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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식민주의 서사와 칠레 세리요스 데이터센터 — 사업을 멈춘 것도 되살린 것도 국내 절차였다

인공지능 인프라가 지역의 물과 전기를 가져간다는 지적은 사실에 근거한다. 다만 산티아고 외곽의 한 사업 기록을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 보면, 그 사업을 멈춰 세운 힘도 다시 움직이게 한 힘도 부유국과 빈국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칠레 국내의 행정·사법 절차였다.

산티아고 외곽의 데이터센터 한 곳에서 벌어진 일

칠레 수도 산티아고의 세리요스구(區)와 산베르나르도구 경계에 23헥타르 규모의 데이터센터를 짓겠다는 계획이 나온 것은 2019년 7월이다. 사업 주체는 구글의 칠레 현지 법인 격인 인베르시오네스 이 세르비시오스 다타루나(Inversiones y Servicios Dataluna)였고, 투자 규모는 2억 달러로 발표됐다. 계획서에는 데이터센터 건물 2개 동, 변전소와 지하 송전선, 서버를 식히는 냉각탑, 그리고 정전에 대비한 비상 발전기와 연료 탱크가 들어 있었다.

이 사업은 이후 7년 동안 한 번도 착공되지 못했다. 널리 퍼진 이야기에서 그 이유는 지역 주민들의 조직적인 저항이다. 물 부족에 시달리던 주민들이 모여 반대 운동을 조직했고, 세계적 기업이 결국 물러섰다는 서사다. 그런데 칠레 제2환경법원이 홈페이지에 공개해 둔 이 사건의 경과표를 순서대로 읽으면 결말의 모양이 조금 달라진다.

2020년 4월 세리요스 주민 14명이 환경영향 승인의 무효를 청구했고, 며칠 뒤 세리요스 시청도 같은 청구를 냈다. 두 청구가 모두 기각되자 양쪽은 그해 12월 환경법원에 소를 제기했다. 그런데 2022년 7월 시청이 소를 취하했고, 2023년 3월에는 주민 14명 가운데 13명이 뒤따라 취하했다. 회사가 냉각 방식을 물에서 공기로 바꾸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 취하 사유였다. 남은 원고는 한 사람이었고, 2023년 5월 열린 변론기일에 그 마지막 원고는 출석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법원은 2024년 2월 26일 승인 처분의 일부를 취소했다. 지역 주민 다수가 이미 손을 뗀 사건에서, 재판부는 산티아고 중앙 대수층에 미치는 영향을 배제할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절차를 되돌리라고 명령했다. 물을 지킨 것은 거리의 인원수가 아니라 예방원칙을 적용한 판결문이었다.

서버를 식히는 물이 왜 대수층 문제가 되는가

데이터센터는 서버가 내뿜는 열을 밖으로 빼내야 한다. 열을 옮기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물을 증발시켜 열을 가져가게 하는 수냉식은 전기를 적게 쓰는 대신 물을 계속 소모한다. 공기로 식히는 공랭식은 물을 쓰지 않는 대신 같은 열을 뽑아내는 데 전기를 더 쓴다. 세리요스 원안은 수냉식이었고, 냉각수는 부지 아래 대수층에서 끌어 올리는 지하수였다. 취수권이 걸린 우물은 3곳이었다.

대수층은 땅속에서 물을 머금고 있는 지층을 말한다. 지표의 강이나 저수지와 달리 눈에 보이지 않고, 한 번 수위가 내려가면 회복에 수십 년이 걸리기도 한다. 산티아고 중앙 대수층은 수도권 주민의 생활용수와 농업용수를 함께 떠받치고 있으며, 칠레 중부는 2010년 이후 이어진 장기 가뭄을 겪어 왔다. 이 조건에서 대규모 취수 시설 하나가 추가되는 문제를 어느 수준으로 심사할 것인가가 이 사건의 쟁점이었다.

