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인공지능 에이전트를 연결해 오래 돌리는 설계가 실무 도구의 기본 기능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연결의 모양을 바꾼다고 결과를 믿을 수 있게 되지는 않는다. 무엇이 실제로 새로워졌고 무엇이 그대로인지를 가려 본다.
먼저 낱말부터 정리해 두어야 한다. 여기서 에이전트란 사람이 한 번 지시하면 스스로 도구를 골라 쓰고 결과를 보고 다음 행동을 정하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말한다. 대화창에 질문하면 답을 돌려주고 멈추는 챗봇과는 다르다. 파일을 읽고, 명령어를 실행하고, 그 출력을 보고, 코드를 고치고, 다시 실행한다. 이 과정에서 사람이 한 번 말을 걸고 에이전트가 한 차례 일하고 멈추는 단위를 턴이라고 부른다.
2025년까지만 해도 에이전트를 오래 돌리려면 사람이 턴마다 "계속해"를 입력하거나 셸 스크립트로 무한 반복문을 짜야 했다. 2026년에 그것이 도구의 기본 기능이 됐다. OpenAI의 명령줄 도구 Codex가 4월 말에 /goal이라는 명령을 넣었고, Anthropic의 Claude Code가 5월에 같은 이름의 명령을 2.1.139판에 실었다. 완료 조건을 한 줄 적어 두면 그 조건이 충족될 때까지 사람의 개입 없이 턴을 이어 간다는 기능이다.
기능이 퍼지자 그것을 부르는 말도 함께 퍼졌다. 하나의 에이전트가 목표 하나를 향해 반복하는 구성을 '루프'라 부르고, 그런 루프 여럿과 작업 단계를 이어 붙인 상위 구성을 '그래프'라 부르는 어법이 자리를 잡았다. 곧이어 둘 중 무엇이 옳은 설계인가 하는 대립 구도가 만들어졌다.
대립 구도 자체가 잘못 세워졌다. 루프는 단위이고 그래프는 그 단위들을 잇는 배치이므로 둘은 같은 층위에서 경쟁하지 않는다. 더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배치를 어떻게 바꾸든, 배치를 바꾸는 일만으로는 결과를 믿을 근거가 생기지 않는다. 아래에서 그 이유를 따라가 본다.
루프가 하는 일의 핵심은 분리다. 반복은 그 분리에서 따라 나온 결과일 뿐이다. 일을 하는 주체와 "다 됐다"고 선언하는 주체를 서로 다른 것으로 만드는 데 목적이 있다. 같은 모델이 두 역할을 겸하면 적당한 지점에서 스스로 만족하고 멈추기 때문이다.
Claude Code의 /goal이 이 분리를 어떻게 구현했는지 문서에 적힌 대로 뜯어보면 구조가 분명해진다. 사용자가 완료 조건을 적으면 그 조건이 세션에 등록된다. 에이전트가 한 턴을 마칠 때마다 조건과 대화록이 별도의 작은 모델에 넘어간다. 대화록은 그 세션에서 오간 지시·응답·명령 출력이 순서대로 쌓인 기록이다. 판정을 맡은 모델은 Claude API 기본 설정에서 Haiku 계열의 소형 모델이며, 세 가지 중 하나를 짧은 이유와 함께 돌려준다. 충족됐다, 아직 아니다, 영원히 충족될 수 없다. 두 번째면 에이전트가 그 이유를 지침 삼아 다음 턴을 시작하고, 첫 번째나 세 번째면 목표가 스스로 해제된다.
세부 규격도 이 분리를 뒷받침한다. 조건은 4,000자까지 쓸 수 있고, 한 세션에 하나만 걸 수 있다. 문서는 조건에 세 가지를 넣으라고 권한다. 측정 가능한 종료 상태 하나, 그것을 어떻게 증명할지에 관한 점검 방법, 도중에 건드리면 안 되는 제약. 도구를 승인 없이 쓰게 하려면 자동 승인 모드를 함께 켜야 한다.
시간 축으로 도는 반복은 다른 명령이 맡는다. /loop는 정해진 간격이 지날 때마다 다음 턴을 시작한다. 배포가 끝났는지 확인하거나 지속적 통합 서버가 낸 오류를 주기적으로 들여다보는 일처럼, 끝을 스스로 판정할 수 없고 바깥 상태가 바뀌기를 기다려야 하는 작업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반복은 세션에 묶여 있어 대화를 새로 시작하면 사라지고, 만들어진 지 7일이 지나면 만료된다.
