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학 · 유전자 편집
크리스퍼는 한 세대를 흥분시킨 발견이었다. 그러나 실험실의 돌파구가 환자의 치료가 되기까지는 비용·전달·규모라는 깊은 골이 가로놓여 있다. 유전자 편집의 현주소와, 그 위에 덧씌워진 인공지능의 약속을 짚는다.
2020년, 한 생화학자가 자기 집 정원에서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시상식은 본래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리지만, 그해는 팬데믹의 한가운데였다. 노벨 위원회는 수상자의 정원으로 메달을 보내겠다고 했다. 제니퍼 다우드나(Jennifer Doudna)는 그렇게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편집 기술을 공동으로 개척한 공로로, 동료 에마뉘엘 샤르팡티에(Emmanuelle Charpentier)와 함께 상을 받았다.
그는 상을 받으려고 과학을 시작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저 언젠가 일자리를 얻기를 바랐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수상 이후 그의 역할은 달라졌다. 한 과학 혁명의 얼굴이 된다는 것은 곧 끝없는 압박을 떠안는 일이기도 했다. 크리스퍼는 유전 질환부터 기후 변화까지 손대며 수십 개의 기업을 낳았지만, 동시에 "기술이 과대 포장된 약속에 못 미쳤다"는 비판과 윤리 논란을 함께 끌고 다녔다.
그렇다면 진실은 어디쯤일까. 크리스퍼는 정말로 기적의 치료법 시대를 열었는가, 아니면 우리는 아직 너무 이른 시점에 서 있는가. 그리고 요즘 모든 분야에 끼어드는 인공지능(AI, 인공지능)은 이 그림을 바꿀 것인가.
이름부터 운명적이다. 다우드나(Doudna)라는 성을 소리 내어 읽으면 "두 유 디엔에이(do you DNA)"처럼 들린다. 그러나 우연은 거기까지다. 크리스퍼의 발상은 의외의 곳에서 왔다. 박테리아가 바이러스에 맞서는 면역 체계였다.
박테리아에 바이러스가 침입하면, 살아남은 세포는 그 바이러스의 DNA 조각 일부를 보관한다. 그리고 이를 '가이드 RNA(guide RNA)'로 바꾼다. 일종의 작은 유전자 내비게이션이다. 같은 바이러스가 다시 찾아오면, Cas9(카스나인)이라는 단백질이 이 가이드 RNA와 짝을 이뤄 침입자를 정확히 찾아 잘라 버린다. 분자 수준의 가위인 셈이다.
다우드나와 샤르팡티에의 결정적 통찰은 이것이었다. 이 '유전자 내비게이션'을 다시 프로그래밍하면, 바이러스 DNA가 아니라 다른 어떤 서열이든, 심지어 인간 세포의 유전자까지 겨냥해 자르도록 만들 수 있다는 것. 그 순간부터 DNA 편집은 이론이 아니라 도구가 되었다.
박테리아의 바이러스 방어 체계를 '재프로그래밍'한 것이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이다.
가이드 RNA는 '지명수배 전단'이고, Cas9 단백질은 그 전단을 들고 다니는 '가위'다. 전단에 적힌 인상착의(염기서열)만 바꿔 주면, 같은 가위로 전혀 다른 대상을 찾아 자를 수 있다. 크리스퍼가 혁명적이었던 이유는 바로 이 '주소만 바꾸면 끝'이라는 단순함에 있었다.
기술이 사람을 살리는 순간은 통계가 아니라 얼굴로 온다. 다우드나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환자는 빅토리아 그레이(Victoria Gray)다. 그는 미국에서 겸상적혈구병(sickle cell disease, 낫적혈구병)을 크리스퍼로 치료받은 첫 환자다.
겸상적혈구병은 적혈구가 둥근 모양 대신 낫 모양으로 변형되는 유전 질환이다. 변형된 세포가 혈관을 막아 극심한 통증과 장기 손상, 뇌졸중을 일으킨다. 2019년 7월, 미시시피주에 살던 그레이는 임상시험에 자원했다. 자기 몸에서 꺼낸 줄기세포를 크리스퍼로 편집해 다시 넣는 치료였다. 결과는 기대를 넘어섰다. 이 치료법은 훗날 카스게비(Casgevy)라는 이름으로, 2023년 12월 미국 식품의약국(FDA, 미국 식품의약국)이 승인한 첫 크리스퍼 치료제가 되었다.