칠레의 환경 심사 제도는 두 갈래다. 영향이 작다고 판단되는 사업은 환경영향선언(DIA)이라는 간이 절차로 들어가고, 중대한 영향이 예상되는 사업은 환경영향평가(EIA)라는 본격 절차를 밟는다. 두 절차의 실질적 차이는 주민 참여에 있다. 간이 절차에서는 주민 의견 수렴이 의무가 아니다. 세리요스 사업은 간이 절차로 접수됐고, 2020년 2월 환경영향 승인을 받았다.

법원이 문제 삼은 대목이 바로 여기다. 재판부는 간이 절차의 목적 자체가 중대한 영향이 없음을 확인하는 데 있는데, 이 사건의 심사는 그 확인에 실패했다고 봤다. 수자원 당국이 불확실성을 지적한 상황에서는 대수층을 가장 나쁜 조건으로 가정하고 기후변화 시나리오까지 넣어 다시 계산했어야 한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판결은 승인의 일부를 무효로 하면서, 나머지 부분의 효력도 보완 결정이 나올 때까지 정지시켰다.

el proyecto no puede ser ejecutado hasta no contar con esta última resolución

이 사업은 그 보완 결정이 나오기 전에는 시행될 수 없다.

칠레 제2환경법원, 사건 R-270-2020(R-271-2020 병합) 판결, 2024년 2월 26일

판결의 논리에는 상대가 누구인지가 등장하지 않는다. 미국 기업이라서 더 엄격하게 봤다는 흔적은 판결문에 없고, 간이 절차로 통과된 취수 사업의 입증이 부족해서 되돌렸을 뿐이다. 같은 자리에 칠레 국내 기업의 양조장이 들어섰어도 결론은 같았을 것이다. 규제가 작동한 지점은 자본의 국적이 아니라 심사 유형이었다.

'데이터 식민주의'라는 말은 어디서 왔는가

세리요스 같은 사건을 설명하는 틀로 자주 동원되는 표현이 식민주의다. 이 용법을 학술적으로 못 박은 것은 닉 콜드리와 울리세스 메히아스가 Television & New Media 20권 4호(2019)에 실은 논문이다. 두 사람은 일상 활동이 자동으로 데이터로 변환되는 관계를 '데이터 관계'라 부르고, 그것이 과거 식민주의가 토지와 자원을 전유했던 방식과 같은 구조라고 주장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이 말을 비유로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앞선 연구자들이 은유로 쓰던 표현을, 두 사람은 21세기 고유의 새로운 식민 국면을 가리키는 문자 그대로의 규정으로 격상시켰다.

이 틀을 취재 현장으로 옮긴 것은 기자 캐런 하오다. 그는 2022년 4월 MIT Technology Review에 'AI Colonialism' 4부작을 실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민간 감시 산업, 베네수엘라 경제 위기 속에서 값싼 노동력이 된 데이터 라벨링 작업자, 자카르타의 차량 호출 기사, 그리고 마오리어 데이터 주권을 되찾으려는 뉴질랜드의 한 부부가 각 편의 주인공이었다. 이 취재는 2025년 5월 펭귄프레스에서 『Empire of AI』라는 단행본으로 확장됐다.

정작 하오 자신은 도입부에서 단서를 달았다. 오늘날의 인공지능 산업이 과거의 폭력을 되풀이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 폭력의 깊이를 가볍게 만드는 일이며, 지금 작동하는 것은 더 눈에 띄지 않는 수단이라는 취지였다. 논지를 세운 당사자가 유비의 한계를 먼저 표시한 셈인데, 이 단서는 이후 인용 과정에서 대개 떨어져 나갔다.

노동 쪽에서는 실증도 쌓였다. 클레망 르뤼덱과 막심 코르네, 안토니오 카실리가 Big Data & Society 10권 2호(2023)에 발표한 연구는 프랑스 기업들이 인공지능 학습용 데이터 작업을 마다가스카르로 하청 주는 구조를 다뤘다. 데이터 작업자 26명과 프랑스 스타트업 직원 8명을 면접하고 실제 제품 두 종의 개발 과정을 추적한 결과, 연구진은 상업용 인공지능이 서비스 노동을 자동화한 것이 아니라 가치사슬 양 끝에서 노동을 외주화할 길을 열었다고 정리했다. 임금 격차와 하청 단계의 불투명성은 이 연구가 보여 준 그대로다.

