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거래소가 2027년 시행을 예고한 신재생 계통해석 모델 제출 규정은 PSS/E 형식의 파일 두 개를 요구한다. 그 형식이 표현할 수 있는 고장과 표현할 수 없는 고장을 가르고, 미국과 호주가 왜 EMT 모델을 제출 목록에 넣었는지 정리한다.
한국전력거래소는 2026년 8월 25일 발전사업자를 대상으로 계통해석 모델 제출에 관한 사전안내를 공지했다. 전력거래소는 전력시장을 운영하고 전국 전력계통의 급전을 지휘하는 기관이며, 발전소가 상업운전을 시작하려면 이곳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공지의 근거는 전력시장운영규칙 제5.8.5조이고, 이를 명확히 하는 규칙 개정이 2026년 3분기에 예정되어 있다.
대상은 22.9kV 전용선로 또는 154kV 이상 송전계통에 연계하는 풍력·태양광·연료전지 발전사업자와 중앙계약전기저장장치 사업자다. 시행일은 규칙이 개정되면 2027년 3월로 잡혀 있고, 전력거래 개시 희망일 5개월 전까지 모델을 내야 한다. 시행 이후에는 제출한 모델이 적합성 검증과 계통평가위원회 승인을 거쳐야 전력거래 개시 승인이 난다. 모델을 제때 내지 못하면 발전소를 다 지어 놓고도 전기를 팔 수 없다는 뜻이다.
무엇을 내야 하는지는 함께 공개된 계통평가세부운영규정 개정안이 정한다. 신설되는 제13장의 제목은 「신재생 발전 설비의 전력계통 해석용 모델 관리 기준」이고, 제출물의 핵심은 파일 두 개다. 조류계산 파일(.sav)과 다이나믹 파일(.dyr)이다.
이 두 확장자는 지멘스가 공급하는 계통해석 프로그램 PSS/E의 파일 형식이다. .sav는 발전기·변압기·송전선로의 임피던스와 정격을 담아 정상상태 조류를 계산하게 하는 파일이고, .dyr은 발전기와 제어기의 동특성 파라미터를 담아 사고 이후 몇 초 동안의 응답을 계산하게 하는 파일이다. 규정은 프로그램 버전까지 지정한다. 2027년 7월부터 해석 프로그램 버전이 V33에서 V36으로 바뀌므로 그 이후 개시 예정 사업자는 V36으로 제출하라고 되어 있다.
제도 자체는 늦었지만 방향은 옳다. 그동안 국내에서 인버터 설비의 계통 영향은 제조사가 내놓는 사양서와 형식시험 성적서에 의존해 판단됐고, 발전소 단위의 동특성 모델을 계통운영자가 체계적으로 확보하는 절차는 없었다. 문제는 저 두 파일이 담을 수 있는 것과 담을 수 없는 것이 물리적으로 정해져 있다는 데 있다.
전력계통을 계산하는 방법은 무엇을 가정하고 무엇을 버리느냐에 따라 세 층으로 나뉜다. 층마다 쓰는 방정식이 다르고 계산량이 수백 배씩 차이 난다.
가장 위가 조류계산이다. 계통 전체가 60Hz 정현파 정상상태에 있다고 가정하고 각 모선의 전압 크기와 위상, 선로에 흐르는 전력을 대수방정식으로 푼다. 시간이라는 변수가 아예 없다. 발전기를 몇 대 돌리면 어느 선로가 과부하가 나는지, 어느 지역 전압이 규정 범위를 벗어나는지 보는 계산이며, 접속 가능 용량 산정과 연간 계통계획이 여기에 기댄다.
가운데가 페이저 해석이다. 방금 말한 .dyr 파일이 쓰이는 층이 여기다.
가장 아래가 EMT 해석이다.
세 층은 서로를 대체하지 못한다. 전국망은 모선이 수천 개에서 수만 개에 이르는데, 이것을 마이크로초 간격으로 수십 초 돌리는 계산은 지금도 실용 범위 밖이다. 우발사고 수천 건을 훑는 계통계획, 관성 응답과 조속기가 작동하는 수 초에서 수 분 단위의 주파수 현상, 시장 운영과 급전 계획은 페이저 해석과 조류계산이 맡아야 하고 EMT로 옮길 이유도 없다. EMT 모의는 어느 운전점에서 출발할지부터 조류계산에서 받아 온다.
