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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 인간 행동 시뮬레이션

인간을 시뮬레이션하는 AI
— 합리성을 넘어 '지능의 GPU'로

25명이 사는 가상의 마을 'Smallville'에서 출발해, 사회 전체를 미리 돌려보는 시뮬레이터를 향해 가는 길. 더 똑똑한 인공지능이 아니라, 더 인간적인 인공지능을 만든다는 발상에 관하여.

중요한 결정일수록 우리는 그것을 시험해 볼 방법이 마땅치 않다. 비행기 조종사는 실제 승객을 태우고 연습하지 않고, 외과 의사는 진짜 환자에게 수술을 처음 시도하지 않는다. 그런데 수백만 명의 삶을 바꾸는 제품·정책·전략은 종종 곧장 현실에 '출시하고 결과를 기다리는(launch and hope)' 방식으로 다뤄진다. 잘못된 설계의 비용은 막대하지만, 그것을 미리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정을 내리기 전에 그 결과를 한 번 돌려볼 수 있다면 어떨까. 인공지능(AI) 연구자 박준성(Joon Sung Park)이 창업한 회사 Simile은 바로 이 질문에 답하려 한다. 실제 사람들을 본떠 만든 AI 행위자(agent)들로 사회를 채우고, 결정을 현실에 옮기기 전에 시뮬레이션으로 미리 시험해 본다는 것이다. 그 출발점은 2023년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의 작은 실험이었다.


0125명이 사는 마을, Smallville

2023년 4월, 박준성과 동료들은 25명의 AI 행위자가 사는 가상의 작은 마을을 만들었다. 이름은 'Smallville'. 인기 시뮬레이션 게임 '심즈(The Sims)'를 닮은 이 마을에는 집과 대학, 상점과 공원, 카페가 있었다. 각 행위자에게는 짧은 인물 소개(예: 카페를 운영하는 이사벨라)만 주어졌고, 나머지는 모두 행위자들 스스로 만들어 갔다.

이들은 아침에 일어나 끼니를 챙기고, 일터로 나가고, 서로 대화하며 관계를 맺었다. 핵심은 누구도 그렇게 하라고 일일이 프로그래밍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연구진이 카페 주인 이사벨라에게 "발렌타인데이 파티를 열면 좋겠다"는 생각 하나만 심어 주자, 그는 전날부터 재료를 모으고 손님과 친구들에게 초대장을 돌렸다. 정작 파티 당일에는, 초대받은 한 행위자(클라우스)가 짝사랑 상대에게 데이트를 신청해 함께 나타나기도 했다. 초대를 받고도 깜빡 잊은 행위자가 있었다는 점까지 사람살이를 닮았다. 누구도 짜 넣지 않은 이런 창발적(emergent) 행동이 이 실험의 핵심 성과였다.

쉽게 말하면

Smallville은 게임 '심즈'의 마을과 비슷하다. 다만 캐릭터의 행동이 정해진 각본을 따르지 않는다는 점이 결정적으로 다르다. 각 캐릭터의 머릿속에 대형 언어 모델(Large Language Model, LLM)을 넣고, 거기에 기억·계획·반성이라는 세 가지 장치를 달아 주었더니, 캐릭터들이 스스로 하루를 살아 내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 시작한 것이다.

이 연구는 인간-컴퓨터 상호작용(Human-Computer Interaction, HCI) 분야의 최우수 논문상을 받았고, 곧 학계를 넘어 산업계의 주목을 끌었다. 박준성의 박사 학위 논문은 이후 스탠퍼드대학교가 한 해 한 명에게만 주는 컴퓨터과학 최우수 박사 논문상을 받았다.

02이 발상은 어디서 왔나

Smallville은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다. 박준성이 속한 연구 전통은 '사회 컴퓨팅(social computing)'이라 불린다. 사람들이 모이는 온라인 공간을 더 잘 설계하려는 분야인데, 가장 어려운 문제는 정작 화면의 버튼 위치가 아니라 수백만 명이 모였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였다. 이를 미리 알아낼 도구가 없었기에, 지금까지는 일단 출시하고 부작용을 관찰하는 수밖에 없었다. 예컨대 어떤 추천 알고리즘이 부정적 감정을 더 퍼뜨리는 설계라면, 그 사실은 늘 현장에서야 뒤늦게 드러났다.

