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lf-presentation on social media
불평의 형식을 빌린 자랑
“힘들다”로 시작해 “나는 그만큼 많이 쓴다”로 끝나는 글이 있다. 이 문장 구조에는 이름이 있고, 그것을 측정한 연구가 있으며, 250년 묵은 계보가 있다.
어떤 게시물은 읽고 나면 묘하게 마음이 불편하다. 문장 자체는 하소연이다. 오늘 너무 힘들었다, 사용량을 다 써버려서 슬프다, 요즘 좋은 데를 자주 다녀 살이 찔까 걱정이다. 그런데 읽는 사람의 머릿속에 남는 것은 힘들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사람이 무엇을 얼마나 쓰고 어디를 다니는지에 대한 정보다. 거기에 낯선 영어 약어와 슬픈 이모티콘, 살짝 어리광 섞인 말투가 얹힌다.
이 불편함의 정체를 밝히는 일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이 형식은 사회심리학이 이름을 붙이고 실험으로 측정한 대상이며, 중국에서는 별도의 유행어를 낳았고, 프랑스 계몽기 철학이 이미 그 뿌리를 지적한 바 있다.
1. 하나의 게시물, 두 개의 메시지
문제의 글은 언제나 두 층으로 되어 있다. 표면에는 약함이 있고, 그 아래에는 우위가 있다. 두 층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우위만 있으면 밉상이 되고, 약함만 있으면 얻을 것이 없다.
| 표면에 적힌 것 | 실제로 전달되는 것 |
|---|---|
| “오늘 사용량을 다 써버렸다” | 나는 이 도구를 남들보다 훨씬 많이 쓴다 |
| “출장이 잦아 몸이 힘들다” | 나는 여기저기서 찾는 사람이다 |
| “좋은 데를 자주 가서 살찔까 걱정” | 나는 그런 곳을 자주 갈 형편이 된다 |
| 낯선 약어와 내부자 어휘 | 나는 이 분야의 안쪽에 있다 |
| 슬픈 이모티콘, 자기비하 | 그러니 자랑이라고 부르지 말아 달라 |
2. 이 형식에는 이미 이름이 있다
영어권에서는 이것을 험블브래그(humblebrag), 곧 겸손으로 위장한 자랑이라 부른다. 코미디 작가 해리스 위텔스가 2010년경 유행시킨 말이지만, 학문의 대상이 된 것은 2018년이다. 오뷸 세제르, 프란체스카 지노, 마이클 노턴은 아홉 건의 연구를 묶어 이를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험블브래그를 두 종류로 나눴다. 겸손을 앞세우는 유형(“내가 왜 뽑혔는지 모르겠다”)과 불평을 앞세우는 유형(“면접 제안이 너무 많이 와서 정리가 안 된다”)이다. 실험 결과는 자랑하는 쪽에 불리했다.
- 두 유형 모두 그냥 자랑하는 것보다 호감도와 유능함 평가가 낮았다. 이유는 진정성이었다. 사람들은 자랑꾼을 싫어하지만, 적어도 솔직하다고는 본다.
- 불평형은 겸손형보다도 더 나빴고, 아무 자랑 없이 그냥 불평만 하는 것보다도 평가가 낮았다. 즉 자랑을 불평에 숨기는 순간, 불평의 값어치까지 잃는다.
- 사람들이 이 전략을 고르는 동기도 확인됐다. 동정을 얻는 일과 좋은 인상을 남기는 일을 동시에 하고 싶을 때 험블브래그가 나온다.
연구진이 논문 첫머리에 인용한 문장은 제인 오스틴의 것이다. “Nothing is more deceitful than the appearance of humility.” 겉으로 드러난 겸손만큼 사람을 잘 속이는 것도 없다는 뜻이다. 형식은 소셜미디어가 만든 것이 아니라, 소셜미디어가 대량 복제한 것이다.
