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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 · 불교사

불교는 종교인가 철학인가

둘 중 하나를 고르라는 질문은 불교보다 훨씬 어리다. 그 질문이 언제, 어디서, 누구의 필요로 만들어졌는지를 따라가면 답이 아니라 질문의 구조가 먼저 드러난다.

절에 다니지 않는 사람이 불교를 좋아한다. 한국갤럽이 2021년 3~4월 전국 성인 1,500명을 면접조사한 결과, 종교가 없는 응답자가 가장 호감을 느끼는 종교로 꼽은 것은 불교였다. 20%가 불교를 택했고 천주교 13%, 개신교 6%가 뒤를 이었다. 같은 조사에서 불교 신자 가운데 하루 한 번 이상 기도하거나 기원한다고 답한 비율은 5%로, 개신교인 37%·천주교인 31%와 차이가 컸다.

두 숫자를 나란히 놓으면 익숙한 결론이 떠오른다. 불교는 덜 종교적이고, 그래서 무종교인에게도 거부감이 없다는 것이다. "불교는 종교라기보다 철학"이라는 문장이 이 자리에 붙는다. 그러나 두 숫자는 같은 것을 재지 않는다. 앞의 숫자는 한국인이 '종교'라는 낱말에 무엇을 담고 있는지를 재고, 뒤의 숫자는 하루 몇 번 기도하는가라는 척도 위에서 불교 실천이 어디에 찍히는지를 잰다. 척도가 이미 한쪽 전통의 모양을 하고 있다. 개신교인의 기도 빈도로 불교를 재는 것은 마라톤 기록으로 역도를 평가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착오다.

그러므로 이 질문은 답을 고르기 전에 분해해야 한다. 분해해 보면 '종교'와 '철학'이라는 두 항이 모두 19세기의 산물이며, 둘을 배타적으로 만든 것도 같은 시기의 특정한 신학적 전제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01'종교'라는 낱말은 붓다보다 스물네 세기 늦게 태어났다

동아시아에는 religion에 대응하는 낱말이 없었다. 일본 번역자들이 1850년대에 이 영어 단어를 처음 마주쳤을 때 옮길 말이 없어 여러 후보를 놓고 논쟁했고, 1880년대에 이르러 슈쿄(宗敎)가 표준 번역어로 자리를 잡았다. 종(宗)은 종파·계보를, 교(敎)는 가르침을 뜻하는 글자였고, 두 글자가 붙은 형태는 근대 이전에도 아주 드물게 불교 문헌에서 쓰였을 뿐이다. 이 신조어는 곧 중국과 조선으로 수출되어 동아시아 전역에서 religion을 가리키는 지배적 용어가 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낱말의 나이가 아니라 낱말이 만들어질 때 함께 들어온 형틀이다. 메이지 일본에서 '종교'라는 범주가 성립하는 과정은 무엇이 종교이고 무엇이 미신이며 무엇이 과학인가를 국가가 가르는 과정이었다. 불교는 그 범주에 들어가기 위해 스스로 미신으로 분류될 만한 실천을 잘라내야 했다. 이노우에 엔료 같은 불교 철학자가 앞장서서 이 작업을 수행했다. 즉 불교가 종교가 된 것은 자연스러운 발견이 아니라 행정적·논쟁적 편입이었고, 그 편입에는 비용이 따랐다.

불교가 자기를 부르던 이름은 달랐다. 팔리 문헌에서 붓다가 남긴 것은 '법과 율(dhamma-vinaya)'이고, 전통 전체를 가리킬 때는 '사사나(sāsana, 가르침·교법)'라는 말을 썼다. 한문권에서는 불법(佛法)·불도(佛道)였다. 이 낱말들은 오늘의 '종교'와도 '철학'과도 겹치되 어느 쪽으로도 환원되지 않는다. 법과 율이라는 결합 자체가 이미 그렇다. 앞은 세계에 관한 주장이고 뒤는 공동체 규율이다. 명제와 계율을 한 단어로 묶어 부르는 전통에 대고 "이것은 명제인가 제도인가"를 묻는 것은 처음부터 잘못 겨눈 질문이다.

질문의 첫 항이 무너지는 자리

"불교는 종교인가"라는 물음은 사실상 "불교는 19세기 유럽이 만들고 메이지 일본이 번역한 분류함에 들어가는가"를 묻는다. 답이 무엇이든 그것은 불교에 관한 사실이 아니라 분류함에 관한 사실이다.

