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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장은 누가 썼고 본문이 어떻게 달라졌는가 — 제사장 문서 가설과 사본·번역의 수정 내역

2026년 9월 12일

창세기 1장은 한 사람이 한 번에 써서 그대로 전해진 글이 아니다. 저자와 편집자, 번역자, 필사자, 주석가가 차례로 손을 댔고, 그 손질 가운데 상당수는 베껴 쓰다 생긴 실수가 아니라 본문이 남긴 신학적 문제를 풀려고 내린 선택이었다. 어느 사본을 원본으로 볼 것이냐는 지금도 정해지지 않았지만, 무엇이 왜 바뀌었는지는 상당 부분 추적된다.

같은 한 절이 "태초에"와 "창조하기 시작하셨을 때"로 옮겨진다

한국어 개역개정판 창세기 1장 1절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로 시작한다. 영어 킹제임스역과 신국제역(NIV)도 같은 구조다. 그런데 2021년에 나온 개정판 신개역표준역(NRSVue, New Revised Standard Version Updated Edition)은 같은 절을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기 시작하셨을 때"로 옮겼다. 문장이 여기서 끝나지 않고 2절로 이어진다. 미국 유대교 출판협회가 1962년에 낸 토라 번역(NJPS)도 같은 방식이다. 이 번역의 책임 편집자 해리 올린스키(Harry M. Orlinsky)는 1965년 강연에서 첫 문장을 왜 이렇게 옮겼는지를 따로 설명했다.

두 번역이 대본으로 삼은 히브리어는 한 글자도 다르지 않다.

בְּרֵאשִׁ֖ית בָּרָ֣א אֱלֹהִ֑ים אֵ֥ת הַשָּׁמַ֖יִם וְאֵ֥ת הָאָֽרֶץ׃

브레시트 바라 엘로힘 에트 하샤마임 베에트 하아레츠

처음에 / 창조했다 / 엘로힘이 / 하늘을 / 그리고 땅을

창세기 1:1, 히브리어 성경 비블리아 헤브라이카 슈투트가르텐시아(BHS)의 대본인 레닌그라드 사본

번역이 둘로 나뉘는 이유는 첫 낱말 בְּרֵאשִׁית(브레시트)에 있다. 이 낱말은 "처음"을 뜻하는 רֵאשִׁית(레시트) 앞에 전치사 "베"가 붙은 형태인데, 정관사가 없다. 히브리어에서 정관사 없는 명사는 대개 뒤에 오는 낱말과 묶여 "~의 처음에"라는 뜻이 된다. 그러면 1절은 "하나님이 창조하기 시작하셨을 때"라는 시간 부사절이 되고, 문장의 주절은 2절이나 3절에서 나온다. 반대로 이 낱말을 홀로 선 부사로 보면 1절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독립 문장이 된다.

차이는 문법에서 그치지 않는다. 독립 문장으로 읽으면 창조 이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는 진술이 가능해진다. 부사절로 읽으면 2절이 서술하는 상태, 곧 형태 없는 땅과 깊은 물과 어둠이 이미 있는 가운데 신이 질서를 세우는 이야기가 된다. 한 낱말의 문법 판정에 교리 하나가 걸려 있다.

이 문제는 근대 학자들이 처음 제기한 것이 아니다. 11세기 프랑스의 유대 주석가 라시(Rashi, 슐로모 이츠하키)가 이미 같은 결론을 적었다.

וְאִם בָּאתָ לְפָרְשׁוֹ כִּפְשׁוּטוֹ, כָּךְ פָּרְשֵׁהוּ: בְּרֵאשִׁית בְּרִיאַת שָׁמַיִם וָאָרֶץ … שֶׁאֵין לְךָ רֵאשִׁית בַּמִּקְרָא שֶׁאֵינוֹ דָבוּק לַתֵּבָה שֶׁלְּאַחֲרָיו

베임 바타 레파르쇼 키프슈토, 카크 파르셰후: 브레시트 브리아트 샤마임 바아레츠 … 셰엔 레카 레시트 바미크라 셰에노 다부크 라테바 셸레아하라브

이 구절을 문자 그대로 풀려고 한다면 이렇게 풀어라.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던 처음에" … 성경 어디에도 뒤따르는 낱말에 붙지 않은 '레시트'는 없기 때문이다.

라시, 창세기 1:1 주석

라시의 근거는 용례다. 성경에서 '레시트'는 언제나 뒤 낱말과 묶여 나오므로 여기서만 홀로 설 까닭이 없다. 2008년 로버트 홈스테드(Robert D. Holmstedt)는 학술지 Vetus Testamentum 58권에 실은 논문 「창세기 1장 1절의 제한적 통사 구조」에서 이 절을 관계사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제한적 관계절로 분석하고, 절대적 시작을 가리키는 전통 번역은 문법에서 끌어낼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반대 견해도 계속 나온다. 앤드루 스타인만(Andrew E. Steinmann)은 Journal for the Study of the Old Testament 43권 3호에 「창조의 첫 행위로서의 창세기 1장 1절」을 실어 독립 문장 독법을 옹호했다.

한국어 번역본 안에서도 같은 종류의 이동이 보인다. 창세기 1장 2절의 마지막 구절을 개역한글판은 "하나님의 신(神)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로 옮겼고, 개역개정판은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로 바꾸었다. 히브리어 רוּחַ(루아흐)는 바람·숨·영을 모두 가리키는 낱말이어서, 이 자리를 "하나님에게서 나온 바람"으로 옮기는 번역과 "하나님의 영"으로 옮기는 번역이 함께 존재한다. NRSVue는 앞쪽을 택했다.

한 절의 문법 판정이 천 년 가까이 정리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가 이 본문의 성격을 알려준다. 창세기 1장은 확정된 뒤에도 계속 다시 읽히고 다시 쓰인 본문이다.

