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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과 일하는 방식

통제가 아니라 맥락 — 한국과 미국 조직의 거리

실리콘밸리에서 30년 가까이 개발자이자 리더로 일한 한 사람의 관찰을 따라가 보면, 한국과 미국 기업의 차이는 제도나 복지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을 어떻게 믿느냐’의 문제로 좁혀진다. 관리·통제냐, 방향·맥락이냐. 그 선택이 리더십·인사·커리어 전반을 갈라놓는다.

한국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대기업 엔지니어로 출발해, 작은 스타트업부터 야후 같은 거대 기업까지 십수 곳을 거친 한 리더가 있다. 그는 한쪽에서는 ‘관리하고 통제하는’ 조직을, 다른 쪽에서는 ‘방향만 정해주고 맡기는’ 조직을 모두 겪었다. 두 세계를 오래 오간 사람의 눈에 비친 차이는 의외로 단순했다. 한국은 사람을 관리의 대상으로 보고, 미국 기술기업은 사람을 자율의 주체로 본다는 것이다. 이 글은 그 관찰을 리더십, 인사(HR, 인적자원관리), 조직 구조, 커리어라는 네 축으로 풀어낸 것이다.

리더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그가 처음 미국에서 매니저 역할을 맡았을 때, 스스로 ‘리더’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할 사람이 없으니 떠맡았을 뿐이고, 팀을 키우는 일보다 자기 손으로 개발하는 일이 더 중요한 책임이라 여겼다. 전환점은 석사를 마치고 9년쯤 일한 뒤 만난 한 상사였다. 그 상사에게서 배운 것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는 명확하게 결정하는 일의 중요성이다. 그는 많은 리더가 ‘옳은 결정, 틀리지 않는 결정, 모두를 만족시키는 결정’을 찾다가 시간을 허비한다고 봤다. 결정을 내리기가 두려우니 ‘정보가 부족하다’는 명분 뒤에 숨는다는 것이다. 좋은 결정의 전제는 정보의 양이 아니라, 팀원이 자기 생각을 편하게 꺼내는 신뢰였다. 신뢰가 쌓인 조직에서 의견을 충분히 듣고, 그다음에는 망설이지 않고 결정한다.

둘째는 부드러움과 단호함이 양립한다는 사실이다. 그는 오랫동안 둘이 공존할 수 없다고 믿었지만, 그 상사는 말을 걸기 편할 만큼 부드러우면서도 결정과 피드백 앞에서는 단호했다. 말 걸기 편하다는 것은 사소해 보여도 결정적이다. 그것이 무너지면 팀원은 의견을 내지 않게 되고, 리더는 들을 정보를 잃는다.

비유

리더가 되는 일은 수영을 배우는 것과 비슷하다. 물에 한 번도 들어가 보지 않은 사람은 자신이 수영에 맞는지 영영 알 수 없다. 그가 강조하는 것도 ‘일단 들어가 볼 수 있는 환경’이다. 한 번 해보고 맞지 않으면 다시 물 밖으로 나오면 된다는 안전장치가 있어야, 사람들은 ‘나는 리더감이 아닌가’라는 고민에 사로잡히지 않고 뛰어든다. 그는 처음 매니저 제안을 받았을 때 ‘1년 해보고 결정하자’고 했다. 만약 6개월로 정했다면, 가장 힘들던 그 6개월 차에 “역시 나는 아니다”라며 포기했을 거라고 회고한다.

그가 ‘이 일을 할 만하다’고 느낀 계기도 두 가지였다. 하나는 자신이 준 피드백을 듣고 후배가 눈에 띄게 성장하는 모습을 봤을 때의 자신감이고, 다른 하나는 잘 짜인 팀이 개인의 단순 합을 넘어서는 결과를 낼 때의 경험이었다. 리더십은 재능이라기보다 작고 큰 실패를 거치며 더 나은 방법을 익혀가는, 시간이 필요한 기술에 가깝다.