02반대편 항인 '철학'도 같은 무렵 좁아졌다

질문을 구제하려면 남은 항이 튼튼해야 한다. 그런데 '철학'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피에르 아도는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philosophia가 학과목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었음을 문헌으로 논증했다. 학파를 고른다는 것은 이론 체계를 고르는 일이 아니라 식사·수면·분노·죽음을 다루는 일과를 고르는 일이었고, 스토아학파나 에피쿠로스학파의 텍스트 상당수는 명제를 증명하려는 글이 아니라 반복 수행을 위한 대본이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기록은 자기 심경의 보고가 아니라 정해진 훈련의 노트에 가깝다.

아도의 정리에 따르면 철학이 삶의 기술에서 논증 텍스트의 생산업으로 좁아진 것은 중세 대학 이후의 일이다. 대학은 교수를 길러 내는 교수들의 제도이고, 그 안에서 철학은 신학에 개념·논리·형이상학 자재를 공급하는 도구가 되었다. 근대에 이르러 그 도구가 독립했을 때 남은 것이 지금 우리가 '철학'이라 부르는 것이다.

이 사실은 질문의 두 항을 동시에 흔든다. 고대의 뜻으로 두 낱말을 쓰면 종교와 철학은 배타적이지 않고, 불교는 아무 어려움 없이 둘 다다. 근대의 좁은 뜻으로 쓰면 불교는 어느 쪽에도 정확히 들어가지 않는다. 질문이 성립하는 유일한 조건은 한 항은 근대적으로 좁게, 다른 항은 고대적으로 넓게 쓰는 것인데, 그렇게 쓰는 순간 논증이 아니라 수사가 된다. 실제로 "불교는 종교가 아니라 철학"이라는 문장은 종교를 개신교의 좁은 형태로 잡고 철학을 삶의 방식이라는 넓은 형태로 잡을 때만 참이 된다.

03그 문장이 처음 쓰인 자리는 식민지 실론이었다

"불교는 종교가 아니다"라는 주장은 아시아 불교의 오래된 자기이해가 아니다. 그 문장은 19세기 후반 영국령 실론에서 특정한 압력에 대한 응답으로 만들어졌다. 기독교 선교사들은 현지 불교를 우상숭배·미신으로 공격했고, 이에 맞선 재편 작업을 미국인 신지학자 헨리 스틸 올콧과 실론의 재가 활동가 아나가리카 다르마팔라가 주도했다. 올콧은 기독교 주일학교를 본뜬 불교 문답서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가르쳤고, 다르마팔라는 불교를 합리적이고 윤리적이며 과학과 조화롭다고 내세웠다. 의례와 신격은 축소되고 경전과 개인 수행이 앞으로 나왔다.

가나나트 오베예세케레는 1970년에 이 현상을 개신교 불교(Protestant Buddhism)로 명명했고, 1988년 리처드 곰브리치와 함께 쓴 저작에서 개념을 확장했다. 명칭에 담긴 역설이 핵심이다. 기독교에 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불교의 형태가 구조적으로는 개신교를 닮았다는 것이다. 재가자의 활동성, 의례 경시, 개인 신앙의 강조, 그리고 세속 안에서의 금욕적 노동윤리까지 그렇다.

데이비드 맥마한은 이 흐름을 불교 모더니즘이라는 더 넓은 이름으로 다루면서 세 가지 축을 짚었다. 탈전통화, 탈신화화, 심리학화다. 그는 이것을 서구의 날조로 환원하지 않는다. 아시아 개혁가와 서구 지식인이 함께 만든 잡종이고,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이 실제로 수행하는 불교의 한 형태라는 것이다. 다만 이 형태가 "고대의 본질"이나 "붓다의 원래 가르침"으로 자칭할 때 문제가 생긴다. 150년 된 구성물이 2,500년 된 원형을 참칭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발화자의 위치를 보면 강조점의 배치가 설명된다. 올콧은 아시아 전통에서 서구 물질주의의 해독제를 찾던 미국인이었고, 다르마팔라는 식민 지배 아래에서 민족적 자존을 세워야 했던 현지 엘리트였다. 두 사람 모두 "우리 것도 당신들의 기준으로 우수하다"를 입증해야 하는 자리에 있었다. 그 자리에서 나온 서술이 합리성과 과학 친화성을 앞세우고 사리 숭배와 정령 신앙을 뒤로 미룬 것은 개인의 취향이 아니라 논쟁 지형의 산물이다. 인격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04비문과 무덤은 경전과 다른 말을 한다