본문에는 저자 이름이 없다 — 모세 저작설과 제사장 문서 가설

창세기 어디에도 누가 이 책을 썼는지 밝히는 문장이 없다. 저자에 관한 모든 주장은 본문 바깥에서 온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전통 견해는 오경(창세기·출애굽기·레위기·민수기·신명기 다섯 권)을 모세가 썼다고 본다. 근거는 오경이 일찍부터 "모세의 율법"으로 불렸다는 점이다. 바빌로니아 탈무드 「바바 바트라」 14b는 성경 각 권의 저자를 열거하면서 מֹשֶׁה כָּתַב סִפְרוֹ וּפָרָשַׁת בִּלְעָם וְאִיּוֹב, 곧 "모세가 자기 책과 발람 단락과 욥기를 썼다"고 적는다. 같은 대목은 신명기 마지막 여덟 절을 누가 썼느냐를 두고 랍비들이 이미 다투었다는 사실도 함께 전한다. 모세의 죽음을 서술한 구절을 모세가 썼다고 보기 어렵다는 문제였고, 여호수아가 썼다는 답과 모세가 눈물을 흘리며 받아썼다는 답이 나란히 실려 있다. 창세기 1장의 사건은 모세보다 앞선 일이므로, 전통 견해는 모세가 계시로 받아 기록했다고 설명한다. 오늘날 보수 신학계 일부는 여기에 후대의 소규모 편집이 더해졌다는 수정된 형태를 지지한다.

현대 성서학계 다수는 창세기 1장 1절부터 2장 3절까지를 별도의 자료에서 온 단위로 보고, 그 자료를 제사장 문서라고 부른다.

제사장 문서(P, Priestly source) 오경 곳곳에 흩어져 있는 단락들 가운데 제사 제도·계보·연대·정결 규정에 관심이 집중되고 문체와 어휘가 서로 닮은 부분을 하나로 묶어 부르는 이름이다. 창세기 1장, 노아 홍수 이야기의 일부, 아브라함 언약의 할례 규정, 레위기 대부분이 여기 속한다고 본다. 실제 문서가 발견된 적은 없고, 본문 내부의 어휘·문체·관심사를 근거로 재구성한 가설상의 자료다. 알파벳 P는 독일어 Priesterschrift(제사장 문서)의 머리글자다.

제사장 문서 가설의 근거는 크게 세 가닥이다.

첫째, 신의 호칭이 단락마다 다르다. 창세기 1장은 신을 줄곧 '엘로힘'(하나님)이라 부른다. 2장 4절 후반부터 시작하는 에덴 이야기는 '야훼 엘로힘'(개역개정의 '여호와 하나님')이라 부른다. 이 차이를 처음 체계적으로 다룬 사람은 루이 15세의 시의(侍醫)였던 프랑스 의사 장 아스트뤽(Jean Astruc)이다. 그는 1753년 브뤼셀에서 익명으로 펴낸 『모세가 창세기를 지을 때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원자료에 관한 추측』에서, 창세기 안에서 두 호칭이 단락 단위로 갈라져 분포한다는 점을 들어 모세가 여러 개의 기존 자료를 엮었다고 주장했다. 1711년 독일의 목사 헤닝 베른하르트 비터(Henning Bernhard Witter)가 비슷한 착안을 먼저 내놓았으나 널리 읽히지 않았다.

둘째, 두 창조 이야기의 순서가 서로 맞지 않는다. 1장에서는 식물과 동물을 먼저 만들고 사람을 남녀로 함께 마지막 날에 만든다. 2장에서는 남자를 먼저 만들고 그다음에 식물과 동물을 만들며 여자를 가장 나중에 만든다. 두 이야기를 한 사람이 이어 썼다고 보면 순서가 어긋난다.

셋째, 1장의 어휘와 형식이 레위기·민수기의 제사 규정과 겹친다. "그 종류대로"라는 분류 표현, "~의 내력이니라"(톨레도트)라는 계보 도입 공식, 날짜와 숫자를 꼼꼼히 세는 방식이 그렇다. 7일 구조가 안식일 제정으로 끝나는 것도 제사 제도에 관심이 쏠린 저자를 가리킨다.

이 관찰들을 오경이 네 개의 자료(야휘스트 J, 엘로히스트 E, 신명기계 D, 제사장 문서 P)를 합쳐 만들어졌다는 하나의 모델로 정리한 사람이 독일의 율리우스 벨하우젠(Julius Wellhausen)이다. 그는 1878년 『이스라엘 역사』 제1권을 냈고, 이 책은 이후의 판부터 『이스라엘 역사 서설』(Prolegomena zur Geschichte Israels)이라는 제목으로 나왔다. 벨하우젠은 카를 하인리히 그라프와 아브라함 퀴넨의 앞선 연구를 이어받아, 그때까지 가장 오래된 자료로 여겨지던 제사장 문서를 오히려 가장 늦은 자료로 뒤집었다.

반론도 일찍부터 있었다. 이탈리아 태생의 랍비이자 히브리대학 교수였던 움베르토 카수토(Umberto Cassuto)는 1941년 히브리어로 출간한 여덟 편의 강연 『문서가설과 오경의 구성』에서 가설의 판정 기준을 하나씩 검토했다. 그는 두 신 호칭을 한 저자가 쓰는 두 개념으로 보았다. 엘로힘은 모든 민족의 신으로서의 보편적 측면을, 야훼는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은 고유한 이름을 가리킨다는 설명이다. 카수토는 또한 벨하우젠이 고대 근동 문헌을 거의 활용하지 못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오늘날의 상황은 어느 한쪽의 승리로 정리되지 않았다. 20세기 후반 유럽 학계에서는 각 자료를 독립된 문서로 보는 대신 기존 본문에 덧붙인 보충층으로 보는 접근이 힘을 얻었다. 롤프 렌토르프와 에르하르트 블룸의 연구가 그 방향이고, 콘라트 슈미트는 유럽 학계가 문서가설을 정말로 버렸는지를 묻는 글을 따로 썼다. 반대 방향에서는 메나헴 하란, 바루크 슈바르츠, 조엘 베이든이 문서가설을 더 엄밀한 형태로 되살리려 했다. 베이든이 2012년 예일대 출판부에서 낸 『오경의 구성: 문서가설의 갱신』이 그 시도를 대표한다. 이런 수정과 논쟁에도 창세기 1장이 제사장 계열 저자의 글이라는 판단은 가장 널리 유지되는 부분에 속한다.

