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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교양 목록을 다시 짠다면 — 예절 규칙과 개인 취향을 구분하는 하나의 기준

예절 목록은 항목 수로 권위를 얻는다. 목록의 힘은 항목마다 "누가 무엇을 손해 보는가"에 대답할 수 있느냐에서 나온다. 규범 연구의 현장 실험과 500년 된 예절서의 계보를 따라가면 그 대답이 나오지 않는 자리가 어디인지 드러난다.

2026년 8월 27일

목록은 왜 자꾸 길어지는가

예절을 번호 매겨 늘어놓는 글은 주기적으로 다시 나타난다. 형식도 대개 닮았다. 지켜야 할 항목을 나열하고, 이 정도는 기본이라고 못 박고, 개수를 밝힌다. 개수는 그 자체로 권위처럼 작동한다. 60개를 지키는 사람은 30개를 지키는 사람보다 나은 사람처럼 보인다.

그런데 목록 안의 항목들은 성격이 같지 않다. 지하철에서 내리는 사람이 다 내리기 전에 밀고 들어가는 행위와, 탕수육 소스를 붓느냐 찍느냐는 같은 층위의 문제가 아니다. 앞의 것은 상대가 통과할 공간을 뺏는다. 뒤의 것은 뺏는 것이 없다. 두 항목이 한 번호 체계 안에 나란히 놓이는 순간, 뒤의 것은 앞의 것에서 권위를 빌려 온다.

이 글의 주장은 하나다. 예절 규칙이 규칙으로 서는 근거는 그 항목이 누구의 어떤 손해를 막는지 대답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목록에 실렸다는 사실만으로는 근거가 서지 않는다. 대답이 나오지 않으면 그것은 취향이고, 취향을 교양이라 부르면 목록 전체의 신뢰가 함께 깎인다.

남들이 하는 일과 남들이 옳다고 여기는 일

규범이라는 낱말은 두 가지를 동시에 가리킨다. 사회심리학자 로버트 치알디니와 레이먼드 리노, 칼 칼그렌은 1990년 『저널 오브 퍼스낼리티 앤드 소셜 사이콜로지』 58권 6호에 실린 논문에서 이 둘을 갈라놓았다. 하나는 기술적 규범, 곧 사람들이 실제로 무엇을 하는지에 대한 인식이다. 다른 하나는 명령적 규범, 곧 사람들이 무엇을 옳다고 여기고 무엇을 못마땅해하는지에 대한 인식이다. 앞의 것은 정보를 주고, 뒤의 것은 제재를 예고한다.

세 사람은 이 구분을 길거리에서 시험했다. 다섯 건의 현장 실험은 모두 쓰레기 버리기를 관찰 대상으로 삼았다. 첫 번째 실험은 병원에 딸린 다층 주차장에서 8일 사이 5일 동안 방문객 139명을 관찰했다. 차로 돌아오면 와이퍼에 전단이 끼워져 있었고, 그것을 바닥에 버리는지 차 안으로 가져가는지를 셌다. 바닥이 쓰레기로 덮여 있을 때 버린 비율은 41퍼센트, 깨끗할 때는 11퍼센트였다.

더 흥미로운 것은 세 번째 실험이다. 대규모 여자 기숙사 우편함 앞에서 거주자 484명을 관찰했다. 바닥이 완전히 깨끗할 때 전단을 버린 비율은 10.7퍼센트, 쓰레기가 잔뜩 널려 있을 때는 26.7퍼센트였다. 그런데 수박 껍질 한 조각만 눈에 띄게 놓아둔 조건에서는 3.6퍼센트로 내려갔다. 놀이공원 산책로에서 358명을 관찰한 두 번째 실험도 같은 모양을 보였다. 전단이 0장일 때 18퍼센트, 1장일 때 10퍼센트, 그다음부터는 장수가 늘수록 버리는 비율이 올라갔다.

