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읽기 · 사랑과 철학
운명의 짝, 그런 거 없다 — 알랭 드 보통이 말하는 사랑의 기술
"낙관주의는 사랑의 적이다."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은 완벽한 짝을 찾아 헤매는 일을 멈추라고 말한다. 사랑은 운명처럼 발견하는 감정이 아니라, 에베레스트를 오르듯 준비하고 익히는 기술이라는 것. 그가 그리는 사랑의 지도에는, 산에서 굴러떨어지지 않는 법이 적혀 있다.
사랑에 관한 조언은 흔하다. 하지만 알랭 드 보통의 말은 위로가 아니라 경고에 가깝다. 그는 이 인터뷰를 한 문장으로 연다. "낙관주의는 사랑의 적이다." 우리가 흠 하나 없는 완벽한 사랑 이야기를 가질 거라 믿는 순간, 사랑은 이미 어긋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좋은 관계조차 끊임없이 위기를 겪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 그가 보기엔 거기서부터 진짜 사랑이 시작된다.
01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기술이다
드 보통은 사랑을 위한 '플레이북(playbook)', 즉 사랑을 익히기 위한 안내서라는 발상부터 꺼낸다. 그는 그것이 이상하게 들린다는 걸 안다. "연애를 시작하는 데 안내서가 필요하다니, 정말 이상하게 들린다. 그냥 데이팅 앱 깔고 새 옷 한 벌 사 입고 뛰어들면 되지, 무슨 안내서가 필요한가." 우리가 보통 사랑을 대하는 태도가 이렇다. 하지만 그는 묻는다. 사랑에 필요한 지식을 갖추도록 이끌어 주는 안내서가 있다면, 그건 오히려 멋진 일이 아니겠느냐고.
여기서 그의 핵심 명제가 나온다. "사랑이 감정이 아니라 기술이라는 생각." 그는 이것이 낯설지만 "절대적으로 필수적인" 생각이라고 말한다. 사랑을 타고나는 감정으로 보면 우리는 아무 준비 없이 사랑에 뛰어든다. 하지만 사랑을 익혀야 할 기술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가 든 비유가 선명하다. 누군가 에베레스트나 K2를 오르겠다고 하면, 우리는 "어떻게 준비했느냐"고 묻는다. 밧줄과 훈련 프로그램, 산소통, 특별히 준비된 식량을 챙겨 오리라 기대한다. 그런데 우리는 사랑이라는 산에는 충분한 준비도 장비도 없이 걸어 들어간다. 그러고는 번번이 산에서 굴러떨어지면서, 그 책임을 상대에게 돌린다. "짝을 잘못 만났다"고.
02"진짜 일은 사람을 찾은 다음에 시작된다"
드 보통은 데이팅 앱을 무조건 부정하지 않는다. "앱도 나름의 역할이 있다. 때로는 둘러보고 누가 있는지 살펴서, 내가 원하는 지점에서 어느 정도 나를 만나 줄 사람을 찾아야 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어느 정도 적당한 사람을 찾았다면, 바로 그때부터 일이 시작된다." 그 일이란, 낯선 사람을 내가 이해할 수 있고 또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으로 바꿔 가는 작업이다.
그런데 대부분은 너무 빨리 포기한다. 그는 구체적인 장면을 그린다. 코펜하겐으로 떠난 닷새짜리 즐거운 여행에서 갑자기 갈등이 터진다. 사람들은 "우리는 도저히 안 되겠다"며 줄행랑친다. 다시 앱을 켜고 다음 사람을 찾아, 똑같이 공허한 시도를 반복한다. 낯선 이의 마음에 자기 마음을 끼워 맞추려는, 결국 채워지지 않는 시도를.
그래서 그가 내놓는 전환은 급진적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맞는 사람'을 찾는 게 아니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맞는 사람을 만든다는 건 무슨 뜻인가. 그것은 자기 자신을 심리적으로, 치료적으로 들여다보는 일이다. 어린 시절에 새겨진 자신의 '각본'을 이해하고, 그것을 죄 없는 사람에게 차례차례 되풀이해 쏟아붓지 않는 것. 관계에 내가 들고 들어가는 문제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는 것이다.
