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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읽기 · 리더십

리콴유의 생각들 — 전쟁이 빚어낸 지도자, 제도가 지킨 나라

싱가포르를 맨손에서 일으킨 리콴유가 무대 위에 앉아 묻는 말에 답한다. 책임감은 가르칠 수 있는가, 미국은 아시아를 잊었는가, 작은 나라는 무엇으로 살아남는가. 그의 대답에는 단 하나의 축이 관통한다 — 사람을 알고, 제도를 쌓고, 다음 세대가 그 어깨를 딛고 올라서게 하라.

2026년 6월 14일

나라를 세운 사람의 말은 무겁다. 그는 더 증명할 것도, 다음 선거에서 표를 얻을 일도 없다. 싱가포르의 초대 총리 리콴유(Lee Kuan Yew) — 이 자리에서 그는 선임장관 자리도 내려놓고 "선임고문(Minister Mentor)"이라는 직함만 쥔 사람으로 소개된다. 진행자가 던지는 물음은 리더십에서 출발해 미국, 중국, 인도, 제도, 그리고 작은 나라의 생존으로 번져 간다. 그는 흥분하지 않는다. 평탄한 목소리 안에 그가 평생 다듬어 온 사고법이 들어 있다.

먼저 정리 화자는 리콴유(Lee Kuan Yew)다. 싱가포르의 초대 총리이자 건국의 설계자로, 이 대화 시점에는 일상 정책에서 손을 떼고 선임고문(Minister Mentor)이라는 직함만 가진 상태다. 그의 아들 리셴룽(Lee Hsien Loong)이 현직 총리다. 본문의 인용은 모두 영상 속 리콴유의 발언을 옮긴 것이며, 진행자와 청중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01책임감은 가르칠 수 없다 — 전쟁이 만든 세대

첫 질문은 리더십에 관한 것이다. 회고록 곳곳에서 그는 국민뿐 아니라 자신을 믿어 준 동료들에게도 강한 책임감을 느꼈다고 적었다. 그런 책임감은 어디서 오는가, 가르칠 수 있는가. 리콴유의 답은 단호하다. "다른 사람들이 무엇에 이끌리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러나 나와 가까운 동료들의 경우, 우리는 전쟁과 혁명이 빚어낸 세대였다." 그들은 정치를 직업으로 택한 것이 아니라, 시대가 그들을 정치 속으로 던져 넣었다는 것이다.

그는 당시의 절박함을 설명한다. 영국은 떠나고 있었고, 그것은 누구의 눈에도 분명했다. "그들은 이곳을 지킬 수 없었다." 남은 것은 200만 명의 운명이었다. "하든지 죽든지였다. 우리는 그저 해내야만 했다. 그게 전부다." 그래서 그에게 정치는 직업이 아니라 "하나의 십자군 운동(crusade)"이었다.

그 절박함이 사람들 사이에 특별한 결속을 만들었다. 약한 자, 움츠러든 자는 떨어져 나갔고, 끝까지 버티며 싸운 자들만 남았다. 리콴유는 그 유대를 전장의 비유로 설명한다. "함께 전투에 들어가 무거운 희생을 치르고 살아남은 소대 전우들 사이에 생기는 그런 유대였다. 서로의 강점과 약점을 알고, 서로를 믿고, 함께 머문다." 그는 토니 블레어와 고든 브라운 같은 다른 나라 지도자들을 떠올리며, 그들을 키워 낸 배경이 얼마나 다른지에 놀랐다고 말한다.

