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셈어와 알파벳 · 3

알파벳이 퍼지면서 무엇이 바뀌었는가 — 자모 순서와 모음 표기의 역사

2026년 9월 12일

한글을 제외하면 오늘날 쓰이는 표음문자 대부분이 3,800년 전 시나이 반도에서 만들어진 한 벌의 기호에서 갈라져 나왔다. 그런데 그 후손들의 모양은 서로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다르다. 라틴 문자는 모음 글자를 따로 두고, 아랍 문자는 두지 않으며, 인도 문자는 자음에 모음 부호를 붙여 음절 단위로 적는다. 이 차이는 문자가 전달 과정에서 닳은 흔적이 아니다. 받아들인 쪽의 언어 구조와 그 사회가 문자에 요구한 것이 매번 달랐고, 그때마다 같은 원리가 다른 모양으로 다시 만들어졌다.

같은 원리로 만든 세 가지 문자 유형

문자 체계를 유형으로 나눌 때는 낱글자가 무엇에 대응하는가를 기준으로 삼는다.

아브자드·알파벳·아부기다 아브자드는 자음만 적는 체계다. 페니키아 문자, 히브리 문자, 아랍 문자가 여기 속한다. 이름은 아랍어 자모 순서 ʾabjad에서 왔다. 알파벳은 좁은 뜻으로 쓸 때 자음과 모음을 같은 층위의 낱글자로 적는 체계를 가리킨다. 그리스 문자와 그 후손인 라틴 문자, 키릴 문자가 여기 속한다. 아부기다는 자음 글자에 기본 모음이 이미 딸려 있고, 다른 모음은 부호를 덧붙여 나타내는 체계다. 인도의 데바나가리, 태국 문자, 에티오피아의 그으즈 문자가 여기 속한다. 이 세 이름은 피터 대니얼스가 정리해 널리 쓰이게 되었다. 셋 모두 시나이에서 나온 같은 뿌리에서 갈라졌다.

세 유형의 차이를 만든 것은 모음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나다. 그리고 그 처리 방식을 결정한 것은 그 문자로 적어야 할 언어의 구조였다. 셈어는 자음 세 개가 어휘 의미를 담고 모음이 문법 정보를 담으므로 자음만 적어도 읽힌다. 그리스어는 모음이 낱말의 뜻 자체를 가르므로 그럴 수 없다. 인도의 언어들은 음절 구조가 규칙적이어서 자음에 모음을 딸려 붙이는 방식이 잘 맞았다.

자모 순서가 처음부터 둘이었다

a-b-c-d라는 순서는 3,000년 넘게 보존되었다. 셈어 자모 이름으로는 ʾalep-bet-gimel-dalet이고, 히브리어 알레프-베트-기멜-달레트, 그리스어 알파-베타-감마-델타, 라틴어 A-B-C-D가 모두 같다. 첫 두 글자의 이름을 붙인 알파벳이라는 낱말 자체가 그 보존의 증거다.

자모 목록(abecedary) 자모를 정해진 순서대로 죽 늘어놓은 기록이다. 문자를 익히고 외우기 위한 연습 자료였으므로, 고대 유적에서 발굴되면 그 시점에 그 지역에서 자모 순서가 어떠했는지를 직접 알려 준다. 명문의 내용을 판독하지 못해도 순서만으로 계통 정보를 얻을 수 있어, 문자사 연구에서 값이 특히 크다.

기원전 2000년기와 1000년기의 쐐기문자 자모 목록에 이 익숙한 순서가 나타난다. 프랭크 무어 크로스와 토머스 램딘이 1960년 학술지 Bulletin of the American Schools of Oriental Research 160권(21~26쪽)에 실은 「우가리트 자모 목록과 원시가나안 알파벳의 기원」이 그 자료를 다룬 초기 연구다. 우가리트에서는 자모 목록이 10점가량 나왔는데 순서가 모두 같다. 교사가 위에 적고 학생이 아래에 서툴게 따라 적은 점토판도 있다.

