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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산업입지 · 세제와 기업 이전

기업은 왜 텍사스로 가는가

세금·규제·땅이 만든 미국 기업 이전 러시 — 그리고 삼성이 던진 신호 · 2026년 6월 28일

테슬라(Tesla)는 본사 기능을 오스틴으로 옮겼고, 휴렛팩커드 엔터프라이즈(Hewlett Packard Enterprise)는 휴스턴으로, 찰스 슈와브(Charles Schwab)는 댈러스 인근 웨스트레이크로 본사를 이전했다. 150년 가까이 뉴저지에 있던 엑슨모빌(ExxonMobil)도 텍사스로 떠났다. 그리고 2026년, 삼성전자가 그 행렬에 합류했다. 우연이 아니다. 같은 방향으로 향하는 데에는 숫자로 설명되는 이유가 있다.

출발점은 세금 — 같은 회사, 주소만 바뀌어도

미국에서 기업이 내는 법인세는 두 층으로 나뉜다. 하나는 연방정부가 걷는 연방 법인세로, 2017년 세제 개편 이후 세율이 21%로 고정돼 있다. 어느 주에서 사업을 하든 똑같이 적용되는 값이다. 다른 하나는 각 주(州)가 별도로 얹는 주 법인세인데, 바로 이 부분이 어디에 자리를 잡느냐에 따라 극단적으로 달라진다.

텍사스에는 주 법인소득세가 없다. 매출에서 비용을 뺀 마진에 매기는 가맹세(franchise tax)가 있긴 하지만 세율이 0.75%에 불과하고, 연매출 약 247만 달러 이하 기업은 아예 면제된다. 소득 기준으로 보면 텍사스 기업의 부담은 사실상 연방 21%에 수렴한다. 반면 뉴저지의 주 법인세율은 11.5%로 미국 50개 주 가운데 가장 높다. 연방 21%에 이를 더하면 명목세율은 32.5%까지 올라간다.

텍사스와 뉴저지의 법인세 명목세율 비교 연방 21% 공통, 주 법인세는 텍사스 0%, 뉴저지 11.5%. 같은 회사, 주소만 바뀌어도 — 법인세 명목세율 0% 5% 10% 15% 20% 25% 30% 35% 약 21% 텍사스 주 법인소득세 0% 연방 21% 32.5% 뉴저지 주 법인세 11.5% (전미 최고) 연방 21% 주 11.5% 텍사스는 매출 마진 기반 가맹세(0.75%)만 부과 — 소득 기준 부담은 사실상 연방 21%에 수렴
연방 법인세 21%는 공통이지만, 주 법인세가 텍사스(0%)와 뉴저지(11.5%)에서 11.5%포인트 벌어진다.
▦ 쉽게 보기 — 자릿세가 다른 두 상가

똑같은 메뉴를 파는 식당이라도 임대료가 싼 골목과 비싼 대로변에 있으면 손에 남는 돈이 다르다. 연방세 21%가 모든 상가에 공통으로 붙는 ‘기본 관리비’라면, 주 법인세는 상가마다 천차만별인 ‘자릿세’다. 텍사스는 자릿세를 거의 받지 않고, 뉴저지는 미국에서 가장 비싸게 받는다. 매출이 큰 대기업일수록 이 11.5%포인트 차이는 해마다 수억 달러로 불어난다.

물론 텍사스로 옮긴다고 세금이 무한정 낮아지지는 않는다. 미국은 2022년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Inflation Reduction Act)을 통해, 연간 순이익이 10억 달러를 넘는 초대형 기업에는 회계상 이익을 기준으로 최소 15%의 연방 최저세를 물린다. 텍사스로 가더라도 연방 부담이 15% 아래로 내려가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기업들이 텍사스를 택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연방 부담은 어차피 피할 수 없지만, 주(州) 단계에서 매년 11.5%를 통째로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세금만이 아니다 — 텍사스를 만든 네 가지 조건

세율은 입구일 뿐이다. 기업이 본사나 대형 시설을 옮길 때 따지는 것은 종합적인 ‘조건’이고, 텍사스는 그 조건을 의도적으로 설계해 왔다.