02미국은 아시아를 모르는 게 아니다 — 다만 멀리 못 본다

진행자는 미국이 이 지역에 충분히 관심을 두지 않는 것 아니냐고 묻는다. 리콴유는 그 전제부터 바로잡는다. "아니다. 그들이 관심이 없는 게 아니다. 문제는 미국 정치와 워싱턴의 주의력 지속 시간이다." 그들의 시선은 늘 눈앞의 것, 그리고 중간선거나 총선의 결과에 묶여 있다. 지금은 이라크, 이란, 레바논,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북한이 꼭대기의 에너지와 자원을 빨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래 단계에서는 다르다고 그는 본다. "거대한 지각판이 이 지역에서 움직였다는 걸 그들도 안다." 20년 뒤면 전혀 다른 아시아, 전혀 다른 아시아 강국들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강국은 군사 강국이 아니라 경제 강국이다. 그는 이를 "멈출 수 없는 장기 추세(secular trend)"라 부른다. 실제로 그는 직전에 두 대선 후보의 참모들과 한 시간을 보냈는데, 그들은 중국과 인도, 일본에 매우 집중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그가 본 권력 방정식의 변화는 구체적이다. 10~20년 안에 중국의 경제 규모는 일본만큼, 어쩌면 그 이상으로 커지고, 인도가 그 50~60% 수준으로 멀지 않게 뒤따른다. 게다가 상대할 지도자 자체가 바뀐다. "지금의 지도자들은 소련 시대의 끝자락에 있다. 첫 외국어가 러시아어다. 그러나 도시 시장급의 젊은 지도자들을 만나 보면, 첫 외국어가 영어다." 20년 뒤 미국이 마주할 중국의 지도부는 영국·유럽·미국 대학의 MBA나 박사 학위를 가지고, 협상은 중국어로 하되 커피와 식사는 유창한 영어로 함께할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03"나는 다른 나라의 멘토가 될 수 없다"

한 청중이 묻는다. 중국 지도부가 싱가포르식 정부를 지향한다는데, 당신이 그런 멘토 역할을 할 수 있겠느냐고. 리콴유는 먼저 자기 직함의 유래부터 설명한다. 아들이 총리가 되자 그는 내각을 떠나거나, 정책을 결정하지 않는 자리로 물러나야 했다. 그래서 14년간 맡았던 선임장관에서 "선임고문"으로 옮겨졌다. "어떤 부처나 장관에게도 지시를 내릴 수 없다. 오직 조언만 할 수 있다. 그들은 나를 데이터 뱅크로 쓰는 것이다." 50년 정치 활동에서 쌓인 자료가 거기 저장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나라의 멘토가 되는 것은 단호히 거절한다. "세계 어느 정부의 멘토가 된다는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진다." 이유는 명확하다. 배경을 모르고, 사람들을 모르고, 그것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어떤 나라의 지도자가 되려면 그 국민을 이해해야 한다. 그들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이건 먹히고 저건 안 먹힌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야 한다."

그는 한 사례를 조심스럽게 든다. 어느 행정 수반이 그토록 애를 먹은 이유 중 하나는, 해운 회사를 운영하는 것과 나라를 운영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람의 결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는 누구에게도 함부로 멘토를 자처하기를 꺼린다고 말한다. 데이터는 줄 수 있어도, 본능은 빌려줄 수 없다는 뜻이다.

04순응 사회라는 비판에 대하여 — "우리가 멍청했다면 여기 있지도 못했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한 기자가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사회적 결속이 싱가포르 성공의 한 이유라지만, 한편으로는 싱가포르가 지나치게 순응적인 사회가 되었다는 시각도 있다고. 노동자들은 잘 교육받았지만 주도성이 부족하고, 목소리 내기를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틀에서 벗어나 생각하고 체제에 도전하는 사람이 있어야 지식 사회로 갈 수 있지 않겠느냐는 물음이다.

리콴유는 이를 "전형적인 서구 특파원의 시각"이라 받아친다. 그리고 곧장 반례를 든다. "우리가 틀 밖에서 생각하지 못한다면, 당신이 파이낸셜 타임스에 의해 이곳에 보내져 우리에게 화살을 날리고 있겠는가?" 이코노미스트에 막 실린 한 기사를 그는 인용한다. 매킨지 보고서를 바탕으로 세계 여러 나라의 교육 시스템을 분석한 글인데, 싱가포르는 성공한 상위 다섯 나라 안에 들었고 핀란드가 또 다른 최상위였다는 것이다.

그가 가져온 핵심은 교사의 질이다. 그 보고서의 결론은 학급 규모나 시험 유무가 아니라, 교사의 질과 문제가 생겼을 때 얼마나 빨리 바로잡는가에 있었다. 그는 한 나라의 사례를 든다. "그 나라에서는 초등학교 교사를 학위 취득 후 상위 5% 학부생 중에서 뽑는다. 우리는 상위 30%에서 뽑는다고 그들은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싱가포르가 영국·미국·일본·독일의 교육 시스템을 모두 연구한 뒤 자기에게 맞는 시스템을 직접 빚어냈다고 강조한다. 영국이 시스템을 물려주고 떠난 게 아니라, 스스로 생각해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마지막에 못을 박는다. "우리가 멍청했다면 지금 여기 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05제도화 — 지식을 사람과 함께 묻지 않는 법

화제는 제도로 옮겨 간다. 리콴유는 제도의 본질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작동하는 시스템을 제도화하고 꾸준히 개선하지 않으면, 잘해 온 것마저 잃는다." 그는 옛 중국을 예로 든다. 명의나 장인들의 축적된 지식이 그들과 함께 죽어 버린 이유는, 출판하지 않고 오직 직계 제자나 자손에게만 전수했기 때문이다.

