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읽기 · 창업
실패를 통과하는 일 — 퍼블리 박소령이 빨간 약을 먹은 날
콘텐츠 구독 서비스 퍼블리를 10년간 이끈 박소령이 회사를 정리하고 안식년을 보내며 책 한 권을 냈다. 제목은 《실패를 통과하는 일》. 그는 어느 날 퇴근길에 갑자기 "내가 지금 이걸 왜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지?"라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영화 매트릭스의 빨간 약을 삼킨 순간이었다고 한다. 눈이 멀었던 2년, 끝을 함께 걸어 준 세 사람, 그리고 실패를 사회에 갚는다는 말에 관하여.
성공한 창업가의 이야기는 흔하다. 잘 안 된 사업을 정면으로 꺼내 놓는 이야기는 드물다. 콘텐츠 구독 서비스 퍼블리(PUBLY)를 만든 박소령은 그 드문 쪽을 택했다. 회사를 매각으로 정리한 뒤, 그는 자기가 통과한 10년을 책으로 묶어 세상에 내놓았다. 인터뷰 내내 그는 시원하고 차분하다. 하지만 그가 들려주는 장면들 — 퇴근길에 찾아온 자각, 세 사람에게 무릎 꿇듯 부탁한 일, 1년 안에 파산이냐 매각이냐를 정해야 했던 시한 — 은 결코 가볍지 않다.
01'실패'라는 단어를 제목 맨 앞에 — 직구를 던지는 책
책 제목에 '실패'라는 단어가 제일 처음 딱 나온다. 그래서 사람들이 "오, 뭐지?" 하고 멈춰 선다. 정작 이 제목은 박소령이 지은 것이 아니라고 한다. 책을 낸 출판사 북스톤의 김은경 대표가 "이거 어때?"라고 물었고, 그는 그 자리에서 바로 "너무 좋다"고 오케이했다. 이유를 돌아보면, '실패'라는 단어가 변명이나 수식 없이 제목에 직설적으로 꽂히는 느낌이 좋았다는 것이다. "굉장히 직구를 던지는 느낌의 제목이어서, 이 책의 톤하고도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제목에는 뒷이야기가 있다. 김은경 대표가 이 제목에 영감을 준 인물로 우아한형제들 김봉진 의장을 꼽았다고 한다. 두 사람이 나눈 대화의 골자는 이랬다고 한다. "왜 한국에는 실패를 가르치는 책이 없을까?" 이렇게만 하지 마, 라는 것만 알려 줘도 다들 비용을 훨씬 아끼고 더 잘할 수 있을 텐데, 그걸 왜 책으로 안 알려 주느냐는 의문이었다. 그 문제의식이 결합되면서 '실패'를 정면에 내세운 제목이 떠올랐다고 한다.
실패는 추상적이면서도 꺼내기 어렵고 민감한 주제다. 그런 책도 드물었는데 영상은 더 없었던 것 같다고, 진행자는 말한다. 박소령도 동의한다. 그래서 이 인터뷰 자체가 자연스러운 기록이자 자료가 될 거라는 것이다. 잘 안 된 사업을 정리하는 관점에서 쓰인 책을 본 적이 없다는 진행자의 말에, 그는 자신이 왜 이걸 굳이 드러내기로 했는지를 풀어놓기 시작한다.
02왜 굳이 드러냈나 — "기본값이 실패였다"
드러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고 한다. 첫째, 그에게 실패는 그렇게 무거운 단어가 아니었다. "일을 하다 보면 기본값이 그냥 실패인 것 같고, 매일매일 크고 작은 실패를 정면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다." 다만 그 실패를 통해 뭐라도 남는 게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매일 넘어지는 게 당연한 일이라면, 넘어진 이야기를 부끄러워할 이유도 없다.
