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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종교

동서양 각 종교의 귀신 — 정의가 갈리는 자리는 죽음관이 아니라 인간관이다

어느 문화에나 귀신 이야기가 있다는 말은 흔하다. 그런데 각 전통이 귀신이라 부른 것을 원전으로 따라가 보면 서로 다른 물건이 나온다. 어떤 곳에서 그것은 날씨와 같은 자연의 작용이고, 어떤 곳에서는 사람의 그림자이며, 어떤 곳에서는 사람과 아예 다른 종족이고, 어떤 곳에서는 존재가 아니라 처지다. 그 갈림을 만든 것은 죽은 뒤에 무엇이 남느냐에 대한 견해가 아니라, 애초에 사람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았느냐다.

한 낱말이 서로 다른 넷을 덮고 있다

한국어에서 귀신은 대개 죽은 사람의 넋이 이승을 떠나지 못한 상태를 뜻한다. 밤에 나타나고, 원한이 있고, 산 사람을 해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낱말을 만들어 낸 한문 전통에서 귀신(鬼神)은 그런 뜻이 아니었다. 그것은 제사의 대상이었고, 나라의 예법을 떠받치는 근거였으며, 두려움보다 공경이 어울리는 말이었다.

영어를 거쳐 들어온 낱말들도 이 혼란에 가담한다. 유령을 뜻하는 고스트(ghost), 넋이나 영을 뜻하는 스피릿(spirit), 악령을 뜻하는 데몬(demon), 저승의 그림자를 뜻하는 셰이드(shade)가 한국어로 옮겨질 때 셋 중 둘은 그냥 귀신이 된다. 반대 방향으로 옮기면 문제가 더 분명해진다. 조상에게 지내는 제사의 대상을 영어로 고스트라고 하면 뜻이 어긋나고, 데몬이라고 하면 아예 반대가 된다.

그래서 어느 문화에나 귀신이 있다는 관찰은 관찰이 아닐 수 있다. 그 말이 성립하려면 귀신이 문화를 건너 옮길 수 있는 하나의 범주여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한데, 정작 그 전제는 검사된 적이 드물다. 이 글은 유교와 도교가 자리 잡은 동아시아, 고대 그리스와 로마, 히브리 성경, 이슬람, 기독교, 불교와 힌두교가 각각 귀신이라 번역되는 자리에 무엇을 놓았는지 원전에서 확인하고, 그 답이 갈리는 기준을 찾는다. 미리 말해 두면 기준은 사후 세계의 지도가 아니다. 사람을 몇 조각으로 보느냐다.

동아시아 — 사람이 둘로 나뉘기 때문에 한 조각이 남는다

『예기(禮記)』 「제의(祭義)」편에 공자와 제자 재아(宰我)의 문답이 실려 있다. 재아가 귀신이라는 이름은 들었으나 무엇을 가리키는지 모르겠다고 하자 공자가 답한다.

氣也者,神之盛也;魄也者,鬼之盛也。合鬼與神,教之至也。眾生必死,死必歸土,此之謂鬼。

기(氣)란 신(神)이 왕성한 것이고, 백(魄)이란 귀(鬼)가 왕성한 것이다. 귀와 신을 합하는 것이 가르침의 지극함이다. 뭇 생명은 반드시 죽고 죽으면 반드시 흙으로 돌아가니, 이것을 일러 귀라 한다.

『예기』 「제의」(통행본)

여기서 사람은 두 조각으로 서술된다. 숨과 기운에 해당하는 혼(魂), 그리고 몸과 감각에 해당하는 백(魄)이다. 죽으면 혼은 기운이 되어 위로 흩어지고 백은 형체와 함께 아래로 내려가 흙이 된다. 귀(鬼)라는 글자를 돌아갈 귀(歸)로 풀이하는 오랜 관행이 여기서 나온다. 귀신은 사람이 남긴 인격이 아니라, 사람을 이루던 두 성분이 각각 제 갈 곳으로 가는 운동의 이름이다.

북송의 장재(張載, 1020~1077)는 이 발상을 자연철학으로 밀고 나간다. 『정몽(正蒙)』 「태화(太和)」편의 한 줄이 그 요약이다.