세금계산서를 떠올리면 된다. 자랑에는 사회적 세금이 붙는다. 사람들이 재수 없어하는 값이다. 험블브래그는 그 세금을 피하려고 자랑을 불평 상자에 담아 신고하는 행위다. 문제는 세무서가 상자를 열어본다는 것이다. 열어보는 순간, 원래 세금에 탈세 가산세가 붙는다. 그래서 그냥 자랑한 사람보다 평가가 더 나빠진다.
3. 왜 하필 지금, 하필 이 분야인가
같은 형식이라도 유독 잘 자라는 토양이 있다. 인공지능을 소재로 한 글이 그렇다. 세 가지 조건이 겹치기 때문이다.
첫째, 최신성이 곧 지위가 된다. 모델과 기능이 몇 주 단위로 바뀌는 분야에서는 “먼저 알았다”는 사실 자체가 자산이 된다. 지식의 내용이 아니라 지식의 도착 시각이 서열을 만든다.
둘째, 검증 비용이 비대칭이다. 쓰는 사람은 한 줄이면 되지만, 읽는 사람이 그 말이 진짜인지 확인하려면 시간이 든다. 확인 비용이 클수록 말의 난도가 실력으로 오인된다.
셋째, 노력이 숫자로 환산된다. 토큰, 사용 한도, 구독 등급처럼 계량화된 자원은 “나는 이만큼 썼다”를 증명하는 계기판 노릇을 한다. 한도를 소진했다는 하소연은 불편의 호소인 동시에 성취의 영수증이다. 헬스장에서 근육통을 호소하는 말과 구조가 같다.
4. 어려운 말은 권위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독자를 쫓아낸다
전문용어는 이 형식의 핵심 부품이다. 그런데 전문용어가 실제로 어떤 효과를 내는지는 실험으로 확인되어 있다.
오하이오 주립대 힐러리 슐먼 연구팀이 성인 650명을 대상으로 수행한 2020년 실험에서, 전문용어가 들어간 글은 같은 내용의 쉬운 글보다 처리 유창성(processing fluency), 곧 읽으면서 느끼는 이해의 수월함을 떨어뜨렸다. 흥미로운 대목은 그다음이다. 용어의 정의를 친절하게 달아 주어도 이 저하는 사라지지 않았다. 독자는 정의를 읽고도 “이건 내 영역이 아니다”라고 느꼈고, 그 느낌은 과학에 대한 흥미와 자신의 이해도 평가를 함께 끌어내렸다.
2025년 International Journal of Business Communication에 실린 후속 연구는 같은 효과를 직장으로 옮겨 확인했다. 전문용어가 많은 사내 문서는 읽는 사람의 자기효능감을 떨어뜨렸고, 정보를 더 찾아보거나 남과 공유하려는 의향까지 줄였다.
정리하면 이렇다. 어려운 말은 쓰는 사람을 커 보이게 만들지만, 읽는 사람을 작아지게 만들고 대화에서 물러나게 한다. 이것이 지위 신호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지위란 원래 상대적인 것이어서, 내가 올라가는 대신 상대가 내려가도 격차는 똑같이 벌어진다.
전문용어를 쓴다고 다 허세는 아니다. 판단 기준은 어휘의 난도가 아니라 부채의 유무다. 용어에 정의와 근거가 딸려 있고 독자가 그것을 가져다 쓸 수 있으면 그것은 지불이다. 정의도 출처도 없이 이름만 던져 놓고 독자가 알아서 따라오기를 기대하면 그것은 청구다.
5. 취약성이라는 완충재 — 그리고 그것을 함부로 조롱하면 안 되는 이유
이 형식의 두 번째 부품은 약함의 전시다. 여기서 논의는 조심스러워야 한다. 약함을 드러내는 것 자체는 좋은 일이고, 심지어 대개는 효과도 좋기 때문이다.
약함은 남이 볼 때 아름답다
독일 만하임대의 안나 브루크 연구팀은 2018년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에 ‘아름다운 엉망(beautiful mess)’ 효과를 보고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약점을 드러내는 상황은 창피하고 지저분한 일로 보지만, 남이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은 용기 있고 진솔한 일로 본다. 실수를 먼저 인정하는 일, 도움을 청하는 일, 먼저 사과하는 일이 모두 그랬다. 우리는 자신의 약함은 가까이서 구체적으로 보고, 남의 약함은 멀리서 추상적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니 “힘들다”는 말이 나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말이 잘 먹히기 때문에 부품으로 쓰인다. 잘 듣는 약이라 남용되는 것이지, 독약이라 문제인 것이 아니다.
