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읽기 · 삶의 기술
지능의 유일한 시험은 원하는 걸 얻느냐다 — 나발 라비칸트가 말하는 욕망과 결정
사람들은 지능을 IQ 시험으로 잰다. 그러나 나발 라비칸트는 단 하나의 진짜 시험만 인정한다. 인생에서 원하는 것을 얻느냐다. 그런데 거기엔 더 어려운 절반이 있다 — 애초에 올바른 것을 원할 줄 아느냐. 우리가 자기도 모르게 떠밀려 가는 모방 욕망, 40년을 약속하면서 결정엔 한 달을 쓰는 모순, 1만 시간이 아니라 1만 번의 반복, 그리고 빠르게 탐색하다 맞는 하나에 전부를 거는 바벨 전략에 관하여.
"당신에겐 한 번뿐인 인생이다. 평범함에 안주하지 말라." 나발 라비칸트(Naval Ravikant)는 그렇게 운을 뗀다. 그러더니 곧 사람들이 흔히 입에 올리는 지능 이야기로 화제를 옮긴다. 우리는 IQ 시험을 말하고, 머리가 좋다 나쁘다를 따진다. 그러나 그가 보기에 "지능의 유일한 진짜 시험은 인생에서 원하는 것을 얻느냐다." 그리고 그 안에는 따로 떼어 봐야 할 두 부분이 있다.
01원하는 걸 얻는가, 그리고 올바른 걸 원하는가
첫 번째는 원하는 것을 얻는 일이다. 즉 그것을 손에 넣는 방법을 아는가. 두 번째는 더 어렵다. 올바른 것을 원하는 일 — 애초에 무엇을 원해야 하는지를 아는가. 라비칸트는 자기 자신을 예로 든다. "내가 2미터가 넘는 농구 선수가 되기를 원할 수는 있지만, 그건 얻지 못한다. 얻을 수 없는 것을 원한 셈이다."
그러나 더 고약한 함정은 따로 있다. 얻을 수 있지만 막상 얻고 나면 원치 않았던 것을 원하는 경우다. 그는 이것을 "부비상(booby prize)", 그러니까 받아 봐야 기쁘지 않은 꽝 상품이라 부른다. "세상엔 가질 가치가 없는, 혹은 가지는 순간 그 자체로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 내는 상이 수두룩하다." 가장 무서운 결말은 그래서 이렇게 온다. "조심하지 않으면, 원치 않던 곳일 뿐 아니라 애초에 도달할 생각조차 없던 곳에 다다르게 된다."
02자동조종을 경계하라 — 사회의 목소리, 모방 욕망
왜 사람들은 원치도 않던 자리에 도착하는가. 라비칸트의 답은 자동조종(autopilot)이다. 스스로 키를 잡지 않고 떠밀려 갈 때, 우리를 미는 손은 대개 셋이다. 사회의 기대, 친구들의 행동, 그리고 부모의 바람이다.
그는 피터 틸(Peter Thiel)이 르네 지라르(René Girard)에게서 빌려 온 모방 욕망(mimetic desire) 개념을 끌어온다. "우리의 욕망은 다른 사람들에게서 옮겨붙은 것이다." 어떤 것은 사회에 자동으로 박혀 있다 — 로스쿨에 가라, 의대에 가라, 경영대학원에 가라. 어떤 것은 옆에서 친구들이, 그의 표현으로는 "다른 원숭이들이" 무얼 하는지 지켜보다 옮는다. 어떤 것은 그저 부모의 기대다.
죄책감마저 그는 같은 자리에 놓는다. "죄책감이란 그저 사회의 목소리가 당신 머릿속에서 말하는 것이다. 당신이 부족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착한 원숭이가 되도록 사회적으로 프로그래밍된 것." 그러니 최선의 결과는 한 곳에서만 나온다. "스스로 끝까지 생각해 보고 스스로 결정할 때다. 그런데 사람들은 결정하는 데 충분한 시간을 쓰지 않는다."
0340년을 약속하면서 결정엔 한 달을 쓴다
여기서 라비칸트는 우리 삶이 의외로 긴 주기로 묶여 있다는 점을 짚는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스타트업에 들어가면 주식을 4년에 걸쳐 받는다. 대학도 4년, 고등학교도 4년이다. 어떤 것은 더 길다. 아이를 낳으면 9년쯤 지나 사춘기가 오고, 그제야 그 관계가 달라진다. "로스쿨에 가는 건 4~5년 주기다. 그러고 변호사가 되면 40년 주기다. 정말 긴 주기들이다."
