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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을 하는 투자자 — 99년생, 한국에서 가장 젊은 VC 대표
21살에 고려대에 들어갔다가 22살에 휴학하고 창업에 뛰어든 1999년생 청년이 있다. 다섯 해를 돌아 그는 지금 투자회사 대표가 됐다. 래퍼가 되고 싶던 소년이, 어쩌다 한국에서 가장 젊은 벤처캐피털 대표가 되었나. 돈이 아니라 사람을, 숫자가 아니라 관계를 사는 한 투자자의 이야기.
투자회사 대표라고 하면 으레 머리가 희끗한 사람을 떠올린다. 그런데 이 사람은 한국 나이로 27살, 아직 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휴학생이다. 그는 자기를 이렇게 소개한다. 김하경, 지디 벤처스(GD Ventures)라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고, 아직까지는 한국에서 가장 젊은 VC(Venture Capital, 벤처캐피털·초기 스타트업에 돈을 대는 투자회사) 대표라고. 1999년생, 21살에 고려대에 입학했다가 22살에 창업에 빠져 무작정 휴학했고, 그렇게 5년쯤 흐르다 보니 지금은 투자사 대표가 되어 있더라고 그는 말한다.
01래퍼가 되고 싶던 소년 — 힙합에서 출발한 인생
그의 출발점은 투자가 아니라 음악이었다. 원래는 래퍼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단순히 음악으로서의 힙합이 아니라 "힙합을 살고 싶은 마음"이 고등학교 때부터 컸다는 것이다. 그 마음에 불을 붙인 건 한 편의 영화였다. 고등학교 때 본, 래퍼 에미넴(Eminem)이 나오는 영화 〈8 마일(8 Mile)〉. 그 뒤로 그는 에미넴의 팬이 되고 랩과 힙합에 진심이 됐다.
에미넴의 옛 인터뷰를 보던 그는 한 가지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에미넴이 어딜 가든 닥터 드레(Dr. Dre)를 언급하며 "그 사람이 내 인생을 바꿔줬다"고 말한다는 것이었다. 궁금해서 둘의 관계를 찾아보니, 이미 성공한 래퍼였던 닥터 드레는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데서 멈추지 않고 자기와 같은 DNA를 가진 후배 세대를 끌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50 센트, 켄드릭 라마, 에미넴까지 —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인생의 변곡점을 만들어 주는 존재. 그는 그게 그렇게 부러웠다고 한다. "왜 나에겐 이런 사람이 없지? 대신 내가 누군가에게 나중에 닥터 드레가 되어 줄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그때부터 그의 인생 키워드는 힙합이 됐다. 다만 그가 정의한 힙합은 음악 장르가 아니다. "같은 DNA를 가진 누군가에게 변곡점을 만들어 주는, 확산되는 문화." 그는 이것을 "DNA의 선순환"이라고 부른다. 지금 돌이켜 보면 많이 미화됐을지 몰라도, 그때부터 지금 자기가 가진 기질과 철학이 세팅됐던 것 같다고 그는 말한다.
02전라도 토박이 소년의 결핍 — 위인전을 읽고 품은 반감
금수저냐는 질문에 그는 단호하다. 절대 아니라고, 오히려 전라도 토박이라고 한다. 광주에서 태어나 전남 순천에서 초·중학교를, 광양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전라도 토박이. 그런데 유년 시절에 한 가지가 있었다고 한다. 여덟 살, 아홉 살 무렵 위인전을 읽으면 질투가 나고 "나도 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런 말을 했을 때 공감하거나 응원하거나 이해해 주는 사람이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는 점이다. 부모님도, 친구도, 선생님도. 다들 "조용히 하고 공부나 열심히 해, 공부 열심히 해서 인서울하거나 대기업 가거나 의대에 가야 돼" 같은 분위기였다고 한다. 그는 그때부터 쌓인 결핍과 그에 대한 반감이 역으로 지금의 기질과 환경을 만드는 데 일조했던 것 같다고 돌아본다.
그가 창업에 발을 들인 것도 어릴 때부터 꿈꿔서가 아니었다. 창업은 잘 몰랐고, 자기와는 거리가 먼 무언가라고 생각했다고 솔직히 털어놓는다. 전환점은 대학교 2학년 때 들은 '캠퍼스 CEO'라는 수업이었다. 교수가 실리콘밸리의 역사를 들려주는데, 그곳에서는 창업자들끼리 서로 돕고 스승이 되고 멘토가 되고, 성공하기 전부터 친해지고 끈끈해지는 문화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게 제가 살고 싶었던 삶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무작정 휴학하고 창업에 뛰어들었다.
