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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를 피할 수 없는 시대의 글쓰기 — 출처 검사에서 서명 검사로 옮겨 가는 신뢰의 근거

기계가 문장에 손을 댔는지 가려내는 일은 이미 집행이 불가능해졌고, 그 검사를 고집하는 규범은 정직하게 밝힌 사람만 골라 벌한다. 학술지와 교실, 오픈소스 저장소와 유럽연합 입법부가 서로를 참조하지 않은 채 같은 자리에 도착했다. 물어야 할 것은 누가 타이핑했느냐가 아니라 누가 검토하고 누가 책임에 서명했느냐다.

01이미 대부분의 논문이 기계의 손을 거쳤다

독일 튀빙겐 대학의 레나 홀츠바르트, 리타 곤살레스마르케스, 드미트리 코박이 2026년 8월 11일 사전 공개 논문으로 내놓은 분석은 퍼브메드 센트럴에 실린 2017년부터 2025년까지의 영어 논문 119만 4,287편을 대상으로 삼았다. 퍼브메드 센트럴은 미국 국립보건원이 운영하는 생명과학 분야 공개 논문 저장소이며, 초록에 그치지 않고 본문 전문을 공개한다.

방법은 뜻밖에 단순하다. 챗지피티 공개 이후 사용 빈도가 유독 뛴 낱말 379개를 표지로 삼아, 그 낱말들이 통계적으로 예상되는 것보다 얼마나 더 자주 나타나는지를 센다. 감염병 유행기에 사망자가 평년 추세를 얼마나 넘어섰는지 재는 초과사망 계산과 같은 발상이다. 2025년 말 시점에 89%의 논문에서 그 초과분이 검출됐다.

수치가 정확히 무엇을 재는지는 짚어 두어야 한다. 89%는 대규모 언어모델이 통계적 흔적을 남긴 논문의 비율이지 인공지능이 써 준 논문의 비율이 아니다. 대규모 언어모델은 사람이 쓴 방대한 분량의 글로 학습해 다음에 올 낱말을 확률로 골라내는 방식의 인공지능을 말하는데, 문장 하나를 다듬는 데 썼든 한 절을 통째로 생성했든 이 방법으로는 구분되지 않는다. 흔적은 위치에 따라 크게 갈렸다. 무작위로 고른 한 문단이 논의 절에 속하면 68%, 방법 절에 속하면 32%로 두 배 넘게 차이가 났다.

같은 연구진이 2025년 7월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실은 앞선 연구는 2010년부터 2024년까지 퍼브메드에 색인된 초록 1,500만여 편을 분석해, 2024년 초록의 최소 13.5%가 언어모델을 거쳤다고 보고했다. 그때도 '최소'라는 단서가 붙어 있었다. 표지 낱말을 하나도 쓰지 않은 채 인공지능을 사용한 글은 애초에 세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두 수치는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 하나는 초록만 본 하한이고, 다른 하나는 본문 전체를 본 값이다.

교육 현장의 숫자도 방향이 같다. 표절 검사 서비스 턴잇인은 2026년 2월 24일 발표에서, 2025년 10월부터 2026년 2월 사이 제출된 영어 과제물의 14.8%가 80% 이상 인공지능 작성으로 판정됐다고 밝혔다. 2023년 4월 탐지 기능을 처음 내놓은 뒤 그해 8월까지의 평균은 3.3%였다. 다만 이 값은 탐지기를 파는 회사가 자사 탐지기로 잰 것이고, 80%라는 문턱을 넘은 글만 세므로 인공지능에 손을 댄 글 전체를 뜻하지 않는다.

세 수치는 공통된 성질을 갖는다. 모두 하한이거나 문턱을 넘은 것만 센 값이다. 인공지능을 피해 간 글이 예외가 되었다는 진술은 서로 다른 방법으로 반복 측정된 상태를 가리킨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이 상태를 관리하겠다고 만들어진 장치들이 실제로 무엇을 재고 있는가.

02탐지기가 재는 것은 출처가 아니라 문장의 예측 가능성이다

가장 먼저 세워진 창구는 탐지기다. 문장을 넣으면 기계가 썼을 확률을 돌려주는 도구이며, 원리는 하나로 모인다. 언어모델이 다음 낱말을 얼마나 쉽게 맞히는지를 잰다. 이 값을 난해도라고 부른다. 다음에 올 낱말이 뻔할수록 난해도가 낮고, 낮을수록 기계가 쓴 문장으로 분류된다.

