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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행정 · 제도 분석

선거 행정은 어디서 무너졌나

2026년 6월 지방선거에서 투표용지가 동났다. 그러나 사태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며칠 사이 개표 입력 오류, 증거물 폐기, 늑장 보고가 잇따라 드러나면서 물음은 “왜 용지가 부족했는가”에서 “선거 행정을 신뢰할 수 있는가”로 옮겨갔다. 표면의 사고 아래에 놓인 조직의 구조를 짚는다.

2026년 6월 15일

01 — 선거일투표소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2026년 6월 3일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본투표가 진행되던 오후, 일부 투표소에서 준비된 투표용지가 동나기 시작했다. 서울 송파·강남·광진·서초·동작구와 인천 연수구, 경기 화성 동탄 등에서 “용지가 떨어졌다”는 호소가 잇따랐다. 오후 1시 무렵부터 일부 투표소의 용지가 소진됐고, 오후 4시를 넘기면서 투표가 일시 중단된 곳도 나왔다. 추가 용지가 도착할 때까지 재개되지 못한 투표소에서는 유권자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가장 상징적인 장소가 된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에서는 오후 6시 이전에 도착한 유권자에게 대기번호를 발급해 투표 시간을 밤 10시까지 연장했다. 이후에는 투표함을 개표소로 옮기는 문제를 두고 시민과 경찰이 대치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서울 송파·강남·광진구 안에서만 약 14개 투표소가 용지 부족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집계됐다.

14곳
서울 3개 구에서 용지 부족 영향을 받은 투표소(집계 기준)
22시
대기번호 발급으로 연장된 일부 투표소 마감 시각
4.2만매
송파구 전체로는 사용되지 않고 남은 투표용지 수량

책임자들의 사과는 빨랐다. 선거 당일 사무총장이, 이틀 뒤에는 위원장이 대국민 사과와 함께 사의를 표명했다. 위원장 직무대행은 “송파구 전체로 보면 용지가 4만2천여 매 남아 있었다”며 부족이 아니라 분배의 실패였다고 설명했다. 구 전체에는 용지가 충분했는데, 투표소별로 어떻게 나눌지를 정교하게 관리하지 못해 특정 투표소만 동났다는 뜻이다.

개념 풀이

왜 ‘용지가 모자랄 수’ 있나 — 본투표 용지와 사전투표 용지의 차이

사전투표는 투표소에 설치된 발급기가 그 자리에서 용지를 인쇄한다. 따라서 미리 찍어 둘 필요가 없고 모자랄 일도 없다. 반면 본투표 용지는 선거 전에 미리 인쇄해 각 투표소로 나눠 보낸다. 만든 양이 그날 찾아온 유권자보다 적으면 그 투표소는 곧바로 동난다.

마치 빵집이 “오늘은 100개만 굽자”고 정해 두면, 손님이 120명 오는 순간 20명은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 빵을 더 많이 구워 두면 팔리지 않은 빵을 버려야 하니, 결국 얼마나 미리 만들어 둘 것인가라는 판단이 이날 사태의 출발점이 된다.

02 — 원인투표용지는 왜 부족했나

핵심은 ‘얼마나 인쇄할 것인가’를 정하는 하한선이었다. 직전 선거까지 본투표 용지는 유권자 수의 최소 60%를 찍도록 돼 있었으나, 이번 선거를 앞두고 그 하한이 50%로 내려갔다. 결정 과정은 의외로 단출했다. 2025년 12월 10일 사무총장 전결로 선거 종합관리지침이 개정됐고, 같은 달 24일에는 선거정책실장 전결로 절차 사무편람이 같은 내용으로 고쳐졌다. 두 차례 모두 위원들이 모이는 공식 회의는 열리지 않았고, 내부 두 사람의 전결로 처리됐다.

그 바탕에는 2025년 8월 꾸려진 내부 인사 중심의 ‘절차사무개선’ 작업반과 2022년 외부 연구기관의 정책연구용역이 있었다고 선거관리 당국은 설명했다. 그러나 그 용역의 원래 취지는 사전투표 방식을 본투표로 확대할 경우 현장 발급기 인쇄를 늘리라는 쪽이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남는 종이 용지가 많을수록 보관이 까다롭고 부정선거 의혹에 시달리기 쉬우니 발급기 비중을 키우자는 제안이었는데, 결론이 ‘미리 찍는 종이 용지를 줄인다’로 뒤집혔다는 것이다.

비용 절감이 이유였다고 보기도 어렵다. 투표용지 예산은 유권자 수의 110% 수준으로 확보돼 있었다. 돈이 없어 적게 찍은 것이 아니라, 하한을 낮춰 적게 찍기로 선택한 것이다. 당국은 사전투표율 증가와 본투표율 감소, 짧은 인쇄 기간에 따른 인쇄소 확보의 어려움, 잔여 용지의 보관·분실 우려, 과다 인쇄가 부정선거 의혹으로 이어진다는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인쇄 비율의 최종 결정은 255개 시·군·구 선거관리 기관이 지역 사정을 고려해 자율적으로 했고, 송파구는 일부 동을 제외한 25개 동의 인쇄 비율을 50% 수준으로 정했다.

