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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틀릴 수도 있다 — 비트코인을 욕하던 사람이 최대 ETF를 굴리기까지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를 이끄는 사람이 2017년에는 비트코인을 "자금 세탁의 지수"라 불렀다. 지금 그는 세계에서 가장 큰 비트코인 ETF를 굴린다. 무엇이 바뀐 걸까. 래리 핑크는 그 변화를 숨기지 않고, 오히려 자기 사고법의 증거로 내놓는다.
입장을 바꾸는 일은 대개 약점으로 읽힌다. 특히 13조 5천억 달러를 굴리는 사람이라면, 한 번 뱉은 말은 시장을 움직이고 그래서 함부로 주워 담기 어렵다. 그런데 래리 핑크는 자신의 가장 극적인 말 바꾸기를 무대 위에서 담담하게 풀어놓는다. 워런 버핏이 "쥐약"이라 부른 그 자산을, 자기는 왜 이제 다르게 보는지. 그리고 그 변화가 부끄러움이 아니라 어떻게 자기 일의 핵심인지.
01"버핏이 옳을 가능성은? 없다"
진행자는 곧장 가장 날 선 질문부터 던진다. 워런 버핏이 옳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느냐고. 버핏과 찰리 멍거는 비트코인을 두고 "쥐약(rat poison)"이라 부르며 "언젠가 0으로 갈 것"이라 말해 왔다. 핑크의 답은 짧고 분명하다.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그는 곧장 두 거장을 변호하는 듯한 말로 이어간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들며 자신이 자란 환경에 빚을 진다는 것이다. "찰리와 워런은 미국이 압도적이고 달러가 전부이며 그걸 감히 의심할 수 없던 시대에 자랐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고 핑크는 본다. 세계의 민주주의 국가들이 적자 지출을 어떻게 억제할지 고심하는 시대, 그 속에서 비트코인은 "일종의 새로운 디지털 금"으로서 불확실성의 시기에 사람들이 갈아타는 자산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핑크는 말한다. 더 분산되고 인터넷 위에서 돌아가는 세계를, 그 세대가 머릿속에 그려보기란 쉽지 않다고. 비판이라기보다 세대에 대한 이해에 가까운 진단이다.
02"crypto는 자금 세탁과 도둑들의 지수다" — 2017년의 핑크
진행자가 가장 아픈 곳을 찌른다. 핑크는 한때 이 무대에서, 2017년에 crypto를 "자금 세탁의 지수(an index for money laundering)"라 불렀다. 더 정확히는 "자금 세탁과 도둑들"이라 했다. 그런데 지금 그는 세계 최대 비트코인 ETF를 가지고 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핑크는 피하지 않는다. "맞다, 내가 그렇게 말했다. 워싱턴에서, 제이미 다이먼(Jamie Dimon) 옆자리에 앉아서 했던 말이다." 그러고는 변화의 계기를 차분히 설명한다. 코로나로 시간이 조금 더 생겼던 시기, 세계를 돌아다닐 수 없던 그때 그는 비트코인을 옹호하는 사람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내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왜 내가 그런 믿음을 갖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2021~22년 무렵, 그렇게 그의 견해는 바뀌기 시작했다.
그는 한 가지를 분명히 못 박는다. 그때의 발언은 crypto 전체가 아니라 비트코인을 겨냥한 것이었다고. "나는 비트코인의 큰 쓰임새를 본다. 지금도 그렇다." 그러면서 자기 일과 자기 사고법을 연결한다. "나는 강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게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일 년에 수천 명의 고객과 각국 정부 지도자를 만나는 자리에서, 그의 생각은 늘 진화한다는 것이다. "이건 내 의견이 크게 바뀐, 아주 눈에 띄는 공개적 사례다."
2017년의 회의론에서 세계 최대 비트코인 ETF까지. 핑크는 자신의 입장 변화를 약점이 아니라 사고법의 증거로 제시한다.
03희망을 굴리는 자, 공포를 사는 자
핑크의 가장 인상적인 정의가 여기서 나온다. 그는 블랙록이 고객을 대신해 굴리는 13조 5천억 달러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그건 본질적으로 희망을 관리하는 일이다. 그게 전부다." 누가 30년 뒤의 결과를 보고 투자하겠는가. 30년 뒤 복리의 마법을 누리리라는 희망이 없다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그렇다면 비트코인은 무엇인가. 핑크의 답은 정반대 극이다. "비트코인은 공포의 자산이다." 사람들이 덜 두려워지면, 예컨대 미국이 중국과 무역 합의를 맺으면 비트코인은 내려간다고 그는 말한다. 이번 주 우크라이나에서 모종의 합의가 있을 거라는 이야기가 돌자 비트코인이 조금 빠진 것도 같은 이치다.
