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 노동 ·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를 배우라”던 2010년대의 처방은 어떻게 뒤집혔는가. 진입직 일자리부터 먼저 거둬가는 인공지능 시대에, 한 세대 전의 교육 실험들이 남긴 진짜 교훈을 데이터로 다시 읽는다.
10여 년 전, 세계의 앞선 대학들은 같은 진단을 내렸다. 기술이 노동을 빠르게 재편할 것이며, 살아남는 인재는 ‘새 지식을 빨리 익히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처방은 분명해 보였다. 강의실을 프로젝트 작업장으로 바꾸고, 누구에게나 코딩을 가르치고, 정답을 외우는 대신 문제를 직접 풀게 하라. 그 처방을 가장 과감하게 실험한 학교들은 실제로 명문의 반열에 올랐다.
그런데 2025년의 노동시장 데이터는 그 시절의 낙관이 가정했던 안전지대를 정반대로 가리키고 있다. 한때 ‘미래가 보장된 직무’로 여겨지던 진입직 소프트웨어·분석 일자리가, 다름 아닌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에 가장 먼저 잠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그 역설을 해부한다. 무엇이 잘못 읽혔고, 무엇이 여전히 옳았으며, 2026년 현재 ‘대체되지 않는 인재’라는 말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검증 가능한 수치로 추적한다.
2016년,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WEF)은 〈일자리의 미래〉 보고서에서 다소 음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주요 15개 경제권에서 2015년부터 2020년 사이에 약 71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200만 개가 새로 생겨, 순감소가 510만 개에 이르리라는 것이었다. 사라지는 일자리의 3분의 2는 사무·행정 같은 정형 화이트칼라 직무였고, 새로 생겨나는 일자리는 컴퓨터·수학, 건축·공학 분야에 집중될 것으로 분석됐다.
이 보고서가 그린 그림은 단순하면서도 강력했다. 기계가 반복적·정형적 업무를 흡수하는 대신, 그 기계를 만들고 다루는 고숙련 직무의 수요가 폭발한다는 것이다. 같은 시기 산업 지형도 그 서사를 뒷받침했다.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의 비중을 넘어섰고,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먹는다’는 말이 통념이 됐다. 2017년 무렵 세계에서 가장 비싼 기업 다섯 곳은 모두 미국의 정보기술(IT) 기업이었다.
결론처럼 보이는 메시지는 명확했다. 기술을 다루는 능력, 특히 코딩이 곧 고용 안정의 보증수표라는 것이다. 학생도, 학부모도, 정책 입안자도 이 신호를 같은 방향으로 읽었다. 그리고 세계의 여러 대학이 그 신호에 따라 교육의 형태 자체를 바꾸기 시작했다.
이 시기 교육 혁신의 공통점은 ‘지식 전수’에서 ‘문제 해결’로의 이동이었다. 교수가 단상에서 정답을 전달하고 학생이 받아 적는 20세기형 모델 대신, 학생이 팀을 이뤄 직접 부딪치며 원리를 깨우치는 방식이다. 교수의 역할은 ‘전문가’에서 ‘코치’로 옮겨갔다.
교육 패러다임의 전환. 강의식 지식 전달에서, 학생이 팀을 이뤄 문제를 직접 푸는 프로젝트 기반 학습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갔다. 이 전환이 2010년대 교육 혁신의 공통 문법이었다.
네 곳의 학교가 이 전환을 각기 다른 강도로 밀어붙였다.
프로젝트 기반 공학 설계
기계공학 설계 수업에서 학생들은 교재 대신 공구를 들고 팀 단위로 무언가를 만든다. 교수는 멀찍이서 지켜보며 큰 틀의 조언만 한다. 16년간 총장을 지낸 존 헤네시가 교육 패러다임을 재설계했고, 현실을 최고의 교사로 삼는다는 원칙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
전공·비전공의 경계 허물기
데이비드 멀런이 2007년 재설계한 컴퓨터과학 입문 강좌. 수강생이 132명(2006년)에서 약 800명까지 늘며 하버드 최대 규모 강좌가 됐다. 수강생의 4분의 3가량은 프로그래밍 경험이 전혀 없었고, 온라인 공개강좌(edX)로는 100만 명 넘게 들었다.
