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 조직 · 인사
승진의 역설과 AI 시대 리더의 조건
한 영상 강연이 던진 명제가 있다. “실무에서 날아다니던 에이스를 그대로 팀장에 앉히면, 직원들이 힘들어하다 떠난다.” 직관에 어긋나 보이는 이 말은, 사실 지난 반세기의 경영 연구가 거듭 도달한 결론과 같은 곳을 가리킨다. 일을 가장 잘하는 사람과 사람들이 일을 잘하게 만드는 사람은 서로 다른 능력의 소유자이며, 그 둘을 혼동하는 순간 조직은 가장 중요한 자리를 가장 약한 사람으로 채우게 된다.
대부분의 조직은 단순한 가정 위에서 움직인다. 일 잘하는 사람이 관리도 잘하리라는 믿음이다. 본인도, 부하 직원도, 경영자도 같은 가정을 공유한다. 문제는 이 가정이 데이터와 어긋난다는 데 있다.
갤럽(Gallup)이 2015년 발표한 《State of the American Manager》는 한 가지 수치를 제시한다. 팀 몰입도(team engagement) 편차의 70% 이상을 직속 관리자가 설명한다는 것이다. 같은 회사, 같은 급여 체계, 벽에 붙은 같은 미션을 공유하는데도 어떤 팀은 살아 있고 어떤 팀은 무너진다. 그 차이의 대부분이 보상도, 사무실도, 최고경영자(CEO)의 분기 연설도 아닌 ‘직속 관리자 한 사람’으로 귀결된다.
그런데 같은 연구는 또 다른 추정을 덧붙인다. 관리에 높은 재능을 타고난 사람은 10명 중 1명꼴이고, 코칭과 육성을 거치면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추가로 2명꼴이라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대다수 조직이 가장 중요한 자리에 적합도가 검증되지 않은 사람을 앉히고는 몰입도가 오르지 않는다며 의아해한다는 뜻이 된다.
1969년 교육학자 로런스 피터(Laurence Peter)와 레이먼드 헐(Raymond Hull)은 저서 《피터의 원리(The Peter Principle)》에서 반쯤 농담처럼 한 가지 법칙을 제시했다. 조직은 사람을 ‘무능이 드러나는 자리’에 이를 때까지 승진시킨다는 것이다. 유능했기에 승진했고, 승진한 자리에서 무능해진다는 역설이다.
농담 같던 이 명제를 2019년 한 대규모 실증 연구가 확인했다. 앨런 벤슨(Alan Benson)·대니엘 리(Danielle Li)·켈리 슈(Kelly Shue) 연구진은 미국 131개 기업의 영업직 약 4만 명을 분석했다(《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 2019). 결과는 분명했다. 기업은 실적 좋은 영업사원을 체계적으로 관리자로 승진시키지만, 그들이 관리자가 되면 부하 직원의 실적이 오히려 떨어졌다. 승진 직전 자기 매출을 두 배로 끌어올렸던 사람일수록, 그가 맡은 부하의 매출은 약 10% 하락했다.
더 뼈아픈 대목은 따로 있다. 실무 실적보다 관리 성과를 더 잘 예측하는 다른 신호가 분명히 존재하는데도, 기업은 눈앞의 실적을 기준으로 승진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 신호 가운데 하나가 협업 경험이었다. 혼자 성과를 낸 사람보다, 팀 안에서 함께 일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평균적으로 더 나은 관리자가 되었다.
와튼스쿨의 조직심리학자 애덤 그랜트(Adam Grant)는 비슷한 패턴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조직은 ‘아래를 잘 이끄는 사람’이 아니라 ‘위에 잘 보이는 사람’을 승진시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윗선의 눈에 띄게 만드는 능력과 좋은 관리자를 만드는 능력은 같은 능력이 아니다.
비유 · 스트라이커와 감독
골을 잘 넣는 일과 팀이 이기도록 판을 짜는 일은 같은 종목이 아니다. 최고의 골잡이가 곧 명감독이 되는 것은 아니며, 둘은 서로 다른 훈련과 서로 다른 시야를 요구한다. 실무 에이스를 팀장에 앉히는 것은, 득점왕에게 갑자기 감독석을 내주고 같은 활약을 기대하는 것과 같다.
새 팀장이 가장 먼저 빠지는 함정은 답답함이다. “내가 직접 하면 한 시간이면 끝날 일”을 부하가 한나절째 붙들고 있는 모습을 보면, 손이 먼저 나간다. 그러나 팀장이 팀원의 일을 대신하는 순간 팀은 정체된다.
