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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의 논문에서 표준으로 — 인바디 차기철이 만든 30년

헬스장의 그 기계, 인바디(InBody)를 만든 사람은 정작 기계를 만들 줄 몰랐다. 도서관 논문 한 편에서 출발해 직접 회로를 모아 가며 시작한 회사는, 경쟁사를 시장에서 밀어내고 매출의 80%를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30년 기업이 됐다. 요령 대신 정공법을, 단기 회수 대신 영속을 택해 온 한 공학자의 이야기.

2026년 6월 14일

많은 사람이 '인바디'라는 이름은 알아도, 그것이 한국 회사인지, 곧 서른 살이 되는 회사인지는 잘 모른다고 한다. 인터뷰에 나온 차기철 회장 본인이 그렇게 말했다. 연세대 기계공학과를 나와 카이스트에서 석사, 미국 유타대에서 박사, 하버드 의대에서 박사 후 연구원(포스닥)까지 — 이력만 보면 한 칸 한 칸 빈틈없이 맞아떨어진 듯하지만, 그 사이사이에는 "나는 대체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오랜 막막함이 끼어 있었다고 한다.

먼저 정리 화자는 차기철, 체성분 분석기 제조사 인바디의 회장이다. 인바디 기계는 몸에 미세한 전류를 흘려 근육량·지방량·체수분을 측정하는 장비로, 이런 방식을 BIA(생체전기 임피던스 분석, 몸에 약한 전기를 흘려 성분을 재는 기술)라고 부른다. 회사는 올해로 29년, 내년이면 30년이 된다고 한다. 본문의 인용은 영상 속 차 회장의 발언을 옮긴 것이다.
98~99%
DEXA(엑스레이 정밀 측정)
대비 수치 일치도
80%
전체 매출 중
해외 비중
37세
창업을 시작한
나이
30년
내년에 맞는
회사 나이

01도서관에서 만난 한 편의 논문

박사 과정이 거의 끝나 가던 무렵에도 그는 답을 찾지 못했다. 그렇게 오래 고민했는데 정작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고 한다. 1988년 무렵, 새 기술을 접할 길이라곤 논문뿐이었기에 그는 도서관에 가서 논문을 잔뜩 빌렸다. 대부분은 이해가 안 되거나 너무 거창했는데, 어느 날 한 편이 눈에 들어왔다. 인체에 미세한 전류를 흘려 근육·지방·체수분의 양을 측정한다는 내용. "이해가 충분히 잘 되더라고요. 재미있을 것 같고." 몇 번 더 읽으면 아이디어를 더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한다.

그 기술은 당시 주류가 아니었다. 체성분 분석이라는 영역 자체는 "인체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라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근본적인 질문이었지만, 사람을 물에 넣어 무게를 재거나 피부를 집어 두께로 가늠하는 식의 거친 방법들만 있었다. 정확하면서도 쉽게 쓸 수 있는 방법은 계속 요구되기만 하고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그 빈자리를 봤다.

02기계를 만들 줄 모르는 사람의 창업

하버드 의대의 한 교수에게 편지를 써 함께 연구하게 됐고, 2년 계약이 끝날 무렵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 기계를 한번 만들어 볼까." 문제는 그가 기계공학 출신이면서도 정작 전자 기계를 만들 줄은 몰랐다는 점이다. 원리는 다 이해했지만, 실물을 만드는 일은 다른 영역이었다.

그래서 그는 전문대를 나온 친구 둘, 고려대 전자공학과를 나온 친구 하나, 디자이너 하나와 함께 작게 시작했다. "사방팔방에 전자회로 고수들을 다 수소문해서, 조금씩 물어보고 배우면서, 그걸 모아 회로를 완성해 갔다." 자신이 없어 주변 사업가들에게 같이 하자고 제안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아들이 사업을 시작하면 우리 집은 망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는 어머니에게 딱 3년만 해 보겠다고, 안 될 것 같으면 절대 계속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서야 시작할 수 있었다.

"이번에 시작하지 않으면, 나에게 다시는 이런 기회가 돌아오지 않겠구나. 안 하고 나중에 가면 평생 후회하지 않을까."

첫 자금은 어머니가 미국에서 돌아온 그에게 마련해 준 전세금에서 갈라낸 2천만 원이었다. 여기에 생산기술연구원을 통해 중소기업 지원금 7천만 원, 그리고 당시로선 드물었던 창업자금 1억 원을 — 두 번 떨어지고 세 번째에 — 받아 보탰다. 그 돈을 합쳐 인바디의 프로토타입(시제품)을 만들 수 있었다.

03측정값이라는 가장 강한 설득

시제품이 70%쯤 완성됐을 때, 그는 전시회에 내놓았다. 측정이 안 되는 30%는 소프트웨어로 가상의 수치를 채워 넣어 가며 보여 줬는데, 사람들이 무척 재미있어했다. 정작 판매는 막막했다. 의료기를 파는 사람들에게 물으면 이렇게 저렇게 팔라는 말은 많았지만 다 잘 안 됐다. 결국 그가 찾은 길은 의사 한 사람 한 사람을 직접 만나 두 번, 세 번, 네 번 찾아가 가르치듯 설득하는 것이었다.

