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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하면 된다는 가스라이팅 — 정신과 의사가 본 노오력의 함정

우리는 인생에 단 하나의 레버가 달려 있다고 배운다. 더 열심히 하라는 것. B를 받았으면 더 공부하고, 돈을 더 벌고 싶으면 더 오래 일하라는 것. 한 정신과 의사는 이것이 우리가 세상에 퍼뜨리는 가장 큰 사기 중 하나라고 말한다. 가장 안간힘을 쓰는 사람은 성공한 사업가가 아니라 벼랑 끝에 선 사람이며, 진짜 필요한 것은 더 센 힘이 아니라 방향을 트는 이해라는 이야기.

2026년 6월 14일

"열심히 하면 네 문제가 해결된다." 이 말은 너무 자주, 너무 당연하게 반복되어서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화자는 그것을 정면으로 받아친다. 우리는 이론적으로 당길 수 있는 레버가 딱 하나 있는 문화 속에 산다는 것이다. 바로 더 많은 노력을 쏟는 것. 그리고 그것은 어느 정도 사실처럼 보인다. 더 공부하면 더 좋은 성적과 상관관계가 있고, 더 오래 일하면 더 많은 돈과 상관관계가 있으니까. 그래서 노력은 모든 문제에 듣는 만병통치약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그는 여기에 아주 기본적인 문제가 하나 있다고 말한다. 그는 부모님 집 지하실에 사는 폐인 게이머부터 진짜 억만장자까지 두루 만나 보았다. 그가 발견한 차이는 생산적으로 쓴 시간의 양이 아니었다. 차이는 오히려 노력의 강도에 있었다. 그의 표현으로는, 폐인 게이머가 성공한 사업가보다 실제로 훨씬 더 안간힘을 쓰며 산다. 이상하게 들리는 이 말이 이 인터뷰의 출발점이다.

먼저 정리 화자는 정신과 의사이자 멘탈 코칭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사람이다. 영상 속에서 환자들이 그를 "Dr. K"라고 부른다. 그는 우울증과 ADHD 환자를 진료하고, 레지던트 시절 주 80시간을 일했으며, 게임(도타2·리그 오브 레전드·스타크래프트)에 빗대 설명하기를 즐기고, 인도의 수도원에서 배운 것을 자주 인용한다. 본문의 인용은 모두 영상 속 그의 발언을 옮긴 것이다.

01노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것이 아니다

그의 첫 번째 반전은 단어의 정의에 있다. 우리는 "노력"을 시간과 같은 것으로 여긴다. 오래 앉아 있으면 노력한 것이라고. 그러나 그가 말하는 노력은 다르다. 정신과 의사로서 그는 우울증 환자를 진료한다. 우울증이 있으면 기본적인 일에 엄청난 노력이 든다. 침대에서 일어나는 데도 노력이 들고, 방을 치우는 데도 노력이 든다. 같은 동작이라도 누군가에게는 비용이 거의 안 들고, 누군가에게는 온 힘을 다 써야 하는 일이다.

ADHD도 마찬가지다. 그는 교수인 동료의 이야기를 든다. 그 동료의 수업에 ADHD 진단을 받은 학생 둘이 있었는데, 동료는 그들이 대화를 잘 이어 가고 수업에도 잘 참여하는 것을 보고 진단에 혼란을 느꼈다고 한다. 진단을 부정하려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이해하고 싶어 물은 것이었다. 화자의 설명은 이렇다. ADHD의 핵심은 무언가를 못 한다는 게 아니라, 같은 일을 하는 데 드는 노력이 훨씬 크다는 것이다. 신경전형적인 사람은 여덟 시간 대화해도 끝에 좀 피곤할 뿐이지만, ADHD가 있으면 같은 대화에 드는 비용이 비교할 수 없이 높다.

그러니까 우리가 "노력하라"고 말할 때, 우리는 모두가 같은 출발선에서 같은 비용을 치른다고 가정하고 있는 셈이다. 화자가 보기에 이것이 첫 번째 착각이다. 겉으로 같아 보이는 한 시간이, 어떤 사람에게는 산을 옮기는 일이다.