鬼神者,二氣之良能也。

귀신이란 두 기운이 지닌 본래의 능력이다.

장재, 『정몽』 「태화」(통행본)

두 기운은 음과 양이다. 양능(良能)은 본래 그러한 작용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이 문장에서 귀신은 존재자가 아니라 작용이다. 펴지는 쪽이 신이고 오므라드는 쪽이 귀다. 주희(朱熹, 1130~1200)는 장재의 이 정의를 정이(程頤)의 정의보다 낫다고 평가하면서 더 노골적으로 못 박는다.

鬼神只是氣。屈伸往來者,氣也。天地間無非氣。

귀신은 기(氣)일 뿐이다. 오므라들고 펴지며 오고 가는 것이 기다. 하늘과 땅 사이에 기 아닌 것이 없다.

『주자어류』 권3 「귀신」(통행본)

같은 권의 편집자는 귀신을 셋으로 갈라 놓았다. 하늘의 귀신은 음양의 조화이고, 사람의 귀신은 죽어서 된 귀이며, 제사의 귀신은 조상과 지신이다. 하나의 낱말 안에 날씨와 조상과 유령이 함께 들어 있는 셈이다. 주희 자신은 밤에 들리는 소리나 도깨비불도 조화의 자취이되 바른 이치가 아닌 쪽에 속한다고 정리했다. 괴이한 것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자연의 등급 안에 집어넣었다.

조선에서도 같은 노선이 이어진다.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의 문집 『매월당집』에는 「신귀설(神鬼說)」과 「귀신」이 실려 있는데, 여기서 그는 귀신을 기가 모이고 흩어지면서 생기는 변화로 설명하며, 불교와 도교의 신비한 풀이를 물리치려는 의도를 뚜렷이 드러낸다.

이 이론에는 실용적 부담이 하나 걸려 있었다. 귀신이 흩어지는 기운일 뿐이라면 제사는 누구에게 지내는가. 성리학자는 제사를 부정할 수 없는 자리에 서 있었고, 그래서 주희는 흩어진 것이 다시 모이지는 않는다고 못 박으면서도 자손과 조상이 같은 하나의 기운이므로 감응이 통한다는 논리를 남겨 둔다. 자연철학으로 귀신을 해체하되 의례가 설 자리는 남겨 두는 절충인데, 이 절충의 흔적이 뒤의 논쟁을 오래 끌었다.

같은 동아시아에서 원한으로 죽은 자는 예외가 되고 끝내 신이 된다

기(氣)의 자연철학만으로는 설명이 끝나지 않았다. 성리학자들이 반드시 다루어야 했던 사례가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춘추좌씨전』 소공(昭公) 7년 기사에 정(鄭)나라 대부 백유(伯有)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정변 끝에 죽임을 당한 그가 여러 해 뒤 나타나 사람들을 놀라게 하자, 조경자가 정나라 재상 자산(子産)에게 백유가 여귀가 될 수 있느냐고 묻는다. 자산은 될 수 있다고 답하면서 이유를 댄다.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 쓰는 물자가 많고 정기를 많이 받으면 혼백이 강해지는데, 평범한 남녀라도 제 명대로 살지 못하고 강제로 죽으면(강사, 强死) 그 혼백이 남에게 붙어 사나운 기운이 될 수 있다. 하물며 삼대에 걸쳐 정권을 쥐었던 사람이 강제로 죽었으니 귀가 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결론이 뒤따른다. 자산은 백유의 후사를 세워 제사가 이어지게 했고 소동은 그쳤다.

주희도 이 사례를 지우지 않았다. 사람이 죽으면 결국 흩어지지만 아직 다 흩어지지 않은 상태가 있고, 기운이 다하지 않았는데 강제로 죽으면 사나운 기운이 될 수 있다고 인정한다. 정리하자면 동아시아의 이론 안에서 귀신은 죽음의 결과가 아니다. 죽음이 제대로 완결되지 못한 상태, 곧 죽음의 실패다. 제때 제 명대로 죽고 후손의 제사를 받는 사람은 유령이 되지 않는다. 되는 쪽은 억울하게 죽었거나 제사가 끊긴 쪽이다.

