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cobhan.me
2026년 7월 2일 · 산업과 사회

지능을 생산하는 혁명 — 최태원이 말하는 신자본주의와 AI 시대의 인재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자신이 이사장을 맡고 있는 한국고등교육재단의 인재림·문우림 장학생들과 마주 앉아 AI 시대에 대한 생각을 풀어놓았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와의 회동 뒷이야기에서 출발한 대화는 자본주의 체제의 재설계, SK하이닉스의 학력 철폐, 그리고 개인이 길러야 할 세 가지 근육으로 이어졌다. 대담의 핵심 논지를 검증 가능한 사실과 함께 정리한다.

시가총액 5조 달러의 압박

대화는 2026년 6월 젠슨 황(Jensen Huang) 엔비디아(NVIDIA) 최고경영자의 방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당시 황 최고경영자는 서울에서 최태원 회장과 여러 차례 만났다. 홍대 인근 고깃집에서의 삼겹살 회동, 그리고 치킨집 방문이 연이어 언론에 보도되었다. 최 회장은 대담에서 일주일 사이 치킨집을 두 번 가고 삼겹살 자리도 한 번 가졌다고 밝혔다. 화제가 된 것은 만남의 형식이었지만, 그가 주목하라고 한 것은 만남의 동기였다.

엔비디아는 2025년 10월 세계 기업 최초로 시가총액 5조 달러를 돌파했고, 2026년 상반기에는 5조 4,000억 달러 안팎을 오르내리고 있다. 최 회장의 해석은 이렇다. 시가총액 5조 달러 기업이 연 10% 성장을 유지하려면 매년 5,000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700조 원 규모의 가치를 새로 만들어내야 한다. 이것은 축배가 아니라 끝없는 압박이다. 그래서 젠슨 황은 자기 혼자 크는 길이 아니라 파트너와 생태계 전체가 함께 자라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고, 한국과 대만을 돌며 협력사들과 접촉면을 넓히는 행보도 그 생태계 관리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요컨대 기업은 커진다고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라, 커질수록 압박도 함께 커진다.

비유 박스 — 5조 달러의 러닝머신 시가총액이 크다는 것은 시장이 그만큼의 미래 성장을 이미 가격에 반영해 두었다는 뜻이다. 몸집이 큰 기업일수록 러닝머신의 속도가 빨라지는 것과 같아서, 같은 성장률(10%)을 유지하려 해도 절대 금액으로는 매년 중견 국가의 국가 예산에 맞먹는 새 사업을 만들어야 한다. 멈추면 넘어지는 구조이기 때문에, 거대 기업은 협력사 생태계 전체를 키워 러닝머신을 함께 굴릴 동료를 늘리는 전략을 택하게 된다.

이번 혁명이 다른 이유: 지능의 생산

최 회장은 AI 혁명이 산업혁명이나 컴퓨터 혁명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본다. 과거의 기술 혁명은 인간의 생산성을 높이는 도구의 혁명이었다. 반면 이번 혁명의 본질은 지능 자체를 생산한다는 데 있다. 생산된 지능이 다시 새로운 지능을 만들어내는 순환이 시작되면, 단순한 생산성 향상을 초월해 노동 자체로부터의 해방을 이야기하는 국면이 온다는 것이다. 그는 아직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므로 단정할 수는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현재 지능의 발달 속도로 보면 그 시대가 머지않았다는 것이 많은 이들의 예측이라고 정리했다.

신자본주의: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돈을 벌게 하라

대담에서 가장 긴 시간을 차지한 주제는 체제론이다. 최 회장의 진단은 이렇다. 선진국 대부분이 채택해 온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라는 두 축이 모두 삐걱거리고 있다. 자본주의의 기본 설계는 기업과 민간이 돈을 벌면 세금을 내고, 정부가 그 세금으로 국방이나 복지처럼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사회 문제를 푸는 구조였다. 그런데 지금은 돈은 벌리는데 사회 문제는 줄지 않는다. 혜택을 보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극단으로 갈리면서 1인 1표에 기초한 민주주의의 작동도 함께 흔들린다.