전환점은 2020년 무렵, 대형 언어 모델 GPT-3가 등장하기 직전이었다. 당시 박준성은 스탠퍼드 연구진과 함께 '파운데이션 모델(foundation model)'의 기회와 위험을 다룬 논문 작업에 참여했다. 이 논문을 이끈 인물이 훗날 Simile의 공동창업자가 되는 퍼시 량(Percy Liang)이다. '파운데이션 모델'이라는 용어 자체를 정착시킨 연구자다. 박준성이 주목한 것은 이 모델들이 분류나 생성을 한다는 점이 아니라, 인간의 행동 양식을 그 안에 담고 있다는 점이었다. 웹과 소셜 미디어에 쌓인 방대한 글을 학습했으니, 적절히 물으면 "특정 상황에서 이런 사람은 어떻게 행동할까"에 대한 그럴듯한 답이 나왔다.

2022년의 논문 'Social Simulacra'가 그 첫 시도였다. 서브레딧(온라인 커뮤니티) 하나를 통째로 시뮬레이션해, 설계자가 미리 "이 커뮤니티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할까"를 가늠해 보게 하는 것이다. 당시에는 이들을 '행위자'가 아니라 '페르소나(persona)'라 불렀다. GPT-3는 거칠었고 지시를 잘 따르지도 않아 온갖 편법이 필요했지만, 가능성만큼은 분명히 보였다. 이후 모델이 지시를 따르도록 미세 조정(instruction tuning)되면서, 기억을 두고 추론하는 한층 복잡한 행위자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Smallville은 그 위에서 가능해진 실험이었다.

03'지능의 CPU'와 '지능의 GPU'

여기서 박준성은 오늘날 AI 산업이 향하는 방향과의 결정적 차이를 짚는다. OpenAI, Anthropic을 비롯한 선도 기업들이 만드는 모델의 목표는 대체로 '초지능(superintelligence)'에 가깝다.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며, 정답이 분명한 객관식 문제—수학·코딩·과학 난제—에서 인간을 능가하는 기계다.

그런데 사람은 합리적이지 않다. 우리는 주관적인 가치와 선호, 취향을 잔뜩 안고 산다. 그래서 모델이 객관식 능력에서 좋아질수록, 역설적으로 실제 인간 행동을 예측·모사하는 능력과는 오히려 갈라진다. 박준성은 현재의 모델링 방식이 인간을 모사하는 능력에서는 사실상 정체기에 이르렀다고 본다. 기반은 충분히 좋아졌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려면 인간의 다양성을 직접 겨냥하는 다음 단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가 즐겨 쓰는 비유가 '지능의 CPU 대 GPU'다.

지능의 CPU와 지능의 GPU합리적 모델과 인간 모사 모델의 대비 두 갈래의 AI: 지능의 CPU와 지능의 GPU 지능의 CPU 오늘의 프런티어 모델 CPU 단 하나의 강력한 코어 합리적·논리적 추론 정답이 있는 객관식 문제에 초인적 예: 수학·코딩·과학 난제 지능의 GPU Simile가 만드는 모델 다양한 보통의 코어들 초인적일 필요가 없음 사람들의 가치·선호·취향의 다양성을 담음 예: 한 집단의 진짜 반응 예측 모델이 객관식 능력에서 좋아질수록, 인간 행동을 모사하는 능력과는 오히려 갈라진다
오늘의 프런티어 모델은 '지능의 CPU'에 가깝다. Simile이 노리는 것은 사람들의 다양성을 담는 '지능의 GPU'다.
쉽게 말하면

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Central Processing Unit, CPU)는 매우 강력한 코어 하나로 어려운 계산을 순서대로 빠르게 푼다. 반면 그래픽처리장치(Graphics Processing Unit, GPU)는 평범한 코어 수천 개가 동시에 일한다. 어느 한쪽이 더 똑똑한 게 아니라 쓰임새가 다르다.

오늘의 AI가 '강력한 코어 하나'로 정답을 찾는 CPU라면, Simile이 만들려는 것은 '서로 다른 보통의 코어 여럿'으로 한 집단의 진짜 반응을 담아내는 GPU다. 목표는 가장 똑똑한 모델이 아니라, 가장 사람을 닮은 모델이다.

04'말과 행동의 간극'을 메우다

그렇다면 의문이 생긴다. 대형 언어 모델이 이미 세상 사람들의 글을 다 학습했다면, 그냥 모델에게 "당신은 해안 대도시에 사는 34세 여성입니다"라고 일러 주면 되지 않을까. 굳이 실제 사람을 찾아가 데이터를 모을 이유가 있을까.