두 명령의 차이는 다음 턴을 무엇이 시작시키느냐에 있다. /goal은 앞 턴이 끝나는 순간이고 /loop는 시계다. 그리고 /goal에서 무엇이 끝을 선언하느냐 하는 물음이 이 글의 나머지를 끌고 간다.
루프 하나로 감당이 안 되는 일이 생기면 사람들은 루프를 여러 개 만들어 잇는다. 코드를 고치는 에이전트가 변경 사항을 올리면, 여러 검토 에이전트가 동시에 그것을 훑고, 취합한 지적을 다시 수정 담당에게 넘기고, 테스트를 돌려 실패하면 수정 단계로 되돌린다. 이렇게 여러 작업 단위가 갈라지고 합쳐지고 되돌아가는 배치를 그림으로 그리면 점과 화살표로 이루어진 그물이 되고, 이것을 그래프라 부른다.
이 배치는 인공지능과 무관하게 오래됐다. Apache Airflow는 2014년 10월 Airbnb의 맥심 보슈맹이 사내 데이터 처리 흐름을 감당하려고 만들었고, 2015년 6월 공개됐으며, 2019년 1월 Apache 재단의 최상위 프로젝트가 됐다. Airflow가 작업 흐름을 표현하는 자료 구조가 바로 그래프다. 어떤 작업이 어떤 작업 뒤에 와야 하는지, 무엇이 병렬로 돌아도 되는지, 실패하면 몇 번 다시 시도할지를 점과 화살표로 적어 두면 스케줄러가 순서를 계산해 실행한다.
인공지능 쪽에서도 정리가 일찍 나왔다. Anthropic이 2024년 12월에 낸 「Building effective agents」는 언어 모델을 여러 개 엮는 배치를 다섯 가지로 갈라 이름을 붙였다. 앞 호출의 출력을 뒤 호출의 입력으로 넘기는 연쇄, 입력을 분류해 전담 처리기로 보내는 라우팅, 여러 호출을 동시에 돌려 나누거나 투표시키는 병렬화, 중앙의 모델이 하위 작업을 쪼개 일꾼들에게 맡기고 결과를 합치는 지휘자-일꾼 구성, 한 호출이 만들고 다른 호출이 평가해 되먹이는 평가자-최적화자 구성. 지금 그래프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배치는 이 다섯 가지를 조합한 결과에 해당한다.
여기서 용어 하나가 어긋난다. Airflow가 쓰는 자료 구조의 정식 이름은 방향 비순환 그래프다. '비순환'은 되돌아가는 화살표가 없다는 뜻이고, 그 제약이 붙은 이유는 명확하다. 순환이 있으면 흐름이 끝난다는 보장이 사라진다. 비순환이라야 위상 정렬로 실행 순서를 계산할 수 있고 유한한 시간에 끝난다는 것도 보장된다.
그런데 에이전트 그래프에는 되돌아가는 화살표가 반드시 들어간다. 실패하면 수정 단계로 돌아가야 하고,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다시 작업해야 한다. 즉 에이전트 그래프는 정의상 비순환 그래프가 아니다. 이름은 물려받았지만 그 이름에 딸려 오던 보장은 물려받지 못했다. 종료를 보장하던 구조적 성질이 사라진 자리를 무엇이 대신하는지가 설계자가 답해야 할 물음이 되고, 실제로 /goal의 반복 횟수 제한이나 /loop의 7일 만료 같은 장치가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그래프라는 배치 자체는 그러니 새로울 것이 없다. 정말로 달라진 것은 그래프의 점, 곧 노드다. Airflow에서 노드는 정해진 스크립트를 정해진 대로 실행한다. 에이전트 그래프에서 노드는 지시를 읽고 무슨 뜻인지 해석한 다음 스스로 행동을 고른다. 같은 입력을 두 번 넣어도 다른 결정을 내릴 수 있고, 지시를 잘못 이해할 수도 있으며, 설계자가 예상하지 못한 도구를 집어 들 수도 있다. 결정론적 실행자가 있던 자리에 확률적 실행자가 들어앉았다.
