하는 것과 조직의 성과를 곱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시불카의 일곱 기둥은 결국 '복제된 천재들을 한 방향으로 정렬시키는 설계'에 관한 목록이다.


4이 글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진단과 처방을 분리하기

여기서 한 걸음 물러설 필요가 있다. 이 에세이는 진단과 처방을 분리해서 읽어야 한다. 진단(개인 효율과 조직 성과의 단절)은 데이비드의 다이너모 역설과 MIT의 95% 통계가 양쪽에서 떠받치는 견고한 토대 위에 있다. 그러나 처방(일곱 기둥)은 상당 부분 헤비아가 파는 것을 보편 법칙으로 격상한 포지션 토크에 가깝다.

근거는 글 안에 있다. 시불카가 운영하는 헤비아는 금융·인수합병(M&A) 영역의 엔터프라이즈 AI 회사다. 그런데 일곱 기둥의 사례가 거의 전부 헤비아의 제품 영역과 정확히 겹친다. 사모펀드(PE) 딜 선별, M&A 카운터파티 발굴, 수백억 토큰 단위의 문서 처리, 결정론적 에이전트가 그렇다. "미래의 기업용 AI 전체가 이 일곱 가지 차이 위에 세워질 것"이라는 단언은, 시장에 대한 중립적 예측이라기보다 자사가 선점한 카테고리를 미래의 필연으로 규정하는 프레임이다. 좋은 통찰과 영업 멘트가 한 문장 안에 섞여 있으니, 읽는 쪽이 둘을 갈라내야 한다.

기술적으로 가장 약한 고리는 두 번째 기둥의 '결정론적 에이전트'다. 감사 가능성과 예측 가능성이 기관 환경에서 중요하다는 방향은 옳다. 그러나 거대언어모델(LLM, Large Language Model) 기반 에이전트를 진짜 결정론적으로 만드는 일은 현재 기술로 간단치 않다. 워크플로에 체크포인트와 검증 단계를 끼워 넣어 동작을 제약하는 것과, 모델의 출력 자체가 결정론적인 것은 서로 다른 층위의 문제인데, 글은 이 둘을 다소 뭉뚱그린다. 실무적으로 도달 가능한 것은 '제약된 워크플로'이지 '결정론적 모델'이 아니다.

세 번째 기둥(편향·아첨)은 방향이 옳다. 과도한 동조가 조직에서 위험하다는 지적과 '노맨' 역할의 필요성은 타당하다. 다만 "기관 AI는 사용자에게 아첨하도록 훈련되지 않을 것"이라는 낙관은 인센티브의 문제를 비켜간다. 듣기 싫은 말을 하는 제품을 고객이 기꺼이 돈을 주고 살 것인가. 객관성을 강제하는 에이전트를 누가, 어떤 동기로 설계하고 구매하느냐는 결국 기술이 아니라 조직 정치와 구매 의사결정의 문제로 남는다.

파운데이션 모델 (범용) 버티컬 앱 계층 (도메인 특화) 솔루션 계층 (기술 × 성과) 가치 상승
그림 3. 시불카가 그리는 시장의 중력. 파운데이션 모델은 앱 계층으로, 앱 계층은 솔루션 계층으로 올라가며, 성과가 사는 솔루션 계층에 지속 가치가 쌓인다는 주장이다. 이 구도 자체가 헤비아의 사업 포지션이기도 하다.

5전력·연구 현장에 옮겨 보면

시뮬레이터 한 대가 빠르다고 기관이 빨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 글의 골격은 소프트웨어 기업의 이야기를 넘어 거의 모든 지식 조직에 적용된다. 전력 연구 현장도 예외가 아니다. 고성능 시뮬레이터가 개별 연구자의 해석 속도를 열 배로 끌어올린다 해도, 그 결과가 연구 기관이나 계통 운영 주체의 의사결정 프로세스에 검증 가능하고 추적 가능한 형태로 통합되지 않으면, 그것은 데이비드가 말한 '가운데 칸'의 상태에 머문다. 모터는 빨라졌으나 공장은 그대로인 상태다.

특히 여섯 번째 기둥, 즉 '프로세스 엔지니어링에서는 소프트웨어 전문성보다 업종 전문성이 더 중요하다'는 주장은 전문 연구 영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도메인을 깊이 아는 사람이 워크플로 설계를 주도해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모델을 누가 더 잘 다루느냐가 아니라, 그 분야의 일이 실제로 어떻게 굴러가는지를 아는 사람이 AI를 조직의 작업 질서에 끼워 넣을 수 있다. 범용 AI를 잘 쓰는 개인이 아무리 많아져도, 그것만으로는 기관의 성과가 곱해지지 않는다는 것이 이 글 전체를 관통하는 한 줄이다.


닫는 말

시불카의 에세이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것은 100년 전의 교훈이다. 가장 먼저 전기를 끌어들인 공장이 아니라, 작업장을 가장 먼저 다시 설계한 공장이 승리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미 전기를 손에 쥐고 있다. 모델은 충분히 좋다. 남은 과제는 공장을 다시 설계하는 일이고, 그 설계의 주체는 결국 도구를 파는 사람이 아니라 그 일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다만 누군가가 "당신의 공장을 다시 설계해 드리겠다"며 일곱 가지 청사진을 들고 올 때, 그 청사진이 자신이 파는 자재 목록과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지 한 번쯤 확인하는 일도, 그 재설계의 일부다.

참고 자료

  1. George Sivulka, "Productive Individuals Don't Make Productive Firms," X(article), 2026.
  2. Paul A. David, "The Dynamo and the Computer: An Historical Perspective on the Modern Productivity Paradox," American Economic Review, 80(2), 1990.
  3. Robert Solow, 솔로 역설(생산성 통계와 컴퓨터에 관한 논평), 1987.
  4. MIT Project NANDA, "The GenAI Divide: State of AI in Business 2025," 2025년 7월.
  5. Boston Consulting Group, AI at Scale 임원 설문(1,800명), 2026.
  6. Gartner, 생성형 AI 프로젝트 폐기 전망, 2025~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