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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텀 그리디 — 알토스 오문석이 말하는 30년의 인내

배달의민족, 토스, 당근, 쿠팡, 크래프턴. 한국인의 휴대폰에 깔린 그 앱들 뒤에는 같은 이름의 투자사가 있었다. 한 끼 식사 자리에서 흔히 오가는 화제가 '사람과 팀에 대한 고민'이라는 그들은, 5년이 아니라 15년, 20년을 기다리는 것을 신조로 삼는다.

2026년 6월 14일

좋은 회사를 알아보는 일은 한순간의 안목처럼 보이지만, 실은 가장 오래 버티는 자의 몫이다. 알토스벤처스(Altos Ventures)는 1996년에 세워진 벤처 펀드다. 미국과 한국에서 주로 초기 단계 회사에 투자하며, 한번 인연을 맺으면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추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날 마주 앉은 오문석 파트너는 그 긴 호흡의 의미를, 자신이 거쳐 온 시간과 함께 풀어 놓았다.

먼저 정리 화자는 오문석, 알토스벤처스의 파트너다. 알토스는 한국에서 배달의민족·토스·당근·쿠팡·크래프턴·컬리 등 이른바 '국민 앱'에 두루 투자한 것으로 알려진 초기 투자사다. 오 파트너는 골드만삭스에서 약 10년간 투자 업무를 하다 2016년 알토스에 합류했다고 한다. 본문의 인용은 영상 속 오문석 파트너의 발언을 옮긴 것이다.
1996
알토스벤처스
설립 연도
100+
한국 투자 회사 수
(카카오톡 단체방 수와 비슷)
400억
배달의민족 투자(원)
2014년, 골드만삭스 시절
8~12조
한국 연간 벤처 펀드 규모(원)
"라고 한다"

01그 테이블에 모인 사람들

알토스를 처음 알린 것은 한 장의 사진이었다. 배달의민족, 당근, 직방, 토스의 창업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찍은 그 사진은 한동안 화제가 됐고, 댓글에는 농담 섞인 궁금증이 달렸다고 한다. 저 자리는 누가 계산했느냐, 저런 사람들이 모이면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

계산은 당시 한 대표가 했다고 오 파트너는 답한다. 알토스는 "광(光)을 판다"는 농담을 곁들이며, 회사들과의 자리는 웬만하면 자신들이 계산하려 한다고 했다. 더 흥미로운 답은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에 있었다. 거창한 사업 전략이 아니라, 대개는 사람과 팀에 대한 고민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해결책을 제시한다기보다, 비슷한 고민을 가진 분들끼리 이야기하면서 동료를 찾고 힘을 얻는 자리가 되길 바랍니다."

한국에 투자한 회사가 100곳을 넘기면서 전체 모임은 어려워졌다고 한다. 그래서 비슷한 시기에 투자한 회사들끼리, 혹은 특정 분야끼리 자리를 만든다. 대표들의 모임만이 아니라 개발을 맡은 엔지니어, 최고기술책임자(CTO)들의 자리도 따로 마련한다. 창업이라는 외로운 짐을 진 이들에게, 알토스가 내미는 첫 번째 손은 해법이 아니라 '같은 처지의 동료'였다.

02골드만에서 한국 스타트업으로

오 파트너 자신의 이력도 한 편의 전환기다. 그는 알토스에 합류하기 전 골드만삭스에서 투자 업무를 했다. 2014년, 골드만은 배달의민족에 약 400억 원을 투자했고 — 당시 신문 지면에 기사가 날 만큼, 스타트업 자금이 지금처럼 넉넉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 그 투자가 알토스 팀, 그리고 배민 김봉진 의장과 그를 이어 주었다. 2015년에는 직방까지 투자했고, 이듬해 그는 골드만을 떠나 알토스로 옮겼다.

