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 읽기 · 심리
미루는 사람의 머릿속 — 원숭이가 핸들을 잡을 때
왜 우리는 마감 사흘 전이 되어서야 일을 시작할까. 팀 어번은 자기 뇌 안에 사는 세 등장인물로 그 비밀을 설명한다. 미래를 그리는 이성적 결정자, 오직 지금만 사는 즉각적 만족 원숭이, 그리고 마감이 닥쳐야 깨어나는 공황 괴물. 진짜 무서운 이야기는 그다음에 온다 — 마감이 없는 일들에 관한 것이다.
마감 사흘 전, 단 한 글자도 쓰지 못한 채 잠에서 깬 사람이 있다. 1년을 들여야 하는 90쪽짜리 졸업 논문이었다. 그는 72시간 동안 90쪽을 썼다. 사람이 해서는 안 된다는 이틀 연속 밤샘을 했고, 캠퍼스를 가로질러 달려가 마감 직전에 논문을 제출했다. 팀 어번(Tim Urban)은 이 이야기로 강연을 연다. 그리고 곧장 솔직하게 덧붙인다. 그 논문은 "아주, 아주 형편없었다." 청중이 잠깐이라도 "이 사람 대단하구나" 하고 믿어 주는 그 순간을 그저 즐기고 싶었을 뿐이라고.
01두 개의 뇌 — 한쪽에만 사는 원숭이
어번은 자기 뇌가 다른 사람의 뇌와 정말 다른지 궁금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농담 섞인 비교를 꺼낸다. 미루지 않는 사람의 뇌에는 이성적 결정자(Rational Decision-Maker) 하나가 들어 있다. 그런데 미루는 사람의 뇌에는 그 옆에 한 마리가 더 산다. 즉각적 만족 원숭이(Instant Gratification Monkey)다.
이성적 결정자만 있을 때는 모든 게 괜찮다. 문제는 원숭이가 깨어 있을 때 시작된다. 이성적 결정자가 "이제 생산적인 일을 하자"는 합리적 결정을 내리면, 원숭이는 그 계획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운전대를 가로챈다. 원숭이가 핸들을 잡은 순간, 일정표는 이렇게 채워진다. 갑자기 떠오른 옛날 스캔들의 위키백과 문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10분 전과 달라진 게 있나 싶어 냉장고를 열어 보고, 물리학자 강연으로 시작해 어느 연예인 어머니 인터뷰로 끝나는 유튜브 미로 속을 헤맨다. 그러고 나면 어번의 표현대로 "오늘은 일할 자리가 일정에 안 남는다."
02원숭이는 왜 이러는가 — 오직 쉬움과 재미
어번이 짚는 원숭이의 정체는 명확하다. 원숭이는 철저히 현재에만 산다. 과거의 기억이 없고, 미래의 지식이 없다. 그가 신경 쓰는 것은 딱 두 가지, '쉬움'과 '재미'뿐이다.
동물의 세계에서 이건 전혀 문제가 아니다. 어번은 말한다. "개라면, 평생 쉽고 재미있는 일만 하며 살아도 엄청난 성공이다." 그리고 원숭이에게는 인간도 그저 또 하나의 동물 종(種)일 뿐이다. 잘 자고, 잘 먹고, 다음 세대로 번식하면 그만이다. 부족 시대였다면 그럭저럭 통했을 전략이다. 문제는 우리가 더 이상 부족 시대에 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발달한 문명 속에 있고, 원숭이는 문명이 뭔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 뇌에는 다른 동물은 못 하는 일을 가능하게 하는 또 한 사람, 이성적 결정자가 있다. 그는 미래를 그릴 줄 알고, 큰 그림을 보고, 장기 계획을 세운다. 그는 그 모든 것을 고려해서 "지금 이 순간 가장 말이 되는 일"을 하기를 바란다. 가끔은 쉽고 재미있는 일을 하는 게 말이 될 때도 있다. 저녁을 먹거나, 잠자리에 들거나, 정당한 여가를 즐길 때다. 이성적 결정자와 원숭이의 바람이 겹치는 순간이다. 그러나 큰 그림을 위해 더 힘들고 덜 즐거운 일을 해야 하는 때, 둘은 충돌한다. 미루는 사람에게 이 충돌은 늘 같은 방식으로 끝난다.