그가 제시하는 처방에는 두 갈래가 있다. 사회 문제를 애초에 덜 발생시키거나,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돈을 벌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 구조에 그는 '신자본주의'라는 이름을 붙였다. 돈 버는 사람과 문제 푸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 해결 자체가 수익이 되도록 보상 체계를 다시 설계하자는 주장이다.

그가 든 비유는 단순하다. 방을 어지르는 사람과 치우는 사람이 따로 있으면 방은 계속 더러워진다. 어지르는 사람에게 치우는 일까지 맡기면 알아서 덜 어지르고 청소도 하게 되므로 방이 깨끗해질 확률이 높아진다. 여기에 사회적 보상을 붙이면, 내가 만든 사회적 가치가 곧 경제적 가치가 된다.

최 회장은 이 문제를 문제 발생 속도와 문제 해결 속도의 경주로 정식화한다. 지금은 발생 속도가 해결 속도보다 빠르기 때문에 국내총생산(GDP, Gross Domestic Product)이 늘어도 불만이 쌓인다. 그가 든 사례처럼, 아무리 좋은 직장에 가도 월급 오르는 속도보다 학원비 오르는 속도가 빠르면 출산을 포기하는 것이 개인에게는 합리적 선택이 되어 버린다. 사회가 그 선택을 강요한 셈이다. 해법은 해결 속도를 발생 속도보다 키우는 것, 즉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의 수를 늘리는 것이다. 그가 사회적 가치 연구 조직을 만들어 운영해 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로 SK그룹은 2018년 사회적 가치의 측정을 연구하는 사회적가치연구원(CSES)을 설립했고, 그보다 앞선 2015년부터는 사회적 기업이 창출한 사회 성과를 화폐 단위로 측정해 현금으로 보상하는 사회성과인센티브(SPC, Social Progress Credit) 제도를 운영해 왔다. 대담의 '신자본주의'는 즉흥적 수사가 아니라 10년 넘게 축적해 온 실험의 연장선에 있는 셈이다.

기존 자본주의와 신자본주의의 순환 구조 비교 기존 자본주의의 순환 기업·민간 이윤 창출 세금 납부 이익의 일부 이전 정부 사회문제 해결 한계: 문제 발생 속도 > 문제 해결 속도 — 돈은 버는데 사회문제는 줄지 않는다 신자본주의의 순환 사회문제 해결 활동 발생 억제 포함 사회적 가치 측정 성과의 화폐화 경제적 보상 해결 유인 강화 목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늘어나 해결 속도가 발생 속도를 추월 사회적 가치가 경제적 가치로 전환되도록 보상 구조를 재설계하는 것이 핵심이다
기존 자본주의의 간접 순환과 신자본주의의 직접 보상 구조 비교

AI는 아직 청소년이다

체제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듯, 개인의 일자리도 한꺼번에 대체되지는 않는다는 것이 그의 현실 인식이다. 많은 기업이 사람을 줄이고 AI로 대체하면 비용이 줄고 생산성이 오를 것이라 기대했지만 실패 사례가 적지 않고, 다시 사람을 채용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그는 지금의 AI를 빨리 자라는 어린아이, 이제 막 청소년쯤 된 존재에 비유한다. 잘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아직 제 몫을 다하지 못하며,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이 여전히 갈린다는 것이다.

그 유예 기간에 사회가 해야 할 일은 실험이다. AI와 함께 사는 방식에 정답이 하나일 이유가 없으므로, 대학·기업·지방자치단체가 각자 어떤 배치가 자기에게 유리한지 시험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 차원의 과제는 AI 에이전트(agent, 사용자를 대신해 일을 수행하는 AI)의 훈련이다. 내 정보를 집어넣기만 하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혼자 하는 일이 많지 않은 만큼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 속에서 에이전트를 함께 길들여야 하고, 그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으면 나의 에이전트는 없는 것과 같다. 빨래 심부름 수준의 저품질 대행은 지금도 가능하지만, 정말 대체를 바라는 고품질 업무는 아직 멀었다는 진단이다.