인사 부서의 두 얼굴: 깔아주기와 끼어들기

그가 보는 인사 부서의 역할은 두 갈래다. 하나는 ‘수동적 지원’이다. 리더가 해야 할 일을 인사 부서가 대신 떠안지 말고, 관리자들이 직접 채용하고 평가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틀(프레임워크)을 마련해 주는 일이다. 판을 깔아주되, 경기는 리더가 뛰게 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능동적 지원’이다. 흔히 HRBP(HR Business Partner, 인사 사업 파트너)라 부르는 이들이 리더와 적극적으로 대화하며, 리더가 놓치는 것을 짚어준다. 인원이 적정한지, 추가 채용이 필요한지를 함께 따지고, 리더가 필요를 더 논리적으로 요청하도록 돕는다. 평가에서도 끼어든다. 여기서 핵심 개념이 캘리브레이션(calibration, 평가 기준 보정)이다.

비유

캘리브레이션은 여러 심사위원이 같은 잣대로 채점하도록 맞추는 일이다. 똑같은 연기를 보고도 어떤 심사위원은 후하게, 어떤 심사위원은 박하게 준다면 점수는 실력이 아니라 ‘누구에게 평가받았는가’를 반영하게 된다. 평가 보정이 없으면 직원의 고과는 매니저의 성향에 휘둘린다. HRBP가 평가 과정에 적극 개입해 팀 간 기준을 맞추는 이유다.

그가 인사 부서를 ‘지원 조직’이라 정의하는 것은 그래서다. 판을 깔아 리더가 알아서 하게 하는 쪽과, 더 적극적으로 끼어들어 결국 리더가 잘하게 만드는 쪽 — 두 관점이 함께 가야 한다.

제조업의 DNA, 관리와 통제

한국과 미국 인사 문화의 가장 큰 차이를 그는 ‘제조업의 유산’에서 찾는다. 한국 대기업 인사는 공장에서 공정을 관리하던 방식을 닮았다. 관리하고 통제하려는 성향이 강하고, 채용부터 평가·보상까지 전반을 인사 부서가 직접 쥔다. 반면 미국 기술기업은 그 상당 부분을 리더에게 넘긴다. 인사는 프로세스를 만들고 그 일부가 되지만, 채용과 평가의 주체는 매니저다.

통제로 정렬 vs 맥락으로 정렬 왼쪽은 모든 결정이 리더를 거치는 통제 모델, 오른쪽은 리더가 방향만 주고 팀이 자율 실행하는 맥락 모델 통제로 정렬 맥락으로 정렬 리더 실무 실무 실무 모든 결정이 위를 거친다 · 병목 리더 실무 실무 실무 방향·맥락 방향만 공유 · 실행은 자율
통제로 정렬하는 조직은 모든 결정이 리더를 거쳐 병목이 생긴다. 맥락으로 정렬하는 조직은 리더가 방향만 공유하고 실행은 팀에 맡긴다.

이 차이를 가장 또렷하게 표현한 곳이 넷플릭스다. 넷플릭스는 위원회식 합의가 의사결정을 늦추고 책임 소재를 흐린다고 보고, 사안마다 ‘정통한 책임자(informed captain)’를 두어 판단하게 한다. 그렇게 정해진 방향 아래 각 팀이 독립적으로 실행한다. 이것이 넷플릭스가 ‘정렬은 강하게, 결합은 느슨하게(highly aligned, loosely coupled)’라고 부르는 운영 원칙이다. 팀은 전략적 목표와 맥락을 충분히 공유하되, 실행 방식에서는 큰 자율을 갖는다.

그가 좋아하는 대목도 여기다. 경영진이 방향을 잘 맞춰 놓으면, 실행하는 쪽은 다른 팀과의 충돌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자기 일에 집중할 수 있다. 한 번 정한 방향이 영원히 가지는 않으므로, 리더들이 계속 만나 어긋난 부분을 조율하는 일이 곧 매니지먼트의 책임이 된다.

역할 경계가 협업을 죽일 때

그는 ‘아레나(arena, 책임 영역)’를 지나치게 따지는 조직을 경계한다. 축구로 치면 각자 포지션이 있지만, 상황에 따라 공격수도 수비해야 한다. 그런데 경계만 따지는 조직은 상대가 공을 몰고 들어오는데도 “너는 수비니까 수비하고, 나는 공격할게”라며 책임 떠넘기기에 바쁘다. 애매한 영역이 생길 때마다 “이거 누구 책임이야”를 먼저 묻는 조직에서는, 협업이 느는 게 아니라 분쟁이 늘어난다.