2025.08 내부 절차개선 작업반 구성 위원 회의가 아닌 실무 단위에서 논의 시작 2025.12 인쇄 하한 60% → 50% 하향 공식 회의 없이 사무총장·실장 전결로 결정 2026.06.03 본투표 중 일부 투표소 용지 소진 오후 투표 일시 중단·지연, 마감 연장 2026.06.05 투표함 반출·개표 마무리 반출을 둘러싼 시민·경찰 대치 발생 2026.06.09~11 개표 입력 오류·증거 상자 폐기 확인 두 곳의 교육감 개표 오류, 보관상자 폐기 드러남 2026.06.11 합동수사본부 압수수색·피의자 입건 전 위원장·전 사무총장 등 10명 입건
결정에서 사고, 수사까지 — 사태의 전개 과정. 주황색 지점은 이번 사태의 분기점이 된 사건이다.

03 — 개표개표는 정확했나

용지 부족이 ‘준비’의 문제였다면, 이어 드러난 것은 ‘집계’의 문제였다. 선거 결과를 시스템에 입력하는 과정에서 두 곳의 교육감 선거 개표가 잘못 처리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두 사례 모두 표를 세는 단계가 아니라, 그 결과를 옮겨 적고 입력하는 단계에서 오류가 생겼다.

한 곳에서는 같은 동의 제3투표소 개표 결과가 제1투표소 결과로 잘못 입력됐다. 표를 기록하는 서류의 투표소 이름이 ‘제3투표소’가 아니라 ‘제1투표소’로 잘못 적힌 것이 원인이었다. 그 결과 제1투표소의 약 1,100표가 전산 집계에서 빠졌다. 다른 곳에서는 개표사무원이 제9투표소 용지를 분류기에 넣으면서 입력은 제2투표소로 해, 제9투표소의 1,282표가 두 투표소에 중복 반영되고 제2투표소의 1,706표가 누락됐다. 또 다른 투표소에서는 교육감 선거 용지가 후보 게재 순서가 다른 두 종류로 나뉘는데, 화면 기본 설정과 실제 용지 순서가 어긋나 두 후보의 득표가 뒤바뀌어 입력됐다.

다행히 당선인 자체가 바뀌지는 않았다. 그러나 한 광역 교육감 선거에서는 정정 결과 두 후보의 득표 격차가 47표 줄었다. 더 큰 문제는 발견과 보고의 시점이었다. 두 오류 모두 당선인 확정을 위한 개표록 전수 점검 과정에서 사무진이 “숫자가 너무 똑같다”고 의심하면서 우연히 드러났고, 한 곳은 선거 닷새 뒤에야 중앙 기관에 보고됐다. 참관인이나 외부 감시가 잡아낸 것이 아니라, 내부 점검이 없었다면 그대로 묻힐 수도 있었던 오류라는 점이 신뢰에 더 큰 그림자를 드리웠다.

① 표 세기 — 기계 분류 + 사람 수(手)검표 분류기 1차, 개표원 2차, 정당 참관인 입회 여러 단계 교차검증 ✓ — 숫자 자체는 정확 ② 결과를 서류(투표록)에 손으로 옮겨 적기 칠판의 숫자를 종이에 전사 — 투표소 이름 포함 약한 고리 ⚠ — 투표소명 오기가 여기서 발생 ③ 전산 시스템에 입력 잘못 적힌 종이를 그대로 입력 한 번 틀린 이름이 그대로 전파됨 ④ 합계 검산 투표소별 인원이 다른데 합계가 맞지 않음 불일치가 즉시 걸러지지 않고 통과 ⚠
개표의 ‘약한 고리’는 표를 세는 곳이 아니라, 그 결과를 옮겨 적고 입력하는 단계에 있었다.
개념 풀이

왜 ‘여러 명이 봤는데’ 틀렸을까

표를 세는 단계는 기계와 사람, 참관인까지 겹겹이 검증한다. 그래서 “1번 몇 표, 2번 몇 표”라는 숫자 자체는 대체로 정확하다. 문제는 그 숫자를 칠판에서 종이로, 종이에서 전산으로 옮겨 적는 단계다. 받아쓰기 시험 답안을 친구 셋이 함께 채점한 뒤, 점수를 성적표에 옮길 때 반 이름을 잘못 적는 것과 같다. 채점은 정확했지만 엉뚱한 반의 성적이 됐다.

