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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 기술 · 조직

가림막이 걷혔을 뿐이다
— AI와 지식노동의 무의미감

사무직의 실존적 피로는 AI(인공지능)가 만들어낸 새로운 병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있던 공백을 덮고 있던 마지막 가림막, 즉 ‘그래도 이 일은 사람이 했다’는 사실이 걷힌 것이다.

2026년 8월 8일

요즘 사무직 종사자들의 대화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회사를 떠나는 상상,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취미, 도시를 벗어난 삶에 대한 이야기가 유독 자주 등장한다. 이런 말들은 예전에도 있었다. 다만 예전의 그것이 ‘쉬고 싶다’는 피로의 표현이었다면, 지금의 그것은 ‘이 일이 애초에 무엇이었나’라는 질문에 가깝다. 피로는 휴가로 해결되지만 이 질문은 휴가로 해결되지 않는다.

이 현상을 설명하는 가장 손쉬운 문장은 ‘AI가 일자리를 위협해서’다. 그러나 데이터를 나란히 놓고 보면 이 설명은 시점이 맞지 않는다. 무의미감은 AI보다 훨씬 오래되었고, AI가 실제로 대체한 노동량은 아직 그 불안의 규모를 정당화하지 못하며, 정작 측정 가능한 손상은 사람들이 걱정하는 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 글은 그 세 가지 불일치를 순서대로 짚는다.

01무의미감은 AI보다 오래됐다

2015년 영국에서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노동자의 37%는 자신의 일이 세상에 의미 있는 기여를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13%는 판단을 유보했다. 같은 질문을 네덜란드에서 물었을 때는 40%가 자신의 일에서 의미를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가 ‘쓸모없는 일자리’ 논의를 확산시킬 때 근거로 삼은 숫자들이며, 생성형 AI가 등장하기 7년 전의 기록이다.

다만 그레이버가 이 수치로부터 ‘전체 일자리의 40~50%가 무의미하다’는 결론까지 밀어붙인 부분은 후속 연구에서 지지받지 못했다. 유럽연합 28개국 자료를 쓴 분석에서 자기 일이 쓸모없다고 답한 비율은 5% 안팎이었고, 47개국 조사에서는 8%가 그렇다고, 17%가 확신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증가 추세도 확인되지 않았다. 즉 ‘대다수의 일이 무의미하다’는 주장은 과장이지만, ‘상당한 규모의 사람들이 자기 일의 의미를 의심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은 여러 방식으로 재확인된다.

더 중요한 지표는 의미가 아니라 몰입이다. 갤럽이 140여 개국을 대상으로 집계한 2024년 결과에서 자기 일에 몰입하고 있다고 답한 노동자는 전 세계 21%였다. 한국은 13.8%로 세계 평균과 동아시아 평균(18%)을 모두 밑돌았고, 조직 분위기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적극적 비몰입’ 비율은 23.9%였다. 몰입한 사람보다 적극적으로 이탈한 사람이 더 많은 구조다.

업무 몰입 응답 비율 (갤럽, 2024년 집계)

전 세계 평균21%
동아시아 평균18%
한국13.8%
한국 — 적극적 비몰입23.9%

막대 길이는 상대 비교용이며 최대값을 45%로 잡아 환산했다.

이 수치들이 말하는 것은 분명하다. 지식노동의 의미 문제는 이미 만성 질환이었다. 다만 만성 질환은 진통제가 있으면 견딜 수 있다. 그 진통제가 무엇이었는지가 다음 질문이다.

02진통제는 ‘사람이 했다’는 사실이었다

지식노동은 원래 추상적이다. 큰 조직에서는 어떤 직무를 지원하는 직무가 있고, 그 직무를 지원하는 직무가 다시 있다. 층을 벗겨 들어가도 단단한 중심에 닿지 못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배관을 고치거나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눈에 이 구조가 기이하게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실행의 소유권에 있었다. 보고서의 논리를 세운 것도, 고객의 항의에 답할 문장을 고른 것도, 자료가 서로 맞지 않는 지점을 밤에 발견한 것도 사람이었다. 결과물의 사회적 가치가 희박해도, 그 안에는 자기 판단이 남아 있었다. 무의미한 일이라도 내 무의미한 일이었다는 감각이 마지막 지지대였다.

생성형 AI는 바로 이 지지대를 건드린다. 자료 정리와 서식 맞추기 수준에서 멈추면 문제가 없다. 그러나 현실의 도입은 그 선에서 멈추지 않는다. 기획의 초안, 캠페인 전체 구성, 부서 전략의 골격까지 생성물로 채우고 사람은 검토자로 이동한다. 여기서 발생하는 감각은 ‘일자리를 잃을까’와 결이 다르다. 일은 그대로 있는데 그 일에서 자기 지분이 사라졌다는 감각이다.