연구자들의 해석은 이렇다. 깨끗한 바닥에 놓인 쓰레기 한 조각은 그 바닥이 깨끗하다는 사실을 도리어 두드러지게 만든다. 다섯 번째 실험에서는 도서관 주차장 이용객 259명의 차에 서로 다른 문구의 전단을 꽂았는데,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는 문구가 붙은 전단을 버린 비율은 10퍼센트, 미술관에 가 보라는 문구가 붙은 전단은 25퍼센트였다. 문구가 규범을 상기시키는 순간에만 행동이 움직였다.

이 결과가 예절 목록에 주는 시사는 목록 작성자들이 기대하는 것과 다르다. 규범은 상기될 때만 작동한다. 그리고 상기되는 것은 그 자리에 걸린 규범 하나뿐이다. 항목을 늘린다고 준수가 늘지 않는다. 오히려 목록이 길어질수록 개별 항목이 상기시키는 힘은 흩어진다.

코 푸는 방법이 신분을 알리던 시절

번호 매긴 예절서는 최근의 형식이 아니다. 에라스뮈스는 1530년 『소년들의 예의범절에 관하여』를 냈다. 열한 살짜리 귀족 소년에게 보내는 형식의 짧은 라틴어 책자이고, 서양에서 아이의 몸가짐을 체계적으로 다룬 첫 저술로 꼽힌다. 첫 장의 제목은 「몸에 관하여」이며, 그 안에 코를 어떻게 푸는가에 관한 대목이 있다.

Pileo aut veste emungi, rusticanum; brachio cubitove, salsamentariorum; nec multo civilius id manu fieri, si mox pituitam vesti illinas. Strophiolis excipere narium recrementa decorum, idque paulisper averso corpore, si qui adsint honoratiores.

모자나 옷에 코를 푸는 것은 촌사람의 짓이고, 팔이나 팔꿈치에 푸는 것은 생선장수의 짓이다. 손에 푸는 것도 그다지 낫지 않으니, 곧바로 콧물을 옷에 문지를 것이기 때문이다. 코에서 나온 것은 손수건으로 받는 편이 품위 있으며, 지체 높은 이가 곁에 있다면 잠시 몸을 돌리고 할 일이다.

에라스뮈스, 『소년들의 예의범절에 관하여』(1530) 제1장 「몸에 관하여」

번역에서 망설인 낱말은 salsamentariorum이다. 소금에 절인 생선을 파는 상인을 가리키는 말인데, 여기서는 직업 자체보다 그 직업이 환기하는 신분이 요점이므로 '생선장수'로 옮겼다. 그 선택이 이 대목의 성격을 드러낸다. 에라스뮈스가 든 근거는 위생이 아니다. 옷소매에 코를 풀면 병이 옮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촌사람으로 보이고 생선장수로 보인다고 말한다. 규칙을 떠받치는 자리에 놓인 것은 신분이다.

이 장르는 그대로 이어졌다. 1595년 프랑스 라플레슈의 예수회 학교 기숙생들이 「사람들 사이의 대화에서의 예의」라는 제목의 예절 규범집을 엮어 퐁타무송의 동료들에게 보냈다. 그중 한 사람인 페랭 신부가 라틴어로 옮기면서 식탁 예절 한 장을 덧붙였고, 라틴어판은 1617년 퐁타무송에서 나왔다. 영어판은 1640년 프랜시스 호킨스의 번역으로 나왔다. 그리고 십대의 조지 워싱턴이 그 영어판에서 110개 조항을 공책에 옮겨 적었다. 그가 베낀 원고는 현재 미국 의회도서관에 있다.

