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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 다시 열리다 — 미·이란 종전 합의의 해부와 ‘이란이 관리하는 바다’의 역설

석 달여간 세계 유가를 흔든 전쟁이 멈췄다. 봉쇄가 풀리고 유조선의 엔진이 다시 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합의문의 행간에는 “전쟁 이전으로의 복귀”와는 다른 무언가가 남았다. 해협의 주인이 바뀌지는 않았으되, 해협을 ‘관리’할 권리는 묘하게 재배치되었다.

2026년 6월 16일 읽는 데 약 14분 한승문

유조선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2026년 6월 14일 밤, 미국과 이란은 석 달 넘게 이어진 전쟁을 끝내고 호르무즈 해협을 다시 연다는 합의에 도달했다고 발표했다. 미국 대통령은 “세계의 배들이여, 엔진을 켜라”고 선언했고, 며칠 사이 국제 유가는 4~5% 가까이 떨어졌다. 표면적으로 이것은 명료한 좋은 소식이다. 세계 해상 원유의 5분의 1이 지나는 길목이 다시 열렸으니 말이다.

그런데 발표문을 한 겹 벗겨내면 이야기가 단순하지 않다. 양측이 합의한 것은 완결된 평화조약이 아니라 양해각서(MOU), 곧 골격만 그린 잠정 합의다. 정식 서명은 6월 19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예정돼 있고, 핵·제재·동결 자산 같은 진짜 난제는 60일짜리 후속 협상으로 미뤄졌다. 그리고 가장 미묘한 대목 — 다시 열린 호르무즈를 ‘누가, 어떤 자격으로 관리하느냐’ —는 “통행료 없는 개방”이라는 구호 뒤편에서 여전히 흐릿하게 남아 있다.

이 글은 그 흐릿한 자리를 들여다본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해협이 어떻게 무기가 되었으며, 이번 합의가 무엇을 풀고 무엇을 미뤘는지를 차례로 짚는다. 그리고 원유 수입의 약 70%를 이 좁은 바닷길에 의존하는 한국에게 이 합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로 마무리한다.


01왜 호르무즈인가 — 35km의 병목

호르무즈 해협은 페르시아만(아라비아만)과 아라비아해를 잇는 좁은 수로다. 북쪽으로는 이란, 남쪽으로는 오만과 아랍에미리트(UAE)가 마주 본다. 가장 좁은 곳의 폭은 약 33~38km에 불과하고, 실제 대형 선박이 다니는 항로(통항분리방식, TSS)의 폭은 양방향을 합쳐도 채 10km가 되지 않는다. 사우디아라비아·이라크·쿠웨이트·UAE·카타르가 생산하는 원유와 천연가스의 대부분이 이 한 점을 통과해 세계로 나간다.

이란 오만 · UAE 무산담 반도 페르시아만 아라비아해 최협부 약 33km 세계 해상 원유의 약 20% 통과
호르무즈 해협 모식도. 이란과 오만(무산담 반도) 사이 약 33km의 병목을 따라 세계 해상 원유의 약 5분의 1이 오간다. 점선은 양방향 통항 항로를 단순화한 것이다.
▷ 비유로 이해하기

호르무즈를 ‘세계 경제의 외나무다리’라고 생각해 보자. 아무리 큰 운동장이 있어도, 그곳을 드나드는 유일한 길이 폭 좁은 외나무다리 하나뿐이라면 다리 입구에 선 사람이 판 전체를 좌우한다. 산유국이 아무리 많은 기름을 퍼 올려도 그 기름이 세계로 나가는 출구가 이 한 곳에 몰려 있다면, 해협을 통제하는 측은 ‘기름을 한 방울도 생산하지 않고도’ 유가를 흔들 수 있다.

이란의 전략적 무기는 미사일이나 핵이 아니라 바로 이 ‘다리 입구에 서 있다’는 지리적 사실 그 자체다.

이 의존은 이론이 아니라 숫자다. 평시 기준으로 하루 약 2,000만 배럴의 원유와 세계 액화천연가스(LNG) 교역량의 약 5분의 1이 이 해협을 통과한다. 한국·중국·일본 등 동아시아 제조업 국가가 이 흐름의 최대 수요처다. 그래서 호르무즈가 막히면 그 충격은 중동이 아니라 아시아의 정유공장과 발전소, 그리고 주유소 가격표에서 먼저 나타난다.

