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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축사 읽기 · 인생

한 포인트에 불과하다 — 페더러가 다트머스에서 남긴 말

테니스 코트를 떠난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가 다트머스(Dartmouth) 졸업생들 앞에 섰다. 그는 우승 트로피 대신 세 가지 패배의 기술을 꺼낸다. 노력 없이 이긴 적이 없었다는 고백, 거의 다 이겼지만 포인트는 반반이었다는 통계, 그리고 코트는 인생보다 작다는 깨달음에 관하여.

2026년 6월 14일

그는 대학에 가 본 적이 없다. 열여섯 살에 학교를 떠나 테니스에 전부를 걸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졸업 가운을 입은 수천 명 앞에서 그가 할 수 있는 농담은 정해져 있다. "나도 최근에 졸업했습니다. 테니스를 졸업했죠." 사람들은 그것을 은퇴라고 부른다. 페더러는 그 단어를 싫어한다. "은퇴라니, 끔찍한 말이에요. 대학을 은퇴했다고는 말하지 않잖아요." 큰 일을 하나 끝내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중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 다음이 무엇인지는 그도 아직 모른다. 그리고 그는 졸업생들에게 말한다. 몰라도 괜찮다.

먼저 정리 화자는 로저 페더러다. 스위스 출신의 은퇴한 테니스 선수로, 그랜드슬램 단식에서 20회 우승했다. 2022년 프로 무대를 떠났고, 2024년 미국 다트머스 대학 졸업식에서 명예 학위를 받으며 축사를 했다. 본문의 인용은 모두 이 축사에서 그가 직접 한 말을 옮긴 것이다.

01"노력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라는 신화

페더러는 평생 한 단어를 따라다니게 했다. Effortless — 애쓰지 않는 듯한, 힘들이지 않는 듯한 플레이. 대개는 칭찬이었지만, 그는 그 말이 거슬렸다고 한다. "땀 한 방울 안 흘린다"거나 "저 친구 정말 노력하는 게 맞나"라는 말을 들을 때면 특히 그랬다. 진실은 정반대였다. "쉬워 보이게 만들려고 저는 아주 열심히 일해야 했습니다." 그는 한참 동안 징징대고, 욕하고, 라켓을 집어던지고 나서야 평정심을 배웠다고 털어놓는다.

각성은 일찍 찾아왔다. 이탈리아 오픈에서 한 상대가 공개적으로 그의 정신력을 의심했다. "로저는 처음 두 시간 동안은 우승 후보일 겁니다. 그 다음부터는 제가 우승 후보죠." 처음엔 무슨 말인지 어리둥절했지만, 곧 뜻을 알아차렸다. 처음 두 시간은 누구나 잘 친다. 몸이 가볍고 빠르고 머리가 맑으니까. 문제는 그 다음이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마음이 흐트러지고, 규율이 무너지는 순간. 부모도 코치도, 이제는 라이벌까지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그는 그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한다. 덕분에 더 독하게 훈련하게 됐기 때문이다.

그가 "노력 없이 이긴다"는 평판을 얻은 데는 이유가 있다. 대회장에서의 워밍업이 너무 느긋해 보였던 탓이다. 정작 진짜 훈련은 아무도 보지 않는 대회 전에 끝나 있었다. 그는 졸업생들에게 묻는다. 동급생들이 밤을 새우는 당신과 달리 별 노력 없이 A 학점을 쓸어 담는 것처럼 보였던 적이 있느냐고. 카페인에 절거나 도서관 구석에서 남몰래 울던 그 밤들. 페더러의 답은 단호하다. "노력 없이 되는 것은 신화입니다. 저는 재능만으로 여기 온 게 아니에요. 상대보다 더 일해서 온 겁니다."

02재능이라는 단어의 넓은 정의

자기 자신을 믿는 일에 대해서도 그는 한 가지 조건을 단다. "자신을 믿어라"는 말은 좋지만, 그 믿음은 벌어서 얻어야 한다(earned)는 것이다. 그의 자기 확신이 진짜로 작동하기 시작한 순간은 2003년, 세계 최강 여덟 명만 오르는 투어 파이널스에서였다. 그는 평소 존경하던 선수들을 이기되, 그들의 강점을 정면으로 노렸다. 예전 같았으면 상대의 강한 포핸드를 피해 백핸드로 돌렸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엔 강한 포핸드를 향해 공격했다. 베이스라이너는 베이스라인에서, 공격수는 공격으로, 네트 플레이어는 네트에서 꺾으려 했다.

왜 그런 모험을 했을까. 무기가 하나뿐이면 그것이 망가졌을 때 끝이지만, 무기고가 가득하면 하나가 부서져도 다른 것이 남는다. 경기가 술술 풀릴 때 이기는 건 상대적으로 쉽다. 진짜 자부심은 다른 날에 온다. 등이 아프고 무릎이 아프고, 조금 아프거나 겁이 나는데도 끝내 이겨 내는 날. "그런 승리야말로 가장 자랑스러운 승리입니다. 최상의 상태가 아닐 때, 특히 그럴 때도 이길 수 있다는 걸 증명하니까요."