이 예외는 민간에서 훨씬 큰 자리를 차지했고, 일본에서는 제도가 되었다. 헤이안 시대의 고료 신앙(御霊信仰)은 억울하게 죽은 사람의 원령이 역병과 재해를 일으킨다고 보고, 그 원령을 신으로 모셔 달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대표 사례가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다. 정쟁에 밀려 좌천지에서 죽은 그는 사후에 재앙의 원인으로 지목되었고, 930년 궁궐 세이료덴에 벼락이 떨어져 여러 명이 죽자 그 지목은 굳어졌다. 조정은 947년 교토 기타노에 그를 모시는 사당을 세웠고, 987년에는 천신(天神)이라는 신호가 내려졌다. 뒷날 그는 학문의 신이 된다. 원령을 억누르는 방법이 그를 신의 자리에 올려놓는 것이었던 셈이다.

낱말이 갈라지는 자리

동아시아에서 귀신이라는 한 낱말은 최소한 세 가지를 함께 가리켰다. 음양의 자연 작용, 제사를 받는 조상, 그리고 억울하게 죽어 떠도는 원혼이다. 앞의 둘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고 마지막 하나만 두렵다. 오늘날 한국어의 귀신이 셋 중 마지막 하나로 좁아진 것은 개념이 바뀌어서가 아니라, 앞의 둘이 일상에서 화제가 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스와 로마 — 몸이 곧 사람이므로 남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그림자다

호메로스의 세계에서 죽은 자는 확실히 존재한다. 다만 그것이 사람인지가 문제다. 『일리아스』 23권에서 아킬레우스는 죽은 친구 파트로클로스의 혼이 꿈에 나타나 장례를 청하자 껴안으려 하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때 그가 내뱉는 탄식이 그리스인의 사후관을 압축한다.

ὢ πόποι, ἦ ῥά τίς ἐστι καὶ εἰν Ἀΐδαο δόμοισι
ψυχὴ καὶ εἴδωλον, ἀτὰρ φρένες οὐκ ἔνι πάμπαν·

오 포포이, 에 라 티스 에스티 카이 에인 아이다오 도모이시 / 프쉬케 카이 에이돌론, 아타르 프레네스 우크 에니 팜판

아아, 하데스의 집에도 무언가가 있기는 있구나. 혼과 형상은 있으되 그 안에 마음은 전혀 없다.

호메로스, 『일리아스』 23권 103~104행(먼로·앨런 교정본)

프쉬케(ψυχή)는 숨에서 온 말로, 살아 있게 하는 것이다. 에이돌론(εἴδωλον)은 생김새를 그대로 본뜬 형상을 뜻한다. 프레네스(φρένες)는 생각하고 느끼는 자리다. 세 낱말을 겹쳐 놓으면 결론이 나온다. 죽은 뒤에 남는 것은 겉모습과 숨결일 뿐, 그 사람을 그 사람이게 하던 부분은 남지 않는다.

『오뒷세이아』 11권은 같은 이야기를 더 아프게 되풀이한다. 저승 어귀에서 어머니 안티클레이아를 만난 오뒷세우스는 세 번 껴안으려 하지만 세 번 다 그림자나 꿈처럼 손에서 빠져나간다. 어머니가 대는 이유는 생리학에 가깝다. 힘줄이 살과 뼈를 더는 붙들지 못하고 불이 그것들을 태워 버렸으며, 남은 것은 이것뿐이라는 것이다.

ψυχὴ δ᾽ ἠΰτ᾽ ὄνειρος ἀποπταμένη πεπότηται.

프쉬케 드 에위트 오네이로스 아폽타메네 페포테타이

혼은 꿈처럼 날아올라 훨훨 떠다닌다.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11권 222행

그리스적 인간론에서 사람은 몸이다. 몸이 무너지면 사람도 없어지고 잔상만 남는다. 저승에서 혼들이 오뒷세우스와 말을 나누려면 그가 구덩이에 부은 짐승의 피를 마셔야 한다는 설정도 여기서 나온다. 기억과 말은 저절로 남지 않고 산 자의 피를 빌려야 잠깐 돌아온다.