그래서 따져야 할 것은 두 가지다. 페이저 해석이 표현하지 못하는 고장 유형이 실제 사고에서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가, 그리고 그 비중이 커진 계통에서 규제기관이 무엇을 요구하기 시작했는가.
페이저 해석은 발전기가 동기기이던 시절에 잘 맞았다. 동기기는 수십 톤짜리 회전자가 돌아가는 기계이고, 계통 사고에 대한 반응은 그 관성이 결정한다. 회전자가 흔들리는 주기는 0.2Hz에서 2Hz 사이이고, 여자기와 조속기의 시상수는 수백 밀리초에서 수 초다. 관심 있는 현상이 모두 60Hz보다 훨씬 느리게 움직이니 파형을 버리고 진폭·위상만 따라가도 오차가 작았다.
인버터는 회전자가 없다. 반도체 스위치가 만드는 전류의 파형을 제어기가 직접 지령한다. 전류 제어 루프의 대역폭은 수백 헤르츠에서 킬로헤르츠 단위이고, 계통 전압의 위상을 추적하는 위상동기루프(PLL)는 수십 헤르츠에서 동작한다. 판단이 사이클보다 짧은 시간에 내려지는 장치를, 사이클의 4분의 1 간격으로 진폭만 따라가는 계산으로 표현하려니 표현되지 않는 영역이 생긴다.
보호 설정은 더 극단적이다. 인버터의 순시 교류 과전류 보호는 반도체 소자를 지키려는 것이므로 시간 지연을 두지 않는다. 뒤에 나올 사고에서 실제로 확인된 동작 시간은 0.2밀리초였다. 페이저 해석의 한 스텝이 4밀리초라면 트립은 첫 스텝이 끝나기 전에 이미 벌어져 있다.
여기에 계통 강도가 겹친다.
미국 텍사스에서는 이것이 통계가 아닌 사건으로 드러났다. 북미전력신뢰도협회(NERC)와 텍사스 신뢰도기구(Texas RE)가 2022년 12월 공동으로 낸 「2022 Odessa Disturbance」 보고서가 그 기록이다. NERC는 미국과 캐나다의 광역 전력계통 신뢰도 기준을 만들고 집행하는 기관으로, 그 기준은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의 승인을 받으면 법적 강제력을 갖는다.
2022년 6월 4일 낮 12시 59분 25초, 텍사스 오데사의 한 동기 발전소에서 피뢰기가 파손되면서 345kV 모선에 B상 지락이 생겼다. 보호계전기는 3사이클 만에 고장을 정상적으로 제거했다. 계통 설계가 상정한 그대로 작동했다.
그런데도 동기 발전기 844MW와 인버터 기반 발전 1,711MW, 합계 2,555MW가 빠졌다. 주파수는 60.01Hz에서 59.70Hz로 떨어졌고, 텍사스 계통의 수요반응 부하 1,116MW가 59.70Hz 설정으로 자동 차단되면서 받쳤다. 사고 직전 태양광 비중은 전체 발전의 15.8%였다. 그 비중에서 발생한 손실이 텍사스 연계계통이 신뢰도 기준(BAL-003)에서 상정하는 최대 단일 상실 규모에 육박했다.
인버터가 왜 꺼졌는지를 보고서는 원인별로 갈라 놓았다. 순시 교류 과전류 트립이 459MW, 위상 도약을 단독운전으로 오인한 수동 단독운전 방지 트립이 385MW, 순시 교류 과전압 트립이 295MW, 직류버스 전압 불평형 트립이 211MW, 발전소 제어기 상호작용이 146MW, 잘못된 연계유지 설정이 135MW, 순간정지와 보조전원 상실이 130MW다.
