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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흔해진 다음의 경제학

AI가 '기본값'이 된 시대,
가치는 어디서 생기는가

AI 기술 자체가 차별점이 되지 못하는 세계에서, 돈은 도구가 아니라 문제·피드백·신뢰·몰입으로 이동한다.

2026년 6월 16일 분야 · AI 경제 / 일과 동기 읽는 시간 약 14분

불과 얼마 전까지 "AI를 다룰 줄 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경쟁력이었다. 프롬프트를 잘 짜고, 모델을 붙이고, 자동화를 엮는 능력이 곧 차별화였다.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AI는 특별한 무기가 아니라 전기나 인터넷처럼 누구나 켜고 쓰는 설비, 곧 기본값(default)이 되었다. 그리고 기본값이 된 것은 더 이상 차별점이 될 수 없다.

이 변화는 단순한 기분이 아니라 비용 곡선과 도구 보급률이 함께 만들어 낸 구조적 사건이다.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은, 굳이 남이 만든 것을 돈 주고 사지 않는다. "조악하더라도 내가 만들 수 있다면" 시장은 빠르게 자급(自給)으로 기운다. 그렇다면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기술이 흔해지면 가치는 사라지는가, 아니면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가.

결론을 미리 말하면, 가치는 사라지지 않고 이동한다. 기술 계층(layer)의 한계 비용이 0에 수렴할수록, 가치는 그 위층 ― 문제를 정의하는 능력, 피드백을 길어 올리는 능력, 신뢰를 쌓는 관계, 그리고 사람만이 만들 수 있는 몰입 ― 으로 빠르게 올라간다. 이 글은 그 이동의 지도를 여섯 단계로 그린다.


01 · 상품화기술은 어떻게 흔해지는가

경제학에서 어떤 재화의 가격은 장기적으로 한계 비용(한 단위를 더 만드는 데 드는 비용)에 수렴한다. 소프트웨어와 인공지능은 복제 한계 비용이 사실상 0에 가깝다. 여기에 모델 자체를 만드는 비용까지 빠르게 떨어지면, 기술은 '희소한 자산'에서 '흔한 부품'으로 내려앉는다. 이것이 상품화(commoditization)다.

가장 상징적인 신호는 2023년 5월 외부로 새어 나온 한 대형 기술기업 내부 문건이었다. "우리에게는 해자(moat)가 없다 ― 그리고 그것은 경쟁사도 마찬가지다"라는 제목의 이 메모는, 수억 달러를 들여 거대 언어 모델을 훈련하는 막대한 투자가 정작 지속적인 경쟁 우위를 만들어 주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오픈소스 진영이 더 빠르고, 더 값싸고, 더 맞춤화하기 쉬운 방식으로 핵심 문제들을 따라잡고 있다는 것이다. 메모의 작성자는 익명으로 공개됐으나 이후 해당 기업의 한 선임 엔지니어로 알려졌고, 이 문서는 업계에서 '해자 없음' 논쟁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 주장이 과장이었는지는 아직 논쟁거리다. 데이터·유통·제품 경험은 여전히 해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추세만큼은 분명하다. 기술을 쓰는 비용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모델 추론(inference) 단가는 2023년 초의 1세대 프런티어 모델에서 2024년 중반의 후속 모델 사이에 대략 100배 이상 떨어진 것으로 추산된다. 이것은 점진적 인하가 아니라 비용 장벽 하나가 통째로 주저앉은 사건이다.

비용만 떨어진 것이 아니다. '만드는 행위' 자체가 자연어로 내려왔다. 2025년 초 한 연구자가 바이브 코딩(vibe coding)이라는 말을 붙인 뒤, 코드를 직접 타이핑하는 대신 AI에게 의도를 말로 설명해 결과물을 얻는 방식이 주류가 되었다. 그 결과 개발의 문턱은 비개발자에게까지 열렸다.