즉 노동과 물, 광물 쪽에서 비대칭이 실재한다는 진단은 근거가 있다. 문제는 그 비대칭을 '식민'이라는 낱말로 부를 때 따라오는 함의다. 식민 지배를 규정하는 특징은 강제였다. 반면 데이터센터는 각국 정부가 세제 혜택을 얹어 유치하려고 경쟁하는 대상이다. 강제와 유치 경쟁은 결과가 비슷해 보여도 처방이 정반대다. 강제라면 상대의 힘을 꺾어야 하고, 유치 경쟁이라면 자국 정부의 조건 설정을 손봐야 한다.

소비의 85%는 미국·중국·유럽에 있다

지리를 확인하면 서사의 구도가 한 번 더 흔들린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2025년 4월 낸 특별보고서 Energy and AI에 따르면, 2024년 세계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는 약 415테라와트시로 세계 전력 소비의 1.5% 수준이었다. 이 가운데 미국이 45%, 중국이 25%, 유럽이 15%를 차지했다. 셋을 합치면 85%다. 기구는 이후 갱신한 전망에서 2025년 485테라와트시였던 소비가 2030년 950테라와트시 안팎으로 늘어 세계 전력 수요의 3% 정도가 될 것으로 봤다.

수치가 말하는 바는 단순하다. 이 인프라의 부담은 압도적으로 부유한 나라 안에 있다. 전력과 물을 가장 많이 쓰는 곳이 곧 자본이 있는 곳이다. 특정 지역에 몰린 소수의 대형 단지가 지역 계통을 흔드는 문제는 남는다. 다만 그 단지들이 몰려 있는 곳은 버지니아와 더블린과 암스테르담 근교다. 자원을 뽑아 본국으로 보내는 고전적 식민 구도와는 방향이 다르다.

저항의 지도도 마찬가지다. 율리아 로네가 New Media & Society 26권 10호(2024)에 실은 연구는 네덜란드 북홀란트주 한 곳을 사례로 삼아 데이터센터 반대 운동을 분석한 질적 연구다. 그곳에서도 지방의원과 시민단체가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의 단지 확장에 맞서 결정 과정의 민주화를 요구했다. 로네는 디지털 주권 논의가 국가 단위에만 머물러 하위 국가 수준을 놓쳐 왔다고 지적한다. 세바스티안 레우에데가 AI & Society 40권(2025)에 실은 연구도 산티아고의 데이터센터 반대 운동과 아타카마 사막의 리튬 채굴 반대 운동을 함께 다루면서, 같은 성격의 갈등이 유럽과 라틴아메리카와 미국에서 나란히 나타나고 있다고 기록했다.

이 사실들은 갈등의 축이 남과 북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와 대규모 인프라 자본 사이에 그어져 있음을 보여 준다. 부유한 나라의 부유한 지자체에서도 똑같은 다툼이 벌어진다면, 설명 변수는 인프라 결정 권한이 어느 층위에 놓여 있느냐다.

문턱을 낮춘 것은 칠레 정부의 시행령이었다

세리요스 이야기의 결말은 2026년에 나왔다. 칠레 환경부는 2026년 1월 21일 관보에 환경영향평가제도 시행령 개정안인 최고령 제17호(2025)를 게재했고, 규정은 즉시 시행됐다. 감사원의 적법성 심사는 2025년 12월 31일에 끝난 상태였다. 개정의 취지는 실제로 중대한 영향을 낳지 않는 사업까지 심사 대상으로 들어와 제도가 과부하에 걸렸다는 진단이었다.

