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조직
기업들이 AI 도구에 쓰는 돈과 토큰 사용량은 가파르게 늘었다. 그런데 매출도, 이익도, 고객 수도 눈에 띄게 달라지지 않은 곳이 많다. 개인의 생산성은 분명히 뛰었는데 조직의 성과는 제자리인 이 간극에서, 리더의 역할과 개인의 생존 전략이 동시에 바뀌고 있다.
생산성의 역설
AI를 도입한 기업에서 흔히 관찰되는 장면이 있다. 어떤 직원은 예전에 하루가 걸리던 보고서를 한 시간에 끝낸다. 그런데 회사 전체를 놓고 보면 달라진 게 없다. 회의는 예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열리고, 결재 한 건이 부서를 도는 데 여전히 일주일이 걸린다. 개인의 작업 속도만 열 배 빨라졌을 뿐, 그 결과물이 지나가야 하는 통로는 그대로다.
이 현상을 이해하는 열쇠는 병목이라는 개념이다. 한 구간만 빨라지고 나머지가 그대로면, 전체 처리 속도는 가장 느린 구간에 맞춰진다. AI가 만들어낸 개인의 속도 향상은 승인·회의·보고라는 낡은 관문 앞에서 그대로 소진된다.
고속도로에 차선 하나를 새로 뚫어 차들이 두 배로 빨리 달릴 수 있게 됐다고 해보자. 그런데 요금소 창구는 그대로 한 개뿐이다. 차들은 결국 요금소 앞에서 길게 줄을 선다. 도로를 넓힌 효과는 창구 앞에서 모두 사라진다. AI는 도로를 넓혔지만, 대부분의 회사는 요금소를 그대로 두었다.
병목은 세 갈래에서 생긴다. 첫째는 방금 말한 프로세스다. 일하는 사람은 빨라졌는데 회의와 보고와 결재의 방식이 산업화 시대 그대로다. 둘째는 데이터다. AI가 무언가를 하려면 회사가 쌓아온 데이터를 먹여야 하는데, 정작 축적하고 정리해둔 것이 없다. 재료가 없으니 도구가 좋아도 껍데기만 돌아간다. 셋째는 역량 격차다. 같은 도구를 쥐여줘도 어떤 사람은 능숙하게 쓰고 대부분은 못 쓴다.
역량 격차에는 조직 심리가 얽혀 있다. 임원이 AI를 쓸 줄 모르면, 부하 직원이 여섯 시간짜리 일을 한 시간에 끝냈다는 사실 자체를 감지하지 못한다. 그 상태에서 직원이 결과물을 빨리 가져다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칭찬으로 끝나지 않는다. "한 시간에 끝냈으면 여섯 시간짜리 일을 더 주겠다"가 돌아온다. 그래서 직원은 학습한다. 빨리 끝낸 사실을 숨기고, 남는 시간을 조용히 자기 것으로 챙긴다. 조직이 생산성 향상을 흡수하지 못하고 오히려 지하로 밀어 넣는 구조다.
도구가 아니라 토양
절대적으로 옳은 조직문화란 없다. 안전과 품질이 생명인 제조업과, 빠른 실험이 무기인 IT 기업은 서로 다른 문화를 필요로 한다. 다만 AI라는 변수가 들어온 지금, 업종을 가리지 않고 공통으로 요구되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업무의 재설계다. 개인의 속도만 끌어올리는 데서 멈추지 말고, 병목이 되던 회의·커뮤니케이션·보고 방식 자체를 해체해 사람과 AI가 함께 일해도 막히지 않는 흐름으로 다시 짜야 한다. 둘째는 데이터를 쌓고 나누는 문화다. 데이터가 계속 들어오고 공유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모델도 빈 그릇이다. 셋째는 역량을 기르고 학습하는 문화다. 잘 쓰는 사람을 늘리고, AI로 만들어낸 산출물을 조직이 함께 뜯어보며 배우는 순환이 있어야 한다.
세 가지의 공통점은 도구가 아니라 토양이라는 데 있다. AI는 사서 깔면 되지만, 그것이 자랄 땅은 조직이 스스로 갈아야 한다.
세 번의 이동
한국 기업의 리더십은 크게 세 국면을 지나왔다. 첫 번째는 지시·관리형이다. 산업화 시대의 전형으로, 위에서 지시하면 아래는 "알겠습니다"로 받고 그 실행을 촘촘히 관리하는 방식이다. 불과 5~10년 전까지도 이 방식이 사실상 지배적이었다.
두 번째는 코칭형이다. 이른바 MZ 세대가 들어오면서 지시가 예전처럼 먹히지 않게 됐다. 윗세대에게 회사와 나는 하나였다. 회사가 잘되면 내가 잘되는 것이었고, 회사의 비전이 곧 내 비전이었다. 그런데 지금 세대는 회사와 나를 분리해서 본다. 회사는 회사고 나는 나다. 이 디커플링 때문에 리더는 1대1 면담, 경청, 피드백 같은 코칭 기술을 새로 배워야 했다.