"원래 불교는 철학이었는데 대중화하면서 종교가 되었다"는 서사는 강력하다. 그러나 이 서사는 특정한 자료 편식 위에 서 있다. 그레고리 쇼펜은 인도 불교사 연구가 오랫동안 경전 텍스트만 읽고 비문·고고학 자료를 무시해 왔음을 지적했다. 텍스트는 규범적 이상을 진술하는 문헌이고, 그 안의 '수행승'은 실제 인물의 기록이 아니라 정교하게 구성된 이상형이다. 그런데도 연구자들은 이상형을 역사적 실재의 반영으로 다뤄 왔다.

비문과 유적이 보여 주는 것은 다르다. 승려와 비구니가 재산을 축적하고, 자기 재산으로 건축을 후원하며, 탑과 불상과 사리를 숭배하고, 상거래와 이자 대부에 관여하며, 재가자의 요청에 따라 축복과 장례 의례를 집전한다. 죽은 승려의 유해 곁에 묻히려는 관행도 확인된다. 쇼펜의 진단에서 더 날카로운 대목은 그 편식의 뿌리다. 경전이 참된 종교이고 의례는 후대의 타락이라는 전제, 즉 텍스트를 실재보다 위에 두는 습관 자체가 개신교적 전제라는 것이다.

이 지적이 옳다면 "원래는 철학이었다"는 서사는 시간 순서가 뒤집혀 있다. 확인 가능한 가장 이른 물증 층위에서부터 숭배가 있고, '순수한 철학적 불교'는 후대에 발견된 것이 아니라 후대에 구성된 것이다. 물론 쇼펜의 방법에도 반론이 있다. 그가 다루는 시기는 주로 서기 이후 5백 년의 중기 인도 불교이고, 사용하는 율장 자료의 성립 연대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다. 비문은 남긴 사람의 계층이 편향되어 있어 그것대로 부분적 증언이다. 그러나 반론이 성립해도 결론의 방향은 잘 바뀌지 않는다. 두 계열의 자료가 어긋날 때 텍스트 쪽을 자동으로 택할 근거가 없다는 것이 쇼펜의 요점이고, 그 요점은 반론에도 살아남는다.

05지금 불교도가 믿는다고 답하는 것들

과거 자료의 해석이 갈린다면 현재의 설문은 더 직접적이다. 퓨리서치센터가 2022~2023년 남아시아·동남아시아 6개국 성인 1만 3천여 명을 조사한 결과, 여섯 나라 모두에서 성인 네 명 중 세 명 이상이 카르마의 존재를 믿는다고 답했다. 신이나 정령 같은 보이지 않는 존재가 있다고 답한 비율도 다수였고 불교도에서 특히 높았다. 주술이나 저주가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고 본 응답자는 여섯 나라 모두에서 절반 이상이었다.

퓨리서치센터 · 남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조사
열반이 존재한다 — 스리랑카 불교도87%
열반이 존재한다 — 캄보디아 불교도71%
열반이 존재한다 — 태국 불교도68%
환생을 믿는다 — 캄보디아 불교도 여성85%
신이 존재한다 — 태국 성인 전체48%
신이 존재한다 — 캄보디아 성인 전체44%

신 존재 항목은 국가 성인 전체 기준이며 나머지는 해당 종교 집단 기준이다. 동아시아 별도 조사에서는 대만 성인의 87%가 카르마의 존재를 인정했는데, 같은 조사에서 종교가 매우 중요하다고 답한 대만 성인은 11%에 그쳤다.

이 배치가 흥미롭다. 신을 믿는 비율은 태국과 캄보디아에서 절반에 못 미치는데 카르마와 환생을 믿는 비율은 압도적이다. 여기서 두 가지가 동시에 확인된다. 첫째, 상좌부 불교권은 유신론적이지 않다. 둘째, 그럼에도 초자연적 인과와 사후 존속에 관한 믿음의 밀도는 대단히 높다. "불교는 믿음이 아니라 실천"이라는 문장은 실천자 다수의 실제 믿음 목록과 어긋난다. 그 문장이 사실에 가까워지는 인구는 서구의 개종자와 동아시아 도시 중산층에 몰려 있다.

