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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과 제도 · 2026년 6월

AI의 속도, 제도의 시차

한 주 사이에 다섯 장면이 지나갔다. 애플이 시리의 두뇌를 경쟁사에서 빌렸고, 개발자의 일이 '코드 작성'에서 '루프 설계'로 옮겨갔으며, 가장 강력한 공개 모델이 출시 사흘 만에 정부 명령으로 꺼졌고, 시험장에 AI 안경이 등장했으며, 인터넷 트래픽의 절반 이상이 더는 사람이 아니게 됐다. 서로 무관해 보이는 사건들의 공통점은 하나다.

2026년 6월 16일 AI 산업 · 기술과 사회 읽는 데 약 16분
장면 1 · 의존애플의 시리, 구글 제미나이로. 세계에서 가장 자급자족을 고집하던 회사조차 자체 AI 두뇌를 빌려 쓰기로 했다.
장면 2 · 노동프롬프트에서 루프로. AI 코딩 도구의 설계자가 "이제 프롬프트를 쓰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람의 일이 한 단계 위로 올라간다.
장면 3 · 통치규제를 청한 기업이 규제를 당하다. 가장 강력한 모델을 공개하며 "정부가 위험한 모델을 막을 수 있어야 한다"던 회사가, 이틀 만에 그 권력의 첫 대상이 됐다.
장면 4 · 규칙안경 속에 들어온 커닝. 시험장에 AI 글래스를 쓰고 들어간 응시자가 국내에서 처음 적발됐다. 기기는 일상이 됐는데 규칙은 비어 있다.
장면 5 · 토대인터넷의 절반은 사람이 아니다. 자동화 봇이 사람의 웹 트래픽을 처음으로 넘어섰다. 웹이 서 있던 경제적 가정이 흔들린다.

서로 다른 다섯 장면을 관통하는 한 문장은 이렇게 요약된다. 기술의 속도가, 그것을 둘러싼 규칙·노동·통치·경제의 적응 속도를 앞질렀다. AI는 더 이상 다가올 미래의 약속이 아니라, 이미 회사의 전략과 개인의 일, 국가의 권력과 인터넷의 토대를 동시에 다시 짜고 있는 현재의 힘이다. 그런데 그것을 받아내야 할 제도는 늘 한 박자씩 뒤에 있다. 이 글은 2026년 6월 중순에 거의 동시에 벌어진 다섯 사건을, 바로 그 '시차'라는 렌즈로 다시 읽는다.


장면 1 · 의존애플조차 자체 두뇌를 빌리다

6월 8일 막을 올린 애플 세계개발자회의(WWDC, Worldwide Developers Conference) 2026의 무대 중심에는 새로 만든 음성비서 '시리 AI'가 있었다. 그런데 그 두뇌가 애플의 것이 아니었다. 애플은 차세대 자체 파운데이션 모델(Apple Foundation Models)을 구글의 제미나이(Gemini) 기술을 바탕으로 공동 개발했다고 밝혔다. 보도에 따르면 애플은 시리의 클라우드 지능을 맡기기 위해 약 1조 2,000억 개 파라미터 규모로 맞춤 제작한 제미나이 모델을 쓰고, 그 대가로 구글에 연간 약 10억 달러를 지불한다.

"제미나이를 그대로 가져다 쓴 것은 아니다"라는 애플의 해명은 사실이다. 모델은 애플 전용으로 다시 빚어졌고, 애플은 자사의 프라이빗 클라우드 컴퓨트(Private Cloud Compute) 위에서 돌린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10년 넘게 "우리는 우리 방식으로 AI를 한다"고 버텨 온 회사가, 자사 간판 기능의 심장부를 경쟁사 기술에 의탁했다는 사실 말이다. 발표 당일 애플 주가가 3% 넘게 빠진 것은 시장이 이 장면을 '굴복'에 가깝게 읽었음을 보여준다.

비유로 풀면

자동차 회사가 차체·디자인·브랜드는 자기 것으로 하되, 엔진만큼은 경쟁사에서 사 오는 셈이다. 겉모습과 운전 경험은 여전히 그 회사의 것이지만, 가장 비싸고 어려운 부품을 스스로 만들지 못한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차이가 있다면, 자동차 엔진은 한 번 사면 끝이지만 AI 모델은 매년 갱신·재학습되는 '구독형 엔진'이라는 점이다. 의존이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이다.