02가장 오래 일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는 자기 자신을 예로 든다. 정신과 레지던트 과정은 힘들다. 정신과만 해도 평균 주 80시간을 일하고, 외과나 신경외과로 가면 주 100시간, 110시간이다. 투자은행이나 대형 로펌처럼 미친 듯이 일하는 직군도 있다. 그래서 그는 한동안 "나는 열심히 일하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주 80시간, 90시간을 일했으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 그는 자기보다 훨씬 더 열심히 일하는 환자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파트타임 일을 세 개 뛰는 환자들이다. 월마트 같은 단일 고용주가 정규직 시간을 주지 않는 이유는 정규직이 되면 복지 혜택을 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아무도 혜택을 주려 하지 않는 탓에 세 회사에서 합쳐 24시간씩 일한다. 그것이 그들이 얻을 수 있는 최대치다. 가장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이 가장 적게 가진 사람들이라는 이 풍경이, 노력 신화의 균열을 드러낸다.

주 80시간
정신과 레지던트가
일하는 시간
주 110시간
외과·신경외과
레지던트의 노동
3개
혜택을 피하려는 고용 탓에
환자가 뛰는 파트타임 수

그는 분명히 선을 긋는다. 생산적이지 말라거나 노력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사실 이 지점이 가장 까다롭다고 그는 인정한다. "열심히 하는 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대체 뭘 하라는 말이냐"는 반문이 곧장 따라오기 때문이다. 그가 짚으려는 것은 노력의 양이 아니라, 노력이라는 개념 자체에 우리가 거는 기대다.

Dr. K가 든 사례로 본 주당 노동 시간 비교 — 파트타임 3개를 뛰는 환자가 주 24시간으로 가장 적게 벌지만 가장 안간힘을 쓰고, 정신과 레지던트 80시간, 화자 본인 전성기 90시간, 외과·신경외과 레지던트 105시간으로 오래 일하지만 성공은 노력의 양 덕분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Dr. K가 인터뷰에서 직접 든 사례들. 가장 오래·가장 힘들게 일하는 사람이 곧 성공한 사람은 아니다.

03기울어진 상자 — 방향을 트는 일

노력이 답이 아니라면 무엇이 답인가. 그는 딸과 보드게임을 하던 일을 떠올린다. 게임 상자에 뚜껑을 닫으려는데, 뚜껑이 살짝 비뚤어져 있으면 아무리 세게, 정말 정말 세게 눌러도 뚜껑은 끝까지 안 내려간다. 그런데 상자를 아주 조금만 다시 맞추면 힘들이지 않고 스르륵 닫힌다. 그는 인생이 꼭 이렇다고 말한다.

핵심은 저항의 원천을 이해하는 것이다. 일이 안 풀린다고 더 세게 밀어붙이는 대신, 무엇이 막고 있는지를 보고 방향을 조금 트는 것. 노력의 방향을 살짝 바꾸면 같은 에너지로 거두는 결과가 극적으로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는 게임에서 배울 게 많다고 덧붙인다. 어떤 랭크 멀티플레이어 게임이든, 기계적 손놀림이나 노력이 아니라 한두 가지 메커니즘을 더 이해하는 것이 등급 한 칸의 차이를 만든다.

그가 든 예는 구체적이다. 도타2에서 크립 풀을 배우거나 막타를 조금 더 잘 치는 것, 혹은 "당신이 캐리이고 강 건너편에 적 둘이 사라졌다면 적 진영을 떠나라" 같은 단순한 규칙. 낮은 랭크에서 높은 랭크로 오르는 길은 게임을 더 많이 하는 게 아니다. 그래서 리그 오브 레전드나 발로란트, 도타2를 1만 시간씩 하고도 여전히 브론즈에 처박혀 있는 사람들이 생긴다. 마찰에서 무엇을 배우느냐가 시간보다 중요하다.

04신호를 무시하는 사람들

그가 자주 만나는 사람들이 있다. 대략 27세에서 45세 사이, 사회적으로 성공한 부류다. 이들은 초년의 위기와 중년의 위기를 동시에 겪고, 가면 증후군에 시달린다. 자기를 다그쳐 정말 열심히 일하고, 그래서 승진하지만, 정작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게 되고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그렇게 그들은 자기가 좋아하지도 않는 산 높은 곳에 갇힌 자신을 발견한다.