대만의 두 숫자는 또 다른 것을 보여 준다. 종교가 중요하다고 답한 사람은 열에 하나인데 카르마를 믿는 사람은 아홉에 가깝다. 즉 '종교'라는 낱말이 응답자에게 무엇을 뜻하는지와 응답자가 실제로 무엇을 믿는지가 크게 어긋난다. 설문이 재는 '종교성'은 신앙의 내용이 아니라 낱말에 대한 태도인 경우가 많다. 한국 무종교인의 불교 호감도 20%도 이 층위에서 읽어야 한다.

06산신각은 왜 전(殿)이 아니라 각(閣)인가

한국 사찰에 들어가면 대웅전 뒤편 산기슭에 작은 건물이 하나 서 있다. 산신각이다. 산신은 불교의 신격이 아니라 한반도의 토착 신앙에서 온 존재이고, 그래서 격이 높은 전(殿)이 아니라 한 단계 낮은 각(閣)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칠성각에 모시는 칠성은 중국 도교에서 형성된 뒤 유입되어 수명을 관장하는 신으로 불교 안에 자리를 잡았다. 독성각의 나반존자, 셋을 함께 모시는 삼성각도 같은 계열이다. 칠성각은 한국 불교사의 초기와 중기 사찰에서는 보이지 않다가 조선시대에 들어와 나타나기 시작해 지금은 전국 대부분의 사찰에 들어서 있다. 산신각의 건립도 대체로 17세기 이후로 본다.

건축의 위계 자체가 습합의 기록이다. 격을 낮춰 이름을 붙이고 본당 뒤편에 물려 놓았지만 없애지는 않았다. 문화체육관광부 집계로 2020년 7월 말 기준 전국 전통사찰은 968곳이고 그중 조계종 소속이 783곳으로 81%를 차지한다. 이 사찰들 대부분에 토착 신격의 자리가 있다는 뜻이다.

수능 백일기도, 방생, 천도재를 두고 '기복불교'라 부르며 타락으로 규정하는 화법이 한국에도 흔하다. 그러나 이 화법은 앞에서 본 개신교적 전제의 한국판이다. 경전에 적힌 것이 진짜이고 사람들이 실제로 하는 것은 오염이라는 구도가 그대로 반복된다. 2,600년 동안 한 번도 다수였던 적 없는 형태를 원형으로 놓고 다수의 실천을 이탈로 부르는 것은 역사 서술이 아니라 규범 선언이다.

동시에 제도가 정지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조계종은 1962년 탁발을 공식 중단했다. 초기 불교에서 필수였고 지금도 남방 불교와 일본에서 유지되는 관행을, 승려를 사칭한 강요가 사회 문제가 되자 종단 차원에서 끊은 것이다. 순수와 타락의 이분법으로는 이런 결정을 설명할 수 없다. 종단은 교리적 순수성이 아니라 사회적 신뢰라는 기준으로 움직였다. 살아 있는 제도는 늘 그렇게 움직인다.

07논증의 밀도만 보면 철학 쪽 주장이 이긴다

지금까지의 서술이 "불교는 결국 종교일 뿐"이라는 결론으로 읽히면 곤란하다. 반대편 근거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인도 불교의 사상 전통은 논증의 밀도에서 동시대 어떤 전통에도 밀리지 않는다. 아비달마는 경험을 구성 요소로 분해하는 정교한 존재론을 세웠고, 나가르주나의 중관은 자성(自性) 개념 자체를 무너뜨리는 귀류 논증을 전개했으며, 유식은 인식 대상의 지위를 다시 물었다. 디그나가와 다르마키르티가 세운 인식론(pramāṇa) 전통은 지각과 추론의 조건, 보편의 지위, 언어와 대상의 관계를 두고 니야야·미맘사 등 비불교 학파와 수백 년에 걸쳐 정면으로 맞붙었다.

이 텍스트들은 오늘날 종교학 자료가 아니라 철학 텍스트로 다뤄진다. 마크 시더리츠, 얀 베스터호프, 제이 가필드, 톰 틸레만스 같은 연구자들이 분석철학의 도구로 이 논증들을 재구성하고 반박하고 옹호한다. 나가르주나를 양진주의(dialetheism)로 읽을 수 있는가를 두고 벌어진 논쟁은 불교학 내부의 문헌학 논쟁이 아니라 논리학 논쟁이다. 시더리츠는 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 가르치다 2012년에 퇴임했다. 불교 텍스트가 철학과 커리큘럼에 들어가는 것은 예외적 관용이 아니라 정상적 편입이다.