내용을 보면 데이터센터를 심사대에 올리던 두 개의 문이 동시에 넓어졌다. 인화성 물질 저장량 기준은 80톤에서 1,000톤으로 올랐다. 12.5배다. 23킬로볼트를 넘는 송전선은 예전에는 전압 하나만으로 심사 대상이 됐지만, 이제는 길이가 2킬로미터 이상이어야 한다는 요건이 붙었다. 데이터센터가 심사를 받게 만들던 요소는 대개 비상 발전기용 경유 저장량과 변전소 연결선이었으므로, 이 두 숫자를 조정한 결과 사업 유형 자체가 제도 밖으로 나갔다.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환경평가청은 2026년 7월 24일 산티아고 남쪽 부인(Buin)의 알토하우엘 데이터센터에 대해 심사 대상이 아니라는 첫 판단을 내놓았다. 그 직후 접수된 두 건 가운데 하나가 구글의 세리요스 신규안이었다. 보도된 신청 내용에 따르면 새 사업은 냉각에 물을 쓰지 않고, 연료 저장량은 695.9톤, 송전선 길이는 0.4킬로미터, 투자 규모는 종전과 같은 2억 달러다. 두 수치 모두 새 문턱 바로 아래에 있다.

정리하면 이렇다. 2024년에 법원이 취소한 승인은 대수층 영향을 충분히 따지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2026년의 사업은 그 심사 자체를 거치지 않는다. 물 사용이 사라진 것은 실질적인 개선이지만, 부담은 사라지지 않고 옮겨 갔다. 공랭식은 같은 열을 전기로 처리하고, 수백 톤 규모의 경유 탱크와 비상 발전기는 그대로 남아 지역 대기질에 영향을 준다. 그리고 그 이전과 달리 어느 국가기관도 물과 전기와 대기를 함께 놓고 검토하지 않는다.

이 대목이 식민주의 서사의 전제가 무너지는 자리다. 규제를 무력화한 주체는 실리콘밸리가 아니라 칠레 환경부였고, 그것도 가브리엘 보리치 정부라는 좌파 행정부의 시행령이었다. 2026년 8월 시민단체들이 미주인권위원회에 이 개정의 기술적 근거를 국가에 물어 달라고 요청하는 서한을 낸 것도, 상대가 국가이기 때문이다. 이 사안에서 다투는 상대를 잘못 지목하면 진정서를 낼 곳조차 정할 수 없다.

아일랜드는 조건을 걸었고 뉴욕은 멈춰 세웠다

같은 시기에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 나라들이 있다. 아일랜드 중앙통계청이 2026년 7월 7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5년 아일랜드 데이터센터의 계량 전력 소비는 7,663기가와트시로 전체의 23%였다. 2015년에는 5%였다. 같은 해 다른 모든 소비자의 사용량은 2% 늘어난 데 그쳤다. 한 나라 전력의 4분의 1에 육박하는 몫을 한 업종이 가져가는 상황이다.

아일랜드 에너지·수도 규제위원회(CRU, Commission for Regulation of Utilities)는 2025년 12월 12일 대형 수요자 접속 정책 결정을 내놓았다. 신규로 계통에 접속하려는 데이터센터는 연간 전력 수요의 80% 이상을 아일랜드 안에서 새로 지어지는 재생에너지 발전으로 충당해야 하고, 기존 지원제도로 이미 계약된 발전량은 그 몫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자체 급전 가능 발전 설비를 갖추어야 하고, 계통이 이미 포화된 지역인지도 심사 대상이다. 요구를 이행하지 못하면 계통운영자가 계약 용량을 줄이거나 비확정 접속으로 돌릴 수 있다. 아일랜드 계통운영자는 데이터센터 수요가 2025년 9.4테라와트시에서 2034년 14.6테라와트시로 늘어 전체의 31%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미국 뉴욕주는 더 나아갔다. 주의회가 2026년 6월 4일 20메가와트 이상 대형 데이터센터에 대한 1년간 인허가 중단 법안을 상원 44 대 16, 하원 102 대 39로 통과시켰고, 캐시 호컬 주지사는 7월 14일 행정명령 62호로 50메가와트 이상 사업의 재량적 환경 인허가를 1년간 보류시켰다. 주 정부는 동시에 대형 데이터센터에 적용되던 판매세 감면의 폐지를 입법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서 마지막 항목이 시사하는 바가 있다. 감면을 폐지하겠다는 말은 그동안 감면을 주고 있었다는 뜻이다. 자원을 내주는 쪽이 가난한 나라라는 구도와 달리, 세금을 깎아 주며 유치하던 곳은 뉴욕주였다. 유치 경쟁은 남반구의 사정이 아니라 인프라 자본을 상대하는 모든 관할권의 사정이다.