노드가 확률적이 되면 그래프에서 가장 중요한 노드도 함께 확률적이 된다. 끝났다고 판정하는 노드 말이다.
여기가 이 글의 중심이다. /goal의 판정 모델이 무엇을 근거로 판정하는지 문서는 숨기지 않고 적어 두었다. 판정 모델은 도구를 호출하지 않는다.
It doesn't run commands or read files independently.
판정 모델은 명령을 실행하지 않고 파일을 직접 읽지도 않는다.
Claude Code 문서, 「Keep Claude working toward a goal」
판정 모델이 보는 것은 대화록뿐이다. 대화록에는 작업 에이전트가 무엇을 했다고 말했는지, 어떤 명령을 돌려 어떤 출력을 받았는지가 적혀 있다. 그러니 판정 모델은 세계를 관찰하는 관찰자가 아니라 보고서를 읽는 독자다. 문서가 "조건을 에이전트 자신의 출력으로 증명될 수 있게 쓰라"고 못 박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구조에서 "테스트가 모두 통과할 것"을 조건으로 걸었다고 해 보자. 실제 검증은 테스트 실행기가 한다. 파일을 읽고 코드를 돌리고 통과 여부를 판정하는 결정론적 프로그램이다. 판정 모델이 하는 일은 그 실행 결과가 대화록에 실려 있는지 확인하는 독해다. 검증의 주체는 테스트 실행기이고 판정 모델은 그 결과를 옮겨 적는 서기다. 조건에 측정 가능한 종료 상태와 점검 방법을 넣으라는 권고는 이 구조에서 곧바로 따라 나온다.
조건이 그런 모양이 아닐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같은 구조에서 나온다. "사용자 화면이 보기 좋아질 때까지"를 조건으로 걸면 대화록에는 화면을 고쳤다는 에이전트의 서술과 스스로 괜찮다고 평가한 문장만 남는다. 판정 모델은 그 자기 보고를 읽고 조건 충족 여부를 매긴다. 바깥의 사실은 어디에도 개입하지 않는다. 이때 루프는 자기 보고를 자기 서술로 확인하는 닫힌 회로가 된다.
그래서 검증이라는 낱말이 이 분야에서 두 가지를 가리킨다는 점을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다. 하나는 테스트 실행기·컴파일러·형 검사기처럼 세계에 대고 참·거짓을 결정하는 프로그램이다. 다른 하나는 결과물의 품질을 언어 모델이 매기는 평가다. 앞의 것은 사실을 만들고 뒤의 것은 의견을 만든다. 같은 낱말을 쓰기 때문에 그래프에 평가자 노드를 몇 개 붙여 놓고 검증 체계를 갖췄다고 여기기 쉽다.
그렇다면 평가자 노드를 여러 개 붙이면 어떨까. 서로 다른 에이전트가 같은 결과물을 보고 모두 통과라고 하면, 그 합의는 증거가 되는가.
여럿이 검토하면 신뢰도가 올라간다는 생각은 사람들의 세계에서 가져온 직관이다. 이 직관이 성립하려면 조용히 깔려 있어야 하는 전제가 있다. 검토자들이 서로 다른 이유로 틀린다는 것, 곧 오류가 서로 독립이라는 전제다. 독립이 아니면 검토자를 늘려도 같은 곳에서 같이 놓친다.
언어 모델을 평가자로 쓸 때 이 전제가 흔들린다는 증거는 여러 갈래로 나와 있다. 아르준 파니크세리, 새뮤얼 보먼, 시 펑이 2024년 신경정보처리시스템학회에 낸 연구가 그중 하나다. 요약문끼리 견주는 과제 두 종을 놓고 GPT-4, GPT-3.5, Llama 2를 평가자로 세운 실험이며, 모델이 자기가 쓴 글을 알아보는 능력과 자기 글에 높은 점수를 주는 경향 사이에 선형 상관이 있음을 보였다. GPT-4와 Llama 2는 아무 조치 없이도 자기 출력을 남의 출력이나 사람 글과 구별하는 데 무시할 수 없는 정확도를 보였고, 미세 조정으로 자기 인식 능력을 키우면 자기 선호도 함께 커졌다. 같은 연구는 선택지의 제시 순서를 뒤집었을 때 판정이 뒤집히는 비율도 쟀는데, 과제와 자료를 평균해 GPT-4가 25%, GPT-3.5가 58%, Llama가 89%였다.