목적이 있으면 철학이 아닌가

불교 논증에는 해탈이라는 목표가 걸려 있다. 후기 인도 불교 인식론이 호교론적 기능을 겸했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목적에 종속된 논증이 철학이 아니라면 스토아학파도, 아퀴나스도, 마르크스도 철학이 아니게 된다.

목적성을 이유로 철학 자격을 박탈하는 논법은 대상을 가려 적용될 때만 작동한다. 서양 철학사에서 순수하게 무목적적인 탐구를 골라내면 남는 것이 얼마 되지 않는다. 반대로 목적성을 허용하면 불교는 손쉽게 들어온다. 어느 쪽이든 불교를 예외 처리할 근거는 나오지 않는다.

08칼라마경은 자유탐구의 헌장이 아니다

철학 쪽 주장을 뒷받침할 때 거의 반드시 인용되는 경전이 있다. 칼라마경이다. 전해지는 요지는 이렇다. 전통이라서, 소문이라서, 경전에 있어서, 스승이 말해서 믿지 말고 스스로 확인해 보라. 소마 테라 이래 이 경은 '붓다의 자유탐구 헌장'으로 불려 왔고, 불교가 과학적 사고와 세속적 가치에 특별히 잘 맞는다는 주장의 대표 증거로 쓰인다.

맥락을 복원하면 그림이 달라진다. 칼라마인들은 케사풋타에 살던 씨족으로 불교도가 아니었고 어떤 전통의 수행자도 아니었다. 여러 유행 교사가 차례로 마을을 지나며 각자 자기 교리를 내세우고 앞사람의 교리를 부숴 놓아 혼란에 빠진 상태였다. 경의 전개를 보면 그들을 괴롭힌 쟁점은 다름 아닌 윤회와 업보의 실재였다. 붓다는 그런 상황에서 의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승인한 뒤 대화를 이끌어 간다. 그리고 경은 삼귀의로 끝난다. 비구 보디의 정리에 따르면 이 경이 독단과 맹신에 맞서 자유로운 검토를 권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기에 부과된 모든 입장을 지탱해 주지는 못한다. 한 대목을 문맥에서 떼어 내 붓다를 모든 교리와 신앙을 배격하는 실용적 경험주의자로 만들어 놓은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 인용은 경의 방향을 뒤집어 유통된다. 텍스트는 혼란에서 확신으로 사람을 옮기는데, 유통되는 버전은 확신에서 회의로 옮기는 문서로 소개된다. 게다가 이 경은 불교 안에 있는 사람이 마음에 안 드는 교리를 골라 버릴 때 쓰라고 주어진 백지수표가 아니다. 대상은 아직 밖에 있는 사람이었다.

무기(無記)와 독화살의 비유도 비슷하게 소비된다. 붓다가 세계의 유한·무한, 여래의 사후 존속 같은 질문에 답하지 않은 것을 두고 형이상학 자체를 거부했다는 해석이 붙는다. 그러나 답하지 않은 것은 특정 질문군이었고, 그 판정 기준은 해탈에 이바지하는가였다. 윤회와 업은 그 목록에 없다. 오히려 반복해서 적극적으로 진술된다. 형이상학을 거부한 스승이 형이상학적 명제를 가르침의 토대로 삼았다고 보는 것이 정합적이지 않다는 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09분류가 예산과 교실을 가른다

이 질문이 학술적 호기심으로만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답에 따라 돈과 제도가 움직인다. 존 카밧진이 1970년대 말 매사추세츠대학 의료원에서 마음챙김 기반 스트레스 완화 프로그램을 설계할 때, 그는 이 수행이 불교와의 연결을 벗어야 병원·학교·기업·정부기관에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그렇게 했고 미국 국립보건원의 연구비도 그 조건에서 나왔다.

로널드 퍼서는 이 구조를 두고 스위치가 상황에 따라 켜졌다 꺼진다고 지적한다. 세속성을 요구하는 공적 재원 앞에서는 불교와 무관한 기법으로 제시되고, 우호적인 청중 앞에서는 다르마의 계승으로 제시된다는 것이다. 퍼서 자신이 한국 태고종에서 법사 자격을 받은 경영학 교수라는 점이 이 비판의 위치를 보여 준다. 그의 더 중요한 지적은 내용에 관한 것이다. 팔정도에서 정념(正念) 하나만 떼어 내면 나머지 일곱, 특히 윤리 훈련이 빠지고, 남는 것은 현재 순간에 머무르라는 자기감시 기법이 된다. 판단하지 말라는 지침이 윤리적 분별의 포기로 미끄러지는 지점이 있다.