약 41%
2026년 기준 전 세계에서 새로 작성되는 코드 중 AI가 생성한 비중(업계 추산)
약 92%
미국 개발자 중 AI 코딩 도구를 매일 사용한다고 답한 비율
약 45%
AI가 생성한 코드에서 보안 취약점이 발견된 비율 ― 품질 검증의 몫은 여전히 사람에게 남는다

실제로 부동산 중개업자가 직접 고객 응대·리드 점수 산정·일정 관리를 처리하는 AI 에이전트를 코딩 없이 만들어 사업에 투입하는 사례들이 보고된다. 한때 전문 개발팀이 몇 달에 걸쳐 만들던 내부 도구를, 이제는 그 도구가 절실한 당사자가 직접 짜서 쓴다. '만드는 능력'의 희소성이 무너진 것이다.

여기서 시장의 논리는 뒤집힌다. AI 기술을 소개하는 콘텐츠 제작자나 솔루션 판매자가 처음 내놓는 서비스는, 그것이 기존에 없던 것이기에 잠깐 팔린다. 그러나 결국 사용자가 같은 결과물을 코딩 도구로 손쉽게 직접 만들 수 있게 되면, 사람들은 사 쓰기보다 만들어 쓰는 쪽으로 옮겨간다. 기술 그 자체를 파는 사업의 수명은 점점 짧아진다.

가치는 위층으로 이동한다 기술 계층 · 모델, 코드, 자동화 한계 비용 → 0 으로 수렴 · 누구나 만들 수 있음 (상품화) 문제 계층 · 무엇을, 누구를 위해 푸는가 문제 해결력 · 피드백 · 암묵지 끄집어내기 사람 계층 · 신뢰, 관계, 몰입 파트너십 · 내재적 동기 · 지금 그 사람만 낼 수 있는 것 AI가 대체 못함
아래층이 흔해질수록(상품화), 희소성과 가치는 위층으로 옮겨간다. AI는 아래층을 빠르게 잠식하지만, 맨 위층 ― 신뢰와 몰입 ― 은 대체하지 못한다.

02 · 문제 해결도구를 잘 다루는 것과 문제를 잘 푸는 것은 다르다

AI를 능숙하게 다룬다고 해서 문제를 잘 푸는 것은 아니다. 둘은 다른 능력이다. 문제를 잘 푸는 사람은, 단순히 도구가 손에 익은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많이 풀어 본 사람이다. 도구의 사용법은 며칠이면 배우지만, '무엇이 진짜 문제인가'를 보는 눈은 수많은 시행착오 속에서만 길러진다.

그런데 많은 시도가 정반대로 흐른다. 시중에 나와 있는 기술을 가져다 그럴듯한 서비스를 만들고, 결제(SaaS) 연동을 붙여 출시한 뒤, "마케팅을 태우면 팔리겠지" 하고 기다린다. 이 방식의 한계는 분명하다. 그 기술이 실제로 절실한 사람에게는 닿지 않은 채, 만든 사람의 머릿속 가설만으로 출시되기 때문이다.

가치는 반대 방향에서 생긴다. 아직도 반복 작업으로 하루를 채우는 현장은 많다. 그런 곳에 직접 찾아가 무엇이 필요한지 묻고, 단 10분이라도 실제로 도움이 되는 일을 해 보고, 거기서 피드백을 받는 것 ― 이것이 진짜로 돈이 되는 경로다.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는 정답일 가능성이 낮다. 정답은 현장에, 당사자의 일 속에 암묵적으로 들어 있다.

비유 · 드릴이 아니라 구멍

마케팅 학자 시어도어 레빗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1/4인치 드릴을 원하는 게 아니다. 1/4인치 구멍을 원한다." 고객이 사는 것은 드릴(도구)이 아니라 '벽에 뚫린 구멍'이라는 결과, 더 정확히는 그 구멍으로 선반을 달아 방을 정리하고 싶다는 목적이다.

AI 시대에 이 비유는 더 날카로워진다. 드릴(기술)은 이제 거의 공짜로 누구나 손에 쥔다. 그래서 드릴을 파는 사업은 무너진다. 팔리는 것은 여전히 '구멍' ― 즉 누군가의 구체적인 문제가 해결된 상태다. 이것이 '할 일 이론(Jobs to be Done)'이 말하는 핵심이다. 제품을 팔지 말고, 고객이 끝내고 싶어 하는 '할 일'을 끝내 주라는 것.


