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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과 고대근동 문헌의 유사 본문을 원문으로 대조하기 — 소재의 재구성, 공통 형식, 문장 차용, 같은 사건의 다른 기록

노아의 홍수와 길가메시의 홍수는 성경과 고대근동 문헌을 비교할 때 가장 먼저 거론되는 짝이다. 그런데 번역문끼리 비교하면 어느 정도로 닮았는지, 누가 누구에게서 무엇을 가져왔는지가 흐려진다. 메소포타미아의 점토판, 시리아와 요르단의 비문, 그리스 역사가의 기록을 원어로 옮겨 히브리어 본문 옆에 나란히 놓으면, 유사성은 네 종류로 나뉜다. 신화 소재를 가져와 다시 짠 경우, 법과 조약의 공통 형식을 쓴 경우, 지혜 문장을 옮겨 온 경우, 같은 사건을 양쪽이 따로 적은 경우다. 종류마다 영향이 전해진 방향과 해석이 허용되는 범위가 다르다.

비교에 앞서 알아 둘 문헌의 종류와 표기

고대근동은 오늘날의 이라크에 해당하는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튀르키예의 아나톨리아,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을 묶어 부르는 학술 용어다. 이 글이 다루는 시기는 기원전 3천년기부터 기원전 5세기까지다. 이 지역 사람들은 젖은 점토판에 갈대 끝을 눌러 쐐기 모양의 기호를 새겼는데, 이 문자를 설형문자라 부른다. 수메르어와 아카드어가 이 문자로 기록되었다. 아카드어는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에서 쓴 셈어로, 히브리어와 같은 어족에 속한다.

이 글에서 1차 문헌은 발굴로 나온 점토판, 비문, 파피루스처럼 원본이 남아 있는 문헌을 가리킨다. 2차 문헌은 원본이 사라져 후대 저자의 인용으로만 전하는 문헌, 또는 후대 저자가 옛 전승을 옮겨 적은 기록을 가리킨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이집트 사제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적은 대목이 여기에 속한다.

전사와 정규화 설형문자 기호를 로마자로 옮기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전사(transliteration)는 기호 하나하나를 하이픈으로 이어 적어 점토판에 무엇이 새겨졌는지를 보여 준다. 정규화(normalization)는 그 기호들을 문법에 맞는 낱말로 합쳐 모음 길이까지 표시한다. 예를 들어 에슈눈나 법의 한 줄은 전사로 "szum-ma GU4 GU4 ik-ki-im-ma"이고, 정규화로는 "šumma alpum alpam ikkimma"(만일 소가 소를 들이받으면)다. 아래 인용은 대부분 정규화 형태이며, 수메르어는 전사 형태로 싣는다.

히브리어 본문은 1008년경 필사된 레닌그라드 사본을 따른다. 이 사본은 학계 표준 교정본인 『슈투트가르트 히브리어 성경』(BHS)의 대본이며, 여기서는 그 전자판인 웨스트민스터 레닌그라드 사본(버전 4.20, 오픈 스크립처스 히브리어 성경 배포본)에서 가져왔다. 히브리어 본문에는 모음 기호만 남기고 낭독용 억양 기호는 뺐다. 모든 한국어 번역은 원어에서 직접 옮겼다.

신화 소재를 가져와 다시 짠 본문: 창조, 인간, 언어

물이 섞여 있던 태초와 "깊음"

바빌로니아의 창조 서사시는 첫 두 낱말을 따서 「에누마 엘리시」라 부른다. 점토판 7장 분량이며, 바빌론의 주신 마르두크가 신들의 왕이 되는 과정을 노래한다. 첫머리는 하늘과 땅에 아직 이름이 없던 때, 민물의 신 압수와 바다의 여신 티아마트가 물을 한데 섞고 있었다고 시작한다.

바빌로니아 창조 서사시와 창세기 1:2

enūma eliš lā nabû šamāmū / šapliš ammatu šuma lā zakrat / apsûm-ma rēštû zārûšun / mummu tiamat muallidat gimrišun / mêšunu ištēniš ihiqqū-ma

위에서 하늘이 이름 불리지 않았고, 아래에서 땅이 이름으로 불리지 않았을 때, 그들을 낳은 첫 존재 압수와, 모두를 낳은 어머니 티아마트가 그들의 물을 한데 섞고 있었다.