03어두운 놀이터 — 즐겁지 않은 즐거움
충돌에서 원숭이가 이기면, 미루는 사람은 어번이 어두운 놀이터(Dark Playground)라 부르는 곳에 오래 머문다. 여가 활동이, 여가 활동을 해서는 안 되는 시간에 벌어지는 자리다.
"어두운 놀이터에서 누리는 재미는 사실 재미가 아니다. 그것은 전혀 떳떳하지 못한 재미이고, 공기에는 죄책감과 두려움, 불안, 자기혐오가 가득 차 있다."
모든 미루는 사람이 너무도 잘 아는 장소라고 그는 말한다. 노는데도 마음 편할 수 없는 그 묘한 시간. 그렇다면 미루는 사람은 어떻게 이 놀이터를 빠져나와, 덜 즐겁지만 정말 중요한 일이 벌어지는 자리로 건너갈 수 있을까. 원숭이가 핸들을 쥐고 있는데 말이다.
04공황 괴물 — 원숭이가 유일하게 무서워하는 것
어번은 미루는 사람에게도 수호천사가 있다고 한다. 가장 어두운 순간에 늘 내려다보며 지켜 주는 존재. 다만 그 천사의 이름이 좀 험하다. 공황 괴물(Panic Monster)이다.
공황 괴물은 평소엔 잠들어 있다. 그러나 마감이 너무 가까워지거나, 사람들 앞에서 망신당할 위험, 경력의 재앙, 그 밖의 무서운 결과가 코앞에 닥치면 갑자기 깨어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공황 괴물은 원숭이가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존재다.
어번은 이 괴물이 자기 삶에서 아주 최근에 얼마나 생생해졌는지 털어놓는다. 바로 이 TED 강연이다. 6개월 전 강연 제안을 받았을 때, 그는 당연히 수락했다. 하지만 신이 난 와중에도 이성적 결정자는 자꾸 다른 소리를 했다. "우리가 방금 뭘 받아들였는지 알고 있나? 지금 당장 앉아서 이걸 준비해야 해." 그러자 원숭이가 말했다. "전적으로 동의해. 그런데 일단 구글 어스를 열어서 인도 남쪽 끝으로 줌인한 다음, 지면 위 60미터쯤에서 두 시간 반 동안 스크롤을 올려 인도를 위에서 아래로 한번 훑어보자. 인도가 어떤 느낌인지 더 잘 알 수 있게." 그날 그가 한 일이 정확히 그것이었다.
6개월이 4개월이 되고, 2개월, 1개월이 되었다. 어느 날 강연자 명단이 공개된 웹사이트를 열었더니 자기 얼굴이 자신을 마주 보고 있었다. 누가 깨어났을까. 공황 괴물이 정신을 잃기 시작했고, 몇 초 뒤 시스템 전체가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리고 공황 괴물을 무서워하는 원숭이는, 쾅, 나무 위로 도망쳤다. 그제야 마침내 이성적 결정자가 운전대를 잡았고, 어번은 강연 준비를 시작할 수 있었다.
세 등장인물이 하나의 운전대를 다툰다. 마감이 있느냐 없느냐가 미루기의 결말을 가른다.
05가벼운 글, 무거운 답장 — 무언가 어긋나 있었다
어번이 이 세 등장인물 이야기를 블로그에 올렸을 때, 그는 반응에 놀랐다. 전 세계에서 온갖 사람들이 보낸 이메일이 문자 그대로 수천 통 쏟아졌다. 간호사, 은행원, 화가, 엔지니어, 그리고 아주아주 많은 박사 과정 학생들. 모두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저도 이 문제가 있어요."
그런데 어번을 멈칫하게 한 것은 따로 있었다. 글의 가벼운 어조와 답장의 무거움 사이의 대비였다. 사람들은 미루기가 자기 삶에 무슨 짓을 했는지, 이 원숭이가 자신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를 격렬한 좌절감으로 써 내려가고 있었다. 어번은 의아했다. 미루는 사람의 시스템이 어쨌든 작동한다면 — 결국 마감 직전엔 일이 되니까 — 왜 이 사람들은 이토록 어두운 자리에 있는 걸까.