다중 에이전트 시스템 전체를 놓고 실패를 분류한 연구도 있다. 메르트 젬리를 비롯한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연구진이 2025년에 낸 작업은 널리 쓰이는 7개 프레임워크를 200개가 넘는 과제에 걸쳐 돌린 실행 기록을 6명의 전문 주석자와 함께 분석해 14가지 실패 유형을 뽑고 세 범주로 묶었다. 주석자 사이의 판정 일치도는 코헨 카파 0.88이었다. 명세 문제, 에이전트 사이의 어긋남, 그리고 과제 검증이다. 검증이 세 범주 중 하나를 통째로 차지한다. 이 연구가 출발점으로 삼은 관찰도 새겨 둘 만하다. 다중 에이전트 구성이 벤치마크에서 단일 에이전트보다 나은 정도가 미미한 경우가 잦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반대쪽 증거를 함께 놓아야 한다. Devin을 만드는 Cognition의 월든 얀이 2026년 4월 22일에 공개한 기록에 따르면, Devin이 작성한 변경 사항을 Devin Review가 검토했을 때 변경 건당 평균 2건의 결함이 나왔고 그중 약 58%가 논리 오류·누락된 경계 조건·보안 취약점 같은 심각한 부류였다. 같은 회사의 같은 모델이 만들고 검토했는데도 성과가 있었다는 뜻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조건이다. 두 에이전트가 사전에 컨텍스트를 전혀 공유하지 않을 때 가장 잘 작동했다. 얀이 든 이유는 두 갈래다. 하나는 검토자가 명세 없이 구현만 보고 거꾸로 추론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면 원래 지시 자체가 잘못됐을 가능성까지 열어 놓고 따지게 된다. 다른 하나는 컨텍스트 길이 문제다. 몇 시간 동안 저장소를 뒤지고 명령을 돌리며 일한 에이전트는 컨텍스트가 잔뜩 불어나 있고, 컨텍스트가 길어질수록 모델의 판단이 무뎌진다는 현상이 관측돼 있다. 변경 내역만 들고 짧은 컨텍스트에서 출발한 검토자가 더 예리하다.
두 갈래 증거는 충돌하지 않는다. 자기 선호는 "누구 글이 더 나은가"를 매기는 비교 과제에서 측정된 것이고, 변경 내역에서 결함을 찾는 것은 다른 종류의 일이다. 정확히 남는 명제는 이렇다. 검토자들이 통과시켰다는 사실은 증거로 계산되지 않는다. 같은 모델로 만든 검토자가 쓸모없다는 말과는 다르다. 비대칭이 여기에 있다. 검토자가 결함을 찾아내면 그 결함은 실재하고 사람이 확인할 수 있다. 검토자가 아무것도 못 찾으면 그것은 결함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이 검토자가 못 찾았다는 뜻뿐이다. 발견은 정보이고 무발견은 정보가 아니다.
얀 자신도 다중 에이전트에 관해 좁은 결론을 내놓는다.
writes stay single-threaded and the additional agents contribute intelligence rather than actions
쓰기는 한 줄기로 유지하고, 덧붙인 에이전트는 행동이 아니라 판단력을 보탠다.
월든 얀, 「Multi-Agents: What's Actually Working」, Cognition, 2026년 4월 22일
여러 에이전트가 동시에 코드를 고치는 구성은 여전히 권하지 않는다는 것이 10개월 전 그가 다중 에이전트 반대론을 폈을 때와 달라지지 않은 부분이다. 달라진 부분은 읽기만 하는 보조 에이전트, 검토 전담 에이전트처럼 쓰기 권한을 갖지 않는 배치가 실제로 작동한다는 확인이다. 그래프가 늘려 준 것은 시야의 넓이다. 판단의 독립성은 그 자리에 그대로 남는다.