포로기에 쓰였는가, 그보다 앞서 쓰였는가

벨하우젠은 제사장 문서를 바빌론 포로기 이후의 글로 보았다. 바빌론 포로기는 기원전 586년 신바빌로니아 군대가 예루살렘과 성전을 파괴하고 유다 지도층을 바빌론으로 끌고 간 때부터, 기원전 538년 페르시아가 바빌론을 무너뜨리고 귀환을 허락할 때까지를 가리킨다. 성전을 잃은 공동체가 안식일과 할례처럼 장소에 매이지 않는 제도로 정체성을 유지했다는 설명은 창세기 1장이 안식일 제정으로 끝나는 구성과 맞아떨어진다.

이 판정은 지금도 다수설이지만 반대 주장이 꾸준히 나왔다. 히브리대학의 아비 후르비츠(Avi Hurvitz)는 1974년 Revue Biblique 81권에 실은 「제사장 법전 연대 판정에서 언어가 제공하는 증거」와 1982년 단행본 『제사장 문서와 에스겔서의 관계에 관한 언어학적 연구』에서, 제사장 문서의 히브리어가 포로기 이후 문헌인 에스겔서·역대기의 히브리어와 계통이 다르며 그보다 이른 단계에 속한다고 주장했다. 성서 히브리어를 고대 히브리어·표준 히브리어·후기 히브리어의 세 단계로 나누고, 특정 낱말이 어느 단계의 특징인지를 판정하는 방법이다. 후르비츠는 2000년 Zeitschrift für die Alttestamentliche Wissenschaft 112권에 조지프 블렌킨솝의 반론에 답하는 글을 다시 실었다. 제이컵 밀그롬은 이 방법을 레위기 주석에 적용해, 제사장 문서가 쓰는 회중(에다) 같은 낱말이 포로기 이후 문헌에서는 다른 낱말로 대체된다는 점을 들었다.

로널드 헨델(Ronald S. Hendel)은 2005년 저서 『아브라함을 기억하기』에서 이 논쟁을 정리하면서, 수십 년 동안 유대계 학자 다수가 제사장 문서를 신명기보다 이른 포로기 이전 자료로 보아 온 반면 기독교계 학계는 벨하우젠의 틀을 따라왔다고 적었다.

연대 판정이 학계의 소속에 따라 나뉘어 온 사정은 이 논쟁을 읽을 때 함께 보아야 한다. 벨하우젠의 모델은 19세기 독일 개신교 신학부에서 나왔고, 제사 제도를 후대의 형식화로 보는 그 시대의 종교사 이해를 바탕에 두었다. 후르비츠와 예헤즈켈 카우프만 계열의 반론은 히브리어 자체의 통시적 변화를 자료로 삼는다. 두 쪽이 근거로 쓰는 자료의 종류가 다르므로, 어느 쪽이 이겼다고 정리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언어 연대 측정 방법 자체에 대한 반론도 있다. 이언 영과 로버트 레제트코는 마소라 본문 하나를 언어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 전제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사본마다 철자와 표현이 다르기 때문이다.

바빌론 창조 서사시와 겹치는 것과 겹치지 않는 것

연대 논쟁과 별개로, 창세기 1장이 메소포타미아의 세계관 안에서 쓰였다는 점은 본문 자체에서 확인된다. 바빌론의 창조 서사시 『에누마 엘리시』는 일곱 개의 점토판에 적힌 천 행 남짓의 시로, 니네베의 아슈르바니팔 왕실 서고에서 나온 판본이 기원전 7세기의 것이다. 그 첫 두 행은 이렇게 시작한다.

e-nu-ma e-liš la na-bu-ú šá-ma-mu / šap-liš am-ma-tum šu-ma la zak-rat

위로 하늘이 아직 이름으로 불리지 않고, 아래로 땅이 아직 이름을 얻지 못했을 때

『에누마 엘리시』 제1토판 1~2행, 표준 판독문. 비평 정본은 W. G. Lambert, Babylonian Creation Myths(2013)

서사시의 제목 '에누마 엘리시'는 첫 두 낱말을 그대로 딴 것이고, 첫 낱말 enūma는 "~했을 때"라는 뜻의 시간 접속사다. 창세기 1장 1절을 부사절로 읽는 독법이 성립한다면, 두 본문은 같은 형식으로 시작하는 셈이 된다.

세계의 모양도 겹친다. 두 본문 모두 처음에 물이 모든 것을 덮고 있고, 그 물을 위와 아래로 나누어 하늘을 세운다. 창세기 1장 2절의 '깊음'을 뜻하는 히브리어 תְּהוֹם(테홈)은 『에누마 엘리시』의 바닷물 신 티아마트와 같은 셈어 어근에서 왔다. 사람을 만들기에 앞서 신들이 의논하는 장면도 양쪽에 있다. 창세기 1장 26절의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는 복수형이 그 자리다.

겹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에누마 엘리시』에서 세계는 신들의 전쟁에서 만들어진다. 마르두크가 티아마트를 죽이고 그 몸을 갈라 하늘과 땅을 만든다. 창세기 1장에는 싸움이 없다. 신이 말로 명령하면 그대로 된다. 테홈은 인격도 이름도 없는 물일 뿐이다. 해와 달도 이름 없이 "큰 광명체"와 "작은 광명체"로만 불린다. 히브리어에는 해와 달을 가리키는 고유 낱말 שֶׁמֶשׁ(셰메시)와 יָרֵחַ(야레아흐)가 분명히 있는데도 이 장에서는 쓰지 않는다. 셰메시는 메소포타미아 태양신 샤마시와 같은 어근이다. 이 회피는 의도된 선택이다.

본문 자체의 짜임새 — 여덟 번의 창조와 일곱 개의 날

본문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보기 전에, 바뀌기 전의 짜임새를 짚어 둘 필요가 있다. 창세기 1장은 반복되는 공식으로 짜인 구조물이다.

각 날은 같은 순서를 따른다. "하나님이 이르시되"로 명령이 나오고, "그대로 되니라"로 실행이 확인되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로 평가가 붙고,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째 날이니라"로 닫힌다. 창조 행위는 여덟 번인데 날은 여섯 개다. 셋째 날에 두 번(뭍과 식물), 여섯째 날에 두 번(짐승과 사람) 일어나기 때문이다. 여섯 날은 다시 둘로 나뉜다. 첫 사흘은 빛과 어둠, 위의 물과 아래의 물, 바다와 뭍이라는 자리를 나누고, 다음 사흘은 그 자리를 채울 것들, 곧 광명체와 물고기·새와 짐승·사람을 만든다.