이 설계가 무엇을 잡아내는지는 2023년 7월 《패턴스》에 실린 스탠퍼드 대학 웨이신 량 연구팀의 실험이 드러냈다. 연구팀은 사람이 쓴 것이 확실한 두 묶음의 글을 상용 탐지기 일곱 개에 넣었다. 한쪽은 미국 8학년 학생의 에세이 88편, 다른 쪽은 영어가 모어가 아닌 응시자들이 쓴 토플 에세이 91편이었다. 미국 학생 에세이는 거의 정확하게 사람 글로 분류됐다. 토플 에세이는 평균 61.2%가 인공지능 작성으로 잘못 분류됐다. 일곱 개 탐지기가 모두 인공지능으로 지목한 글이 18편, 적어도 하나가 지목한 글이 89편으로 전체의 97.8%였다.

연구팀은 원인도 짚었다. 모두가 지목한 글들은 난해도가 유의하게 낮았다. 외국어로 글을 쓰는 사람은 어휘 선택의 폭이 좁고 문장 구조가 단순해지기 쉬운데, 그 단순함이 기계의 지문과 같은 신호로 읽혔다. 탐지기가 재는 값은 문장의 예측 가능성이다. 그 값이 기계 작성 여부와 상관관계를 갖는 것과, 그 값이 기계 작성 여부를 뜻하는 것은 별개다.

전제가 무너지는 자리

탐지기 점수가 높으니 인공지능을 썼다는 판단이 성립하려면, 기계 문장과 사람 문장이 통계적으로 갈린다는 전제가 서 있어야 한다. 그 전제는 양쪽에서 동시에 흔들린다. 외국어로 쓰는 사람의 문장은 원래부터 예측 가능하고, 세탁 도구는 기계 문장의 예측 가능성을 일부러 낮춰 준다. 잡히는 쪽과 빠져나가는 쪽이 정확히 뒤바뀐다.

탐지기를 만드는 쪽도 이 한계를 알고 있다. 턴잇인은 1%에서 19% 사이의 점수를 숫자 대신 별표로 가려 표시한다. 그 구간의 오탐률이 높아 정확한 수치를 보여 주면 과잉 해석을 부른다는 이유다. 회사가 내세우는 98% 정확도와 1% 미만 오탐률도 20%를 넘게 표시된 문서에만 적용되는 값이다. 탐지기 회사 스스로 자기 도구의 판정을 대화의 출발점으로 쓰라고 안내하는 셈이다.

그런데도 심사대에서 그 점수는 자주 증거처럼 취급된다. 여기에 구조적인 편향이 붙는다. 영어가 모어가 아닌 사람, 정형화된 학술 문체로 훈련된 사람, 문장 변주의 폭이 좁은 사람이 먼저 걸린다. 한국의 연구자와 학생 다수가 정확히 그 집단에 속한다. 탐지기 창구가 잡아내는 것은 문체의 단조로움이고, 그 부담은 균등하게 분배되지 않는다.

03실제로 쓴 사람 가운데 밝히는 사람은 열에 하나가 안 된다

탐지기가 부실하다면 남는 창구는 자기 고지다. 규정을 만들어 저자에게 직접 밝히게 하는 방식이다. 이 창구가 실제로 얼마나 채워지는지를 대규모로 확인한 자료가 있다.

이사메 알파야드를 비롯한 마스트리흐트 대학과 영국의학저널 그룹 공동 연구진은 이 출판사가 내는 생명의학 학술지 49종에 2024년 4월 8일부터 11월 6일 사이 처음 투고된 논문 2만 5,114편을 분석해 2025년 10월 사전 공개 논문으로 발표했다. 이 학술지들은 투고 시스템에 인공지능 사용 여부를 묻는 필수 질문을 넣어 두었다. 답을 하지 않으면 투고가 진행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사용을 밝힌 논문은 1,431편, 5.7%에 그쳤다.