2026년 2월 5일 Anthropic 엔지니어링 기록에 실린 실험이 이 논점을 잘 보여 준다. 안전장치 연구를 맡고 있는 니컬러스 칼리니는 16개의 에이전트를 하나의 저장소에 붙여 놓고 사람의 개입 없이 돌렸다. 과제는 Rust로 C 컴파일러를 처음부터 만드는 것이었다. 약 2,000회의 세션과 2만 달러의 사용료를 쓴 끝에 10만 줄짜리 컴파일러가 나왔고, 그것으로 리눅스 커널 6.9를 x86·ARM·RISC-V 세 아키텍처에서 빌드했다.
16개 에이전트가 어떻게 충돌하지 않고 일했는지에 관심이 쏠리지만, 이 실험을 성립시킨 축은 조율 방식이 아니었다. 축은 정답을 알려 주는 바깥의 프로그램, 곧 오라클이었다. 컴파일러가 커널을 잘못 번역해 실행이 깨졌을 때, 10만 줄 중 어디가 잘못인지를 에이전트가 스스로 알아낼 방법은 없다. 칼리니는 GCC를 정답 컴파일러로 세웠다. 커널 파일 대부분을 GCC로 컴파일하고 나머지 일부만 만들고 있는 컴파일러로 컴파일해 커널이 도는지 본다. 무작위로 그 비율과 조합을 바꿔 가며 반복하면 결함이 어느 파일에 있는지가 좁혀진다.
the task verifier is nearly perfect, otherwise Claude will solve the wrong problem
과제 검증기가 거의 완벽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Claude는 엉뚱한 문제를 풀게 된다.
니컬러스 칼리니, 「Building a C compiler with a team of parallel Claudes」, Anthropic, 2026년 2월 5일
기록에 적힌 노력의 배분도 같은 곳을 가리킨다. 대부분의 품은 에이전트 주변 환경을 설계하는 데 들어갔다. 시험 자료를 구하고, 검증 스크립트를 쓰고, 에이전트가 새 기능을 넣을 때마다 기존 기능을 깨뜨리는 것을 막을 지속적 통합 체계를 세우는 일이었다. 그래프를 정교하게 그려서 컴파일러가 나온 것이 아니라, 37년 묵은 GCC가 존재했기 때문에 나왔다.
얀도 화제가 된 대형 자동화 사례들의 공통점을 같은 각도에서 짚는다. 20만 줄짜리 웹 브라우저, 10만 줄짜리 C 컴파일러, 학습 스크립트 최적화. 모두 성공 기준이 단순하고 기계로 확인 가능하다는 성질을 공유한다. 그리고 실제 업무에서 다루는 소프트웨어 대부분은 그 성질을 갖지 않는다.
병렬 배치가 크게 이긴 사례에서도 이긴 이유는 상호 검증이 아니었다. Anthropic이 2025년 6월에 공개한 조사 기능 설계 기록을 보면, Opus 4를 지휘자로 두고 Sonnet 4 하위 에이전트들을 병렬로 돌린 구성이 단일 Opus 4보다 내부 조사 평가에서 90.2% 나은 점수를 냈다. 다만 같은 기록은 성능 분산의 80%를 토큰 사용량이 설명한다고 적었고, 이 구성이 일반 대화 대비 약 15배의 토큰을 쓴다고 밝혔다. 하위 에이전트마다 자기 컨텍스트 창을 하나씩 갖는다는 것이 요점이다. 병렬화가 늘린 것은 한 번에 밀어 넣을 수 있는 정보의 총량이지 판단의 신뢰도가 아니었다. 실제로 이 방식이 잘 듣는 과제도 여러 갈래를 동시에 훑어야 하는 조사, 곧 읽기 위주의 일이었다.
두 회사가 서로 다른 결론에 이른 것처럼 보이는 대목도 이렇게 보면 정리된다. Anthropic은 자사 조사 기능을, Cognition은 자사 코딩 제품을 설명하고 있다. 한쪽은 읽기만 하는 병렬 탐색을 다루고 다른 쪽은 코드를 쓰는 작업을 다룬다. 다루는 일의 모양이 다르므로 답이 달라진다. 정작 두 기록이 같은 말을 하는 지점은 따로 있다. 다중 에이전트가 가장 먼저 통하는 자리는 쓰기 권한이 없는 읽기 전용 보조다.
