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네이티브 기업 탐방
한국이 첫 시장이자 지금도 가장 큰 시장인 AI 영어 학습 서비스 Speak. 이 회사가 일하는 방식은 “사람이 코드를 친다”는 오래된 통념을 정면으로 뒤집는다. 엔지니어는 더 이상 키보드로 코드를 입력하지 않는다.
Speak은 2016년 미국에서 설립된 인공지능 영어 학습 서비스다. 공동 창업자는 최고경영자(CEO, Chief Executive Officer) 코너 즈윅(Connor Zwick)과 최고기술책임자(CTO, Chief Technology Officer) 앤드루 슈(Andrew Hsu)로, 두 사람 모두 대학을 중도에 떠나 창업에 뛰어든 틸 펠로(Thiel Fellow) 출신이다. 회사의 목표는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사람을 대신해 끊임없이 말하게 만드는 ‘초인적 언어 교사’를 만든다.
접근법이 통상의 학습 앱과 다르다. 문법 규칙이나 단어를 외우게 하는 대신, 인공지능을 이용해 학습자가 가능한 한 많이, 가능한 한 빨리 소리 내어 말하게 한다. 회사는 이것이 회화 유창성에 이르는 핵심이라고 본다. 실제로 사용자는 가입 첫 주에 평균 1,000번가량 입을 연다고 회사는 설명한다.
흥미로운 대목은 첫 시장으로 한국을 골랐다는 점이다. 가장 큰 기회가 영어 교육에 있다고 판단했고, 영어 학습을 향한 문화적 열망이 유난히 강한 시장을 찾던 중 한국이 분명한 후보로 떠올랐다. 앱 내 번역 품질에 공을 들인 탓에, 초기 사용자 상당수는 이 서비스가 서구 기업의 제품이라는 사실에 오히려 놀랐다고 한다. 한국에서 다진 학습 경험은 이후 거의 손대지 않고도 다른 나라와 문화권에서 통했다.
현재 Speak은 40여 개국에서 영어·한국어·스페인어·일본어·프랑스어·이탈리아어 6개 언어를 가르치며, 누적 다운로드는 1,500만 건을 넘는다. 한국에서는 인구의 약 6%가 이 앱으로 영어를 학습한 것으로 회사는 집계한다. 2024년 말 7,800만 달러 규모의 시리즈 C(Series C) 투자를 유치하며 기업가치 10억 달러의 유니콘이 됐고, 연환산 매출(ARR, Annualized Recurring Revenue)은 1억 달러를 넘어섰다. 누적 투자액은 1억 6,000만 달러 이상이며, 투자자 명단에는 OpenAI 스타트업 펀드, 액셀(Accel), 코슬라 벤처스(Khosla Ventures), 와이 콤비네이터(Y Combinator) 등이 올라 있다. 2025년에는 포브스(Forbes)의 ‘AI 50’ 명단에 언어 교육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회사가 스스로를 “창업 첫날부터 AI 네이티브”라고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엔지니어의 책상에는 여러 인공지능 에이전트가 동시에, 그리고 종일 돌아가고 있다. 한 엔지니어는 키보드 대신 마이크로 에이전트에게 말로 지시하고, 작은 보조 키보드로 코드 편집을 빠르게 승인한다. 사람이 직접 글자를 두드리는 시간보다, 무엇을 만들지 계획하고 결과를 검토하는 시간이 일과의 중심이 됐다.
주목할 변화는 ‘반복되는 수작업을 도구로 바꾸는’ 습관이 조직 전반에 퍼져 있다는 점이다. 한 엔지니어는 특정 동료에게 코드 리뷰 요청을 자주 받는데, 태그가 달릴 때마다 해당 변경 사항의 요약과 남길 만한 의견 초안이 메신저로 자동 정리돼 도착하도록 도구를 직접 만들었다. 회의 녹취를 자동으로 작업 환경에 끌어와 맥락으로 삼는 장치도 붙였다. 이 도구들은 “내가 아직도 인공지능에게 매번 손으로 시키고 있는 일이 뭐냐”고 스스로 물어 찾아낸 결과물이다. 손이 가는 일을 하나씩 떼어 자동화할수록, 사람의 무게중심은 계획·아키텍처·아이디어 쪽으로 옮겨 간다.
이 회사의 엔지니어는 코드를 손으로 쓰지 않는다. 모든 코드는 에이전트를 통해 작성된다. 앤트로픽(Anthropic)의 클로드 코드(Claude Code)와 오픈에이아이(OpenAI)의 코덱스(Codex) 같은 코딩 에이전트가 그 일을 맡는다. 엔지니어의 일상은 ‘코드 타이핑’이라는 흔한 작업에서, 계획을 세우고 시스템을 설계하며 여러 에이전트를 동시에 지휘하는 일로 바뀌었다. 기능 하나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면 즉시 수백 줄이 생성되는 경험은 너무 강력해서, 회사는 “이전 방식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이 변화는 엔지니어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일본 성장 마케팅 담당자 한 명은 코딩 에이전트를 익혀 사실상 ‘빌더’가 됐다. 그는 수천 명의 인플루언서에게 접촉하고 그 결과를 추적하는 과정을 직접 시스템으로 구축했다. 과거에는 사람 손이 많이 가는 번거로운 작업이었지만, 지금은 그가 만든 하나의 잘 짜인 시스템이 그 일을 대신한다.