보고서 3장에 실린 표 하나가 이 사고를 모델 문제로 만든다. 각 트립 원인을 페이저 해석과 EMT 해석이 각각 표현할 수 있는지 정리한 표다.
| 트립 원인 | 페이저 해석 | EMT 해석 |
|---|---|---|
| 인버터 순시 교류 과전류 | 표현 못 함 | 표현 가능 |
| 인버터 순시 교류 과전압 | 표현 못 함 | 표현 가능 |
| 직류버스 전압 불평형 | 표현 못 함 | 표현 가능 |
| PLL 동기 이탈 | 표현 못 함 | 표현 가능 |
| 인버터 과주파수·저주파수 | 표현 못 함 | 표현 가능 |
| 수동 단독운전 방지(위상 도약) | 조건부 가능 | 표현 가능 |
| 배전선로 저주파수 | 표현 못 함 | 표현 못 함 |
페이저 해석이 순시 교류 과전류와 과전압을 표현하지 못하는 이유는 도구의 성능이 모자라서가 아니다. 그 보호는 순시 상량, 즉 각 상의 파형 순간값으로 동작하는데 페이저 해석에는 그 값이 존재하지 않는다. 직류버스 불평형도 마찬가지다. 교류측 역상 전압이 직류단에 만드는 맥동이 원인인데, 정상분만 계산하는 층에는 역상 전압이 없다. 오데사에서 확인된 인버터 손실의 대부분이 이 표의 위쪽 다섯 줄에 몰려 있다.
표의 마지막 줄은 반대 방향으로 읽어야 한다. 배전선로 계전기의 저주파수 트립은 EMT로도 표현되지 않는다고 적혀 있다. 계전기 자체의 EMT 모델이 아직 드물기 때문이다. EMT를 넣으면 모든 것이 보인다는 주장도 성립하지 않는다.
오데사에서 더 곤란한 사실은 따로 있다. 사고에 연루된 태양광 발전소 14곳은 EMT 모델을 이미 제출한 상태였다. 페이저 모델도 14곳에서 제출됐고, 그중 13곳이 표준 라이브러리 모델을, 1곳이 사용자 정의 모델을 썼다.
보고서에 실린 발전소별 검토 표에서 각 모델이 실제 트립을 재현할 수 있는지를 적는 칸은 페이저와 EMT 양쪽 다 확인 불가로 채워져 있다. 텍사스 계통운영자 ERCOT은 제출받은 EMT 모델을 검증한 적이 없어 판단할 근거가 없었다. 페이저 모델 쪽은 몇몇 발전소에 대해 위상측정장치 기록을 재생해 넣는 방식으로 검증을 돌렸는데, 그 모의에서는 어떤 출력 감소도 나타나지 않았다.
가장 분명한 사례가 보고서의 M 발전소다. 이곳은 인버터의 저전압 연계유지 기능이 꺼진 상태로 설정돼 있었고 그 때문에 146MW를 잃었다. 그런데 이 발전소는 ERCOT의 페이저 모델 품질검사를 통과했다. 인버터 설정이 통째로 잘못된 발전소의 모델이 품질검사를 통과했다.
보고서는 그 이유를 모델 품질검사의 설계에서 찾는다. ERCOT의 검사가 보는 것은 모델의 응답이 계통 연계 요건을 만족하는지다. 모델이 현장 설비를 그대로 반영하는지는 검사 항목에 들어 있지 않다. 그러면 사업자와 제조사에게는 검사를 통과하는 모델을 낼 유인이 생긴다. 규제가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제출되는 모델의 성질을 정한다는 뜻이며, 이것은 뒤에서 한국 규정을 볼 때 다시 나온다.
인버터 제조사들의 진술도 실려 있다. 표준 라이브러리 모델은 실제 제어와 보호를 표현하는 데 한계가 크고, 자사가 검증한 사용자 정의 모델을 쓰게 해 달라는 것이 두 제조사 공통의 요청이었다. 한 제조사는 EMT 모델에서 직류단을 이상적인 전압원으로 두고 직류측 보호를 아예 넣지 않는다고 밝혔다. 오데사에서 211MW를 꺼뜨린 바로 그 보호다. 제조사들은 모델 요구 문서에 무엇을 모델링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성이 없어 기대치가 불명확하다고도 진술했다.
모델을 요구하는 쪽과 만드는 쪽의 이해가 여기서 갈라진다. 제조사는 모델 정밀도를 올리는 데 드는 비용을 정당화할 근거가 필요하다. 그 근거는 계통운영자가 명시적 요구로 만들어 준다. 요구서가 비어 있으면 제조사는 넣지 않고, 넣지 않은 보호는 사고가 난 다음에야 존재가 확인된다.
