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경제 · 노동
나라가 경제적 위기에 있다는 경고가 반복되는데도, 프랑스 사회는 좀처럼 더 일하려 하지 않는다. 주 35시간 근무와 두 달에 가까운 휴가는 단순한 게으름의 문제가 아니라, 반세기에 걸쳐 정교하게 설계된 하나의 사회 시스템이다. 그 시스템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왜 지금 와서 짐이 되고 있는지 들여다본다.
프랑스 경제의 표면 지표는 좋지 않다. 2025년 프랑스의 국가 채무는 약 3조 3,000억 유로로 국내총생산(GDP, Gross Domestic Product)을 넘어섰고, 그해 여름에는 재무장관이 국제통화기금(IMF, International Monetary Fund)의 구제금융이라는 선택지를 두고 "우리 앞에 놓인 위험"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실업률은 7%대 중반에서 좀처럼 내려오지 않고, 성장률은 한 해 1%를 넘기기 어렵다. 그런데도 일을 더 하자는 제안에는 사회 전체가 완강하게 저항한다.
이 저항은 기질이나 의지의 문제로 단순화하기 어렵다. 짧은 노동시간, 긴 휴가, 후한 연금이 서로 맞물려 하나의 균형을 이루고 있고, 그 균형은 한번 굳어지면 되돌리기가 대단히 어렵게 설계돼 있다. 핵심은 세 가지다. 노동시간, 휴가, 그리고 연금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Organis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의 2023년 통계에서 프랑스의 1인당 연간 노동시간은 약 1,500시간이었다. 같은 해 한국은 1,872시간으로, 프랑스보다 한 해에 약 370시간을 더 일한다. 한 달로 환산하면 매달 약 30시간씩 더 일하는 셈이다. 미국과 비교해도 프랑스는 한 해 약 300시간을 덜 일한다.
2023년 OECD 기준 1인당 연간 노동시간. 같은 통계 안에서도 나라별 격차가 크다.
여기서 한 가지 함정을 짚어 둘 필요가 있다. 통계상 독일(약 1,340시간)이 프랑스보다 더 짧게 나타나는데, 이는 독일인이 프랑스인보다 일을 적게 해서가 아니다. 독일에는 세금과 사회보험 부담을 덜어 주며 단시간 근로를 장려하는 이른바 '미니잡(Minijob)' 제도가 활성화돼 있어, 짧게 일하는 사람이 통계에 대거 잡히면서 평균을 끌어내린다. 그 결과 독일의 실업률은 국제 비교 기준으로 3%대에 머무는 반면, 비슷한 제도 도입을 노동계가 거부해 온 프랑스의 실업률은 그 두 배에 이른다. 같은 '짧은 노동시간'이라도 그 속내는 전혀 다를 수 있다는 뜻이다.
노동시간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휴가의 양이다. 프랑스의 법정 의무 유급휴가는 1년에 25일(주 5일 근무 기준 5주)이다. 여기에 법정 공휴일 11일을 더하면 공식적으로 쉬는 평일만 약 36일, 곧 7주가 넘는 시간이 확보된다.
그게 끝이 아니다. 프랑스에는 RTT(Réduction du Temps de Travail, 노동시간 단축)라는 제도가 따로 있다. 주 35시간을 법으로 정해 두었지만 현장에서는 그보다 길게 일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초과한 시간을 돈으로 받는 대신 휴가로 적립해 두었다가 나중에 쓰는 방식이다. 이 RTT가 한 해에 보통 10일, 많게는 20일 넘게 쌓인다. 기본 휴가에 RTT까지 더하면 프랑스의 직장인은 1년 52주 가운데 9~10주, 곧 두 달 반 가까이를 쉴 수 있다.
비유로 이해하기 — RTT라는 '휴가 적금'
RTT는 초과근무를 현금이 아니라 '시간'으로 적립하는 통장과 비슷하다. 정해진 35시간을 넘겨 일한 만큼이 통장에 시간으로 쌓이고, 나중에 며칠씩 묶어 휴가로 인출한다. 야근 수당이 월급에 한 번 녹아 사라지는 대신, 쓸 수 있는 휴일로 차곡차곡 남는 구조다.