박준성의 답은 '말과 행동의 간극(say-do gap)'이다. 사람이 말하는 것과 실제로 하는 것 사이에는 늘 간극이 있는데, 언어 모델은 본질적으로 사람들이 온라인에 말해 둔 데이터로 학습한다. 그래서 Simile은 실제 사람에게서 직접 데이터를 모아 이 간극을 메운다. 그렇게 모은 데이터의 상당 부분은 행동 데이터이고, 또 한 축은 "당신 삶의 이야기를 들려 달라"는 식의 깊은 인터뷰다. 한 사람의 인생 서사에는 그 사람만의 긴 꼬리(long-tail) 정보—어디서 자랐고, 어떤 어려운 결정을 내렸는지—가 담기는데, 이것이 태도와 행동을 잇는 번역층 역할을 한다.

실제 사람에서 시뮬레이션까지데이터 수집과 에이전트 생성 파이프라인 실제 사람에서 출발하는 시뮬레이션 1 실제 모집단 대표성 있는 사람들을 선별 (Gallup 등 협력) 2 심층 데이터 수집 “당신 삶의 이야기를” 인터뷰 + 행동 실험 데이터 3 근거 기반 에이전트 개인의 가치·선호· 행동을 담은 디지털 분신 4 시뮬레이션 플랫폼 클라우드(SaaS)에 수많은 에이전트를 올려 질문 5 기업의 의사결정 컨셉·제품 테스트, 실적발표 예행, 2차 파급 분석 핵심은 “말과 행동의 간극”을 메우는 것 — 사람들이 말한 데이터(웹)만으로는 부족해 실제 행동 데이터를 직접 모은다
실제 모집단에서 출발해, 인터뷰와 행동 데이터로 개인의 디지털 분신을 만든 뒤, 시뮬레이션 플랫폼에 올려 질문에 답하게 한다.

대표성 있는 사람들에게 닿기 위해 Simile은 여론조사·패널 기업 갤럽(Gallup)과 전략적으로 협력한다. 인터뷰 자체도 자동화한다. 최소 시간에 최대한의 정보를 끌어내도록, 강화학습(Reinforcement Learning, RL)으로 '면접관 모델'을 따로 훈련한다. 더 정량적인 정보는 설문으로, 깊은 서사는 인터뷰로 모으는 식이다. 행동 데이터의 핵심 자산은 가격 실험 등 사회과학에서 수행된 무작위 대조 시험(Randomized Controlled Trial, RCT)의 방대한 기록이다. 이를 모델에 담아, 어떤 RCT의 결과든 예측하는 '인간 행동의 파운데이션 모델'을 만든다는 구상이다.

쉽게 말하면

자율주행차 개발과 닮았다. 실제 도로에서 주행 데이터를 모으되, 학습 데이터 너머의 새로운 날씨·장소까지 일반화되는 모델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마찬가지로 Simile은 실제 사람에게서 데이터를 모으되, 처음 묻는 질문에도 그 사람처럼 답하는 모델을 지향한다.

05얼마나 정확한가

회사를 만들 결심이 선 것은 정확성을 직접 검증하면서였다. 2024년 발표된 연구에서 Simile 팀은 미국인 1,052명을 약 2시간씩 인터뷰해 각자의 디지털 분신을 만든 뒤, 그 분신이 본인의 응답을 얼마나 잘 재현하는지 측정했다. 결과는 종합사회조사(General Social Survey, GSS) 문항에서 본인이 2주 뒤 같은 질문에 다시 답할 때의 일관성을 100으로 봤을 때 85% 수준이었다. 성격 특성 예측과 실험 재현에서도 비슷했다. 더욱이 이 방식은 인종·이념 집단에 따른 정확도 편차를 인구통계 설명만 준 경우보다 줄였다.

1,052
인터뷰한 실제 인원
~2시간
1인당 인터뷰 시간
85%
본인 일관성 대비 재현도
왜 100%가 아닐까

사람은 같은 질문에도 그때그때 조금씩 다르게 답한다. 즉 본인조차 2주 뒤에 자기 답을 100% 재현하지 못한다. 그래서 비교 기준은 '정답'이 아니라 '본인의 재현 일관성'이고, 85%란 분신이 그 인간적 변동성에 상당히 근접했다는 뜻이다. 인간 행동에는 지울 수 없는 무작위성이 있어, 이론적 한계 자체가 존재한다.

집단 수준의 정확도는 '총변동거리(Total Variation Distance, TVD)'로 잰다. 실제 응답 분포와 시뮬레이션 응답 분포가 얼마나 가까운지를 0과 1 사이 숫자로 나타내는 지표인데, 박준성은 TVD가 약 0.15보다 작으면 의사결정에 쓸 만큼 강한 근거로 본다고 말한다. 정량적 질문과 RCT 재현 같은 사례군에 대해 이 값을 일종의 합격선으로 둔다.