두 번째 이야기는 더 최근의, 그리고 더 놀라운 사건이다. 2025년 2월 25일, 필라델피아 어린이병원(CHOP)에서 생후 6~7개월 된 아기 '케이제이(KJ)'가 세계 최초로 '단 한 사람만을 위해' 설계된 맞춤형 크리스퍼 치료를 받았다.
KJ는 'CPS1 결핍증'이라는 극희귀 대사 질환을 안고 태어났다. 단백질을 분해할 때 생기는 암모니아를 몸이 처리하지 못해, 독성 물질이 쌓여 뇌를 손상시키는 병이다. 이 병을 가진 아기의 절반 이상이 사망한다. 연구진은 KJ에게만 있는 특정 유전 변이를 겨냥해, 6개월 만에 그 한 명만을 위한 치료제를 설계·제조·승인·투여했다. 일년이 채 안 돼 아기는 기어다니고, 걷고, 온갖 곳을 기어오른다.
지금까지의 약은 같은 병을 가진 수많은 환자를 한꺼번에 겨냥한다. 대량생산이 가능해야 경제성이 맞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유전 질환은 환자가 극히 적은 '희귀'·'초희귀' 병이고, 변이도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KJ 사례가 충격적인 이유는, '한 사람만을 위한 맞춤 레시피'를 6개월 만에 만들어 냈다는 점이다. 마치 기성복 시대에서 단 한 벌의 맞춤 정장이 빠르게 재단된 것과 같다.
그러나 KJ의 치료에는 약 80만 달러의 비용이 들었다. 공공 연구비, 학계 협력, 자선 기금을 끌어모아 간신히 맞춘 금액이다. 카스게비의 정가는 환자 한 명당 약 220만 달러에 달한다. 다우드나가 거듭 강조하는 질문이 여기서 나온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KJ를 살릴 수 있는가." 그 길이 수백만 달러가 들거나, 거대한 인력과 시간을 잡아먹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핵심 병목은 '편집' 자체가 아니라 '전달'이다. 현재 대부분의 크리스퍼 치료는 환자의 세포를 몸 밖으로 꺼내(체외·ex vivo), 실험실에서 편집한 뒤, 다시 이식하는 방식이다. 과정이 복잡하고, 비싸고, 환자에게 고통스럽다. 다음 단계의 목표는 편집 분자를 환자 몸속에 직접 넣어(체내·in vivo) 필요한 세포까지 알아서 찾아가게 만드는 것이다. KJ의 치료가 바로 이 체내 방식에 가까웠고, 그래서 비용과 확장성의 돌파구로 평가받는다.
기술의 미래는 'DNA를 어떻게 자르느냐'보다 '편집 도구를 제 위치에 안전하게 보내느냐'에 달려 있다.