그래서 그는 재능이라는 단어를 다시 정의한다. 재능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고, 다만 재능에는 넓은 정의가 있다고. 빠른 라켓 헤드 스피드로 때리는 멋진 포핸드만 재능이 아니다. 규율도 재능이고, 인내도, 자신을 믿는 것도 재능이다. 과정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것, 자기 삶과 자신을 다스리는 것도 재능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그걸 타고나지만, 결국 누구나 갈고닦아야 한다. 그리고 그는 졸업생들에게 짓궂은 조언을 남긴다. 다트머스를 나왔으니 모든 게 쉬울 거라고 사람들이 믿거든, "당신만 그렇게 믿지 않는다면, 그들은 믿게 두라"고.

03성당 같은 코트에서의 패배 — 2008년 윔블던

두 번째 교훈의 이름은 단순하다. "한 포인트에 불과하다(It's only a point)." 가능하다고 생각한 것보다 더 열심히 하고도 질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자신도 여러 번 그랬다고. 테니스는 잔인하다. 모든 대회는 같은 방식으로 끝난다. 한 선수만 트로피를 들고, 나머지 전부는 비행기에 올라 창밖을 보며 '대체 그 샷을 왜 놓쳤을까' 생각한다. 그는 졸업식장에 빗댄다. "오늘 단 한 명만 학위를 받는다고 상상해 보세요. 올해의 졸업생 축하합니다. 나머지 천 명은 다음 기회에."

그에게 가장 쓰라린 패배 중 하나는 2008년 윔블던(Wimbledon) 결승, 라파엘 나달(Rafael Nadal)과의 경기였다. 윔블던에서 이긴다는 것은 그에게 전부였다. 센터 코트, 즉 테니스의 성당을 밟고 챔피언으로 경기를 마칠 때 느끼는 그 순간의 무게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고 그는 말한다. 그해 그는 6연패(連覇)라는 기록을 향해, 역사를 향해 치고 있었다.

경기는 역대 최고로 꼽히는 다섯 시간의 사투였다. 비로 멈췄고 해가 졌으며, 마지막엔 잔디 위의 흰 선조차 잘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웠다. 사람들은 그 어두운 마지막 순간에 주목하지만, 페더러는 다르게 기억한다. "돌이켜보면 저는 경기의 맨 첫 포인트에서 진 것 같습니다." 네트 너머로, 몇 주 전 프랑스 오픈에서 자신을 완파한 상대가 보였고, '이 친구가 나보다 더 간절하구나, 드디어 내 약점을 알아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날 그는 윔블던을 잃었고, 세계 1위 자리도 잃었다. 사람들은 "한 시대가 저무는가" 수군댔다. 그러나 그가 할 일은 분명했다. 계속 일하고, 계속 겨루는 것.

04거의 다 이겼지만, 포인트는 반반이었다

그래서 그는 평생을 지탱한 통계를 꺼낸다. 테니스에서 완벽이란 불가능하다고 말하면서. 커리어 단식 1,526경기에서 그는 거의 80%를 이겼다. 그렇다면 그 경기들에서 그가 딴 포인트의 비율은 얼마였을까. 답은 54%. 거의 다 이긴 선수조차, 자신이 친 포인트의 절반을 겨우 넘겨 따냈을 뿐이다.

로저 페더러의 커리어 통계 막대그래프 — 경기 승률은 약 80%지만 같은 경기들에서 딴 포인트 비율은 54%에 불과해, 이겨도 포인트의 절반 가까이는 잃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페더러가 축사에서 직접 인용한 두 비율. 경기는 거의 다 이겨도, 포인트는 절반을 겨우 넘긴다.

평균적으로 두 포인트 중 하나를 잃는다면, 한 샷 한 샷에 매달리지 않는 법을 배우게 된다. 더블폴트를 했다. 한 포인트에 불과하다. 네트로 나갔다가 패싱당했다. 한 포인트에 불과하다. ESPN 톱10에 오를 만한 환상적인 스매시조차, 그저 한 포인트일 뿐이다. 그가 이 말을 꺼낸 이유는 분명하다. 포인트를 치는 동안에는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어야 한다. 하지만 끝난 포인트는 끝난 것이다. 그 마음가짐이 다음 포인트에, 그 다음 포인트에 온전히 몰입할 자유를 준다.

"부정적인 에너지는 낭비된 에너지입니다. 힘든 순간을 이겨 내는 데 능숙해지는 것, 제게는 그것이 챔피언의 표식입니다."

인생에서 어떤 게임을 하든 때로는 진다고 그는 말한다. 한 포인트를, 한 경기를, 한 시즌을, 한 직장을. 오르내림이 많은 롤러코스터다. 세계 최고들이 최고인 이유는 모든 포인트를 이겨서가 아니라, 지고 또 지면서도 그것을 다루는 법을 익혔기 때문이다. "받아들이고, 필요하면 울어 버리고, 그런 다음 억지로라도 웃으세요. 그리고 넘어가는 겁니다. 끈질기게, 적응하고, 성장하고, 더 열심히, 더 영리하게."