AI는 지식노동의 의미를 파괴하지 않았다. 의미가 이미 희박했다는 사실을 가려주던 알리바이를 회수했다.

이 구분은 실무적으로 중요하다. 의미가 파괴되었다면 해법은 일을 되돌리는 것이다. 알리바이가 회수된 것이라면 해법은 다른 데 있다. 애초에 그 일이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를 다시 정의하거나, 정의할 수 없다면 정의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쪽이다.

03그런데 생산성은 아직 증명되지 않았다

각성의 계기가 실제 성과였다면 이야기는 단순하다. 그런데 측정된 성과는 서사보다 훨씬 조심스럽다.

비영리 연구기관 METR은 2025년 상반기에 숙련 개발자를 대상으로 RCT(무작위 대조시험)를 수행했다. 자신이 5년 이상 다뤄온 저장소의 실제 과제 246건을 AI 사용 허용군과 비허용군으로 무작위 배정한 설계였다. 참가자들은 사전에 24%의 속도 향상을 예상했고, 실험을 마친 뒤에도 20% 빨라졌다고 답했다. 실측 결과는 19% 느려짐이었다. 인식과 실측의 간격이 약 39%포인트에 달했다.

숙련 개발자의 AI 사용 효과 — 예상 · 체감 · 실측 (METR, 2025년)

사전 예상+24% 빨라짐
사후 체감+20% 빨라짐
실측 결과−19% 느려짐

표본은 개발자 16명, 과제 246건이다. 연구진은 2026년 2월 후속 실험에서 ‘현재는 속도 향상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으나, 참여 거부에 따른 표본 편향으로 그 크기를 신뢰할 수 없다고 스스로 단서를 달았다. 따라서 최신 시점의 향상 폭은 확정된 수치가 아니다.

조직 단위에서도 비슷하다. MIT가 2025년에 경영진 150명 면담, 직원 350명 설문, 도입 사례 300건을 분석한 결과, 생성형 AI 시범 사업 가운데 손익에 측정 가능한 영향을 준 경우는 약 5%였다. 실패의 원인은 모델 성능이 아니라 업무 흐름과의 접합 실패로 지목됐다. 흥미로운 부분은 전문 공급사로부터 도구를 사서 붙인 경우의 성공률이 약 67%였고, 자체 개발에 의존한 경우는 그 3분의 1 수준이었다는 점이다. 야심의 크기와 성과가 반비례했다.

가트너가 경영진 350명을 조사한 결과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AI를 시범 도입한 대기업의 80%가 인력 감축을 보고했으나, 그 감축과 측정 가능한 투자수익 사이에 상관관계는 확인되지 않았다. 감축은 예산 여력을 만들 뿐 그 자체로 수익을 만들지는 않는다.

04AI는 자르지 않았다, 자르는 이유로 쓰였다

불안의 상당 부분이 기술이 아니라 경영 서사에서 온다는 점은 감원 통계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미국의 재취업 지원 기업 챌린저·그레이앤크리스마스의 집계에 따르면, 2026년 1월 감원 발표에서 AI가 사유로 언급된 비율은 7%였다. 2월 10%, 3월 25%, 4월 26%를 거쳐 5월에는 약 40%까지 올랐고, 3월부터 7월까지 다섯 달 연속으로 감원 사유 1위를 차지했다. 넉 달 만에 AI의 실제 성능이 다섯 배 좋아진 것은 아니다. 바뀐 것은 설명이다.

미국 감원 발표에서 AI가 사유로 언급된 비율 (2026년)

1월7%
2월10%
3월25%
4월26%
5월약 40%

당사자들의 진술도 남아 있다. 2025년 12월 채용 담당자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실제 이유가 재무적 압박일 때도 감원이나 채용 축소를 AI 때문이라고 설명한다는 응답이 59%였다. 그중 17%는 명시적으로 그렇게 한다고, 42%는 어느 정도 그렇다고 답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수요가 꺾여서 줄인다는 말은 재무 악화의 신호로 읽히고, AI 전환으로 조직을 재편한다는 말은 선제적 전략으로 읽힌다. 같은 결정에 붙는 설명만 다르다.

규모 추정도 서사보다 작다. 전미경제연구소(NBER)의 실무 논문은 미국 기업 최고재무책임자 750명을 조사해, AI 관련 감원 계획이 있다고 답한 비율이 44%임을 확인했다. 이를 경제 전체로 환산하면 올해 약 50만 개, 전체 일자리의 0.4% 수준이었다. 작은 숫자는 아니지만, 사무직 전체가 소멸한다는 전망과는 자릿수가 다르다. OpenAI의 샘 올트먼조차 정확한 비율은 모르겠으나 원래 할 감원을 AI 탓으로 돌리는 ‘AI 워싱’이 존재한다고 인정했다.