워싱턴이 옮긴 조항들을 지금 읽으면 두 종류가 뒤섞여 있다는 것이 바로 보인다. 90번은 식사 자리에서 긁거나 침을 뱉거나 기침하거나 코를 풀지 말되 꼭 필요하면 예외로 한다고 적혀 있고, 91번은 음식을 탐하는 티를 내지 말고 빵은 칼로 자르며 식탁에 기대지 말고 음식에 흠을 잡지 말라고 적혀 있다. 여기까지는 함께 밥 먹는 사람이 겪는 불쾌를 줄인다. 같은 목록의 37번은 지체 높은 사람에게 말할 때 몸을 기대지 말고 얼굴을 정면으로 보지 말며 한 걸음 거리를 유지하라고 적는다. 42번은 예의의 격식을 상대의 지위에 맞추라고 적으면서, 어릿광대와 군주를 같게 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덧붙인다. 이 조항들이 줄이는 불쾌는 없다. 확인시키는 것은 위계다.

목록이라는 장르가 처음부터 섞어 온 두 가지

남에게 실제로 손해를 끼치는 행위를 막는 조항과, 어느 계층에 속하는지를 표시하게 하는 조항. 앞의 것은 상대를 위한 규칙이고 뒤의 것은 심사를 위한 규칙이다. 400년 동안 두 가지는 같은 번호 체계 안에서 같은 이름으로 불려 왔다.

오늘의 목록에도 뒤쪽 유형이 남아 있다. 택시에 누가 먼저 타는지, 계단을 오를 때 누가 앞서는지, 조수석에 앉을 사람이 정해져 있는지를 성별로 배정하는 조항이 그렇다. 형식은 배려지만 내용은 역할 배정이다. 그리고 배정된 쪽이 그 배정을 원하는지는 확인하지 않는다. 에라스뮈스가 신분으로 근거를 삼았듯, 이 조항들은 성별로 근거를 삼는다.

규칙 하나가 무너져도 옆 규칙은 잘 버틴다

목록을 길게 만드는 논리는 대개 하나로 요약된다. 이것도 못 지키는 사람은 저것도 못 지킨다는 것. 사소한 항목을 어기는 태도가 큰 항목으로 번진다는 전제가 있어야 62개든 110개든 한 묶음으로 제시할 명분이 생긴다. 이 전제는 범죄학의 깨진 유리창 가설과 같은 모양이다. 무질서의 신호가 감시의 부재를 알리고, 그 신호를 본 사람이 다른 규범도 어기게 된다는 것.

이 전제를 정면으로 시험한 연구가 있다. 마그누스 베리크비스트 연구진은 2023년 『저널 오브 인바이런멘털 사이콜로지』 88권에 실린 논문에서 쓰레기가 널린 환경이 무단횡단을 늘리는지 확인했다. 2021년 6월 8일부터 28일까지 17회에 걸쳐, 독일 쾰른의 횡단보도 한 곳에서 1148명, 스웨덴 예테보리의 횡단보도 네 곳에서 1127명, 모두 2275명이 길을 건너는 장면을 관찰했다. 1시간 단위로 환경을 깨끗한 상태와 쓰레기가 있는 상태로 무작위 배정했다.

결과는 오즈비 0.988이었다. 쓰레기가 있는 환경에서 무단횡단이 늘었다면 1보다 큰 값이 나와야 한다. 관측값은 1에 붙어 있었다. 같은 규범 안에서는 전이가 관찰된다. 남이 무단횡단하는 것을 본 사람은 자기도 무단횡단한다. 그러나 쓰레기라는 다른 규범의 위반 신호는 무단횡단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같은 연구진이 2021년 『저널 오브 인바이런멘털 사이콜로지』 74권에 낸 논문은 앞에서 본 치알디니 연구진의 실험 하나를 다시 검증했다. 사전등록을 거쳐 검정력을 높여 설계한 두 건의 현장 실험이었고, 장소는 주차장과 슈퍼마켓 입구였다. 원 실험이 놀이공원 산책로에서 이루어진 것과 달리 통행 거리가 짧은 공간이므로, 결과의 유효 범위도 그런 환경으로 제한된다. 깨끗한 환경이 쓰레기가 널린 환경보다 덜 버리게 한다는 결과는 재현되었다. 쓰레기 한 조각이 버리는 행동을 줄인다는 결과는 재현되지 않았다. 재현 연구에서는 쓰레기 한 조각이 있는 환경과 완전히 더러운 환경의 투기율이 다르지 않았다.