텍사스가 기업을 끌어당기는 네 가지 조건세금·규제·땅과 전력·주정부의 적극성. 텍사스가 기업을 끌어당기는 네 가지 조건 01 낮은 세금 주 법인소득세 0%·개인소득세 0%. 연방 21%만 부담, 뉴저지 대비 11.5%p 절감 02 가벼운 규제 환경·노동·인허가 규제를 최소화. ‘규제 완화’를 주(州) 정책으로 표방 03 넓은 땅·안정 전력 데이터센터·물류·대형 사옥에 필수. 부지 확보와 인허가 속도가 압도적 04 주정부의 적극성 보조금·세금 인센티브·규제 특례를 패키지로 제공, 기업 유치를 최우선
세금·규제·부지와 전력·주정부의 적극성이 맞물려 기업 이전을 끌어당긴다.

첫째, 규제가 가볍다. 캘리포니아나 뉴저지가 환경·노동·인허가 규제로 기업의 발목을 잡는 동안, 텍사스는 ‘규제 완화’ 자체를 주(州) 정책으로 내걸었다. 둘째, 땅과 전력이 있다. 데이터센터, 물류 허브, 대형 사옥 단지는 넓은 부지와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필수인데, 텍사스는 부지 확보와 인허가 속도에서 다른 주를 압도한다. 셋째, 주정부가 먼저 나선다. 텍사스 주정부는 보조금, 세금 인센티브, 규제 특례를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 기업에 제시하며 유치를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

실제로 텍사스는 반도체 산업을 겨냥해 ‘텍사스 반도체 혁신기금(TSIF, Texas Semiconductor Innovation Fund)’을 만들어 약 9.5억 달러를 배정했고, 2025년에는 삼성의 테일러 공장에 2.5억 달러를 지원했다. 테슬라가 오스틴에 기가팩토리를 지을 때도 카운티와 학군에서 6,500만 달러 규모의 세금 환급 패키지가 따라붙었다. 조건을 ‘약속’이 아니라 ‘제도’로 제공하는 것이 텍사스의 방식이다.

삼성의 결정 — 개소 8개월 만의 유턴

이 흐름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삼성전자다. 삼성의 북미 본사는 오랫동안 뉴저지에 있었고, 2025년 9월에는 잉글우드클리프스에 새 사옥을 열며 개소식까지 치렀다. 주·지역 관료들이 참석해 ‘뉴저지에 대한 투자 의지’를 한껏 과시한 자리였다. 그런데 그 결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삼성전자 미국 본사 이전 타임라인2025년 9월 개소식, 2026년 3월 예산안, 2026년 6월 텍사스 이전 발표. 개소 8개월 만의 결정 — 삼성 미국 본사 이전 2025년 9월 뉴저지 잉글우드클리프스 신사옥 개소식 (주·지역 관료 참석, 투자 의지 과시) 2026년 3월 셰릴 주지사 첫 예산안 기업 손실공제 축소 등 기업 부담 약 7.5억 달러↑ 2026년 6월 텍사스 플레이노 이전 발표 약 1,000명 재배치 (개소 8개월 만)
신사옥 개소식과 텍사스 이전 발표 사이의 간격은 불과 8개월이었다.

2026년 6월 1일, 삼성전자 미국법인은 본사를 텍사스 플레이노의 기존 캠퍼스로 옮긴다고 공식 발표했다. 약 1,000명의 직원이 재배치 대상이 됐다. 텍사스는 삼성이 1996년부터 오스틴에 반도체 공장을 운영해 온 곳이고, 약 370억 달러를 투입한 테일러 파운드리가 2026년 말 가동을 앞둔 거점이다. 경영 본부를 생산 거점 옆으로 옮겨 의사결정을 한곳에 모으겠다는 ‘통합’의 논리였다.

주목할 대목은 그 직전의 정책 변화다. 삼성은 2024년 6월 머피(Phil Murphy) 주지사가 ‘기업교통부담금’을 도입해 주 법인세를 사실상 11.5%로 끌어올렸을 때도 뉴저지에 남았다. 곧 주지사 선거가 예정돼 있었고, 2025년 11월 당선된 미키 셰릴(Mikie Sherrill)이 ‘증세 없다’를 공약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26년 3월 셰릴 주지사의 첫 예산안(약 607억 달러 규모)이 공개되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개인 증세는 없었지만, 기업의 손실공제를 제한하는 등 기업 부담을 약 7.5억 달러 늘리는 내용이 담겼다. ‘증세는 없다’던 약속이 가계에는 지켜졌지만 기업에는 적용되지 않은 셈이다.

