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위의 경제학
처음 미국에 발을 디딘 사람을 당황시키는 것은 영어만이 아니다. 아침 뉴스의 기온, 고속도로 표지판의 속도, 병원에서 묻는 키와 몸무게가 전부 낯선 숫자로 나온다. 단순한 고집처럼 보이는 이 현상의 뒤에는, 한번 굳은 거대 시스템이 왜 좀처럼 바뀌지 않는가를 설명하는 경제학의 원리가 숨어 있다.
미국의 일기예보를 처음 보면 잠시 멈칫하게 된다. 기상 캐스터가 "오늘은 화창한 75도"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막 건너온 사람의 머릿속에서는 곧바로 경고음이 울린다. 75도라면 펄펄 끓는 한증막일 텐데?
이 75도는 섭씨가 아니라 화씨(°F)다. 화씨를 섭씨로 바꾸려면 32를 뺀 뒤 1.8로 나눠야 한다. 75에서 32를 빼면 43, 이를 1.8로 나누면 약 23.9도. 즉 산책하기에 딱 좋은 봄날 날씨다. 미국에서 한동안 지내다 보면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빼기 32, 나누기 1.8"이 돌아가기 시작한다.
화씨와 섭씨는 같은 더위를 다른 "눈금자"로 잰 결과다. 섭씨는 물이 어는 점을 0, 끓는 점을 100으로 놓아 100칸으로 나눈 자다. 화씨는 어는 점을 32, 끓는 점을 212로 놓아 180칸으로 나눈 자다. 같은 막대를 한쪽은 100눈금, 다른 쪽은 180눈금으로 그어 놓은 셈이라, 두 자를 나란히 대보려면 매번 환산이 필요하다.
혼란은 기온에서 끝나지 않는다. 고속도로 표지판에 "65"라고 적혀 있으면 시속 65킬로미터가 아니라 시속 65마일, 약 105킬로미터다. 한국 기준으로는 꽤 빠른 속도인데, 미국 운전자에게는 평범한 주행 속도다.
병원에서는 키와 몸무게를 피트·인치·파운드로 묻는다. 키 175센티미터, 몸무게 70킬로그램인 사람은 미국에서 "5피트 9인치, 약 154파운드"가 된다. 공구점의 렌치와 볼트는 더 까다롭다. 크기가 16분의 5인치, 16분의 9인치처럼 분수로 적혀 있어, 10밀리미터·11밀리미터에 익숙한 사람은 머릿속에서 통분까지 해야 한다.
미국의 일상에서 마주치는 단위와, 미터법으로 옮긴 값. 매번 머릿속에서 환산이 필요하다.
흥미로운 점은, 관습 단위가 지배하는 미국 안에서도 미터법을 능숙하게 쓰는 사람들이 따로 있다는 사실이다.
첫째는 이민자다. 본국에서 킬로그램과 미터로 살다 왔으니 자연스럽게 미터법 감각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둘째는 과학자와 엔지니어다. 논문과 실험은 국제 표준, 즉 미터법이 기본이며, 우주 기관의 과학 계산도 미터법으로 이뤄진다.
그리고 의외의 영역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불법 약물 거래다. 미국 내 거리에서도 코카인·메스암페타민 같은 약물의 도매 거래는 킬로그램과 그램, 즉 미터법 단위로 이뤄진다. 이유는 단순하다. 이들 약물이 미터법을 쓰는 중남미 국가에서 킬로그램 단위로 넘어오기 때문이다. 공급망이 미터법 세계에서 출발하면, 거래 단위도 미터법을 따라가는 것이 셈하기에 편하다.
다만 거리 소매 단계로 내려오면 다시 관습 단위의 흔적이 남는다. 가장 흔한 소매 단위로 통하는 "8볼"은 1온스의 8분의 1, 약 3.5그램을 가리키는 은어인데, 여기서 기준이 되는 온스가 바로 야드파운드법의 단위다. 즉 미국의 약물 시장은 도매는 미터법, 소매는 관습 단위가 뒤섞인 이중 구조를 띤다.
정부도 결국 미터법을 따라간다. 연방 양형 기준은 압수한 약물의 무게를 그램과 킬로그램으로 환산해 형량을 정한다. 평소에는 미터법을 멀리하는 나라가, 글로벌 공급망과 법 집행이라는 영역에서는 자연스럽게 미터법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실제로 2013년에는 한 현직 연방 하원의원이 3.5그램의 코카인을 사려다 적발된 일도 있었다.
흔히 200개가 넘는 나라 가운데 미터법(국제단위계, SI)을 공식 표준으로 채택하지 않은 곳은 미국·미얀마·라이베리아 세 곳뿐이라고 한다. 이 가운데 미얀마는 2013년에 미터법 전환 의사를 밝혔고, 라이베리아도 역내 교역을 위해 전환을 진행 중이다. 그래서 사실상 미국만 거의 유일한 비채택국으로 남는다는 이야기가 따라붙는다.
