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인간
인공지능이 어떻게 계산하는지를 파고들면, 뜻밖에도 인간의 마음과 사회를 설명하는 단서가 나온다. 기계를 이해하려던 작업이 거꾸로 사람을 비추는 거울이 된 셈이다.
SF 작가 아서 클라크(Arthur C. Clarke)는 이런 말을 남겼다. "충분히 발달한 과학 기술은 마법과 구별할 수 없다." 지금 우리가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 앞에서 느끼는 감각이 정확히 그렇다. 결과물이 너무 그럴듯해서 원리를 알기 전에는 마법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마법의 안쪽을 천천히 들여다보면, 의외로 단순한 원리가 켜켜이 쌓여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원리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인공지능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이야기로 흘러간다.
모든 이야기는 신경세포, 즉 뉴런(neuron)에서 시작한다. 뉴런은 한쪽 가지(수상돌기)로 옆 세포가 보낸 신호를 받아, 다른 쪽 끝(축삭말단)으로 전달한다. 핵심은 전달 방식이다. 들어온 신호의 세기가 어떤 문턱값(임계값)을 넘으면 옆으로 신호를 보내고, 못 넘으면 그냥 무시한다. 전달하거나, 전달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다.
1943년에 발표된 한 논문이 이 점을 처음 수학으로 정리했다. 신경생리학자 워런 매컬러(Warren McCulloch)와 논리학자 월터 피츠(Walter Pitts)는 뉴런을 0과 1로만 작동하는 논리 기계로 모형화했다. 충분히 강한 신호가 오면 1, 약하면 0. 이 발상이 중요한 이유는, 0과 1만 있으면 모든 논리 연산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뉴런은 신호의 합이 임계값을 넘으면 1을 내보내고, 못 넘으면 0으로 침묵한다.
"철수와 영희가 둘 다 와야 문을 열어준다"를 생각해 보자. 온 사람은 1, 안 온 사람은 0이라 하면, 둘 다 1일 때만 문이 열린다(1). 한 명만 오면 안 열린다(0). 이게 'AND' 연산이다. "철수 또는 영희가 오면 열어준다"는 'OR' 연산이고, 둘 중 하나만 와도 열린다. 이렇게 0과 1의 조합만으로 '그리고', '또는', '아니다' 같은 모든 판단을 표현할 수 있다.
여기에 결정적인 사건이 더해진다. 반도체의 발명이다. 반도체 역시 전기가 통하거나(1) 통하지 않거나(0), 둘뿐이다. 뉴런과 똑같은 방식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상상을 했다. 반도체로 인공 뉴런을 아주 많이 만들어 뇌처럼 촘촘히 연결하면, 그게 인공지능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딥러닝(deep learning)이다. '깊다(deep)'는 말은 뉴런의 연결이 끝없이 깊게 이어진다는 뜻이다. 다른 말로 하면, 뇌를 베낀 것이다.
딥러닝이 작동하려면 어마어마한 계산이 필요하다. 그 계산을 떠받치는 것이 그래픽 처리장치, GPU(Graphics Processing Unit)다. 엔비디아(NVIDIA)의 최신 GPU 아키텍처인 루빈(Rubin)은 칩 한 장이 초당 약 50페타플롭스(petaFLOPS)의 추론 연산을 한다. 페타는 1,000조이니, 50페타플롭스는 1초에 5경 번의 덧셈·곱셈을 한다는 뜻이다. 그런 칩을 수천, 수만 장씩 묶어 쓴다. 마법처럼 보이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 무지막지한 계산력은 인간과 전혀 다른 방식의 풀이를 가능하게 한다. 예를 들어 한 변이 2미터인 정사각형에 꼭 맞게 들어간 원의 넓이를 구한다고 하자. 사람은 공식을 쓴다. 반지름이 1이니 넓이는 원주율 곱하기 1의 제곱, 약 3.14제곱미터. 깔끔하다.
AI는 다르게 푼다. 정사각형 안에 점을 무작위로 수십만, 수백만 개 뿌린다. 그러면 대부분의 점은 원 안에 떨어지고 일부는 원 바깥, 모서리 쪽에 떨어진다. 전체 점 가운데 원 안에 들어간 점의 비율을 구하고, 거기에 정사각형 넓이(4제곱미터)를 곱하면 원의 넓이가 나온다. 이 방법을 몬테카를로(Monte Carlo)라 부른다. "왜 그렇게 힘들게 하느냐"고 할 수 있지만, 1초에 5경 번을 계산하는 상대에게는 공식을 외우는 것보다 점을 마구 뿌려 세는 편이 오히려 빠르다.
고양이 사진을 골라내는 과제를 떠올려 보자. 사람은 그냥 안다. 다섯 살 아이도 고양이와 강아지를 구별한다. 그런데 "고양이와 개의 차이를 글로 써보라"고 하면 말문이 막힌다. 털이 있고, 다리가 넷이고, 꼬리가 있고, 수염이 있고… 이렇게 특징을 일일이 적어 점수를 매기던 옛 방식을 전문가 시스템(expert system)이라 했다. 그리고 이 접근은 거의 다 실패했다. 세상은 규칙으로 다 적기엔 너무 복잡하다.