비교 대상이 되는 설문 수치는 훨씬 높다. 옥스퍼드대 출판부 조사에서는 응답자 2,345명 가운데 76%가, 엘스비어 조사에서는 3,000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네이처》 조사에서는 5,000명 가운데 28%가 연구에 인공지능을 쓴다고 답했다. 같은 연구진이 인용한 자마 네트워크 학술지 분석에서는 투고 8만 2,829편 가운데 2.7%만 사용을 밝혔다. 암 연구 분야에서 자동 탐지 도구를 돌린 별도 분석은 2024년 초록의 최대 23%에서 인공지능 문장을 검출했는데, 뒤의 두 자료는 모두 2025년 9월 학술출판 심사 학회에서 발표된 초록이므로 확정된 수치로 읽지 않는 편이 안전하다.

쓴다고 답한 비율과 실제로 밝힌 비율

위 두 줄은 연구자 대상 설문의 자기 보고, 아래 두 줄은 투고 시스템에 실제로 기재된 고지 비율이다.

옥스퍼드대 출판부 설문 · 응답 2,345명76%
《네이처》 설문 · 응답 5,000명28%
영국의학저널 그룹 49종 투고 25,114편의 고지율5.7%
자마 네트워크 투고 82,829편의 고지율2.7%

설문은 연구자 한 사람의 전반적 사용 여부를 묻고 고지율은 논문 한 편 단위를 세므로 두 값이 같아질 이유는 없다. 그래도 열 배 이상의 간극은 측정 단위 차이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고지된 사용의 내용도 눈여겨볼 만하다. 밝힌 1,431편 가운데 87%가 문장의 질을 높이는 데 썼다고 답했다. 번역이 7.5%, 데이터와 출력물 생성이 6.1%, 문헌 검색이 3.4%였다. 밝히기가 수월한 쪽은 문장 다듬기이고, 판단에 개입하는 용도일수록 기재가 드물다. 지역별로도 갈렸다. 남미와 유럽 소속 저자는 아시아 소속 저자보다 고지 확률이 유의하게 높았고, 저자 수가 늘수록 고지 확률은 조금씩 낮아졌다.

규범이 없어서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한국연구재단은 2024년 3월 「생성형 AI 도구의 책임 있는 사용을 위한 권고사항」을 내어 과제 평가자에게는 평가 자료를 생성형 인공지능에 올리지 말 것을, 과제 신청자와 수행자에게는 제안서와 보고서에 사용 내역을 밝힐 것을 권고했다. 2026년 7월에는 「대학 연구자를 위한 생성형 AI 연구윤리 가이드」를 발간해 연구 설계와 수행, 보고 각 단계의 활용과 인용 방법, 점검 목록을 정리했다.

연구자들의 인식도 규범과 어긋나지 않는다. 한국연구재단 연구윤리지원센터가 2023년 12월 발표한 조사에서 대학에서 연구하는 2,822명 가운데 62%가 논문 작성에 생성형 인공지능을 쓰고 그 사실을 적지 않는 것을 연구부정행위로 보았다. 미고지를 부정행위로 규정하는 사람이 열에 여섯인데 실제 고지율은 한 자릿수다. 이 간극은 무지로 설명되지 않는다. 밝히는 쪽이 손해라는 계산으로 설명된다.

04같은 글에 라벨만 붙여도 점수가 깎인다

그 계산이 착각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는 실험이 여럿 나와 있다. 가장 규모가 큰 것은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의 마나브 라지, 미시간대 로스스쿨의 저스틴 버그, 뉴욕대 스턴스쿨의 롭 시먼스가 《저널 오브 익스페리멘털 사이콜로지: 제너럴》 155권 4호에 발표한 연구다. 2023년 3월부터 2024년 6월까지 사전등록 실험 16건, 참가자 2만 7,491명을 동원했다.

설계는 잔인할 만큼 간명하다. 참가자에게 같은 글을 읽히고, 저자 표시만 사람으로 하거나 인공지능으로 하거나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았다고 바꿔 단다. 글은 한 글자도 다르지 않다. 그 결과 인공지능이 관여했다고 표시된 조건에서 평가가 평균 6.2% 낮아졌다. 감점을 매개한 변수는 품질이나 명료성이 아니라 '진정성'이었다. 연구진은 이야기의 서술 시점을 바꾸고, 인공지능을 사람처럼 묘사하고, 협업으로 틀을 짜는 등 앞선 연구가 제안한 완화 장치를 차례로 시도했지만 어느 것도 감점을 안정적으로 줄이지 못했다.