약함이 자원을 옮긴다
2021년 브리티시컬럼비아대의 에킨 오크 연구팀은 피해자성 신호(victim signaling)를 측정 가능한 척도로 만들었다. 결과의 앞부분은 이렇다. 자신이 피해를 입었고 동시에 도덕적으로 옳다는 신호를 보내면, 상대로부터 대가 없는 자원 이전을 이끌어낼 수 있다. 뒷부분은 더 불편하다. 이 신호를 자주 보내는 사람일수록 마키아벨리즘과 자기애 성향 측정치가 높았고, 소득·사회경제적 지위·실제 피해 경험 같은 변수를 통제한 뒤에도 관계가 남았다. 2025년에 발표된 사전등록 재현 연구에서도 같은 결과가 반복됐다.
이 연구는 도덕적 피해자성을 다뤘지 소셜미디어의 하소연을 다루지 않았다. 그러나 원리는 옮겨 붙는다. 약함의 표시는 공짜로 무언가를 얻어내는 데 쓰일 수 있고, 얻어낼 수 있는 것은 대개 남이 쓴다.
그러나 진짜 힘든 사람도 있다
반대 방향의 증거도 있다. 감정적 고통을 온라인에 과장해 올려 동정을 구하는 행위에는 새드피싱(sadfishing)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고, 이 말은 흔히 조롱의 도구로 쓰인다. 그런데 2023년 BMC Psychology에 실린 청소년 345명 대상 연구는 새드피싱 경향이 불안·우울 수준과 정적으로, 가족과 친구로부터 받는다고 느끼는 사회적 지지와는 부적으로 연결된다고 보고했다. 관심을 끌려는 행동으로 보이는 것이 실제로는 지지를 받지 못한 사람의 서툰 구조 요청일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비판의 과녁을 정확히 겨눠야 한다. 문제는 감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우위의 포장지로 쓰는 문장 구조다. 이 둘을 뭉뚱그리면 진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의 입을 막게 된다.
6. 왜 이 글은 하필 공개된 곳에 올라오는가
같은 이야기를 친구 두 명에게 하는 자리였다면 이런 문장은 나오지 않는다. 소셜미디어 특유의 조건이 형식을 강제한다.
대너 보이드와 앨리스 마윅은 이를 맥락 붕괴(context collapse)라 불렀다. 원래 인간은 청중에 따라 말투를 바꾼다. 상사에게 하는 말, 친구에게 하는 말, 잠재 고객에게 하는 말이 다르다. 그런데 소셜미디어의 게시물 하나는 이 모든 청중 앞에 동시에 놓인다. 그 결과 글쓴이는 권위와 친근함을 한 문장 안에서 동시에 확보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전문용어는 업계 사람을 향하고, 어린 말투와 이모티콘은 친구를 향한다. 기묘한 혼합은 게으름이 아니라 최적화의 산물이다.
7. 옆 나라는 이 형식에 이름을 붙여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2020년 중국의 소셜미디어 웨이보에서 ‘베르사유 문학(凡尔赛文学)’이라는 말이 폭발했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궁정 생활을 그린 일본 만화 『베르사유의 장미』에서 따온 이름으로, 사치와 우위를 무심한 척 흘리는 글쓰기를 가리킨다. 표본은 이렇다. “남편이 또 람보르기니를 사 왔는데 색이 너무 촌스럽다.” 자랑은 문장 어디에도 없고, 자랑만 남는다.
재미있는 것은 이 유행어가 만들어진 방식이다. 한 사용자가 이 문체의 세 가지 공식을 정리해 올렸고, 사람들이 그것을 따라 하며 놀이가 되었다. 먼저 깎아내리고 나중에 띄우기, 스스로에게 질문 던지기, 제3자의 입을 빌려 칭찬하기. 형식이 해부되는 순간 마법이 풀렸다.