세 가지 근육: 생각, 적응, 공감

최 회장은 AI 시대에 인간이 길러야 할 핵심 역량을 세 가지 근육으로 요약해 왔다. 첫째는 생각의 근육이다. 수학 문제는 이미 AI가 사람보다 잘 풀지만, 스스로 질문을 세우고 사람을 읽어내는 힘은 여전히 인간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돈 버는 기계라는 압박에서 벗어날수록 인간다운 사고의 폭이 오히려 넓어질 수 있다고 본다. 둘째는 적응의 근육이다. 기술이 바뀌는 속도만큼 삶의 시스템도 계속 바뀔 것이므로, 새로 시도한 일이 실패해도 금방 다시 일어나는 회복력이 필요하다. 셋째는 공감의 근육이다. AI도 공감하는 말은 할 수 있지만, 사람은 공감하면 행동이 바뀐다. 상대가 어렵다고 느끼면 자기 시간을 내어 위로하고 문제를 함께 풀려 든다. 공감에서 비롯되는 협력과 사회적 기술이야말로 사회를 이끄는 끈이며, 부서원의 힘을 모으는 최고경영자의 역량도 결국 여기에 속한다는 것이다.

세 근육을 기르는 왕도는 없지만 지름길은 있다고 그는 말한다. 남의 경험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 그리고 그러기 위해 질문을 잘하는 것이다. 막연한 질문에는 적당한 답이 돌아올 뿐이므로, 상대의 경험을 파고드는 좋은 질문으로 타인의 경험을 자기 것으로 흡수하는 훈련이 근육을 키우는 속도를 높인다는 조언이다.

학력을 지운 채용, 재정의되는 대학

이 인재관은 최근 SK하이닉스의 채용 실험으로 구체화되었다. SK하이닉스는 2026년 6월 17일 시작된 신입사원 수시채용부터 '4년제 학사 학위 이상 지원 가능' 같은 학력 요건을 전면 삭제했다. 경험·직무역량·조직문화 적합성이 맞으면 학력과 무관하게 누구나 지원해 합격할 수 있는 구조로 바꾸었고, 설계 등 핵심 직무에서는 수시채용으로는 이례적인 세 자릿수 규모의 선발을 진행했다. 최 회장의 설명은 간명하다. 이제 웬만한 지식은 AI가 채워주고 보충해 주는 시대이므로, 학력이라는 자격보다 받아들이는 자세와 태도가 훨씬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회사가 달라지면 대학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는 대학 고유의 가치는 지키되 상당 부분은 새로운 실험으로 바꿔야 한다고 본다. 지금까지 대학들은 커리큘럼과 교육 방식이 서로 비슷한 동질적 존재였지만, 앞으로는 각 대학이 AI와 함께 살아가는 하나의 공동체, 즉 저마다 다른 도시를 만들어가는 시민 집단이 될 수 있다는 구상이다. 교수의 역할도, '졸업장을 따서 취직한다'는 학생의 목적도 함께 흔들린다. 더 넓게는 한국 교육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막대한 사교육비와 공교육 기간을 들여 배출한 인재를 기업이 다시 3~5년간 재교육해야 겨우 제 몫을 하는 지금의 구조, 그리고 산업화 시대에 맞춰 비슷비슷한 인재를 대량으로 찍어내던 9시 출근 6시 퇴근 문화는 벗겨질 수밖에 없다고 그는 전망한다. 어떤 사람은 6개월만 일하고 6개월은 쉬며, 하나의 직업만 갖지 않는 삶이 AI가 열어준 생산성 위에서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결단의 방법: 리스크와 시나리오

한 장학생이 SK하이닉스 인수와 키옥시아(Kioxia) 투자 같은 결정을 이끈 힘이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실제로 SK그룹은 2012년 채권단 관리하에 있던 하이닉스반도체를 약 3조 4,000억 원에 인수했고, 2018년에는 베인캐피털 컨소시엄을 통해 일본 키옥시아(당시 도시바메모리)에 약 4조 원을 투자했다. 당시 하이닉스 인수는 그룹 안팎의 반대에 부딪혔던 결정이다. 최 회장의 답은 이렇다. 모든 상황을 고려해 AI처럼 판단하면 '위험하니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이 나오기 마련이고, 자신이 반대편 자리에 있었어도 반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돌파해야 할 때는 결단해야 하며, 나쁜 결과가 나오더라도 이 길을 가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인간이고,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보상도 돌파구도 없다는 것이다. 인수 이후의 평가를 묻자 그는 가만히 놔둬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라 끝없이 문제에 부딪히고 해결해 잘 되게 만든 것이며, 상당 부분의 목적은 달성되었고 가치는 계속 올라갈 것이라고 답했다.