딥러닝은 발상을 뒤집었다. 사람이 차이를 적어주는 대신, "차이점을 네가 직접 다 찾아내라"고 기계에 시킨다. 고양이 사진 수십만 장과 다른 사진들을 던져주고, 그 사이의 특징을 수억 개 뽑아내게 한다. 그중 어떤 특징은 '고양이'라는 패턴과 깊이 연결돼 있고, 어떤 것은 아무 상관이 없다. 처음엔 각 특징에 아무렇게나 점수를 매긴 뒤, 조금씩 점수를 바꿔가며 수없이 돌려본다. 1초에 5경 번을 계산하니 금방 돌린다. 그렇게 어느 순간, 고양이를 기막히게 찾아내는 점수 조합이 스스로 나타난다.
AI가 하는 일은 결국, 거대한 데이터 속에 숨어 있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패턴'을 찾아내는 것이다.
여기서 '잠재된 패턴'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고양이라는 패턴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말로는 다 적을 수 없다. 최신 인공지능 모델은 이런 패턴을 수조 개의 매개변수(parameter)로 표현한다. 매개변수가 2조 개를 넘는 모델도 있다. 2조 개를 사람이 어떻게 일일이 설명하겠는가. 기계는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찾아낼 뿐이다.
AI가 패턴을 찾는 일은, 수학적으로는 '아주 높은 차원의 공간에서 연속된 형태(다양체)를 그려내는 작업'으로 표현된다. 어렵게 들리지만 핵심은 간단하다. 고양이라는 패턴을 천만 개의 매개변수로 잡았다면, 그건 천만 차원의 공간에서 고양이를 그리는 셈이다. 우리는 3차원 세계에 사는 존재라 그 이상은 머릿속에 그릴 수 없다. 하지만 수학은 차원이 아무리 높아도 계산해낸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인공지능이 거꾸로 사람을 비춘다. "왜 사람은 마음을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까?"라는 오래된 물음에 한 가지 해석이 생긴다. 말이 마음보다 차원이 낮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3차원 입체는 2차원 평면에 온전히 담기지 않는다. 마음을 말로 옮길 때도 마찬가지다.
입체(3차원)를 평면(2차원)에 완벽히 그릴 수는 없다. 공을 종이에 아무리 잘 그려도 그건 동그라미일 뿐 공이 아니다. 마음이 60차원쯤이고 말이 30차원쯤이라면, 사람은 자기 마음을 말로 정확히 옮길 방법이 없다. 그저 어렴풋이 가리킬 뿐이다.
그래서 30년을 함께 산 부부가 싸울 때도 "사람 마음을 왜 이렇게 몰라주느냐"는 말이 나온다. 30년을 같이 살아도 마음은 말로 다 전해지지 않는다. 차원이 다르고, 서 있는 자리가 다르고, 같은 단어도 서로 다른 뜻으로 쓴다. 여기서 오래된 지혜 하나가 다시 읽힌다. 그 사람의 처지가 되어보기 전에는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는 말. 마음은 말로 다 표현되지 않으니, 남의 속을 안다고 쉽게 단정하지 말라는 뜻으로 새길 수 있다.
최근 AI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 중 하나는 '에이전트 워크플로우(agentic workflow)'다. 스탠퍼드대 앤드루 응(Andrew Ng) 교수가 정리해 널리 알려졌다. 핵심은 이렇다. 똑같은 AI라도 질문을 한 번 던지고 답을 받는 방식(제로샷)보다, 여러 역할로 나눠 협업하게 했을 때 훨씬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다.
응 교수가 코딩 능력 시험(HumanEval)으로 비교한 결과는 인상적이다. 구형 모델인 GPT-3.5에 한 번에 답을 시키면 48.1점, 열 배 이상 큰 신형 GPT-4에 한 번에 시키면 67.0점이었다. 그런데 작은 GPT-3.5를 '에이전트 워크플로우'로 감싸자 95.1점까지 치솟았다. 모델 크기를 키우는 것보다, 일하는 방식을 바꾼 효과가 더 컸다.
코딩 시험(HumanEval) 정확도. 작은 모델도 여럿이 나눠 일하면 큰 모델 단독을 앞선다.
문제가 들어오면, 첫 번째 에이전트가 "이건 무엇에 관한 문제인가" 해석한다. 두 번째가 풀이 계획을 세우고, 세 번째가 그 계획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네 번째가 실행하고, 다섯 번째가 필요한 도구를 가져다 쓴다. 이렇게 역할을 나눠 모이면, 혼자 한 것보다 훨씬 나은 결과가 나온다. 오늘날 잘 만들어진 AI들은 안에서 대부분 이런 방식으로 일한다.