교수·교재·학비가 없는 학교
2013년 파리에서 문을 연 정보기술 양성 학교. 교수도, 교재도, 학비도, 학위도 없다. ‘피신(la piscine)’이라 불리는 4주간의 자력 코딩 시험으로 선발하며, 첫해 약 7만 명이 지원해 890명이 입학했다(합격률 약 1.3퍼센트). 지금은 30여 개국 50여 캠퍼스로 확장됐다.
‘이론 먼저’를 뒤집다
1997년 설립, 4억6천만 달러 이상의 기금 위에 세워진 보스턴 근교의 공대. 입학 첫날부터 실습에 뛰어들게 하고, 학과의 벽을 허물어 전기·기계·소프트웨어를 융합한다. 설립 20여 년 만에 세계 공학 교육의 선도 모델로 꼽힌다.
이들이 공유한 신념은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불확실한 세상에서 살아남는 능력은 특정 지식의 양이 아니라 ‘배우는 법 자체’를 익히는 데 있다. 에콜 42의 설립 철학은 이를 가장 날카롭게 표현했다. 더 이상 지식을 전수하는 체계가 아니라, 새로움을 창조하는 논리 위에 서 있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코딩은 과학이 아니라 인간이 함께 짓는 일종의 예술로 규정됐고, 학생은 ‘디지털 예술가’로 불렸다.
지식 전수형 교육이 ‘지도를 통째로 외우게 하는 것’이라면, 문제 해결형 교육은 ‘낯선 도시에서 길 찾는 법을 익히게 하는 것’에 가깝다. 외운 지도는 도시가 바뀌면 무용지물이 되지만, 길 찾는 능력은 어느 도시에서도 작동한다. 2010년대 교육 혁신의 핵심 베팅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2022년 말, 대규모 언어모델(Large Language Model, LLM)을 기반으로 한 생성형 인공지능이 대중화됐다. 그 후 3년간 누적된 데이터는 10년 전 시나리오가 가정하지 못한 방향을 가리킨다. 자동화의 칼날이 향한 곳은 ‘외워야 하는 정형 업무’만이 아니었다. 새로 진입하는 사람이 첫 경력을 쌓던 바로 그 자리, 즉 진입직 지식노동이 가장 먼저 흔들렸다.
스탠퍼드 디지털경제연구소의 에릭 브린욜프슨 연구팀이 2025년 8월 발표한 〈탄광 속 카나리아〉 보고서는 그 신호를 처음으로 대규모 실측 데이터로 포착했다. 미국 최대 급여처리 업체의 수백만 건 임금 기록을 분석한 결과, 생성형 AI 확산 이후 AI 고노출 직군에서 일하는 22~25세 청년의 고용이 약 13퍼센트 상대적으로 감소했다. 같은 직군이라도 경력직과 30세 이상은 고용이 안정적이거나 오히려 늘었다. 청년 소프트웨어 개발자만 보면 감소 폭은 약 20퍼센트에 달했다.
생성형 AI 대중화(2022년 말) 시점을 100으로 둔 상대 고용 추이의 개념도. 같은 AI 고노출 직군 안에서도 청년층은 고용이 줄고, 경력직은 안정적이거나 늘었다. 출처: 스탠퍼드 디지털경제연구소 〈탄광 속 카나리아〉(2025).
이 보고서의 표현을 빌리면, 청년이 아는 것과 LLM이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상당 부분 겹친다. 정형화된 코드 작성, 1차 분석, 초안 작성처럼 ‘교과서로 배워 곧장 써먹는’ 업무일수록 모델이 빠르게 흡수했기 때문이다. 감소는 AI가 인간을 ‘보강’하는 직무가 아니라 ‘대체’하는 직무에 집중됐다는 점도 함께 확인됐다.
같은 현상은 다른 지표에서도 반복된다. 한 벤처투자사 분석에 따르면 미국 대형 기술기업의 신입 채용은 2024년에 전년 대비 25퍼센트, 팬데믹 이전과 비교하면 50퍼센트가량 줄었다. 2025년 9월 기준 학사 이상 20~24세 청년의 실업률은 약 9.5퍼센트로, 전체 성인 실업률의 두 배에 가깝다. 취업에 성공해도 절반에 가까운 졸업생이 학위가 필요 없는 일자리에 머무는 ‘하향 취업’ 상태로 분석된다.