날을 세는 방식도 일정하지 않다. 첫째 날만 기수 יוֹם אֶחָד(욤 에하드), 곧 "하루" 또는 "날 하나"로 적히고 둘째 날부터는 서수로 적힌다. 둘째 날부터 다섯째 날까지는 정관사가 없고 여섯째와 일곱째 날에만 정관사가 붙는다. 히브리어를 그대로 옮기면 "날 하나, 둘째 날, 셋째 날, 넷째 날, 다섯째 날, 그 여섯째 날, 그 일곱째 날"이 된다. 70인역은 첫째 날을 ἡμέρα μία, 곧 "하루"로 옮겨 이 특징을 살렸다. 요세푸스는 이 점을 알아채고 『유대 고대사』에서 모세가 "첫째 날" 대신 "하루"라고 적었다는 사실을 언급한 뒤, 그 이유는 따로 쓸 책에서 설명하겠다며 미루었다.

구조가 이렇게 촘촘하기 때문에 어긋난 자리가 눈에 띈다. 둘째 날에만 "보시기에 좋았더라"가 없고, 셋째 날에는 두 번 나온다. 일곱째 날에는 저녁과 아침이 없다. 고대의 독자들이 손을 댄 곳은 대부분 이런 자리였다.

일곱째 날이 여섯째 날로 바뀐 자리

오늘날 히브리어 성경의 기준이 되는 본문과 고대 번역본들은 창조 이야기 안에서 몇 군데 다르다. 그 가운데 가장 분명한 자리가 창세기 2장 2절이다.

마소라 본문(MT, Masoretic Text) 오늘날 히브리어 성경과 그 번역본 대부분의 대본이 되는 본문이다. 히브리어는 본래 자음만 적었으므로 같은 자음 배열을 여러 가지로 읽을 수 있었다. 기원후 7세기부터 10세기 사이에 마소라라 불린 유대 학자 집단이 모음 부호와 낭송 악센트, 여백 주석을 붙여 읽는 방식을 하나로 고정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완전한 사본은 기원후 1008년 무렵의 레닌그라드 사본이며, 그보다 이른 알레포 사본은 일부가 소실되었다.
70인역(LXX, Septuagint) 기원전 3세기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오경을 그리스어로 옮긴 번역본과, 그 뒤에 덧붙여진 나머지 구약 번역본을 묶어 부르는 이름이다. 이름은 프톨레마이오스 2세가 번역을 위해 장로 72명을 불렀다는 『아리스테아스의 편지』의 전설에서 왔다. 라틴어 숫자 70(septuaginta)을 딴 이름이지만 전설이 말하는 인원은 72명이다. 초기 기독교는 히브리어 본문 대신 이 그리스어 본문을 구약으로 읽었고, 신약의 구약 인용도 대개 여기서 온다.

마소라 본문의 창세기 2장 2절은 이렇게 적는다.

וַיְכַל אֱלֹהִים בַּיֹּום הַשְּׁבִיעִי מְלַאכְתֹּו אֲשֶׁר עָשָׂה וַיִּשְׁבֹּת בַּיֹּום הַשְּׁבִיעִי מִכָּל־מְלַאכְתֹּו אֲשֶׁר עָשָֽׂה׃

바예칼 엘로힘 바욤 하셰비이 멜라크토 아셰르 아사 바이슈보트 바욤 하셰비이 미콜 멜라크토 아셰르 아사

엘로힘이 일곱째 날에 자기가 하던 일을 마쳤고, 일곱째 날에 자기가 하던 모든 일에서 그쳤다.

창세기 2:2, 마소라 본문

같은 절이 사마리아 오경에서는 다르다. 사마리아 오경은 사마리아인들이 자기네 경전으로 보존해 온 오경의 히브리어 본문으로, 유대인의 본문과는 별도의 전승 계통을 이룬다.

ויכל אלהים ביום הששי מלאכתו אשר עשה וישבת ביום השביעי מכל מלאכתו אשר עשה׃

바예칼 엘로힘 바욤 하시시 … 바이슈보트 바욤 하셰비이 …

엘로힘이 여섯째 날에 자기가 하던 일을 마쳤고, 일곱째 날에 자기가 하던 모든 일에서 그쳤다.

창세기 2:2, 사마리아 오경

70인역과 시리아어 번역본 페시타도 사마리아 오경과 같이 "여섯째 날"로 읽는다. 기원전 2세기 중엽의 유대 문헌 『희년서』 2장 1절과 기원후 1세기 요세푸스의 『유대 고대사』 1권 33절도 창조가 엿새로 끝났다고 명시한다.

왜 이렇게 나뉘는지는 본문 자체가 알려준다. 마소라 본문대로 읽으면 신이 일곱째 날에도 무언가를 마무리했다는 뜻이 되어, 안식일에 일했다는 해석의 여지가 생긴다. 안식일 규정은 유대교의 핵심 제도이므로 이 여지는 그대로 둘 수 없었다. "일곱째"를 "여섯째"로 바꾸면 문제가 사라진다.

이 수정이 판단의 결과였다는 증거는 유대 전승 안에 남아 있다. 바빌로니아 탈무드 「메길라」 9a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을 위해 토라를 그리스어로 옮긴 장로들이 본문 여러 곳을 일부러 달리 썼다고 전하면서, 그 목록 안에 창세기 2장 2절을 넣는다. 장로들은 "일곱째 날에 마쳤다" 대신 "여섯째 날에 마쳤다"고 적었다.

같은 목록에 창세기 1장 26절도 들어 있다.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우리의 형상을 따라"라는 복수형을 장로들이 단수로 바꾸어 "내가 사람을 만들겠다"로 적었다. 게르하르트 하젤은 1975년 Andrews University Seminary Studies에 실은 논문 「창세기 1장 26절의 '우리가'의 의미」에서 이 전승을 검토하며 복수형 해석의 역사를 정리했다. 복수형을 두고는 여러 설명이 경쟁해 왔다. 신들의 회의를 가리킨다는 설명, 천사들에게 한 말이라는 설명, 위엄을 나타내는 복수라는 설명, 혼잣말이라는 설명이 있고, 기독교 전통은 삼위일체의 암시로 읽었다. 아람어 번역본 가운데 천사에게 한 말로 명시한 것은 위(僞)요나단 탈굼 하나뿐이다.

