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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읽기 · 기술과 사회

우리는 프로그래밍 당하고 있다 — 잭 도시가 말하는 자유의지

트위터를 만든 잭 도시가 묻는다. 진짜 싸워야 할 문제는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자유의지라고. 알고리즘이 무엇이 흥미로운지 정해 주고, 우리는 그것에 길들여진다. 오픈소스, 단일 실패 지점, 그리고 "내 알고리즘을 내가 고를 권리"에 관하여.

2026년 6월 14일

잭 도시는 흥분해서 말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을 키운 것이 무엇인지부터 짚는다. 누군가 직장을 마다하거나, 직장이 있으면서도 사랑하는 무언가에 시간을 들여 만든 것을 공짜로 내준 그 마음. 그 위에서 자신이 프로그래밍을 배웠다는 고백. 대화는 거기서 출발해 점점 더 무거운 곳으로 내려간다. 인터넷이 어쩌다 닫혀 버렸는가, 그리고 그 닫힘이 지금 우리의 생각을 어떻게 빚고 있는가.

먼저 정리 화자는 잭 도시(Jack Dorsey)다. 트위터(Twitter)를 공동 창업해 운영했고, 결제 회사 블록(Block, 옛 스퀘어)을 세웠다. 최근에는 오픈소스를 다시 강조하며, 탈중앙 소셜 프로토콜인 블루스카이(Bluesky)와 노스트(Nostr) 진영을 지원해 왔다. 본문의 인용은 모두 영상 속 도시의 발언을 옮긴 것이다.

01"내가 여기 있는 유일한 이유는 오픈소스다"

도시는 자신의 출발점을 분명히 한다. "내가 여기 있는 유일한 이유는 오픈소스 때문이다." 누군가 사랑하는 것을 만들어 공짜로 내주었을 뿐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만드는지 소스 코드까지 통째로 공개했다는 것. 그래서 누구든 그 작업을 베끼고, 원한다면 그것으로 돈을 벌 수도 있었다. 그는 이를 "놀랍도록 이타적인 행위"라고 부른다.

그는 열서너 살 무렵부터 자기 도구를 만들며 일했다고 말한다. 가장 큰 스승은 리눅스(Linux)와 그 창시자 리누스 토르발스(Linus Torvalds)였다. "그는 정말로 중요한 무언가를 나누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세상에 가르쳐 줬다." 주머니 속 기기, 집 안의 기기, 지금 이 TV 화면까지 — "전부 리눅스를 돌리고 있고,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를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그 혜택을 누리지만, 기업과 회사가 그것을 되돌려 주고 진짜로 밀어주는 일은 아주 드물다."

02닫히는 인터넷, 그리고 목줄

도시가 그리는 인터넷의 역사는 하나의 진자 운동이다. 처음엔 진짜로 열려 있었다. 누구나 참여하고, 누구나 무언가를 더할 수 있었다. 그러다 구체적인 문제가 드러날 때마다, 그 문제를 한 기업이 가져가 닫아 버린다. "그렇게 닫히면, 출발은 열려 있었는데도 결국 그 회사에 의존하게 된다." 그는 이것이 "틀렸다는 느낌, 잘못됐다는 느낌"이라고 말한다.

그가 보는 가장 큰 문제는 이것이 단일 실패 지점을 만든다는 데 있다. 회사 하나, CEO 한 명, 이사회 하나 — 외부의 누군가가 압력을 가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지점. 그 외부가 정부일 수도, 광고주일 수도, 시장일 수도 있다. 그들은 특정 방향으로 끌고 가거나, 계정을 지우라거나, 이용자의 전화번호·이메일·신원 정보를 내놓으라고 요구할 수 있다.

인터넷이 원래 되고자 했던 모습은 그 반대였다고 그는 말한다. 모두가 자기 인스턴스를, 자기 몫을, 자기 데이터를 소유하는 것. 그렇게 탈중앙화되어 사방으로 흩어져 있으면, 어느 한 부분을 누르려 해도 망 전체를 공격해야 하므로 누르기가 매우 어렵다. 반대로 단일 CEO가 있는 큰 회사들은 "그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일지라도" 곧 목줄이 된다. "특히 규모가 커질수록, 회사의 가치와 방향 전체가 걸려 있을 때, 그 압력에 저항하기란 정말 어렵다."