두 결과를 겹쳐 놓으면 목록의 전제가 어디서 흔들리는지 보인다. 규범 위반의 신호는 같은 규범 안에서는 잘 번지고, 다른 규범으로는 잘 번지지 않는다. 만두를 세 개 집어 먹는 사람이 그래서 남의 침대에 올라가지는 않는다. 항목들을 한 묶음으로 제시하는 것으로는 각 항목이 정당화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묶음이 항목을 떠받치지 못하면, 항목은 저마다 자기 근거를 대야 한다.

한 줄 서기는 배려로 자리 잡았고 계산은 다른 답을 냈다

근거를 대야 한다는 요구가 실제로 규칙을 뒤집은 사례가 있다. 에스컬레이터 한 줄 서기다. 한쪽을 비워 급한 사람을 먼저 보내자는 이 관행은 배려의 언어로 퍼졌고, 한국에서는 1990년대 후반 시민단체 운동으로 시작해 2000년대 초에 자리 잡았다.

런던 지하철은 2015년 11월 23일부터 3주 동안 홀본역에서 이 관행을 걷어내는 시험을 했다. 오전 8시 30분부터 9시 30분까지, 직원이 확성기를 들고 승객에게 양쪽에 서 달라고 요청했다. 결과는 이듬해 승강기·에스컬레이터 기술 심포지엄에서 셀리아 해리슨 등 런던 지하철 소속 네 명의 공동 보고로 발표되었다.

숫자는 분명했다. 5번 에스컬레이터의 경우 걷기를 허용한 주에는 1시간 동안 약 1만 2745명이 이용했고, 양쪽 모두 서기로 바꾼 주에는 약 1만 6220명이 이용했다. 약 30퍼센트 증가이고, 사전 계산으로 예측한 27.8퍼센트에 근접했다. 계산의 핵심 변수는 수직 높이였다. 홀본역 에스컬레이터의 수직 높이는 24미터인데, 이 정도 높이에서 걸어 올라갈 의향이 있는 승객은 40퍼센트로 추정된다. 나머지 60퍼센트가 오른쪽에 몰려 서고 왼쪽 절반은 드문드문 비어 간다.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은 결론의 조건절이다. 보고서는 모든 역에 이 방식을 적용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짧은 에스컬레이터에서는 걷기를 허용하는 편이 처리량이 높기 때문이다. 같은 행동이 24미터에서는 낭비이고 10미터에서는 이득이다. 예의의 문제였다면 높이에 따라 답이 달라질 이유가 없다.

보고서가 확인하지 못한 것도 분명히 적혀 있다. 시험 기간의 사고 자료는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다. 안전 개선은 이 실험에서 입증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행동 변화도 오래가지 않았다. 시험이 끝나자 승객들은 원래 방식으로 돌아갔다. 시험에 영향을 받은 승객은 약 13만 명이었는데 운영사에 의견을 보낸 사람은 13명이었다. 규범은 상기시키는 장치가 있을 때만 작동한다는 앞의 발견이 여기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한국의 정책은 방향을 두 번 바꿨다. 정부는 2007년 안전사고와 설비 고장을 이유로 두 줄 서기 캠페인을 도입했다가, 근거가 부족하고 시민 반발이 크다는 이유로 2015년 중단했다. 그리고 2026년 다시 방향을 돌렸다. 행정안전부와 한국승강기안전공단은 두 줄 서기 정착을 올해 주요 과제로 삼았고, 이 방향은 「승강기 안전관리법」에 근거해 5년마다 세우는 법정계획인 제1차 승강기 안전관리 기본계획(2026~2030)에 반영되었다.