오데사 이전에도 같은 종류의 사고가 있었다. 2016년 8월 16일 캘리포니아 블루컷 화재 때 500kV 선로 고장이 3사이클 이내에 정상 제거됐는데도 태양광 1,178MW가 광역에서 빠졌고, NERC와 WECC는 인버터가 순시 계산 주파수를 잘못 읽어 트립한 것과 다수 인버터가 순간정지 모드를 쓴 것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2017년 10월 9일 캐니언2 화재 때도 같은 지역에서 약 900MW가 빠졌고, NERC는 2018년 2월 별도 보고서를 냈다. 이후 2021년과 2022년 오데사가 이어졌다.
규제는 사고를 따라 움직였다. ERCOT은 2015년 1월 이후 설치된 모든 인버터 기반 자원과 1형·2형 풍력 발전기에 PSCAD 모델 제출을 의무화했고, 그 이전 설비도 요청이 있으면 내도록 했다. 2016년부터는 신규 연계 전건에 EMT 모델을 요구했으며, 2020년 5월 1일부터는 모델품질시험을 도입해 사업자가 직접 수행하고 결과를 제출하게 했다.
중서부 계통운영자 SPP는 약계통 조건이 사전 검토에서 걸리면 연계 신청자에게 PSCAD 모델을 요구하고, 계통 주입 15개월 전까지 내도록 한다. SPP의 모델 요구 문서는 전력전자의 내부 제어 루프 전체를 표현할 것, 과도안정도 해석에서 쓰는 근사를 쓰지 말 것, 실제 하드웨어 코드를 PSCAD 컴포넌트에 내장한 형태로 낼 것을 명시한다.
호주는 더 일찍 방향을 정했다. 호주 계통운영기관 AEMO는 연계 검토에 PSS/E와 PSCAD/EMTDC를 함께 쓴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으며, 모델 패키지는 「Power System Model Guidelines」 3.0판과 설계·정정 데이터 시트에 맞춰야 하고 국가전력규칙(NER) S5.2.4, 5.2.5, S5.5.6이 그 근거다. PSCAD 모델은 2018년 판 「Power System Model Guidelines」가 제출물로 명시하면서 표준이 됐고, 좁은 예외 조건에 드는 사업자만 면제를 신청할 수 있다. 이후 동적모델 수용시험 지침이 나오면서 EMT 모델도 PSS/E 모델과 같은 수준의 사전 자격시험을 거치게 됐다.
AEMO의 제출 구조는 두 단계다. R1 패키지는 시운전 최소 3개월 전에 내고, R2 패키지는 최종 시운전 시험이 끝난 뒤 3개월 안에 실측으로 검증한 자료와 검증보고서를 함께 낸다. 버전 관리도 강하다. 2025년 8월 4일부터 PSS/E 34판과 36판 두 버전의 동적모델 소스코드를 함께 요구하고 있고 2027년 1분기에 전환을 마칠 계획이다.
AEMO가 EMT 도구를 PSCAD 하나로 좁힌 이유는 기술 취향이 아니었다. 공개된 결정 보고서에서 AEMO는 제조사가 EMT 모델을 여러 플랫폼으로 개발하고 유지할 가능성이 낮다는 관찰을 근거로 들었다. 같은 문서에서 AEMO는 페이저 모델은 전 세계 모든 계통운영자가 요구하는 것이라고도 적었다. EMT를 필수로 만든 기관이 페이저를 버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두 층의 관계를 그대로 보여 준다.
미국의 전국 단위 규제는 가장 늦게 정리됐다. FERC는 2023년 10월 19일 명령 제901호로 NERC에 인버터 기반 자원 관련 신뢰도 기준을 정비하라고 지시했고, 그 결과로 나온 기준 MOD-026-2를 2026년 2월 19일 승인했다. 이 기준은 페이저 모델과 EMT 모델을 함께 제출하고 둘을 교차 검증하도록 요구한다. 기존 MOD-026-1과 MOD-027-1은 새 기준 발효 직전에 폐지된다. 성능 요건 쪽에서는 IEEE가 2022년에 낸 IEEE Std 2800이 송전 연계 인버터 자원의 최소 요건을 정했고, NERC는 그 일부를 연계유지 기준 PRC-029에 반영했다.