「에누마 엘리시」 1토판 1–5행. 탈론(P. Talon, 2005) 판본에 따른 정규화, 런던대 SOAS 바빌로니아·아시리아 시 낭독 기록(BAPLAR) 수록본

וְהָאָרֶץ הָיְתָה תֹהוּ וָבֹהוּ וְחֹשֶׁךְ עַל־פְּנֵי תְהוֹם וְרוּחַ אֱלֹהִים מְרַחֶפֶת עַל־פְּנֵי הַמָּיִם׃

wəhāʾāreṣ hāyətâ tōhû wāvōhû wəḥōšekh ʿal-pənê təhôm wərûaḥ ʾĕlōhîm məraḥefet ʿal-pənê hammāyim

땅은 형태가 없고 비어 있었으며, 어둠이 깊음 위에 있었고, 하나님의 영이 물 위에 움직이고 있었다.

창세기 1:2. 레닌그라드 사본

창세기 1:2의 "깊음"(테홈)과 바빌로니아의 티아마트는 같은 셈어 뿌리에서 나온 낱말이다. 두 본문 모두 창조 이전의 상태를 물로 그린다. 차이는 문법에서 드러난다. 티아마트는 "모두를 낳은 어머니"라는 칭호를 가진 인격이고, 뒤에 이어지는 4토판에서 마르두크와 싸운다. 테홈에는 관사도 칭호도 붙지 않으며, 창세기 1장 어디에서도 행동하지 않는다. 창세기는 태초의 물이라는 공통 소재를 쓰면서, 그 물에서 신의 성격을 지웠다. 두 낱말이 같은 조상어에서 따로 내려온 것인지, 히브리 저자가 바빌로니아 신 이름을 의식하고 썼는지는 연구자마다 판단이 다르다. 원문이 확정하는 것은 어원의 공통성까지다.

신들의 노동과 동산을 가꾸는 인간

「아트라하시스」는 기원전 17세기 고바빌로니아 사본이 남아 있는 서사시로, 창조부터 홍수까지를 한 줄거리로 묶는다. 첫 행은 신들이 사람처럼 일하던 때로 시작한다.

아트라하시스와 창세기 2:15

inūma ilū awīlum / ublū dulla izbilū šupšikka / šupšik ilī kabit-ma / dullum kabit maʾad šapšāqum

신들이 사람이었을 때, 그들은 부역을 지고 흙 바구니를 날랐다. 신들의 흙 바구니는 무거웠고, 부역은 고되었으며, 괴로움이 컸다.

「아트라하시스」 고바빌로니아 시파르 사본 1토판 i 1–4행. 클라우스 빌케(Claus Wilcke)의 정규화, BAPLAR 수록본

וַיִּקַּח יְהוָה אֱלֹהִים אֶת־הָאָדָם וַיַּנִּחֵהוּ בְגַן־עֵדֶן לְעָבְדָהּ וּלְשָׁמְרָהּ׃

wayyiqqaḥ YHWH ʾĕlōhîm ʾet-hāʾādām wayyanniḥēhû vəgan-ʿēden ləʿovdāh ûləšomrāh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데려다 에덴 동산에 두시고, 그곳을 일구고 지키게 하셨다.

창세기 2:15. 레닌그라드 사본

「아트라하시스」에서 신들은 흙 바구니를 나르는 노동에 지쳐 반란을 일으키고, 그 해결책으로 인간이 만들어진다. 인간은 신들의 부역을 대신 지는 존재로 태어난다. 창세기 2장도 흙(아다마)에서 사람(아담)을 빚고(2:7) 그에게 땅을 일구는 일을 맡긴다. 흙에서 인간을 만들고 인간에게 노동을 맡긴다는 두 요소가 겹친다. 노동의 성격은 다르다. 메소포타미아의 인간은 신들이 벗어나고 싶었던 부역을 넘겨받고, 창세기의 인간은 하나님이 만든 동산을 맡아 가꾼다. 같은 소재가 서로 다른 인간관을 담는 데 쓰였다.

갈빗대에서 나온 여신과 여자

수메르 신화 「엔키와 닌후르사그」는 딜문이라는 깨끗한 땅을 무대로 한다. 물의 신 엔키가 금지된 식물 여덟 가지를 먹자 대지의 여신 닌후르사그가 그를 저주하고, 엔키의 몸 여덟 곳에 병이 난다. 여신은 아픈 부위마다 치유의 신을 하나씩 낳는다.

엔키와 닌후르사그와 창세기 2:21–22, 3:20

šeš-ĝu10 a-na-zu a-ra-gig ti-ĝu10 ma-gig / {d}nin-ti im-ma-ra-an-tu-ud

"나의 형제여, 어디가 아픈가." "내 갈빗대가 아프다." (그러자 여신은) 닌티를 낳았다.