다만 결단이 도박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예측 방법을 시나리오 기법으로 소개한다. 하나의 미래에 베팅하는 것은 도박이므로, 사건이 터졌을 때 전개될 수 있는 경로를 중요한 순서대로 두세 가지 시나리오로 만들어 두고, 그중 하나로 수렴하는 것을 지켜보며 각 경로를 해소할 옵션을 미리 준비한다는 것이다. 이란 관련 분쟁 발생 자체는 예측하지 못했지만, 일단 발생한 뒤 중동 시장과 미국의 대응, 종전과 재분쟁의 갈림길을 시나리오로 관리한 것이 그 예다.

인재의 재정의: 인재림과 문우림

대담의 무대가 된 인재림(人材林)과 문우림(文友林)은 한국고등교육재단이 기존 장학 프로그램을 개편해 만든 학부생 대상 인재 육성 프로그램이다. 재단은 1974년 고(故) 최종현 SK그룹 회장이 설립한 비영리 공익법인으로, 그간 배출한 박사가 1,000명 규모에 이른다. 인재림은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춘 전문가를, 문우림은 동아시아 고전과 역사에 기반한 전문가를 기르는 과정이다. 최 회장은 50년간 세계 수준의 학문적 인재를 길러온 재단이 이제 인재를 스스로 새롭게 정의할 때가 되었다고 그 취지를 설명한다.

성공의 기준을 묻는 질문에 그는 재단의 성공이 아니라 사회 기여로 답을 옮겼다. 우리가 풀지 못한 문제를 인재들이 얼마나 풀어내는가, 그 인재들이 또 얼마나 많은 새 인재를 만들어 사회에 기여하는가가 척도라는 것이다. 제 몸 하나 건사하기 어렵던 시절에는 공허하게 들렸을 이야기지만, 앞으로는 사회에 기여하는 것 자체가 돈을 버는 방법이 되고 경제적 이득으로 연결되는 세상이 온다는 전망과 맞물린 답변이다. 진로를 고민하는 학생에게 던진 마지막 조언도 같은 결이다. 먼저 간 사람이 자기 경로로 오라고 하는 말은 듣지 말 것. 학사와 석사라는 안전핀을 다 챙겨 입사하는 경로가 안전해 보여도, 기업의 변화 속도가 더 빨라 그 준비가 쓸모없어질 수 있다. 본인이 생각하는 가치가 무엇인지가 가장 중요하며, 자기 선택을 자기가 하기 위해 훈련하고 경험하는 것이고, 창업이든 무엇이든 부딪혀 망가져 보는 것이 가장 빠른 배움이라는 것이다.

맺으며

이 대담을 관통하는 논리는 하나로 수렴한다. 지능이 생산되는 시대에는 지식의 양이 아니라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려는 태도가 희소 자원이 된다는 것이다. 신자본주의론은 그 태도에 경제적 보상을 붙이자는 제도 설계이고, 학력 철폐는 그 태도를 학위보다 앞세우겠다는 채용 실험이며, 세 가지 근육은 그 태도를 기르는 개인의 훈련법이다. 사회적 가치의 화폐화가 실제로 시장의 보상 체계를 바꿀 수 있을지, 학력 없는 채용이 다른 대기업으로 확산될지는 아직 열려 있는 질문이다. 그러나 재계에서 가장 큰 반도체 기업을 움직이는 경영자가 자본주의의 보상 구조 자체를 실험 대상으로 올려놓았다는 사실 자체가, AI가 몰고 온 변화의 깊이를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