03 · 피드백완벽한 제품이 아니라, 빠른 피드백이 돈이다

제품을 기획하고 개발하기만 해서는 돈을 벌 수 없다. 돈은 피드백에서 나온다. 역설적이게도, 좋은 피드백보다 나쁜 피드백이 더 값질 때가 많다. 나쁜 피드백을 주는 사람은 그 제품에 무엇이 부족한지를 정확히 알려 주는 사람이고, 그 지점을 빨리 메울수록 제품은 좋아진다. 완벽하게 다듬은 제품이 돈을 벌어다 주는 것이 아니라, 나쁜 피드백을 빨리 받는 제품이 곧 좋은 제품이다.

그런데 지금은 무료로 풀어도 잘 쓰지 않는 시대다. "제발 써 달라"고 부탁해도 안 쓴다. 그래서 어렵게 얻어 낸 피드백 하나하나가 모두 돈이다. 문제는, 피드백을 받는 과정 자체를 어려워하는 사람이 많다는 점이다. 특히 개발과 논리를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사람과 부대끼는 비논리적인 대화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 논리적인 사람은 비논리적인 대화를 본능적으로 싫어한다. 그러나 돈을 벌려면 그 벽을 먼저 깨야 한다. 비논리적으로 보이는 사람이라도 설득하고, 그 사람의 문제를 풀어 주겠다는 사명이 있어야 한다.

피드백이 어려운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고객조차 자기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모른다. 자기가 도입할 수 있는 기술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이게 문제예요"라고 말하는 그 문제가 진짜 문제가 아닐 때가 많다. 따라서 피드백을 받는다는 것은, 단순히 불만을 수집하는 일이 아니라 고객이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영역을 끄집어내는 능력을 키우는 일이다.

비유 ·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안다

철학자 마이클 폴라니는 1966년 저서 『암묵적 차원(The Tacit Dimension)』에서 이렇게 정리했다. "우리는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안다." 그가 든 예가 얼굴 인식이다. 우리는 아는 사람의 얼굴을 즉시 알아보지만, 그 얼굴이 다른 얼굴과 무엇이 다른지를 말로 설명하라면 거의 하지 못한다. 자전거 타기, 빵 반죽하기처럼 몸으로 아는 지식 대부분이 이렇다.

이것이 암묵지(暗默知, tacit knowledge)다. 경제학자 데이비드 오터는 이를 '폴라니의 역설'이라 불렀다. 직관적으로 할 줄은 알지만 규칙으로 풀어 설명하지 못하는 지식. 현장의 고객이 가진 진짜 문제는 대개 이 암묵지의 영역에 잠겨 있다. 그래서 잘 듣는 능력, 즉 고객 자신도 모르던 문제를 표면으로 끌어올려 "아, 내가 이게 필요했구나"를 깨닫게 만드는 능력이 곧 경쟁력이 된다.


04 · 신뢰거래가 아니라 신뢰를 판다

"돈을 냈으니 알아서 해 주세요"라는 태도로는 자동화든 솔루션이든 잘 굴러가지 않는다. 돈만 있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일이 제대로 풀리는 출발점은 다른 데 있다. 그 솔루션을 쓰면 고객의 일이 실제로 편해지고, "이게 없으면 안 되겠다"는 그림이 그려질 때 비로소 시작된다. 그 그림이 합의되어야 다음 의뢰가 들어오고, 단골이 되고, 서로 신뢰가 쌓이며, 마침내 파트너 관계로 넘어간다.

반대로 시장에서 물건 팔듯이 "제 제품은 얼마이고, 정말 좋습니다"라고 외쳐 봐야 팔리지 않는다. 진짜 문제를 직접 파고들어 해결하는 그림이 먼저 그려져야 한다. 그래서 좋은 평판(리뷰)은 마케팅의 결과가 아니라 문제를 진짜로 풀어 준 사실의 결과다. 고객이 "이 도구 덕분에 내 일이 편해졌다"고 느낄 때, 그 신뢰가 곧 다음 거래를 만든다.

