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 독서
짧은 영상 플랫폼에서 프리드리히 니체는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흑백 초상 사진을 배경에 깔고, 느리게 늘인 음악을 얹고, 출처 없는 한 문장을 자막으로 띄우는 형식이다. 영어권에서는 "니체가 이것을 말했다"라는 문구 자체가 밈이 되어, 아무 상관 없는 영상에 붙는 상투구로 굳었다. 국내 서점에서도 같은 이름이 인문 분야 판매대의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 현상을 두고 흔히 나오는 설명은 "어려운 철학이 대중에게 다가갔다"는 것이다. 그 설명에는 조용한 전제가 하나 깔려 있다. 짧게 잘린 문장이 니체가 쓴 원래 문단의 축소판이라는 전제, 다시 말해 잘라도 방향은 남는다는 전제다. 니체의 경우 이 전제가 성립하지 않는다. 그의 핵심 문장들은 저작 안에서 읽는 사람을 겨누고 있고, 잘라내는 순간 겨냥이 사라지면서 문장이 읽는 사람 편으로 돌아선다. 사라지는 것은 배경 설명이 아니라 화살의 방향이다.
니체가 짧은 형식과 잘 맞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는 생애 대부분의 책을 아포리즘(aphorism)으로 썼다. 아포리즘은 번호가 붙은 짧은 토막글을 말한다. 한 편이 몇 줄에서 길어야 두세 쪽이고, 각 토막이 문법적으로 완결되어 그것 하나만 읽어도 말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아침놀』, 『즐거운 학문』, 『선악의 저편』이 모두 이 형식이고,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연설들도 사실상 같은 구조를 취한다.
그래서 니체의 책은 어느 쪽을 펴도 인용할 문장이 나온다. 논문처럼 앞의 스무 쪽을 읽어야 스물한 번째 쪽이 이해되는 구조가 아니다. 15초짜리 화면에 얹기에 이보다 편한 원료는 드물다. 짧은 영상의 추천 알고리즘은 앞뒤 설명 없이 즉시 감정을 일으키는 문장을 보상하는데, 아포리즘은 바로 그 성질을 이미 갖추고 있다.
문제는 이 궁합이 함정이라는 점이다. 아포리즘이 완결된 것처럼 보이는 것은 니체가 의도적으로 만든 표면이지, 실제로 완결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이 점은 니체 자신이 여러 번, 그것도 상당히 화를 내며 적어 두었다.
국내 사정을 먼저 정리해 둘 필요가 있다. 교보문고가 정리한 2026년 상반기 판매 경향에서 인문 분야의 특징으로 꼽힌 것은 철학의 실용화였다. 니체·쇼펜하우어 같은 이름이 사상가로서가 아니라 흔들리는 삶에 기준을 주는 문장의 공급원으로 읽혔고, 니체는 사실상 자기계발 시대의 고전 자리에 놓였다는 것이다.
판매대에 실제로 놓인 책을 들여다보면 한 가지 구조가 눈에 띈다. 『위버멘쉬』는 30만 부를 넘긴 뒤 2026년 5월 개정판이 나왔는데, 표지의 저자는 프리드리히 니체이고 옆에 '어나니머스'라는 옮긴이 이름이 붙는다. 니체가 『위버멘쉬』라는 제목의 책을 쓴 적은 없다. 여러 저작에 흩어진 대목을 골라 새 주제로 묶고 새 제목을 붙인 편집물이다.
더 오래된 사례가 『초역 니체의 말』이다. 시라토리 하루히코가 니체의 글에서 232편의 짧은 대목을 골라 열 개 주제로 나눠 엮은 책으로, 2010년 일본에서 나온 뒤 200만 부 이상 팔렸고 국내에서도 오래 판매되고 있다. '초역(超譯)'은 번역처럼 들리지만 번역어가 아니다. 저작의 구조를 따르지 않고 편자가 의미를 다듬어 옮기는 방식을 가리키는 출판계 용어다. 이 책의 홍보 문구는 니체의 문장이 독자에게 "온기 어린 위로"를 준다고 설명한다.