여기서 화자는 진단의 비유를 든다. 환자에게 잘못된 진단을 내리면, 약을 아무리 바꾸고 용량을 아무리 올려도 듣지 않는다. 문제를 잘못 짚었기 때문이다. 게임을 천 판 해도 자기 실수에서 배우지 않으면, 노력이 왜 성과로 옮겨지지 않는지 이해하지 못하면 영영 나아지지 않는다. 이들의 몸과 뇌와 삶은 "이건 안 통한다"는 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는데, 그들은 그 신호를 무시한다.

"이 사람들의 몸과 뇌와 삶은 이게 안 통한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런데 그들은 그 신호를 무시한다."

그래서 그가 만든 코칭 프로그램은 "이해 먼저"를 겨눈다. 흥미로운 데이터가 있다고 그는 말한다. 세상의 많은 코칭은 행동과 책무에 초점을 맞추고, 그의 코치들도 그것을 배운다. 그런데 그의 코치들은 오히려 더 느리게 일한다. 보통 4~8주가 아니라 12~16주가 걸려서 최적의 변화가 나타난다. 대신 변화의 폭은 더 크다. 문제를 빨리 밀어붙이는 대신, 문제를 이해하는 데 시간을 쓰기 때문이다.

05후회의 반대편 — 만족을 단서로 삼기

그렇다면 자기 안의 무엇을 들여다봐야 하는가. 그가 권하는 것은 의외로 어렵다. "만족으로 이어지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만족을 정확히 정의한다. 만족은 후회의 반대다. 어떤 행동을 끝낸 뒤, 평온하면 좋은 것이고, 평온하지 않다면 그 평온을 무엇이 깨뜨렸는지를 봐야 한다. 그것이 바로 후회다. "더 다르게 했어야 했는데", "이걸로는 부족해", "더 했어야 했어" 같은.

여기에 함정이 하나 더 있다. 지친 나머지 "이제 아무것도 안 하고 종일 게임만 하고 싶다"고 기생충처럼 살기로 해도, 그것은 평온이 아니라 무감각으로 이어진다. 다음 날 일어나면 후회가 밀려온다. 반대로 옳은 방향으로 움직였는데도 후회가 생기는 경우가 있다. 마음이 W(승리)를 L(패배)로 바꿔 버리는 것이다.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당신의 마음은 그걸 두고 당신을 벌하고 있다."

그는 마음이 후회를 만들어 내는 두 가지 단서를 일러 준다. 첫째는 부족함을 덧붙이는 것이다.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데도 마음이 "충분하지 않아, 너무 늦었어, 나는 뒤처졌어, 진작 시작했어야 했어"를 보탠다. 둘째는 에고(자아)다. 그 방향으로 가는 것이 자기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처럼 느끼게 만드는가. 그는 이것을 산스크리트어 아함카라(ahamkara), 곧 에고와 연결짓는다.

06도움을 구하면서 거부하는 사람

두 번째 단서인 에고는 더 미묘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정신과 의사로서 그는 전문가의 도움이 사람의 성장에 미치는 효과를 직접 봐 왔다. 근거도 탄탄한, 정말 잘 작동하는 모델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다른 누군가와 함께 일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각지대의 문제는, 당신이 그것을 못 본다는 데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함께하면 도움이 되는데도, 사람들은 혼자 힘으로 해내기를 고집한다.

그가 든 학술 자료가 인상적이다. 매사추세츠 종합병원(MGH)의 짐 그로브스(Jim Groves)가 쓴 「미운 환자를 돌보기(Taking Care of the Hateful Patient)」라는 논문이다. 그로브스는 "조종하는 도움 거부자(manipulative help-rejector)"라는 유형을 이야기한다. 이들은 도움을 청하는데, 막상 권하면 "어떤 처방도 듣지 않을 것"이라는 듯 군다. 거의 흡족한 표정으로 다시 또다시 진료실로 돌아와 이번에도 처방이 안 들었다고 보고한다. 의사가 더 열심히, 더 열정적으로 도울수록 그들의 비관과 끈질긴 거부는 정비례해 커진다.