03프로토콜이고 싶었던 회사

도시는 트위터가 처음부터 회사가 아니었다고 회상한다. "회사로 시작하지 않았다. 주말 해커톤 프로젝트로 시작했다." 너무 기본적이고 순수해서, 회사라기보다 차라리 프로토콜 같았다고 그는 말한다. 웹페이지를 주고받는 HTTP, 메일을 나르는 SMTP, 파일을 옮기는 FTP처럼 — "공개된 대화를 위한 프로토콜"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초창기에 서비스가 자꾸 멈췄던 이유도 거기 있다. 누구나 쓸 수 있는 API(외부 프로그램이 트위터 기능을 끌어다 쓰게 해 주는 통로)를 사람들이 쉴 새 없이 두드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구서는 내야 했다. 투자를 받았고, 직원들에게 지분을 나눠 준 순간 출구는 셋뿐이었다. 망하거나, 인수되거나, 상장하거나. 트위터는 상장을 택했고, 상장에는 사업 모델이 필요했다. "우리는 광고를 골랐다. 페이스북과 구글에서 통했으니까." 그리고 바로 거기서 압력이 시작됐다고 그는 말한다. 광고주에게 팔아야 하는 그 '상품'이, 다름 아닌 그것을 쓰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회사로 돌아왔을 때 네 가지 깨달음이 한꺼번에 닥쳤다. 우리는 사람들의 주의(attention)를 팔고 있었다. 나 자신이 단일 실패 지점이었다. 콘텐츠를 판단하고 조정하는 팀은 늘 충분한 정보를 갖지 못했다. 그리고 터키, 러시아, 인도, 미국 등 세계 곳곳의 정부가 정보와 계정 삭제를 요구하며, 응하지 않으면 그 나라에서 차단하겠다고 위협했다. 트위터는 '국가별 차단' 같은 장치를 만들어 한 나라에서만 가리되 나머지 세계에는 남겨 두는 식으로 버텼지만, 도시에게는 그조차 "옳지 않게 느껴지는" 압력의 지점이었다.

04내 정체성을 내가 들고 다닌다

도시는 트위터를 떠난 뒤, 회사와는 별개의 프로토콜에 투자하고자 했다. 누구도 소유하지 않고, 누구도 통제할 수 없으며, 그래서 누구도 진짜로 내릴 수 없는 무언가. 그 위에 표현 계층(보여 주는 화면)을 얹되, 프로토콜 자체는 모든 것을 담는 구조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블루스카이였다. 그는 별도 법인으로 분리된 블루스카이에 4,000만 달러를 댔다고 말한다.

회사를 떠난 뒤, 그는 밤마다 비슷한 프로젝트를 찾아다녔다. "공익 인터넷에 도움이 될, 내가 후원해야 할 오픈소스 시도가 뭐냐"고 물었더니, 사람들이 자꾸 노스트를 보라고 했다. 그것을 설명한 깃허브(GitHub) 문서를 찾았을 때 그는 충격을 받는다. "블루스카이에서 우리가 원했던 것 100% 그대로였다. 다만 회사에서 나온 것도, 회사 돈으로 만든 것도 아니었다. 완전히 독립적이었다." 그 문서는 자신들이 풀려던 문제를 하나도 빠짐없이 진단하고 있었고, 그것도 "지독하리만치 단순한" 방식으로.

결정적 순간은 직접 써 봤을 때 왔다. 그는 다무스(Damus)라는 클라이언트를 내려받아 계정을 만들었다. 그러자 공개 키와 비밀 키가 주어졌다. 비밀 키를 들고 전혀 다른 클라이언트, 다른 시스템에 로그인하자 — "내 정체성과 내 데이터가 전부 나를 따라왔다." 그는 이것을 "엄청나게 강력한 느낌"이라고 부른다. 지금은 정체성을 회사가 소유한다. 데이터를 회사에 넘기고, 회사는 그것으로 무엇이든 한다. 빼내서 옮기려 하면 일부러 어렵게 만들어 둔다.

그는 사람들이 아직 노스트의 가치를 못 느끼는 이유도 솔직하게 짚는다. 그만큼 편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느낌을 아직 받지 못해서다. 지금은 그렇게까지 필요하지 않으니까." 다만 그는 흐름을 본다. 기업화된 소셜미디어와 도구들에 계속 시달릴수록, 사람들은 "내 데이터를 소유하고, 내 정체성을 소유하고, 다른 클라이언트를 거꾸로 내가 허락해 주는" 그 가치를 점점 더 갈망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05진짜 문제는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자유의지다

여기서 대화는 핵심으로 들어간다. 도시는 다소 과격하게 들릴 말을 꺼낸다. "지금 표현의 자유 논쟁은 완전한 주의 분산이다. 진짜 논쟁은 자유의지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금 프로그래밍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메커니즘은 하나의 닫힌 고리다. 우리는 무엇에 관심 있는지 말한다. 그러면 '발견 메커니즘'이 무엇이 흥미로운지를 우리에게 일러 준다. 우리가 그 콘텐츠에 반응하고 머물수록, 알고리즘은 그 편향을 점점 더 두텁게 쌓는다. 문제는 이 알고리즘이 — 설령 오픈소스라 해도 — 사실상 블랙박스라는 데 있다. 언제 무엇을 보여 줄지 100% 예측할 수 없고, 언제든 바뀌고 옮겨질 수 있다. 사람들이 거기에 의존하게 될수록, 그것은 우리가 가진 자유로운 행위 능력, 즉 자유의지를 실제로 바꾸고 잠식한다.