모든 일이 팀장을 거쳐야 진행되면, 팀의 처리량은 팀장 한 사람이 가진 시간에 묶인다. 팀장 자신이 병목(bottleneck)이 되는 것이다. 대가는 두 겹으로 돌아온다. 실무를 떠안느라 정작 팀장 본연의 일 — 우선순위 정하기, 병목 제거, 위기 관리, 방향 제시 — 을 할 시간이 사라진다. 직원이 리더에게 기대하는 1순위가 바로 문제 해결과 위기 관리인데, 팀장이 실무에 매몰될수록 그 역할은 비어 버린다.
비유 · 수도관
팀원 각자가 하나의 수도꼭지다. 팀장이 모든 물을 자기 관으로 한데 모아 다시 내보내려 하면, 아무리 굵은 본관이라도 한 사람이 감당할 유량을 넘지 못한다. 관을 여러 갈래로 나눠 동시에 흐르게 할 때 전체 수량이 늘어난다. 리더의 일은 물을 직접 나르는 것이 아니라, 막힌 관을 뚫고 물길을 트는 것이다.
강연은 좋은 팀장의 세 가지 핵심 역량으로 판단력, 소통, 책임을 꼽는다. 합리적인 정리다. 판단력은 결정하는 힘이다 — 결정하지 않는 것이 가장 나쁜 결정이며, 감이 아니라 데이터를 요청해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소통은 지시를 넘어 ‘왜 해야 하는가’를 전달하는 일이고, 책임은 좋은 결과만이 아니라 나쁜 결과까지 떠안는 자세다.
다만 강연이 인용한 일부 수치 — 책임감을 리더의 핵심 덕목으로 꼽은 응답이 65.8%였다거나, 특정 대기업이 직급별로 며칠씩 교육한다는 구체적 일수 — 는 출처가 함께 제시되지 않았다. 방향을 가리키는 예시로 받아들이는 편이 안전하다.
그리고 이 세 역량을 떠받치는 토대가 하나 더 있다. 심리적 안전(psychological safety)이다.
하버드의 에이미 에드먼슨(Amy Edmondson)은 1999년 이 개념을 정의했다. 팀이 대인 관계의 위험을 감수해도 안전하다는, 구성원 사이의 공동의 믿음이다. 질문하고, 모른다고 말하고, 실수를 인정하고, 이견을 제기해도 망신당하거나 처벌받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가리킨다.
구글(Google)은 2012년 ‘프로젝트 아리스토텔레스(Project Aristotle)’에서 180개 팀을 2년간 분석했다. 고성과 팀을 가르는 가장 강력한 요인은 구성원의 지능도, 경력의 화려함도 아니었다. 심리적 안전이었다. 나머지 네 요소 — 의존성(서로의 약속을 지킴), 구조와 명확성, 일의 의미, 일의 영향 — 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전제가 바로 이 토대였다.
그 부재의 비용은 침묵으로 나타난다. 에드먼슨과 제임스 디터트(James Detert)의 연구에서, 직원의 85%가 두려움 때문에 상사에게 중요한 정보를 말하지 않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말해지지 않은 위험은 실패한 프로젝트와 놓친 기회로 되돌아온다. 호통치지 않는 팀장, 감정을 조율하는 팀장을 사람들이 원하는 이유는 정서적 위안 때문이 아니다. 그런 팀에서만 문제가 일찍, 손쓸 수 있을 때 드러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따르는 리더십에는 또 하나의 이름이 있다. 변혁적 리더십(transformational leadership)이다. 정치학자 제임스 맥그리거 번스(James MacGregor Burns)가 1978년 제시하고, 버나드 배스(Bernard Bass)가 1985년 경영 영역으로 정교화한 개념이다.
거래적 리더십(transactional leadership)이 “네가 이만큼 하면 나도 이만큼 준다”는 교환이라면, 변혁적 리더십은 “우리가 어디로, 왜 가는가”를 제시해 구성원이 스스로 그 방향에 헌신하게 만든다. 직장인이 꼽는 최고의 리더가 한결같이 ‘소통형’이라는 강연의 관찰은 이 틀과 정확히 맞물린다. 단순한 지시가 아니라 의미를 전달하는 소통이다.
