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무명 대신 역할: 클로드 코드 팀이 사람을 보는 법
앤트로픽(Anthropic)의 클로드 코드(Claude Code) 팀은 구성원을 개발자·기획자·디자이너 같은 직무로 나누지 않는다. 대신 다섯 가지 ‘역할 원형’으로 본다. 인공지능 도구가 일의 경계를 허물면서, 누가 무슨 직함을 달았는지보다 지금 제품 단계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가 더 또렷한 구분선이 되고 있다.
직함이 녹아내린다
클로드 코드를 만들고 이끄는 보리스 체르니(Boris Cherny)는 자기 팀을 들여다보면 더 이상 ‘직무명’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엔지니어링, 제품 기획, 디자인, 데이터 과학 같은 기능들이 한데 녹아들어 새로운 형태의 일로 수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팀에서는 제품 관리자도, 엔지니어링 매니저도, 디자이너도, 심지어 재무 담당자와 데이터 과학자도 모두 코드를 짠다. 직함은 같은 자리에 남아 있지만, 실제로 하는 일은 직함의 경계를 자주 넘나든다.
그래서 체르니는 사람을 직무가 아니라 역할(role)로 보자고 제안한다. 그가 관찰한 역할은 다섯 가지다.
완전히 새로운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쏟아내는 사람이다. 수많은 시안을 빠르게 만들어 던지지만, 그중 실제 제품으로 나가는 것은 일부에 불과하다. 양으로 가능성을 탐색하는 역할이다.
거친 프로토타입이나 아이디어를 실제 출시 가능한 제품과 인프라로 빠르게 바꿔내는 사람이다. 머릿속 그림을 돌아가는 물건으로 만드는 단계를 책임진다.
복잡해진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정리하고, 코드와 시스템을 단순하게 깎고, 쓸모를 다한 기능을 걷어내며, 성능을 다듬는 사람이다. 새것을 보태기보다 군더더기를 덜어내 전체를 가볍게 만든다.
이미 만들어진 제품을 넘겨받아, 시장이 실제로 원하는 모습에 맞도록 계속 손보는 사람이다. 제품과 시장의 적합성(product–market fit)을 끌어올리는 반복 개선이 핵심이다.
성숙한 시스템을 떠맡아, 규모가 커져도 안전하고 안정적이며 빠르고 효율적으로 굴러가게 지키는 사람이다. 화려하지 않지만 시스템이 무너지지 않게 받치는 토대다.
흥미로운 점은 이 다섯 역할이 엔지니어·디자이너·제품 관리자·데이터 과학자 같은 기존 직함과 깔끔하게 일대일로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체르니의 관찰로는 같은 ‘디자이너’ 안에서도 누군가는 1번에, 누군가는 2번에, 또 누군가는 3번에 해당한다. 엔지니어도, 제품 관리자도, 데이터 과학자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한 사람이 보통 두 가지, 때로는 세 가지 역할을 동시에 걸친다.
역할은 단계에 따라 섞인다
체르니는 이 역할들을 고정된 정체성이 아니라, 제품의 성숙도에 맞춰 의도적으로 조합을 바꾸는 ‘배합비’로 본다. 시장 적합성을 찾기 전의 새 작업은 프로토타이퍼·빌더·스위퍼의 에너지에 기댄다. 어느 정도 견인력이 생기면 배합은 빌더·스위퍼·그로워 쪽으로 기울고 메인터너가 거들기 시작한다. 적합성이 단단해진 성숙한 시스템에서는 스위퍼·그로워·메인터너가 중심에 서되, 필요할 때 빌더의 손을 잠깐 빌려 온다.
그래서 한 사람의 역할도 프로젝트와 함께 움직인다. 새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는 프로토타이퍼이자 빌더이지만, 거친 부분이 병목이 되는 순간 곧 스위퍼가 되고, 프로젝트가 익으면 그로워와 메인터너로 옮겨 간다. 자신을 하나의 역할에 가둬 버리면 프로젝트를 중간에 누군가에게 넘기고 빠져야 한다.