맥쿼리대의 시아보시 사헤비, 폴 포모사, 세라 뱅킨스가 2026년 발표한 연구는 여기에 이름을 붙였다. 사전등록 실험에 547명을 참가시켜 저자 유형 세 가지와 매체 맥락 두 가지를 교차한 결과, 인공지능이 개입한 글은 신뢰성과 진정성, 지식으로서의 쓸모 모두에서 낮게 평가됐다. 연구진은 이를 '인공지능 페널티'라고 불렀다. 그리고 같은 참가자들이 인공지능 사용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답하면서 밝힌 글을 감점했다는 사실을 따로 떼어 '고지의 역설'이라고 명명했다. 투명성을 요구하면서 투명성을 처벌하는 구조라는 뜻이다.

두 연구 모두 한계가 있다. 라지와 동료들의 자료는 2023년에서 2024년 사이에 모였고, 저자들 스스로 인공지능 인식이 빠르게 변하는 시기의 태도를 담았으며 이 감점이 유지될지 줄어들지 뒤집힐지는 열린 물음이라고 적었다. 6.2%라는 평균은 실험실 척도의 평균이지 투고 심사의 당락과 곧바로 같은 값이 아니다. 사헤비 연구의 표본 547명은 대규모라 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남는 결론은 흔들리지 않는다. 글이 동일한데 라벨만으로 평가가 달라진다면, 그 채점은 글의 품질을 재고 있는 것이 아니다. 도구의 출처를 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검사는 출처를 밝힌 사람에게만 집행된다는 성질을 갖는다. 감춘 사람은 애초에 검사 대상이 되지 않는다.

채점표가 가르치는 것

정직에 벌금을 매기고 은폐를 무죄로 처리하는 채점표 아래에서 시장이 배우는 것은 정직이 아니라 세탁 기술이다. 문장의 통계적 지문을 지워 탐지기를 통과시켜 주는 도구들이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 잡았고, 턴잇인은 2026년 들어 그 도구들이 남긴 재작성 흔적을 별도로 탐지하는 기능을 추가했다. 적발과 세탁이 서로의 수요를 만들어 내는 구조다.

이 군비 경쟁에서 양쪽이 내놓는 숫자는 모두 이해관계를 안고 있다. 세탁 도구 업체가 발표하는 사용자 수는 자체 집계이고, 탐지 업체가 발표하는 적발률은 제품 성능 주장이다. 어느 쪽 수치를 믿든 두 산업이 동시에 커지는 동안 심사대에 도착하는 글에서 라벨은 계속 사라진다. 독자가 손에 쥐는 것은 라벨이 지워진 세탁물이다.

05워터마크는 지우려는 사람 앞에서 가장 약해진다

그래서 나오는 대안이 워터마크다. 인공지능이 글을 생성할 때 기계만 읽을 수 있는 서명을 문장 안에 심어 두면, 사람이 밝히든 말든 출처가 드러난다는 발상이다. 이 기술은 구상 단계에 머물러 있지 않다. 구글 딥마인드의 수만트 다타트리 연구팀은 2024년 10월 《네이처》에 신스아이디 텍스트를 발표했다. 모델 학습은 건드리지 않고 낱말을 고르는 표집 절차만 바꾸는 방식이라 탐지할 때 원래 모델이 필요 없고 지연도 거의 없다.

중요한 것은 실제 배포 결과가 함께 실렸다는 점이다. 연구팀은 제미나이 응답 약 2,000만 건을 대상으로 생중계 실험을 했다. 사용자가 응답에 매기는 좋아요와 싫어요 반응에서, 워터마크가 심긴 응답과 심기지 않은 응답 사이에 유의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품질을 해치지 않고도 대규모로 서명을 심을 수 있다는 뜻이다. 구글은 이 기법을 오픈소스로 공개했다.