200만 부, 30만 부 같은 수치는 니체 저작의 판매량이 아니라 니체를 재료로 삼은 편집물의 판매량이다. 니체 자신이 배열한 책 — 『즐거운 학문』이나 『도덕의 계보』 — 이 그만큼 팔렸다는 뜻으로 읽으면 현상 자체를 잘못 보게 된다. 표지에 저자로 찍힌 이름과 실제로 선별·배열을 수행한 주체가 다른 것이 이 시장의 기본 형태다.
편집물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선집은 오래된 정당한 장르이고, 니체처럼 방대한 저자를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 입구가 필요하다는 것도 사실이다. 짚어야 할 것은 다른 지점이다. 선별과 배열은 그 자체가 해석 행위인데, 편집물에서는 그 해석의 주체가 표지에 드러나지 않는다. 독자는 편자의 판단을 니체의 판단으로 읽는다. 짧은 영상은 이 구조를 더 극단으로 밀어붙인 형태다. 그곳에서는 편자의 이름조차 없고, 선별을 수행하는 것은 조회수에 반응하는 추천 순위다.
니체는 철학자이기 전에 고전문헌학자였다. 문헌학(philology)은 옛 문헌의 글자와 문장을 한 단어씩 따져 원래 무슨 뜻이었는지 복원하는 학문이다. 그는 스물넷에 바젤대학 고전문헌학 교수로 임용되었고, 이 훈련은 그의 글쓰기 전체에 남았다.
『아침놀』 서문의 마지막 절에서 니체는 자신을 여전히 문헌학자, 곧 느리게 읽기를 가르치는 교사라고 부른다. 문헌학이란 옆으로 비켜서고 시간을 들이고 조용해지고 느려질 것을 요구하는 기예이며, 느리게(lento)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는 금세공의 기술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서문은 이렇게 끝난다. 나를 잘 읽는 법을 배우라.
같은 요구가 『도덕의 계보』 서문에서는 더 직설적으로 나온다.
제대로 주조된 아포리즘은 읽었다고 해서 '해독'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때부터 풀어내는 일이 시작되며, 그러려면 해석의 기예가 필요하다.
『도덕의 계보』 서문 8절
이 말은 수사가 아니다. 니체는 곧바로 실물을 제시한다. 『도덕의 계보』 제3논문은 짧은 잠언 하나를 맨 앞에 걸어 두고, 그 뒤에 이어지는 스물여덟 절 전체가 그 잠언 하나에 대한 주석이다. 한 문장을 풀어내는 데 논문 한 편이 걸린다는 것을 저자가 직접 시연해 보인 셈이다. 그리고 그는 이런 독법에 필요한 자질을 하나 덧붙인다. 되새김질이다. 그 일에는 근대인이 아니라 차라리 소가 되어야 한다고 그는 썼다.
더 앞선 책에는 나쁜 독자에 대한 규정도 남아 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제2권의 한 절에서 니체는 최악의 독자를 약탈하는 군대에 비유한다. 쓸 만한 것 몇 개를 집어 가고, 나머지는 어지럽히고 뒤섞어 놓고, 그러고는 전체를 욕한다는 것이다. 1879년에 적힌 이 문장은 오늘날 그의 문장이 유통되는 방식을 거의 그대로 서술한다.
정리하면 이렇다. 아포리즘은 압축이 아니라 미끼다. 문장이 완결되어 보이는 것은 독자를 멈춰 세우기 위한 표면이고, 그 표면 아래에서 실제 논증은 다른 절, 다른 책, 때로는 같은 절의 다음 문장에서 진행된다. 그러므로 아포리즘을 한 장면으로 잘라내는 것은 요약이 아니다. 미끼만 남기고 낚싯줄을 잘라내는 일에 가깝다.
이 손실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양인지는 실제 문장을 원래 자리로 돌려놓아 보면 드러난다. 가장 널리 유통되는 네 개를 차례로 본다.
이 문장은 1882년 『즐거운 학문』 125절에 나온다. 절의 제목은 '광인'이다. 그리고 이 사실 하나가 통상적인 인용을 무너뜨린다. 이 말을 하는 사람은 니체가 아니라 광인이다.