「엔키와 닌후르사그」 268–269행. 옥스퍼드 수메르 문학 전자 코퍼스(ETCSL) c.1.1.1

וַיִּקַּח אַחַת מִצַּלְעֹתָיו … וַיִּבֶן יְהוָה אֱלֹהִים אֶת־הַצֵּלָע אֲשֶׁר־לָקַח מִן־הָאָדָם לְאִשָּׁה … כִּי הִוא הָיְתָה אֵם כָּל־חָי׃

wayyiqqaḥ ʾaḥat miṣṣalʿōtāw … wayyiven YHWH ʾĕlōhîm ʾet-haṣṣēlāʿ ʾăšer-lāqaḥ min-hāʾādām ləʾiššâ … kî hîʾ hāyətâ ʾēm kol-ḥāy

그의 갈빗대 가운데 하나를 뽑고 …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에게서 뽑은 갈빗대로 여자를 지으셨다 … 그 여자가 모든 산 것의 어머니가 되었기 때문이다.

창세기 2:21, 2:22, 3:20 발췌. 레닌그라드 사본

수메르어 "ti"에는 "갈빗대"와 "살다"라는 두 뜻이 있다. 그래서 닌티(nin-ti)는 "갈빗대의 여주인"으로도, "살게 하는 여주인"으로도 읽힌다. 20세기 수메르학자 새뮤얼 노아 크레이머는 이 말놀이가 갈빗대로 지은 여자가 "모든 산 것의 어머니"(창 3:20) 하와가 되는 창세기 서술의 배경이라고 보았다. 원문을 보면 이 설명에는 빠진 단계가 있다. 수메르 본문에서 닌티는 엔키의 갈빗대를 고치려고 여신이 낳은 치유의 신이지 갈빗대로 만든 존재가 아니다. 히브리어 "첼라"(갈빗대)와 "하와"(생명과 관련된 이름) 사이에는 수메르어처럼 한 낱말이 두 뜻을 겸하는 관계도 없다. 크레이머의 제안은 수메르어 쪽의 중의성에 기대고 있어서, 히브리어로 옮겨지는 순간 그 중의성이 사라진다. 두 이야기가 금지된 먹을거리, 저주, 갈빗대라는 요소를 공유한다는 사실까지만 원문으로 확인된다.

하나였던 언어

수메르 서사 「엔메르카르와 아라타의 군주」에는 우루크의 왕 엔메르카르가 사자에게 외우게 하는 "누딤무드의 주문"이 들어 있다. 누딤무드는 지혜의 신 엔키의 별칭이다.

엔메르카르와 아라타의 군주와 창세기 11:1, 11:7

{d}en-lil2-ra eme 1-am3 ḫe2-en-na-da-ab-dug4 … ka-ba eme i3-kur2 en-na mi-ni-in-ĝar-ra / eme nam-lu2-ulu3 1 i3-me-[a]

(온 땅의 사람들이) 엔릴에게 한 언어로 말하게 하라 … (엔키가) 자신이 그들 입에 넣어 준 만큼의 말을 바꾸어, 인류의 말은 하나가 된다.

「엔메르카르와 아라타의 군주」 146행, 154–155행. ETCSL c.1.8.2.3

וַיְהִי כָל־הָאָרֶץ שָׂפָה אֶחָת וּדְבָרִים אֲחָדִים׃ … הָבָה נֵרְדָה וְנָבְלָה שָׁם שְׂפָתָם

wayhî khol-hāʾāreṣ śāfâ ʾeḥāt ûdəvārîm ʾăḥādîm … hāvâ nērədâ wənāvəlâ šām śəfātām

온 땅이 한 언어였고 낱말도 하나였다. … 자, 우리가 내려가서 그들의 언어를 거기서 뒤섞자.

창세기 11:1, 11:7. 레닌그라드 사본

이 대목은 번역의 시제에 따라 뜻이 달라진다. 크레이머는 이 주문을 인류가 한 언어를 쓰다가 엔키가 말을 바꾸어 여러 언어로 나뉜 과거의 사건으로 옮겼다. ETCSL의 번역은 같은 줄을 미래의 소망으로 옮긴다. 뱀과 전갈과 사자가 없는 날이 오면 여러 언어를 쓰던 땅들이 엔릴에게 한 언어로 말하고, 엔키가 말을 바꾸어 인류의 말이 하나가 된다는 읽기다. 수메르어 동사 형태가 두 해석을 모두 허용하기 때문에 생긴 차이다. 앞의 읽기를 따르면 바벨탑과 같은 "언어 분화" 이야기가 되고, 뒤의 읽기를 따르면 방향이 반대인 "언어 통합"의 주문이 된다. 창세기 11장은 분명히 하나의 언어가 흩어지는 이야기다. 이 수메르 본문을 바벨탑의 원형으로 인용하려면 크레이머의 시제 해석을 먼저 받아들여야 한다.