한계도 논문과 후속 연구가 함께 말한다. 이 서명은 문장을 다시 쓰거나 다른 언어로 번역하거나 크게 손보면 흐려진다. 애초에 서명을 심지 않는 모델의 글에는 처음부터 없다. 취리히 연방공대 연구진은 모델 내부를 보지 않고 질의만 던지는 방식으로 워터마크가 걸려 있는지 자체를 알아낼 수 있음을 보였는데,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회피 전략을 세울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기서 역설이 하나 생긴다. 서명은 손대지 않은 글에 가장 선명하게 남고, 지우려고 작정한 사람의 글에서 가장 약해진다. 적발 장치의 성능이 적발 대상 앞에서 최저가 되는 구조다. 정직하게 쓴 사람이 가장 뚜렷하게 표시되고, 세탁을 거친 글은 깨끗해 보인다는 점에서 이것은 앞 절의 채점표와 정확히 같은 방향으로 작동한다.

더 근본적인 차이는 기술이 아니라 문법에 있다. 워터마크는 숨기려는 사람을 전제하고 그를 잡아내기 위해 설계된 적발 장치다. 자기 고지는 밝히려는 사람이 스스로 붙이는 서명이다. 두 장치가 실어 나르는 정보는 같다. 이 글에 인공지능이 관여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행위의 성격은 정반대다. 하나는 적발이고 하나는 고백이다. 적발의 문법만 남은 곳에서 자발적 고지는 설 자리를 잃는다. 어차피 찍힐 도장이라면 먼저 밝힐 이유가 없다.

워터마크가 놓치는 것이 하나 더 있다. 같은 도구를 아첨 수집기로 쓴 글과 반론 상대로 쓴 글에 똑같은 도장이 찍힌다는 점이다. 언어모델이 사용자의 가설에 동조하는 쪽으로 기우는 성향은 잘 알려진 결함인데, 오픈에이아이는 2025년 4월 25일 배포한 지피티포오 업데이트를 나흘 만에 철회하면서 그 원인을 공개했다. 좋아요와 싫어요라는 단기 피드백에 지나치게 무게를 실은 결과, 아첨을 억제하던 다른 보상 신호가 약해졌다는 설명이었다. 승인을 최적화하는 채점표가 아첨을 길러 낸 것이다. 잘못된 채점표가 세탁을 가르치는 구조와 정확히 같다. 그렇게 모은 동조를 재료로 쓴 글과, 반론을 받아 내고 기각당하며 쓴 글의 값이 같을 수 없다. 워터마크는 그 차이를 구별하지 못한다.

06비용이 먼저 보이는 곳에서는 이미 서명을 요구한다

같은 문제를 산문보다 이 년쯤 먼저 겪은 곳이 있다.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개발 공동체다. 그쪽에서 비용이 먼저 드러난 이유는 단순하다. 산문에서 저품질 결과물의 비용은 독자들에게 넓고 얕게 흩어져 청구되지만, 코드에서는 관리자의 검토 시간으로 즉시, 숫자로 청구된다.

자동차와 텔레비전, 휴대전화, 서버에 두루 들어가는 데이터 전송 도구 컬이 그 청구서를 공개했다. 이 프로젝트는 2019년 4월부터 보안 취약점을 찾아 신고하면 상금을 주는 제도를 운영했는데, 신고서를 제대로 쓰려면 코드를 알아야 하고 시간이 들기 때문에 그 비용 자체가 품질 여과 장치로 작동했다. 인공지능은 신고 쪽 비용만 없애고 검토 쪽 비용은 그대로 남겼다. 관리자 다니엘 스텐베리가 공개한 수치를 보면 확인된 취약점 비율은 예전 15% 위에서 2025년 5% 아래로 떨어졌고, 2026년 1월에는 21일 동안 들어온 20건 가운데 확인된 취약점이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프로젝트는 2026년 1월 31일 이 제도를 종료했다. 운영 기간 동안 확인된 취약점 87건에 10만 달러가 넘는 상금이 나갔던 제도였다.

스텐베리가 세운 선은 도구 금지가 아니었다. 그는 인공지능의 도움으로 발견한 수준 높은 신고서를 받고서 인공지능이 훌륭한 버그 사냥 보조가 될 수 있다고 인정했다. 그가 그은 선은 이해하지 못했고 재현할 수 없는 것은 보고하지 말라는 요구였다. 리눅스 커널도 2026년 4월 배포한 리눅스 7.0에 예순 줄이 안 되는 문서 하나를 넣어 같은 방향을 문서로 굳혔다. 인공지능 에이전트는 코드의 출처와 배포 권한을 법적으로 증명하는 서명을 붙일 수 없고, 대신 사용한 도구와 모델 버전을 별도 태그로 밝히며, 재현하거나 시험하지 못한 부분은 못 했다고 적어야 한다는 것이다.