0310대에 잘한 세 가지 — 콜드메일, 또래, 그리고 공장
창업으로 성공한 건 하나도 없었다고 그는 인정한다. 중간에 발목 부상으로 병역 특례를 하게 됐는데, 독특하게도 스타트업 개발자가 아니라 어느 산업 공장의 노동자로 26개월을 일했다. 그렇게 시간을 오가다 보니 아직 학교에 못 돌아갔고, 곧 28살인데 아직 4학년 1학기라고 한다. 그런데 휴학부터 회사 창업 전까지를 돌아보면 가장 중요했던 키워드가 셋 있다고 그는 정리한다.
첫째는 사람을 많이 만난 것. 20대 초반부터 무작정 선배 창업자나 투자사 대표에게 콜드메일(cold mail, 모르는 사람에게 보내는 첫 연락 메일)을 보냈다고 한다. "저는 20대 초반이고 아직 이룬 건 없지만, 창업으로 언젠가 성공할 건데, 지금이라도 30분만 시간을 내어 만나 주시면 10년 뒤에 무조건 뿌듯하게 해 드리겠다." 그런 연락에 흔쾌히 만나 주고 용기를 준 분들과 지금까지 인연이 이어진다고 한다. 둘째는 비슷한 꿈을 가진 또래 — 형, 동생, 친구, 누나 — 를 주변에 많이 모은 것. 친구들이 졸업하고 약대에 가는 동안 혼자 휴학하며 삽질만 하고 성과는 안 날 때, 현실과 타협하기 가장 쉬운 그 시기에, 옆에서 같이 삽질하는 사람들과 형제가 되고 가족이 되어 서로 끌어 주는 게 정말 중요하더라는 것이다.
셋째가 바로 그 공장에서의 시간이다. 인재공장의 노동자로 일하며 오히려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졌다고 한다. "내가 사실은 꽤 감사한 삶을 살아왔구나"를 많이 느꼈고, 그곳에서 일하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깨달은 게 있었다. "세상의 기준, 사회의 기준에 둘 필요 없이, 내가 정의하는 기준에 맞춰 살아갈 수 있구나. 내가 즐거우면 즐거운 거고, 내가 좋으면 좋은 거구나."
04"투자사가 창업자를 고르는 게 아니다" — 선택받는 일
그가 투자사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2023년이었다. 두 번째 창업을 그만두고 초기 투자사 더벤처스의 인턴으로 입사했는데, 당시 대표였던 김철우 대표가 인턴임에도 많은 권한과 경험을 줬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VC라는 일이 전통 금융투자업과는 다르게, 시간과 경험뿐 아니라 다른 요소들이 실력에 반영될 수 있겠다고 느꼈다. 핵심은 "누가 더 뛰어난 원석을 먼저 만나고, 그들이 우리 투자를 받아 줄 관계를 만드느냐"였다. 그리고 그는 젊은 창업자들에 한해서는 자기가 더 잘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스무 살 무렵부터 또래 창업자들이 모이는 생태계와 커뮤니티를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페이스북뿐 아니라 한국의 네이버까지, 수많은 유니콘 회사를 만든 창업자들이 20대였다는 사실도 그를 밀어붙였다. 젊은 창업자들이 만들 역사는 앞으로도 반복될 텐데, 이들에게 투자하는 일은 내가 더 잘할 수 있겠다 — 그 고민을 김철우 대표에게 말하자, 대표는 미국에도 젊은 창업자에게 젊은 사람이 직접 투자하는 선례가 있다며 펀드 출시를 제안했다고 한다. 그 제안이 용기가 되어 "그러면 제가 직접 해 보겠습니다"라고 답했고, 2023년 지디 벤처스가 만들어졌다.
"이제는 투자사가 창업자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창업자한테 선택받아야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극초기 스타트업 투자는 볼 숫자가 애초에 많이 없더라고 그는 말한다. 이전에 들은 큰 조언 중 하나가 "초기 단계의 지표는 무의미하다. 놀라울 정도의 규모가 아니면 따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제품도 없이 팀만 있거나, 비전만 있는 팀에도 투자하는 일이기에 결국 믿을 대상은 제품 이전에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모든 미팅에서 자기들이 먼저 찾아가 먼저 피칭하고, 먼저 회사를 소개한다고 한다. 그런 일이다 보니 나이와 연륜이 중요하면서도, 원석을 누가 먼저 만나느냐에 있어서는 젊은 나이가 오히려 강점이 되더라는 것이다.