업계 지도자들의 진단은 한층 직설적이다. 한 선도 AI 기업의 최고경영자는 2025년에 AI가 향후 수년 내 진입직 화이트칼라 일자리의 절반가량을 없앨 수 있다고 경고했고, 한 글로벌 채용 플랫폼의 경제 책임자는 “경력 사다리의 맨 아랫칸이 부서지고 있다”고 표현했다. 초급 개발자가 경험을 쌓던 단순 코딩과 디버깅 업무를 AI 도구가 잠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짚어야 할 것은 10년 전 진단이 ‘틀렸다’가 아니라 ‘오독됐다’는 점이다. 당시 신호는 분명 “기술을 다룰 줄 알라”였다. 그러나 대중적 해석은 그 신호를 “특정 기술 스택을 배우면 평생 안전하다”로 압축했다. 코딩은 목적이 아니라 하나의 표상이었는데, 표상이 목적으로 굳어진 것이다.
이 오독이 위험했던 이유는, 정형화된 기술일수록 자동화에 먼저 노출되기 때문이다. 특정 언어의 문법, 표준적인 알고리즘 구현, 반복적인 데이터 정리는 인간이 ‘배워서 곧장 수행하던’ 업무인 동시에, 모델이 ‘학습해 곧장 재현하는’ 업무이기도 하다. 진입직이 먼저 흔들린 것은 우연이 아니라, 진입직 업무가 정의상 가장 표준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WEF의 2025년 〈일자리의 미래〉 보고서는 이 차이를 수치로 드러낸다. 2030년까지 전 세계에서 1억7천만 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기고 9천200만 개가 사라져, 순증가 7천800만 개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2016년의 순감소 전망과는 방향이 다르지만, 핵심은 총량이 아니라 회전율에 있다. 노동자가 가진 핵심 역량의 약 39퍼센트가 2030년까지 바뀌거나 낡은 것이 되리라는 것이다. 기술 하나를 익혀 평생을 버틴다는 전제 자체가 무너지고 있다.
계산기가 보급되자 ‘암산 속도’라는 기술의 시장가치는 떨어졌다. 그러나 ‘어떤 계산을 해야 하는지 판단하는 능력’의 가치는 오히려 올라갔다. 생성형 AI도 같은 일을 한다. 정형 코드 작성의 가치는 떨어뜨리면서, ‘무엇을 만들지 정의하고 결과를 검증하는 판단’의 가치는 끌어올린다. 사다리의 첫 칸이 사라진 자리에서 살아남는 능력은 후자 쪽에 있다.
역설의 다른 쪽 면이 여기서 드러난다. 앞서 본 학교들이 진짜로 가르친 것은 ‘코딩’이라는 자격증이 아니었다. 협업, 비판적 사고, 창의성, 그리고 낯선 문제 앞에서 두려움 없이 스스로 길을 찾는 학습 능력이었다. 코딩은 그 능력을 단련하는 매개였을 뿐이다. 그리고 바로 그 역량들이, AI가 가장 흉내 내기 어려운 영역으로 남아 있다.
WEF 2025 보고서에서 고용주가 꼽은 핵심 역량 1위는 여전히 ‘분석적 사고’다. 응답 기업 열 곳 중 일곱 곳이 필수라고 답했다. 그 뒤를 회복탄력성·유연성·민첩성, 리더십과 사회적 영향력, 창의적 사고, 동기부여와 자기인식이 잇는다. 가장 빠르게 수요가 느는 기술로는 AI·빅데이터, 네트워크·사이버보안, 기술 문해력이 꼽혔지만, 보고서의 결론은 둘 중 하나가 아니라 둘의 결합이다. 기술 역량과 인간 고유의 역량을 함께 갖춘 인재 프로필이 가장 귀해진다는 것이다.
2026년 노동시장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자리는 두 역량의 교집합이다. 기술만으로도, 인간적 자질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AI를 대체 대상이 아니라 ‘부리는 도구’로 쓰는 사람이 이 교집합에 선다.
‘보강이냐 대체냐’의 구분은 이 대목에서 결정적이다. 스탠퍼드 연구가 보여준 것은, 고용이 줄어든 쪽이 AI가 인간을 ‘대체’하는 직무였던 반면, AI를 ‘보강’ 도구로 쓰는 노동자는 오히려 고용이 늘었다는 사실이다. 같은 도구를 두고도 ‘내가 하던 일을 모델에 넘긴 사람’과 ‘모델을 써서 더 큰 일을 해낸 사람’의 운명이 갈렸다. 한 세대 전 학교들이 길러내려 한 것은 정확히 후자, 즉 새 도구가 등장해도 그것을 자기 문제에 끌어다 쓰는 사람이었다.