드 보통이 그리는 두 개의 사랑 지도. 같은 갈등을 만나도 '탓하기'는 끝없는 탐색 루프로, '복구하기'는 함께 자라는 관계로 갈라진다.
03"당신은 어떻게 미쳐 있나요?"
인생학교에서는 데이트하는 사람들에게 첫 질문 중 하나로 이걸 물어보라고 권한다고 그는 말한다. 장난스럽게 던지는 질문, "당신은 어떻게 미쳐 있나요?(How are you crazy?)" 누구나 미쳤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우리 모두에게는 스스로 다스려야 할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다.
그는 두 가지 반응을 대비시킨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상대가 "응, 무슨 질문인지 알겠어. 내 미친 구석은 이런 거야, 우리 아버지가, 우리 어머니가…" 하고 답한다면, 그 사람은 안전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무슨 그런 무례한 질문이 다 있어? 내가 잘못됐다는 거야?" 하며 발끈한다면, 드 보통의 조언은 단호하다. "당장 자리를 떠라." 조금 과장이지만 진심이라고 그는 덧붙인다. 누구도 완벽한 짝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찾아야 하고, 또 우리 자신이 되어야 할 사람은 이런 사람이다. 자기 패턴을 충분히 알아서, 앞으로 만날 상대에게 "나는 이런 데서 이렇게 반응하곤 한다"고 미리 일러 줄 수 있는 사람. 두 사람이 한 쌍이 될 때, 둘 다 결코 백지로 들어오지 않는다. 각자 두꺼운 역사를 짊어지고 들어온다. 그 역사를 가능한 한 많이 서로 배워 두어야, 사랑의 도전과 복잡함에 대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04자기 자신은 혼자서 알 수 없다
드 보통은 우리가 "맞는 사람을 찾는 데 집착하는 사회"라고 진단한다. 정작 멈춰서 물어야 할 질문은 따로 있는데도 말이다. "어떻게 하면 내가 맞는 사람이 될까? 어떻게 나 자신을 단련할까?" 그런데 여기에 역설이 있다. 이 작업은 혼자 있는 것만으로는 할 수 없다.
"자기 자신과만 있어서는 자기를 이해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이 필요하다." 그가 든 비유가 절묘하다. "왜 뒤통수를 보려면 거울이 필요한가? 거기엔 눈이 없으니까." 우리에게는 우리 스스로 보기 정말 어려운 것들을 비춰 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심리치료가 바로 그런 자리를 제공한다고 그는 말한다.
치료의 작동 방식은 이렇다. 치료실에 와서 지난 월요일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뉴욕이나 버펄로로 떠난 그 여행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털어놓는다. 그러면 천천히 '패턴 인식'이 시작된다. 치료사는 말한다. "흥미롭네요. 지난 관계에서 이렇게 하셨는데, 이번 관계에서도 그러시는군요. 그리고 부모님이 비슷한 걸 하셨다고 하셨죠." 그렇게 조각들이 맞춰지며 통찰이 찾아온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온 무의식의 이야기들을 깨뜨리기 시작한다. 그 길이 곧 해방이다."
05방어기제 — 우리가 진실에서 도망치는 이유
심리치료는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라는 개념을 다룬다고 그는 설명한다. 방어기제란 우리 마음이 자기 자신에 대한 정확한 앎으로부터 스스로를 가리려고 쓰는 도구다. 여기서 이상한 질문이 생긴다. "왜 우리는 자기 이해를 두 팔 벌려 환영하지 않는가? 왜 그것으로부터 도망치는가?"
답은 이렇다. 자기 자신에 대한 앎은 무섭기 때문이다. 어떤 것들을 알게 되는 일은 정말로 끔찍할 수 있다. 우리를 몹시 불안하게 하고, 슬프게 하고, 공황에 빠뜨릴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반갑지 않은 정보를 밀어낸다. 드 보통은 우리를 "몹시 비위가 약한 존재"라고 부른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함께 앉아 있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 감정과 함께 앉아 있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전형적인 방어기제는 책임을 남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누군가 나에 대해 무언가를 말해 주려 할 때 — "이런 일이 생기면 당신은 조금 이런 면이 있어요" — 우리는 "고마워요, 한번 생각해 볼게요"라고 하는 대신 이렇게 받아친다. "왜 그렇게 무례하게 굴어?" "지금은 그런 얘기 들을 때가 아니야." 그 정보가 틀려서가 아니라,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에 밀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못 박는다. "우리 모두가 그렇다. 우리 누구도 자기 자신에 대한 온전한 진실을 완전히 감당하지는 못한다."