바벨탑 이야기에는 건축 재료도 나온다. 창세기 11:3은 사람들이 돌 대신 구운 벽돌을, 진흙 대신 역청(헤마르)을 썼다고 적는다. 역청은 천연 아스팔트로, 메소포타미아 남부에서 벽돌을 붙이는 접착재로 썼다. 이 서술은 메소포타미아 남부의 건축 방식과 일치한다. 같은 낱말 헤마르는 출애굽기 2:3에서 모세의 상자에 바른 재료로 다시 나온다.

홍수 이전의 긴 수명

「수메르 왕 명부」는 왕권이 하늘에서 내려온 때부터 도시별 왕과 재위 연수를 적은 목록이다. 홍수 이전 부분은 다음과 같이 끝난다.

수메르 왕 명부와 창세기 5:27

5 iri{ki}-me-eš / 8 lugal / mu-bi 241200 ib2-ak / a-ma-ru ba-ur3-«ra-ta» / eĝer a-ma-ru ba-ur3-ra-ta / nam-lugal an-ta ed3-de3-a-ba

도시 다섯, 왕 여덟이 모두 24만 1200년을 다스렸다. 홍수가 휩쓸었다. 홍수가 휩쓸고 지나간 뒤 왕권이 하늘에서 내려왔을 때,

「수메르 왕 명부」 36–41행. ETCSL c.2.1.1. «»는 필사자가 잘못 덧붙인 글자를 편집자가 표시한 것

וַיִּהְיוּ כָּל־יְמֵי מְתוּשֶׁלַח תֵּשַׁע וְשִׁשִּׁים שָׁנָה וּתְשַׁע מֵאוֹת שָׁנָה וַיָּמֹת׃

wayyihyû kol-yəmê mətûšelaḥ tēšaʿ wəšiššîm šānâ ûtəšaʿ mēʾôt šānâ wayyāmōt

므두셀라는 모두 969년을 살고 죽었다.

창세기 5:27. 레닌그라드 사본

왕 명부의 첫 왕 알룰림은 2만 8800년, 둘째 왕 알랄가르는 3만 6000년을 다스렸다. 홍수 이후 첫 왕조인 키시의 왕들은 1200년, 960년처럼 수명이 한 자릿수 이상 줄어든다. 창세기도 홍수 이전의 10대 족장이 수백 년씩 살고, 홍수 이후 수명이 줄어드는 구조다. 두 목록은 "홍수 이전의 긴 수명, 홍수라는 단절, 이후의 짧아진 수명"이라는 틀을 공유한다. 수치의 규모는 수십 배 차이 나며, 수메르 목록의 주인공은 왕이고 창세기의 주인공은 한 가족의 계보다. 틀은 같고, 내용물은 도시 국가의 왕권에서 한 집안의 족보로 바뀌었다.

홍수 이야기는 장면의 순서까지 겹친다

메소포타미아 홍수 전승 가운데 가장 잘 보존된 판본은 「길가메시 서사시」 표준판 11토판이다. 영생을 찾아 나선 영웅 길가메시가 홍수에서 살아남은 우트나피시팀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구성이다. 우트나피시팀은 에아 신의 경고를 받아 배를 짓고 가족과 짐승을 태웠다. 폭풍이 그친 뒤 배는 니무시 산에 걸려 멈춘다.

길가메시 서사시 11토판과 창세기 8:7–12

sebû ūmu ina kašādi / ušēṣīma summata umaššar / illik summatu īpiramm[a] / manzāzu ul īpâššimma issahr[a] / ušēṣīma sinūnta umaš[š]ar / … / ušēṣīma ariba umaššar / illik aribumma qarūra ša mê īmurma / ikkal išahhi itarri ul issahra

일곱째 날이 되자 나는 비둘기를 꺼내 날려 보냈다. 비둘기는 날아갔다가 앉을 자리가 보이지 않자 되돌아왔다. 나는 제비를 꺼내 날려 보냈다. … 나는 까마귀를 꺼내 날려 보냈다. 까마귀는 날아가 물이 빠지는 것을 보고, 먹고, 날개를 퍼덕이며, 돌아오지 않았다.

「길가메시 서사시」 표준판 11토판 147–156행. 앤드루 조지(A. R. George), 『바빌로니아 길가메시 서사시』(옥스퍼드, 2003)의 전사에 따른 정규화, BAPLAR 수록본

וַיְשַׁלַּח אֶת־הָעֹרֵב וַיֵּצֵא יָצוֹא וָשׁוֹב … וַיְשַׁלַּח אֶת־הַיּוֹנָה … וְלֹא־מָצְאָה הַיּוֹנָה מָנוֹחַ לְכַף־רַגְלָהּ וַתָּשָׁב אֵלָיו … וְלֹא־יָסְפָה שׁוּב־אֵלָיו עוֹד׃

wayšallaḥ ʾet-hāʿōrēv wayyēṣēʾ yāṣôʾ wāšôv … wayšallaḥ ʾet-hayyônâ … wəlōʾ-māṣəʾâ hayyônâ mānôaḥ ləkhaf-raglāh wattāšāv ʾēlāyw … wəlōʾ-yāsəfâ šûv-ʾēlāyw ʿôd