승인 과정에서 남은 쟁점 하나가 이 문제의 성격을 드러낸다. MOD-026-2는 새 기준 발효 이전에 상업운전을 시작한 설비 가운데 제조사가 EMT 모델을 더 이상 지원하지 않는 경우를 요구에서 뺐다. ERCOT·ISO-NE·MISO·NYISO·PJM·SPP는 이 면제 조항에 반대 의견을 냈다. 면제 대상 정의가 이미 운전 중인 설비와 지금 연계 절차를 밟고 있는 설비를 함께 포함하며, 모델을 확보할 부담을 발전사업자에게서 송전계획자에게로 옮긴다는 것이 반대 이유였다. 모델을 누가 만들어 낼 책임을 지느냐는 문제는 비용을 누가 부담하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대비 위에서 계통평가세부운영규정 신설안 제13장을 다시 읽으면 무엇이 빠져 있는지가 분명해진다.
신설안은 동적모델을 범용모델로 제작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쓸 제어기 모델을 이름까지 지정한다. 발전기·컨버터는 REGCA1 계열, 전기제어는 REECA1 계열, 단지제어는 REPCA1과 PLNTB 계열, 여기에 구동계 모델과 과·저전압 계전기 VTGTPAT, 과·저주파수 계전기 FRQTPAT가 붙는다. 파라미터는 붙임 서식에 항목별로 채워 넣는다. 붙임 2에 실린 REGCA1 파라미터 표는 컨버터 시상수부터 저전압 파워 로직의 증발률 한계치까지 14개 항목을 열거한다.
이 모델들은 인버터 자원용으로 만들어진 표준 라이브러리 모델이고, 페이저 해석 층에서 돌아간다. 오데사 보고서가 부정확의 원인으로 지목한 바로 그 표준 라이브러리 모델이다. 규정 어디에도 EMT 모델이나 PSCAD라는 말은 없고, 제조사 검증 사용자 정의 모델을 허용하거나 요구하는 조항도 없다.
정합성 판정 기준은 정량화되어 있다. 안정구간에서는 시험 데이터와 모의 결과의 차이가 정격 유효전력과 최대 무효전력을 기준으로 5% 이내여야 하고, 신호 입력 후 5초 이내의 추종구간은 응답속도·상승시간·정착시간·오버슈트를 종합해 판단한다. 하나의 파라미터 세트로 모든 동특성 데이터를 검증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은 것도 명시돼 있다. 다만 순간적인 첨두값과 진동 데이터는 정합성 판단에서 제외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오데사에서 발전소를 꺼뜨린 것이 정확히 그 순간적인 첨두값이었다.
단위기 성능시험 항목도 같은 성격이다. 유효전력 제어, 주파수-유효전력 제어, 무효전력과 역률 제어, 전압-무효전력 제어, 과·저주파수 시 연계유지, 전압 강하와 상승 시 연계유지, 고장 중 무효전류 공급이 목록이다. 제어 응답과 연계유지 능력을 확인하는 항목들이며, 인버터가 자기 보호 논리 때문에 스스로 꺼지는 경우를 잡아내도록 설계된 항목은 없다. 오데사에서 확인된 손실의 대부분은 인버터의 자기 보호가 먼저 동작해서 생겼다.
이 규정을 낮춰 볼 이유는 없다. 오히려 절차 설계에서는 앞서 있는 대목이 여럿이다. 제출을 초기모델과 확정모델 두 단계로 나눠, 확정모델은 발전소가 계통에 병입된 뒤 현장 성능시험을 거쳐 초기모델을 보완하도록 한 것이 그렇다. ERCOT이 오데사를 두 번 겪고 나서야 도입한 준공 상태 대조와 같은 취지의 장치를 한국은 제도 출발 시점부터 넣어 두었다. 전력거래소가 모델 유효성 검증을 외부 위탁검증기관에 맡길 수 있게 하고, 그 기관의 자격 요건에 해석 프로그램 보유와 석사 이상 전문인력을 명시한 것도 검증 역량을 제도 안에 두려는 설계다.
그러니 한국 제도의 약한 자리는 검증 절차에 있지 않다. 잘 설계된 검증 절차가 페이저 층 하나에만 걸려 있다는 데 있다. 5% 오차 기준을 아무리 엄격히 적용해도 그 기준이 재는 대상은 표준 라이브러리 모델이 표현할 수 있는 응답이며, 표현하지 못하는 응답은 오차 계산에 등장하지 않는다.