≈20%
세계 해상 원유가
통과하는 비중
≈33km
최협부 폭
(항로는 더 좁음)
3국
한·중·일이 통과
물량의 핵심 수요처

02전쟁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 2월 28일

2026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은 12시간 동안 이란 전역에 900회에 가까운 공습을 퍼부었다. 표적은 미사일·방공망·군사기반시설, 그리고 무엇보다 지휘부였다. 이 첫 타격으로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와 수십 명의 고위 인사가 사망했다. 작전의 공언된 목표는 핵·탄도미사일 프로그램 무력화였지만, 실질적으로는 정권의 머리를 노린 ‘참수 작전’의 성격이 짙었다.

같은 공습 과정에서 반다르아바스 인근 미나브의 한 여학교가 해군기지 옆에 있다가 미사일에 피격돼 약 170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군사적 충격과 동시에 민간인 대량 피해가 발생하면서, 작전의 정당성을 둘러싼 국제적 논쟁이 곧바로 불붙었다.

이란의 대응은 즉각적이고 광범위했다. 미군 기지, 이스라엘 본토, 그리고 걸프 아랍국가에 자리한 미군 시설과 에너지·민간 인프라를 향해 수백 발의 미사일과 수천 대의 드론을 쏟아부었다. 바레인·카타르·키프로스의 기지가 공격받았고, 중동을 오가는 항공편이 멈췄으며, 선박들은 호르무즈와 홍해를 피해 항로를 돌리기 시작했다. 한 지역 전쟁이 순식간에 세계 무역과 에너지 시장의 문제로 번진 것이다.

지도부 공백은 빠르게 메워졌다. 전쟁 직전부터 예비돼 있던 안배에 따라 최고국가안보회의 사무총장 알리 라리자니가 초기 사실상의 지도자 역할을 했고, 곧 하메네이의 아들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새 최고지도자로 승계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기대했던 ‘정권 붕괴’ 대신, 이란은 강경파 중심으로 빠르게 진영을 재정비했다.

전쟁의 첫 표적은 지휘부였지만, 전쟁의 실제 전선(戰線)은 곧 바다 위로 옮겨갔다.

03해협을 무기로 — 이란의 ‘통행료 부스’

전쟁이 시작되자 이란은 보유한 가장 강력한 비대칭 카드를 꺼냈다. 호르무즈를 사실상 봉쇄한 것이다. 기뢰 부설, 혁명수비대(IRGC) 해군의 검문, 드론·순항미사일을 동원한 유조선 위협이 동시에 진행됐다. 전면적인 ‘완전 차단’은 아니었지만, 통항을 선별적으로 통제하는 방식만으로도 효과는 충분했다. 보험료가 치솟고, 선주들은 운항을 망설였으며, 유가는 급등했다.

주목할 대목은 그다음이다. 이란은 단순히 길을 막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길을 ‘과금 대상’으로 바꾸려 했다. 2026년 3월 무렵 해운업계는 이란이 일종의 ‘통행료 부스(toll booth)’ 체계를 가동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선박 운영사는 이란과 외교적 합의가 있는 국가 소속이 아니면 혁명수비대의 심사 절차를 거쳐야 했고, 일부 선박은 미국 달러 결제망을 피해 위안화로 통행 대가를 치렀다는 보도가 나왔다. 5월에는 이란 의회가 이 ‘해협 관리’를 법제화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였다.

▷ 비유로 이해하기

강 하구에 다리를 가진 영주가 있다고 하자. 다리를 부숴 버리면 모두가 손해를 보지만, 다리를 열어 두되 ‘통행세’를 걷는다면 영주는 매일 수입을 챙긴다. 봉쇄는 한 번 쓰면 사라지는 위협이지만, 과금은 영구적인 권력이다.

이란이 노린 것은 바로 이 전환이었다. ‘닫겠다는 위협’을 ‘열어 주는 대가를 받겠다는 권리’로 바꾸는 것 — 일회성 협박을 상시적 수익원이자 지렛대로 제도화하려는 시도였다.

