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읽기 · 창업
지는 게임을 하지 않는다 — 토스 공동창업자 이태양이 건 것
입사가 확정된 꿈의 회사를 한 달 만에 버렸다. 그리고 4년의 실패 끝에 송금을 손으로 직접 보내 주는 어설픈 서비스에서 토스가 태어났다. 가진 게 없어 뭐든 걸 수 있었다는 한 사람이, 결국 '무엇'보다 '누가'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기까지.
이야기는 한 통의 권유에서 시작된다. 2011년 겨울, 대학 졸업을 앞둔 그는 NHN(지금의 네이버) 입사가 확정된 상태였다. 한국에서 누구나 가고 싶어 하던 회사 중 하나. 그런데 선배의 소개로 한 달만 개발을 도와 달라며 만난 사람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입사 첫날, 그는 출근하지 않았다. 부모님 집에는 회사가 보낸 축하 꽃다발과 책들이 도착해 있었지만, 그는 결국 그 회사로 가지 않았다.
01가진 게 없어서 걸 수 있었다
그가 한 달 만에 안정된 미래를 포기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고 한다. 하나는 그 사람이 만들려는 서비스가 세상에 주려는 변화의 크기였고, 다른 하나는 자기가 하던 일을 포기해 가며 그 일에 뛰어든 그 사람의 진심이었다. "이 사람은 진짜 큰일을 결국 해내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이루려는 일에 내가 좋은 칼이, 좋은 무기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스물여덟의 마음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그런데 그는 자기 선택을 대단한 결단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반대다. "나는 이룰 게 없었다. 대기업에 들어가는 게 나한테는 1순위 선택지가 아니었다. 내가 가진 패 중에서 내가 원하는 걸 이루는 데 가장 유효한 패를 고른 것뿐이다. 그게 창업이었다." 잃을 게 많은 사람일수록 창업은 더 큰 위험이 된다. 그는 잃을 게 없었기에 무언가에 온전히 달려들 수 있었다.
"무엇을 할 건지보다, 누가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결국 무엇을 할지 정하는 것도, 어떻게 할지 정하는 것도 사람이니까."
02가격표를 보지 않고 주문하는 꿈
그의 출발점에는 개인적인 결핍이 있다. 어렸을 때 그의 유일한 목표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이었다. 거창한 이유가 아니었다. "식당에 가서 음식을 고를 때 가격을 신경 쓰지 않고 주문하는 게 꿈이었다."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시킬 때 탕수육을 추가할지 말지 고민해야 했던, 그런 평범한 형편이었다고 그는 담담히 말한다.
평범하게 자라서는 그 꿈에 닿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조금 특별한 경험을 쌓아야겠다고 마음먹었고, 그 첫 실행이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자퇴였다. 영어도 못 하면서 미국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지원해 학교를 그만두고 1년을 떠났다. 놀라운 건 부모의 반응이었다. "왜 그만두느냐고도, 뭘 할 거냐고도 묻지 않으셨다." 훗날 자녀를 키우며 그는 깨닫는다. 그건 어릴 때부터 자신이 받아 온 엄청난 신뢰였고, 그래서 자기 결정을 스스로 내릴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031평짜리 책상, 그리고 4년의 실패
토스가 단숨에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면 오해다. 정식 출시까지 4년이 걸렸고, 그 사이 여러 서비스가 실패했다. 사람들은 오프라인에서 진짜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믿으며 만든 소셜 서비스 '올라블라', 그리고 더 나은 의사결정을 돕겠다는 투표 솔루션. 두 서비스의 공통된 패인을 그는 이렇게 짚는다. "둘 다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걸 세상 사람들에게 하게 만들려 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게 아니었다." 크게 실패하고 나서야 그들은 극단적으로 방향을 틀었다. 우리가 원하는 게 아니라, 진짜 사람들이 원하는 걸 만들어야 한다고.
당시 사무실은 7평짜리 오피스텔이었다. 책상을 빼곡히 넣으면 의자끼리 닿을 만큼 붙어 앉았고, 최대 일곱 명까지 들어찼다. 1인당 딱 1평. 서울에 집이 없던 그는 사람들이 퇴근하면 의자를 밀어내고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잤다. 그래서 동료가 늦게까지 남으면 그는 잠을 잘 수 없었다. 반강제로, 모두가 늦게까지 함께 있었다.
최대 7명 · 1인당 1평
금융 전문가 0명
(2011~2015)
걸린 시간
다섯 명의 창업 멤버 중 금융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 명은 좋은 대기업에 다니다 육아휴직 중 모바일 프로그래밍을 독학해 지원했고, 또 한 명은 인도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며 대학 대신 보안을 혼자 파고든 화이트해커였다. 슈퍼스타들이 모인 팀은 아니었다고 그는 말한다. 다만 한 명 한 명이 일반적이지 않은 경로로 도전해 온 특이한 사람들이었다.