054년을 버틴 사람만 남는다 — 포트폴리오의 절반
지디 벤처스 포트폴리오의 절반 가까이는, 길게는 4년 짧게는 1~2년 오래 함께해 온 동료 창업자들 — 친한 형·동생·친구들의 회사다. 이유가 분명하다. 4년 전 눈빛 반짝이며 "나 창업으로 성공할 거야"라던 친구가 100명 있었다면, 1년 지나면 절반이 사라지고, 2년 지나면 또 절반이, 3년 지나면 또 절반이 사라지더라는 것이다. 그 과정을 포기하지 않고 버티며 성장해 온 사람들을 옆에서 봐 왔기에, 이들이라면 뭘 하든 잘할 수밖에 없겠다고 믿었다고 한다. 사실 그런 사람들이 있었기에 펀드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도 컸다.
화자가 옆에서 지켜본 또래 창업자들의 생존 곡선. 해마다 절반이 떠나고, 4년 뒤엔 15명 중 1명꼴로만 남는다고 한다.
나머지 절반은 다른 관점에서 투자한다. 지금이 또 하나의 산업혁명 시기라고 보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산업혁명 시기에 돈을 잘 버는 사람은 두 부류다. 첫째는 그 기술을 가장 빠르게 이해해 최전선에서 사업하거나 투자하는 사람. 둘째는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사라지지 않을 영역 중에, 기술 덕분에 오히려 가치가 올라가는 것에 주목하는 사람. "산업혁명 시기에 공장을 직접 짓는 사람도 있었지만, 공장이 많아져 땅값이 오르겠다며 부동산에 투자한 사람도 돈을 많이 벌었잖아요."
그 관점을 AI(인공지능) 시대에 적용하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펀드의 한 축은 AI나 웹3(Web3) 같은 기술을 잘하는 사람에게 투자한다. 미국에서 스테이블코인으로 국제 송금 인프라를 만드는 회사, 캐릭터 지식재산권(IP)을 만드는 회사, 멘탈 헬스케어를 AI로 혁신하는 회사 등이라고 한다. 다른 축은 사라지지 않을 영역, 특히 한국이 더 잘하는 영역이다. 케이팝 앱, 한국을 대표할 명품 술 브랜드, 패션·명품 운동기구 브랜드 같은 곳에도 투자했다고 그는 덧붙인다. 사라지지 않을 것 위에 기술이 얹히는 자리, 그가 보는 두 번째 광맥이다.
06최고의 매치메이커 — 두 시간 안에 단톡방을 판다
(한국 3 · 미국 1)
설립한 해
VC 대표라고 한다
지디 벤처스는 대표를 포함해 4명이다. 3명이 한국에, 1명이 미국에 있다. 한국의 두 명은 3~4년 전부터 그에게 멘토 같았던 형들로, 둘 다 연세대 출신이며 거의 7년간 공동대표로 사업을 해 왔고 4년 반째 신촌에서 함께 살고 있다고 한다. 마침 그들이 이전 사업을 잘 정리하고 쉬던 시기에 함께하자고 제안했고, 형들이 OK 하면서 지금까지 가족처럼 일한다. 미국에 있는 멤버는 미국인으로, 프린스턴 수학과를 졸업하고 시타델(Citadel)에서 트레이더로 일하고 본인 사업과 크립토 펀드도 해 본 사람이라고 한다. 어느 날 화상으로 두 시간을 이야기했더니, 다음 주에 곧장 한국으로 날아와 한 달 반을 함께 살았다는 것이다.