금융 투자를 약 10년쯤 했을 무렵이었다고 한다. 재미는 있었지만,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 일을 10년 더 하고 싶은가, 아니면 다른 것을 하고 싶은가. 그때 그를 움직인 것은 숫자가 아니라 사람의 온도였다.

"정말 에너지 넘치는 창업가들을 보면서 긍정의 에너지를 많이 받았다"고 그는 말한다. 세상을 어떻게 더 낫게 바꿀 것인가에 강하게 이끌리는 사람들. 큰 산업을 보수적인 관점에서 다루던 그에게, 그 에너지는 큰 자극으로 다가왔다. 다만 가족과 주변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당시엔 아무도 알토스를 몰랐고, "한국 벤처캐피털로 가겠다"는 결정에 아내의 반대가 없지 않았다고 그는 솔직히 털어놓는다. 그만큼 한국 스타트업이 아직 초기였다는 방증이다.

03롱텀 그리디 — 5년이 아니라 15년

알토스의 철학을 한마디로 줄이면 '롱텀 그리디(long-term greedy)'다. 길게 보고 욕심을 낸다는 뜻으로, 구성원 거의 모두가 같이 믿고 달리는 신조라고 한다. 위대한 회사, 의미 있는 규모의 회사로 자라는 데는 5~6년이 아니라 10년, 15년, 20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길에서 창업자는 자주 흔들린다. 어느 순간엔 '내가 이걸 계속 끌고 가는 게 맞나, 나보다 경험 많은 경영자가 운영하는 게 낫지 않나' 하는 고민이 찾아온다. 그러나 오 파트너의 관점에서, 전문 경영인의 판단과 창업자의 판단은 다르다. 창업자만이 더 과감한 결정을 내리고, 회사의 성장 속도를 극적으로 바꾸거나 산업에 큰 혁신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알토스의 역할은 옆에서 그 에너지를 잃지 않도록 — 그의 표현으로는 — "계속 꼬시는" 일이다.

"모두가 롱텀이 맞다고 말하지만, 진짜 실천하는 곳은 정말 드물다. 중간의 유혹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크래프턴(과거 블루홀)의 경우 2008년에 투자해 2021년 상장을 거쳐 2024~2025년 무렵에야 지분을 정리했다고 하니, 어림잡아 16~17년이다. 미국에서도 2008년에 투자한 한 게임 회사가 지난해에야 결실을 맺었고, 담당 파트너는 아직도 이사회에 남아 있다고 한다. 그 긴 인내를 견디게 하는 건, 결국 창업자가 에너지를 잃지 않고 끌고 갈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과거의 성공 사례들이 쌓아 준 자신감이다.

04고슴도치를 찾는 일, 담당자가 없는 팀

그렇다면 알토스는 어떤 창업자에게 투자할까. 내부에서 자주 쓰는 말이 '헤지호그(hedgehog)', 곧 고슴도치라고 한다. 해석은 여럿이지만 핵심은 하나다. 이 사람이 이 일을 왜 하는가.

단지 지금 기회가 보여서 시작한 사람은, 사업이 어려워지면 생각보다 쉽게 내려놓고 다음 기회를 찾아간다고 한다. 반면 '왜 하는가'가 분명한 사람은 상황이 힘들어도 어떻게든 끌고 가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알토스는 주위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가 하려던 것을 밀고 나가는 캐릭터를 찾는다. 물론 늘 정확한 건 아니어서, 시간이 지나며 믿음이 더 단단해지는 경우도, 반대로 희석되는 경우도 있다고 그는 인정한다.

지원 방식에도 알토스만의 색이 있다. "가장 좋은 지원은 귀찮게 안 하는 것"이라고 그는 농담처럼 말한다. 그리고 도움이 필요할 때 최대한 잘 응대하는 것. 투자사로서 가장 명확하게 할 수 있는 건 역시 자금이다. 회사가 자금이 필요할 때 뒷받침하고, 자금 조달을 선제적으로 준비하도록 돕는 것이 핵심 가치라고 본다.