디커플링은 이직의 이유에서도 드러난다. 중소기업 직원이 회사를 떠나는 첫 번째 이유는 대체로 돈과 복지다. 그런데 대기업에서 이탈의 1순위로 꼽히는 것은 "비전이 없다"이다. 여기서 말하는 비전은 회사의 비전이 아니라 내 비전이다. 회사가 아무리 잘나가도, 그 안에서 내가 성장할 그림이 보이지 않으면 떠난다. 이름난 대기업에 다녀도 마찬가지다.
세 번째가 지금 요구되는 설계형이다. AI가 들어오면서 리더에게 필요한 능력이 또 바뀌었다. 이제 리더는 눈앞의 일 전체를 놓고 "이건 AI가, 이건 사람이" 하고 나눈 다음, 둘을 연결해 하나의 흐름으로 짜야 한다. 그러려면 리더 자신이 AI를 잘 다뤄야 하고, 무엇보다 업무를 전문가 수준으로 꿰고 있어야 한다. 관리만 잘하고 피드백만 잘 주던 시절과는 요구가 다르다.
플래트닝의 실제와 반론
설계형 리더십을 극단까지 밀면 이런 주장이 나온다. 이제 최고의 리더는 "같은 일을 절반의 인력으로 해내거나, 같은 인원으로 두 배의 성과를 내는 사람"이며, 그렇게 하지 못하고 보고만 잘 받고 관리만 하는 사람은 리더가 아니라 그냥 관리자, 즉 굳이 필요하지 않은 층이라는 것이다. 도발적으로 들리지만, 미국 기업들의 최근 움직임은 이 주장에 무게를 싣는다.
이른바 대(大)평탄화(Great Flattening)라 불리는 흐름이다. 관리 계층을 걷어내 의사결정을 빠르게 하고, 아낀 비용을 기술 인력과 AI 투자로 돌리자는 논리다. 코칭·조율·보고 취합처럼 중간관리자를 정당화하던 업무의 상당 부분을 AI가 흡수하면서, 그 층의 명분이 줄었다.
실제로 여러 대형 기술 기업이 관리 계층을 대폭 줄였다. AI가 온보딩·일정관리·진행 추적 같은 업무를 자동화하면서, 관리자의 역할은 사람을 조율하는 데서 사람과 AI의 협업 방식을 설계하는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다만 이 흐름을 마냥 효율의 승리로 읽는 데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관리자를 줄인다고 그들이 하던 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 일은 남은 사람에게 재분배되고, 대개 서투르게 분배된다. 방향을 잃었다고 느끼는 직원이 늘고, 남은 리더의 3분의 1가량이 늘어난 통솔 범위를 감당하기 버겁다고 답한다. 감정을 읽고 사람을 키우는 일은 성과 숫자 아래에 깔려 있어 AI가 대신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미래 리더를 길러낼 통로를 미리 잘라버리면 몇 해 뒤 리더십 공백이 온다는 경고다. 요컨대 관리 계층을 줄이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고, 관리자가 원래 무엇을 위해 존재했는지를 다시 정의하는 문제로 봐야 한다.
쓸모를 성급히 정하지 않기
조직의 문법이 이렇게 바뀔 때, 그 안의 개인은 어떻게 살아남는가. 두 사람의 이야기가 실마리를 준다.
첫 번째는 오드리 탕(Audrey Tang)이다. 프로그래머이자 시빅 해커 출신으로, 2016년 대만 최초의 디지털 담당 장관(무임소)에 올랐고 2022년 신설된 디지털발전부의 초대 장관을 지냈다. 그가 AI 시대의 생존 비결로 던진 말은 역설적이다. "쓸모없는 사람이 되라." 뜻을 풀면 이렇다. 자신의 쓸모를 너무 빨리 확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나는 망치가 되겠어"라고 정해버리면, 못이 있을 때는 가치가 있지만 못이 사라지는 순간 존재 이유도 함께 사라진다. 변화 속도가 빠를수록 하나의 쓸모에 자신을 못 박는 일은 위험하다.
그가 제안하는 배분은 80 대 20이다. 역량의 80은 지금 하는 일에 쓰되, 20은 다른 것을 시도하는 데 남겨두라는 것이다. 이는 커리어 패스에서 커리어 포트폴리오로의 전환과 맞닿아 있다. 대리·과장·차장·임원으로 이어지는 사다리를 오르는 것이 커리어 패스라면, 커리어 포트폴리오는 다양한 경험과 역량을 미리 펼쳐두고 필요할 때마다 유연하게 조합하는 방식이다.
커리어 포트폴리오는 레고 블록에 가깝다. 블록을 다양하게 만들어 쌓아두면, 배가 필요할 때 모아서 배를 만들고 비행기가 필요할 때 다시 헐어 비행기를 만든다. 하나의 완성품에 붙박이로 굳어 있는 사람보다, 필요에 따라 조합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 변화에서 살아남는다. 강한 자가 아니라 유연한 자가 생존한다는 오래된 명제의 현대판이다.