둘째 이유는 한 사람의 조언에서 왔다. 책에는 앞서 '초고'라는 존재가 있었다고 한다. 처음엔 자기 10년을 스스로 회복하고 치유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다 쏟아낸 글이었다. 그 초고를 통해 정신적으로 많이 치료가 됐다고 그는 말한다. 하지만 이걸 바깥으로 공개하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어떻게 꺼내야 하나, 정말 꺼내야 하나, 꺼내는 목적이 무엇인가 — 그 고민을 한두 달, 조금 더 길게 했다.
결정적인 조언은 《크래프톤 웨이》로 알려진 장병규 의장에게서 왔다고 한다. 초고를 가지고 조언을 구한 자리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네가 10년 동안 퍼블리를 해 온 과정에는 한국 사회의 많은 자원이 너의 학습에 쓰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투자자의 돈뿐 아니라, 사람들이 들어와 같이 일해 준 시간, 스타트업에 우호적이던 사회 분위기 — 그게 다 너에게 쓰인 리소스다. 그러니 그걸 다시 사회에 갚는다는 의미로, 잘 다듬어서 바깥에 공개하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이 자원을 사회의 빚으로 갚는다는 말이 가장 큰 울림이었다. 100명이라도 이 책으로 도움을 받으면, 그걸로 충분히 의미가 있는 것 아닌가."
03빨간 약 — 퇴근길에 찾아온 한 문장
이야기의 한가운데에 '빨간 약'이 있다. 2023년 초여름, 6월이었다고 한다. 그 직전까지 그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스타트업 시장이 이른바 '투자 빙하기'에 들어선 지 반년에서 아홉 달쯤 되던 때였다. 주주들도 다음 펀드레이징을 걱정하며 타이트하게 준비하라고 했고, 그도 미국 금리가 언제 내려오나 매일 기사를 보며 함께 졸였다. 그 무렵 퍼블리가 집중하던 것은 채용 관련 서비스(커리어리 등)였다. 비용은 빠르게 빨려 들어갔다.
문제는 타이밍이었다. 투자 시장이 얼어붙으면 회사들이 채용을 줄인다. 집중하던 시장 자체가 함께 얼어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채용 시장에는 이미 좋은 사업을 하는 대표들과 서비스가 많았고, 퍼블리는 후발 주자였다. 그 시장을 비집고 들어가는 일은 기본적으로 어려웠다. 그래도 잘해야 하니까, 그는 거기에 엄청나게 몰입했다. 너무 힘들어서, 늦은 밤 퇴근 후엔 집까지 한 시간씩 걸어가곤 했다고 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때로 중얼거리면서.
그러던 어느 날, 집으로 걸어가다가 생각이 확 들었다. "나 지금 채용 사업을 왜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지?" 그는 이 순간을 영화 매트릭스의 '빨간 약을 먹었다'는 말로 표현한다. 분명히 10년 전 자신은 콘텐츠 비즈니스를 잘해 보고 싶어서, 절벽에서 뛰어내리듯 아무 준비도 없이 사업을 시작한 사람이었는데 — 머리로는 채용 사업에 집중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피부로 '내가 지금 이걸 하고 있네'라는 사실이 와닿는 게 그만큼 늦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금은 억울하기도 했다.
박소령이 인터뷰에서 들려준 10년의 궤적. 창업에서 침체, '빨간 약'으로 인한 전환, 매각과 안식년을 거쳐 책 출간에 이른다. (연도는 발언 속 '초여름·여름' 등 계절 표현을 근사한 것이다.)
주변에서 우려가 없었던 건 아니라고 한다. 당연히 있었다. "문제는 한 번 눈이 멀면 그 말이 안 들린다는 거다." 더 큰 시장에서, 더 큰 투자금으로 우리도 잘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너무 강하니 그런 말이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까운 지인들조차 그때 우려는 됐지만 '알아서 잘하겠지' 했고, 지금 와서 돌아봐도 그 시기에 빨리 빠져나오기는 쉽지 않았겠다고 그는 인정한다.