다우드나가 그리는 미래는 이렇다. 희귀병 환자를 빠르게 진단하고, 유전자 치료의 적합한 후보인지 신속히 판별하고, 적합하다면 매끄러운 공정으로 치료제를 만들어 검증한 뒤 환자에게 전달하는 세계. 다만 그는 시한을 못 박는 일을 경계한다. 굳이 말하자면, 앞으로 2~3년 안에 계속된 돌파구가 나오리라는 정도다. 더 많은 의료기관이 참여하고, 제조사와 손잡아 비용을 끌어내리면, 훨씬 많은 희귀 질환에 문이 열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크리스퍼 연구를 가속할 유력한 후보로 인공지능이 거론된다. 이론적으로 AI는 편집을 더 빨리 설계하고 위험을 더 정확히 예측하도록 도울 수 있다. 이 가능성은 이미 실리콘밸리의 관심을 끌었다. 챗봇 질문 가운데 건강 관련 비중이 상당하다는 점, 그리고 "언젠가 AI의 도움으로 모든 질병을 치료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식의 낙관이 그 배경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오라클(Oracle) 공동창업자 래리 엘리슨(Larry Ellison)의 발언이다. 2025년 1월 백악관에서 거대 AI 인프라 프로젝트 '스타게이트(Stargate)'를 발표하던 자리에서, 그는 간단한 혈액검사로 암을 조기에 잡아내고, 종양의 유전자를 분석해 그 환자만을 위한 mRNA(메신저 리보핵산) 암 백신을 로봇과 AI로 약 48시간 만에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흔히 "AI가 48시간 안에 암을 치료한다"는 식으로 회자된 이 발언의 실제 내용은, '48시간 안에 개인 맞춤 백신을 제조'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약속에 대한 다우드나의 태도는 한결 신중하다. 그 이유를 그는 한마디로 요약한다. "생물학은 어렵다." 오래 연구할수록 인체가 얼마나 복잡한지 더 절감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시뮬레이션만으로 인체를 이해하는 데 도달할 수 없고, 특정한 종류의 실험을 건너뛸 수도 없다. AI는 발견의 효율을 높이고 데이터를 요약하고 보고서를 쓰는 데 분명 도움이 되지만, 그러려면 '올바른 종류의, 더 많고 더 나은 데이터'로 모델을 훈련시켜야 한다는 전제가 붙는다.
그렇다면 AI는 혁신할 수 없는가. 다우드나는 단정하지 않는다. 못 한다기보다, 지금은 안 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범용인공지능(AGI, 범용인공지능) 시대가 오면 달라질지 모른다. 다만 그는 숨죽이고 기다리지는 않는다고 했다. "AI가 48시간 안에 암을 고친다"는 식의 큰 약속에 대해서도, 그렇게 된다면 누구보다 기뻐하겠지만 지금으로선 그런 조짐을 보지 못한다고 답한다. 한편 한 AI 기업 임원은 챗봇에서 신약이 발견되면 매출의 일부를 가져가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내놓기도 했는데, 이에 대한 다우드나의 반응은 짧았다. "행운을 빈다."
인간 유전체가 처음 해독된 것이 2000년 무렵이다.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인간보다 훨씬 작은 유전체를 가진 박테리아 세포조차 그 유전자의 상당 부분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른다. 유전자들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서로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다. 지도가 있다고 도시를 다 아는 것이 아니듯, 염기서열을 다 읽었다고 생명을 이해한 것은 아니다.
이 모든 야심 찬 시도에는 막대한 자원이 든다. 그런데 지난 한 해, 미국 연방 연구비는 큰 불확실성에 빠졌다. 한 분석에 따르면 2025년 미국 국립과학재단(NSF, 미국 국립과학재단)이 새로 지원한 과제 건수는 지난 10년 평균 대비 약 25% 줄었다. 비슷한 시기 국립보건원(NIH, 미국 국립보건원)도 신규 과제를 약 24% 적게 내줬다. 과학 기관 전반에서 2만 5천 명 넘는 인력이 떠났고, 그중 다수는 경력 초기의 젊은 연구자였다.
다우드나는 이 흐름이 미국 과학기술의 경제적 성공 자체를 위협한다고 본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줄곧 과학의 선도국이었고, NIH가 연구에 투자한 1달러는 약 2.5달러의 경제적 효과로 돌아온다. 꽤 괜찮은 투자 수익률이다. 이런 투자를 포기하면 그 자리는 다른 나라가 채운다. 실제로 미국이 자금을 거둬들이는 동안, 중국은 국가 주도 투자와 신속한 임상 절차를 앞세워 생명공학을 빠르게 키워 왔다.