그런데 같은 시기에 전혀 다른 순서가 함께 쓰였다. h-l-ḥ-m으로 시작하는 할라함 순서다.

증거는 세 곳에서 나왔다. 첫째는 우가리트다. 피에르 보르드뢰유와 데니스 파디가 1995년 프랑스 금석문·문예 아카데미 회보 139권(855~860쪽)에 1988년 라스 샴라 발굴에서 나온 남셈어형 자모 목록을 보고했다. 둘째는 이스라엘 베트셰메시다. 1933년 하버드 조사단이 다섯 번째 발굴 시즌에 남쪽 벽 아래에서 깨진 쐐기문자 점토판을 찾았는데, 후대 판독에서 남셈어 자모 순서로 해석되었다. 우가리트 바깥에서 나온 가장 이른 알파벳 쐐기문자 자료다. 셋째는 이집트 테베다. 벤 하링이 2015년 학술지 Journal of Near Eastern Studies 74권(189~196쪽)에 「신왕국 초기 도편의 할라함?」을 실어, 테베 무덤 99호에서 나온 기원전 15세기 도편에 이 순서의 일부가 적혀 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 도편을 둘러싼 논의는 계속되었다. 한스베르너 피셔엘페르트와 만프레트 크레베르니크가 2016년 학술지 Zeitschrift für Ägyptische Sprache und Altertumskunde 143권(169~176쪽)에 자모 이름을 다루었고, 토마스 슈나이더는 2018년 Bulletin of the American Schools of Oriental Research 379권(103~112쪽)에서 이 도편이 할라함과 아브가드 두 순서를 함께 담은 이중 자모 목록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제목에 물음표가 붙어 있는 하링의 논문처럼, 이 판독들도 확정된 것이 아니다.

할라함 순서의 행방은 뚜렷하다. 기원전 1000년기에 남아라비아 문자의 표준 순서가 되었고, 거기서 갈라진 그으즈 문자를 통해 기독교 시대의 에티오피아로 이어져 오늘날까지 쓰인다. 암하라어나 티그리냐어를 배우는 사람이 처음 외우는 자모 순서가 ha-la-ḥa-ma인 것은 이 계보 때문이다.

어느 순서가 먼저인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할라함이 이집트에서 나온 순서일 가능성을 제기한 견해도 있다. 확정된 것은 청동기 시대에 이미 두 순서가 나란히 존재했고, 한쪽은 지중해를 거쳐 유럽으로, 다른 쪽은 홍해를 건너 아프리카의 뿔로 갔다는 사실이다.

원리는 그대로 두고 모양만 바꾼 우가리트

기원전 14~12세기 시리아 북부의 항구도시 우가리트는 알파벳을 쓰되 겉모습을 완전히 바꾸었다. 이 도시가 쓰던 기록 매체는 점토판이었고, 점토판에 글을 새기는 도구는 끝을 삼각형으로 깎은 갈대 펜이었다. 잉크로 선을 긋는 대신 쐐기 모양 자국을 찍는 방식이다.

우가리트인들은 알파벳 원리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글자 모양만 쐐기 조합으로 다시 설계했다. 길고 짧은 쐐기와 각도를 바꾼 쐐기를 몇 개씩 조합해 30자를 만들었다. 메소포타미아의 쐐기문자와 겉모습이 비슷하지만 원리는 정반대다. 메소포타미아 쐐기문자는 수백 개 기호가 음절과 낱말을 함께 나타내는 체계이고, 우가리트 문자는 30개 기호가 자음 하나씩을 나타내는 알파벳이다.

이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문자의 원리와 표기 매체가 따로 움직인다는 점이다. 원리는 빌려오되 매체에 맞추어 모양을 다시 만들 수 있다. 우가리트 문자는 도시가 기원전 12세기 초에 멸망하면서 함께 사라졌다.