이 장면이 중요한 이유는 애플 한 회사의 자존심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최전선 모델을 처음부터 끝까지 자력으로 만들 수 있는 곳은 이제 손에 꼽힌다. 막대한 연산·데이터·인재가 소수 기업에 집중되면서, 나머지는 — 그것이 시가총액 4조 달러의 애플이라 해도 — 그 소수에게서 '지능'을 빌려 자기 제품에 끼워 넣는 구조로 재편되고 있다. 또 하나의 함의는 책임의 이전이다. 시리 AI를 둘러싼 이 선택이 더 나은 경험으로 이어질지에 대한 판단은, 9월 1일 팀 쿡의 뒤를 잇는 신임 최고경영자 존 터너스(John Ternus)의 몫으로 넘어갔다. 쿡 시대의 마지막 기조연설이, 동시에 애플 AI 전략의 가장 큰 방향 전환을 선언하는 자리가 된 것이다.


장면 2 · 노동프롬프트에서 루프로

두 번째 장면은 개발 도구 안에서 조용히 일어났다. 한 주요 AI 코딩 도구의 총괄 책임자가 개발자 콘퍼런스 무대에서 이렇게 말했다. "약 6개월 전부터, 내가 손으로 짜던 코드를 이제 전부 AI가 쓴다." 그는 한 달 넘게 통합개발환경(IDE, Integrated Development Environment)을 열지 않았고, 결국 그것을 지워 버렸다고 했다. 그리고 더 도발적인 문장이 이어졌다. "나는 더 이상 AI에게 프롬프트를 쓰지 않는다. AI에게 프롬프트를 주고 무엇을 할지 판단하는 '루프'를 돌릴 뿐이다. 내 일은 루프를 짜는 것이다."

지난 2년간 AI를 잘 쓰는 핵심 역량은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곧 좋은 질문을 잘 던지는 기술이었다. 사람이 한 번 묻고, 답을 읽고, 다시 묻는다. 사람이 매 순간 도구를 손에 쥐고 있었다. 그런데 코딩 에이전트가 점점 '오래 혼자 돌아가는 실행 시스템'으로 진화하면서, 무게중심이 한 칸 위로 옮겨갔다. 일을 찾아내고, 에이전트에게 나눠 주고, 결과를 검증하고, 무엇을 끝냈는지 기록한 뒤, 다음 할 일을 스스로 정하는 작은 자동화 시스템 — 그 시스템을 설계하는 일이 새로운 핵심 역량으로 떠올랐다. 한 구글 엔지니어는 이 흐름에 '루프 엔지니어링(loop engineering)'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기존 · 프롬프트 사람 AI 에이전트 질문 답 → 다시 질문 한 번에 한 차례, 사람이 손에 쥔다 지금 · 루프 사람 루프(자동 시스템) 작업 분배 · 검증 · 기록 다음 할 일 결정 에이전트들 에이전트들 루프 설계
사람의 역할이 '에이전트에게 직접 지시'에서 '에이전트를 부리는 시스템 설계'로 한 단계 올라간다.
비유로 풀면

한 명의 요리사가 직접 칼을 쥐고 재료를 썰던 주방에서, 여러 대의 조리 로봇이 알아서 돌아가는 주방으로 바뀐 격이다. 이제 사람의 일은 칼질이 아니라 동선과 검수 절차를 짜는 것 — 어떤 로봇에게 무엇을 맡기고, 결과를 어떻게 확인하며, 다음 요리를 언제 시작할지 정하는 '주방 설계'다. 다만 함정이 있다. 로봇이 만든 음식을 한 번도 맛보지 않고 자동 루프에만 맡기면, 손님상에 오르는 품질은 서서히 무너진다.

그래서 이 변화는 양면적이다. 깊이 이해한 일을 더 빨리 처리하려고 루프를 짜는 사람과, 일을 이해하기 싫어서 루프 뒤에 숨는 사람은 전혀 다른 결과를 맞는다. 코드를 직접 검토하지 않고 자동 루프에만 의존하면 품질은 점점 떨어진다. 결국 살아남는 개발자는 '루프를 돌리는 사람'이 아니라 '루프가 내놓은 결과를 판별할 줄 아는 사람'일 것이다. 노동의 정의가 바뀌는 속도가, 그 노동을 가르치고 평가하는 교육·채용 제도의 속도를 앞지르는 또 하나의 시차가 여기서도 열린다.


장면 3 · 통치규제를 청한 기업, 규제를 당하다

이번 주 가장 극적인 장면은 한 AI 기업의 사흘짜리 자가당착이었다. 앤트로픽(Anthropic)은 자사 최상위 모델 계열인 '미토스(Mythos)'급 모델을 처음으로 일반에 열었다. 출시는 두 갈래였다. 하나는 일반 사용자용 '클로드 페이블 5(Claude Fable 5)', 다른 하나는 안전장치를 덜어 낸 '클로드 미토스 5(Claude Mythos 5)'로 일부 기업·정부 파트너만 접근할 수 있다.