구조적으로도 독특하다. 알토스에는 회사별 담당자가 없다. 모든 구성원이 함께 포트폴리오 회사들을 대응하기에, 문제가 생기면 누구든 달라붙어 전력을 쏟을 수 있다고 한다. 투자한 회사와는 카카오톡 단체방을 하나씩 여는데, 그렇게 열린 방이 약 100개에 이른다. 그 방을 통해 가장 많이 오가는 요청은 다름 아닌 채용이라고 한다. 회사들의 채용만 전담해 돕는 인력이 따로 있을 정도다.

05박사급 과외 선생님, 그리고 다음 30년

대화는 자연스레 인공지능(AI)으로 흘렀다. 모바일 전환기를 겪었던 투자사답게, 오 파트너는 이번 변화를 안 볼 수 없다고 했다. 다만 그가 강조한 건 기술 자체보다 사람의 태도다. 새로운 패러다임에서는 기존 방식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오히려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곤 한다는 것. 그래서 알토스도 과거의 방식을 그대로 고집하는 게 맞는지를 두고 내부에서 많은 논의를 한다고 한다.

창업자들은 종종 그에게 미래를 묻는다. 투자를 하니 무언가 더 알고 있으리라 기대하면서. 하지만 그의 답은 정직하다. "나도 모른다." 기술과 사업의 방향성은 창업자 본인이 누구보다 전문가이고, 투자사가 제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것이다. 알토스가 할 수 있는 건 회사를 운영하며 마주하는 다양한 고민을 함께 푸는 '롱텀 동반자'가 되는 일이다.

동반자라고 해서 늘 다정한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불편한 대화도 한다. 대표는 하고 싶은 일이 많지만 리소스와 시간은 제한돼 있으니, 우선순위를 두고 "지금 이게 맞습니까,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라고 강하게 따져 묻는다. 팀에 관한 대화, 자금이 줄어드는 상황에서의 대화도 쉽지 않다고 한다. 나이스한 투자자이고 싶지만, 필요할 땐 냉정해지는 것이 동반자의 다른 얼굴이다.

자녀에게 무슨 조언을 하겠느냐는 물음에, 그는 솔직히 자기도 잘 모르겠다고 답한다. 그래도 굳이 꼽자면 — AI를 많이 써 보라는 것, 그리고 호기심을 잃지 말라는 것이다. 그는 AI를 "박사급 과외 선생님이 옆에 앉아 있는 것"에 비유한다. 어떤 주제든 물어보면 답해 주는 선생님이 곁에 있는데, 모르는 걸 묻는 연습을 사람들이 아직 충분히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레벨1 질문을 던지고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는 대신, 또 묻고 또 파고드는 끈기(그릿). 그가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도 바로 그 끈기다.

올해로 30주년을 맞은 알토스에게, 다음 30년의 청사진을 묻자 그는 거창한 비전 대신 부담을 이야기했다. 지난 30년 동안 이뤄 온 것을 그대로 지킬 수 있을지, 그 이상으로 갈 수 있을지. 더 많은 투자사가 생겼고, 못 따라가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답은 단순하다. 좋은 창업자를 만나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일을 계속하는 것. 30년 동안 변하지 않은 그 한 문장이, 결국 가장 오래 버티는 자의 무기였다.

비유

'롱텀 그리디'는 과일나무 농사와 같다. 씨를 심고 이듬해 열매를 기대하면 매번 실패하지만, 15년 20년을 묵묵히 물을 주면 어느 해 가지가 휘도록 열린다. 알토스가 크래프턴에 16년을 함께한 것도 그런 농사였다.

AI를 대하는 오 파트너의 조언은 곁에 앉은 박사급 과외 선생님에 빗댈 수 있다. 아무리 똑똑한 선생님이 옆에 있어도, 손을 들고 "이건 왜요?"라고 자꾸 묻지 않으면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끈기 있게 다시 묻는 그 호기심이, 그가 말한 진짜 무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