2.28 전쟁 발발 미·이스라엘 기습 공습 최고지도자 하메네이 등 지도부 사망 3월 초 이란, 호르무즈 사실상 봉쇄 기뢰·검문·‘통행료 부스’ 체계 가동 3.19 미국, 해협 재개방 공습전 개시 이란 함정·드론 타격, 봉쇄 무력화 시도 4.8 첫 휴전 조건부 2주 휴전 파키스탄 중재, 안전 통항 보장 조건 4.13 미국, 이란 항만 해상봉쇄 중재 결렬 후 ‘맞봉쇄’로 압박 6.14 종전 합의 종전·해협 재개방 골격 합의 발표 양해각서(MOU) 디지털 서명, 봉쇄 해제 6.19 예정 제네바 정식 서명 예정 이후 60일간 핵·제재 후속 협상
2026년 2월 28일 개전부터 6월 19일 정식 서명 예정까지의 주요 일지. 붉은 표시는 무력 국면, 청록 표시는 외교 국면이다.

04합의의 골격 — 무엇이 풀렸나

미국이 해협을 강제로 다시 열려고 3월 19일 공습전을, 4월 13일에는 이란 항만에 대한 ‘맞봉쇄’를 가했지만, 군사력만으로 좁은 바닷길을 안전하게 정상화하기는 어려웠다. 봉쇄와 맞봉쇄가 맞물리면서 양측 모두 출혈이 커졌고, 결국 협상 테이블이 다시 차려졌다. 파키스탄이 중재자로 나서고 여러 차례 협상이 결렬·재개된 끝에, 6월 14일 밤 종전 골격 합의가 발표됐다.

이번 합의의 형식은 정식 평화조약이 아니라 양해각서다. 미국 측 서명은 디지털 방식으로 이뤄졌고, 6월 19일 제네바에서 파키스탄이 주관하는 정식 서명식이 예정돼 있다. 합의문 전문은 아직 완전히 공개되지 않았으나, 발표된 골자는 다음과 같다.

◆ 양해각서(MOU) 핵심 골자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발표 직후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4.5% 넘게 떨어져 배럴당 80달러 안팎으로, 3월 초 이후 최저 수준이 됐다. 브렌트유도 약 4% 하락해 83달러 부근을 오갔다. 미국 증시는 상승했고, 한때 100달러 선을 넘봤던 유가의 공포 프리미엄이 빠르게 걷혔다.

다만 ‘떨어졌다’는 표현에는 함정이 있다. 80달러는 전쟁 이전과 비교하면 결코 낮은 가격이 아니다. 유가는 전쟁 발발 이후로는 20% 이상, 연초 대비로는 40% 이상 높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시장이 반긴 것은 ‘싸졌다’가 아니라 ‘더 나빠지지 않게 됐다’는 안도였다.

$110 $90 $70 $50 2.28 개전 전쟁 고조 · 100달러 위협 4.8 휴전 6.14 합의 · $83 연초 2월말 3~4월 4월 5월 6월 단위: 배럴당 미국 달러(브렌트유 기준, 개략적 추세 표현)
전쟁 국면 유가 추이 개략도. 연초 대비 한때 약 두 배 가까이 치솟았다가, 6월 합의 발표로 80달러대로 내려왔다. 그래도 전쟁 이전보다는 높은 수준이다. 정확한 일별 시세가 아니라 추세를 보여 주기 위한 도해다.

05‘통행료 없는 개방’의 역설

이번 합의에서 가장 들여다볼 만한 대목은 ‘누가 해협을 관리하느냐’이다. 미국 대통령은 “통행료 없는(toll-free) 개방”을 거듭 강조했다. 그런데 같은 시점, 이란 외교부 대변인은 미묘하게 다른 말을 했다. 테헤란은 ‘통행료(toll)’를 부과하지 않겠다 — 다만 항행 서비스, 환경 보호, 선박 보험 등 이란과 오만이 제공하는 ‘서비스 수수료(fee)’는 받겠다는 것이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양해각서에는 60일의 무료 유예기간 뒤 새 수수료 체계가 가동된다는 내용이 담겼고, 해협에 대한 이란·오만의 ‘주권’을 명시하는 문구가 포함됐다고 전해진다. 합의문 전문이 아직 완전히 공개되지 않아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적어도 발표된 신호는 일관된 방향을 가리킨다. 전쟁 이전의 ‘자유 항행’으로 단순 복귀하는 것이 아니라, 이란이 해협 운영에 일정한 권한과 수입원을 확보하는 새 질서가 들어설 수 있다는 것이다.

‘통행료(toll)’냐 ‘서비스 수수료(fee)’냐 — 이 단어 하나의 차이가 합의 전체의 무게중심을 결정한다.