장면은 이렇다. 한 광인이 대낮에 등불을 켜 들고 시장으로 뛰어들어 신을 찾는다고 외친다. 그곳에 서 있던 사람들은 신을 믿지 않는 이들이었고, 그들은 웃음을 터뜨린다. 신을 잃어버렸느냐, 아이처럼 길을 잃었느냐, 숨었느냐, 이민을 갔느냐고 놀린다. 광인은 그들 가운데로 뛰어들어 시선으로 찌르며 대답한다. 우리가 그를 죽였다, 너희와 내가.
신은 죽었다. 신은 죽은 채로 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를 죽였다. 모든 살인자 중의 살인자인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를 위로할 것인가. (…) 이 행위의 크기가 우리에게 너무 큰 것은 아닌가. 그것에 값하려면 우리 자신이 신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즐거운 학문』 125절
이어지는 문장들은 위로가 아니라 청구서에 가깝다. 이 피를 누가 씻어 줄 것인가, 어떤 물로 우리를 씻을 것인가, 어떤 속죄의 축제를 새로 발명해야 하는가. 그리고 광인은 사람들이 멍하니 자기를 바라보는 것을 보고는 등불을 땅에 던져 깨뜨리며 말한다. 내가 너무 일찍 왔다.
『즐거운 학문』 안에서 이 말의 표적은 신자가 아니다. 신을 이미 버렸으면서 신에게서 나온 도덕과 목적과 의미는 그대로 쥐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웃는 이유는 자신이 무엇을 치웠는지 아직 계산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광인이 미친 사람 취급을 받는 이유는 혼자 그 계산서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장을 잘라내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분명하다. 종교를 향한 도발 문구가 되고, 그것을 인용하는 사람은 자동으로 광인 쪽에 선다고 느낀다. 125절에서 그 사람이 서 있는 자리는 시장에서 웃고 있는 쪽인데도 그렇다. 방향이 정확히 반대로 돌아선다.
위버멘쉬(Übermensch)는 흔히 '초인'으로 옮기지만, 자기 관리에 성공해 남보다 뛰어나게 된 인간을 뜻하지 않는다. 신이 사라진 자리에서 기존 가치를 물려받는 대신 스스로 가치를 세우는 존재를 가리키는 말이다. 자기계발 표어와 이 개념이 갈라지는 지점은 목표가 아니라 대립항에 있다. 위버멘쉬의 반대말은 실패한 사람이나 게으른 사람이 아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서설을 순서대로 따라가면 그 대립항이 무엇인지 나온다. 십 년의 은둔을 마치고 산에서 내려온 차라투스트라는 시장에 모인 군중에게 위버멘쉬를 가르치겠다고 말한다. 인간은 짐승과 위버멘쉬 사이에 걸린 밧줄이며, 인간에게서 사랑할 만한 것은 그가 건너감이자 몰락함이라는 대목이 여기서 나온다.
군중의 반응은 이렇다. 누군가 소리친다. 줄타기 광대 이야기는 이제 됐으니 실물을 보여 달라. 그리고 사람들이 웃는다. 시장에 모인 이유가 곡예 구경이었기 때문이다.
차라투스트라는 방향을 바꿔, 가장 경멸스러운 것에 대해 말하겠다고 한다. 마지막 인간(der letzte Mensch)이다. 위험을 피하고, 온기를 위해 이웃과 몸을 비비고, 병드는 것과 의심하는 것을 죄로 여기고, 기분 좋은 꿈을 위해 약간의 독을 쓰고 편안한 죽음을 위해 많은 독을 쓰는 인간. 그들은 눈을 깜빡이며 말한다. 우리는 행복을 발명했다.
"오 차라투스트라여, 우리에게 그 마지막 인간을 달라" 하고 그들이 외쳤다. "우리를 그 마지막 인간으로 만들어 달라. 그러면 위버멘쉬는 그대에게 선물로 주겠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환호하며 혀를 찼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서설 5절
차라투스트라는 슬퍼하며 혼잣말을 한다. 그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이 귀들을 위한 입이 아니다. 서설은 이 실패로 끝난다.
위버멘쉬는 성공한 인간의 모델로 제시된 개념이 아니라, 제시했다가 거부당한 개념으로 텍스트에 등장한다. 니체는 이 단어를 소개하는 바로 그 자리에 시장이 그것을 어떻게 소비하는지를 함께 써 넣었다. 군중은 어려운 쪽을 거절하고 편안한 쪽을 골랐으며,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위버멘쉬를 다루고 있다고 여겼다.