주목할 것은 그 반대편이다. 알파벳이 이미 레반트에 있던 시기에도 메소포타미아의 행정과 외교는 계속 쐐기문자로 돌아갔다. 아카드어는 수메르인이 만든 쐐기문자를 빌려 2,000년 넘게 썼다. 기원전 14세기 아마르나 서한, 곧 이집트 궁정과 서아시아 여러 왕국이 주고받은 외교 문서도 쐐기문자로 쓰인 아카드어였다. 배우는 데 몇 년이 걸리는 체계를 계속 쓴 이유는 그것이 국제 표준이었기 때문이다. 더 배우기 쉬운 체계가 옆에 있다고 해서 기존 체계가 자동으로 밀려나지는 않았다.

그리스인이 남는 글자로 모음을 만들었다

기원전 1050년경 페니키아에서 22자 체계가 고정된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고 자음만 적는 아브자드였다. 페니키아 상인들의 지중해 교역을 따라 이 문자가 퍼졌다.

그리스인이 이를 받아들인 시점은 기원전 9세기 말에서 8세기 초로 본다. 남아 있는 가장 이른 그리스 명문 조각이 기원전 770~750년경이고, 그 글자 모양이 기원전 800~750년경의 페니키아 글자와 일치한다. 연대가 확실한 가장 이른 명문 둘은 기원전 725년경의 것으로, 아테네에서 나온 디필론 항아리와 티레니아해 이스키아섬 그리스 식민시에서 나온 이른바 네스토르의 잔이다.

문제는 그리스어가 자음만으로는 적히지 않는 언어라는 점이었다. 해결책은 남는 글자를 돌려쓰는 것이었다. 페니키아어에는 있으나 그리스어에는 없는 소리를 나타내던 글자들이 쓸모없이 남아 있었고, 그리스인은 이 글자들에 모음을 배정했다.

페니키아 글자원래 소리그리스 글자새 소리
ʾalep성문폐쇄음알파 Αa
heh엡실론 Ε짧은 e
yod반모음 y이오타 Ιi
ʿayin인두음오미크론 Ο짧은 o
waw반모음 w윕실론 Υu
ḥet인두 마찰음에타 Η긴 e

waw의 경로는 조금 복잡하다. 그리스인은 처음에 w 소리를 그대로 두고 디감마 Ϝ로 썼다가, 그 소리가 사라진 뒤 윕실론을 따로 만들어 u에 배정했다. 에타도 처음에는 h 소리를 나타내는 자음 글자였고, 방언에 따라 자음으로 쓰이기도 모음으로 쓰이기도 하다가 이오니아식 용법이 퍼지면서 긴 e로 정착했다. 아테네가 이를 받아들인 것은 기원전 400년경이다. 긴 o를 나타내는 오메가 Ω는 페니키아에 대응 글자가 없어 그리스인이 새로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자음과 모음을 같은 층위의 낱글자로 적는 체계가 완성되었다. 이 그리스 문자가 동쪽으로 프리기아에 전해져 비슷한 문자를 낳았고, 서쪽으로는 에우보이아 상인들을 따라 이탈리아로 건너가 에트루리아인이 받아들였다. 거기서 라틴 문자가 나왔다.

글자 이름은 거의 그대로 남았다. ʾalep(황소), bet(집), gimel이 알파·베타·감마가 되었다. 그리스어에서 이 이름들은 아무 뜻도 없는 글자 이름일 뿐이었다. 나중에 그리스인이 직접 만들거나 고친 글자만 뜻이 있는 이름을 가졌다. 오미크론과 오메가는 작은 o와 큰 o라는 뜻이고, 엡실론과 윕실론은 민 e와 민 u라는 뜻이다.

쓰는 방향도 한참 유동적이었다. 초기 그리스인은 한 줄씩 방향을 바꾸어 쓰는 부스트로페돈을 썼다. 소가 밭을 갈 때 이랑 끝에서 돌아 반대 방향으로 가는 모양에서 나온 이름이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굳은 것은 기원전 5세기경이다.

셈어 쪽은 부호를 덧붙여 해결했다

셈어권은 그리스와 다른 길을 갔다. 자음 전용 체계를 그대로 두고, 필요한 자리에만 표시를 더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세 단계로 진행되었다.