흥미롭게도, 이 변화에 가장 먼저 응답한 곳 중 하나가 앞서 본 하버드의 입문 강좌다. 강좌를 이끄는 교수는 이제 “프로그래밍보다 더 중요해진 것”을 전면에 내세운다. 문법을 외우는 일보다, 문제를 정의하고 AI를 협업 도구로 활용하며 결과를 비판적으로 검증하는 능력에 무게를 옮긴 것이다. 가르치는 ‘기술’은 바뀌었지만, 기르려는 ‘능력’은 한 세대 전과 같다.
이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갈 수 있다. ‘대체되지 않는 인재’란 무엇인가. 2017년의 답이 “고숙련 기술직, 특히 소프트웨어 인력”이었다면, 2026년의 데이터가 가리키는 답은 더 정교하다. 그것은 직무의 이름이 아니라 역량의 조합이다.
WEF는 2030년 노동자에게 필요한 역량을 여섯 개 묶음으로 정리한다. 분석적 사고와 혁신, 기술의 사용과 설계, 복합 문제 해결, 자기관리와 회복탄력성, 사람과 함께 일하는 능력, 창의성과 주도성이 그것이다. 절반은 기계와 겹치지 않는 인간 영역이고, 나머지 절반은 기계를 다루는 영역이다. 두 묶음 모두를 자기 안에서 연결하는 사람이 자동화의 회전문을 통과한다.
산업 지형도 이 진단과 맞물린다. 2026년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비싼 기업은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만드는 반도체 회사이며, 시가총액 상위권은 AI 인프라를 둘러싼 기업들로 채워져 있다. 2017년의 ‘소프트웨어 기업의 시대’가 2026년에는 ‘AI 인프라의 시대’로 한 겹 더 이동한 셈이다. 가치가 집중되는 지점이 빠르게 옮겨 다니는 만큼, 특정 위치를 점하는 능력보다 그 이동을 따라가는 능력이 더 중요해진다.
대체 위험이 높은 일은 ‘정형화·반복·표준화된 단일 기술 업무’다. 대체되기 어려운 일은 ‘맥락을 읽어 문제를 정의하고, 여러 분야를 연결하며, 불확실성 속에서 판단하고, AI의 산출물을 검증·재조합하는 업무’다. 둘을 가르는 것은 직업의 종류가 아니라 그 안에서 사람이 맡는 역할의 성격이다.
이 분석에는 한계도 분명히 있다. 스탠퍼드 연구진조차 사라지는 일자리와 생겨나는 일자리의 최종 균형이 어떻게 될지는 누구도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다고 못 박는다. 자동화가 실업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새로운 직무를 충분히 만들어낼지는 기술의 속도만이 아니라 교육·훈련 체계가 그 변화에 얼마나 빨리 적응하느냐에 달려 있다. 다시 말해, 결과를 좌우하는 변수는 ‘사회의 유연성’이다.
한 세대 전 교육 실험들의 결론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코딩을 배우면 안전하다’는 표면적 해석은 생성형 AI 앞에서 무너졌다. 그러나 ‘배우는 법을 익히고, 협업하고,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라’는 더 깊은 메시지는 오히려 더 단단해졌다. 첫 번째는 시대의 산물이었고, 두 번째는 시대를 통과해 살아남은 원리였다.
WEF는 2030년까지 전 세계 노동자의 약 59퍼센트가 재교육이나 기술 향상을 필요로 하며, 고용주의 77퍼센트가 인력의 재교육을 계획하고 있다고 전한다. 동시에 41퍼센트는 AI가 특정 업무를 자동화함에 따라 인력을 줄이겠다고 답했다. 같은 보고서 안에 위기와 기회가 함께 들어 있는 셈이다. 그 갈림길에서 어느 쪽으로 향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변화의 속도에 학습이 얼마나 보조를 맞추느냐다.
교수도 학비도 없이 학생을 24시간 작업실에 풀어놓던 한 학교의 실험이 2026년에 다시 읽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학교가 가르친 것은 결국 한 가지였다. 정답이 주어지지 않는 세상에서, 두려움 없이 스스로 길을 내는 법. 자동화가 가장 먼저 거둬가는 것이 ‘정해진 답을 수행하는 일’이라면, 가장 오래 남는 것은 바로 그 ‘길을 내는 능력’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