이 단어가 자기 관리와 성취의 표어로 유통될 때 생기는 곤란은 오해가 아니라 반복이다. 어려운 항목은 버리고 편안한 항목만 취한 뒤 그 이름을 그대로 쓰는 동작이, 서설 5절에서 군중이 한 대사와 구조가 같다. 니체가 겨눈 표적이 텍스트 바깥으로 나가 그 텍스트의 소비자가 된 것이다.
아모르 파티(amor fati)는 라틴어로 운명에 대한 사랑을 뜻한다. 『즐거운 학문』 276절에 나오는데, 이 절은 제4권의 첫 절이고 형식은 새해 결심이다. 니체는 추한 것과 싸우지 않겠다, 고발하지 않겠다, 고발하는 자들조차 고발하지 않겠다고 적고, 앞으로 이것이 자신의 사랑이 되기를 바란다고 쓴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긍정적 태도를 권하는 문장으로 보인다. 그런데 같은 제4권의 마지막 절이 341절이고, 제목이 '가장 무거운 짐'이다. 두 절은 같은 책의 같은 권을 여닫는 한 쌍이다.
341절의 내용은 사고실험이다. 어느 날 밤 악령이 가장 고독한 순간에 찾아와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네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삶을,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온 이 삶을 다시 한 번, 그리고 무수히 여러 번 되풀이해 살아야 한다.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다. 모든 고통과 모든 기쁨, 모든 생각과 한숨, 말할 수 없이 작고 큰 모든 것이 같은 순서로 되돌아온다. 이때 너는 이를 갈며 그 악령을 저주하겠는가, 아니면 그것을 신적인 말로 여기겠는가.
이것이 영원회귀(ewige Wiederkunft)다. 우주가 실제로 반복한다는 물리적 주장으로 읽을 수도 있지만, 341절에서 그것이 놓인 자리는 시험 문제다. 니체가 묻는 것은 이렇다. 지금 살고 있는 삶은 무한히 반복해도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삶인가.
이 짝을 복원하면 아모르 파티의 성격이 달라진다. 그것은 마음가짐을 바꾸라는 권유가 아니라 저 질문을 통과한 사람에게만 성립하는 결과다. 절의 제목이 '가장 무거운 짐'이라는 사실이 방향을 지시한다. 가벼워지는 문장이 아니라 무거워지는 문장이다.
이 표현이 국내에서 노랫말로 널리 알려지면서 인생을 즐기라는 뜻으로 굳은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지만, 276절과 341절 사이에서 그것은 즐기라는 말과 정반대 방향에 놓인다. 반복해도 좋을 삶을 살고 있느냐는 심문이 먼저이고, 사랑은 그 심문을 통과했을 때 나오는 답이다.
가장 널리 퍼진 문장은 아마 이것일 것이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출처는 1888년 『우상의 황혼』이고, 정확히는 1장 「잠언과 화살」의 8번이다. 이 장은 마흔네 개의 짧은 문장을 연달아 쏘는 형식이고, 8번에는 표제가 붙어 있다. 삶의 전쟁학교로부터.
연속 사격의 한 발이라는 사실 자체가 읽기를 바꾼다. 이 장의 문장들은 서로를 반박하거나 비틀면서 나아가고, 니체는 독자가 한 발에 멈춰 서기를 기대하지 않았다. 격언집의 표어가 아니라 정련 과정의 한 단계로 놓인 문장이다.
여기에 저자의 조건을 겹치면 문장의 무게가 다시 달라진다. 니체는 만성 질환자였다. 격렬한 두통과 구토, 시력 악화로 정상적인 근무가 불가능해져 1879년 서른넷에 바젤대학 교수직을 사임했고, 이후 유럽 각지의 요양지를 옮겨 다니며 살았다. 그가 아포리즘 형식을 쓴 데에는 긴 시간 책상 앞에 앉아 있기 어려웠던 신체 조건도 작용했다.
그리고 이 문장을 쓴 이듬해인 1889년 1월, 니체는 토리노에서 정신적으로 무너졌다. 이후 십 년 넘게 회복하지 못한 채 어머니와 여동생의 간병을 받다가 1900년에 죽었다.