그래서 그는 비트코인을 사는 세 가지 이유를 정리한다. 신체적 안전이 두려워서, 재정적 안전이 두려워서, 그리고 가장 근본적으로는 적자 때문에 금융 자산의 가치가 깎여 나가는 것이 두려워서. 그러니 최근 한 주 동안 20~25% 빠진 것도 — IBIT(블랙록의 비트코인 ETF)가 생긴 이래 세 번째 큰 낙폭이다 — 그에게는 새삼스럽지 않다. 오히려 이런 움직임들이 다른 자산과 상관없이 따로 논다는 점이 핵심이라는 것이다.
굴리는 자산(달러)
비트코인 낙폭
이만한 낙폭
04그게 정말 보험인가 — $12.5만에 사서 $9만이 된 사람
진행자가 반박한다. 12만 5천 달러에 비트코인을 샀는데 지금 9만 달러라면, 그게 정말 보험이라 할 수 있느냐고. 핑크의 구분은 단순하다. "트레이딩하려고 샀다면, 그건 변동성이 아주 큰 자산이다. 시장 타이밍을 기막히게 잘 맞춰야 한다." 하지만 자신의 모든 희망에 대한 헤지(hedge), 즉 위험을 막는 방패로 산 것이라면, 그것은 포트폴리오에 의미 있는 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핑크가 보는 비트코인의 또 다른 문제는 따로 있다. 여전히 레버리지(빌린 돈으로 키운 베팅)를 쓰는 참가자들에게 크게 휘둘린다는 점이다. 그런데 그는 자금의 흐름을 보면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고 말한다. 점점 더 많은 정통 장기 투자자들이 들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재단이 IBIT를 대량 매수했다는 기사가 났고, 여러 국부펀드가 12만 달러 선에서 조금씩 사 모으고 있으며 8만 달러대에서는 더 많이 샀다고 그는 전한다.
"이건 트레이딩이 아니다. 목적을 위해 보유하는 것이다. 몇 년에 걸쳐 들고 가는 것이다."
핑크의 결론은 분명하다. 시장이 여전히 레버리지에 무겁게 의존하고 있으니 변동성은 앞으로도 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비트코인을 트레이딩 대상으로 볼 때의 이야기일 뿐, 목적을 위해 몇 년 단위로 보유하는 사람에게는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05레버리지의 정체 — 마이클 세일러와 10월 10일
이야기는 레버리지의 실체로 넘어간다. 사람들은 그 빚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잘 모른다. 진행자는 마이클 세일러(Michael Saylor)를 거론한다. 그가 이끄는 회사 스트래티지(Strategy, 옛 마이크로스트래티지)는 거대한 레버리지 베팅처럼 보이고, 존재하는 전체 비트코인의 약 3%를 보유하고 있다.
여기서는 브라이언 암스트롱이 답한다. 올해 10월 10일에 그 단면이 잠깐 드러났다고. 시장이 출렁이자 상당한 레버리지가 풀려나갔는데, 그 대부분은 해외 거래소에서 벌어진 일이었다는 것이다. 코인베이스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고 그는 강조한다. 그가 내리는 결론은 규제다. 미국에 명확한 규칙이 필요하다는 것.
암스트롱은 2025년을 분수령으로 본다. 스테이블코인을 위한 지니어스 법(Genius Act)이 통과됐고, 시장 구조 법안이 하원에서 초당적 표결을 통과해 상원으로 넘어갔다. 그는 몇 달 안에 상원 표결이 이뤄질 수 있다고 기대한다. 그렇게 미국에 산업의 토대가 깔리면, 해외에서 벌어지던 고위험 행위와 과도한 레버리지가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06토큰화 — 금융을 영원히 바꿀 다음 장
핑크는 최근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에 토큰화(tokenization)에 관한 글을 썼다. 그는 그것이 금융을 영원히 바꿔놓을 것이라 본다. 토큰화란, 쉽게 말해 모든 자산을 디지털 형태로 바꿔 지갑 속 숫자처럼 다루는 일이다.
그의 문제의식은 이렇다. AI(인공지능)가 세상을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이야기는 넘쳐나는데, 기술이 금융을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이야기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금융에는 중간상인이 빽빽하고, 결제는 늘어지고, 절차는 길다. "모든 자산을 디지털화할 수 있다면 — 주식과 채권을 디지털화하고, 디지털 지갑의 현금이나 스테이블코인에서 주식이나 채권으로 더 매끄럽게 옮겨갈 수 있다면 — 마찰 비용과 거래 비용이 줄고 훨씬 자유로운 흐름이 가능해진다."