04손으로 보내 준 송금, 그리고 규제의 벽
토스의 시작은 놀랍도록 원시적이었다. 자동화 시스템을 만들기 전, 그들은 송금을 사람 손으로 직접 처리했다. 누군가 송금을 신청하면 직접 만든 웹페이지를 새로고침하며 확인하고, 은행 사이트에 들어가 OTP를 눌러 가며 대신 돈을 보냈다. 두 사람이 서로 잘 때는 다음 날에야 송금이 이뤄지기도 했다. 사용자 입장에선 무척 불편했을, 어떻게 보면 위태로운 회색지대의 서비스였다.
그런데 사람들이 너무 좋아했다. "사람이 몰려서가 아니라, 다시 찾아오는 지표가 너무 좋았다." 그 순간 확신이 왔다고 한다. 그 한 장면을 보지 못했다면 더 잘 만들겠다는 에너지가 없었을 거라고 그는 돌이킨다. 이것이 4년의 실패와 송금 서비스를 가른 결정적 차이였다. 우리가 옳다고 믿은 게 아니라, 세상이 원하고 있다는 걸 두 눈으로 본 것.
곧 가장 큰 벽이 닥쳤다. 다섯 명 남짓한 작은 회사가 남의 계좌에서 돈을 옮기는 일이 적법한지를 두고 서비스 제재가 내려졌고, 서비스를 셧다운해야 했다. 역설적으로, 그 위기가 투자를 부르는 계기가 됐다. 이걸 제대로 시스템으로 만들려면 적지 않은 인프라 비용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규제로 막힌 상황에서 투자자들이 본 건 사업의 가능성이 아니라 사람이었다고 그는 회고한다. 다섯 명 팀에 금융 전문가는 없었으니, "사람 하나 보고 하는 것 말고는 투자할 이유를 찾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규제를 맞추는 데 1년이 걸렸지만, 안 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당연히 해낼 일이라 여기며 그 방향을 계속 밟고 있었기 때문이다.
05토스를 떠난 이유, 그리고 지금
그는 토스를 두 번 떠났다. 2017년 둘째가 태어난 무렵, 가족에게 쌓여 가던 부채감과 회사의 빠른 성장 속도 사이에서 그는 자문했다. "늙어서 병상에 누워 산소호흡기를 차고 무엇을 후회할까. 토스를 더 오래 하지 못한 걸 후회할까, 가족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못한 걸 후회할까." 답은 가족이었다. "토스의 동료는 대체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어도, 가족과 보내는 시간은 대체할 수 없다고 느꼈다." 1년을 쉬고 돌아왔다가, 첫째의 초등학교 입학에 맞춰 2020년 다시 대전으로 내려갔다. 두 번의 퇴사 모두 이유는 가족이었다.
지금 그는 벤처캐피털 베이스 벤처스의 대표다. 자신이 저질렀던 바보 같은 실수들을 다른 사람은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일이다. 그래서 그가 투자에서 가장 보는 것도 결국 사람이다. 시장도, 경쟁사도, 기술도 모두 변수지만, 사람만은 변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엄청나게 많은 변수를 답으로 바꿔 가는 과정에서 변하지 않는 중심이 창업자다. 창업자가 가진 야망의 크기가 결국 모든 걸 정의한다."
그의 개인적인 꿈은 소박하면서도 분명하다. 한국 어딘가에 차도 다니지 않는 거리가 있어, 세상을 바꾸려는 '미친 사람들'이 모여 숙식하며 색다른 생각과 의지를 나누는 공간. 의대가 가장 똑똑한 사람들의 종착지가 되는 대신, 창업이 삶의 한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세상. 좋은 학교도, 사전 네트워크도 없었던 그가, 이제는 더 많은 사람이 그 길을 하나의 선택지로 바라보길 바란다. "내가 무언가를 직접 이루는 기쁨보다, 나보다 훌륭한 사람이 더 훌륭한 걸 이루는 걸 돕는 게 더 큰 행복인 것 같다."
토스의 시작은 식당의 시식 코너와 같았다. 주방 설비도 없이, 요리사가 손님 한 명 한 명에게 직접 한 입씩 떠먹여 주는 식이었다. 비효율적이고 위태로웠지만, 손님들이 자꾸 다시 줄을 서는 걸 본 순간 "이 메뉴는 진짜다"라는 확신이 생겼다. 그 확신이 제대로 된 식당을 짓게 만들었다.
그가 투자에서 사람만 본다는 건, 씨앗을 고르는 농부와 같다. 날씨도 땅도 병충해도 모두 농부가 어쩌지 못하는 변수지만, 좋은 씨앗 하나는 그 모든 변수를 뚫고 끝내 싹을 틔운다. 그래서 그는 밭의 조건보다 씨앗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