직원들이 느끼는 배신감의 상당 부분은 ‘기계가 내 일을 가져갔다’가 아니라 ‘경영진이 기계를 핑계로 삼았다’에서 온다. 전자는 기술의 문제이고 후자는 신뢰의 문제다. 후자는 모델이 좋아져도 회복되지 않는다.

05실제 손상은 입구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렇다고 아무 일도 없는 것은 아니다. 측정 가능한 손상은 이미 한 지점에 집중되어 있다. 조직의 입구다.

스탠퍼드 연구진이 미국 급여처리 기업 ADP의 월별 급여 기록을 분석한 결과, 생성형 AI가 확산된 2022년 말 이후 AI 노출도가 높은 직종의 22~25세 노동자 고용은 기업 단위 충격을 통제한 뒤에도 상대적으로 13% 감소했다. 2025년 11월 개정판에서는 이 수치가 16%로 조정됐다. 같은 직종의 경력자 고용은 유지되거나 늘었다. 특히 22~25세 소프트웨어 개발자 인원은 2022년 말 대비 약 20% 줄었다. 조정은 임금이 아니라 인원에서 일어났고, AI가 업무를 보완하는 직종보다 대체하는 직종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2026년 2월 후속 설명에서, 가장 넓은 통제변수를 넣으면 통계적 유의성이 2024년부터 확인되며 그 이전의 감소는 AI 외의 요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인과관계로 확정된 것이 아니라 상관관계라는 단서다.

한국의 수치는 더 거칠다. 취업 플랫폼 집계 기준으로 2025년 1~11월 대기업 정규직 신입 공고는 전년 대비 43% 줄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2025년 상반기 민간 채용 플랫폼 공고 14만 4,181건을 분석한 결과, 신입만 채용하는 공고는 2.6%였고 경력을 우대한다고 밝힌 비율은 97.4%였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조사에서는 신규 채용의 가장 중요한 평가 요소로 ‘직무 관련 업무 경험’을 꼽은 기업이 67.6%였다. 신입을 뽑으면서 경험을 요구하는 구조가 통계로 확정된 셈이다.

한국 채용 구조 (2025년 상반기 공고 14만 4,181건 분석)

경력을 우대하는 공고97.4%
신입만 채용하는 공고2.6%

이 대목에서 논점이 이동한다. 신입 채용 축소는 개인의 의미 상실 문제가 아니다. 조직의 재생산 문제다.

06조직이 낭비로 오해하는 것

경영진이 AI 도입에서 가장 매력적으로 여기는 항목은 회의의 감소, 협업의 감소, 인원의 감소다. 세 항목 모두 비용 계정에 잡히고 절감액이 계산된다. 반면 그 과정에서 함께 사라지는 것은 계정에 잡히지 않는다.

어수선한 중간 과정은 두 가지 기능을 한다. 첫째, 암묵지의 전달 경로다. 초년생이 배우는 것은 산출물의 형식이 아니라, 선임이 어떤 자료를 의심하고 어떤 지점에서 판단을 멈추는지다. 이 학습은 문서가 아니라 과정에 붙어 있다. 초안 작성이 생성물로 대체되면 산출물은 남지만 그 경로는 남지 않는다. 둘째, 창의적 산출의 조건이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테레사 애머빌은 수십 년의 연구를 통해, 사람은 결과나 지표가 아니라 일 자체의 흥미와 도전에서 동기를 얻을 때 가장 창의적인 성과를 낸다고 정리했다. 창의성을 죽이는 환경은 정치적이고 위험을 회피하며 성과 지표만을 좇는 환경이고, 살리는 환경은 협업적이고 아이디어 중심이며 자율적인 환경이다.

여기서 비대칭이 발생한다. 결과를 먼저 보는 사람에게 중간 과정의 제거는 승리다. 과정을 통해 일의 값을 확인하는 사람에게 그것은 일의 기반 제거다. 같은 도입이 한쪽에는 효율로, 다른 쪽에는 박탈로 기록된다. 조직이 이 차이를 인지하지 못하면, 남길 필요가 있는 사람부터 떠나는 순서로 인력이 재편된다.

더 구조적인 위험은 시차에 있다. 신입 채용을 중단한 조직은 3년 뒤에도 문제를 느끼지 않는다. 문제는 지금의 중견 인력이 떠날 무렵, 그 자리를 이어받을 사람이 육성된 적 없다는 사실이 드러날 때 발생한다. 그 시점에 시장에서 경력자를 사 오려 해도, 모든 조직이 같은 선택을 했으므로 시장에 경력자가 없다. AI가 초급 업무를 대체할 수 있다는 판단은 대체로 옳지만, 초급 업무가 ‘생산 활동’이 아니라 ‘교육 과정’이었다는 사실을 계산에서 빠뜨린 판단이다.