두 사례의 방향이 같다. 신이 안식일에 일한 것처럼 읽히는 대목과 신이 여럿인 것처럼 읽히는 대목에서, 번역자는 그 여지를 지웠다.

마소라 본문을 유지한 쪽에서는 대신 해석으로 문제를 풀었다. 라시와 이븐 에즈라는 2장 2절의 동사를 "일곱째 날에 이르러 이미 마친 상태였다"로 옮길 수 있다고 보았다. 한쪽은 낱말을 바꾸었고 다른 쪽은 읽는 방식을 바꾸었다. 문제의식은 같았다.

같은 사본 조각을 정반대로 읽는 두 판정

창세기 1장 안에도 본문이 다른 자리가 있다. 두 군데가 특히 많이 논의된다.

첫째는 1장 8절이다. 창조의 여섯 날 가운데 다섯 날에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가 붙는다. 둘째 날에만 없다. 70인역은 이 문장을 8절에 넣어 여섯 날을 모두 같은 형식으로 맞추었다. 히브리어 사본 전승에는 그 문장이 없다.

유대 전승은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5세기 무렵 편집된 미드라시 『창세기 라바』 4장 6절은 "둘째 날에 왜 '좋았더라'가 적히지 않았는가"를 물음으로 세우고 두 가지 답을 전한다. 랍비 요하난은 요세 벤 할라프타의 이름으로 그날 게힌놈(지옥)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라 했고, 랍비 하니나는 그날 물과 물을 나누는 일에서 분열이 세상에 들어왔기 때문이라 했다. 라시는 물에 관한 일이 셋째 날에야 끝났기 때문에 둘째 날에는 아직 평가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고, 그래서 셋째 날에 "좋았더라"가 두 번 나온다고 보았다. 그리스어 번역자는 빠진 문장을 채웠고, 랍비들은 빠진 자리에 뜻을 붙였다.

둘째는 1장 9절이다. 70인역에는 물이 모이고 마른 땅이 드러난 일을 한 번 더 서술하는 문장이 있는데 마소라 본문에는 없다. 이 대목이 논쟁이 된 것은 쿰란에서 나온 히브리어 사본 조각 4QGenk가 70인역과 같은 문장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자료를 놓고 두 판정이 맞선다. 헨델은 1998년 옥스퍼드대 출판부에서 낸 『창세기 1~11장의 본문: 본문 연구와 비평 정본』에서, 마소라 본문 쪽이 같은 낱말이 반복되는 자리에서 한 덩어리를 건너뛴 초기 필사 오류를 겪었다고 보고, 70인역과 쿰란 조각이 전하는 형태를 더 이른 본문으로 판정했다. 에마누엘 토브(Emanuel Tov)는 2014년 논문 「창세기 1~11장 70인역의 조화 경향」에서 정반대로 읽는다. 토브는 이 열한 장의 70인역에서 앞뒤 구절과 형식을 맞추려고 문장을 덧붙인 사례를 52건 뽑아내면서, 1장 9절의 추가분을 같은 절 앞부분을 되풀이한 조화의 결과로 분류하고 쿰란 조각도 같은 현상일 가능성을 적었다.

같은 조각이 한 학자에게는 더 오래된 본문의 증거이고 다른 학자에게는 후대에 손질한 흔적이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조각 하나로 결정되지 않는다. 판정은 70인역 전체를 어떤 종류의 번역으로 보느냐에 달려 있다. 조화 경향이 강한 번역으로 보면 추가분은 번역자의 것이 되고, 대본에 충실한 번역으로 보면 추가분은 사라진 히브리어 본문의 흔적이 된다. 토브가 세는 52건은 앞의 전제를 세우는 근거이고, 헨델이 드는 4QGenk는 뒤의 전제를 세우는 근거다.

"원본"이라는 말이 조용히 전제하는 것

이 논쟁은 더 큰 전제를 건드린다. 본문 하나를 다른 본문보다 "더 원본에 가깝다"고 말하려면, 하나의 원본이 있었고 모든 사본이 거기서 갈라져 나왔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쿰란 발견은 그 전제를 흔들었다.

쿰란 동굴에서 나온 성경 사본은 200종이 넘고, 그 가운데 창조 이야기의 일부를 담은 창세기 사본은 1QGen, 4QGenb, 4QGend, 4QGeng, 4QGenh1, 4QGenk 여섯 종이다. 그중 4QGenb는 창세기 1장 1절부터 27절까지를 담고 있고 본문이 마소라 본문과 같다. 반면 4QGenk는 위에서 본 대로 70인역 쪽에 붙는다. 같은 시기 같은 지역에서 서로 다른 본문 형태가 함께 유통되고 있었다.

토브는 2015년 학술지 Open Theology 1권에 실은 논문에서 이 상황을 본문의 다원성으로 정리한다. 쿰란의 사본들은 여러 본문 형태가 공존했음을 보여주는 반면, 쿰란 바깥 유대 광야의 다른 유적에서 나온 성경 사본 25종은 중세 마소라 본문과 거의 그대로 일치한다. 곧 기원후 1세기를 지나면서 한 계통이 표준이 된 것이지,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이 아니다.

따라서 "창세기 1장의 원본"을 지목하는 일은 현재의 사본 증거로는 가능하지 않다. 남는 것은 어느 형태가 어느 방향으로 바뀌었는지, 그리고 왜 바뀌었는지다.

번역이 하늘의 모양을 바꾼 자리

본문의 낱말을 그대로 두어도, 다른 언어로 옮기는 순간 뜻이 이동한다. 창세기 1장에서 그 이동이 가장 크게 일어난 낱말이 둘째 날에 나오는 רָקִיעַ(라키아)다.