06기업은 이것을 어디에 쓰나

제품은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oftware as a Service, SaaS) 형태다. 고객은 관심 있는 집단을 정의하고, 그 집단을 본뜬 수많은 에이전트에게 무엇이든 물어볼 수 있다. 가장 흔하고 직관적인 출발점은 '컨셉 테스트'다. 새 제품이나 메시지에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빠르게 시험해 보는 것이다. 지금까지 다섯에서 열 개 아이디어를 시험하던 기업이, 천 개의 아이디어를 천 개의 하위 집단에 동시에 던져 볼 수 있게 된다.

대표 고객은 미국의 약국·소매 체인 CVS Health다. 기업 고객경험·인사이트 담당 임원 스리 나라심한(Sri Narasimhan)이 박준성의 검증 논문을 읽고 도입을 추진했다. 9,000개가 넘는 매장을 가진 CVS는 그동안 현장에서 시험할 수 있는 질문 수에 발목이 잡혀 있었다. 지금은 수십만 명 규모의 시뮬레이션 고객에게 제품·매장 배치·컨셉을 물으며, 그 규모를 10만 명 수준으로 늘려 가고 있다. CVS 외에도 호주 통신사 텔스트라(Telstra), 일본 음료기업 산토리(Suntory), 브라질 은행 방코 이타우(Banco Itaú), 미국 핀테크 웰스프런트(Wealthfront) 등이 고객으로 거론된다.

활용 범위는 점점 넓어진다. 단순히 이미지를 보여 주고 평을 듣는 데서 나아가, 에이전트에게 "이 제품을 10분간 써 보고 무엇을 느꼈는지 말해 달라"고 하는 식으로 시간 차원을 더한다. 여러 에이전트가 상호작용하는 다중 에이전트 시뮬레이션으로도 확장된다. 의외로 흔한 요청 하나가 실적 발표 예행연습이다. 최고경영자와 이사진은 늘 청중이 어떻게 반응할지 고민하기 때문이다. Simile은 실적 발표에서 나올 애널리스트 질문의 약 80%(열 개 중 여덟)를 미리 맞힌다고 주장한다.

"그냥 페이스북 광고 천 개를 돌려 실제 클릭률을 보면 되지 않나?"

이런 반문에 대한 답이 Simile이 노리는 차별점을 잘 보여 준다. 첫째는 규모와 대표성이다. 온라인 실험에는 특정 성향의 사람만 반응하지만, 시뮬레이션은 대표성 있게 구성한 집단을 원하는 만큼 불러낼 수 있다. 둘째는 2차 파급 효과다. 가령 전기차를 출시했다고 하자. 광고 반응 테스트는 가능하다. 하지만 그 출시가 같은 회사 내연기관차의 인식을 어떻게 바꾸는지, 전체 제품군에 어떤 연쇄 효과를 일으키는지는 현실에서 시험할 길이 없다. 시뮬레이션은 바로 이 지점에서 한 번의 질문을 넘어 결정의 장기적 파장을 들여다보게 한다.

07오차는 쌓이지 않는가 — 수렴과 발산

한 에이전트의 답이 다른 에이전트에게 전해지고, 그 답이 또 다음 에이전트로 이어진다면, 처음의 작은 오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지 않을까. 박준성은 시뮬레이션을 두 종류로 나눈다. 수렴형발산형이다.

수렴형 시뮬레이션과 발산형 시뮬레이션오차가 누적돼도 결론이 안정적인 경우와 분기하는 경우 시뮬레이션의 두 종류 수렴형 허브 작은 오차가 쌓여도 결론은 안정적 예: 네트워크는 늘 허브가 생긴다(척도 없는 망) 발산형 작은 차이가 큰 분기를 만든다 예: 선거 결과, 뱅크런 — 가능한 미래들의 분포로 평가
수렴형은 오차가 쌓여도 결론이 안정적이다. 발산형은 작은 차이가 큰 분기를 낳아, 가능한 미래들의 분포로 평가해야 한다.

수렴형 질문에서는 약간의 오차가 누적돼도 괜찮다. 결과가 어디로 모일지를 끌어당기는 힘이 충분히 강하기 때문이다. 좋은 예가 사람들의 연결망이다. 어떤 식으로 연결망이 형성되든 늘 소수의 '허브'가 생겨난다. 일부 노드에 연결이 기하급수적으로 몰리는 이른바 '척도 없는 망(scale-free network)'이다. 흥미롭게도 이것이 구글의 검색 알고리즘 페이지랭크(PageRank)를 떠받친 통찰이기도 하다. 일정 정확도로 인간 행동을 재현하기만 하면, 이런 수렴은 시뮬레이션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난다.