건강한 충돌은 오히려 장려해야 한다. 미션과 비전을 공유하고 “네가 그걸 하니 나도 이걸 해볼게”라고 말할 수 있을 때 시너지가 난다.

실패에 관대한 조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실패에 관대해야 한다는 데는 누구나 동의한다. 어려운 것은 ‘어떻게’다. 그는 이 일을 세 층위로 나눈다.

개인은 자기 앞에 남은 시간이 길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시간이 없다고 느끼면 단기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그는 아직 20대인데도 지금 하는 일이 안 되면 인생이 끝난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다는 점을 의아해한다. 자신의 약점만 보지 말고 강점도 함께 보라는 것이다.

중간 관리자는 사고가 터졌을 때 대외적으로는 자신이 책임지고, 대내적으로는 손가락질 대신 재발 방지에 집중해야 한다. 자기가 직접 만든 문제가 아니어도, 리더로서 지는 책임이 있다.

최상위 리더 역시 같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 다만 그는 한국 대기업의 구조적 걸림돌을 지적한다. 매년 정기적으로 조직을 개편하니, 리더가 길어야 1년만 내다보게 된다는 것이다. 1년 안에 성과를 증명해야 한다면 실패를 감수할 여유가 없다. 그는 미국 기업에는 정기 조직개편이라는 것이 없다고 말한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문화는, 어쩌면 짧은 평가 주기가 만들어내는 자연스러운 결과인지도 모른다.

맥락

그가 겪은 차이 하나. 그는 일곱 곳의 스타트업을 거쳤는데, 그중 네 곳에서 창업자 대표가 이사회 결정으로 교체되는 것을 봤다. 미국에서 최고경영자에 대한 평가는 이사회가 실질적으로 한다. 반면 한국은 이사회가 유명무실해 그런 결정이 잘 나오지 않는다고 본다. 또 한국 임원은 대체로 몇 년 단위 계약직이지만, 미국은 기간을 정해두지 않는다. 언제든 해고는 가능하되, ‘몇 년짜리’라는 시계가 머리 위에 걸려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가 인용하는 인물이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다. 베이조스는 의미 있는 실패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고 거듭 말해왔다. 무언가를 배운 실패라면, 그것을 다음에 더 잘하겠다는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사람이 더 문제일 수 있다.

기술이 아니라 임팩트

그는 한국과 실리콘밸리 개발자의 차이를 ‘기술 지향’ 대 ‘결과 지향’으로 본다. 그가 보기에 한국 개발자는 이력서에 어떤 기술을 적을지에 관심이 많다. 무엇이 뜬다고 하면 그것을 다 익히려 하고, 새 기술이 나올 때마다 따라가야 마음이 편하다. 늘 조바심과 불안이 따른다. 그는 자신이 한국에서 대기업 엔지니어로 일하던 시절이 꼭 그랬다고 고백한다. 야근하고 집에 가서도 또 다른 공부를 했으니, 결코 건강한 상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커리어를 길게 보면, 내가 무엇을 ‘아느냐’보다 무엇을 ‘성취해봤느냐’가 훨씬 중요하다.

성취의 경험에 긍정적인 태도가 더해지면 좋은 평판이 쌓이고, 생각지 못한 기회가 자연스럽게 찾아온다. 그가 보기에 실리콘밸리의 개발자는 임팩트를 내는 데 관심이 많고, 매니저가 되는 편이 일을 더 빠르게 진행시킨다고 판단되면 기꺼이 그 역할을 맡는다. 반대로 개인 개발이 더 필요하면 다시 개발로 돌아간다. 상황에 따라 융통성이 크다. 반면 한국 개발자 사이에는 “매니저가 되면 금방 잘린다”는 식의 기피가 있다. 그는 이것을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환경의 차이로 본다. 회사 일과 내 커리어를 별개로 여기게 만드는 환경 말이다.