왜 단어가 그토록 중요한가. 국제법, 구체적으로 유엔 해양법협약(UNCLOS, United Nations Convention on the Law of the Sea)이 그 답이다. 협약은 해협에 면한 연안국이 통항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의무를 지우며(제44조), 영해를 단지 ‘통과한다’는 이유만으로 선박에 요금을 부과하는 것을 금지한다(제26조). 다만 차별 없이 ‘특정 서비스’를 실제로 제공한 경우의 대가는 예외로 허용된다.

바로 이 예외 조항이 회색지대다. ‘통행세’라고 부르면 명백한 협약 위반이지만, ‘항행 안전·환경·보험 서비스의 대가’라고 부르면 합법의 외형을 갖출 수 있다. 이란이 ‘toll은 안 받고 fee는 받는다’고 한 것은 바로 이 법리적 틈을 의식한 표현이다. 유엔 산하 국제해사기구(IMO, International Maritime Organization)는 일찍이 해협 통행료가 “위험한 선례”가 될 것이라 경고했고, 세계 최대 해운국 중 하나인 그리스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그럼에도 합의가 ‘서비스 수수료’라는 이름의 출구를 열어 두었다면, 이는 이란에게 패전국이 아닌 ‘해협 관리자’의 지위를 일부 인정해 주는 결과가 된다.

▷ 비유로 이해하기

고속도로를 떠올려 보자. 단지 도로를 ‘지나간다’는 이유로 돈을 걷으면 통행세다. 그러나 휴게소·견인·조명·제설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대가를 받는다면 요금의 성격이 달라진다. 똑같이 운전자 지갑에서 돈이 나가더라도, 법적으로는 전혀 다른 이름표가 붙는다.

이란이 시도하는 것은 ‘호르무즈 통행세’라는 금지된 이름표를 떼고, ‘항행 서비스 요금’이라는 허용된 이름표로 바꿔 다는 일이다. 돈의 흐름은 비슷하되, 그것을 부르는 이름이 합법과 위법을 가른다.

여기서 ‘이란이 호르무즈를 관리하게 될 것’이라는 관측의 실체가 드러난다. 군사적으로는 미국이 봉쇄를 풀고 항로를 다시 열었으니 ‘승리’처럼 보인다. 그러나 외교 문서의 행간에서는, 전쟁 전 누구의 것도 아니던 ‘공해(公海)적 길목’이 이란·오만이 운영과 과금에 관여하는 ‘관리되는 수로’로 한 발 옮겨 갈 여지가 생겼다. 전쟁의 포성은 멎었지만, 해협의 통제권을 둘러싼 더 긴 협상은 이제 시작인 셈이다.


06아직 풀리지 않은 매듭

합의가 ‘골격’에 머무는 이유는, 정작 전쟁의 근본 원인이었던 문제들이 모두 뒤로 미뤄졌기 때문이다. 60일이라는 후속 협상 시한 안에 풀어야 할 매듭은 크게 세 가닥이다.

쟁점현재 상태와 쟁점
핵 프로그램농축 우라늄 재고 처리와 향후 농축 권한이 핵심. 양측 입장차가 가장 크며 ‘사실상 교착’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은 “이란은 핵무기를 결코 갖지 못한다”는 원칙을 재확인.
제재·동결 자산약 240억 달러 규모 이란 자금의 동결 해제와 원유 제재 유예가 협상 진입의 전제 조건. 이란은 “자금 해제 없이는 핵 협상도 없다”는 입장, 미국은 이를 일축하며 신경전.
지역·안보 구도레바논 전선(이스라엘–헤즈볼라) 중단 이행, 이란의 역내 무장세력 지원, 그리고 호르무즈의 항구적·완전 개방을 누가 보증하느냐의 문제.