이 구도가 앞으로 어디서 갈릴지도 지금 상태에서 끌어낼 수 있다. 오라클이 이미 있는 영역, 이를테면 컴파일러·정적 분석기·형 검사기·성능 측정 도구가 갖춰진 영역에서는 자동화가 계속 밀고 들어간다. 반대로 오라클을 새로 만들어야 하는 영역에서는 그 제작 비용이 병목으로 남는다. 이 예측이 틀렸다고 판정할 조건은 분명하다. 기계로 확인할 기준이 없는 과제, 예컨대 제품 방향이나 사용자 경험의 적절성을 판정하는 과제에서 사람의 개입 없이 돌린 다중 에이전트 구성이 사람이 검토한 구성과 동등한 품질을 재현 가능하게 낸다는 결과가 독립된 평가로 나오면, 위 구분은 무너진다.
정리하면 이렇다. 여러 작업 단계를 갈라 붙이고 되돌리는 배치는 2014년부터 데이터 처리 현장에서 돌아가고 있었고, 언어 모델용 배치 유형도 2024년 말에 이미 목록으로 정리됐다. 새로워진 것은 배치가 아니라 배치를 채우는 점이다. 정해진 규칙을 실행하던 자리에 지시를 해석하고 스스로 행동을 고르는 확률적 실행자가 들어왔다.
이 교체가 가장 아프게 드러나는 곳이 끝을 선언하는 자리다. 완료를 판정하는 모델은 도구를 쓰지 않고 대화록만 읽으므로, 판정의 재료는 작업 에이전트가 남긴 보고다. 조건이 테스트 결과나 종료 코드처럼 바깥 프로그램이 만든 사실을 가리킬 때 그 보고에는 사실이 실린다. 조건이 품질이나 완성도처럼 모호할 때 그 보고에는 자기 평가만 실린다. 앞의 경우 루프는 사실을 되먹이는 장치이고, 뒤의 경우 자기 서술을 자기 서술로 확인하는 회로다. 같은 낱말로 불리지만 같은 것이 아니다.
검토자를 늘려 이 문제를 푸는 길은 막혀 있다. 검토자를 더한다고 오류가 서로 독립이 되지는 않으며, 모델이 자기 출력을 알아보고 선호한다는 것과 선택지 순서만 뒤집어도 판정이 뒤집힌다는 것은 측정된 사실이다. 그래도 검토자가 무용하지는 않다. 다만 쓸모의 방향이 한쪽뿐이다. 검토자가 찾아낸 결함은 정보이고, 검토자가 아무것도 못 찾았다는 사실은 정보가 아니다. 다중 에이전트 배치가 벤치마크에서 기대만큼 이기지 못하는 사례가 잦다는 관찰, 실패 유형의 세 범주 중 하나가 통째로 검증이라는 분류 결과도 이 방향을 가리킨다.
그래서 성공한 사례들을 갈라 보면 갈림선은 오라클의 유무를 따라 그어진다. 커널을 빌드하는 컴파일러가 나온 자리에는 GCC가 있었다. 조사 과제에서 병렬 배치가 크게 이긴 자리에는 컨텍스트 창의 총량 확대가 있었고 상호 검증은 없었다. 코드를 쓰는 작업에서 병렬 쓰기가 계속 물러난 자리에는 결정을 통합할 방법이 없었다. 설계자가 답해야 할 물음은 어떤 그래프를 그릴 것인가가 아니라, 이 일에 사실을 만들어 줄 바깥의 프로그램이 있는가, 없다면 그것을 만들 것인가, 만들지 않는다면 어디까지 자동으로 돌리고 어디서부터 사람이 볼 것인가다.
남는 문제는 오라클을 만드는 값이다. 테스트를 쓰고 측정 지표를 정하고 정답 참조를 마련하는 일은 그 자체로 품이 많이 드는 설계 작업이고, 그 품을 대신 치러 줄 자동화는 아직 같은 자리에서 순환한다. 오라클을 만드는 일까지 에이전트에게 맡기면 검증의 기준을 검증 대상이 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취향·제품 방향·이해관계 조정처럼 애초에 참·거짓으로 판정할 수 없는 판단은 오라클이라는 개념 자체가 걸리지 않는 영역으로 남는다. 반복 실행을 얼마나 길게 늘이든, 이 두 영역의 경계는 배치를 바꾸는 것으로 옮겨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