주의할 점은 이 그림자들이 악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악한 유령이라는 관념은 그리스 초기 문헌의 중심에 없다. 오히려 헤시오도스는 죽은 자가 인간의 수호자가 되는 경로를 적어 놓았다. 『일과 날』에서 황금 종족이 땅에 덮인 뒤 무엇이 되었는지 보자.

τοὶ μὲν δαίμονες ἁγνοὶ ἐπιχθόνιοι καλέονται
ἐσθλοί, ἀλεξίκακοι, φύλακες θνητῶν ἀνθρώπων

토이 멘 다이모네스 하그노이 에피크토니오이 칼레온타이 / 에스틀로이, 알렉시카코이, 퓔라케스 트네톤 안트로폰

그들은 땅 위의 정결한 다이몬이라 불리니, 선하고 재앙을 막아 주며 죽을 운명의 인간들을 지키는 자들이다.

헤시오도스, 『일과 날』 121~123행

다이몬(δαίμων)은 여기서 수호자다. 이 낱말이 뒷날 악마를 뜻하는 데몬으로 굳는 과정은 그리스 종교의 내적 변화가 아니라 기독교 문헌이 이교의 신령을 통째로 한 범주에 몰아넣으면서 일어난 이동이다. 낱말은 그대로인데 값이 뒤집힌 사례이며, 오늘날 데몬을 귀신으로 옮길 때마다 그 뒤집힘이 함께 딸려 온다.

로마 쪽 어휘는 더 어지럽다. 죽은 자를 가리키는 말로 마네스(manes), 레무레스(lemures), 라르바이(larvae)가 함께 쓰였다. 마네스는 온순한 조상 쪽에, 레무레스와 라르바이는 사나운 쪽에 기울어 쓰였다. 그런데 오비디우스는 『파스티』 5권에서 5월의 레무리아 축제를 서술하며 두 낱말을 한 의례 안에서 뒤섞어 쓴다. 집안의 가장이 한밤에 맨발로 일어나 검은 콩을 어깨 너머로 던지고, 청동을 두드리며 아홉 번 외치는 말이 이렇다.

manes exite paterni

조상의 혼들이여, 나가라.

오비디우스, 『파스티』 5권 443행

쫓아내는 대상을 레무레스라 불렀다가 조상의 마네스라 부르는 이 흔들림은, 로마인 자신도 죽은 자를 하나의 범주로 정리하지 못했음을 보여 준다. 조상은 모셔야 하고 떠도는 것은 내쫓아야 하는데, 그 둘이 같은 사람의 다른 상태일 수 있다는 사정이 어휘의 겹침으로 드러난다.

히브리 성경 — 나뉘지 않는 사람에게는 남을 조각이 없다

여기서 그림이 크게 달라진다. 히브리 성경의 인간론은 조각 나누기가 아니다. 창세기 2장 7절에서 사람은 흙으로 빚어지고 코에 생명의 숨이 불어넣어져 네페쉬 하야(살아 있는 존재)가 된다. 네페쉬는 사람이 지닌 부품이 아니라 사람 자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흙과 숨은 재료이고 사람은 그 결합의 결과다. 결합이 풀리면 결과도 없어진다. 남아서 떠돌 조각이 애초에 설정되어 있지 않다.

죽은 자가 가는 곳인 스올(שְׁאוֹל)의 묘사도 이에 맞는다. 그곳은 활동이 멎은 자리이고, 산 자와 오가는 통로가 열려 있지 않다. 히브리 성경에 유령 이야기가 드문 것은 이야기가 유실되어서가 아니라 인간론이 그 자리를 만들지 않아서다.

예외가 한 장면 있다. 사무엘상 28장에서 사울 왕이 블레셋과의 결전을 앞두고 어떤 방법으로도 신탁을 얻지 못하자, 변장하고 엔도르의 접신하는 여인을 찾아가 죽은 예언자 사무엘을 불러 달라고 한다. 여인이 무언가를 보고 비명을 지르자 사울이 무엇을 보았느냐고 묻는데, 답이 이상하다.