서양은 달랐다고 그는 본다. 발견을 출판하고 교환하며, 제도화된 지식이 쌓이고 비판을 통해 개선된다. "그래서 늘 누군가의 어깨를 딛고 올라선다." 싱가포르가 해마다 나아진 것도 같은 이유다. 교육이든 국방이든 재정이든, 그들은 전 세계에서 배운다. 바퀴를 다시 발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행정대학과 리콴유 공공정책대학원(LKY School of Public Policy)을 든다 — 사례 연구가 만들어지고 비판받으며, 제도화된 지식이 다음 세대를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그는 청중석의 한 기관 관계자에게 직접 빗대어 설명한다. "당신은 7년 전 이곳에 왔을 때만큼 무지하지 않다. 하지만 그 배움을 머릿속에만 담아 두면, 사람이 떠날 때 함께 사라진다. 문서로 남기고 결정화하면, 후임이 그 위에 쌓아 올린다. 그것이 제도화다." 지식을 사람에게가 아니라 제도에 맡기라는 것 — 이것이 그가 본 작은 나라의 생존 비결이다.

06승계의 산수 — "기어가 갈리지 않았다"

제도화의 가장 구체적인 형태가 지도자 승계라고 리콴유는 말한다. 싱가포르가 비교적 잘해 온 한 가지 이유는, 총리가 되거나 장관이 되는 법을 맨바닥에서 배운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고촉통(Goh Chok Tong)은 1976년에 장관으로 일을 시작해 1990년에 총리직을 넘겨받았다. 부총리를 거쳐 일이 무엇인지 다 알고 있었기에 문제없이 인수했다.

현직 총리인 그의 아들 리셴룽은 1984년에 정계에 들어와 부총리를 14년간 지냈다. "그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안다. 총리가 하는 것을 지켜보고 도우면서 배웠기 때문이다. 기어가 갈리는 일이 없었다." 리콴유는 이 매끄러운 인수를 이른바 "회전문 정부(revolving door governments)"와 대비한다. 몇 년마다 새 사람이 들어와 0에서 다시 학습 곡선을 시작하는 정부 — 그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리콴유가 말한 후계자 견습 기간 막대그래프 — 고촉통은 1976년 입각 후 1990년 총리 취임까지 14년, 리셴룽은 부총리로 14년 견습, 정계 입문(1984) 후 총리까지 20년, 회전문 정부는 매번 0년에서 다시 시작

영상 속 리콴유가 직접 든 숫자들. 싱가포르 총리들은 권좌에 오르기 전 수십 년을 배웠고, 그는 이를 매번 0에서 다시 시작하는 “회전문 정부”와 대비했다.

이 대비는 인도에서 온 한 청중과의 대화에서 더 선명해진다. 그 청중은 마흔에 은퇴해 정치에 뛰어들려는 기업인이었다. 리콴유는 격려보다 현실을 들이민다. "당신 앞에는 넘어야 할 무시무시한 산이 있다." 정당도 없고, 인도의 정치는 나라가 너무 커서 이름값으로 굴러가는 왕조 정치라는 것이다. "한 사람 한 표 체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당신의 이름을 알아보는 것이다. 간디나 네루라면 그것이 엄청난 이점이다."

07인도를 향한 조언 — "정당을 만들지 말라"

그 인도 청중이 묻는다. 잘나가는 경력을 버리고 나라를 위해 무언가 하려는 사람들에게 어떤 조언을 하겠느냐고. 리콴유의 답은 냉정하다. "나라면 정당을 새로 만들라고 권하지 않겠다." 자칫 잘못된 당에 들어가면 다음 5년을 밖에서 보낼 수 있고, 여당 연합이 다음 선거에서 이긴다는 보장도 없다는 것이다.