그는 자기 회사의 위치를 냉정하게 본다. 펀드 규모가 크지 않아 금전적 도움을 가장 잘 주는 회사는 아니고, 코파운더(공동창업자)들이 크게 성공한 사람들이 아니라 조언을 줄 포지션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메타인지(자기 위치를 객관적으로 아는 능력)를 잘해서 "최고의 매치메이커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포트폴리오 회사가 겪는 고민을, 가장 좋은 조언과 해답을 줄 수 있는 선배에게 연결해 주는 것을 자기 업의 정의로 삼은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일상의 꽤 많은 시간을 선배 창업자를 만나 신뢰를 쌓는 데 쓴다. 그 선배들이 자기를 믿고 좋아해 줘야, 자기가 소개하는 다른 친구에게도 흔쾌히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한 포트폴리오 회사의 피드백이 인상적이다. "다른 곳에 누군가를 소개해 달라고 하면 한 달이 걸리는데, 그는 두 시간 안에 단톡방을 판다." 그가 함께하고 싶은 사람의 기준도 독특하다. 꿈이 크고 능력이 있는 건 기본이고, 그중에서도 "본인보다 더 뛰어난 사람을 데려올 수 있는 사람인가", 그리고 "자존심을 얼마나 잘 내려놓을 수 있는가"를 본다고 한다. 그래서 사업 이야기 전에 창업자의 유년 시절과 가족·친구 관계부터 묻는데, 먼저 묻기 실례이니 자기 이야기를 먼저 꺼낸다. 그걸 그들은 '치급 가기 챌린지'라 부른다고 한다.
07스타트업과 힙합은 똑같다 — DNA의 선순환
그가 정의한 힙합은 결국 스타트업과 만난다. 같은 DNA를 가진 사람끼리 서로 멘토가 되고 끌어 주고, 포기하지 않게 돕고, 성공 사례가 나오면 그게 반복되는 'DNA의 선순환'. 그런데 스타트업의 역사도 똑같더라는 것이다.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는 사실 스티브 잡스(Steve Jobs)와 멘토·멘티 관계였고, 실리콘밸리에는 위대한 창업자가 후배 세대의 위대한 창업자를 키우고 돕는 흐름이 역사의 기저에 깔려 있다. "그게 힙합이랑 다를 바가 없더라고요." 스타트업에서 말하는 '제로 투 원(zero to one)'의 페이드(pay it forward, 받은 도움을 후배에게 갚는 것)가, 힙합에서 말하는 것과 똑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비전은 숫자가 아니다. 스스로 여전히 투자자보다 창업자 DNA가 강하다고 인정한다. 주식이나 코인처럼 숫자를 보는 투자는 관심도 없고 거리가 멀다고 한다. 대신 그가 중요하게 여기는 비전은 이렇다. 지금의 포트폴리오들, 그리고 주변의 소중한 'family' 같은 동료 창업자들이 10년 뒤에도 다 같이 잘 지내고 다 같이 잘돼 있는 것. 그리고 그걸 본 후배 세대가 "왜 저 선배 창업자들은 다 같이 지내지?"라고 물을 때, "우리는 밑바닥 시절부터 서로 끌어 주고 도와준 친구였어. 너희도 처음부터 경쟁하려 하지 말고, 제로섬 하지 말고, 더 뭉치고 끌어 주며 함께 나아가"라고 말해 줄 수 있는 선례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10년 뒤 누군가가 지디 벤처스를 떠올렸을 때, "운용자산(AUM)이 몇 조인 제일 큰 하우스"보다 "저기 출신 창업자들은 어딜 가든 지디를 가장 많이 언급하고, 지디에 투자받아 성공한 창업자들이 다시 지디의 멤버로 후배를 도와주더라"는 평을 듣고 싶다고 그는 말한다. 그가 마지막으로 자기에게 건네는 다짐은 단순하다. 직감을 따라도 된다, 주변 사람들한테 정말 잘해라, 그리고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게 아니라 맨땅에서도 노를 계속 저어야 물이 들어올 때 나아간다. 10년 뒤의 자기가 지금의 자기에게 "고마워해라"고 말하고 싶다고, 그리고 그때도 쉽게 고마움을 느끼고 표현하는 사람으로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는 인터뷰를 맺는다.
그가 하는 투자는 좋은 흙에 미리 심어 둔 묘목을 알아보는 일에 가깝다. 다 자란 나무(이미 성공한 회사)를 비싼 값에 사는 게 아니라, 아직 잎도 몇 장 안 난 묘목 곁에서 4년을 함께 비를 맞아 본 사람만이 "이건 큰 나무가 되겠다"고 알아본다. 그가 본 또래 창업자 100명 중 4년을 버틴 건 몇 명뿐이었고, 그는 그 곁을 떠나지 않았던 사람이다.
그가 회사에서 맡은 역할은 잔치 한가운데서 사람들을 이어 주는 명함 없는 주최자다. 자기가 일론 머스크가 될 순 없어도, 일론 머스크가 될 친구들 사이에 판을 깔고 소개를 만들어 주는 일은 잘할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래퍼 닥터 드레가 후배들을 끌어 줬듯, 그는 창업판의 닥터 드레가 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