재추진의 근거로 제시된 숫자는 사고 통계다. 한국승강기안전공단 집계로 2016년부터 10년간 에스컬레이터에서 일어난 중대사고는 135건이고 그중 90건이 이용자 과실로 분류되었다. 넘어짐이 77.8퍼센트로 가장 많았고 피해자의 78.6퍼센트가 65세 이상이었다. 서울교통공사 자료로는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지하철 역사 안에서 일어난 넘어짐 사고가 597건이고 그중 46퍼센트가 계단과 에스컬레이터에서 났다.

20년 사이에 같은 행동이 배려에서 위험으로 재분류되었다. 그 사이에 무례해진 사람은 없다. 바뀐 것은 사람의 태도가 아니라 계산이었다. 처리량과 사고와 유지비를 재 보니 답이 달라졌고, 규칙이 그 답을 따라 움직였다. 이것이 예절 항목이 규칙 자격을 얻는 방식이다. 누가 무엇을 손해 보는지 물었더니 대답이 나왔고, 대답이 바뀌자 규칙도 바뀌었다.

비용을 물어 다시 짠 25줄

기준은 한 문장으로 적을 수 있다. 상대가 동의하지 않았는데 비용이나 위험이나 되돌릴 수 없는 침해가 발생하는가. 이 물음에 대답이 나오는 항목만 규칙 자리에 남긴다. 아래 목록은 그 기준으로 추린 것이고, 네 덩어리로 묶었다. 묶음이 항목을 정당화하지는 않으므로 각 줄은 스스로 대답을 품고 있어야 한다.

하나. 남의 지갑에서 편의를 꺼내 쓰지 않는다

  1. 다 내리면 탄다. 반 발 먼저 끼면 눈총을 산다.
  2. 소리는 이어폰에, 못 챙겼으면 무음에.
  3. 통화는 짧게, 사연은 안 새게.
  4. 가방은 무릎 위로, 자리는 사람 몫으로.
  5. 들고 탄 것은 들고 내린다. 두고 가면 남이 치운다.
  6. 젖히기 전에 뒤를 보라. 뒷사람 무릎도 남의 무릎이라.
  7. 문 열기 전에 옆을 재라. 벽까지 남은 폭도 재라.
  8. 신발은 털고 탄다. 남의 차 바닥도 누군가 닦는다.
  9. 경보음이 울리면 내린다. 무게중심 실험은 집에서 한다.
  10. 앞 좌석은 발판이 아니다. 빈자리도 남의 자리다.
  11. 에스컬레이터는 계단이 아니다. 서서 가면 사고도 없다.

둘. 한 번 넘으면 사과로 메울 수 없는 선

  1. 남의 화면은 보지 않는다. 보라고 준 사진만 본다.
  2. 아이든 개든 임신한 배든, 물어보고 만진다. 묻지 못했으면 만지지 않는다.
  3. 닫힌 것은 닫힌 이유가 있다. 냉장고도 서랍도 방문도 그렇다.
  4. 초대장에 없는 이름은 문 앞에서 한 번 묻는다.
  5. 연봉은 캐는 것이 아니고, 종목은 미는 것이 아니다. 손실을 대신 갚지 못한다면.
  6. 칼은 손잡이부터 건넨다. 날을 내미는 장면은 영화에만 남긴다.

셋. 공용은 나눗셈이고 내 배는 나머지다

  1. 공용부터 뜯고 시작한다. 내 것부터 뜯으면 눈총도 시작한다.
  2. "남을 것 같아서"는 짐작이고, 정확히는 식탐이다.
  3. 총무가 부른 값 그대로 보낸다. 반내림하면 인격도 내린다.
  4. 얻어 탄 만큼 채운다. 커피 한 잔이면 사이도 채운다.

넷. 힘이 기울 때 더 기울인다

  1. 점원은 주문을 받는 사람이지, 놀아 줄 사람이 아니다.
  2. 카드는 건네고 던지지 않는다. 주문을 바꾸면 미안하다고 말한다.
  3. 초보 뒤에서는 경적 대신 여유를. 배려를 받았으면 비상등 두 번을.
  4. 해 준 밥, 태워 준 차, 사 준 선물에는 별점이 아니라 인사를 붙인다.