05코트는 인생보다 작다

세 번째 교훈은 공간의 크기에서 출발한다. 테니스 코트는 작다. 단식 기준으로 정확히 195제곱미터 남짓, 기숙사 방 서너 개 크기다. 페더러는 그 작은 공간에서 수없이 일하고 배우고 달렸다. 그러나 세상은 그보다 훨씬 크다. "테니스는 제게 세계를 보여 줄 수 있었지만, 테니스가 세계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막 시작했을 무렵의 그는 테니스 말고는 아무것도 준비돼 있지 않았다. 그래도 때로는 일단 모험을 걸고 나서 답을 찾아 나가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자선(philanthropy)을 좁게 보지 말라고 권한다. 비영리 단체를 세우거나 돈을 기부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기 생각과 시간과 에너지를 자기보다 큰 사명에 보태는 일 전부가 자선이라는 것이다. 다트머스에서 학생들은 전공 하나를 깊게 파면서도 넓게 배웠다고 그는 짚는다. 공학도가 미술사를 듣고, 운동선수가 아카펠라를 부르고, 컴퓨터 과학도가 독일어를 배웠다. 그는 다트머스의 전설적인 풋볼 코치 버디 스티븐스(Buddy Stevens)가 학부모에게 했다는 말을 인용한다. "댁의 아드님은 풋볼할 때는 훌륭한 선수, 공부할 때는 훌륭한 학생, 그리고 언제나 훌륭한 사람이 될 겁니다."

06네트 한쪽에 혼자 서 있어도, 팀 스포츠다

테니스는 그에게 수많은 기억을 줬지만, 코트 밖의 경험도 그만큼 무겁게 안고 간다고 그는 말한다. 가 본 곳들, 베풀 수 있게 해 준 영향력, 그리고 무엇보다 만난 사람들. "테니스도 인생처럼 팀 스포츠입니다. 네트 한쪽에 혼자 서 있는 것 같아도, 당신의 성공은 팀에 달려 있어요. 코치, 동료, 심지어 라이벌까지." 부모와 가족은 졸업생들을 이 자리에 세우려 희생했고, 친구들은 더 나은 자신이 되도록 밀어 줬다. 그는 졸업생들에게 양옆 사람에게 돌아보라고 청한다. 처음 만난 사이일지라도, 적어도 오늘 이 기억만큼은 함께 나눈 것이라고.

07당신은 '전직 무엇'이 아니다

페더러는 테니스를 떠나며 '전직 테니스 선수'가 됐다. 하지만 졸업생들은 다르다고 그는 말한다. "여러분은 전직 그 무엇도 아닙니다. 여러분은 미래의 기록 경신자이고, 세계 여행자이고, 미래의 자원봉사자이자 자선가이며, 미래의 승자이고 미래의 리더입니다." 익숙한 세계를 뒤로하고 새로운 세계를 찾는 일이, 졸업의 반대편에서 보면 믿을 수 없을 만큼 깊고 신나는 일이라고 그는 졸업식 너머에서 온 사람처럼 증언한다.

그는 마지막으로 라켓을 빌려 포핸드 그립을 시범 보인다. 이스턴 그립으로 너클을 약간 벌리되 너무 꽉 쥐지 말 것, 포핸드에서 백핸드로 바꾸는 건 쉬워야 하고, 모든 것은 발놀림에서 시작된다는 것. 그리고 한마디 덧붙인다. "이건 비유가 아닙니다. 그냥 좋은 기술이에요." 작별 인사는 부탁의 형식을 띤다. 20년이나 30년 뒤, 백발이 되든 머리가 다 빠지든, 길에서 자신을 보거든 멈춰 세워 "저는 그날 잔디밭에 있었어요"라고 말해 달라고.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당부는 교훈의 목록보다 짧고 분명하다.

"어떤 게임을 택하든 최선을 다하세요. 과감히 치고, 자유롭게 플레이하고, 모든 것을 시도하세요.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에게 친절하세요."

비유

페더러의 "한 포인트에 불과하다"는 말은 볼링장의 점수판과 닮았다. 한 프레임에서 거터에 빠졌다고 점수판을 노려보며 분을 삭이는 사람은, 정작 다음 공을 망친다. 점수는 열 프레임이 다 끝나야 매겨진다. 거의 다 이긴 선수조차 포인트의 절반 가까이는 잃었다는 그의 통계는, 한 프레임의 실패가 한 게임의 패배가 아니라는 사실을 숫자로 보여 준다.

그가 말한 "노력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물 위에 떠 있는 백조와 같다. 수면 위에서는 미끄러지듯 우아하지만, 물밑에서는 두 발이 쉴 새 없이 물장구를 친다. 사람들은 매끄러운 수면만 보고 "애쓰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코트 밖 아무도 보지 않는 시간에 그의 발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