작은 팀, 큰 책임

조직 구조 자체는 한국이나 미국이나 비슷하다고 그는 말한다. 기능 조직(직군별로 묶인 조직)과 목적 조직(프로젝트를 위해 모인 조직)이 있고, 규모가 커지면 기능 조직에서 사람을 모아 목적 조직을 꾸린다. 차이는 구조가 아니라, 두 조직의 리더가 자주 대화하느냐에서 난다.

핵심

사람은 결국 자기를 평가하는 사람의 말을 듣는다. 대개 평가는 기능 조직이 한다. 그래서 목적 조직에 속해 있어도 그 리더의 평가는 하나의 참고 의견일 뿐, 진짜 무게는 기능 조직 리더에게 실린다. 두 리더의 방향이 어긋나면 직원은 자기를 평가하는 쪽을 따른다. 이를 줄이려면 두 리더가 ‘공동의 목표’를 명확히 갖고, 자주 만나 방향을 맞춰야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조직도가 아니라 공동의 목표와 리더 간의 정렬이다.

또 하나 그가 강조하는 것이 ‘의사소통 비용’이다. 사람 수가 늘면 설득해야 할 상대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네 명일 때와 열여섯 명일 때, 맞춰야 할 사람의 수가 크게 벌어진다.

팀 크기와 의사소통 비용 구성원이 늘수록 연결선(의사소통 경로)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함을 보여주는 도식 4명 6 개의 소통 경로 8명 28 개의 소통 경로 16명 120 개의 소통 경로
구성원이 두 배가 되면 소통 경로는 네 배 넘게 늘어난다. 팀이 커질수록 ‘맞추는 비용’이 가파르게 증가한다.

이런 비용을 줄이려고 그가 가장 선호하는 모델이 아마존의 ‘싱글 스레디드 팀(single-threaded team)’이다. 기능 조직과 목적 조직으로 나누지 않고, 하나의 팀이 처음부터 끝까지 한 가지 일을 온전히 책임진다. 아마존은 “두 판의 피자로 먹일 수 있는 크기”를 팀의 상한으로 삼고, 그 팀을 다른 일에 한눈팔지 않는 전담 책임자가 이끈다. 베이조스의 표현을 빌리면, 무언가를 발명하는 가장 확실한 실패 방법은 그것을 누군가의 ‘부업’으로 만드는 것이다. 다만 그도 인정하듯, 이 모델이 굴러가려면 조직 문화의 많은 부분이 바뀌어야 해서 아무 회사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스몰토크가 곧 협업이다

리더 간 소통을 어떻게 활발하게 만들 것인가. 그의 답은 단순하다. 협업하는 리더끼리는 무조건, 최소 2주에 한 번은 만나라. 안건이 없어도 만나서 잡담이라도 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한국과 미국의 또 다른 차이가 드러난다.

그가 보기에 한국 직원 상당수는 일대일 면담에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리는 반면, 미국에서는 주말에 뭘 했는지부터 시작해 온갖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가족 상황까지 알게 된다. 이런 맥락이 쌓여 있으면, 가령 동료가 “아이가 아파서 오늘은 재택해야겠다”고 말할 때 아무런 허들이 없다. 상대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아는 것은 협업에 큰 도움이 된다.

비유

스몰토크는 협업의 ‘윤활유’가 아니라 ‘배선’에 가깝다. 평소에 잡담으로 깔아둔 인간적 연결이 없으면, 정작 어려운 부탁이나 민감한 조율이 필요한 순간 대화를 시작할 통로 자체가 없다. 잡담은 시간 낭비가 아니라, 나중에 필요한 진지한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사전 투자다. 그래서 어려운 대화가 막힐 때 그는 늘 “나의 목표와 저 사람의 목표가 같은가”를 먼저 되짚는다. 공동의 목표가 없다고 판단되면, 둘만의 대화로는 풀리지 않으므로 상위 리더를 불러 맞춰야 한다.