그가 까마귀를 내보내니, 까마귀는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 그가 비둘기를 내보냈다. … 비둘기가 발붙일 곳을 찾지 못하여 그에게로 돌아왔다. … (세 번째로 내보낸 비둘기는) 다시는 그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창세기 8:7, 8:8, 8:9, 8:12 발췌. 레닌그라드 사본

두 본문의 문장 구조는 거의 같다. 아카드어 "앉을 자리가 없어서 돌아왔다"(manzāzu ul īpâššimma issahra)와 히브리어 "발붙일 곳을 찾지 못하여 돌아왔다"(lōʾ-māṣəʾâ … mānôaḥ … wattāšāv)는 이유와 결과를 같은 순서로 놓는다. 7일이라는 단위도 양쪽에 있다. 창세기는 비둘기를 내보내기 전에 7일씩 기다린다(8:10, 8:12). 새의 종류와 순서는 다르다. 우트나피시팀은 비둘기, 제비, 까마귀 순으로 보내고, 돌아오지 않는 까마귀가 땅이 드러났다는 신호가 된다. 노아는 까마귀를 먼저 보내고 비둘기를 세 번 보내며, 올리브 잎을 물고 온 비둘기(8:11)와 돌아오지 않는 비둘기가 신호가 된다.

배에서 나온 뒤의 장면도 겹친다.

길가메시 서사시 11토판과 창세기 8:21

ilū īṣīnū irīša / ilū īṣīnū irīša ṭāb[a] / ilū kīma zumbē eli bēl niqî iptahrū

신들이 냄새를 맡았다. 신들이 좋은 냄새를 맡았다. 신들이 파리처럼 제물 바치는 자 주위로 모여들었다.

「길가메시 서사시」 표준판 11토판 161–163행. 조지(2003)에 따른 정규화, BAPLAR 수록본

וַיָּרַח יְהוָה אֶת־רֵיחַ הַנִּיחֹחַ וַיֹּאמֶר יְהוָה אֶל־לִבּוֹ לֹא־אֹסִף לְקַלֵּל עוֹד אֶת־הָאֲדָמָה בַּעֲבוּר הָאָדָם

wayyāraḥ YHWH ʾet-rêaḥ hannîḥōaḥ wayyōʾmer YHWH ʾel-libbô lōʾ-ʾōsif ləqallēl ʿôd ʾet-hāʾădāmâ baʿăvûr hāʾādām

여호와께서 그 기쁘게 하는 향기를 맡으시고 마음속으로 말씀하셨다. "내가 다시는 사람 때문에 땅을 저주하지 않겠다."

창세기 8:21 앞부분. 레닌그라드 사본

제물을 바치고 신이 향기를 맡는다는 순서는 같다. 그다음에 오는 신의 반응에서 두 이야기의 방향이 나뉜다. 길가메시에서는 여러 신이 굶주린 파리처럼 몰려든다. 홍수로 인간이 사라지자 제물을 받지 못했던 신들의 모습이다. 이어서 신들은 홍수를 누가 결정했는지를 두고 서로 책임을 묻는다. 창세기에서 향기를 맡는 신은 하나이며, 곧바로 다시는 땅을 저주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결정한다. 이 결정은 9장의 무지개 언약으로 이어진다. 홍수의 원인도 다르다. 「아트라하시스」에서 신들은 인간이 늘어나 시끄럽다는 이유로 재앙을 보내고, 창세기는 사람의 악이 가득했다는 이유를 댄다(6:5).

이 비교에서 원문으로만 보이는 사실이 하나 더 있다. 노아의 "방주"로 번역되는 히브리어는 테바(תֵּבָה)다. 이 낱말은 히브리어 성경 전체에서 노아의 방주와 아기 모세를 담은 "갈대 상자" 두 곳에만 쓰인다.

עֲשֵׂה לְךָ תֵּבַת עֲצֵי־גֹפֶר … וְכָפַרְתָּ אֹתָהּ מִבַּיִת וּמִחוּץ בַּכֹּפֶר׃

ʿăśēh ləkhā tēvat ʿăṣê-gōfer … wəkhāfartā ʾōtāh mibbayit ûmiḥûṣ bakkōfer

너는 고페르 나무로 테바를 만들고 … 안팎을 역청으로 칠하여라.