화자는 누구나 다 이 유형이라는 게 아니라고 분명히 한다. 다만 그가 만나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도움을 구하면서 도움을 거부하는" 패턴을 보인다는 것이다. 누군가 "이렇게 해 보라"고 일러 주면, 그들은 그렇게 하기를 원치 않는다. 나는 이런 방식으로, 도움 없이, 내 두 발로 일어서는 사람이고 싶다는 모델이 마음속에 있기 때문이다. 게으른 사람과 열심히 사는 사람을 갈라 놓고, 어느 한쪽이 되기를 한사코 거부하는 그 그림 말이다.

07지속 가능한 노력 — 마이너스로 가지 않기

그렇다고 그가 노력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링크드인의 "하슬 컬처(hustle culture)" — "주 며칠 일했다, 형. 무조건 빡세게 가야지" 식의 사람들 — 와는 다른 것을 말한다. 그가 던지는 질문은 이것이다. "히말라야의 요기들은 주말을 쉴까?" 답은 아니오다. 그들에게는 매일이 똑같다. 다만 그들이 그럴 수 있는 이유는 금요일 오후 5시 38분에 월요일까지 끝내라는 상사의 이메일이 없는, 세상 바깥에 있기 때문이라고 그는 인정한다.

그가 레지던트 시절과 지금의 노동에서 배운 핵심은 이렇다. 지속적인 노력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마이너스로 내려가지 않는 것이다. 열심히 일하다 번아웃되는 사람들의 문제는, 자기 용량보다 더 세게 일한다는 데 있다. 무언가를 해내려고 비축분에 손을 대는 순간, 당신은 탈진이라는 빚을 지기로 서명한 셈이다. 그렇게 모든 것을 쏟아붓고 번아웃되면, 이번엔 "기생충처럼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는 반대편 극단으로 진자가 넘어간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상사가 요구하니까요"라는 항변에 그는 답한다. 지금은 그게 사실일 수 있다. 어려운 건 바로 그 지점이다 — 일 년 뒤에는 그것이 사실이 아니도록 삶을 빚어 가는 것. 지금 해야 한다면 그렇게 하되, 6개월 뒤를 어떻게 더 낫게 만들지를 의도적으로 설계하라는 것이다. 노력의 방향을, 노력의 부담 자체를 줄이는 쪽으로 두라고 그는 말한다. 일반적인 정답은 없다. 자기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고 1~2%씩, 바늘을 조금씩 움직이는 수밖에 없다.

"오늘 힘이 없다고 해서 내일도 힘이 없으리란 법은 없다. 어떻게 하면 내일 선택지를 가질 수 있을까?"

그가 정신과 의사로서 가장 힘든 부분은, 자기 삶에 아무런 힘이 없는 환자들을 너무 많이 본다는 것이다. 그들은 정말로 힘이 없다. 하지만 오늘 힘이 없다는 사실이 내일도 힘이 없으리란 뜻은 아니다. 어떻게 하면 내일 선택지를 손에 쥘 수 있을까. 노력 신화가 끝나는 자리에서 그가 남기는 질문은, 더 세게 밀라는 명령이 아니라 바로 이 물음이다.

비유

그가 든 보드게임 상자가 이 인터뷰 전체를 압축한다. 뚜껑이 살짝 비뚤어진 상자는 아무리 세게 눌러도 닫히지 않는다. 손바닥이 빨개지도록 힘을 줘도 소용없다. 그런데 상자를 손가락으로 살짝 돌려 각만 맞추면, 같은 뚜껑이 스르륵 내려간다. 노력은 그 누르는 힘이고, 이해는 상자를 돌리는 손짓이다. 인생이 안 닫힐 때 우리가 배운 건 "더 세게 눌러라"뿐이지만, 정작 필요한 건 한 번 멈춰 각을 보는 일이다.

노력을 건전지에 비유하면, 번아웃은 방전된 다음에도 계속 빼 쓰는 일이다. 비축분까지 긁어 쓰면 당장은 돌아가지만, 그만큼 탈진이라는 빚이 쌓인다. 히말라야 요기가 매일 같은 강도로 살 수 있는 건 초인이라서가 아니라, 건전지를 마이너스로 떨어뜨리지 않기 때문이다. 오래 가려면 세게 쓰는 게 아니라, 바닥을 치지 않게 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