그렇다고 협상력의 차이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아일랜드가 재생에너지 80%라는 조건을 걸 수 있는 것은 이미 유럽 클라우드의 거점이어서 기업이 떠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칠레는 그런 위치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지배와 피지배의 문제가 아니라 교섭 지위의 문제이며, 교섭 지위는 제도 설계로 바꿀 수 있는 변수다. 실제로 칠레가 잃은 것은 심사받을 권리였고, 그 권리는 판결로 얻었다가 시행령으로 사라졌다. 앞으로 확인될 지점도 여기에 있다. 미주인권위원회에 접수된 요청이 국가에 대한 설명 요구로 이어지는지, 아니면 새 정부가 문턱을 되돌리는지에 따라 칠레의 데이터센터 심사는 다시 열릴 수 있다. 반대로 2027년 7월 뉴욕의 1년 유예가 끝났을 때 요금 배분과 용수 요건을 담은 규칙이 나오지 않는다면, 조건을 걸 힘이 있다는 진단 쪽이 흔들린다.

작은 모델이라는 처방이 비켜 가는 것

진단에 이어 처방으로 자주 제시되는 것은 규모의 전환이다. 거대한 범용 모델 대신 지역의 문제에 맞춘 작고 특화된 모델을 만들자는 제안이다. 이 제안에는 실제 성과가 뒤따른다. 아프리카 자연어처리 연구자들의 공동체인 마사카네(Masakhane)가 2020년 자연어처리 학회 EMNLP의 부속 논문집(Findings, 2144~2160쪽)에 실은 참여 연구는 정식 훈련을 받지 않은 참가자들까지 데이터 구축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30개가 넘는 아프리카 언어의 기계번역 기준선을 만들어 냈다. 언어 자원이 부족한 상태 자체가 사회 구조의 문제라는 이 연구의 관점은 지금도 유효하다.

그런데 그 공동체의 이후 궤적은 큰 모델과 작은 모델의 대립 구도에 들어맞지 않는다. 같은 연구망에 속한 연구자들이 2025년 계산언어학회(ACL) 부속 논문집(Findings, 19048~19095쪽)에 발표한 아프로벤치(AfroBench)는 64개 아프리카 언어와 15개 과제, 22개 데이터셋으로 대형 언어모델의 성능을 측정한 평가 체계다. 이 작업은 대형 모델을 거부하는 대신 대형 모델을 시험대에 올리고, 그 결과를 BERT와 T5 계열 모델을 미세조정한 기준선과 나란히 비교한다. 결론은 고자원 언어와의 격차가 여전히 크다는 것이었고, 격차의 크기는 해당 언어의 단일어 데이터가 얼마나 확보돼 있는지에 따라 달랐다.

현장의 선택은 규모 이념이 아니라 성능과 비용이다. 저자원 언어 작업은 대형 다국어 사전학습 모델에서 지식을 전이해 오는 방식으로 성과를 냈고, 그 사전학습 모델은 대개 대규모 컴퓨팅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작은 모델을 쓰기로 결정하는 것만으로 외부 컴퓨팅과 프레임워크에 대한 의존이 끊어지지 않는다. 규모를 줄이는 선택은 특정 과제에 맞춘 공학적 판단이지 자립의 선언이 될 수 없다.