그런데 왜 여럿이 모이면 더 똑똑해질까? 인공지능 개발은 막힐 때마다 사람의 뇌를 다시 들여다보곤 한다. 원본이 거기 있으니까. 그래서 다음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우리 뇌로 넘어간다.
뇌는 몸무게의 2퍼센트밖에 안 되지만 우리가 쓰는 에너지의 약 20퍼센트를 잡아먹는다. 엄청난 대식가다. 그래서 뇌의 첫 번째 목표는 에너지를 아끼는 것이다.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것도, 시험 전날 괜히 딴짓하고 싶은 것도, 따지고 보면 에너지를 덜 쓰려는 뇌의 작전이다.
인식할 때도 마찬가지다. 흥미롭게도 뇌를 측정해 보면, 무언가를 볼 때 눈에서 뇌로 가는 신호보다 뇌에서 눈으로 가는 신호가 더 많다. 어떻게 보는 행위에서 뇌가 눈에게 보내는 신호가 더 많을 수 있을까. 인간은 미리 패턴을 만들어두고, 그 패턴을 들이대 보며 맞는 것이 나오면 인식을 끝내기 때문이다. 점 두 개에 아래로 반원만 그려도 우리는 그것을 웃는 얼굴로 읽는다. 추상적인 패턴을 만들고 적용하는 데 인간은 놀랍도록 능하다.
우리는 기억을 고화질 동영상처럼 통째로 저장한다고 흔히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식이면 뇌가 감당하지 못한다. 실제로는 추상적인 패턴의 연결 고리만 저장해 두었다가, 불러올 때 색을 입히고 소리를 입혀 재구성한다. 그래서 모든 기억은 불러올 때마다 다시 편집된다. 같은 사건을 두 사람이 다르게 기억하고, 오래된 기억이 흐려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인류의 뇌 용량은 진화 내내 커져 왔다. 그런데 한 연구는, 비교적 최근에 뇌가 오히려 작아졌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미국 다트머스대 제러미 디실바(Jeremy DeSilva) 연구진은 1,000개 가까운 두개골 자료를 분석해, 약 3,000년 전부터 인간의 뇌 용량이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고 2021년 발표했다. 연구진은 그 원인으로 집단지성을 지목했다. 사회가 지식을 나눠 갖게 되면서 개인이 모든 것을 머리에 담을 필요가 줄었다는 가설이다.
이 '3,000년 전 뇌 축소' 주장은 학계에서 결론이 난 정설이 아니다. 2022년 네바다대 라스베이거스(UNLV) 연구진은 같은 자료를 다시 분석해 "최근 3만 년, 어쩌면 30만 년 동안 현생인류의 뇌 크기에 의미 있는 축소는 없었다"고 반박했다. 표본 수와 지역 편차 등이 쟁점이다. 그러니 아래 이야기는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 '흥미로운 가설'로 받아들이는 편이 정확하다.
가설의 진위와 별개로, 인간이 서로의 뇌를 연결해 산다는 사실 자체는 분명하다. 우리는 모든 것을 혼자 기억하지 않는다. 집 짓는 기억은 목수에게, 요리의 기억은 요리사에게 맡기고, 필요하면 값을 치르고 그 기억을 빌려 쓴다. 피아노를 배우고 싶으면 피아노를 아는 사람을 찾아간다. 이렇게 여러 뇌가 연결되어 작동하는 것을 우리는 집단지성이라 부른다. 앞서 본 에이전트 워크플로우가 떠오르지 않는가. 여럿이 역할을 나눠 연결될 때 똑똑해지는 것은, 기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여기서 한 가지 결론이 나온다. 연결된 뇌의 관점에서 보면, 개인의 머리가 가장 좋은 사람이 아니라 연결을 가장 잘 해내는 사람이 가장 지혜롭다. 그리고 뉴런과 뉴런을 잇는 가장 강력한 매개가 무엇인가. 친절이다. 남의 말을 경청하고, 돕고자 하고, 존중하는 태도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호를 잇는다. 그래서 이런 말이 성립한다. 친절은 지능의 외부적 표현이다. 개인 지능 검사로는 드러나지 않아도, 집단지성의 한 축으로서 그런 사람은 대단히 뛰어난 지능을 발휘한다.
친절이 곧 지능의 표현인 이유는, 그것이 연결을 만드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평판은 마른 시멘트 가루처럼 쌓인다. 평소에는 아무 표가 안 난다. 그런데 비가 한 번 내리고 나면 굳는다. 남을 존중하며 20년을 살면, 어느새 평판이 단단하게 굳어 있다. 그것은 한순간에 흉내 낼 수 없는 세월의 무게여서, 주변이 쉽게 따라오지 못하는 자리를 만들어 준다.
기계를 이해하려고 그 안을 들여다본 끝에, 우리는 다시 사람에게 돌아왔다. 패턴을 찾고, 차원을 가늠하고, 연결로 똑똑해진다는 것 — 그 이야기는 처음부터 인공지능의 것이자 인간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