사업가와 기술자의 분기점. 기술자는 '의뢰받은 것'을 정확히 풀어낸다. 사업가는 의뢰 너머의 '진짜 문제'를 풀고, 그 사람의 미래에도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신뢰를 만든다. 어느 쪽이 더 낫다는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AI 시대에 가치를 만드는 자리가 점점 후자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관찰이다.

실제로 개발 전공자가 아닌 사람이, 오직 문제 해결에만 집중한 결과 전문 개발자를 앞질러 버린 사례들이 나타난다. 처음에는 한 회사의 업무 관리 시스템을 의뢰받아 납품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문제 해결에 몰입한 사람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이것보다 이 방식이 직원들이 쓰기에 더 효율적이다"라며 개선을 거듭하다가, 결국 조직 전체가 AI 도구를 일상적으로 쓰도록 업무 방식 자체를 바꿔 놓는다. 흩어져 있던 지식을 데이터베이스로 모으고, AI가 그것을 참조해 응대 직원이 즉시 답할 수 있게 만든다. 의뢰받은 범위를 넘어 진짜 문제를 풀어낸 것이 곧 돈이 된 것이다. 도구의 숙련도가 아니라 "누구의, 어떤 문제를, 왜 푸는가"라는 의도가 결과를 갈랐다.


05 · 몰입'지니어스 존' ― AI가 끝내 대체하지 못하는 자리

여기서 논의는 경제에서 사람의 내면으로 넘어간다. 누구에게나 단기적 쾌락이 있다. 담배일 수도, 유흥일 수도, 각자가 떠올리는 어떤 자극일 수도 있다. 문제는 그것이 한 번 하고 나면 공허감이 밀려오는, 말 그대로 짧은 쾌락이라는 점이다. 그보다 오래가는 행복은 다른 데 있다. 몰입(flow)의 상태다. 무언가에 깊이 빠져들어 시간 감각마저 흐려지는 그 상태에 오래 머물수록, 사람은 더 길고 단단한 만족을 얻는다.

이 몰입을 신경과학의 언어로 바꾸면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 DMN)가 등장한다. DMN은 우리가 외부 과제에 집중할 때는 오히려 잠잠해지고, 쉬거나 멍하니 있을 때 활발해지는 뇌의 연결망이다. 산책할 때, 샤워할 때, 잠들기 직전이나 막 깨어났을 때 ― 즉 마음이 자유롭게 떠돌 때(mind-wandering) 활성화된다. 흥미롭게도 신경과학 연구는 이 DMN이 창의성, 특히 서로 멀리 떨어진 개념을 연결하는 발산적 사고(divergent thinking)에 인과적 역할을 한다고 본다. 한 연구진은 두뇌 자극으로 DMN의 활동을 일시적으로 교란하자 답변의 독창성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하기도 했다.

외부 과제에 집중 계산 · 검색 · 지시 수행 DMN 잠잠함 · AI가 잘하는 영역 쉴 때 · 마음이 떠돌 때 산책 · 샤워 · 잠들기 직전 DMN 활성 · 사람만의 영역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는 외부 과제에 집중할 때 가라앉고, 쉬거나 마음이 떠돌 때 활발해진다. 멀리 떨어진 개념을 잇는 발산적 창의성이 여기서 나온다.

이렇게 무의식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상태에 자주 머무는 것을, 자기계발 분야에서는 '지니어스 존(Genius Zone)'이라 부른다. 심리학자 게이 헨드릭스가 저서 『빅 리프(The Big Leap)』와 그 후속작에서 제시한 개념이다. 그는 사람의 활동을 무능의 영역, 역량의 영역, 탁월의 영역, 그리고 천재(지니어스)의 영역 네 가지로 나눈다. 앞의 세 영역에서는 경쟁자도 충분히 해낼 수 있지만, 가장 깊은 재능이 사는 마지막 영역 ― 좋아하면서 동시에 가장 잘하는 일 ― 에서만 오직 그 사람만의 가치가 나온다.