04잘못된 모자를 쓰고 있었다 — 다키스트 아워의 처칠
그는 자기 변화를 영화 한 편으로 설명한다. 좋아하는 영화 중에 《다키스트 아워》가 있다. 2차 대전 시기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을 다룬 작품이다. 극 중에 처칠이 집을 나서기 전, 여러 개 걸린 모자 중 하나를 골라 쓰고 나가는 장면이 있다. 박소령은 이걸 이렇게 읽었다고 한다. 그때그때 자신이 맡아야 할 역할이 있고, 오늘은 어떤 역할을 하러 나갈지를 정해 그에 맞는 모자를 쓰고 나간다는 것이다.
퍼블리 대표를 하던 시기에도 그가 수행해야 할 역할은 계속 바뀌었다고 한다. 전시(戰時)의 사령관처럼 산 시기도 있었고, 평시의 리더로 조금 느슨했던 시기도 있었고, 너무 간절해서 모든 일에 에너지를 쏟아부은 시기도, 어딘가 빠져 있던 시기도 있었다. 오락가락했다는 것이다. 더 중요한 건, 그때 자신이 맡아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인지하는 것에서 시작인데 — "보통 그걸 하기가 너무 힘들다."
책에서 그는 주도권을 잃었던 순간 무척 불행했다고 적었다. 진행자는 그것을 '내가 고른 모자가 아니었다'는 뜻으로 받는다. 그는 맞다고 답한다. 외부 환경에 떠밀려 모자를 선택하거나, 심지어 떠밀린 줄도 모르고 '이건 내가 선택한 거야'라고 착각하며 쓴 적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빨간 약을 먹고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하고 정신이 든다. 압박이 세고 상황이 속도감 있게 흘러가면 그 인지를 자꾸 놓치는 게 자신의 단점이라고 그는 말한다.
05끝을 함께 걸어 준 세 사람 — 1년이라는 시한
빨간 약을 먹고 정리를 결심한 뒤, 제일 처음 한 일은 세 사람에게 부탁한 것이었다고 한다. 오래 함께 일한 동료들(책에는 소리, 소위, 광종으로 등장한다)을 1대 1로 따로 만나, "내가 이런 결심을 했고, 최대 1년 동안 이 일을 할 거고, 그때까지만 옆에서 같이 일해 달라"고 부탁했다. 통보가 아니라 거의 애걸복걸에 가까웠다고 그는 표현한다.
왜 1년이었나. 회사의 자금 사정상 현금 흐름을 예측해 보면, 1년이면 곳간이 사실상 0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에 회사가 파산을 하거나, 청산을 하거나, 매각되는 것 — 이 셋 중 하나다. 내가 투자를 더 안 받을 거니까." 그러니 최대 1년의 시한을 두고 이 끝을 함께 걸어 달라는 것이었다. 고맙게도 세 사람 모두 1대 1 자리에서 바로 오케이를 했다. 그게 진짜 천운이었다고, 그분들이 남아 있었기에 1년을 끝까지 해낼 수 있었다고 그는 말한다.
시기 (2021~2023 여름)
스스로 정한 시한
핵심 동료
가장 덤덤하게 받아들인 사람은 의외로 광종이었다고 한다. 원래 함께 시작한 콘텐츠 사업의 리더였고 이후 채용 서비스의 리더도 맡았던 사람이다. 둘은 '좋은 콘텐츠가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미션을 공유했지만, 시장이 너무 작고 힘들어 방향을 틀어야 한다는 데에도 함께 동의했던 사이였다. 그 초심을 공유한 시간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하자"는 말에 가장 빨리 오케이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동료는 나중에 이렇게 전했다고 한다. 1년만 도와 달라고 부탁할 때 박소령의 표정이 진짜 '억울해 보였다'고. 정신 차리고 보니 이걸 열심히 하고 있었다는 게 억울해 보였다는 것이다.