합리적 낙관주의
두 번째는 스톡데일 패러독스다. 이 개념은 경영 사상가 짐 콜린스(Jim Collins)가 저서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에서 정리한 것으로, 미 해군 제독 제임스 스톡데일(James Stockdale)의 경험에서 나왔다. 그는 베트남전에서 격추돼 8년 가까이 하노이의 포로수용소에 갇혀 스무 차례 넘게 고문당했고, 살아 돌아왔다.
콜린스가 "누가 살아남지 못했느냐"고 묻자 스톡데일의 답은 뜻밖이었다. 먼저 무너진 것은 낙관주의자였다. "크리스마스면 나갈 거야"라고 믿던 사람들은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부활절이 지나고, 다시 크리스마스가 와도 나가지 못하자 상심으로 스러졌다. 반대로 "여기서 못 나갈 것"이라 단정한 비관주의자도 오래 버티지 못했다. 살아남은 사람은 그 사이에 있었다. 결국은 이겨낸다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잃지 않으면서, 동시에 눈앞의 냉혹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사람이었다.
이 둘을 혼동하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막연히 잘될 거라는 낙관은 현실을 보지 않게 만들고, 순수한 비관은 노력을 미리 포기하게 만든다. "잘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려울 수 있고, 그래서 하나씩 역량을 키워간다"는 태도만이 긴 불확실성을 통과한다.
회사 안에서 검증하고 나가기
이 원리를 가장 절실하게 적용해야 하는 집단이 40·50대다. 대기업 임원의 퇴임 시점은 생각보다 이르다. 요즘은 임원 승진이 빨라진 만큼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에 물러나는 경우가 가장 많다. 문제는 나온 뒤다. 조직 안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 데 익숙했을 뿐,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낼 준비가 안 된 경우가 흔하다. 자기만의 콘텐츠도, 인맥 네트워크도, 잠재 고객도, 사업 모델도 없이 조직 밖으로 나오면 막막해진다.
그래서 40대라면 지금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미리 설계하는 일이 중요하다. 방법으로 두 가지가 제안된다. 하나는 내가 쌓은 경험을 책 한 권 쓴다는 마음으로 정리하고 표현해보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본업을 하면서 창업 아이템을 소규모로 실험해보는 것이다.
다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덜컥 회사를 나오는 것은 위험하다. 회사는 연봉 외에도 많은 것을 제공한다. 비용을 대신 써주고, 복지가 있고, 무엇보다 실패해도 무너지지 않는 울타리가 된다.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는 수익이 나야 성립하는데, 그 검증은 회사라는 안전망 안에서 하는 편이 낫다. 어느 정도 검증이 된 뒤에 나오라는 것이다. 어떤 세무사는 입사할 때부터 10~15년 뒤 창업을 염두에 두고, 회사에 있는 동안 자격증을 따고 앞으로 겪을 어려운 일을 미리 다 경험해두었다고 한다. 회사에 열심히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열심히 하면서 동시에 자기 몫을 준비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작게, 그러나 죽지 않을 만큼
이 태도를 원칙으로 압축한 것이 팔친스키 법칙이다. 러시아·소련의 광산 엔지니어 표트르 팔친스키(Peter Palchinsky)의 문제 해결 방식을 경제 저술가 팀 하포드(Tim Harford)가 저서 《어댑트(Adapt)》에서 세 원칙으로 정리한 것이다. 첫째, 작은 시도를 끊임없이 하라. 둘째, 그 시도에서 피드백을 받고 배워라. 셋째, 망할 정도로 큰 시도는 하지 마라.
투자와 같다. 작은 금액으로 여러 번 시험하면 실패해도 다시 시도할 밑천이 남는다. 그러나 한 번에 전 재산을 걸었다가 실패하면 게임 자체가 끝난다. 핵심은 실패의 규모를 회복 가능한 범위로 묶어두는 데 있다. 그 안에서라면 실패는 비용이 아니라 학습이 된다. 망하지만 않으면, 끊임없는 시도는 결국 결과로 돌아온다.
AI 시대는 개인에게 위협이면서 동시에 역량을 배가하는 기회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의 크기가 커지고, 역량이 모자라 엄두도 못 내던 일까지 시도할 수 있게 됐다.
일자리를 빼앗길지 모른다는 불안은 실재한다. 그러나 같은 도구가, 예전 같으면 접근조차 못 했을 영역의 문을 열어준 것도 사실이다. 파도가 거세다고 물러서기보다, 그 파도를 탄다는 마음으로 작은 시도를 이어가는 편이 이 시대를 통과하는 현실적인 방법에 가깝다.
정리하면 두 개의 축이 맞물린다. 조직 쪽에서는 리더의 무게 중심이 지시와 관리에서 사람과 AI의 일을 나누고 잇는 설계로 옮겨가고, 개인 쪽에서는 하나의 쓸모에 자신을 못 박지 않은 채 회복 가능한 실험을 반복하며 합리적 낙관을 유지하는 사람이 오래 남는다. 생산성의 역설은 도구의 문제가 아니라 그 도구를 담을 조직과 개인의 그릇을 다시 짜는 문제라는 점에서, 결국 같은 이야기의 두 얼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