비유로 풀면

같은 엔진을 얹은 두 대의 차로 생각하면 쉽다. '페이블 5'는 안전벨트·속도제한·에어백을 모두 갖춘 양산차다. 사이버보안·생물학·화학·AI 개발처럼 위험한 영역의 질문이 들어오면, 일부러 능력을 낮춘 이전 모델(클로드 오푸스 4.8)로 답을 우회시킨다. '미토스 5'는 그 제한장치를 푼 서킷 전용차다. 둘은 속을 들여다보면 동일한 모델이고, 차이는 오직 겉에 두른 안전장치의 두께뿐이다.

문제는 다음 날 터졌다. 앤트로픽 최고경영자 다리오 아모데이(Dario Amodei)가 '지수함수적 AI 시대의 정책(Policy on the AI Exponential)'이라는 에세이를 공개했다. 핵심 주장은 명료했다. 최전선 모델은 (1) 사이버보안, (2) 생물학 무기, (3) AI 통제력 상실, (4) 이 위험들을 가속할 자동화 연구개발이라는 네 영역에서 독립된 제3자의 의무 검증을 받아야 하며, 검증에 실패한 모델은 정부가 출시를 막거나 되돌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미국 연방항공청(FAA, Federal Aviation Administration)이 안전하지 않은 항공기의 운항을 막는 권한에 빗댔다.

여기에 한 가지 미묘한 사실이 더해졌다. 출시 직후 연구자들은 페이블 5의 기술 문서에서, 사용자가 'AI를 개발하려 한다'고 감지되면 모델이 스스로 능력을 슬그머니 낮춘다는 설계를 발견했다. AI가 더 강한 AI를 만드는 일을 모델 자신이 경계하도록 짜 둔 것이다. 모델로 돈을 버는 기업이 스스로 가장 강한 규제를 요구하고, 자기 제품에 자기 검열 장치까지 심는 풍경. 선의로 읽을 수도 있지만, 비판자들은 다르게 봤다.

6월 9일 페이블 5 · 미토스 5 공개 6월 10일 아모데이 에세이 — "정부가 위험 모델을 막을 수 있어야" 6월 12일 미 상무부 수출통제 — 외국인 접근 전면 차단 청한 권력이, 이틀 뒤 자신을 향했다
스스로 요구한 '정부의 모델 차단 권한'이, 발동되자마자 가장 먼저 그 회사를 겨눴다.

에세이 발표 이틀 뒤인 6월 12일, 앤트로픽은 미국 상무부로부터 한 통의 서한을 받았다고 밝혔다. 페이블 5와 미토스 5에 대한 모든 외국인의 접근을 — 미국 안팎을 가리지 않고, 외국 국적의 앤트로픽 직원까지 포함해 — 전면 중단하라는 수출통제 지시였다. 정부 요구를 맞추기 위해 회사는 결국 두 모델을 전 고객에게 차단했다. 정부는 페이블 5를 '탈옥(jailbreak)'하는 우회법을 인지했다는 이유를 댔다. 앤트로픽은 즉각 반발했다. 그 위험은 이미 시장에 나와 있는 다른 모델과 다르지 않으며, 좁은 잠재적 취약점 하나를 근거로 수억 명이 쓰는 상용 모델을 통째로 회수하라는 것은 과도한 해석이라는 주장이었다.

스스로 만들자고 한 권력이 이틀 만에 자신을 향했다. 다만 그 권력을 휘두른 손이 반드시 그가 의도한 모습은 아니었다.

여기서 사건은 단순한 '자업자득' 우화를 넘어선다. 보도에 따르면 이 조치의 방아쇠를 당긴 것은 한 거대 기술기업 최고경영자가 백악관에 제기한 우려였다고 전해진다. 한 매체는 이를 두고 'AI 경쟁에 대한 미국 정부 개입의 가장 강력한 사례'라고 평했다. 비판은 양쪽에서 쏟아졌다. 트럼프 행정부의 전직 AI 자문은 이 조치를 "어리둥절하다"고 했다. 중국에 대한 첨단 반도체 수출통제는 오히려 푸는 마당에, 가까운 동맹국 정부까지 포함해 앤트로픽 모델 접근을 일률적으로 막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었다. 실제로 영국·유럽·캐나다 등 여러 동맹국 기관은 이미 미토스급 모델을 자국 핵심 인프라의 보안 취약점을 찾는 데 쓰고 있었다.