인재 밀도, 그리고 사기꾼 증후군의 덫

좋은 인재를 어떻게 데려올 것인가는 모든 스타트업의 고민이다. 그가 꺼내는 개념이 ‘인재 밀도(talent density)’다. 공식으로 딱 떨어지는 개념은 아니고, 방향성이 핵심인 상대적 개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똑똑한 사람이 들어와야 한다는 것. 새로 들어오는 사람이 기존 구성원보다 무언가를 하나라도 더 알거나 다른 경험을 가졌을 때, 조직의 역량이 함께 커진다.

이것이 무너지면 사람 수는 느는데 역량은 제자리걸음을 한다. 그때 성장통이 시작되고, 가장 두드러진 증상이 바로 의사소통 비용의 증가다. 인재 밀도가 낮은 조직에는 도전을 꺼리는 사람이 많아, 방향이 바뀔 때마다 일일이 설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의

인재 밀도를 떨어뜨리는 함정이 ‘사기꾼 증후군(imposter syndrome)’이다. 채용하는 사람이 ‘나는 사실 자격이 부족하다’는 불안에 시달리면, 자기보다 똑똑한 사람을 뽑기를 꺼리게 된다. 위협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기보다 못한 사람만 뽑으면 인재 밀도는 한 채용 한 채용마다 조금씩 낮아진다. 더 똑똑한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뽑는 일이, 조직을 키우는 가장 기본적인 행위인 셈이다.

언제 떠나야 하는가

이직 판단에 대해 그는 몇 가지 기준을 든다. 우선, 망한 회사를 다닌 경험도 나쁘지 않다. 그 회사가 하려던 일이 내 관심사였다면, 몸으로 부딪쳐 호기심을 채우는 것만 한 게 없고, 그다음 선택이 훨씬 쉬워진다.

그가 실제로 퇴사를 결심한 이유들은 이랬다. 첫째, 바로 위 매니저와 맞지 않을 때. 미국에서는 “회사에서 느끼는 행복의 70%는 바로 위 매니저가 결정한다”거나 “회사를 떠나는 게 아니라 매니저를 떠나는 것”이라는 말이 자주 쓰인다. 실제로 갤럽 조사에서도 직원 몰입도 편차의 최소 70%가 매니저에게서 비롯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매니저와 맞지 않으면 그는 사내 이동을 먼저 검토했다.

둘째, 회사의 비전과 미션에 더 이상 관심이 가지 않을 때. 셋째, 더 이상 배우는 게 없다고 느낄 때. 다만 이 경우가 가장 어렵다고 그는 말한다. 받는 것이 많으면 결정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야후에 오래 머문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배움도 재미도 줄었다는 걸 알면서도, 보상이 많았기에 떠나지 못했다. 그는 좋지 않은 환경에 오래 있으면 자신감을 잃게 된다는 점을 경계한다. 넷째, 지금이 충분히 만족스럽더라도, 생각지 못한 더 좋은 기회가 찾아왔을 때.

다시, 통제가 아니라 맥락

그가 바라는 한국 조직의 방향은 두 가지로 모인다. 하나는 다원성을 인정하는 것. 정답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길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인사 부서가 지원 조직으로 남아, 실제로 조직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영향력을 높이는 쪽으로 가는 것이다. 인사가 너무 많은 것을 직접 떠안으려는 순간 일이 꼬인다. 개발자는 “우리는 개발만 하고 싶으니 나머지는 대신해 달라”고 하고, 그 책임을 별도 조직이 떠안는 식의 분업은 오히려 전문성이라는 함정에 가깝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각자가 자기 책임의 범위를 조금 더 넓게 인식하도록 지원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개인에게 그가 남기는 말은 조직론보다 조용하다. 무엇이 더 좋아 보이는지가 아니라, 내가 정말 무엇을 원하는지를 고민하라는 것. 연봉이 높아서, 남과 비교해 앞서서 택한 길은 행복하게 오래 가기 어렵다. 선택의 순간마다 ‘어느 쪽이 내가 원하는 길에 한 걸음 더 가까운가’를 묻고, 그렇게 자기만의 기준을 세워가는 일. 그것이 20년, 30년 이어지면 좀 더 나다운 삶에 가까워진다. 그리고 마지막 한마디. 아직 젊고, 앞에 남은 시간은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