두 사례에서 규칙이 겨누는 대상은 같다. 어떤 도구를 썼는지가 아니라 결과물이 검증된 공정을 거쳤는지, 그리고 누가 책임에 서명했는지다. 도구를 단속하려던 초기의 금지령들은 그 사이 힘을 잃었다. 유능한 기여자가 밝히지 않기로 마음먹으면 그것을 잡아낼 스캐너가 없기 때문이다.

07유럽연합 법은 타이핑한 사람이 아니라 책임진 사람을 묻는다

산문 쪽에서 같은 자리에 도착한 관할이 있다. 뜻밖에도 법이다. 유럽연합 인공지능법 제50조는 인공지능 시스템의 제공자와 배포자에게 투명성 의무를 지우는 조항으로, 2026년 8월 2일부터 적용됐다. 이 가운데 4항이 공익 사안을 알릴 목적으로 공표되는 인공지능 생성 텍스트에 표시 의무를 부과한다. 위반하면 최대 1,500만 유로 또는 전 세계 연매출의 3% 가운데 큰 금액이 과징금으로 매겨진다.

주목할 대목은 의무가 아니라 예외다.

This obligation shall not apply where the use is authorised by law to detect, prevent, investigate or prosecute criminal offences or where the AI-generated content has undergone a process of human review or editorial control and where a natural or legal person holds editorial responsibility for the publication of the content.

이 의무는 범죄를 탐지·예방·수사·소추하기 위해 법률로 허용된 사용에는 적용되지 않으며, 인공지능이 생성한 콘텐츠가 사람의 검토 또는 편집 관리 절차를 거쳤고 자연인 또는 법인이 그 콘텐츠 공표에 대한 편집 책임을 지는 경우에도 적용되지 않는다.

유럽연합 인공지능법(규정 (EU) 2024/1689) 제50조 4항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2026년 7월 20일 채택한 51쪽 분량의 최종 가이드라인은 이 예외의 두 낱말을 좁게 정의했다. '사람의 검토'는 해당 주제에 관한 지식과 전문적 판단을 갖춘 자연인이 내용의 실질을 의도적으로 살피는 것을 말한다. 학술지의 동료 심사나 전문가 검증 절차가 예시로 들어갔다. '편집 관리'는 실질적 근거에 따라 텍스트를 승인하거나 고치거나 물릴 권한을 가진 편집 주체가 실제로 행사하는 통제를 말한다. 사실 확인과 출처 신뢰성 점검이 여기 포함된다. 그리고 표면적이거나 형식에 그치거나 절차만 밟는 확인은 인정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조문을 그대로 읽으면 법이 묻지 않는 것이 보인다. 누가 타이핑했는지는 묻지 않는다. 누가 검토했고 누가 책임에 서명했는지를 묻는다.

이것을 입법자의 통찰로 읽을 필요는 없다. 후퇴로 읽는 편이 사실에 가깝다. 손끝의 원산지를 대규모로 검사하는 일이 집행 불가능하다는 것을, 탐지기의 오탐률과 세탁 도구의 물량 앞에서 규제 당국이 인정한 것이다. 잴 수 없는 것을 재겠다고 버티다가 잴 수 있는 것으로 물러섰다. 다만 물러선 자리가 공교롭게도 맞는 자리다. 서명은 위조할 수는 있어도 부인할 수는 없고, 책임진 사람이 있느냐는 물음에는 탐지기가 필요 없다.