반대편에서는, AI의 위협을 워싱턴에서 가장 시끄럽게 떠든 장본인이 바로 아모데이라는 비판도 거셌다. 한 저명한 AI 연구자는 "근거 없는 공포 조장이 결국 이 사태를 불렀다"며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 정책 분석가는 양쪽을 동시에 짚었다. 앤트로픽이 최전선 모델에 대한 광범위한 통제를 자초하듯 규제 온도를 끌어올린 것은 사실이지만, 정부의 이번 조치 역시 'AI의 정치화와 첨단 연산 통제권의 중앙집중'이라는 점에서 중대한 격화라는 것이다.

이 장면이 드러낸 시차는 통치의 영역에 있다. 모델의 능력은 이미 '국가 안보를 흔들 수 있는 전략물자' 수준에 도달했는데, 그것을 다룰 규칙은 아직 즉흥적이다. 같은 행정부가 1년여 전에는 'AI 규제 장벽 제거'를 외치다, 이제는 한 회사를 겨눠 국가 권력의 가장 거친 지렛대를 더듬더듬 당기고 있다. 무엇이 위험한 모델인지, 누가 어떤 절차로 판정하는지에 대한 안정된 틀이 없는 상태에서 권력만 먼저 도착한 것이다. 그 사이 동맹국들에게는 더 근본적인 질문이 남았다. 미국산 AI는 과연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기반인가.


장면 4 · 규칙안경 속에 들어온 커닝

네 번째 장면은 거대 기업의 회의실이 아니라 평범한 시험장에서 벌어졌다. 한국토익위원회는 6월 10일, 토익(TOEIC) 정기시험에서 'AI 글래스'를 쓰고 부정행위를 한 응시자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적발됐다고 밝혔다. 지난 5월 10일과 5월 31일 시험에서 각각 1명씩, 모두 2명이었다. 이들의 성적은 무효 처리됐고, 4년간 토익 응시 자격이 제한된다. 시험 시작 무렵 진행 요원이 착용 의심자를 발견했으나, 다른 수험생의 방해를 피하려고 시험이 끝난 뒤 사실관계를 확인해 처리했다.

AI 글래스는 카메라·마이크에 생성형 AI를 결합한 웨어러블 안경이다. 바라보는 대상 — 이 경우 시험지 — 을 실시간으로 인식해 분석하고, 그 결과를 렌즈 화면이나 내장 스피커로 사용자에게 전한다. 우려가 커지는 결정적 이유는 외형이다. 최근 제품들은 일반 안경과 거의 구분되지 않아, 감독관이 육안만으로 가려내기가 쉽지 않다.

왜 어려운 문제인가

과거의 부정행위 도구는 '있어선 안 될 물건'이 명확했다. 휴대전화, 스마트워치, 메모지처럼 시험장에 들고 들어오면 즉시 걸리는 대상이었다. 그런데 AI 글래스는 시력 교정용 안경과 외형이 같다. '안경을 금지'할 수는 없으니, 규칙은 '어떤 안경이 위험한가'를 새로 정의해야 한다. 금지 목록이라는 낡은 방식 자체가 흔들리는 셈이다.

제도는 빠르게 따라붙으려 하고 있다. 토익위원회는 감독관 대상 식별·적발 교육을 강화했고, 교육 당국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시험장의 반입 금지 물품 목록에 'AI 글래스'를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본질적 시차는 그대로다. 새로운 형태의 AI 기기는 계속 쏟아질 것이고, 그때마다 '이것은 금지'라고 한 줄씩 추가하는 사후 대응으로는 속도를 따라잡기 어렵다. 일상으로 스며드는 AI 기기의 속도와, 그것을 규율하는 제도의 속도 사이에 벌어진 틈 — 이번엔 그 틈이 시험장 한복판에서 드러났다.


장면 5 · 토대인터넷의 절반은 사람이 아니다

마지막 장면은 인터넷 그 자체에 관한 것이다. 인터넷 인프라 기업 클라우드플레어(Cloudflare)의 데이터에 따르면, 자동화된 봇·AI 에이전트가 만들어 내는 웹 트래픽이 사람이 만드는 트래픽을 처음으로 넘어섰다. 회사의 인터넷 측정 도구가 집계한 비율은 봇 57.4%, 사람 42.6%였다. 클라우드플레어 최고경영자 매슈 프린스(Matthew Prince)는 이 역전이 자신의 예상보다 훨씬 빨리 왔다고 했다. 당초 그는 2027년 말이나 돼야 일어날 일로 봤다.