אֱלֹהִים רָאִיתִי עֹלִים מִן־הָאָרֶץ

엘로힘 라이티 올림 민-하아레츠

신들이 땅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무엘상 28장 13절(비블리아 헤브라이카 슈투트가르텐시아 본문)

여인이 쓴 낱말은 보통 하나님 또는 신들을 뜻하는 엘로힘(אֱלֹהִים)이고, 함께 붙은 분사 올림은 복수형이다. 죽은 사람을 가리키는 자리에 신을 뜻하는 낱말이 놓였다. 번역자들은 오래 곤란해했고, 오늘날 한국어 성경들이 이 자리를 신, 영, 신령한 존재 등으로 서로 다르게 옮기는 이유도 여기 있다. 그리고 이 장면 자체가 율법이 금하는 행위의 결과로 배치되어 있다. 유령이 등장하는 유일한 대목이 유령을 부르지 말라는 규정 위에서 벌어지는 셈이다.

이슬람 — 죽은 자가 돌아올 수 없으므로 유령은 죽은 자가 아니다

이슬람은 히브리 전통의 인간론을 이어받으면서 사후의 통로를 아예 봉쇄한다. 꾸란 23장 100절은 죽은 자가 이승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청하는 장면 끝에 이렇게 잘라 말한다.

وَمِن وَرَائِهِم بَرْزَخٌ إِلَىٰ يَوْمِ يُبْعَثُونَ

와민 와라이힘 바르자훈 일라 야우미 유브아순

그들 앞에는 그들이 다시 일으켜지는 날까지 바르자흐가 있다.

꾸란 23장 100절

바르자흐(برزخ)는 두 사물 사이를 막는 칸막이를 뜻한다. 초기 주석가 무자히드는 이 구절의 바르자흐를 죽음과 이승 복귀 사이를 가로막는 장벽으로 풀었고, 이 해석이 후대 주석 전통에 자리 잡았다. 사람은 죽으면 부활의 날까지 이 중간 상태에 머무르며, 산 자의 세계로 되돌아오는 경로는 닫혀 있다.

그렇다면 밤중에 나타나 사람을 놀라게 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이슬람의 답은 죽은 자가 아니라 별개의 종족이다. 꾸란은 인간과 나란한 지성적 피조물로 진(جن)을 설정한다.

وَخَلَقَ ٱلْجَآنَّ مِن مَّارِجٍ مِّن نَّارٍ

와칼라칼 잔나 민 마리진 민 나르

그리고 그분은 진을 불의 순수한 불꽃에서 지으셨다.

꾸란 55장 15절

사람은 흙에서, 진은 불에서 지어졌다. 진에게도 자유의지가 있고 신앙이 있으며, 꾸란 72장은 진 일부가 꾸란을 듣고 믿게 된 이야기를 싣는다. 이들은 인간과 다른 종이지 죽은 인간의 잔여가 아니다. 아미라 엘자인은 아랍 무슬림 전통을 다룬 연구서 『이슬람, 아랍인, 그리고 진의 지성적 세계』(시러큐스대학출판부, 2009)에서 이 점을 못 박는다. 진은 땅을 떠도는 죽은 자의 영혼이 아니라는 것이다.

등식이 끊어지는 자리

이슬람의 사례에서 비교의 틀이 흔들린다. 이 전통에는 유령을 목격했다는 보고도 있고 그것을 다루는 종교적 처방도 있지만, 그 목격의 대상이 죽은 사람이라는 설명만은 봉쇄되어 있다. 귀신 현상은 있는데 귀신이라는 범주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어느 문화에나 귀신이 있다는 말은 현상을 세는 방식으로는 참일 수 있어도, 그 현상에 붙는 이름과 설명까지 같다는 뜻으로는 거짓이 된다.

기독교 — 같은 성경에서 정반대의 답이 나왔고, 갈림목은 연옥이었다

신약성경에는 유령 관념이 분명하게 등장한다. 부활한 예수가 제자들 가운데 섰을 때 그들의 첫 반응은 공포였다.