1단계 — 자음 글자를 모음에도 겸용하기

모음자모(matres lectionis) 라틴어로 읽기의 어머니라는 뜻이다. 자음 글자 가운데 소리가 약한 것들, 곧 w·y·h를 일부 자리에서 모음을 가리키는 용도로 겸용하는 방식을 말한다. 히브리어에서 waw가 자음 w도 되고 모음 o나 u도 되며, yod가 자음 y도 되고 모음 i나 e도 된다. 새 글자를 만들지 않고 있는 글자를 돌려 쓴 것이므로 적용이 불규칙하고, 같은 낱말이 이 글자를 넣어 적히기도 하고 빼고 적히기도 한다.

이 방식은 기원전 9세기경 아람어와 히브리어 표기에서 확인된다. 페니키아 문자 역시 기원전 9세기에는 주로 낱말 끝의 모음을 표시하는 용도로 이 방법을 쓰고 있었고, 그리스인이 받아들일 때 이 겸용 글자들이 모음 전용 글자로 전환되는 재료가 되었다. 쿰란에서 나온 사해문서는 모음자모를 후하게 넣어 적는 경향을 보인다. 읽기의 어려움을 덜기 위한 첫 단계 해결책이었다.

2단계 — 히브리어의 점

모음자모로는 발음이 고정되지 않았다. 성서 본문의 자음 한 글자도 건드리지 않으면서 발음을 확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자, 자음 글자 위아래에 점과 선을 찍는 체계가 만들어졌다.

세 곳에서 각각 다른 체계가 나왔다. 바빌로니아 체계는 글자 위에만 부호를 얹었고, 팔레스타인 체계는 그 중간 형태였으며, 갈릴리 호수 서안의 티베리아에서 만들어진 체계가 글자 위와 아래를 모두 쓰면서 가장 정밀했다. 티베리아 체계를 니쿠드라 부른다.

이 작업을 한 사람들을 마소라 학자라 한다. 티베리아에서는 벤 아셰르 가문과 벤 나프탈리 가문이 여러 세대에 걸쳐 체계를 다듬었다. 10세기 인물로 960년경 사망한 아론 벤 모세 벤 아셰르가 알레포 사본에 모음 부호와 낭송 기호를 붙이고 자음 본문을 마소라 전통에 맞추어 교정했다. 이 작업으로 모음 표기의 문법적 근거가 처음 드러났다는 평가를 받는다. 티베리아 체계를 온전히 담은 가장 오래된 완본은 1008년의 레닌그라드 사본이며, 오늘날 대부분의 히브리어 성서 편집본이 이 사본을 저본으로 삼는다.

바빌로니아 체계와 팔레스타인 체계는 티베리아 체계에 밀려 쓰이지 않게 되었다. 다만 예멘 유대인의 히브리어 발음 전통은 바빌로니아 계열에 기반을 두고 있어, 사라진 체계의 흔적이 발음 쪽에 남았다.

3단계 — 아랍어의 점과 부호

아랍 문자는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안고 있었다. 하나는 모음을 적지 않는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기본 획이 같아서 구별되지 않는 자음이 여럿 있다는 점이다. ب(b)·ت(t)·ث(th)·ن(n)·ي(y)가 한 무리를 이루고 ج(j)·ح(ḥ)·خ(kh)가 또 한 무리를 이룬다.

이슬람 초기의 쿠란 사본에는 점도 모음 부호도 없었다. 아랍어를 모어로 쓰는 사람에게는 읽혔지만, 이슬람이 아라비아 반도 바깥으로 빠르게 퍼지면서 아랍어가 모어가 아닌 신자가 급증하자 문제가 되었다. 쿠란을 잘못 읽는 일이 종교적으로 용납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전승에 따르면 688년경 사망한 아부 알아스와드 알두알리가 색이 다른 점을 글자 주위에 찍어 모음을 표시하는 방식을 처음 만들었다. 786년경 사망한 알할릴 이븐 아흐마드 알파라히디가 이를 정리해 오늘날의 하라카트로 바꾸었다. 두 가지 색의 잉크를 번갈아 쓰는 일이 번거로웠던 데다, 그사이 자음을 구별하는 점(이으잠)이 도입되어 색 구별이 없으면 두 종류의 점이 뒤섞였기 때문이다. 알할릴은 점 대신 작은 글자 모양을 얹었다. 긴 모음을 적는 글자 알리프·야·와우를 작게 줄여 대응하는 짧은 모음에 배정했고, 겹자음에는 작은 신을 얹었다.