2021년 화용론 학술지 Journal of Pragmatics에 실린 연구는 이 해시태그가 달린 웨이보 게시물 200건을 분석했다. 결론은 명료했다. 직접적인 자랑은 반드시 완화 장치와 함께만 등장했다. 비교, 불평, 서사, 제3자의 칭찬, 겸손의 표시가 그 장치였다. 연구진은 이 문체가 본질적으로 험블브래그의 한 갈래라고 결론지었다.
알리바바를 창업한 것이 내 인생 최대의 실수였다.
마윈의 이 발언은 유행어가 퍼진 뒤 ‘사후 진단’ 사례로 즐겨 인용됐다. 후회의 형식을 갖췄지만, 후회할 만한 것을 세웠다는 사실이 전제로 깔린다. 형식에 이름이 붙자 사람들은 문장 뒤의 전제를 읽어내기 시작했다.
8. 250년 된 계보
이 현상을 두고 “요즘 세대”를 탓하는 것은 게으른 진단이다. 사상사는 이 구조를 오래전에 해부해 두었다.
| 사상가 | 개념 | 이 형식에 주는 해석 |
|---|---|---|
| 장자크 루소 1755 | 아무르 프로프르 (amour-propre, 비교적 자기애) | 자기 가치가 남과의 비교와 남의 인정에 매달리는 순간, 존재는 연기(演技)가 된다. 루소는 이것을 자연적 자기애와 구분했다. |
| 소스타인 베블런 1899 | 과시적 소비 (conspicuous consumption) | 비싼 물건은 쓰려고 사는 것이 아니라 샀다는 사실을 알리려고 산다. 오늘날 계정의 사용량 자랑은 소비의 계량화된 판본이다. |
| 어빙 고프먼 1959 | 인상관리, 무대와 무대 뒤 | 고백처럼 보이는 글도 관객을 상정하고 구성된 전면무대의 연기일 수 있다. 무대 뒤를 보여주는 연기가 가장 정교한 연기다. |
| 피에르 부르디외 1979 | 구별짓기, 문화자본 | 어려운 어휘와 앞선 취향은 계층을 표시하는 자본이다. 취향은 순수해 보일수록 강력한 계급 표지가 된다. |
| 프리드리히 니체 1887 | 르상티망 | 약함을 도덕적 우위로 전환하는 회로를 지적한다. 다만 모든 하소연을 여기에 밀어넣는 것은 과잉 해석이다. |
베블런이 관찰한 것은 은식기와 여가였고, 부르디외가 본 것은 취향과 학력이었다. 오늘의 통화(通貨)는 토큰과 최신성이다. 화폐 단위만 바뀌었을 뿐, 거래되는 상품은 여전히 서열이다.
9. 그래서 어떻게 구분하는가
같은 사실을 쓰더라도 어떤 글은 정보가 되고 어떤 글은 연출이 된다. 두 개의 축으로 갈라진다.
실무적으로는 다음 세 가지를 보면 대체로 갈린다.
- 독자가 가져갈 것이 남는가. 글을 읽고 나서 따라 해볼 수 있는 절차나 확인할 수 있는 근거가 남으면 정보다. 화자의 인상만 남으면 연출이다.
- 불평이 문제 해결로 이어지는가. 진짜 불편은 대개 해결책을 찾는다. 사용량이 모자란다는 하소연이 요금제 비교나 사용 효율 이야기로 이어지지 않고 그 자리에서 끝난다면, 그 문장의 기능은 하소연이 아니다.
- 수치가 검증 가능한 방향으로 제시되는가. “많이 썼다”는 지위 신호이고, “이 작업에 몇 회를 썼고 결과는 이랬다”는 정보다. 같은 숫자도 비교 대상이 있으면 근거가 되고, 없으면 과시가 된다.
10. 판단의 한계
이 분석을 사람에게 그대로 겨누면 틀린다. 다음 네 가지는 분명히 해두어야 한다.