빠진 항목이 절반쯤 된다. 빠진 이유는 두 갈래다. 하나는 성별이나 나이로 역할을 배정하는 조항이다. 택시 승차 순서, 계단을 오르내리는 순서, 조수석 착석 의무가 여기 해당한다. 상대가 그 배정을 원하는지 확인하지 않은 채 적용하면 배려의 형식을 빌린 지시가 된다. 이런 항목은 규칙으로 세우지 않고 그 자리에서 물어본다.

다른 하나는 취향이다. 소스를 붓느냐 찍느냐, 조수석에서 자느냐, 피자 가장자리를 남기느냐. 이 항목들에 대고 손해를 물으면 대답이 "내가 보기 싫어서"밖에 나오지 않는다. 관계 안에서 조율하면 되는 일이고, 조율에 실패했다고 교양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기준을 하나로 세우면 목록 자체가 반증 가능해진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위의 25줄은 "누가 어떤 손해를 보는가"로 반박할 수 있다. 반박이 성립하면 그 줄은 빠져야 한다. 한 줄 서기가 빠진 것도 그 절차를 거쳤기 때문이다. 개수로 권위를 세운 목록에는 그 절차가 없다.

결론 — 목록은 개수로 서지 않고 항목마다 나오는 대답으로 선다

예절 목록의 문제는 항목이 많다는 데 있지 않다. 성격이 다른 항목을 한 이름으로 묶어 서로의 권위를 빌려 쓰게 한다는 데 있다. 앞의 논의는 네 방향에서 같은 지점을 가리킨다.

첫째, 규범은 두 종류다. 사람들이 실제로 하는 일에 대한 인식과 사람들이 옳다고 여기는 일에 대한 인식은 다른 동기이며, 그 자리에서 상기된 쪽만 행동을 움직인다. 항목을 늘리는 것으로는 상기 효과가 늘지 않는다. 둘째, 목록이라는 장르는 500년 동안 두 유형을 섞어 왔다. 남에게 끼치는 손해를 막는 조항과 어느 계층에 속하는지를 표시하게 하는 조항이 늘 함께 실렸고, 후자는 시대가 바뀔 때마다 웃음거리가 되었다. 셋째, 한 규범의 위반이 다른 규범으로 번진다는 전제는 2275명을 관찰한 현장 실험에서 지지되지 않았다. 묶음은 항목을 떠받치지 못한다. 넷째, 배려로 굳었던 한 줄 서기는 처리량과 사고를 재는 순간 답이 달라졌고, 그 답은 에스컬레이터의 높이에 따라 또 달라졌다.

그러므로 규칙과 취향을 구분하는 일은 항목별 작업이지 목록 단위의 작업이 아니다. 각 줄에 "누가 무엇을 손해 보는가"를 묻고, 대답이 나오면 규칙으로 두고, 나오지 않으면 취향으로 돌려보낸다. 이 절차를 통과한 항목은 반박에도 열려 있고, 조건이 바뀌면 개정된다.

남는 물음도 있다. 비용 기준이 대답하지 못하는 영역이 분명히 있다. 상갓집에서의 처신처럼 상징적 모욕이 문제가 되는 자리, 손해의 크기를 잴 수 없어도 침해라는 것만은 분명한 자리가 그렇다. 그런 영역까지 손해 계산으로 환원하면 기준이 헐거워진다. 다른 하나는 개정의 문제다. 규칙이 물리적·사회적 조건의 함수라면, 조건이 바뀔 때마다 목록은 다시 검토 대상이 된다. 24미터에서 성립하던 답이 10미터에서 뒤집히듯이, 지금 확실해 보이는 항목도 조건이 이동하면 자리를 잃는다. 목록을 고정된 교양의 명세로 다루는 태도가 바로 그 이동을 놓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