그는 과학자 사회의 책임도 함께 짚는다. 연구가 왜 공적 자금으로 이뤄져야 하는지, 세금이 왜 연구에 쓰여야 하는지, 그 가치를 일반 시민에게 잘 설명하지 못해 온 것이 과학계의 약점이라는 자성이다. 동시에 그는 백신을 둘러싼 회의론과 공중보건 불신의 확산을 위험한 국면으로 본다. 건강에 관한 결정은 데이터와 과학에 근거해야 하며, 사람들이 의대나 대학원에서 임상 데이터를 평가하는 법을 훈련받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유전자 편집의 가장 무거운 윤리 문제는 인간 배아 편집이다. 2018년, 중국 선전의 한 연구자 허젠쿠이(He Jiankui)가 세계 최초로 유전자를 편집한 아기를 만들었다고 주장해 국제적 비난을 받았다. 그는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감염을 막겠다며 배아의 CCR5 유전자를 손댔고, 쌍둥이 여아가 태어났다. 그는 이후 불법 의료 행위로 중국 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흥미롭게도 그는 발표 직전 다우드나에게 자신의 계획을 털어놓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맞춤 아기(designer baby)'의 공포는 여기서 비롯된다. 부모가 자녀의 형질을 골라 키우는 세계 말이다. 일부 기업은 이미 지능 같은 형질을 기준으로 배아를 선별할 수 있다고 광고한다. 그러나 다우드나는 이런 선별이 가까운 시일 안에 가능하다고 보지 않는다. 키나 눈 색, 더구나 지능 같은 복잡한 형질은 수천 개의 유전자가 함께 관여하기 때문이다. 어떤 유전자 집합을 어떻게 편집해야 원하는 결과가 나올지조차 알기 어렵다.
세포 속 유전자들은 우리가 거의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서로 얽혀 작동한다. 지능 하나를 '강화'하려다 예상치 못한 다른 형질까지 따라올 수 있다. 한 가닥의 실을 잡아당겼더니 옷 전체가 풀리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다우드나는 크리스퍼의 응용을 '용도별 바구니'로 나누자고 제안한다. 원인이 분명하고 교정 지점이 또렷한 치명적 질환은 한 바구니에, 여러 유전자를 손대야 하고 부작용 위험이 큰 형질 '개량'은 전혀 다른 바구니에 담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질문이 남는다. 기술이 충분히 안전하고 효과적이 되었을 때, 부모에게 "당신은 이걸 해서는 안 된다"고 무슨 근거로 말할 것인가. 겸상적혈구병 같은 명백한 질환을 없애려는 편집은 정당화하기 쉽다. 그러나 눈 색이나 키, 근육을 바꾸려는 시도라면 사람마다 판단이 갈린다. 어떤 편집을 허용할지, 누가 그 기술에 접근할지, 누가 비용을 댈지, 누가 규제할지 — 이 질문들은 아직 답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답은 결국, 지금 생식 연령에 접어드는 세대가 내리게 될 것이다.
크리스퍼는 실험실의 발견에서 출발해 이제 스타트업과 거대 제약사, 그리고 AI 기업까지 한데 모이는 하나의 산업이 되었다. 많은 이들에게 가장 큰 걱정은 실패가 아니라 오히려 성공이다. 이토록 큰 선을 행할 수 있는 힘은, 동시에 두려운 힘이기도 하다.
다우드나는 그 힘을 '풀어놓는' 일을 두려움보다 기회로 받아들이는 쪽이라고 말한다. 다만 그 잠재적 위험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 할 책임도 함께 진다고 덧붙인다. 누군가 그를 '생명공학의 도덕적 나침반'이라 부를 때, 그것이 영예이기보다 짐처럼 느껴지지 않느냐는 물음에, 그는 발견의 조용한 기쁨이 그립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패라면 끌어안고 배우려 한다고 했다.
유전자 편집의 미래가 유토피아일지, 아니면 유전자로 계급이 갈리는 영화 속 디스토피아 '가타카(Gattaca)'일지 묻는다면, 답은 아마 그 중간 어디쯤일 것이다. 다우드나의 바람은 그 중간점이 디스토피아보다는 낙원 쪽에 조금 더 가깝기를, 그것뿐이다.
분명한 것은 하나다. 크리스퍼는 약속을 어기지 않았다. 다만 우리는, 그 약속이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닿기까지 건너야 할 골짜기의 초입에 서 있을 뿐이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