▩ 비유로 이해하기 — ‘목수’에서 ‘현장 감독’으로
망치를 직접 든 목수를 떠올려 보자. 에이전트를 ‘더 빠른 망치’로만 쓰는 사람은 여전히 목수다. 일하는 속도만 빨라졌을 뿐, 머릿속의 일하는 방식은 그대로다.
반면 망치질 자체를 기계에게 맡기되, 작업장을 설계하고 기계가 일을 잘하도록 환경과 점검 절차를 만드는 사람은 ‘현장 감독’이다. Speak의 최고기술책임자는 이 둘을 ‘엔지니어 1’과 ‘엔지니어 2’로 구분한다. 엔지니어 2는 자기 일이 ‘기능을 구현하는 것’에서 ‘에이전트가 더 잘 일하도록 환경과 피드백 고리를 만드는 것’으로 바뀌었음을 이해한 사람이고, 회사는 이 격차가 앞으로 더 벌어질 것으로 본다.
일하는 방식이 바뀌자 사람을 뽑는 방식도 바뀌었다. 회사는 빅테크가 흔히 쓰는 알고리즘 풀이식 코딩 시험을 애초에 보지 않았는데, 이제는 채용 과정 전반에서 후보가 직접 에이전트를 사용하도록 한다. 집에서 무언가를 만들어 오는 과제(take-home project)를 통해, 손으로만 코딩해서는 도달할 수 없는 수준의 범위와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를 본다.
다만 ‘에이전트를 100% 쓰는 것’이 정답은 아니라고 회사는 선을 긋는다. 핵심은 언제 도구를 쓸지에 대한 판단이다. 에이전트로 무언가를 만들었다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높은 주도성, 강한 주인 의식, 시스템 설계와 아키텍처를 사고하는 능력처럼 늘 가치 있던 자질은 에이전트 시대에 오히려 더 중요해졌다.
회사가 보는 더 큰 그림은 이렇다. 오래도록 엔지니어링은 제품 개발의 가장 비싸고 느린 병목이었다. 그 병목이 풀리자, 에이전트를 능숙하게 다루는 사람의 처리 용량이 크게 늘었다. 그렇다고 인원을 줄일 계획은 없다. 채용 목표를 낮추지도 않았다. 다만 새로운 방식으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을 찾을 뿐이다.
“AI 네이티브로 가면 일이 효율화되니, 남는 시간만큼 사람을 줄이거나 다른 일로 돌리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회사의 답은 정반대다. 일이 줄지 않는다. 자유 시간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더 빨리 달리게 된다. 손끝에 강력한 도구가 쥐어졌기 때문에 한 사람의 시간은 오히려 전보다 더 값어치가 커진다. 지루하고 단순한 일이 사라지는 만큼, 사람의 일은 더 추상적이고 더 높은 수준이며 더 창의적인 쪽으로 옮겨 간다.
인공지능 제품을 향한 흔한 비판이 Speak에도 따라붙는다. ‘결국 거대 인공지능 회사의 응용 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I, 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를 감싼 껍데기일 뿐이며, OpenAI가 영어 회화 기능을 직접 내놓으면 끝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다.
초인적 언어 교사를 만드는 일은 깊고 전문화된 기술을 요구하는, 결코 쉽지 않은 과제다.
회사의 반론은 이렇다. 진짜 어려운 부분은 학습 플랫폼에 있다. 학습자가 저지른 실수를 모두 기억하고, 결이 살아 있는 좋은 교육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일은 미묘하고 까다롭다. 같은 일을 ‘잘하는 것’과 파운데이션 모델의 기본 출력 사이에는 큰 격차가 있다. 그래서 Speak은 수직 영역에 특화된 모델을 직접 학습시킨다. 강한 억양과 언어 학습자 특유의 발음을 잘 알아듣는 음성 인식 모델, 발음을 교정해 주는 모델 같은 것들이다. 진지한 학습자 시장은 거대하고, 이들은 ‘가장 좋은 제품’이라면 기꺼이 비용을 치른다는 것이 회사의 판단이다.
OpenAI와의 관계도 한 겹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OpenAI는 Speak의 투자자이자 기술 파트너다. Speak은 대규모 언어 모델(LLM, Large Language Model)인 GPT-4, 음성 인식 모델 위스퍼(Whisper), 실시간 음성 응용 프로그램 인터페이스(Realtime API)를 활용해 실시간 역할극 같은 기능을 만들어 왔다. 즉 ‘래퍼’라는 단순한 도식으로는 자체 모델과 제품에 들이는 투자가 설명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