그런데 이 통념은 절반만 맞다. 표준을 관장하는 미국 측 기관조차 "세 나라만 미터법을 안 쓴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따지고 보면 미국도 이미 미터법을 광범위하게 쓰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은 초로, 전력은 와트로, 빛의 밝기는 루멘으로 잰다. 탄산음료는 2리터 페트병으로, 와인과 증류주는 리터 단위로 판다. 약품 용량과 영양 성분표에도 그램과 밀리그램이 등장한다.
그러니 정확한 표현은 "미국이 미터법을 안 쓴다"가 아니라, 일상의 상거래와 생활 감각에서 관습 단위가 여전히 우세한 유일한 주요 산업국이라는 쪽에 가깝다. 미국은 미터법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두 체계를 영역별로 나눠 쓰는 거대한 혼용 국가다.
| 영역 | 미국에서 우세한 단위 |
|---|---|
| 일상 기온·거리·체중 | 화씨 · 마일 · 파운드 (관습) |
| 식료품·생활용품 | 온스 · 파운드 (관습, 일부 미터 병기) |
| 과학·의학 | 미터법 (SI) |
| 군사·항공·우주 | 미터법 위주 |
| 음료·주류 | 리터 (미터법) |
| 전기·시간·조도 | 와트·초·루멘 (미터법) |
두 단위가 한 시스템 안에 섞이면 단순한 불편을 넘어 실제 사고로 이어진다. 가장 유명한 사례가 1999년 화성 기후 탐사선이다.
이 탐사선은 화성의 기후와 대기를 관측하기 위해 1998년 말 발사됐다. 탐사선 제작에만 약 1억 2,500만 달러가 들었고, 발사와 운영까지 포함한 전체 임무 비용은 약 3억 2,760만 달러에 달했다. 그러나 1999년 9월, 화성 궤도에 진입하던 탐사선은 예정된 경로에서 벗어나 대기권으로 너무 깊숙이 들어갔고, 마찰열을 견디지 못한 채 소실됐다.
한 팀은 파운드힘·초로, 다른 팀은 뉴턴·초로 같은 숫자를 읽었다. 약 4.45배의 차이가 누적되며 탐사선은 예상보다 훨씬 낮은 고도로 진입했다.
원인은 단위 불일치였다. 추진 시스템을 만든 제작사는 엔진 추력 데이터를 야드파운드법 단위인 파운드힘·초로 넘겼다. 그런데 항법을 맡은 쪽의 소프트웨어는 그 값을 미터법 단위인 뉴턴·초로 읽었다. 1파운드힘은 약 4.45뉴턴이므로, 같은 숫자가 약 4.45배 차이 나는 힘으로 해석된 셈이다. 이 오차가 항로 보정마다 조금씩 쌓이면서, 탐사선은 예상했던 고도보다 훨씬 낮은 지점으로 화성에 접근했고 그대로 대기에 휩쓸렸다.
설계도, 부품, 엔진 모두 정상이었다. 무너진 것은 두 팀이 같은 숫자를 다른 언어로 읽었다는 점 하나였다. 거대한 시스템에서는 가장 사소한 약속의 어긋남이 가장 비싼 결과를 부른다.
여기서 자연스러운 의문이 생긴다. 환산이 번거롭고 사고 위험까지 있는데, 미국은 왜 미터법으로 바꾸지 않을까. "미국 예외주의"나 고집 같은 문화적 설명도 일부 작동한다. 그러나 경제학의 눈으로 보면 핵심은 두 단어로 압축된다. 전환 비용과 경로 의존성이다.
실제로 미국은 여러 차례 미터법 전환을 시도했다. 1866년에 이미 미터법 사용이 법적으로 허용됐고, 1875년 국제 미터협약에도 가입했다. 1975년에는 미터 전환법을 제정해 정부 차원의 전환 위원회까지 두었다. 그러나 이 전환은 "완전히 자발적"으로 설계됐고, 대중의 저항 속에 흐지부지됐다. 1982년 위원회는 예산 절감을 이유로 폐지됐다. 1988년 다시 미터법을 교역의 "선호 체계"로 지정하며 연방 기관에 사용을 요구했지만, 일상 영역의 관성까지 바꾸지는 못했다.
미터법으로의 전환은 단순히 표지판 몇 개를 바꾸는 일이 아니다. 수백만 개의 도로 표지판, 자동차 계기판, 공장 설비 도면, 건축 자재 규격을 전부 갈아야 한다. 여기에 더해 3억 명이 평생에 걸쳐 체득한 거리감과 무게감, "이 정도면 몇 도쯤"이라는 신체 감각까지 통째로 다시 길들여야 한다. 기업은 한동안 두 단위 라벨을 병행 제작하고, 학교와 현장에서 두 체계를 함께 가르쳐야 한다. 이 비용은 천문학적이다.