이 사실이 문장을 반증하지는 않는다. 다만 성격을 바꾼다. 자기 격려의 구호가 아니라, 자신을 실제로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을 상대로 저자가 자기 조건을 걸고 한 내기에 가깝다. 그리고 그 내기가 어떻게 끝났는지는 연보에 남아 있다. 짧은 영상에서 이 문장이 운동이나 시험 준비를 격려하는 배경 자막으로 쓰일 때, 문장이 걸고 있던 판돈이 통째로 사라진다.
니체의 문장을 잘라 재배열하는 일은 짧은 영상이 처음 한 것이 아니다. 가장 큰 규모의 사례는 그가 쓰러진 직후에 일어났고, 결과물은 백 년 가까이 니체의 대표작으로 통했다.
1889년 붕괴 이후 유고 관리권은 여동생 엘리자베트 푀르스터니체에게 넘어갔다. 그는 니체의 비서 역할을 했던 하인리히 쾨젤리츠(필명 페터 가스트)와 함께 남은 노트의 단편들을 골라 주제별로 묶고 번호를 붙여, 니체가 완성하지 못한 필생의 대작이라며 『권력에의 의지』를 내놓는다. 초판은 1901년, 1,067개 절로 확장된 판은 1906년이다.
문헌학적으로 확인된 사실관계는 이렇다. 니체가 1885년 여름에 그 제목을 구상했던 것은 맞다. 그러나 1888년 8월에 그는 그 계획을 접고 「모든 가치의 전도 시도」라는 다른 구상으로 갈아탔으며, 그 구상은 단편들을 여동생이 택한 것과 전혀 다른 순서로 배치하고 있었다. 책으로서의 『권력에의 의지』는 저자 자신이 포기한 기획이었다.
1960년대에 이탈리아 문헌학자 조르조 콜리와 마치노 몬티나리가 바이마르에 보관된 니체의 육필 노트를 직접 조사해 연대순 비평판을 만들면서 이 사정이 드러났다. 몬티나리에 따르면 편집자들은 단편들에 자기들의 순서를 부여했을 뿐 아니라, 개별 단편을 잘라 내거나 서로 이어 붙이면서 그 사실을 독자에게 밝히지 않았다. 두 사람은 그 책을 역사적 위조라고 불렀다. 이들이 만든 비평판이 오늘날 니체 연구의 표준 판본이다.
엘리자베트가 문장을 창작해 오빠 이름으로 끼워 넣었다는 강한 주장에는 반론이 있다. 확장판이 쾨젤리츠와 공동으로 편집되었다는 점, 그가 철학 훈련을 받은 사람이 아니었다는 점이 근거로 제시된다. 논란의 여지 없이 확인되는 것은 더 좁은 사실이다. 선별과 배열과 강조가 저자의 것이 아니었고, 그 사실이 표지에 표시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결과는 충분히 달라졌다.
실제로 달라진 결과는 20세기 정치사에 남아 있다. 국가사회주의 진영이 니체를 자기편으로 끌어간 통로가 바로 이 편집물이었다. 특히 인간 개량과 육성을 다룬 것처럼 배열된 대목들에서 단편이 뽑혀 인종 이론의 근거로 쓰였다. 전후 니체 연구의 상당 부분은 이 오염을 걷어 내고 원래 노트로 돌아가는 작업이었다.
지금의 유통 방식은 이 사건과 구조가 같고 규모만 다르다. 선별과 배열을 수행하는 주체가 저자가 아니라는 점, 그런데도 저자의 이름이 결과물에 붙는다는 점이 같다. 다른 점은 책임 소재다. 『권력에의 의지』에는 이름을 특정할 수 있는 편집자가 있었고, 그래서 60년 뒤에 육필 노트와 대조해 무엇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밝혀낼 수 있었다. 짧은 영상에는 대조할 노트도, 이름을 물을 편집자도 없다. 배열을 수행하는 것은 조회수에 반응하는 추천 순위이고, 그 순위는 반전이 있는 문장보다 반전이 없는 문장을 체계적으로 선호한다. 정정 가능성이 구조적으로 낮은 형태다.