이 예외가 새로운 우회로가 되리라는 것도 예상 가능하다. 형식적인 훑어보기를 실질 검토라고 주장하는 서류가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그 거짓말은 종류가 다르다. 문체를 속이는 거짓말이 아니라 책임 소재를 속이는 거짓말이고, 후자는 글이 사고를 치는 순간 소급해서 주인을 찾아간다. 편집 책임을 서면으로 주장해 둔 사람은 그 주장으로 묶인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수렴이다. 커널 메일링 리스트의 관리자들과 브뤼셀의 입법자들은 서로를 참조한 적이 없다. 한쪽은 검토 인력을 갉아먹는 저품질 제출물에 떠밀려서, 다른 쪽은 집행 불가능성에 밀려서 각자의 경로로 같은 결론에 닿았다. 출처 검사를 놓고 고지와 사람의 책임을 세우라는 것이다. 독립된 두 관할이 같은 답을 내놓았다면 그것은 취향이 아니라 구조에서 나온 답일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 갈릴 지점은 좁혀 볼 수 있다. 인공지능법 50조 2항의 기계 판독 표시 의무는 2026년 8월 2일 이전에 시장에 나온 시스템에 한해 2026년 12월 2일까지 유예됐다. 그날 이후 주요 상용 모델의 출력에는 기계가 읽을 수 있는 표시가 붙을 것이다. 그러나 표시율이 올라도 심사대의 자발적 고지율이 함께 오르지 않는다면 출처 검사와 자기 고지가 별개의 문제라는 이 글의 진단은 유지된다. 반대로 학술지 투고에서 인공지능 사용 고지율이 2027년 안에 두 자릿수로 올라선다면, 고지를 억누르는 힘이 채점표가 아니라 도구의 미비였다는 뜻이 되므로 진단을 고쳐야 한다.


08결론 — 검사의 대상이 손끝에서 서명으로 옮겨 가고 있다

정리하면 이렇다. 인공지능을 거치지 않은 글은 이제 예외에 가깝고, 이 상태는 여러 방식으로 반복 측정됐다. 그 상태를 관리하려고 세운 두 창구는 각각 다른 이유로 비어 있다. 탐지기는 출처가 아니라 문장의 예측 가능성을 재기 때문에 외국어로 쓰는 사람을 먼저 잡고 세탁을 거친 글은 놓친다. 자기 고지는 밝힌 사람만 감점당하는 채점표 아래에서 열에 하나도 채워지지 않는다. 워터마크는 두 창구의 기술적 보완책이지만, 지우려는 사람 앞에서 가장 약해지고 아첨을 모은 글과 반론을 견딘 글에 같은 도장을 찍는다는 점에서 문제의 좌표를 바꾸지 못한다.

좌표를 옮긴 쪽은 비용이 먼저 눈에 보인 곳들이었다. 컬은 도구를 금지하는 대신 이해하지 못했고 재현할 수 없는 것은 보고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리눅스 커널은 인공지능에 고지 태그를 붙이게 하고 법적 서명은 사람만 하게 했다. 유럽연합 인공지능법은 사람의 실질적 검토와 편집 책임이 있는 텍스트를 표시 의무에서 빼면서, 형식적 확인은 검토로 쳐 주지 않겠다고 밝혔다. 세 사례가 겨누는 물음은 하나로 모인다. 이 결과물이 검증된 공정을 거쳤는가, 그리고 누가 책임에 서명했는가.

어느 쪽을 본체로 보느냐에 따라 규범 설계가 갈린다. 출처를 본체로 보면 탐지기의 정확도를 올리고 워터마크의 강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간다. 공정과 책임을 본체로 보면 고지를 값싸고 처벌 없는 절차로 만들고, 제재는 도구 사용이 아니라 결과물의 오류에 붙이는 방향으로 간다. 지금까지 확인된 사실은 앞쪽 경로가 집행 가능성에서 이미 한계를 드러냈다는 것이고, 그 경로를 고집할수록 정직한 고지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라벨을 요구하려면 라벨을 달고 온 글을 라벨 때문에 기각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이 여기서 나온다.

남는 물음도 분명하다. 실질 검토와 형식 검토를 실제로 어떻게 가려낼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유럽연합 가이드라인은 표면적 확인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적었지만, 그 판정을 누가 어떤 절차로 내릴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인공지능 페널티가 시간이 지나면 옅어질지, 아니면 심사대에 고착해 고지를 계속 억누를지도 관측이 더 필요하다. 다만 검사의 대상이 손끝에서 서명으로 옮겨 가는 중이라면, 그 이동이 완료되는 시점에 유리해지는 쪽은 서명할 것이 있는 사람이다. 라벨이 물어야 할 물음은 누가 타이핑했느냐가 아니라 누가 판단했느냐이며, 지금 갈리고 있는 것은 그 물음이 도착하기 전에 무엇을 축적해 두었느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