여기에 더 큰 구멍이 있다. 투표소마다 유권자 수가 다르므로 합계를 맞춰 보면 어딘가 어긋나야 정상이다. 그 합계 검산이 즉시 작동했다면 중복·누락은 그 자리에서 드러났을 것이다.

04 — 증거사라진 보관 상자

용지 부족과 개표 오류가 ‘무능’의 영역이라면, 다음 사건은 신뢰 자체를 흔들었다. 용지 부족이 발생한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에는 ‘인쇄매수 1900매’라고 적힌 투표용지 보관 상자가 있었다. 이 투표소 유권자가 3,856명이었으니 50% 하한을 지키려면 1,928매가 필요했는데, 실제 인쇄는 1,900매로 49.27%에 그쳤다. 하한선조차 미달한 셈이며, 그래서 이 상자는 ‘지침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객관적 물증이 됐다.

한 낙선 후보가 선거 효력을 다투기 위해 이 상자와 직원 간 메신저 대화, 현장 CCTV에 대한 증거보전을 신청했고, 법원은 이를 일부 받아들였다. 그런데 법원이 현장 검증을 위해 투표소를 찾았을 때 상자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구 선거관리 기관은 “보관 의무가 없는 물품이라 반납된 쓰레기와 함께 폐기물 업체에 넘겼고, 증거보전 대상인 줄은 그 뒤에야 알았다”고 해명했다. 폐기 시점은 법원의 증거보전 결정보다 약 다섯 시간 반 앞섰다.

해명이 사실이라 해도, 사회적 논란이 정점에 이른 시점에 핵심 물증이 통상 절차로 폐기됐다는 설명은 의심을 키웠다. 법원은 이후 추가 신청을 받아들여 상자를 넘긴 폐기물 업체의 정보와 폐기 일시에 대한 사실조회, 반출 장면 CCTV에 대한 문서제출명령을 내렸다. 다만 개표소에 보관된 투표지·투표함에 대한 검증 신청은, 법정 보존기한이 남아 있어 증거보전의 필요성이 낮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05 — 구조표면 아래의 병

용지 부족, 개표 오류, 증거 폐기, 늑장 보고는 서로 무관한 우연의 연쇄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를 하나로 꿰는 질문이 있다. 왜 이런 일이 한 조직에서 반복되는가. 답의 상당 부분은 사고 이전부터 누적된 인사·조직의 구조에 있다.

2024년 채용 감사가 남긴 숫자

2024년 외부 감사기관은 이 조직의 채용 실태를 들여다본 결과, 2013년 이후 경력경쟁채용 과정에서 1,200여 건의 규정 위반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지역 기관에서 800여 건, 중앙 기관에서 400여 건이었다. 직원 자녀를 비공개로 채용하고, 친분 있는 내부 인사로만 면접관을 구성하거나, 면접 점수를 조작·변조하고, 법령상 필요한 동의 요건을 고의로 무시한 사례들이 드러났다. 감사기관은 27명에 대한 수사를 요청했고, 수사 참고자료까지 포함하면 관련 전·현직 직원은 49명에 달했다. 이듬해에는 특혜 채용 의혹이 제기된 자녀 8명의 임용이 취소됐다.

1,200여건
2013년 이후 경력경쟁채용 규정 위반 확인 건수
27명
감사기관이 수사 요청한 전·현직 직원
8명
특혜 의혹으로 임용이 취소된 직원 자녀

선거철마다 비는 자리

선거를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지만, 정작 선거철마다 휴직·연차로 자리를 비우는 직원이 늘어난다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있었다. 가장 손이 많이 필요한 시기에 숙련 인력이 빠지고, 그 공백을 경력 채용 등으로 메우는 구조가 반복되면 현장 대응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번 용지 부족 대응에서 드러난 ‘매뉴얼 부재’—특정 투표소의 용지가 떨어졌을 때 언제, 어떻게 추가 배분할지에 대한 표준 절차가 없었다는 점—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주인 없는 위원회, 닿지 않는 감사

제도의 뿌리도 짚어야 한다. 이 조직은 헌법에 근거한 독립기관으로, 위원 9명은 행정부·국회·대법원장이 각각 3명씩 정해 삼권이 균형을 이루도록 설계됐다. 정치적 독립을 지키기 위한 장치다. 문제는 이 9명 가운데 8명이 비상근이고 상근은 1명뿐이라는 점이다. 1963년 창설 이후 한 번도 바뀌지 않은 구조다. 위원들은 출석과 의결에 관여하지만, 일상적인 조직 운영·인사·기강을 책임지고 챙기는 ‘주인’은 사실상 모호하다.

여기에 외부 감사도 닿지 않는다. 헌법재판소는 이 조직이 외부 감사기관의 직무감찰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독립성을 보장한 헌법 취지에 따른 결정이지만, 결과적으로 스스로 잘못을 조사·심판하는 ‘셀프 감시’ 구조가 오래 유지됐다. 강한 신분 보장과 약한 외부 견제가 겹치면, 갱신의 압력은 줄고 책임의 소재는 흐려진다.