핵심은 이것이다. 이 영역은 AI가 대체하지 못한다. AI는 이미 쓰인 책과 인터넷에 쌓인 자료를 놀랍도록 잘 학습한다. AI끼리의 대화에서도 새로워 보이는 무언가가 나올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을 사람이 공감하지 못한다면 만들 이유가 없다. 반면 사람이 몰입 상태에서 길어 올리는 것은 지금 그 사람만이 낼 수 있는 것이다. 학습 데이터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복제할 수 없다. AI가 아래층을 모두 잠식해 올라와도, 이 맨 위층만큼은 사람의 자리로 남는다.


06 · 놀이일이 놀이가 될 때 나오는 에너지

마지막 단계는 동기(motivation)의 문제다. 심리학에는 잘 정리된 구분이 있다. 외재적 동기는 외부의 보상이나 압력 때문에 무언가를 하는 것이고, 내재적 동기는 그 일 자체가 재미있고 의미 있어서 하는 것이다. 에드워드 데시와 리처드 라이언이 세운 자기결정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에 따르면, 놀이와 탐색, 호기심은 내재적 동기의 원형이다.

여기서 결정적인 차이가 갈린다. 누군가 "너는 이걸 해야 돼"라고 시켜서 할 때 나오는 에너지가 이만큼이라면, 스스로 마음껏 뛰어놀며 내는 에너지의 크기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크다. 자기결정이론의 연구들은 내재적 동기가 성과·창의성·지속성을 모두 끌어올린다는 점을 거듭 확인해 왔다. 자율성, 유능감, 관계성이라는 세 가지 기본 욕구가 충족될 때 사람은 가장 질 높은 몰입을 보인다.

실험 · 보상이 재미를 깎는다

데시의 1971년 실험은 유명하다. 원래 퍼즐 풀기를 재미있어하던 사람들에게 '돈'이라는 외적 보상을 붙이자, 보상이 사라진 뒤 오히려 자발적으로 퍼즐을 푸는 시간이 줄었다. 이후 128개 실험을 묶은 메타분석도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원래 좋아서 하던 일에 외적 보상을 얹으면, 내재적 동기가 깎이는 과잉정당화 효과(overjustification effect)가 나타난다.

함의는 분명하다. 일을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만 다루면 에너지의 총량이 줄어든다. 반대로 일이 '놀이'에 가까워질수록, 그 자체가 동기가 되어 더 큰 에너지와 더 오랜 지속성이 따라온다.

그래서 일을 놀이로 바꾸는 것은 한가한 이상이 아니라, 가장 큰 에너지를 끌어내는 현실적인 전략이다. 무엇을 놀이로 느끼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코딩 도구로 무언가를 짓는 일이, 누군가는 사람의 문제를 풀어 주는 일이 놀이가 된다. 중요한 것은 도구가 아니라, 그 사람이 좋아하는 놀이를 할 수 있게 만드는 환경이다.

이 에너지는 혼자보다 함께일 때 커진다. 몰입의 상태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이면, 인간이 가장 좋아하는 공감 능력이 함께 자란다. 각자가 미래에 풀고 싶은 문제를 가지고 모여들수록 솔루션의 종류는 많아지고 품질은 높아진다. 기술이 흔해진 시대에, 마지막까지 희소하게 남는 것은 결국 이런 사람들의 연결이다.

기술이 흔해진 다음의 경제학은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

'어떻게(HOW)'는 AI에 위임하고, 사람은 '누구의·어떤·왜(WHO·WHAT·WHY)'에 집중한다.

모델과 코드는 거의 공짜로 수렴하고, 만드는 능력의 희소성은 빠르게 사라진다. 그러나 누구의 어떤 문제를 풀지 정의하고, 고객조차 모르는 암묵지를 끄집어내고, 거래를 신뢰로 바꾸고, 몰입에서 지금 그 사람만의 것을 길어 올리는 일 ― 이 위층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AI가 모든 도구를 대신하는 시대일수록, 가치는 도구에서 멀어져 사람 쪽으로 더 깊이 이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