라키아는 "두들겨 펴다, 얇게 늘이다"라는 뜻의 동사 רָקַע(라카)에서 나온 명사다. 금속을 두들겨 펴서 판을 만드는 동작을 가리키는 낱말이다. 70인역은 이 낱말을 그리스어 στερέωμα(스테레오마)로 옮겼다. '단단한 것'이라는 뜻이고, 어근 στερεός는 '굳은, 딱딱한'을 뜻한다. 기원후 400년 무렵 히에로니무스가 라틴어 성경 불가타를 만들면서 이 그리스어를 firmamentum으로 옮겼다. '버티는 것, 굳건한 받침'이라는 뜻이다. 1611년 킹제임스역은 라틴어를 그대로 음차해 firmament로 적었고, 한국어 개역 계열은 '궁창'으로 옮겼다.

이 연쇄의 결과로, 둘째 날에 만들어진 것이 단단한 덮개라는 그림이 서양 성경 독자에게 굳어졌다. 20세기 독일의 구약학자 게르하르트 폰 라트는 라카 동사가 하늘의 덮개를 두들겨 단단하게 만드는 동작을 가리킨다고 보고, 불가타의 firmamentum이 지금도 최선의 번역이라고 적었다.

반대 주장은 주로 창조과학 진영에서 나온다. '앤서스 인 제네시스'와 '어폴로제틱스 프레스' 같은 기관은 단단한 덮개라는 관념이 히브리어에 없었고 이집트에서 일하던 70인역 번역자들이 그곳의 우주관을 끌어들이면서 생겼다고 설명한다. 이 설명에는 지켜야 할 결론이 앞서 있다. 성경이 고대의 잘못된 우주관을 담고 있다는 지적을 막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번역 단계에서 오류가 들어왔다는 결론이 필요하다. 같은 자료를 놓고 폰 라트는 히브리어 자체가 단단한 덮개를 가리킨다고 보았다.

번역이 뜻을 옮긴 자리는 더 있다. 창세기 1장 2절에서 땅의 상태를 가리키는 히브리어 תֹהוּ וָבֹהוּ(토후 바보후)는 '황무하고 텅 빔'에 가까운 말인데, 70인역은 이를 ἀόρατος καὶ ἀκατασκεύαστος, 곧 "보이지 않고 아직 짜이지 않은"으로 옮겼다. 앞의 낱말 ἀόρατος는 그리스 철학에서 감각으로 볼 수 없는 것을 가리키는 전문 용어다. 이 번역을 읽은 사람에게 창세기 1장 2절의 땅은 황무한 들판보다 형태를 받기 전의 질료에 가까워진다.

기원후 2세기에 나온 다른 그리스어 번역본들은 이 선택을 되돌렸다. 아퀼라는 같은 자리를 κένωμα καὶ οὐθέν, 곧 "빈 것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옮겼고, 심마쿠스는 ἀργὸν καὶ ἀδιάκριτον, 곧 "놀려 둔 것과 구분되지 않은 것"으로 옮겼다. 아퀼라는 1장 1절의 동사도 70인역의 ἐποίησεν(만들었다) 대신 ἔκτισεν(세웠다)으로 바꾸고, 히브리어의 목적격 표시 אֵת를 그리스어에 없는 자리인데도 σύν으로 일일이 옮겼다. 히브리어 본문의 형태를 최대한 그대로 보이려는 번역이었다.

번역의 선택은 다음 세대의 해석을 규정한다. 알렉산드리아의 유대 철학자 필론은 기원후 30년에서 40년 사이에 쓴 『세계 창조론』에서 창세기 1장을 다루는데, 그가 읽은 본문은 70인역이었다. 필론은 여섯 날을 논리의 순서로 읽었다. 시간의 순서로 보지 않았다. 신은 모든 것을 동시에 만들었고, 모세가 그것을 차례로 서술한 것은 가르치기 위해서라는 설명이다. 첫날의 빛은 지성으로만 파악되는 빛이 된다. 플라톤의 『티마이오스』가 말하는 이데아의 세계를 창세기 안에서 읽어낸 것인데, 그 독해는 "보이지 않고 아직 짜이지 않은" 땅이라는 그리스어 표현 위에서 훨씬 자연스럽게 성립한다.

본문을 건드리지 않고 다시 쓰는 길

낱말을 고치는 것 말고 다른 경로도 있었다. 본문은 그대로 두고 그 옆에 다시 쓴 이야기를 놓는 방식이다.

『희년서』는 기원전 160년에서 150년 사이에 히브리어로 쓰인 것으로 보는 문헌으로, 천사가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받아쓰게 한 형식으로 창세기와 출애굽기를 다시 서술한다. 쿰란에서 이 책의 사본이 열네다섯 종 나왔고, 그중 가장 이른 4Q216은 기원전 125년에서 100년 사이의 것으로 본다. 『희년서』 2장은 첫날에 만들어진 것을 일곱 가지로 헤아리는데, 그 안에 창세기 1장에는 없는 천사들이 들어 있다. 첫날에 천사가 만들어졌다는 서술은 창세기 1장 2절의 "하나님의 영"을 실마리로 삼은 해석으로 본다. 같은 장은 창조가 엿새로 끝났다고 명시해 안식일 문제를 함께 정리한다.

요세푸스는 기원후 93년 무렵 로마에서 낸 『유대 고대사』 1권에서 창조 이야기를 그리스어 산문으로 다시 쓴다. 그는 둘째 날에 신이 하늘을 세우고 그 둘레에 수정으로 된 궁창을 둘러 비와 이슬을 내리게 했다고 적는데, 이 설명은 창세기 본문에 없고 그리스 천문학의 천구 관념에서 왔다. 그리고 1권 33절에서 모세가 세계와 그 안의 모든 것이 엿새 만에 만들어졌다고 말했으며 일곱째 날은 쉼이었다고 정리한다.

아람어 번역본인 탈굼도 같은 일을 한다. 회당에서 히브리어 낭독 뒤에 붙이던 아람어 풀이가 굳어진 것이 탈굼인데, 번역이면서 해석이다. 탈굼 네오피티는 창세기 1장 1절을 "처음부터, 지혜로, 주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고 완성하셨다"로 옮긴다. 히브리어에 없는 "지혜로"가 들어가 있고, 동사도 하나에서 둘로 늘었다. "지혜로"라는 삽입은 잠언 8장 22절에서 지혜가 창조에 앞서 있었다고 말하는 구절을 끌어온 결과다. 위요나단 탈굼은 한 걸음 더 나가 "주님의 메므라(말씀)"가 창조했다고 적는다.