- 게시물 몇 개로 인격을 진단할 수 없다. 자기애성 성격장애는 임상 진단명이며, 타임라인은 진단 도구가 아니다. 험블브래그 연구가 측정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문장에 대한 독자의 반응이다.
- 진짜 힘들어서 쓴 글일 수 있다. 앞서 본 새드피싱 연구가 그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 관찰자도 편향에서 자유롭지 않다. ‘아름다운 엉망’ 효과의 반대편에는 사회적 비교가 있다. 남의 성취를 보면 부러움과 부족감이 일고, 그 감정은 상대의 문장을 실제보다 더 얄밉게 읽도록 만든다. 어떤 글이 유독 거슬린다면 그 글의 구조 때문일 수도 있고, 읽는 쪽의 위치 때문일 수도 있다.
- 형식을 알아보는 것과 사람을 재단하는 것은 다르다. 앞의 것은 읽기의 기술이고, 뒤의 것은 또 하나의 지위 게임이다.
11. 남는 것
이 형식을 부르는 이름을 하나 고르라면 ‘자기연민으로 완충된 지위 과시’가 정확하다. 기존 진단명이 아니라 여러 연구 개념을 합쳐 만든 서술적 표현이다. 짧게는 그냥 불평형 험블브래그라 불러도 된다.
세제르·지노·노턴의 실험이 남긴 결론은 조금 얄궂다. 이 전략은 작동하지 않는다. 자랑을 하소연으로 감싼 사람은 그냥 자랑한 사람보다 덜 호감을 사고, 덜 유능해 보이며, 부탁도 덜 들어준다. 독자들은 상자를 열어본다. 형식이 정교할수록 열어본 뒤의 실망도 크다.
그러니 관찰의 결론은 도덕이 아니라 경제에 가깝다. 존경과 동정을 한 번에 사려는 시도는 대개 둘 다 놓친다. 자랑을 하고 싶으면 자랑을 하고, 힘들면 힘들다고 하는 편이 — 적어도 실험이 말하는 바로는 — 값이 싸다.
참고문헌
- Sezer, O., Gino, F., & Norton, M. I. (2018). Humblebragging: A Distinct—and Ineffective—Self-Presentation Strategy.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14(1), 52–74. 논문 정보
- Shulman, H. C., Dixon, G. N., Bullock, O. M., & Colón Amill, D. (2020). The Effects of Jargon on Processing Fluency, Self-Perceptions, and Scientific Engagement. Journal of Language and Social Psychology, 39(5–6), 579–597. DOI
- Bullock, O. M., & Bisbey, T. (2025). Jargon in the Workplace Reduces Processing Fluency, Self-Efficacy, and Information Seeking and Sharing. International Journal of Business Communication. DOI
- Bruk, A., Scholl, S. G., & Bless, H. (2018). Beautiful Mess Effect: Self–Other Differences in Evaluation of Showing Vulnerability.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15(2), 192–205. 논문 정보
- Ok, E., Qian, Y., Strejcek, B., & Aquino, K. (2021). Signaling Virtuous Victimhood as Indicators of Dark Triad Personalitie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20(6), 1634–1661. 논문 정보
- Shabahang, R., Shim, H., Aruguete, M. S., et al. (2023). Adolescent sadfishing on social media: anxiety, depression, attention seeking, and lack of perceived social support as potential contributors. BMC Psychology, 11, 378. 원문
- Ren, W., & Guo, Y. (2021). What is “Versailles Literature”?: Humblebrags on Chinese social networking sites. Journal of Pragmatics, 184, 185–196. 논문 정보
- Marwick, A. E., & boyd, d. (2011). I tweet honestly, I tweet passionately: Twitter users, context collapse, and the imagined audience. New Media & Society, 13(1), 114–133.
- Goffman, E. (1959). The Presentation of Self in Everyday Life. Doubleday.
- Veblen, T. (1899). The Theory of the Leisure Class. Macmillan.
- Bourdieu, P. (1979). La Distinction: Critique sociale du jugement. Minuit.
- Rousseau, J.-J. (1755). Discours sur l’origine et les fondements de l’inégalité parmi les hom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