비유 · 두 일꾼
같은 벽을 쌓아도, “삯을 받으려고 벽돌을 쌓는다”고 여기는 일꾼과 “내가 살 도시를 짓는다”고 믿는 일꾼의 결과물은 다르다. 거래적 리더는 전자의 동기를 사고, 변혁적 리더는 후자의 의미를 심는다. 9시에 출근해 6시에 퇴근하는 사람에게도 ‘왜’를 들을 권리가 있다.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이 실행을 점점 더 가져가면서, 관리자의 정의가 다시 한번 바뀌고 있다. 맥킨지(McKinsey)는 2025년 보고서 《에이전트형 조직(The Agentic Organization)》에서, 관리자의 역할이 행정 업무에서 벗어나 ‘사람과 AI가 뒤섞인 시스템의 조율자(orchestrator)’로 이동한다고 본다. 성과를 재는 기준도 ‘과업을 끝냈는가’에서 ‘사람과 에이전트를 얼마나 잘 조율해 성과를 냈는가’로 옮겨 간다.
강연은 같은 그림을 직관적인 언어로 표현했다. 나 혼자 모든 것을 확인하는 통제자(controller)에서, 인간은 인간의 일을 AI는 AI의 일을 하도록 전체를 지휘하는 조율자(orchestrator)로. 마주 앉아 감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옆에 앉아 함께 푸는 사람이다.
이때 리더가 쥐어야 할 것은 세 가지로 좁혀진다. 첫째, 문제를 정의하는 능력이다. AI는 ‘어떻게(how)’를 빠르고 그럴듯하게 내놓지만, ‘무엇을 왜(why) 풀어야 하는가’는 정해 주지 못한다. 진짜 풀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 규정하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며, 신입을 뽑을 때도 관리자를 세울 때도 이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을 봐야 한다.
둘째, 비판적 검증이다. AI가 매끄럽고 그럴듯한 결과를 내놓을수록, 그것이 겉만 좋은지 아니면 우리 조직의 맥락에 맞는지 판단하는 힘이 중요해진다. 맥킨지가 미래 관리자의 필수 역량으로 ‘에이전트의 작동 방식과 실패 양상을 이해하고 평가하는 능력’을 꼽은 것과 같은 맥락이다.
셋째, 의미와 동기의 관리다. 효율은 AI가 거든다. 그러나 이 일을 왜 하는지,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를 붙들어 주는 일은 사람만이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토대로 심리적 안전이 다시 돌아온다. 에드먼슨은 불확실성이 클수록 심리적 안전의 효과가 더 커진다고 지적한다. AI라는 낯선 도구를 눈치 보지 않고 시험해 보고, 실패에서 배운 것을 솔직히 말할 수 있는 팀이라야 새로운 방식을 자기 것으로 만든다. “이렇게 해 보면 좋을 것 같다”는 말이 자유롭게 오가는 분위기가, AI 시대 팀의 학습 속도를 가른다.
핵심은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 실무 능력과 관리 능력은 서로 다른 축이며, 다른 축의 인재를 같은 자로 재면 가장 중요한 자리를 가장 약한 사람으로 채우게 된다. 여기서 두 가지 실천이 뒤따른다.
현재 실적만이 아니라 관리 잠재력의 신호를 함께 봐야 한다. 벤슨·리·슈 연구가 가리킨 협업 경험, 그랜트가 짚은 ‘아래를 다루는 방식’, 그리고 문제를 정의하려는 태도가 그런 신호다. 실무 보상과 관리 승진을 분리하는 경로 — 관리자가 되지 않고도 인정과 보상을 받는 전문가 트랙 — 를 두는 것도 한 방법이다. ‘승진은 곧 관리직’이라는 외길에서 비롯되는 미스매치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팀장이 된 사람은 리더로서의 신입이다. 승진은 끝이 아니라 새 직무의 시작이며, 실무자의 언어와 리더의 언어는 다르다. 역할 전환을 위한 교육과 일정 기간의 코칭이 필요한 이유다. 갤럽의 추정대로 다수가 코칭을 통해 제 역할에 이를 수 있다면, 이 교육은 비용이 아니라 회수율이 가장 높은 투자다.
좋은 팀장은 일을 가장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이 일을 잘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AI가 실행을 점점 더 가져가는 시대에, 일을 직접 하는 능력과 사람·시스템을 조율하는 능력 사이의 거리는 더 멀어질 것이다. 누구를 그 자리에 앉히고 어떻게 길러 낼 것인가라는 질문도, 그만큼 더 무거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