같은 연결이 유대 주석 전통 안에서 계속 쓰였다. 라시는 창세기 1장 1절 주석의 첫머리에서, 이 절이 풀이를 요구하는 구절이라고 적고, 잠언 8장에서 토라가 "그의 길의 처음"으로 불린다는 점을 들어 "레시트를 위하여" 세계가 창조되었다는 미드라시 독법을 먼저 제시한다. 13세기의 나흐마니데스는 브레시트라는 낱말이 지혜를 가리킨다고 보면서, 예루살렘 탈굼이 그래서 "지혜로"라고 옮겼다고 설명한다.

이 경로가 본문 수정과 다른 점은 하나다. 히브리어 본문은 그대로 남는다. 유대교와 기독교가 이후에 주로 택한 것은 이 두 번째 길이다.

모음 부호와 장 번호가 결정한 것

본문의 자음 배열이 굳은 뒤에도 두 가지가 남아 있었다. 어떻게 읽을 것인가와 어디서 끊을 것인가다.

모음 부호를 붙이는 작업은 읽는 방식을 하나로 정하는 일이었다. 같은 자음 배열을 두 가지로 읽을 수 있던 자리에서 한쪽이 선택되고 다른 쪽은 여백 주석으로 밀려나거나 사라졌다. 앞에서 본 창세기 1장 1절의 문법 논쟁이 천 년 넘게 이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마소라 학자들이 붙인 모음과 악센트는 1절을 독립 문장으로 끊어 읽는 쪽에 가깝지만, 라시는 같은 본문을 앞에 두고도 문자 그대로의 뜻은 부사절이라고 적었다.

이 모음 표기를 오류로 볼 것인지 해석으로 볼 것인지를 두고도 논의가 있다. 2022년에 발표된 한 연구는 브레시트의 모음 표기를 의도된 상호 참조로 본다. 문법의 실수로 보지 않는다. 잠언 8장 22절에서 지혜가 "그의 길의 레시트"로 불리므로, 창세기 1장 1절의 레시트를 연계형으로 표기해 두면 독자가 그 구절을 떠올리게 된다는 설명이다. 이 해석이 맞다면 마소라 학자들은 앞 시대의 탈굼과 같은 일을 부호 하나로 했다.

장 번호는 훨씬 늦게 붙었다. 오늘날 쓰는 성경의 장 구분은 13세기 초 파리 대학에서 가르치다가 캔터베리 대주교가 된 스티븐 랭턴(Stephen Langton)이 라틴어 성경에 붙인 체계에서 왔다. 12세기까지는 성경을 인용할 때 장을 지목하는 관행이 드물었고, 고대 후기부터 내려온 여러 구분 방식이 섞여 있었다. 여러 나라에서 온 학생들이 모인 파리 대학에서는 통일된 구분이 필요했다. 이 구분이 인쇄된 불가타 초기 판본에 실리면서 표준이 되었고, 그 뒤 그리스어 신약과 70인역, 근대의 모든 번역본으로 옮겨졌다. 절 번호는 그보다 더 늦어, 프랑스 인쇄업자 로베르 에스티엔(Robert Estienne)이 1551년 그리스어 성경에, 1555년 라틴어 불가타에 붙였다.

여기서 어긋남이 하나 생긴다. 제사장 문서의 창조 이야기는 1장 1절에서 시작해 2장 3절에서 끝난다. 안식일 제정이 이야기의 마무리다. 그런데 장 경계는 1장 31절 뒤에 놓였다. 그래서 "창세기 1장"이라는 단위는 원저자가 구성한 단위에서 일곱째 날 대목이 잘려 나간 형태다. 이 글이 창세기 2장 2절의 문제를 창세기 1장의 문제로 함께 다루는 이유가 여기 있다. 장 번호는 파리 대학 강의실의 필요에서 나온 장치이며 본문 자체에는 없다.

히브리어 사본에는 그 대신 다른 구분이 있었다. 단락이 끝나는 자리에 빈 공간을 남기는 방식으로, 줄 끝까지 비우면 열린 단락, 줄 안에서 일부만 비우면 닫힌 단락으로 표시했다. 쿰란의 창세기 사본들에도 이 표시가 남아 있어서, 고대의 필사자들이 창조 이야기를 어디서 끊어 읽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무로부터의 창조'는 이 본문에서 나오지 않았다

창세기 1장 1절을 독립 문장으로 읽는 번역이 오래 표준이 된 데에는 교리가 작용했다. 기독교 신학에서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는 신이 아무것도 없는 데서 만물을 있게 했다는 교리다. 이미 있던 재료를 가공했다는 설명을 배제한다. 이 교리가 있으면 1절은 창조 이전의 절대적 무를 전제한 선언이 되고, 2절의 물과 어둠은 창조된 뒤의 첫 상태가 된다.

그런데 이 교리가 언제 생겼는지를 따라 올라가면 창세기 1장보다 훨씬 뒤의 문헌이 나온다.

기원전 2세기에서 1세기 사이의 유대 문헌들은 서로 다르게 말한다. 알렉산드리아에서 그리스어로 쓰인 『솔로몬의 지혜』 11장 17절은 신의 전능한 손이 "형태 없는 재료에서" 세계를 만들었다고 적는다. 재료가 이미 있었다는 전제다. 반대로 『마카베오하』 7장 28절은 다르게 말한다.

οὐκ ἐξ ὄντων ἐποίησεν αὐτὰ ὁ θεός

우크 엑스 온톤 에포이에센 아우타 호 테오스

신은 있던 것들에서 그것들을 만들지 않았다.

마카베오하 7:28

이 구절이 무로부터의 창조를 말한 것인지는 다투어진다. 슈무터마이어(G. Schmuttermayr)는 1973년 Biblische Zeitschrift 신편 17권에 이 구절이 그 뜻인지 묻는 논문을 실었고, 이 대목의 성격이 기도와 권면에 가깝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실제 문맥은 박해 앞에서 어머니가 아들을 격려하는 장면이다. 이 문장은 헬레니즘 철학이 다투던 질료의 영원성 문제를 정면으로 겨냥하지 않는다.