πτοηθέντες δὲ καὶ ἔμφοβοι γενόμενοι ἐδόκουν πνεῦμα θεωρεῖν. […] ψηλαφήσατέ με καὶ ἴδετε, ὅτι πνεῦμα σάρκα καὶ ὀστέα οὐκ ἔχει καθὼς ἐμὲ θεωρεῖτε ἔχοντα.

프토에텐테스 데 카이 엠포보이 게노메노이 에도쿤 프뉴마 테오레인 […] 프셀라페사테 메 카이 이데테, 호티 프뉴마 사르카 카이 오스테아 우크 에케이 카토스 에메 테오레이테 에콘타

그들은 놀라고 두려워하며 영을 보는 줄로 여겼다. […] 나를 만져 보고 보아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나 너희가 보다시피 나는 있다.

루카복음 24장 37절, 39절(네스틀레·알란트 제28판)

여기서 프뉴마(πνεῦμα)는 형체는 보이되 만져지지 않는 무엇을 가리킨다. 물 위를 걷는 예수를 본 제자들이 지른 비명을 적은 마태오복음 14장 26절과 마르코복음 6장 49절에서는 같은 자리에 판타스마(φάντασμα)가 쓰인다. 1세기 유대인들도 그런 것을 상상했다는 증거다. 다만 예수의 반박 방식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영이라는 것이 없다고 말하지 않고, 자기가 그것이 아님을 살과 뼈로 증명한다.

한편 신약에서 사람을 사로잡는 존재로 등장하는 다이모니온(δαιμόνιον)은 죽은 자의 혼이 아니다. 그것은 별개의 영적 존재이고, 앞서 본 헤시오도스의 수호자 다이몬과 같은 낱말을 쓰면서 값이 반대로 뒤집혀 있다. 기독교 저술가들은 이 뒤집힘을 유령 문제에도 그대로 적용했다. 3세기 초 카르타고의 테르툴리아누스는 『영혼론』 57장에서 죽은 자를 불러낸다는 주술을 사기로 규정하고, 나타나는 것은 죽은 자가 아니라 악령이 죽은 자의 모습을 흉내 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특히 요절한 자와 횡사한 자의 혼을 불러낸다는 관념을 겨냥했는데, 이 두 부류는 앞서 본 자산의 강사(强死) 논리와 정확히 겹치는 대상이다. 서로 만난 적 없는 두 전통이 같은 부류를 문제로 지목한 셈이다.

그런데 중세에 상황이 바뀐다. 연옥이 신학적으로 정착하면서 죽은 자에게 갈 곳이 하나 더 생겼기 때문이다. 천국에 간 자는 도움이 필요 없고 지옥에 간 자는 도움이 소용없지만, 연옥에 있는 자는 산 자의 기도와 미사로 형벌이 줄어든다. 그러므로 그가 산 자를 찾아와 기도를 청하는 일은 교리적으로 설명 가능한 사건이 된다. 유령이 신학의 시민권을 얻었다.

종교개혁이 연옥을 부정하자 그 시민권도 사라졌다. 취리히의 개혁파 목사 루트비히 라바터(1527~1586)가 1569년 독일어로, 이듬해 라틴어로 펴낸 『유령과 망령, 그리고 크고 이상한 굉음에 대하여』는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책이다. 그는 유령이 죽은 사람의 영혼이 아니라 선한 천사이거나 악한 천사, 또는 하나님의 감추어진 작용이라고 주장했다. 이 책은 16~17세기 유럽에서 가장 널리 읽힌 유령 논고가 되어 여러 언어로 스무 판 가까이 나왔다. 가톨릭 쪽 반박도 곧 나왔다. 앙주의 법률가 피에르 르 루아예는 1586년에 낸 『망령에 관한 네 권의 책』에서 천사와 악령의 망령만이 아니라 영혼의 망령도 실제로 있다고 맞섰다.