06좋은 일만 나누던 사람이 나쁜 일을 나누기 시작했을 때
한국 사회에서 남에게 밑바닥 모습을 보이기란 정말 어렵다. 가족에게도, 어쩌면 사종(직장)에서 더 어렵다. 보통은 좋은 모습만 보여 주고 싶기 때문이다. 회사를 하다 보면 안 좋은 일이 너무 많은데, 그걸 아는 사람이 회사 안에 아무도 없던 시기가 있었다고 한다. 한 차례 펀드레이징(투자 유치)이 8개월간 지옥 같았는데, 그걸 아는 사람은 회사 바깥의 투자자뿐이었다는 것이다.
그 시기를 통과하고 나서 그의 결심이 바뀌었다. "보통 좋은 일은 나누고 안 좋은 일은 혼자 갖고 있게 되는데 — 좋은 일을 나누고, 나쁜 일도 나눠야겠다. 그래야 내가 버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까운 리더들에게 자신의 진짜 어려운 점, 고통의 밑바닥을 조금씩 꺼내놓기 시작했다. 그걸 수용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반대로 자기 생각도 들려주었다. 제안일 때도, 아이디어일 때도, 고마운 피드백일 때도 있었다. 받아서 실행해 보면 결과가 좋았고, 그렇게 선순환이 돌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런 연결고리가 잘 만들어진 관계들이 결국 끝까지 남았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자신이 한때 에고(자아)가 무척 센 사람이었다고 고백한다. 좋은 모습만 보여 주고 싶고, 약한 모습을 드러내는 게 싫었다. 서울대와 하버드를 거치며 늘 엘리트 코스를 밟아 온 사람이라면 자연스레 에고가 강해지고, 그 에고가 자신을 지키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특히 어려운 펀드레이징을 겪은 뒤로 그 에고가 한 번 확 부서졌다고 한다. "에고고 뭐고 다 필요 없고, 일단 상황이 나아져야 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하니까 — 무조건 나를 내려놓고, 도움 구할 수 있는 건 구하고, 옆에 사람 붙들 수 있으면 붙들어야겠다."
07취약성을 드러내는 리더 — 억지로 입은 옷의 무게
그는 리더의 태도에 관한 통념 하나를 의심한다. 대표는 늘 자신만만하고 카리스마 있게 "다 잘될 거야, 우리 계획대로 갈 거야"라고 말해야 한다는 통념이다. 정말 항상 그래야만 할까. 그가 떠올린 건 20년쯤 전 첫 직장에서 만난 어느 높은 시니어다. 사내 워크숍 자리에서 그는 '벌너러빌리티(vulnerability·취약성)'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다고 한다. 검색해 봤을 정도였다.
그 시니어는 평생 좋은 리더, 완벽한 리더, 성공하는 커리어를 좇아 왔지만 요즘은 취약성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고 했다. 리더가 자신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게 오히려 좋을 때도 있는 것 같다고. 바깥에서 보기엔 너무 완벽한 사람이 자기 입으로 자신의 약한 곳, 가족의 실패 같은 이야기를 꺼내는 모습이 박소령에게는 "와, 멋있다"는 느낌으로 남았다. 그게 그가 본받고 싶었던 리더의 태도였다.
그래서 그는 조언한다. "나만 믿고 따라와" 하는 모습이 편한 사람은 그걸 입고 쭉쭉 달리면 된다. 다만 그래야 할 것 같아서 억지로 그 옷을 입고 있는 거라면, 그때부터는 버텨야 하는 일이 된다는 것이다. "정말 내가 이걸 원해서 하는 건지, 아니면 해야 할 것 같아서 하는 건지 한 번 고민해 보면 좋겠다." 그러면서 현실적인 장치도 권한다. 털어놓을 수 있는 조언자(컨피던트)를 몇 명 두거나, 아예 정신과 의사나 심리 상담사를 두라는 것이다. 모든 압력이 다 들어오는 자리이니, 그 압력을 뺄 사람이 필요하다고. 실제로 미국에서는 투자받은 대표에게 심리 상담을 붙이는 관행이 있다는데, 그는 그걸 아주 좋게 본다.