교리가 개념으로 확정된 것은 기원후 2세기 후반이다. 게르하르트 마이(Gerhard May)는 1978년 베를린에서 낸 『무로부터의 창조: 창조 교리의 성립』에서, 이 교리를 2세기의 영지주의 논쟁 속에서 만들어진 새로운 정식으로 보았다. 유대교와 초기 기독교의 창조 이해가 자연스럽게 자라난 결과로 보지 않았다. 물질의 기원을 놓고 영지주의자들과 다투는 과정에서 신의 주권을 끝까지 밀고 나갈 필요가 생겼다는 설명이다. 마이가 결정적 자리로 지목한 인물이 안디옥의 테오필루스다.

ἐξ οὐκ ὄντων τὰ πάντα ἐποίησεν

엑스 우크 온톤 타 판타 에포이에센

있지 않은 것들에서 만물을 만들었다.

안디옥의 테오필루스, 『아우톨리쿠스에게』 2권 4장

마이의 논지는 널리 받아들여졌지만 반론도 있다. 폴 코팬(Paul Copan)은 1996년 Trinity Journal 17권에 「무로부터의 창조는 성경 이후의 발명인가」를 실어, 창세기 1장과 『마카베오하』 7장 28절에 이미 그 교리가 담겨 있다고 주장했다.

기독교 신학 안에서도 이 교리와 창세기 1장 2절의 관계는 정리하기 어려웠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에서 신이 "거의 무에 가까운" 질료를 먼저 만들고 그 질료에서 세계의 형태를 만들었다고 쓰면서, 두 일 사이에 시간 간격이 없었다는 단서를 달았다. 『솔로몬의 지혜』가 말하는 형태 없는 재료와 무로부터의 창조를 동시에 지키려는 서술이다. 13세기의 토마스 아퀴나스도 『신학대전』에서 질료의 형태 없음이 시간상 형태 갖춤보다 앞섰는지를 따로 물어야 했다.

어느 쪽이 맞든 순서는 분명하다. 본문이 교리를 낳은 것보다 교리가 본문을 읽는 틀이 된 쪽이 먼저다. 2세기의 논쟁을 거쳐 정식화된 교리가 이후의 번역과 주석에서 1절을 읽는 기준이 되었다. 오늘날 "태초에"와 "창조하기 시작하셨을 때" 가운데 어느 쪽을 고를 것이냐는 물음이 문법 문제이면서 동시에 교리 문제인 것은 그 때문이다. 이 선택을 두고 나온 최근 논의에 창조과학 계열 기관인 '앤서스 인 제네시스'가 펴내는 Answers Research Journal의 반박 논문이 섞여 있는 것도 같은 사정을 보여준다. 문법 논쟁의 참여자들은 각자 지키려는 결론을 갖고 들어온다.

결론 — 수정의 방향은 하나였고, 원본을 지목하는 일보다 수정의 이유를 확인하는 편이 더 많은 것을 알려준다

창세기 1장의 저자를 묻는 물음에는 두 갈래 답이 있다. 전통 견해는 모세를 저자로 보고, 창조 사건이 모세보다 앞선다는 문제를 계시로 설명한다. 현대 성서학계 다수는 신의 호칭 분포, 두 창조 이야기의 순서 불일치, 제사 규정과 겹치는 어휘를 근거로 이 장을 제사장 계열 저자의 글로 보며, 연대는 바빌론 포로기 무렵으로 잡는다. 연대에 관해서는 히브리어의 통시적 특징을 근거로 그보다 이른 시기를 주장하는 반론이 유대계 학자들을 중심으로 이어져 왔고, 자료를 독립 문서로 볼 것인지 보충층으로 볼 것인지도 여전히 논쟁 중이다.

본문이 어떻게 달라졌느냐는 물음에는 답이 더 분명하다. 창세기 2장 2절에서 "일곱째 날"이 "여섯째 날"로 바뀌었고, 1장 26절의 복수형이 단수로 바뀌었으며, 1장 8절에 "보시기에 좋았더라"가 채워졌고, 1장 9절에는 문장 하나가 있거나 없다. 여기에 라키아를 단단한 덮개로 옮긴 그리스어와 라틴어의 선택, 토후 바보후를 철학 용어로 옮긴 70인역의 선택, 『희년서』와 요세푸스와 탈굼의 재서술, 마소라 학자들의 모음 부호, 13세기의 장 구분, 2세기에 정식화된 창조 교리가 겹쳐 왔다.

이 손질들은 방향이 같다. 본문을 그대로 두면 안식일 규정이 흔들리거나, 신이 여럿인 것처럼 읽히거나, 여섯 날의 형식이 깨지거나, 신의 전능이 제한되는 자리에서, 각 전승은 그 문제를 없애는 쪽을 택했다. 낱말을 바꾸거나, 빠진 문장을 채우거나, 부호로 독법을 정하거나, 해석으로 덮거나, 이야기를 다시 썼다.

그래서 "원본 창세기 1장"을 지목하는 작업은 현재의 증거로 끝나지 않는다. 쿰란의 사본들은 기원전 마지막 세기에 이미 여러 본문 형태가 함께 쓰이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같은 조각 하나를 두고 헨델은 더 이른 본문의 증거로, 토브는 후대 조화의 흔적으로 읽는다. 한 계통이 표준이 된 것은 기원후 1세기를 지나면서였다.

남는 물음은 어느 본문이 진짜냐가 아니라, 무엇이 문제로 느껴졌기에 손을 댔느냐다. 고대의 독자들이 이 본문에서 걸린 자리는 몇 군데로 모인다. 안식일에 일한 것처럼 읽히는 대목, 신이 혼자가 아닌 것처럼 읽히는 대목, 여섯 날 가운데 하루만 평가가 빠진 대목, 창조 이전에 이미 물과 어둠이 있는 것처럼 읽히는 첫 문장이다. 그 자리들이 바로 오늘날 번역본들이 서로 다르게 옮기는 자리이기도 하다. 번역본을 비교해 읽는 일은 어느 번역이 옳은지를 고르는 작업이라기보다, 2천 년 동안 무엇이 문제로 남아 있었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