“선거 전 여러 번 ‘새로운 세금은 없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첫 예산에서는 기업을 정조준했다.” 뉴저지 상공회의소 대표가 셰릴 주지사의 첫 예산안을 두고 한 평가(현지 언론 종합)

삼성의 텍사스 이전 통보는 그로부터 약 두 달 뒤에 나왔다. 인과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기업이 한 주(州)에 머무를지 떠날지를 저울질할 때 ‘예측 가능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신호였다.

뉴저지가 잃은 것 — 접근성 프리미엄의 소멸

뉴저지가 기업을 떠나보내는 이유는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구조적이다. 전미 최고의 법인세율, 높은 임대료와 생활비, 복잡한 규제가 겹쳐 있다. 뉴저지가 오랫동안 기업을 붙들어 둘 수 있었던 무기는 ‘뉴욕과의 접근성’이었다. 그러나 세금과 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뉴욕 옆에 있어야 할 이유가 점점 옅어졌다.

22 → 15
뉴저지에 본사를 둔 포춘 500대 기업 수 (2018년 → 현재). 7곳이 줄며 약 3분의 1이 빠져나갔다.

삼성 본사가 자리했던 잉글우드클리프스·포트리·팰리세이즈파크 일대는 한인 식당과 호텔, 서비스업이 밀집한 곳이다. 매일 출근하던 직원 약 1,000명과 협력업체 방문객이 핵심 소비층이었던 만큼, 본사 이전은 세수뿐 아니라 지역 상권에도 직접적인 충격을 남긴다. 기업 하나가 떠날 때 함께 빠져나가는 것은 일자리만이 아니다.

그러나 조건은 영구적이지 않다 — 오라클의 두 번째 이사

‘텍사스로의 이동’을 단선적인 승리 서사로만 읽으면 절반만 보는 것이다. 오라클(Oracle)은 2020년 본사를 캘리포니아에서 오스틴으로 옮기며 ‘텍사스 미라클’의 상징처럼 거론됐다. 그러나 4년도 채 지나지 않은 2024년, 오라클은 본사를 다시 테네시주 내슈빌로 옮기겠다고 발표했다. 의료산업 중심지에 가까워지려는 전략적 판단이었고, 내슈빌과 테네시주가 제시한 수억 달러 규모의 세제 혜택도 작용했다.

교훈은 분명하다. 기업을 끌어당기는 것은 ‘조건’이지 ‘충성심’이 아니다.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하는 곳이 나타나면 기업은 다시 움직인다. 텍사스가 뉴저지에서 기업을 데려온 논리는, 언젠가 다른 주가 텍사스에서 기업을 데려가는 논리로 똑같이 작동한다.


한국에 던지는 질문

이 이야기는 미국 안의 주(州) 경쟁에서 끝나지 않는다. 2026년 6월,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도쿄에서 열린 한 포럼과 일본 경제지 인터뷰를 통해, 인공지능(AI) 학습·추론에 특화된 차세대 데이터센터 ‘AI 팩토리’를 2028~2029년 가동을 목표로 일본에 짓겠다고 밝혔다. 대도시 전체 전력 소비량에 맞먹는 기가와트(GW)급 시설로, 엔비디아(NVIDIA)의 그래픽처리장치(GPU)와 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메모리(HBM, High Bandwidth Memory)를 결합하는 구상이다.

“한국에서 안 되면 해외라도 가야 하는 것 아니겠나.”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신규 반도체 공장 입지를 두고 한 발언(현지 인터뷰 종합)

본사도, 데이터센터도, 이제는 반도체 투자까지 — 기업은 명분이 아니라 조건을 보고 움직인다. 텍사스는 세금·규제·부지·전력이라는 조건을 바꿔 기업을 끌어당겼고, 뉴저지는 그 조건을 바꾸지 않아 기업을 놓쳤다. AI 데이터센터처럼 막대한 전력과 부지를 요구하는 산업일수록, 어느 나라가 그 조건을 먼저 갖추느냐가 곧 산업의 지도를 다시 그린다.

기업이 한곳에 머물게 하는 힘은, 글로벌 시대에는 ‘여기 남아 달라’는 호소가 아니다. 세율과 전력, 부지와 인허가 속도라는 구체적인 조건이다. 텍사스의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결국 하나의 명제로 모인다. 기업을 붙드는 것은 구호가 아니라 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