제도가 이 지점에서 바뀔지는 곧 확인된다. 관측점은 두 개다. 하나는 2026년 3분기로 예정된 전력시장운영규칙 개정의 최종안이고, 다른 하나는 2027년 3월 시행 시점의 계통평가세부운영규정 확정본이다. 두 문서 가운데 어느 쪽에도 EMT 모델 항목이나 사용자 정의 모델 허용 조항이 들어가지 않는다면, 한국의 모델 제출 목록은 최소 몇 년간 페이저 층에 머무른다. 반대로 확정본에 해당 조항이 들어가면 이 판단은 틀린 것이 된다.
요구가 생기더라도 전국망을 EMT로 돌리는 방식이 되지는 않는다. 계산량 문제는 도구가 빨라진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미국과 호주가 실제로 쓰는 방식은 연계 지점 주변의 관심 영역만 EMT로 상세히 두고 나머지 계통은 등가 임피던스로 축약하는 것이며, 어느 지점을 그렇게 볼지는 약계통 사전 검토가 골라 준다. SPP가 약계통 조건에 걸린 신청자에게만 PSCAD를 요구하는 구조가 그 예다. 한국이 같은 길을 간다면 먼저 필요한 것은 어느 연계점이 약계통인지 판정하는 기준과 그 지점의 등가 계통을 만드는 절차다. 전국망 EMT 도구가 그 자리를 대신하지 못한다.
전력거래소가 2027년 시행을 예고한 계통해석 모델 제출 제도는 조류계산 파일과 다이나믹 파일, 곧 PSS/E 형식의 페이저 모델만을 요구한다. 이 선택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세 갈래로 정리된다.
첫째, 페이저 해석이 순시 교류 과전류·과전압, 직류버스 불평형, PLL 동기 이탈을 표현하지 못하는 까닭은 그 계산이 애초에 순시 상량과 역상 성분을 버리고 출발하는 데 있다. 둘째, 2022년 오데사에서 빠진 인버터 1,711MW의 대부분이 정확히 그 표현 못 하는 항목들에서 나왔고, 사고를 일으킨 것은 3사이클 만에 정상 제거된 1선 지락이었다. 셋째, 모델을 받아 두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것도 같은 사고가 보여 주었다. 연루된 14개 발전소는 EMT 모델을 이미 다 냈지만 검증된 적이 없었고, 페이저 모델은 검증을 통과하고도 사고를 재현하지 못했으며, 인버터 설정이 통째로 잘못된 발전소가 품질검사를 통과하기까지 했다.
한국 규정은 검증 절차에서는 오히려 앞서 있다. 초기모델과 확정모델의 2단계 제출, 현장 성능시험 기반의 확정, 단일 파라미터 세트 원칙, 외부 위탁검증기관 지정은 미국이 사고를 겪고 뒤늦게 채운 자리를 처음부터 메워 둔 설계다. 부족한 것은 그 절차가 검증하는 모델의 층이다.
미국과 호주에서 EMT 모델이 제출 목록에 들어간 시점은 정상 제거된 고장에 대규모 인버터가 동시에 꺼진 사건이 벌어진 뒤였다. 인버터 비중이 특정 숫자를 넘은 시점과는 맞물리지 않는다. 호주는 2018년, ERCOT은 2016년, 미국 전국 기준은 2026년이다. 한국에서 같은 종류의 사건이 아직 보고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계통 강도가 아직 버티고 있다는 뜻이다. 제도가 충분하다는 증거로 읽을 것은 못 된다. 동기기가 줄고 인버터가 늘면 연계점 단락비는 내려가고, 그 값이 내려간 지점에서 인버터의 자기 보호가 무엇을 할지는 지금 요구되는 모델에 적혀 있지 않다.
남는 물음은 책임의 배분이다. 인버터 제어 논리는 제조사의 영업비밀이고, 그것을 담은 모델을 누가 만들어 내고 누가 검증하며 그 비용을 누가 부담하는지는 어느 나라에서도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 미국에서 제조사 지원이 끊긴 기존 설비의 EMT 모델을 두고 계통운영자들이 규제기관에 이의를 낸 것이 그 단면이다. 한국은 위탁검증기관이라는 제도적 자리를 먼저 만들어 두었으므로, 그 자리에 무엇을 검증하라고 적어 넣느냐가 다음 개정의 실질 내용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