전력망 쪽 사례도 같은 결론을 가리킨다. 기후 문제에 기계학습을 어떻게 쓸 수 있는지 망라한 표준적 문헌은 데이비드 롤닉 등이 ACM Computing Surveys 55권 2호 42번 논문(2022)으로 발표한 96쪽 분량의 조사 연구다. 계통 운영과 재생에너지 통합, 건물과 도시의 에너지 수요, 교통과 공급망 최적화가 이 문헌이 꼽은 유망 영역이다. 그런데 저자 명단에는 데미스 허사비스와 앤드루 응, 요슈아 벤지오가 들어 있다. 대규모 모델 개발을 이끄는 연구실의 수장들이 특화 응용의 지도를 함께 그린 것이다. 작은 모델 노선을 거대 기업에 맞서는 대안으로 배치하는 서술은 이 저자 구성을 설명하지 못한다.

이 조사 연구가 스스로 지목한 병목도 모델 크기가 아니다. 저자들은 실패 유형으로 실제 영향이 없는 문제를 붙잡는 것, 복잡한 사안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 간단한 도구로 충분한 자리에 고급 도구를 쓰는 것을 꼽았고, 공공기관이 관련 데이터를 공개하고 분야 간 협업을 늘려야 한다고 권고했다. 계통 이상 탐지나 출력 예측이 실제로 막히는 지점은 파라미터 수가 아니라 계통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지, 안전 필수 설비에 적용할 수 있을 만큼 검증 절차를 통과했는지에 있다. 이 병목은 모델을 작게 만들어서 풀리지 않고, 데이터 공개 규정과 검증 제도를 고쳐야 풀린다. 결국 처방의 무게도 다시 절차로 돌아온다.

결론 — 자원을 지킨 것은 서사가 아니라 절차였고, 그 절차는 국내에서 열리고 닫혔다

세리요스 사업의 7년은 하나의 논지를 남긴다. 인공지능 인프라가 지역의 물과 전기와 노동을 가져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흐름을 실제로 제어한 장치도 허용한 장치도 각국의 환경심사와 계통접속 절차였다.

근거는 세 갈래로 모인다. 첫째, 사업을 세운 것은 예방원칙을 적용한 환경법원의 판단이었고, 주민 다수는 그 시점에 이미 소를 취하한 상태였으며 마지막 원고는 변론에 나오지도 않았다. 둘째, 그 사업을 되살린 것은 저장 연료 기준을 80톤에서 1,000톤으로 올리고 송전선 심사에 길이 요건을 붙인 칠레 정부의 시행령이었고, 신규안의 연료 저장량과 송전선 길이는 새 문턱 바로 아래에 놓였다. 셋째, 같은 시기 아일랜드는 신규 접속에 재생에너지 80% 조건을 걸었고 뉴욕주는 인허가를 1년 멈추면서 그동안 주던 판매세 감면을 없애겠다고 밝혔다. 전력 소비의 85%가 미국과 중국과 유럽에 있는 상태에서, 조건을 거는 쪽과 문턱을 낮추는 쪽은 남북으로 나뉘지 않는다.

식민주의 서사를 어떻게 볼지는 무엇을 이 사안의 본체로 보느냐에 달려 있다. 마다가스카르와 베네수엘라의 데이터 작업 임금, 대수층 취수, 광물 채굴처럼 비대칭이 실재하는 자리를 본체로 놓으면 이 서사는 그 자리를 처음 드러낸 공로가 있고 근거도 갖췄다. 반면 그 비대칭이 어떤 결정 구조에서 생겨났는지를 본체로 놓으면 서사는 상대를 잘못 지목한다. 강제가 아니라 유치 경쟁이고, 외부의 명령이 아니라 국내의 규제 완화이기 때문이다. 쟁점은 여기서 확정된다. 문제를 지배 관계로 규정할 것인가, 교섭 지위와 절차 설계의 문제로 규정할 것인가.

남은 물음은 절차가 얼마나 견딜 수 있느냐다. 세리요스에서 확인된 것은 심사받을 권리가 판결로 얻어졌다가 시행령 한 건으로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인프라 심사 기준은 대개 톤과 킬로볼트와 메가와트 같은 숫자로 쓰여 있고, 숫자는 담론보다 조용히 움직인다. 어느 관할권에서든 데이터센터를 둘러싼 다툼의 실제 승부는 그 숫자가 적힌 조문에서 결정되며, 그 조문을 고치는 권한은 지금도 각국 정부의 손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