이 전승을 그대로 사실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아부 알아스와드에게 돌리는 기록 자체가 후대의 서술이고, 같은 일을 나스르 이븐 아심 등 다른 인물에게 돌리는 판본도 있으며, 우마이야조 이라크 총독 알핫자즈 이븐 유수프의 지시로 이루어졌다는 설명도 함께 전한다. 초기 사본을 실물로 검토하는 연구에서는 이 발명 서사들을 전승으로 다루고, 실제 부호 도입은 여러 세대에 걸친 점진적 과정으로 본다.

히브리어와 아랍어 모두에서 같은 구조가 확인된다. 자음 전용 표기의 한계가 문제로 떠오른 계기가 종교 경전의 정확한 낭송이었고, 해결책은 본문의 자음을 그대로 둔 채 부호를 덧붙이는 방향이었다. 두 경우 모두 오늘날 부호는 초등 교재, 경전 본문, 외국인 학습서, 뜻이 둘로 읽히는 자리에만 붙이고 일상 문서에서는 생략한다.

동쪽으로 간 갈래

아람 문자는 서아시아 전역으로 퍼졌다. 신아시리아와 아케메네스 제국이 행정 언어로 아람어를 쓰면서 이 문자가 제국 전역의 공용 표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갈라진 것이 오늘날의 히브리 문자다. 가나안 계열의 고히브리 문자를 직접 물려받은 글자가 아니다. 바빌론 포로기 이후 제국 아람 문자를 받아들여 쓴 결과다. 시리아 문자도 같은 계열이다.

아랍 문자는 나바테아 문자를 거쳤다. 나바테아인은 아케메네스 제국의 공식 아람어를 문어로 썼는데, 그 문자가 점차 흘림체로 바뀌면서 아랍 문자가 되었다. 나바테아 문자와 아랍 문자의 중간 단계에 해당하는 명문 자료가 아라비아 북서부에서 계속 늘고 있다.

더 동쪽으로 가면 확실성이 떨어진다. 간다라 지역의 카로슈티 문자가 아람 문자에서 나왔다는 데는 폭넓은 동의가 있다. 인도의 브라흐미 문자는 그렇지 않다. 알브레히트 베버가 1856년에 셈어 기원설을 제기한 이래 논쟁이 이어졌다. 게오르크 뷜러는 1898년에 페니키아 문자를 원형으로 제시했으나, 리처드 살로몬은 1998년 저서에서 그 논거가 역사적·지리적·연대적으로 약하다고 비판했다. 마우리아 시대 아람어 명문이 여섯 점 발견되면서 페니키아설은 더 밀려났고, 카로슈티의 원형이 거의 확실히 아람 문자인 이상 브라흐미도 아람 문자에 기반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그러나 같은 아람 문자에서 왜 서로 아주 다른 두 문자가 나왔는지는 설명되지 않는다.

해리 팔크는 2018년 글에서 브라흐미가 아소카 시대에 합리적으로 새로 설계된 문자라고 보았다. 넓고 곧고 대칭적인 형태를 얻기 위해 그리스 문자 쪽에서 글자 유형을 골랐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는 방향도 편의상 채택했으나, 모음 처리 방식은 카로슈티 쪽을 유지했다고 보았다. 하르트무트 샤르페는 2002년 검토에서 이 견해에 유보를 달았다. 베다 학자들이 산스크리트를 음운 분석한 방식이 그리스 알파벳보다 브라흐미에 훨씬 가깝다는 지적이었다. 브라흐미가 마우리아 시대, 곧 기원전 3세기에 표준화되었다는 데는 합의가 있지만 그 기원은 미정으로 남아 있다.