06유머와 비관주의 — 사랑에 필요한 두 가지 정신
그가 사랑의 플레이북에 적어 넣는 첫 번째 정신은 뜻밖에도 유머 감각이다. 사랑에 무슨 유머가 필요하냐 싶지만, 그가 말하는 유머는 농담이 아니다. "유머 감각은 우리가 무언가를 이해하는 능력에 대한 겸손이다." 내가 좀 멍청하고, 다 알지는 못하며, 모든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걸 상대에게 신호로 보내는 것 — 그것이 사랑의 온도를 낮추는 훌륭한 윤활유라는 것이다. "두 사람이 서로를 바보로, 하지만 사랑스러운 바보로 볼 수 있다면, 그건 사랑의 아름다운 순간이다."
두 번째 정신은 더 도발적이다. 바로 어느 정도의 비관주의다. 다시 그 첫 문장으로 돌아온다. "낙관주의는 사랑의 적이다." 주름 하나 없는 완벽한 사랑 이야기를 기대하면, 그런 건 오지 않는다. 좋은 관계조차 끊임없이 위기의 순간을 겪는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그는 핵심을 짚는다. "문제는 위기가 아니다. 문제는 그 위기를 어떻게 복구하느냐다."
복구의 방법은 용서, 이해, 그리고 무엇보다 호기심이다. 왜 우리가 다퉜는지 궁금해할 수 있는가. 왜 우리의 애착 패턴이 맞지 않는지 찾아볼 수 있는가. 왜 내가 사랑하기 어려운 사람인지 흥미를 가질 수 있는가.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만큼 사랑하기 쉬운 사람이 된다. 그래서 그는 비관주의가 사랑의 적이 아니라고 결론짓는다. "맞는 사람 따위는 없다는 걸 아는 것이, 오히려 충분히 좋은 사람을 찾도록 도와준다."
07"당신은 잘못된 사람과 결혼할 것이다"
드 보통은 몇 해 전 자신이 뉴욕타임스에서 읽고 입소문을 탄 한 에세이를 떠올린다. 제목은 「당신은 잘못된 사람과 결혼할 것이다(Why You Will Marry the Wrong Person)」. 왜 이 글이 그렇게 퍼졌을까. 그는 이렇게 본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잘못된 사람과 결혼했다고 느끼며, 그 사실에 당황하고 깊이 수치스러워하기 때문이라고. 그런데 여기, 우리 모두 잘못된 사람과 결혼하게 될 거라고, 그래도 괜찮다고 말해 주는 글이 나타난 것이다.
그의 처방은 이 한 쌍의 문장에 응축된다. "양립 가능성은 사랑의 전제 조건이 아니다. 양립 가능성은 사랑의 열매다." 누군가와 함께하게 되었는데 차이가 있다면 — 애착 유형이 다르고, 한쪽은 골프를 다른 쪽은 테니스를 좋아하고, 커튼 색 취향이 갈린다면 — 현대 연애 문화의 답은 늘 "나가라"다. 다른 사람을 찾아라, 더 나은 사람을 찾아라. 그래서 모든 기술적 도구가 새로운 사람을 끝없이 눈앞에 들이미는 데만 골몰한다.
하지만 그는 정반대를 권한다. 새 사람을 찾는 것만큼이나, 이미 내 앞에 있는 사람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많은 사람들이 이미 충분히 좋은 짝을 찾아 놓고도, 어딘가에 즉시 통하는 완벽한 사람이 있다는 낭만 문화의 가르침 때문에 그 사람을 내버린다. 그는 이것을 "정말 파괴적인 생각"이라고 부른다. 진짜 일은 문제가 생겼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 그때 소매를 걷어붙이고, 고장 난 기계를 다루는 엔지니어처럼 문제를 분해해 풀어 가는 것. 낭만적이지 않게 들리지만, 바로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이다.