여기서 정당한 반론이 하나 나온다. 니체 자신이 고정된 의미를 부정한 사람 아닌가. 사실은 없고 해석만 있다고 쓴 사람이 니체이고, 하나의 대상을 여러 관점에서 볼수록 그 대상에 대한 앎이 온전해진다고 주장한 사람도 니체다. 그렇다면 그의 문장을 각자 편한 대로 쓰는 것이야말로 니체적인 태도가 아닌가.
이 반론은 진지하게 받을 만하지만 두 지점에서 성립하지 않는다.
첫째, 니체의 관점주의는 모든 독해가 동등하다는 주장이 아니다. 여러 관점을 통과할수록 앎이 나아진다는 주장이므로, 오히려 관점을 하나로 고정하는 독해를 비판한다. 짧은 영상에서 문장이 하나의 감정에 고정되어 반복되는 방식은 관점의 증식이 아니라 관점의 소멸에 가깝다.
둘째, 그는 좋은 독해와 나쁜 독해를 명시적으로 구분했고 그 기준까지 적어 두었다. 해석의 기예를 요구한 『도덕의 계보』 서문, 느리게 읽기를 요구한 『아침놀』 서문, 약탈하는 군대를 최악의 독자로 규정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이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텍스트에 여러 의미가 있다는 주장과, 텍스트에서 쓸 만한 것만 집어 가도 된다는 주장은 다른 주장이다. 니체는 앞의 것을 말했고 뒤의 것은 명시적으로 거부했다.
덧붙이면 니체는 자신이 오독될 것도 예상했다. 『이 사람을 보라』에서 그는 자신이 언젠가 신성한 존재로 오해받을 것을 두려워한다고 썼고, 자기 문장을 위해 아직 태어나지 않은 독자를 기다린다는 취지의 말을 여러 곳에 남겼다. 오독의 가능성 자체가 그의 계산 안에 있었다는 뜻이다. 그것이 오독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네 개의 사례를 나란히 놓으면 손실의 형태가 하나로 모인다. 잘려 나간 것은 학술적 배경 설명이 아니었다.
"신은 죽었다"에서 사라진 것은 그 말이 신을 버린 사람들에게 청구서로 제출되었다는 사실이다. 위버멘쉬에서 사라진 것은 그 개념이 시장에서 거절당했고 군중이 대신 마지막 인간을 골랐다는 장면이다. 아모르 파티에서 사라진 것은 그것이 영원회귀라는 심문을 통과한 뒤에야 성립하는 답이라는 순서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에서 사라진 것은 그 문장을 쓴 사람이 이듬해 무너졌다는 조건이다.
네 경우 모두, 니체가 배치한 자리에서 문장이 겨누는 대상은 그것을 읽는 사람이다. 잘라내면 겨냥이 제거되고 문장은 읽는 사람 편으로 돌아선다. 심문이 위로가 되고, 청구서가 슬로건이 되고, 거절당한 개념이 성취의 표어가 된다. 손실의 크기가 아니라 부호가 문제다. 얕은 인용은 정확도를 떨어뜨릴 뿐이지만, 방향이 뒤집힌 인용은 저자가 하려던 말의 반대를 말한다.
이 뒤집힘이 니체에게서 특별히 잘 일어나는 이유도 이제 설명된다. 그의 문장은 완결된 것처럼 보이도록 주조되어 있고, 그 표면은 독자를 붙잡기 위한 장치이지 결론이 아니다. 표면만 떼어 내면 남는 것은 결론처럼 생긴 미끼다. 그리고 미끼는 정의상 그것을 무는 사람의 기분에 맞춰져 있다.
마지막으로 남는 것은 니체가 이 사태를 이미 써 두었다는 사실이다. 시장에서 위버멘쉬를 설교하다 실패하는 차라투스트라, 신의 죽음을 알리다 웃음거리가 되는 광인, 쓸 만한 것만 집어 가는 약탈군 독자. 세 장면 모두 그의 책 안에 있다. 그의 문장이 오늘 잘려 유통되는 방식은 그의 사유가 예상하지 못한 사고가 아니라, 그가 그려 둔 장면이 실현된 것에 가깝다. 그 장면 안에서 인용자가 서 있는 자리는 문장을 외치는 쪽이 아니라 그것을 듣고 환호하는 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