반대로 발산형 질문이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은 필연이었는가" 같은 물음, 혹은 선거 결과 시뮬레이션처럼 매번 같은 결과가 나오리라 장담할 수 없는 경우다. 결정마다 수많은 후속 파장이 갈라지기 때문이다. 이때 평가의 핵심은 정답이 아니라 신뢰도다. 같은 시뮬레이션을 100번 돌렸을 때 특정 결과가 몇 번 나오는지를 부트스트랩(bootstrap) 방식으로 추정한다. 더 나아가 발산이 클 때 가능한 결과들의 분포를 펼쳐 보여 줌으로써, 사람들이 어떤 경로로 그런 미래에 이르는지 그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대비하게 하는 것이 시뮬레이션의 또 다른 힘이다.

왜 중요한가

박준성은 시뮬레이션이라는 분야를 '추론통계학의 첫날'에 비유한다. 과거 과학자들이 오랜 논의 끝에 "p < 0.05면 충분한 근거"라는 기준에 합의했듯, 시뮬레이션도 무엇을 신뢰할 수 있는 근거로 볼지 그 기준과 표준을 새로 세워야 하는 단계라는 것이다.

08'인간 사회를 위한 CERN'이라는 꿈

박준성의 더 큰 베팅은 기업 마케팅 너머에 있다. 그는 이 분야에 "노벨상이 걸려 있다"고 말한다. 근거 없는 호언이 아니다. 경제학자 토머스 셸링(Thomas Schelling)은 수십 년 전, 빨간 점과 파란 점이 이웃의 색을 보고 이사할지 말지를 정하는 극히 단순한 행위자 기반 모형(agent-based model)만으로 '주거 분리'가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보여 주었고, 이 연구로 2005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당시의 행위자가 빨강·파랑 점에 불과했다면, 이제는 개인의 풍부함을 그대로 재현하는 진짜 같은 행위자로 같은 종류의 시뮬레이션을 돌릴 수 있다.

그래서 경제학자들이 그에게 던진 질문은 이런 것들이다. 뱅크런(예금 인출 사태)은 언제 일어나는가. 여러 나라의 집단행동 문제인 기후변화 대응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가. 무너지기 직전의 민주주의는 어떤 신호를 보내는가. 화폐 제도의 기원은 어떻게 설명되는가. 박준성은 이런 거대한 질문이야말로 이 분야가 향해야 할 북극성이라고 본다.

"한 번 돌리는 데 1억 달러가 들고 몇 달이 걸리지만, 그 한 번으로 우리 사회의 근본 질문 하나를 푸는 시뮬레이션."

그는 이런 미래를 진지하게 상상한다. 마치 입자물리학자들이 거대 가속기를 짓듯, '인간 사회를 위한 CERN(유럽입자물리연구소)'을 세운다는 구상이다. 공동창업자 퍼시 량의 말처럼, 위대한 과학적 도약은 종종 뛰어난 '측정'에서 시작된다. 허블 망원경이 우주를 보는 인류의 눈을 바꿨듯, 시뮬레이션이 인간 사회를 보는 측정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09남는 물음들

물론 검증이 더 필요한 대목도 분명하다. 화제가 된 85%라는 수치는 종합사회조사라는 특정 측정에 한정되며, 다른 영역으로의 일반화는 아직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다. 파이프라인 전체가 인생 서사와 행동 선택 같은 풍부한 개인 데이터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프라이버시 문제도 가볍지 않다. 박준성은 고객의 자체 데이터(예: CVS의 9,000만 고객 기록)를 책임 있고 윤리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언급하지만, 구체적 안전장치는 아직 공개적으로 충분히 논의되지 않았다. 강화되는 AI 규제 환경 역시 변수다. 발산형 질문의 평가 기준을 어떻게 세울지도 열린 과제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시장의 베팅은 분명하다. Simile은 2026년 초 인덱스 벤처스(Index Ventures) 주도로 1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고, 여기에는 페이페이 리(Fei-Fei Li), 안드레이 카파시(Andrej Karpathy) 같은 AI 분야 인사들이 참여했다. 공동창업자는 박준성(최고경영자), 퍼시 량, 그리고 스탠퍼드대학교 교수 마이클 번스타인(Michael Bernstein)이다.

SF 소설이 그리는, 기술이 충분히 무르익은 사회에는 늘 두 기둥이 서 있다고 박준성은 말한다. 하나는 범용 인공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AGI)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를 이끄는 시뮬레이션이다. 자연과학에 쏠려 온 시선을 사회과학으로 돌려, 시뮬레이션으로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25명이 살던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 실험은, 이제 그 물음 앞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