비유로 풀면
집 짓기에 빗대면 이해가 쉽다. 프로토타이퍼는 “이런 집은 어때?” 하며 스케치를 수십 장 그려 던지는 사람, 빌더는 그중 하나를 골라 실제로 벽을 세우고 지붕을 올리는 사람이다. 스위퍼는 어수선해진 동선을 정리하고 안 쓰는 방을 헐어 집을 가볍게 만드는 사람, 그로워는 식구가 실제로 사는 방식에 맞춰 부엌과 거실을 계속 고쳐 주는 사람이다. 메인터너는 수십 년 동안 배관과 전기가 멈추지 않게 지키는 사람이다. 다섯 명이 따로 있을 수도 있지만, 한 사람이 시기에 따라 이 역할들을 갈아입기도 한다.
가장 저평가된 역할, 스위퍼
다섯 역할의 인기는 평등하지 않다. 아이디어를 내는 프로토타이퍼는 똑똑해 보이고, 무에서 유를 만드는 빌더는 유능해 보인다. 그래서 채용 공고도 이력서도 이 두 역할을 앞세운다. 정작 가장 저평가되고 가장 적게 채용되는 역할은 스위퍼라는 지적이 나온다. 모두가 프로토타이퍼를 수집하듯 끌어모으는 동안, 코드를 지우고 기능을 걷어내고 남이 어질러 놓은 것을 치우는 일은 인기가 없다. 주간 회의에서 자랑하기 어렵고, 잘해 봐야 돌아오는 평가는 “시스템이 안 멈췄다”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공지능 코딩이 이 순위를 흔들고 있다. 모델이 몇 분 만에 프로토타입을 뽑아내고 한 번에 수천 줄을 써 내려가면서, ‘아이디어를 내는 일’과 ‘무에서 만들어 내는 일’은 인공지능이 가장 잘하고 가장 먼저 가져가는 영역이 됐다. 모두가 여전히 더 좋은 아이디어를 내려 경쟁하는 사이, 정작 희소해진 것은 벌여 놓은 일을 깔끔하게 마무리 짓는 스위퍼 쪽이라는 관찰이다.
코딩이 풀려도 사람이 남는 이유
여기서 자연스러운 반문이 나온다. “코딩이 사실상 풀렸다면 빌더와 스위퍼가 왜 필요한가? 그냥 클로드를 반복 실행하면 되지 않나?” 체르니의 답은 단순하다. 클로드는 실제로 이 일들을 점점 더 잘 해내고 있고,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다. 그러나 기계가 청소를 대신해 줄 수 있다는 사실이 사람이 손을 떼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어느 코드를 지울지 결정하고, 인공지능의 오류를 한눈에 알아채며, 무언가 잘못됐을 때 책임을 지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기계는 작업을 수행할 수 있지만 책임을 질 수는 없다. 같은 맥락에서 체르니의 팀은 출시 전에 정적인 기획 문서(product requirements document, 제품 요구사항 문서) 대신 돌아가는 프로토타입 수십 개를 먼저 만든다. 그의 말로는, 정적인 목업과 기획서로 시작했다면 그 제품을 결코 출시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한다. 일의 무게중심이 ‘직접 코드를 쓰는 것’에서 ‘여러 에이전트를 동시에 부리는 것’으로 옮겨 가면서, 깊게 파고드는 집중력보다 여러 맥락을 빠르게 오가는 능력이 더 중요해졌다.
앞으로 좋은 팀을 가늠하는 질문은 “프론트엔드 몇 명, 제품 관리자 몇 명”이 아니라 “프로토타이퍼·빌더·스위퍼·그로워·메인터너가 균형 있게 있는가”가 될지도 모른다. 직함은 점점 흐려지고, 남는 것은 지금 이 제품 단계에서 필요한 역할을 누가 가장 빠르게 메울 수 있느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