창세기 6:14 발췌. 레닌그라드 사본

וַתִּקַּח־לוֹ תֵּבַת גֹּמֶא וַתַּחְמְרָה בַחֵמָר וּבַזָּפֶת וַתָּשֶׂם בָּהּ אֶת־הַיֶּלֶד

wattiqqaḥ-lô tēvat gōmeʾ wattaḥmərâ vaḥēmār ûvazzāfet wattāśem bāh ʾet-hayyeled

그 어머니는 그를 위해 파피루스로 된 테바를 가져다 역청과 송진을 바르고, 아이를 그 안에 넣었다.

출애굽기 2:3 발췌. 레닌그라드 사본

두 장면 모두 역청으로 물이 스며들지 않게 만든 테바가 물 위에서 한 사람을 살린다. 한국어 성경은 앞의 것을 "방주", 뒤의 것을 "상자"로 옮겨 이 연결이 보이지 않는다. 히브리어 저자가 모세의 구원을 노아의 구원과 같은 낱말로 적었다는 사실은 원문에서만 확인된다.

법과 조약은 형식을 공유한다

메소포타미아의 법 모음은 "만일(šumma) 누가 이렇게 하면, 이렇게 한다"는 조건문으로 쓴다. 법학에서는 이런 형식을 판례식 법(casuistic law)이라 부른다. 구체적 사건 하나를 가정하고 그 처리를 정하는 방식이다. 출애굽기 21–23장의 법 모음(학계에서는 "언약 법전"이라 부른다)도 같은 형식을 쓴다. 히브리어에서는 "만일"에 해당하는 말이 "키"(כִּי)와 "임"(אִם)이다.

들이받는 소

에슈눈나는 티그리스강의 지류 디얄라강 유역에 있던 도시 국가다. 1945년과 1947년 이라크 발굴단이 오늘날 바그다드 근처 텔 하르말에서 이 도시의 법 모음이 적힌 점토판 두 장을 찾아냈다. 법 모음은 기원전 19세기 무렵의 것으로, 함무라비 법전보다 앞선다.

에슈눈나 법 53조와 출애굽기 21:35

šumma alpum alpam ikkimma uštamit / šīm alpim balṭim u šir alpim mitim / bēl alpim kilallān izuzzū

만일 소가 (다른) 소를 들이받아 죽게 하면, 산 소의 값과 죽은 소의 고기를 두 소 주인이 나눈다.

「에슈눈나 법」 53조. 프레인(D. R. Frayne, 1990)의 합성 본문, 설형문자 디지털 도서관(CDLI) P480696

וְכִי־יִגֹּף שׁוֹר־אִישׁ אֶת־שׁוֹר רֵעֵהוּ וָמֵת וּמָכְרוּ אֶת־הַשּׁוֹר הַחַי וְחָצוּ אֶת־כַּסְפּוֹ וְגַם אֶת־הַמֵּת יֶחֱצוּן׃

wəkhî-yiggōf šôr-ʾîš ʾet-šôr rēʿēhû wāmēt ûmākhərû ʾet-haššôr haḥay wəḥāṣû ʾet-kaspô wəgam ʾet-hammēt yeḥĕṣûn

만일 어떤 사람의 소가 이웃의 소를 받아 죽게 하면, 산 소를 팔아 그 값을 나누고 죽은 소도 나눈다.

출애굽기 21:35. 레닌그라드 사본

두 조문은 사건 설정, 처리 방식, 분배의 대상까지 같다. 산 소의 값과 죽은 소를 두 주인이 나눈다는 해법은 양쪽 모두 과실을 따지지 않고 손실을 반씩 지우는 방식이다. 바로 다음 조문도 나란히 간다. 에슈눈나 법 54조는 들이받는 버릇이 있다는 사실을 당국이 주인에게 통보했는데도 주인이 소를 단속하지 않아 사람이 죽은 경우를 다룬다.

에슈눈나 법 54조와 출애굽기 21:29

šumma alpum nakkāpîma bābtum ana bēlišu ušēdima alapšu la ušēširma awīlam ikkimma uštamit bēl alpim 2/3 mana kaspam išaqqal

만일 소가 들이받는 버릇이 있어 구역 당국이 그 주인에게 알렸는데도 주인이 소를 단속하지 않았고, 소가 사람을 들이받아 죽게 하면, 소 주인은 은 3분의 2 미나를 달아 준다.