07한국의 변수는 조금 다르다

영어권 논의는 이 현상을 흔히 ‘일에서 종교적 의미를 찾으려던 태도의 붕괴’로 설명한다. 고학력·고소득 전문직이 공동체와 소명을 직장에서 구했고, 그 신앙이 깨지면서 실존적 공백이 노출됐다는 서술이다. 설명력은 있지만, 한국의 사무직에 그대로 옮기기는 어렵다.

한국의 몰입도가 낮은 이유를 물었을 때 통상 지목되는 것은 의미의 부재가 아니라 자율성의 부재다. 연공 중심의 보상, 결정 권한의 상층 집중, 성과와 평가의 낮은 연결성이 반복해서 언급된다. 즉 한국의 다수 사무직은 처음부터 일에서 소명을 구하지 않았고, 구할 조건도 주어지지 않았다. 무너질 신앙이 애초에 크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AI 도입이 초래하는 것은 신앙의 붕괴가 아니라 이중 박탈에 가깝다. 판단의 자율성이 이미 없던 상태에서, 남아 있던 실행의 자율성마저 회수되는 구조다. 이 경우 나타나는 반응은 실존적 각성보다 냉소다. 갤럽 집계에서 한국의 적극적 비몰입 비율이 몰입 비율의 1.7배라는 사실이 이미 그 상태를 보여준다. 이 조직에 생성형 도구를 얹으면 산출물의 양은 늘고 조직 내 대화의 양은 줄어든다. 남는 것은 검토해야 할 문서와, 검토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검토자다.

도구 도입의 성패는 모델 성능이 아니라 도입 이전의 자율성 수준이 결정한다. 판단 권한이 있는 조직에서 생성형 도구는 판단의 재료를 늘리고, 판단 권한이 없는 조직에서는 처리해야 할 서류를 늘린다.

08그렇다면 무엇이 남는가

개인 차원

직무의 의미와 직업의 정체성을 분리하는 편이 실용적이다. 지금 하는 업무가 세상에 기여하지 않는다는 판단이 곧 인생이 잘못됐다는 판단은 아니다. 두 문장을 붙여 놓으면 매일의 업무가 자기 존재의 심사가 되고, 그 심사는 이길 수 없다. 회사가 자기 삶의 의미를 공급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은 상실이 아니라 정보의 갱신이다.

남는 노동이 무엇인지도 비교적 분명하다. 생성물의 양이 늘어날수록 값이 오르는 것은 판단이다. 무엇을 만들지 정하는 능력, 만들어진 것이 틀렸음을 알아채는 능력, 틀렸다고 말할 책임을 지는 능력이다. 이 세 가지는 위임되지 않는다. 초안 작성 능력만으로 자기 값을 설명해 온 사람이 어려워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국면에서 요구되는 것은 이직 결심이 아니라 자기 업무 중 판단에 해당하는 부분을 식별하는 작업이다.

조직 차원

09각성 자체는 손실이 아니다

이 국면의 위험은 사람들이 자기 일의 값을 다시 계산했다는 데 있지 않다. 계산 결과가 나온 뒤에도 선택지가 없다는 데 있다. 회사를 떠나 농장을 사거나 강습을 시작하는 경로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열려 있지 않고, 열린 소수에게도 대체로 또 다른 형태의 자기 전시로 이어진다. 이탈이 상품이 되는 구조에서 이탈은 해방이 아니다.

그래서 현실적인 대응은 조직을 떠나는 것보다 조직 안에서 사람의 손에 남길 일을 골라내는 쪽에 있다. 답을 도구에 묻는 대신 동료에게 전화해 5분간 따져보는 선택, 결과물이 조금 느려지는 대신 그 과정에서 한 사람이 무언가를 배우는 선택, 어떤 종류의 판단은 끝까지 사람이 한다고 정해두는 선택이다. 각각은 사소하고 어느 것도 지표로 잡히지 않는다. 다만 이 사소한 항목들이 지식노동이 그동안 견딜 만했던 이유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었다.

AI는 지식노동에 새로운 병을 만들지 않았다. 오래 미뤄둔 진단서를 발급했을 뿐이다. 진단서를 받은 뒤에 할 일은 진단서를 부정하거나 진단을 내린 기계를 원망하는 것이 아니다. 오래 비어 있던 자리에 무엇을 채울지 정하는 것이다. 그 자리는 대체로 회사 밖에 있고, 회사가 채워줄 것을 기대한 적 없는 사람이 먼저 채운다.

이 글에 인용된 수치 가운데 AI의 생산성 효과와 초기 경력 고용 감소는 연구진 스스로 표본 편향과 인과 추정의 한계를 밝힌 것으로, 확정된 결론이 아니라 현재까지의 관측으로 읽는 편이 정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