그에 비해 우리가 무엇을, 누구와 할지 결정하는 데 쓰는 시간은 터무니없이 짧다. "10년이나 5년을 머물 직장을 고르는 데 우리는 석 달, 한 달을 쓴다." 게다가 발견은 경로 의존적이다. 지금 길 위에서 마주치는 다음 갈림길은 그 전에 어느 길에 서 있었느냐에 달려 있다. 한번 어떤 방향으로 출발하면, 그 벡터는 아주 먼 거리까지 뻗어 나간다.
도시를 고르는 일이 대표적이다. 사람들은 어느 도시에 살지를 경솔하게 정한다. "그 결정이 당신의 친구가 누구일지, 일이 무엇일지, 기회와 날씨와 음식과 공기와 삶의 질을 다 결정하는데도 말이다." 그의 처방은 단순하면서 가혹하다. "4년을 좌우할 결정이라면, 1년을 들여 생각하라. 시간의 25%를 진짜로 골똘히 생각하는 데 쓰라."
그는 컴퓨터과학의 비서 정리(secretary theorem)를 든다. 10년을 함께할 비서를 뽑는다 할 때, 후보를 얼마나 오래 면접하고 언제 결정해야 최적인가. 답은 대략 3분의 1 지점이며, 이는 데이트에도 직업에도 두루 적용된다. 다만 핵심 단서가 붙는다. "흥미로운 건, 비서 정리가 사실 시간 기반이 아니라는 점이다. 시간의 3분의 1이 아니라, 반복 횟수 — 시도한 후보의 수 기반이다." 그러니 가능한 한 많이, 많이 반복하라. 그러려면 빠르게 빠져나오고 빠르게 결단해야 한다.
"기회는 빠르게 잡고, 빠르게 빠져나오라. 실패한 관계를 돌아보면 가장 큰 후회는 거의 늘 — 끝난 줄 알고도 더 머문 것이다. 더 일찍 떠났어야 했다."
041만 시간이 아니라 1만 번 — 반복은 오류 수정이다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이 퍼뜨린 "숙달까지 1만 시간"이라는 통념을, 라비칸트는 한 글자 비틀어 다시 쓴다. "실은 숙달까지 1만 번의 반복이다. 정확히 1만은 아니다. 알 수 없는 어떤 수지만, 학습 곡선을 끌어올리는 건 시간이 아니라 반복의 횟수다."
그리고 그는 두 단어를 날카롭게 가른다. 반복(iteration)은 되풀이(repetition)가 아니다. 되풀이는 같은 것을 똑같이 또 하는 것이다. 반복은 한 번의 배움으로 그것을 고쳐서, 또 다른 버전을 해 보는 것이다. "그게 바로 오류 수정(error correction)이다. 무엇이든 1만 번의 오류 수정을 거치면, 당신은 그 일의 전문가가 된다."
05비관은 정글의 유물 — 비대칭 사회에서 낙관해야 하는 이유
라비칸트는 또 하나를 단호히 권한다. "냉소주의자, 비관주의자와는 동업하지 말라." 그러나 정작 그 냉소와 비관은 바깥보다 우리 안에 있을 때가 많다. 어떻게 자기 안의 비관을 다스리는가. 그는 늘 가던 자리, 진화로 돌아간다.
비관은 타고난 배선이다. "덤불에서 무언가 부스럭거린다고 하자. 다가갔는데 그게 먹이라면 좋다 — 한 끼를 얻는다. 그러나 포식자라면, 나는 잡아먹히고 그것으로 끝이다." 그래서 우리는 파멸과 죽음을 피하도록 배선되었고, 천성적으로 비관주의자가 되었다. 문제는 현대 사회가 정글과 전혀 다르다는 데 있다. 무슨 불만이 있든, 현대 사회는 정글에서 그저 살아남으려 애쓰는 것보다 훨씬, 훨씬 안전하다.
게다가 상방(上方)은 비대칭적이다. "주식을 공매도하면 최대로 벌 수 있는 건 두 배다. 주가가 0이 되면 돈이 두 배 된다. 그러나 그게 다음 엔비디아(Nvidia)라서 100배, 1000배 오르면 어마어마하게 번다." 레버리지 덕분에 상방은 거의 무한이라는 것이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데이트 한 번 실패해도 만날 사람은 무한히 더 있다. 부족 사회라면 스무 명 남짓이라 다 만나 보지도 못했겠지만.