"종교인가 철학인가"는 순수한 분류 질문이 아니라 자격 심사 질문이다. 답에 따라 공교육 편성 가능 여부, 연구비 수급 자격, 세제 적용, 기업 프로그램 도입 가능성, 군대와 교도소에서의 시행 여부가 갈린다. 이 질문이 백 년 넘게 살아 있는 이유는 개념적으로 특별히 어려워서가 아니라 답에 걸린 제도적 이해가 크기 때문이다. 질문의 수명은 난이도가 아니라 이해관계가 결정한다.

10정의가 대상을 담지 못하면 정의를 의심하는 것이 순서다

남은 것은 분류학 자체를 손보는 일이다. 종교는 필요충분조건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이 점은 종교학 내부에서 오래전에 정리되었다. 유신론을 정의로 삼으면 상좌부 불교가 탈락하는데, 같은 정의는 유교와 신도와 수많은 토착 전통도 함께 떨어뜨린다. 정의가 대상의 상당 부분을 밖으로 밀어낼 때 의심해야 하는 것은 대상이 아니라 정의다.

대안은 다차원적 접근이다. 교리, 신화, 윤리, 의례, 경험, 제도, 물질이라는 축들을 놓고 각 전통이 어느 축에 얼마나 채워지는지를 본다. 이 격자 위에 불교를 놓으면 어느 축도 비지 않는다. 정교한 교리 체계가 있고, 우주론적 서사가 있고, 계율이 있고, 예불과 천도재가 있고, 선정 체험이 있고, 종단과 승가가 있고, 사찰과 불상과 사리가 있다. 그러므로 "불교는 종교인가"에 대한 답은 예다. 그리고 앞 절에서 보았듯 "불교는 철학인가"에 대한 답도 예다. 두 술어는 애초에 배타적이지 않았다. 배타적으로 느껴지게 만든 것은 종교를 신에 대한 믿음으로 좁게 잡는 특정한 정의이고, 그 정의는 특정 전통의 자기 이해에서 왔다.

그러니 물음을 바꾸는 편이 낫다. 불교가 무엇인가가 아니라, 누가 어떤 불교를 어떤 목적으로 그렇게 부르는가를 물어야 한다. 콜롬보의 개혁가와 매사추세츠의 의대 교수와 서울의 무종교인 응답자는 서로 다른 것을 가리키면서 같은 낱말을 쓴다. 세 사람의 문장을 하나의 명제로 합산하려는 시도가 혼란의 원인이다.


11줄어드는 정체성, 팔리는 기법

마지막으로 최근의 숫자 하나가 이 물음의 현재 위치를 보여 준다. 퓨리서치센터가 201개국의 인구조사와 설문 2,700여 건을 분석해 2025년 6월 발표한 결과, 2010년에서 2020년 사이 세계 주요 종교 집단 가운데 신자 수가 줄어든 것은 불교뿐이었다. 3억 4,300만 명에서 3억 2,400만 명으로 약 5% 감소했고, 같은 기간 세계 인구는 12% 늘었다. 세계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9%에서 4.1%로 내려갔다. 원인으로는 동아시아의 탈종교화와 고령화, 낮은 출산율이 함께 지목된다. 한국은 불교 인구 비중이 7%포인트 떨어져 201개국 가운데 가장 큰 폭의 변화를 보인 사례 중 하나로 기록됐다.

같은 기간에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 곡선이 있다. 명상과 마음챙김은 산업이 되었다. 정체성으로서의 불교는 줄고 기법으로서의 불교는 팔린다. 두 곡선이 반대로 가는 이 상황이, 왜 "종교인가 철학인가"라는 물음이 지금 이렇게 자주 등장하는지를 가장 잘 설명한다. 종교라고 부르면 감소하는 통계에 묶이고, 철학이나 과학이라고 부르면 성장하는 시장에 접속한다. 낱말의 선택은 중립적이지 않다.

정리하면 이렇다. 불교는 종교이면서 철학이다. 이 답이 회피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두 낱말을 배타적으로 만든 19세기의 분류 습관이 아직 우리 안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 습관이 만들어진 경위를 알고 나면 배타성은 사라지고, 남는 것은 훨씬 구체적인 질문들이다. 어느 시기, 어느 지역, 어느 계층의 불교를 말하는가. 그 불교에서 논증과 의례는 어떤 비율로 배치되어 있었는가. 그리고 지금 그 낱말을 고르는 사람은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

주요 참고 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