「에슈눈나 법」 54조. CDLI P480696

וְאִם שׁוֹר נַגָּח הוּא מִתְּמֹל שִׁלְשֹׁם וְהוּעַד בִּבְעָלָיו וְלֹא יִשְׁמְרֶנּוּ וְהֵמִית אִישׁ אוֹ אִשָּׁה הַשּׁוֹר יִסָּקֵל וְגַם־בְּעָלָיו יוּמָת׃

wəʾim šôr naggāḥ hûʾ mittəmōl šilšōm wəhûʿad bivʿālāyw wəlōʾ yišmərennû wəhēmît ʾîš ʾô ʾiššâ haššôr yissāqēl wəgam-bəʿālāyw yûmāt

만일 소가 전부터 들이받는 버릇이 있어 그 주인에게 경고가 주어졌는데도 주인이 소를 단속하지 않아 남자나 여자를 죽이면, 소는 돌로 쳐 죽이고 주인도 죽인다.

출애굽기 21:29. 레닌그라드 사본

"주인에게 알렸는데도 단속하지 않았다"는 조건은 두 법에서 같은 순서로 나온다. 결과는 다르다. 에슈눈나 법은 주인에게 은을 물린다. 1미나는 약 500그램이다. 출애굽기는 소를 돌로 쳐 죽이고 주인도 죽을 책임을 진다고 선언하며, 바로 다음 절(21:30)에서 속전을 내고 목숨을 살 길을 열어 둔다. 앞 절(21:28)은 사람을 죽인 소의 고기를 먹지 못하게 한다. 사람을 죽인 짐승을 경제적 손실로만 다루지 않고 부정한 것으로 다룬다는 뜻이다. 조건문의 구조는 공유하고, 생명의 값을 매기는 방식은 다르게 정했다.

눈에는 눈

함무라비 법전은 바빌론의 왕 함무라비가 기원전 18세기에 세운 현무암 비석에 새긴 법 모음이다. 1901년 이란의 수사에서 발굴되어 지금은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있다. 비석 윗부분에는 정의의 신 샤마시 앞에 선 왕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함무라비 법전 196·198조와 출애굽기 21:24

šumma awīlum īn mār awīlim uḫtappid, īššu uḫappadū. … šumma īn muškēnim uḫtappid ū lū eṣemti muškēnim išteber, ištēn manā kaspam išaqqal.

만일 자유인이 자유인의 눈을 멀게 하면, 그의 눈을 멀게 한다. … 만일 평민의 눈을 멀게 하거나 평민의 뼈를 부러뜨리면, 은 1미나를 달아 준다.

「함무라비 법전」 196조, 198조. 196조는 eHammurabi(OMNIKA 재단)의 정규화, 198조는 휴너가드(J. Huehnergard, 2013)의 정규화

עַיִן תַּחַת עַיִן שֵׁן תַּחַת שֵׁן יָד תַּחַת יָד רֶגֶל תַּחַת רָגֶל׃

ʿayin taḥat ʿayin šēn taḥat šēn yād taḥat yād regel taḥat rāgel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갚는다.

출애굽기 21:24. 레닌그라드 사본

상처를 입힌 부위와 같은 부위로 갚는 원칙을 동해보복법이라 한다. 함무라비 법전에서 이 원칙은 신분에 묶여 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두 자유인(awīlum)일 때만 같은 부위로 갚고, 피해자가 평민(muškēnum)이면 은 1미나로 끝난다. 출애굽기 21:24의 문장에는 신분 구분이 없다. 출애굽기도 종의 눈을 상하게 한 경우는 따로 다루어(21:26) 종을 풀어 주게 하므로, 신분 차이가 성경 법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두 법의 차이는 자유인과 평민이라는 두 계층을 동해보복의 적용 대상에서 나누느냐에 있다.

사람을 훔치는 범죄도 양쪽에 있다. 함무라비 법전 14조는 "만일 자유인이 자유인의 어린 아들을 훔치면 그를 죽인다"(šumma awīlum mār awīlim ṣeḫram ištariq iddâk)고 정한다. 출애굽기 21:16은 "사람을 훔쳐 판 자나 그 사람이 그의 손에서 발견된 자는 반드시 죽인다"(wəgōnēv ʾîš ûməkhārô wənimṣāʾ vəyādô môt yûmāt)고 정한다. 형벌은 같고, 함무라비 법전은 피해자를 자유인의 어린 아들로 한정하는 반면 출애굽기는 "사람"으로 적는다.

법의 권위가 어디에서 오는지도 다르게 적는다. 함무라비 비석의 법은 왕이 제정하고 신은 그 왕을 세운다. 출애굽기의 법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직접 준 말로 제시되고, 왕은 법을 만드는 사람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신명기 17장은 왕에게도 율법 두루마리를 옮겨 적어 곁에 두고 읽으라고 명령한다.