경제학에서 경로 의존성이란, 과거의 우연한 선택이 시간이 지나며 스스로를 강화해 좀처럼 되돌릴 수 없는 상태로 굳는 현상을 말한다. 처음에는 사소한 차이였던 것이, 쓰는 사람이 늘수록 더 쓰기 편해지고, 편해질수록 더 많은 사람이 쓰게 되는 되먹임 고리가 만들어진다.
지금 쓰는 키보드의 첫 줄은 Q-W-E-R-T-Y로 시작한다. 이 배열은 타자 효율이 가장 좋아서 선택된 것이 아니다. 초기 타자기에서 인접한 글쇠가 빨리 눌리면 활자 막대가 서로 엉키던 기계적 문제를 피하려고, 자주 쓰는 글자들을 일부러 떨어뜨려 놓은 배열이었다.
컴퓨터 시대가 와서 막대가 엉킬 일이 사라졌고, 더 효율적인 자판 배열도 나왔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QWERTY를 쓴다. 이미 수억 명이 이 배열로 손가락을 훈련했고, 모든 키보드가 이 배열로 만들어지며, 그래서 새 키보드도 이 배열로 만드는 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더 나은 길이 있어도, 모두가 같은 길 위에 서 있으면 그 길을 떠나는 데 드는 비용이 이득보다 커진다. 미국의 야드파운드법도 정확히 이 QWERTY와 같은 자리에 서 있다.
물론 경로 의존성을 두고 학계에는 반론도 있다. QWERTY가 "비효율에 갇힌 실패 사례"라기보다, 굳이 바꿔서 얻는 이득이 작기 때문에 기존 표준에 머무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 선택이라는 견해다. 어느 쪽이든 결론은 비슷하다. 전환의 이득이 전환의 비용을 넘어서지 못하는 한, 시스템은 움직이지 않는다.
여기에 미국 특유의 조건이 하나 더 얹힌다. 내수 시장이 워낙 커서, 단위를 바꾸지 않아도 내부적으로는 큰 불편이 없다는 점이다. 일본에서 들여온 자동차 한 대, 중국에서 온 태블릿 하나 때문에 3억 명의 생활 단위를 바꿀 이유가 없다. 바꾸는 비용은 막대한데 얻는 편익은 작다 — 이 계산이 깔려 있다.
그렇다고 미국이 글로벌 경쟁에 직접 노출되는 영역에서까지 관습 단위를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 의학, 군사, 항공, 우주, 반도체처럼 세계와 직접 맞물려 돌아가는 분야는 이미 미터법을 함께, 혹은 주로 쓴다. 국제 표준을 따르지 않으면 곧바로 경쟁에서 밀리거나 사고가 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의 상황은 "미터법을 안 쓴다"기보다 "바꿔야 할 곳은 이미 바꿨고, 바꿀 이유가 약한 곳만 옛 단위에 남아 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글로벌하게 얽힌 곳에는 미터법이, 내수로 닫힌 일상에는 관습 단위가 — 비용과 편익의 경계선을 따라 두 체계가 깔끔하게 나뉘어 있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단위 체계를 가장 신랄하게 풍자하는 사람들 역시 미국인 자신이라는 점이다. 십자가나 마늘에도 꿈쩍 않던 유령이 킬로미터·킬로그램이 적힌 종이를 보여주자 기겁하며 달아난다는 식의 농담이 인터넷에서 널리 공유된다. 불편함을 알면서도 바꾸지 못하는 자신들의 처지를 스스로 웃음거리로 삼는 셈이다.
마트에서 우유 1갤런이나 고기 1파운드를 집어 들 때, 미국이 단순한 고집 때문에 그 단위를 쓰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떠올려 볼 만하다. 그 안에는 거대한 시스템이 한번 굳으면 얼마나 바꾸기 어려운가, 그리고 합리적인 개인들의 선택이 모이면 어떻게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전체를 만들어 내는가 하는 원리가 담겨 있다.
이것은 단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익숙한 소프트웨어, 오래된 제도, 굳어 버린 업무 방식 — 우리가 "왜 아직도 이걸 쓰지?"라고 묻는 거의 모든 것이 같은 경로 의존성 위에 서 있다. 더 나은 길이 분명히 있는데도, 모두가 같은 길 위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 길을 떠나기 어렵게 만든다. 미국의 화씨와 마일은, 그 흔하고도 강력한 관성을 매일 눈앞에서 보여 주는 가장 거대한 표본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