06두 종류의 미루기 — 깨워 줄 마감이 없을 때
답은 미루기에 두 종류가 있다는 데 있었다. 어번이 그날까지 든 예시들 — 논문, 과제, 강연 — 에는 모두 마감이 있었다. 마감이 있을 때 미루기의 피해는 단기로 갇힌다. 공황 괴물이 끼어들어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감이 없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두 번째 종류의 미루기가 있다.
스스로 시작해야 하는 일을 떠올려 보라. 예술이든, 창업이든, 처음에는 마감이 없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직접 나가서 힘든 일을 해내 추진력을 얻기 전까지는 아무도 당신을 기다리지 않는다. 경력 바깥에도 마감 없는 중요한 일들이 가득하다. 가족을 만나는 일, 운동하고 건강을 챙기는 일, 관계를 가꾸는 일, 또는 어긋난 관계에서 빠져나오는 일.
여기에 미루는 사람의 함정이 있다. 어려운 일을 해내는 유일한 장치가 공황 괴물뿐이라면, 이 마감 없는 상황들에서는 공황 괴물이 나타나지 않는다. 깨어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루기의 피해는 갇히지 않는다. 그냥 바깥으로, 끝없이 번져 나간다.
"이 장기적 미루기는 더 눈에 띄지 않고, 더 적게 이야기된다. 보통 조용히, 사적으로 견뎌지며, 엄청난 장기적 불행과 후회의 근원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메일을 보낸 것이라고 어번은 깨닫는다. 그들이 어두운 자리에 있는 까닭은 어떤 프로젝트를 벼락치기 중이어서가 아니다. 장기적 미루기가 그들을 자기 삶의 구경꾼처럼 느끼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좌절의 정체는 꿈을 이루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꿈을 쫓기 시작조차 못 한 것이었다.
0790년치 상자 — 오늘 시작해야 할 일
이 이메일들을 읽으며 어번은 작은 깨달음에 이른다. "미루지 않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마감과 건강한 관계를 맺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원숭이의 가장 교묘한 술수는 마감이 없을 때 나온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그는 당부한다.
강연의 마지막, 어번은 한 장의 표를 꺼낸다. 인생 달력(Life Calendar)이다. 90년 인생의 한 주(週)마다 상자 하나. 그렇게 많은 상자가 아니다. 우리가 이미 꽤 많이 써 버렸으니 더욱 그렇다.
그는 우리 모두가 그 달력을 길고 진지하게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정말로 미루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누구나 인생에서 무언가를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즉각적 만족 원숭이를 늘 의식하는 것, 그건 우리 모두의 몫이다. 그리고 상자가 그렇게 많이 남지 않았으니, 아마도 그 일은 오늘 시작하는 게 좋을 것이다. 어번은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 자신을 향해 농담을 던지며 강연을 닫는다. "음, 오늘은 아닐지도 몰라요. 그래도… 곧."
우리 머릿속을 한 대의 자동차라고 생각해 보세요. 운전석에는 길을 아는 어른(이성적 결정자)이 앉아야 하는데, 뒷자리에 탄 장난꾸러기 원숭이가 자꾸 핸들을 가로챕니다. 원숭이는 내비게이션도 시계도 볼 줄 모르고, 그저 눈앞의 재밌어 보이는 골목으로만 차를 몹니다. 차가 영영 산으로 갈 것 같을 때, 트렁크에서 무서운 경비견(공황 괴물)이 짖기 시작합니다. 원숭이는 그 개만큼은 무서워해서 얼른 핸들을 놓죠. 그래서 마감이라는 경비견이 있는 일은 늦게라도 끝납니다.
문제는 경비견이 짖지 않는 길입니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 건강, 꿈 같은 일에는 마감이라는 경비견이 없어요. 그러면 원숭이는 마음 놓고 평생 한가한 골목만 돕니다. 그렇게 90개씩 묶인 인생 달력의 상자가 한 칸씩 조용히 채워지는 동안, 우리는 정작 가고 싶던 목적지 근처에는 가 보지도 못한 채 차창 밖 구경만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