위원 9명 — 상근 1명, 비상근 8명 상근 상시 운영을 책임질 주체 모호함 외부 감사 직무감찰 대상 아님 → 셀프 감시 구조
강한 독립성·신분 보장과 약한 외부 견제가 겹치는 비대칭 구조.
관점 정리

‘떠날 수 없는 이용자’가 만드는 함정

민간 조직은 이용자가 떠날 수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자신을 점검한다. 품질이 나쁘면 손님이 줄고, 줄면 망한다. 이 피드백이 조직을 깨어 있게 한다. 그러나 선거 관리에는 경쟁자가 없고, 국민은 ‘다른 기관에서 선거를 치르겠다’고 선택할 수 없다. 외부 감사도 닿지 않으면 잘못을 스스로 드러낼 동기가 약해진다.

이것은 특정 개인을 탓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경쟁·평가·견제가 모두 약한 자리에 누구를 앉혀도 같은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구조에 관한 지적이다.

06 — 해석행정 실패인가, 그 이상인가

지금까지 공개된 사실들은 대체로 행정의 부실을 가리킨다. 충분한 용지를 준비하지 못한 분배 실패, 옮겨 적는 단계에서 발생한 입력 오류, 닷새가 걸린 늑장 보고, 핵심 물증의 부주의한 폐기—각각은 무능과 관리 미흡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일들이다.

그러나 이런 사고가 반복·중첩되면서, 일각에서는 단순 실수가 아니라 의도가 개입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다시 제기됐다. 서로 무관한 두 지역의 개표 오류가 ‘중복 입력’이라는 같은 패턴을 보였다는 점, 증거 상자가 하필 논란의 정점에서 사라졌다는 점이 의심에 불을 지폈다. 반대로, 동일한 입력 단계의 구조적 취약성이 여러 곳에서 같은 방식으로 드러난 것은 의도가 아니라 ‘같은 구멍’ 때문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선거 수사 경험이 있는 전문가들은 이 사태가 단순한 업무상 과오인지, 특정 결과를 의도한 행위인지부터 가려야 한다고 본다. 현재까지 공개된 사실만으로 의도성을 단정할 근거는 확인되지 않았고, 동시에 선거 행정에 대한 신뢰가 크게 훼손된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어느 쪽이든 결론은 진행 중인 수사와 조사가 사실로 메워야 한다. 의혹을 사실로 앞질러 단정하는 것도, 드러난 부실을 ‘있을 수 있는 실수’로 가볍게 덮는 것도 모두 신뢰 회복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07 — 과제무엇을 바꿔야 하나

사태 직후 책임 규명과 제도 개선이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검찰과 경찰은 합동수사본부를 꾸려 7개 선거관리 기관을 압수수색했고, 전 위원장과 전 사무총장을 포함한 10명을 공직선거법 위반·직무유기·업무상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입건했다. 수사의 초점은 인쇄 하한을 50%로 낮춘 결정의 경위와 의사결정 구조, 그리고 현장 대응의 실패 과정에 맞춰져 있다. 국회는 국정조사를 추진하고 있으나, 위원 배분과 특별검사 도입을 두고 여야가 맞서 출발부터 진통을 겪고 있다.

제도 차원에서는 세 갈래의 과제가 거론된다. 첫째는 운영 책임의 공백을 메우는 것이다. 비상근 위원 체제를 보완해 상근 위원을 늘리거나 위원장을 상근화하자는 제안이 나온다. 둘째는 외부 견제의 강화다. 다만 독립성을 보장한 헌법 구조와 맞물려 있어, 실효성 있는 외부 감사를 도입하려면 개헌까지 논의해야 한다는 점이 쟁점이다. 셋째는 실무의 정비다. 용지 수급과 부족 시 추가 배분의 표준 절차를 만들고, 개표 입력 단계에 교차검증과 합계 검산을 자동화해 ‘옮겨 적기’의 약한 고리를 기술로 보완하는 일이다.

이 모든 과제를 관통하는 핵심은 하나다. 권한과 신분은 강하게 보장되는데 책임과 견제는 약한 비대칭을, 신뢰가 작동할 수 있는 수준으로 좁히는 것이다.

선거에 대한 신뢰는 누가 이기고 졌는가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절차의 정확성—충분한 용지, 정확한 입력, 투명한 기록, 책임 있는 보고—에서 나온다. 이번 사태의 진짜 의미는 특정 선거의 승패가 아니라, 그 기본기가 무너졌을 때 민주주의의 토대가 함께 흔들린다는 사실을 드러냈다는 데 있다. 무너진 곳을 정확히 짚어내는 일이, 신뢰를 다시 세우는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