08붉은 깃발은 누구에게나 있다 — 그리고 인내
드 보통은 마지막으로 소셜미디어를 겨눈다. 치료적 언어가 상담실 밖으로 처음 널리 퍼진 시대, 특히 인스타그램이 한 세대를 '어렴풋이 치료적인 용어'로 말하도록 키워 냈다고 그는 본다. 15년 전만 해도 회피형 애착이니 불안형 애착이니 하는 말은 대학과 교과서, 상담실 안에만 있었다. 지금은 세상에 나와 있다. 그중 일부는 멋진 통찰이라고 그도 인정한다.
문제는 '어조'다. 소셜미디어 게시물의 어조는 관계의 어려움에 대한 책임을, 나 자신이 아니라 상대에게 고스란히 떠넘긴다. 경계성, 자기애성, 회피형, 불안형인 사람을 세상에서 찾아내려는 집착. 물론 그런 사람들은 존재한다. 하지만 어조가 문제다. "이건 붉은 깃발(red flag)이야, 당장 나가." 네가 관계에 실패한 이유는 그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기 때문이라고 속삭이는 어조 말이다.
여기서 그는 본질을 찌른다. 심리적 문제 하나 없는, 붉은 깃발 하나 없는 사람을 찾고 있다면 — "행운을 빈다." "붉은 깃발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게 인간이라는 것의 일부다." 그는 창세기를 끌어온다. 아담과 이브에게도 붉은 깃발이 있었다고. 그러니 문제는 붉은 깃발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다루느냐다. 그런데 소셜미디어의 치료 문화는 우리에게 인내를, "내가 문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용서의 분위기를 가르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분노가 잘 팔리기 때문이다." 상대를 회피형이라, 자기애성이라 낙인찍는 편이 더 펀치가 있고 더 재미있고 모두를 더 기분 좋게 만든다. 하지만 길게 보면, 그건 답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미친 원숭이들이다. 우리 안의 그 미친 원숭이를 서로 다정하게 대해 주는 한, 우리는 괜찮을 것이다."
그는 변화가 더디다는 사실도 숨기지 않는다.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연인으로서 어떤 사람인지 알아내는 데는 오래 걸린다. 패턴을 바꾸는 일은 더 오래 걸린다. 치료를 여섯 번, 열두 번 받고는 "안 변했다, 치료는 소용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언어 배우기에 빗대 답한다. 중년에 한국어나 핀란드어를 배우겠다고 여섯 번 수업을 듣고 자기 이름조차 겨우 말하는 단계에서 "이 언어 못 배우겠다"고 탓한다면, 사람들은 너무 성급하다고 할 것이다. 수십 년에 걸쳐 새겨진 패턴은 풀어내는 데도 여러 해가 걸린다. 그러니 우리에게 필요한 단 하나의 태도는, "나는 배우는 중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다 안다고 믿는 사람과, 아직 배우는 중임을 아는 사람 사이에는 진짜 차이가 있다. 소크라테스가 가장 지혜로운 이유를 묻자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 답했듯, 사랑에서도 무지의 자각이 지혜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안 변했다"며 포기하는 횟수
상식이 되기까지 걸린 시간
푸는 데도 그만큼 걸린다
드 보통이 말하는 사랑은 에베레스트 등반과 같다. 사람들은 산 앞에서는 밧줄과 산소통과 훈련을 챙기면서, 사랑이라는 더 높은 산에는 맨몸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러고는 굴러떨어질 때마다 산을 탓하고 동행을 탓한다. 그가 권하는 건 더 좋은 산을 찾는 게 아니라, 등반을 배우는 것이다.
또 그가 말하는 갈등의 복구는 고장 난 기계를 고치는 엔지니어의 일과 같다. 기계가 멈췄다고 새 기계를 사러 가는 대신, 소매를 걷어붙이고 어디가 어긋났는지 함께 뜯어보는 것. 낭만적이지 않아 보이지만, 바로 그 수리의 끈기가 두 사람을 '충분히 좋은' 사이로 만들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