그래서 그는 삶을 검색 함수(search function)를 돌리는 일로 본다. 통할 그 하나를 찾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평생의 짝을, 아내나 남편을 한 번 찾으면 그 관계 안에서 복리로 불어난다. 그 전에 데이트 50번을 실패했어도 괜찮다. 평생을 쏟을 단 하나의 사업을 찾으면 복리로 갚아 온다. 작은 실패 50번, 면접 탈락 50번은 중요하지 않다." 실패의 수는 중요하지 않다 — 그러니 비관할 이유가 없다.
06바벨과 라벨 — 흑백으로 움직이고, 정체성을 내려놓아라
다만 그의 낙관에는 결이 있다. "구체적인 것엔 회의적이되, 일반적인 것엔 낙관하라." 눈앞의 모든 기회 하나하나는 대체로 실패다. 그러나 이 안의 무언가는 통하리라는 큰 그림에는 낙관하라는 것이다. 지금 무언가 실패하면 — 조금 신비주의처럼 들리지만 — 그건 그럴 운명이 아니었고, 하나의 배움이자 반복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거기서 무언가 배웠다면 그건 승리다.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면 그제야 패배다."
그래서 두 태도가 모두 필요하다. 첫 번째 것에 덜컥 뛰어들지 말 것 — 운이 아주 좋지 않은 한, 첫 데이트 상대와 결혼하지는 말 것. 대신 맞는 짝을 찾을 때까지 아주 빠르게 살피고 탐색할 것. 그리고 찾으면 전부를 걸 것. "영화에서처럼 칩을 테이블 한가운데로 밀어 넣어야 한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바벨 전략(barbell strategy)이다. 검거나 희거나, 두 극단으로 사는 것. "대부분의 사람은 그 가운데 회색 지대에 갇혀 있다."
라비칸트의 바벨 전략. 모든 기회는 대체로 실패이니 왼쪽 극단에서 빠르게 많이 시도하고 즉시 손절하다가, 맞는 하나를 찾으면 오른쪽 극단으로 옮겨 전부를 걸고 복리로 키운다. 대부분이 갇히는 곳은 그 가운데 회색 지대다.
마지막으로 그는 더 깊은 곳을 가리킨다. 낙관주의자·비관주의자·냉소주의자, 내향·외향 같은 라벨(label)은 자기를 가두는 족쇄라는 것이다. 인간은 매우 동적이어서, 어떤 때는 내향적이고 어떤 때는 외향적이며, 어떤 맥락에선 비관하고 어떤 맥락에선 낙관한다. "그 라벨들을 다 내버려 두라. 그냥 눈앞의 문제를 보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편이 낫다."
그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동기화된 추론(motivated reasoning)이다. 보고 싶은 대로 끼워 맞추는 추론으로는 결코 진실에 닿지 못한다. 객관적이라는 것은 가능한 한 자기 자신을, 적어도 자기 성격을 방정식에서 빼는 일이다. 두꺼운 정체성과 성격을 두를수록 판단은 흐려지고, 당신을 과거에 묶어 둔다. "나는 트라우마가 있다, PTSD가 있다"고 자신을 정의하는 순간조차 그렇다. "느낌이 있고 기억이 있고 이따금 나쁜 감정이 스쳐도, 그것으로 자신을 정의하지 말라. 정체성에 박아 넣는 순간 거기서 계속 맴돌게 된다."
그러니 유연하게 머물러야 한다. 현실은 늘 변하고, 당신은 거기에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적응이 곧 지능이고, 적응이 곧 생존이다. 당신이 지금 여기 있는 건 당신이, 그리고 당신의 조상들이 적응했기 때문이다." 적응하려면 사물을 명료하게 봐야 하고, 자기 정체성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보면 판단은 흐려질 뿐이다. 첫머리의 그 문장으로 다시 돌아가는 셈이다 —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먼저 색안경을 벗고 무엇을 원해야 하는지부터 똑바로 봐야 한다.
라비칸트의 바벨 전략은 '슬롯머신을 도는 손님'으로 그려 볼 수 있다. 처음에는 한 기계에 동전 하나씩만 넣고 빠르게 옮겨 다닌다. 안 터지면 미련 없이 다음 기계로 — 이게 왼쪽 극단, 빠른 탐색이다. 그러다 마침내 잘 터지는 기계를 찾으면, 그때는 주머니의 돈을 전부 그 한 대에 쏟아붓는다. 이게 오른쪽 극단, 올인이다.
가장 많은 사람이 망하는 자리는 따로 있다. 아무 기계에나 어정쩡하게 동전 절반씩 넣으며 자리를 못 뜨는 회색 지대다. 그리고 '결정에 시간을 쓰라'는 말은, 어느 기계에 올인할지 정하는 그 한순간만큼은 — 평생 그 앞에 앉을 거라면 — 충분히 오래 들여다보고 고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