특히 5월은 프랑스가 사실상 통째로 쉬는 달에 가깝다. 노동절(5월 1일), 제2차 세계대전 종전 기념일(5월 8일), 예수 승천일, 성령강림절 같은 공휴일이 한 달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목요일이 공휴일이면 금요일에 휴가를 붙여 나흘을 쉬는 식으로 '징검다리 연휴'를 만든다. 더 놀라운 것은, 5월 내내 이렇게 쉰 사람들이 불과 한두 달 뒤인 7~8월에 다시 3주에서 한 달의 여름 휴가를 떠난다는 점이다.
실제로 정부가 과도한 공휴일이 경제에 부담이 된다며 5월 공휴일을 줄이려 시도한 적이 있으나, 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5%가 반대하면서 사실상 보류됐다. 프랑스인에게 5월 1일은 단순히 노는 날이 아니라 노동자가 싸워서 얻어 낸 권리를 기념하는 날이고, 휴식은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 일종의 성역에 가깝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반전이 등장한다. '프랑스인은 연 1,500시간만 일한다'는 평균값에는 함정이 숨어 있다. 이 평균은 모든 프랑스인이 골고루 적게 일해서 나온 숫자가 아니다.
프랑스의 정규직은 평균보다 훨씬 길게 일하는 반면, 비정규직은 훨씬 짧게 일한다. 문제는 이 비정규직이 '여유'를 누려서 짧게 일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유럽연합 통계기구 유로스탯(Eurostat)에 따르면 프랑스를 비롯한 남유럽에서는 파트타임 근로자의 20~25%가 "시간을 늘려 더 일하고 싶다"고 답한다. 더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열리지 않아 짧게 일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정규직 가운데 같은 답을 하는 비율이 5% 안팎인 것과 대조적이다.
두 집단의 노동시간 자체는 거의 변하지 않아도, 짧게 일하는 비정규직 비중이 커지면 전체 평균은 내려간다.
비유로 이해하기 — 결석이 많아 내려간 학급 평균
한 반의 시험 평균이 떨어졌다고 해서 모두가 못 본 것은 아니다. 시험을 제대로 못 치르고 일찍 나간 학생이 늘면, 남은 학생들의 점수가 그대로여도 반 평균은 내려간다. 프랑스의 짧은 평균 노동시간도 비슷하다. '여유'가 늘어서가 아니라, 충분히 일할 기회를 얻지 못한 사람이 늘어 평균이 짧아 보이는 면이 있다.
성장이 더디고 고용 제도가 경직돼 있으니, 기업은 정규직 채용을 꺼리고 필요한 시간에만 짧게 쓰는 단기 계약과 파트타임을 선호하게 된다. 그 결과 통계상 노동시간은 짧아지지만, 그 이면에는 생계를 위해 더 많은 노동시간이 절실한 이른바 '워킹 푸어(working poor)'가 적지 않게 존재한다. 짧은 노동시간을 곧바로 여유로운 삶의 결과로만 읽는 것은 오해일 수 있다.
주 35시간 근무제는 1990년대 말과 2000년 사이, 이른바 '오브리법(Aubry laws)'으로 도입됐다. 일자리를 나눠 실업을 줄이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경제계의 평가는 대체로 비판적이다. 프랑스 경영자단체와 중소기업 연합 쪽에서는 35시간제 도입 이후 인건비 부담이 급증하면서 독일 등 경쟁국에 비해 산업 경쟁력이 뒤처졌다고 본다.
구조는 이렇다. 35시간을 넘겨 일하면 초과근무 수당을 크게 얹어 줘야 한다. 단순 업무라면 사람을 더 뽑아 피할 수 있지만, 숙련 노동자는 다른 사람으로 대체하기 어렵다. 결국 숙련 인력이 초과근무를 하면 수당이 배로 늘고, 거기에 따라붙는 고용보험료·연금보험료 같은 사회보험 부담까지 함께 불어난다. 기업의 원가 경쟁력은 떨어지고, 신규 고용은 위축된다. 노동시간을 강제로 줄였는데 임금은 깎지 못하게 하니, 비용이 한쪽으로 쏠린 것이다.