같은 성경을 읽고 같은 인간론을 공유한 두 진영이 정반대 결론에 이르렀다. 여기서 이 글의 기준을 손질할 필요가 생긴다. 인간론은 가능한 답의 범위를 정하지만 최종 답까지 정하지는 않는다. 영혼과 몸으로 사람을 보는 구도에서는 영혼이 남을 수 있으므로 유령이 원리상 가능한데, 그 영혼이 실제로 이승에 나타날 수 있느냐는 사후 세계의 구조에 달려 있다. 중간 지대가 있으면 나타날 수 있고, 없으면 나타날 수 없다. 라바터가 유령을 악마로 돌린 것은 그가 유령 목격담을 덜 믿어서가 아니라 연옥을 부정해야 하는 자리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인도 — 귀신은 존재의 종류가 아니라 처지다

불교는 겉보기에 곤란한 자리에 있다. 무아(無我)를 가르치면서 아귀를 말하기 때문이다. 변하지 않는 자아가 없다면 죽은 뒤에 떠도는 그 주체는 대체 무엇인가.

실마리는 낱말에 있다. 한자어 아귀(餓鬼)가 옮긴 산스크리트 원어는 preta인데, 이는 앞을 뜻하는 pra와 간다는 뜻의 동사가 결합한 과거분사로 먼저 간 자를 뜻한다. 굶주림은 원어에 없다. 한역이 그 존재의 대표적 고통을 낱말 안에 박아 넣었고, 한국어 아귀가 그것을 물려받았다. 원어가 가리키는 것은 굶주린 괴물이 아니라 이미 떠난 자의 자리다.

팔리 경전 『쿳다카파타』의 「담 밖의 경」이 그 자리를 묘사한다.

Tirokuḍḍesu tiṭṭhanti, sandhisiṅghāṭakesu ca,
dvārabāhāsu tiṭṭhanti, āgantvāna sakaṁ gharaṁ.

그들은 담 밖에 서고, 골목과 네거리에 선다. 제 집으로 돌아와 문설주 곁에 선다.

『쿳다카파타』 7 「티로쿳다 숫타」 1게(팔리성전협회 본문)

이어지는 대목이 더 중요하다. 풍성한 음식이 차려져도 그들을 기억하는 이가 없으니, 그것이 그들 자신의 업(業) 때문이라고 경은 말한다. 그리고 그들이 사는 방식을 이렇게 규정한다.

Na hi tattha kasi atthi, gorakkhettha na vijjati,
vaṇijjā tādisī natthi, hiraññena kayākkayaṁ.

그곳에는 농사가 없고 목축도 없으며, 그런 장사도 없고 돈으로 사고파는 일도 없다.

『쿳다카파타』 7 「티로쿳다 숫타」 6게

아귀의 세계는 생산이 없는 세계다. 그들은 오직 이승에서 보낸 것으로 연명한다. 그래서 경은 우는 것과 슬퍼하는 것은 죽은 자에게 아무 소용이 없고, 승가에 바친 보시가 공덕으로 전달될 때에야 실제로 도움이 된다고 맺는다. 여기서 아귀는 특정한 종류의 괴물이 아니라 재생이 떨어지는 여러 갈래 가운데 하나, 곧 스스로 얻을 수 없고 받아야만 하는 처지다. 무아와 충돌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다. 남아서 떠도는 인격이 아니라 업의 흐름이 잠시 놓이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브라만 전통은 이 처지를 의례로 관리한다. 사람이 죽으면 곧바로 조상이 되지 않는다. 열흘 동안 쌀 경단을 바쳐 프레타의 몸을 만들어 주고, 열두째 날에 사핀디카라나(sapiṇḍīkaraṇa) 의례를 치러야 프레타가 조상들(pitṛ)의 무리에 편입된다. 데이비드 나이프가 1977년 논문 「사핀디카라나: 하늘에 드는 힌두 의례」에서 분석한 대로, 이 의례는 죽은 자를 위험한 중간 상태에서 안전한 조상의 자리로 옮기는 통과 절차다. 절차가 치러지지 않으면 죽은 자는 프레타로 남아 떠돈다.