봇 · AI 에이전트 57.4% 사람 42.6% 웹페이지 요청 기준. 스트리밍·메시징·게임·앱 사용은 제외.
역사상 처음으로, 웹 요청의 과반을 기계가 만들어 낸다.

'죽은 인터넷 이론(dead internet theory)'은 2010년대 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떠돈 가설이다. 언젠가 인터넷이 사람은 사라지고 봇이 봇에게 말을 거는 공간이 되리라는 음울한 전망이다. 이번 수치는 그 이론을 입증한 것처럼 보였다. 흥미롭게도 정작 프린스는 그 해석을 반박했다. 봇이 늘어난 주된 이유는 사람들이 AI에게 질문할 때 그 AI 에이전트가 답을 찾으려 수많은 웹페이지를 대신 훑기 때문이지, 사람이 사라져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는 생성형 도구 덕분에 프로그래밍을 몰라도 누구나 콘텐츠를 만들 수 있게 됐으니, 창작자는 줄어든 게 아니라 늘었다고 주장했다.

비유로 풀면

도서관을 떠올려 보자. 예전엔 사람이 책장을 넘기는 곳이었는데, 이제는 색인용 로봇들이 밤낮없이 모든 책을 들춰 보며 내용을 베껴 간다. 방문 횟수만 세면 로봇이 사람을 압도하지만, 그렇다고 도서관이 '죽은' 것은 아니다.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사람은 책을 읽고 사서에게 고마워하거나 책을 사 가는데, 로봇은 그저 가져가기만 한다. 도서관을 지탱하던 돈의 흐름이 끊기는 것이다.

그래서 진짜 쟁점은 '인터넷이 죽었는가'가 아니라 '인터넷의 경제가 다시 쓰이고 있는가'다. 지난 30년간 웹은 사람의 방문·클릭·광고 노출을 전제로 굴러갔다. 그런데 AI 에이전트는 페이지를 긁어 가되 원문 사이트로 사람을 돌려보내지 않는다. 광고도 클릭도 발생하지 않는다. 한 대형 지식 플랫폼은 자원을 많이 잡아먹는 트래픽의 상당 부분이 학습 데이터를 수집하는 봇에서 나온다고 보고했다. 이 때문에 'AI의 크롤링(crawling)에 요금을 물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고, 실제로 그렇게 과금할 인프라도 이미 마련되기 시작했다. 사이트들은 이제 세 갈래 길 앞에 선다. 기계에 계속 공짜로 열어 두거나, 막아서 트래픽을 잃거나, 요금을 매기거나.

인터넷이라는 토대가 바뀌는 속도가, 그 위에서 먹고살던 콘텐츠·광고·언론의 경제 모델이 적응하는 속도를 앞질렀다. 다섯 번째 시차다.


관통하는 질문속도의 시차, 그 다음은

다섯 장면은 서로 다른 무대에서 펼쳐졌지만 같은 구조를 공유한다. 애플의 의존은 'AI를 자력으로 만들 수 있는가'라는 산업 구조의 시차였고, 루프 엔지니어링은 '무엇이 일인가'라는 노동의 시차였다. 앤트로픽 사태는 '누가 어떤 절차로 위험을 판정하는가'라는 통치의 시차였고, AI 글래스 적발은 '무엇을 금지할 것인가'라는 규칙의 시차였으며, 죽은 인터넷 이론은 '누가 비용을 내는가'라는 경제의 시차였다.

이 시차들은 AI가 멈추면 저절로 닫히는 종류가 아니다. 기술은 멈추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남는 일은 '제도를 얼마나 빨리, 그러나 얼마나 신중하게 따라붙게 할 것인가'다. 너무 느리면 앤트로픽 사태처럼 권력이 즉흥적으로 도착하고, 너무 거칠면 동맹의 신뢰나 시장의 개방성 같은 더 큰 자산을 함께 잃는다.

한국의 자리에서 보면 시차는 더 선명하다. 시험장의 AI 글래스 대응은 빠른 편이었지만 여전히 사후적이었고, 미국산 AI에 대한 접근이 한 나라의 행정 명령으로 하룻밤 사이에 닫힐 수 있다는 사실은 '첨단 지능을 어디에 얼마나 의존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새삼 무겁게 만든다. 다섯 장면이 던지는 공통의 숙제는 결국 하나다. 기술의 속도를 줄일 수 없다면, 제도의 시차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