"일을 적게 하면서 복지만 바랄 수는 없다." —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프랑스인이 이웃 나라보다 너무 적게 일한다고 지적해 왔다.
마크롱 대통령은 탄탄한 복지 모델을 유지하려면 더 많이 일해 더 많은 부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해 왔다. 프랑스 안팎의 경제계와 일부 해외 언론도 35시간제를 '의도는 대담했으나 값비싼 실험'이라는 식으로 비판해 왔다. 다만 노동시간 단축이 시간당 생산성을 끌어올린 측면도 있어, 그 공과(功過)를 한쪽으로만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반론도 있다.
노동시간만큼 중요한 또 하나의 축은 연금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나이를 62세에서 64세로 올리는 개혁을 2023년에 밀어붙였다. 의회 표결을 우회하는 헌법 조항(49조 3항)까지 동원해 법을 통과시켰지만, 대규모 시위와 파업이 이어졌고 결국 2025년 11월 의회가 이 개혁을 잠정 중단시키면서 은퇴 연령은 사실상 다시 묶였다.
반대가 거셌던 이유는 단순한 게으름이 아니라 시스템 자체가 일찍 은퇴하는 쪽이 유리하도록 짜여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평균적인 소득자는 은퇴 직전 벌던 소득의 약 70% 이상을 연금으로 받는다. OECD 평균(순소득 대체율 약 63%)보다 높은 수준이다.
비유로 이해하기 — 은퇴 후에도 이어지는 '월급의 70%'
소득대체율 70%란, 일을 그만둔 뒤에도 현역 시절 손에 쥐던 돈의 70%가 사망할 때까지 통장에 들어온다는 뜻이다. 조금만 더 버티면 일하지 않고도 노후가 보장되는데, 굳이 야근하고 경쟁하며 2년을 더 일하라고 하면 저항이 클 수밖에 없다.
여기에 사회 진입 시점의 차이도 작용한다. 모두가 대학에 가지 않고 징병제도 없는 프랑스에서는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평균 연령이 20대 초반으로, 군 복무를 마치고 20대 후반에 시작하는 한국과 다르다. 일찍 시작해 40년 안팎을 일하는 사람들에게 '2년 더'는 체감상 훨씬 무거운 부담이 된다.
짧은 노동시간과 후한 연금 체계의 기초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 경제가 고속 성장하던 시기, 이른바 '영광의 30년(Les Trente Glorieuses)'에 만들어졌다. 잘나가던 시절에는 문제가 되지 않던 제도가, 인구가 고령화되고 성장이 정체되고 혁신 기업이 충분히 나오지 않는 지금에 와서는 무거운 짐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프랑스 내부에서도 나온다. 오늘날 프랑스의 1인당 GDP는 약 4만 9,000달러로,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
여기서 가장 까다로운 대목은 정치경제적 비가역성이다. 여유롭게 사는 시스템은 한번 자리 잡으면, 국민이 후퇴를 받아들이기가 대단히 어렵다. 연금 개혁이 통과되고도 2년 만에 중단된 것이 그 증거다.
비유로 이해하기 — 한번 넓힌 길은 다시 좁히기 어렵다
도로를 넓히는 데는 모두가 찬성하지만, 다시 좁히려 하면 격렬한 반대에 부딪힌다. 한번 적게 일하는 데 익숙해진 사회를 다시 더 일하게 만드는 일도 그렇다. 그래서 처음부터 성장 여력에 맞춰 근로·휴식 체계를 정밀하게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늘리기는 쉬워도 줄이기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여유로운 삶을 택하는 것은 그 자체로 옳고 그름을 따질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한 사회의 가치관이자 선택이다. 다만 분명한 사실 하나는 짚어 둘 만하다. 과거의 풍요가 미래의 풍요를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여유는 충분한 경제 성장이 뒷받침될 때에만 지속 가능하다. 여유를 누리고 싶어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인간의 바람이지만, 그 여유를 떠받치는 경제적 기초 체력이 무너지면 그동안 쌓아 온 것마저 잃을 위험이 있다. 노동시간을 둘러싼 한 나라의 선택은, 결국 그 사회가 가진 성장 여력에 대한 가장 정직한 시험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