중국에 들어온 뒤 이 관념은 조상 제사와 뒤엉킨다. 스티븐 타이저는 『중세 중국의 귀신 축제』(프린스턴대학출판부, 1988)에서 음력 7월 보름에 열리는 우란분회, 곧 백중 의례를 다루며, 이 축제가 귀신을 두려워하는 목소리와 조상을 기리는 목소리를 한 의례 안에 담고 있다고 정리했다. 인도에서 온 아귀와 중국에서 자란 조상이 같은 상에서 밥을 받는 구조다. 오늘날 이 계절의 풍습에 굶주린 것들을 먹인다는 관념과 조상을 모신다는 관념이 함께 붙어 있는 내력이 여기서 나온다.

결론 — 귀신의 정의는 사후관이 아니라 인간론에서 갈라진다

지금까지 살핀 전통들을 사후 세계의 지도로 나란히 놓으면 비교가 잘 되지 않는다. 스올과 하데스와 황천은 서로 닮았는데 그 안에서 나오는 답은 전혀 다르고, 연옥과 바르자흐는 둘 다 중간 지대인데 하나는 유령을 허용하고 하나는 금지한다. 반면 사람을 무엇으로 보느냐를 축으로 놓으면 답이 가지런히 갈린다.

사람을 혼과 백 두 조각으로 본 동아시아에서는 한 조각이 남을 수 있으므로 귀신이 성립하되, 정상적인 죽음에서는 두 조각이 제 갈 곳으로 흩어져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래서 귀신은 죽음의 결과가 아니라 죽음의 실패, 곧 억울한 죽음과 끊긴 제사의 이름이 되었다. 몸이 곧 사람이라고 본 그리스에서는 남는 것이 형상과 숨결뿐이어서, 죽은 자는 무섭기보다 딱한 그림자이고 산 자의 피를 빌려야 겨우 말한다. 사람을 나누지 않고 흙과 숨의 결합 자체로 본 히브리 전통에서는 남을 조각이 설정되지 않아 유령 이야기가 자랄 자리가 없었고, 그 하나뿐인 장면조차 금지된 행위 위에서 벌어진다. 같은 계보를 이으면서 사후의 통로까지 봉쇄한 이슬람에서는 목격담이 죽은 자에게 귀속될 수 없으므로 인간과 다른 종족인 진에게 넘어간다. 자아를 인정하지 않는 불교에서는 남는 주체 자체가 없으므로 아귀가 존재의 종류가 아니라 받아야만 사는 처지로 정의되고, 힌두 의례에서는 죽은 자가 저절로 조상이 되지 않고 절차를 거쳐 만들어진다.

여기에 한 가지 단서가 붙는다. 인간론은 답의 범위를 정할 뿐 최종 답까지 정하지는 않는다. 기독교의 두 진영은 같은 인간론 위에서 정반대 결론에 이르렀고, 그 갈림목은 연옥이라는 중간 지대의 존폐였다. 그러니 순서는 이렇게 놓아야 한다. 사람을 몇 조각으로 보느냐가 유령이 원리상 가능한지를 결정하고, 사후 세계의 구조가 그 가능성을 실제로 열거나 닫는다. 두 층이 모두 열려야 죽은 자로서의 귀신이 성립한다.

그렇다면 비교종교의 자리에서 귀신을 공통 범주로 놓는 관행은 재검토가 필요하다. 그것은 여러 문화를 관찰해서 얻은 결과가 아니라 번역이 만든 착시에 가깝다. 한국어 귀신은 조상신과 자연의 작용과 원혼과 악마를 한 그릇에 담고 있고, 영어 고스트는 그 가운데 하나만 가리키며, 아랍어 진은 그 어느 것도 아니다. 어느 종교에 귀신이 있느냐는 물음은 대개 이 그릇의 모양을 묻는 물음으로 되돌아온다.

다루지 못한 갈래가 남아 있다. 19세기 심령주의는 죽은 자와 교신할 수 있다는 전제 위에 세워졌는데, 그 전제가 어느 인간론에서 나왔는지는 이 글에서 다룬 어느 전통으로도 곧바로 설명되지 않는다. 오늘날 영화와 게임이 유통시키는 유령의 상 역시 특정 전통의 산물이라기보다 여러 전통의 조각이 뒤섞인 결과에 가깝다. 그 조각들이 어떤 인간론을 암묵적으로 깔고 있는지는 따로 물어야 할 문제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