그가 든 숫자가 규모를 보여준다. 전 세계 디지털 지갑에 4조 1천억 달러가, 대부분 스테이블코인 형태로 잠겨 있다. 지금은 이 돈으로 채권이나 주식을 사거나 부동산 거래를 하려면 디지털 지갑에서 전통적 지갑으로 돈을 빼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온갖 수수료가 붙는다. 부동산까지 포함해 모든 자산을 토큰화하면 이 거대한 마찰 비용이 사라진다는 것이 핑크의 그림이다.
07"우리는 늦었다" — 인도와 브라질이 앞서 있다
여기서 핑크의 목소리에 다급함이 묻어난다. "한 나라로서, 우리는 늦었다." 누가 앞서 있느냐는 물음에 그는 두 나라를 댄다. 인도와 브라질. 미국은 자본시장의 역할 덕에 대공황과 금융위기에서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던 나라다. 그런데 지금 브라질과 인도에서는 디지털 경제로의 전면적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브라질에서는 픽스(Pix)라는 시스템 위에서 신용카드 결제까지 이뤄지고 있다.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속도다. "우리는 충분히 빠르게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핑크는 이 대목에서 AI까지 끌어온다. 사람들이 AI 거품을 묻는데, 자기는 거꾸로 묻는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AI와 디지털화, 토큰화에 충분히 빠르게 투자하지 않는다면, 다른 나라들이 우리를 앞질러 갈 것이라고. 일부 실패와 일부 성공이 따르겠지만, 멈춰 서는 것이 더 큰 위험이라는 이야기다.
핑크와 암스트롱은 서로 경쟁자냐는 물음에는 손사래를 친다. 블랙록은 코인베이스의 ETF에서 좋은 협력자이고, 암스트롱은 크립토 ETF의 80% 이상을 수탁과 거래 면에서 코인베이스가 지원한다고 말한다. 토큰화의 물결 속에서 둘은 서로의 고객 앞에 서로의 상품을 놓아주는 사이라는 것이다.
0840명이 굴리는 13조 5천억 — 그리고 30년의 시선
마지막으로 진행자가 묻는다. 지금 경제는 어디쯤 와 있는가. 암스트롱은 낙관론자다. 크립토를 통한 접근의 민주화, 예측 시장의 부상, 스테이블코인의 규제 명료성을 들며 "미국이 다시 공세로 돌아선 느낌"이라고 말한다. 그는 단기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좋은 상품을 만들어 장기로 간다는 원칙을 되풀이한다.
핑크의 마무리는 자기 회사를 거울로 든다. 블랙록이 굴리는 자산의 40여 퍼센트가 외국인 소유이고, 그들은 포트폴리오의 70~80%를 달러 기반 자산에 두고 있다. 자본이 장기 기회를 찾아 모여드는 몇 안 되는 목적지가 미국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기술이 일하는 방식을 바꾸고 있다고 말한다. "블랙록을 보라. 우리 매출은 40% 올랐는데 인력은 5% 늘었다. 지난 몇 년간 마진은 300bp(베이시스 포인트) 올랐다." 더 적은 사람으로 더 많은 거래를, 기술이 떠받친다는 것이다.
그가 정작 던지고 싶은 질문은 더 멀리 있다. "가장 큰 충격은 우리 대학 시스템에 올 것이다. 미국의 대학은 화이트칼라 일자리를 전제로 지어졌다. 그게 기술로 바뀐다. 어떻게 다시 설계될 것인가." 아무도 그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고 그는 아쉬워한다. 그리고 자신이 하는 일을 한 문장으로 압축한다. "우리는 사람들이 30년 뒤의 결과를 헤쳐 나가도록 돕는다. 나는 다음 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에는 별 관심이 없다."
핑크의 입장 변화는 오래 쓰던 안경의 도수를 바꾼 일과 같다. 안경을 바꿨다고 그가 시력이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세상이 흐릿해졌을 때 안경을 다시 맞추는 사람이, 옛 도수를 고집하다 벽에 부딪히는 사람보다 멀리 본다. 그는 "나는 틀릴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것을, 약점이 아니라 안경을 닦는 일로 여긴다.
그가 본 비트코인과 주식의 차이는 비상용 손전등과 적금통의 차이다. 적금통(주식)은 매달 차곡차곡 쌓아두고 30년 뒤를 기다리는 '희망'의 그릇이고, 손전등(비트코인)은 정전이 무서워 사두는 '공포'의 도구다. 정전이 안 나면 손전등 값은 아깝게 느껴지지만, 정말 어둠이 닥쳤을 때 그것을 사둔 사람만이 길을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