대신 그는 다른 길을 권한다. 인도가 왕조 정치인 것은 나라의 크기 때문이고, 라훌 간디(Rahul Gandhi)처럼 이름이 알려진 사람과 맞붙으면 아무리 뛰어난 기업가 역량도 선거판에서는 이름값에 밀린다는 것이다. "내가 인도인 기업가라면, 타타나 비를라, 혹은 인포시스 같은 사람이 되려 하겠다." 그는 방갈로르에서 인포시스 회장과 한 시간을 보낸 일을 떠올린다.

그때 그는 회장에게 권했다고 한다. "그 역량을 정부로 가져오라. 장관이 되어, 당신이 이 회사를 바꿨듯 그 부처를 바꿔라." 회장은 웃으며 가능하지 않다고 여겼다. 그는 이미 정점에 올랐고 정부를 상대해 봤기에 안다는 것이다. "그것은 매우 측정된, 굼뜬 방식으로 움직이는 거대한 관료제다. 인포시스는 민첩하고 빠르고 발이 가볍다." 그러면서 리콴유는 아쉬움을 남긴다. 인도에 그런 장관들이 있어 부처를 바꿨다면, 인도는 마땅히 누려야 할 만큼의 진전을 이루고 있었을 것이라고.

08제로섬이 아니다 — 싱가포르와 두바이, 다른 알고리즘

마지막 질문. 싱가포르처럼 작은 나라들 — 아부다비나 두바이 — 이 그 성공을 모방하려 한다. 이것은 제로섬 게임인가. 리콴유의 답은 분명하다. "아니다. 제로섬이 아니라 윈윈 게임이다." 두바이는 거대한 항공 허브가 되었고, 싱가포르는 오히려 두바이를 거쳐 모스크바로 가는 허브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경쟁은 파이를 키운다.

그러나 두 나라의 모델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그는 짚는다. 두바이의 토착 인구는 10만 명 남짓이고 외국인 인구는 150만 명에 이른다. 대신 걸프의 석유와 자금이라는 자원이 있어, 세계 최고 수준의 경영자들을 고용해 항공사와 항만을 운영한다. 반면 싱가포르는 석유도 없고, 인구는 460만 명 중 340만 명이 자국민이며 나머지는 일하거나 공부하러 온 외국인이다.

340만
싱가포르 자국민
(총 460만 중)
10만
두바이 토착 인구
(외국인 150만)
상위 5
교육 시스템
세계 순위(이코노미스트)

그래서 그는 싱가포르의 지속가능성이 약간 더 수월하리라 본다. 제도화가 더 쉽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스스로 갱신할 수 있는 동질적인 핵심이 있다. 인도·중국·홍콩에서 온 많은 외국인이 합류하지만, 등뼈는 싱가포르의 등뼈다." 두바이는 통치자가 매우 유능하지만, 척추는 여러 나라가 섞여 있다고 그는 비유한다. "두뇌는 두바이의 것이되, 척추는 혼합이다."

그는 결론을 서두르지 않는다. 어느 모델이 더 지속가능할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두바이가 계속 최고 수준의 경영진을 데려올 수 있다면, 그리고 그럴 자원이 있으니, 해낼 수 있다고 그는 인정한다. 싱가포르는 자원이 한정된 대신 토착의 힘이 더 강하다. 두 나라는 서로 다른 강점의 묶음을 가졌고 — 리콴유에게 그것은 경쟁이 아니라, 각자의 산수를 푸는 일이다.

비유

리콴유가 본 지식의 전승은 벽돌 쌓기와 같다. 옛 중국의 명의는 자기 손에 든 벽돌을 무덤까지 가져갔고, 그래서 다음 사람은 다시 맨땅에서 시작해야 했다. 제도화란 그 벽돌을 바닥에 내려놓아, 다음 사람이 그 위에 한 장을 더 얹게 하는 일이다. 그가 평생 한 일은 벽돌을 높이 쌓은 것이 아니라, 쌓은 벽돌이 무너지지 않게 굳혀 둔 것이다.

지도자 승계를 그는 운전 교대에 비유한 셈이다. 회전문 정부는 매번 운전을 처음 배우는 사람이 핸들을 잡아 기어를 갈아 댄다. 싱가포르는 수십 년간 조수석에서 길을 외운 사람이 운전대를 넘겨받는다 — 그래서 “기어가 갈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