합의문에는 ‘최종 타결은 일정 조건의 이행에 달려 있다’는 취지의 조항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진다. 동결 자금의 단계적 해제, 원유 제재의 유예, 해상봉쇄의 완전 철회가 맞물려야 비로소 본 협상이 굴러간다는 구조다. 바꿔 말하면, 어느 한 톱니가 어긋나는 순간 휴전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실제로 2월 말 개전 이후 4월의 1차 휴전은 ‘조건부 2주’짜리였고, 그 사이에도 산발적 교전과 봉쇄·맞봉쇄가 이어졌다. 이번 합의 역시 잉크가 마르기 전부터 이행의 진정성을 둘러싼 시험대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지도부 교체의 후유증도 변수다. 강경파 중심으로 재편된 새 체제가 ‘서비스 수수료’를 명분으로 한 해협 수입을 경제 재건의 재원으로 삼으려 한다면, 미국·유럽·걸프 국가가 이를 어디까지 용인할지가 다음 국면의 핵심 쟁점이 된다. 영국·프랑스가 주도하는 해협 안전 보장 다국적 임무 구상도 ‘전쟁이 끝나야 가동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던 만큼, 종전 이후 어떤 형태로 구체화될지 지켜볼 대목이다.


07한국의 셈법 — 70%의 바닷길

이 모든 이야기가 한국과 무슨 상관인가. 상관의 정도는 숫자로 분명하다. 한국은 1차 에너지의 절대다수를 수입에 의존하며, 에너지 수입 의존도는 최근 수년간 90% 중반에 이른다. 그중에서도 원유 수입의 약 70%가 중동산이고, 그 중동산 원유의 대부분이 바로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 들어온다. LNG 역시 카타르를 비롯한 중동 물량이 약 20% 안팎을 차지한다.

원유 수입 약 70% — 중동·호르무즈 경유 기타 30% LNG 수입 약 20% 호르무즈 영향권 외 약 80% 한국 에너지 수입 의존도는 90% 중반. 원유의 약 70%가 호르무즈를 통과하는 구조다(무역통계 기준 개략치).
한국이 호르무즈에 묶여 있는 정도. 원유는 약 70%가 이 해협을 지나며, LNG도 약 20%가 영향권에 든다.

해협이 막히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단기적으로는 원유 도입 차질과 유가 급등이다. 우회 항로를 쓸 경우 해상운임이 기존 대비 50~80%까지 오를 수 있고, 운송 기간도 며칠 늘어난다. 과거 사례에서는 전쟁위험 보험료가 최대 일곱 배까지 할증된 적도 있다. 유가·운임·보험료가 동시에 뛰면, 그 비용은 정유·석유화학 원가를 거쳐 결국 국내 물가와 제조 경쟁력으로 전가된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나라일수록 같은 충격이 더 크게 증폭된다.

그래서 이번 종전·재개방 합의는 한국 입장에서 분명한 호재다. 봉쇄 해제와 유가 안정은 당장의 수급 불안과 비용 압박을 덜어 준다. 그러나 ‘이란이 관리하는 해협’이라는 새 질서의 그림자도 함께 본다면, 안도만 할 일은 아니다. 만약 60일 뒤 ‘서비스 수수료’ 체계가 실제로 가동된다면, 한국으로 들어오는 원유·가스에도 보이지 않는 ‘해협 비용’이 얹힐 수 있다. 그 부담은 작더라도, 세계 최대 수입국 중 하나인 한국에는 구조적인 비용으로 누적된다.

◆ 한국에 남는 과제

08잠정적 평화, 미완의 질서

유조선의 엔진은 다시 돌았다. 석 달 넘게 세계 경제를 옥죈 전쟁이 일단 멈췄고, 유가의 공포 프리미엄도 걷혔다. 그 자체로 이것은 좋은 소식이며, 호르무즈에 명운을 건 한국에는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번 합의의 본질은 ‘완결’이 아니라 ‘유예’다. 핵·제재·동결 자산이라는 진짜 매듭은 60일 뒤로 미뤄졌고, 해협의 관리권을 둘러싼 질서는 ‘통행료 없는 개방’이라는 구호와 ‘서비스 수수료’라는 단어 사이에서 아직 형태를 잡지 못했다. 정식 서명이 끝나고 합의문 전문이 공개되어야, 다시 열린 이 바닷길이 ‘전쟁 이전’으로 돌아간 것인지, 아니면 ‘이란이 관리하는 새로운 길목’으로 바뀐 것인지가 분명해질 것이다.

호르무즈의 폭은 여전히 33km다. 세계 경제가 이 좁은 외나무다리에 명운을 거는 구조도 바뀌지 않았다. 바뀐 것은 다리 입구에 서 있는 자의 발언권이다. 그 발언권이 어디까지 제도화되느냐 — 그것이 이번 종전이 남긴, 그리고 앞으로 60일이 답해야 할 진짜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