08운, 버퍼, 그리고 다시 만들고 싶은 판
그가 최근 인상 깊게 읽은 책으로 '어떤 일은 그냥 벌어진다'는 취지의 책을 든다. 그 책 말미에는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이야기가 나온다고 한다. 원래 1순위 표적 도시가 따로 있었는데, 그 도시를 20년 전에 다녀와 너무 좋았던 당시 미국 전쟁부 장관이 "그 아름다운 곳은 절대 안 된다"고 끝까지 반대해 2순위였던 히로시마로 갔고, 3순위 도시는 그날 구름이 껴서 결국 4순위였던 나가사키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우연과 우연이 겹쳐 두 도시는 불행해졌고, 두 도시는 살았다."
그 책이 하려는 말은 이렇다고 한다. 세상의 너무 많은 일이 통제할 수 없는 우연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니 현대 사회가 떠받드는 최적화·효율·생산성으로 인생을 빡빡하게 채워 놓으면, 운이 닥쳤을 때 대응할 수가 없다. 조금은 느슨하게, 약간의 낭비를 남기며 살아야 외부에서 무언가 들이닥쳤을 때 버틸 '버퍼(완충 공간)'가 생긴다는 것이다. 생산성 최적화를 좋아하던 그에게 이 말은 크게 다가왔다. 앞으로 무엇을 할지 잘 모르겠지만, 조금 느슨하게 열어 두고 받아들이겠다고 그는 말한다.
지금 그는 안식년을 보내고 있다. 한 책방 대표가 "내면의 압력(내압)이 충분히 차오를 때까지 그냥 좀 쉬어라"라고 해 준 말이 큰 위로가 됐다고 한다. 사업은 언젠가 다시 할 거라고 그는 말한다. 다만 이유는 단 하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들하고만 하고 싶어서"다. 지난 10년의 반면교사인 셈이다. 그러려면 자기만의 '판'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고, 그 판의 뿌리는 아마 또 콘텐츠일 거라고 한다 — 이번엔 텍스트에 한정하지 않고, 애니메이션이든 소설이든 영상이든 포맷을 다 열어 둔 채로.
성공과 실패의 정의를 묻자 그는 장병규 의장의 《스타트업 한국》 한 구절을 든다. 스타트업의 성공과 실패는 기본적으로 창업가의 마음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남들이 보기에 대박이어도 창업가 마음에서 실패면 실패고, 남들이 망했다고 해도 창업가 마음에 성공이면 성공이라는. "끝까지, 가장 마지막까지 책임지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이 책이 자신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자기가 쉽게 빠지는 함정들을 다 기록해 둔 '오답 노트'이자 다음 의사결정 때 펼쳐 볼 '체크리스트'라고 그는 말한다.
박소령의 '빨간 약'은 오래 쓰고 다니던 안경을 어느 날 문득 벗어 본 순간과 같다. 안경에 너무 익숙해지면 그 너머의 세상이 원래 그런 줄 안다. 그런데 한 번 벗어 보면 "내가 이걸 끼고 뭘 보고 있었지?" 하고 정신이 든다. 그가 한 일은 안경을 부순 게 아니라, 잠깐 벗고 자기 눈으로 다시 본 것이다.
그가 끝을 준비한 방식은 가뭄에 곳간을 비우는 농부를 닮았다. 회사 곳간이 1년 뒤면 바닥난다는 걸 알았기에, 더 빌리지 않고 1년이라는 시한을 정한 뒤 곁에 남아 줄 세 사람과 마지막 수확까지 함께 걸었다. 끝을 외면하지 않고 끝의 날짜를 스스로 적어 둔 사람의 침착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