잭 도시가 말한 알고리즘의 프로그래밍 고리를 나타낸 개념 도식. 사람이 관심 신호를 보내면, 발견 메커니즘이 무엇이 흥미로운지 정하고, 사람이 보고 반응하면, 알고리즘이 편향을 더 깊이 쌓는 닫힌 고리. 가운데에 예측 불가한 블랙박스가 있고, 바깥에서 '알고리즘을 고를 자유'가 그 고리를 끊는다. 결과는 알고리즘이 우리가 무엇을 생각할지를 프로그래밍하는 것.

잭 도시가 묘사한 닫힌 고리. 내 신호 → 알고리즘이 흥미를 정함 → 내 반응 → 편향 강화로 돌고, 그 결과 "무엇을 생각할지"가 프로그래밍된다. 가운데는 예측 불가한 블랙박스, 그가 제시한 해법은 고리를 끊는 '선택권'이다.

"우리는 아무리 저항하고 싶어도, 그것이 우리를 우리보다 더 잘 안다. 우리가 끊임없이, 은연중에도 드러내 놓고도, 우리의 취향을 말해 주기 때문이다."

도시는 알고리즘이 "outrage(분노)와 부정성 쪽으로 쏠리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무엇을 보여 줄지, 무엇을 보여 주지 않을지, 어떤 순서로 보여 줄지를 알고리즘이 정함으로써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는지를 사실상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담담하지만 단호하게 "정말로 위험하다"고 부른다.

06해답은 더 투명한 알고리즘이 아니라 '고를 자유'다

그렇다면 답은 무엇인가. 도시는 흔히 나오는 처방을 먼저 물리친다. "알고리즘을 더 열심히 오픈소스로 만들거나, 무엇을 왜 하는지 더 설명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답이 아니다." 그 길로는 블랙박스를 길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가 내미는 답은 하나뿐이다 — 선택권을 주는 것.

구체적으로 그는 세 가지 선택을 말한다. 첫째, 내가 신뢰하는 곳에서 만든 알고리즘을 고를 자유. 둘째, 내 알고리즘을 직접 만들어 이 망들 위에 끼워 넣고, 마음에 안 들면 갈아 끼울 자유. 셋째, 알고리즘을 둘러싼 '시장'을 가질 자유 — "이런 이유로 이걸 쓰겠다, 저 회사는 더는 못 믿겠으니 안 쓰겠다, 아니면 아무것도 안 쓰겠다"고 내가 정하는 것. "내가 발견 메커니즘이 되고 싶다."

그는 '공론장(public square)'이라는 비유도 바로잡는다. 공론장은 한 회사가 소유할 수 없고, 본래의 공론장은 인터넷 그 자체다. 다만 인터넷에는 약점이 있다. 내가 진짜로 관심 있는 것을 발견하고 연결되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 바로 그 '발견 문제'를 풀어 준 덕에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회사가 그토록 커지고 값비싸졌다고 그는 본다. 구글은 검색을, 페이스북은 친구를, 트위터는 그날의 뉴스와 흥미로운 것을 발견하게 해 주었다.

그래서 그의 결론은 발견 문제를 '오픈소스 방식으로, 자유의지를 지키는 방식으로' 푸는 데 있다. 내가 세상을 어떻게 볼지, 어떤 알고리즘을 쓸지를 내가 고르고, 그것이 대략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고, 언제든 꺼서 전부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 트위터도 한때 알고리즘을 꺼고 팔로우한 사람만 보게 하는 첫걸음을 뗐지만, 그러면 쏟아지는 수억 개의 글 속에서 너무 많은 것을 놓친다. 도움은 필요하다. 다만 그 도움을 "내가 고르고, 그것에 대한 통제권을 내가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그것은 결국 자유의지를 공격하는 일이다.

비유

지금의 추천 알고리즘은 식당의 주방장이 손님에게 메뉴판을 안 주는 것과 같다. 내가 "매운 거 좋아한다"고 흘리면, 주방은 갈수록 더 매운 것만 내온다. 그것도 레시피는 안 보여 주고, 언제든 맛을 바꿀 수 있는 채로. 도시는 말한다. 진짜 문제는 "이 집이 매운 걸 줘도 되느냐"(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먹을지를 내가 못 고른다"(자유의지)는 데 있다고.

그가 내미는 해법은 단순하다. 손님에게 메뉴판과 주방 선택권을 돌려주는 것이다. 어느 주방을 쓸지 고르고, 직접 요리해 끼워 넣고, 마음에 안 들면 갈아 치우는 것. 발견을 대신 해 주는 '종업원'은 여전히 필요하지만, 그 종업원을 내가 고용하고 언제든 해고할 수 있을 때라야 비로소 내 식탁은 내 것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