전환점은 한 의사가 환자들의 측정 결과를 모아 보여 줬을 때 왔다. 어느 환자의 근육량이 눈에 띄게 늘어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 환자에게 녹용을 처방한 경우였다. "추상적이던 걸 데이터로 구체화해 보여 줬다"는 것이 핵심 차별점이 됐다고 그는 말한다. 지금도 헬스장에서 운동 효과가 인바디 수치로 눈에 보이니 사람들이 계속 쓰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정확도 논란도 같은 방식으로 풀렸다. 엑스레이로 전신을 스캔하는 DEXA라는 정밀 장비를 기준(골드 스탠다드)으로 두고 비교하면, 인바디는 98~99% 수준으로 수치가 일치한다고 한다. 그런 논문을 여럿 냈지만 사람들은 잘 믿지 않았다. 정작 믿게 된 계기는 따로 있었다. "운동했더니 근육량이 늘었네", "요새 게을렀더니 지방이 늘었네" 하고 자기가 직접 겪으며 확인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인바디가 정확하다는 인식은 입에서 입으로 퍼져 나갔다.

04혈압계로 되받아친 가격 전쟁

코스닥에 등록하고 사업이 된다는 게 알려지자 경쟁사가 일고여덟 곳 생겼다. 그중 한 곳은 자동혈압계를 오래 만들어 제조 기술과 판매망을 갖춘 회사였다. 1,650만 원이던 인바디 가격에 맞서 그들은 900만 원짜리를 내놓았고, 인바디가 700만 원으로 내리면 다시 더 내리는 식으로 가격을 떨어뜨렸다. 명예훼손, 영업 방해 같은 소송까지 줄줄이 걸려, 그는 경찰서와 검찰을 수십 번 드나들며 "스트레스가 말도 못 했다"고 회고한다.

2~3년쯤 시달리던 어느 날 아침, 한 가지 생각이 그를 일으켜 세웠다. "그쪽 사장이 더 어려울까, 내가 더 어려울까." 인바디는 더 비싸게 팔고 있고 기술도 더 좋은데, 자신이 왜 이렇게 위축돼 있는지 의아했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정신 차리고 싸우자"는 마음이 들었고, 그 단순한 깨달음이 방향을 바꿨다고 한다.

그가 둔 수는 의외였다. 상대의 본업인 혈압계 시장으로 들어간 것이다. 경쟁사가 180만 원에 팔던 혈압계를, 인바디는 120만 원에 내놓았다. 첫해 시장의 30%, 둘째 해 50%, 셋째 해 60%를 가져왔다. 결국 상대 회사는 혈압계 값을 130만 원까지 내렸고 — 이익이 깎이며 점점 어려워졌다. 그 회사는 얼마 뒤 매각 절차를 밟게 됐다. 멘토에게 배운 것도, 책에서 본 것도 아니었다. "고민을 엄청나게 많이 했더니 방법이 남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1,650만
초기 인바디
판매가(원)
120만
인바디가 내놓은
혈압계 가격(원)
30→50→60%
혈압계 시장 점유율
(1·2·3년차)
20억
IMF 때 일본 야마토
기술이전 대금(원)

05요령 대신 정공법, 회수 대신 영속

창업 2년 만에 IMF가 닥쳤지만 타격은 크지 않았다. "우리는 잃어버릴 게 없었다. 가진 게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오히려 그 시기에 일본 야마토에 기술을 이전해 20억 원가량을 받으며 현금을 확보했다고 한다. 외부 환경보다 "우리가 얼마나 잘하느냐"가 회사를 키운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특히 가진 것 없는 스타트업일수록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본다.

해외도 정공법이었다. 좋은 대리점을 잡으라는 조언을 그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리점은 미래를 위해 투자하며 팔지 않으니, 모르는 기계는 직접 팔아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미국에선 FDA 승인을 받느라 3년을 들였고, 학회를 돌며 의사 한 사람을 열 번 만나는 방식을 영업의 원칙으로 삼았다. "열 번쯤 만나면 안 넘어가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미국 군부대(해병대에만 700대가량), LA 레이커스를 비롯한 스포츠 구단으로 퍼졌고, 지금은 매출의 80%가 해외에서 나온다고 한다.

"지름길로 가지 말고 어려운 걸 정면으로 극복해라. 요령으로 풀면 그 문제는 끝까지 풀 때까지 계속 문제가 된다."

그는 채용에서도 같은 고집을 보였다. 약 20년간 경력직을 거의 뽑지 않고 신입만 받았다고 한다. 대기업 출신은 "시스템이 없다"고 말할 뿐 새로운 문제를 정의하지 못하더라는 것이다. 그가 본 가장 중요한 역량은 학점도 스펙도 아니라 "무언가를 끝까지 완수해 본 경험"이다. "3천만 원 들고 라면집을 차려 먹고살 구조를 만들어 본 사람"이, 4년에 걸쳐 졸업장을 받은 사람보다 일을 더 잘해 나간다고 그는 믿는다. 그리고 AI 시대에 대체되지 않는 건 '경영', 곧 정보가 없는 처음 하는 일을 책임지고 풀어내는 능력이라고 본다. 30년을 버텨 표준이 된 회사의 회장은, 지금도 같은 말을 한다. 조급하게 변칙을 쓰지 말고, 조금 더 길게 보고 정도를 걸으라고.

비유

차기철 회장이 가격 전쟁을 푼 방식은 씨름판에서 상대의 샅바를 거꾸로 잡은 것과 같다. 상대가 내 종목(체성분 분석기)으로 밀고 들어오자, 그는 상대의 안방(혈압계)으로 들어가 되받아쳤다. 자기 영역만 지키려 했다면 끌려다녔겠지만, 상대가 가장 아픈 자리를 잡으니 승부의 무게중심이 넘어왔다.

그가 말하는 '정공법'은 엉킨 실타래를 가위로 자르지 않고 끝까지 푸는 일과 같다. 잘라 버리면 당장은 빨라도 매듭이 그대로 남아 다음에 또 걸린다. 한 매듭씩 풀어낸 자리에는 다시 걸릴 것이 없다 — 그래서 시간이 갈수록 일이 쉬워진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