남쪽 경로도 있다. 고대 남아라비아 문자는 홍해를 건너 악숨 왕국으로 갔고, 그으즈 문자가 되었다. 기원후 4세기에 이 문자는 아브자드에서 아부기다로 바뀌었다. 자음 글자에 모음을 나타내는 획을 덧붙여 음절 단위로 적게 되었다. 그으즈 문자로 암하라어를 적으면 기본 글자 34자에 각각 일곱 형태가 있고 w 계열 합자까지 더해 280자 안팎이 된다. 자음만 적던 22자 체계에서 출발한 문자가 반대 방향으로 간 사례다.

원시시나이 문자 (기원전 19~18세기) └─ 원시가나안 문자 ├─ 페니키아 문자 (기원전 1050년경 22자 고정) │ ├─ 그리스 문자 ─┬─ 에트루리아 문자 → 라틴 문자 │ │ ├─ 키릴 문자 │ │ └─ 콥트 문자, 고트 문자 │ ├─ 고히브리 문자 (사멸) │ └─ 아람 문자 ─┬─ 히브리 방형문자 │ ├─ 시리아 문자 │ ├─ 나바테아 문자 → 아랍 문자 │ ├─ 카로슈티 문자 (사멸) │ └─ (논쟁) 브라흐미 문자 → 인도·동남아 문자 ├─ 우가리트 쐐기 알파벳 (기원전 14~12세기) (사멸) └─ 고대 남아라비아 문자 → 그으즈 문자

결론 — 전파된 것은 원리였고, 모양은 매번 다시 만들어졌다

알파벳의 전파는 완성된 도구가 그대로 건네진 과정이 아니었다. 받은 쪽은 매번 자기 언어와 매체에 맞추어 체계를 고쳤고, 그 고침의 폭이 원형을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컸다.

가장 큰 변수는 모음이었다. 셈어는 자음 어근이 의미를 담으므로 자음만 적어도 읽혔고, 따라서 그리스인이 받았을 때 그 체계는 그대로 쓸 수 없는 물건이었다. 그리스인은 남는 자음 글자를 모음으로 돌려 알파벳을 만들었고, 셈어권은 자음 전용 체계를 유지한 채 부호를 덧붙였으며, 인도와 에티오피아 쪽은 자음에 모음을 딸려 붙이는 아부기다로 갔다. 세 갈래 모두 시나이에서 나온 한 벌의 기호를 출발점으로 삼았다.

매체도 형태를 바꾸었다. 우가리트는 점토판에 맞추어 알파벳 원리를 쐐기 조합으로 다시 구현했다. 반대로 알파벳이 옆에 있어도 메소포타미아는 2,000년 넘게 쐐기문자를 계속 썼다. 더 배우기 쉬운 체계가 언제나 이기지는 않았고, 그 체계를 쓰는 제도가 이미 자리 잡고 있느냐가 결정적이었다.

자모 순서가 청동기 시대에 이미 둘이었다는 사실은 이 과정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아브가드 순서와 할라함 순서가 우가리트 한 도시에서 동시에 확인되고, 한쪽은 유럽으로 다른 쪽은 에티오피아로 갔다. 오늘날 라틴 문자를 쓰는 사람과 그으즈 문자를 쓰는 사람이 서로 다른 순서로 자모를 외우는 것은 3,000년 전 갈림의 직접적인 결과다.

남은 문제는 동쪽 끝에 몰려 있다. 브라흐미 문자의 기원은 170년 가까이 논쟁 중이고, 아람 문자에서 왔다는 다수설조차 글자 하나하나의 대응을 설명하지 못한다. 이 문제가 풀리느냐에 따라 인도와 동남아시아의 수십 개 문자가 시나이 계보 안에 들어가느냐 바깥에 남느냐가 갈라진다. 오늘날 표음문자를 쓰는 인구의 상당 부분이 그 판정에 걸려 있다.

이 글은 셈어·알파벳 연작의 3편이다. 이어지는 글에서는 오늘날 셈어가 처한 상황을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