하늘은 놋, 땅은 철

기원전 672년 아시리아 왕 에살핫돈은 아들 아슈르바니팔의 왕위 계승을 지키기 위해 제국의 속국 통치자와 관리들에게 충성 맹세를 시켰다. 이 맹세 문서를 「에살핫돈 계승 조약」이라 부른다. 1950년대 오늘날 이라크 님루드의 나부 신전에서 사본 8부가 나왔고, 2009년 튀르키예 남부 텔 타이낫 신전에서 한 부가 더 나왔다. 텔 타이낫 사본이 나오면서 이 조약이 아시리아 동쪽 속국뿐 아니라 제국 서쪽의 속주에서도 맹세된 문서였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 조약의 저주 목록 63–64절(파르폴라·와타나베의 1988년 교정본 번호)은 맹세를 어긴 자의 땅을 철처럼 만들어 아무것도 돋아나지 못하게 하고, 청동으로 된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 않듯이 그들의 밭에 비가 내리지 않게 하라고 빈다. 신명기 28:23–24는 같은 비유 쌍을 쓴다.

וְהָיוּ שָׁמֶיךָ אֲשֶׁר עַל־רֹאשְׁךָ נְחֹשֶׁת וְהָאָרֶץ אֲשֶׁר־תַּחְתֶּיךָ בַּרְזֶל׃ יִתֵּן יְהוָה אֶת־מְטַר אַרְצְךָ אָבָק וְעָפָר

wəhāyû šāmêkhā ʾăšer ʿal-rōʾšəkhā nəḥōšet wəhāʾāreṣ ʾăšer-taḥtêkhā barzel. yittēn YHWH ʾet-məṭar ʾarṣəkhā ʾāvāq wəʿāfār

네 머리 위의 하늘은 놋이 되고, 네 발아래 땅은 철이 될 것이다. 여호와께서 네 땅에 내릴 비를 가루와 먼지로 바꾸실 것이다.

신명기 28:23–24 앞부분. 레닌그라드 사본

하늘을 청동(놋)에, 땅을 철에 견주는 짝은 두 문서가 같다. 순서는 반대여서, 아시리아 문서는 땅을 먼저, 신명기는 하늘을 먼저 적는다. 두 문서는 땅과 하늘을 금속에 견준 뒤 비가 내리지 않는 결과를 적는다는 가뭄 저주의 구성까지 공유한다. 신명기 13장의 선동자 처벌 조항, 신명기 28장의 포위 중 인육을 먹는 저주와 포로로 끌려가는 저주도 이 조약의 저주 목록과 비교된다. 신명기가 이 조약을 직접 보고 고쳐 썼는지는 논쟁 중이다. 직접 차용을 반대하는 쪽의 주된 근거는 철기 시대 유다 지역에서 설형문자 문서가 거의 발굴되지 않았다는 점, 곧 유다의 서기관이 아카드어 원문을 읽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텔 타이낫 사본은 이 조약이 레반트까지 배포되었다는 사실을 보여 주지만, 그것이 예루살렘에 있었다는 증거는 아니다. 대응의 정도는 원문으로 확정되고, 전달 경로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혜 문학에는 문장을 옮겨 온 흔적이 있다

잠언과 이집트의 「아메네모페의 교훈」

「아메네모페의 교훈」은 이집트의 서기관 아메네모페가 아들에게 남긴 형식의 교훈서로, 30개의 장으로 되어 있다. 가장 완전한 사본은 1888년 대영박물관이 사들인 파피루스(대영박물관 10474번)다. 연구자들은 작성 시기를 이집트 신왕국 후기의 람세스 시대, 곧 기원전 13–11세기로 잡는다. 1924년 독일 이집트학자 아돌프 에르만은 이 문헌과 잠언 22:17–24:22 사이의 대응 목록을 발표했다. 가난한 사람의 것을 빼앗지 말라는 경고, 옛 경계석을 옮기지 말라는 경고, 재물이 새처럼 날개를 달고 날아가 버린다는 표현(잠 23:5, 아메네모페 7장)이 두 문헌에 함께 나온다.

에르만의 논증에서 가장 널리 인용되는 대목은 잠언 22:20의 한 낱말이다. 이 낱말을 이해하려면 히브리어 성경의 필사 전통을 알아야 한다.

케티브와 케레 중세 유대 필사자들(마소라 학자)은 성경의 자음 본문을 한 글자도 고치지 않고 전했다. 자음 본문이 이상해 보이는 곳에서는 본문을 그대로 두고, 여백에 "이렇게 읽으라"는 다른 낱말을 적었다. 본문에 적힌 대로의 형태를 케티브(기록된 것), 읽으라고 지시한 형태를 케레(읽는 것)라 한다. 레닌그라드 사본은 케티브의 자음에 케레의 모음을 붙여 적는다.

잠언 22:17과 22:20

הַט אָזְנְךָ וּשְׁמַע דִּבְרֵי חֲכָמִים וְלִבְּךָ תָּשִׁית לְדַעְתִּי׃ … הֲלֹא כָתַבְתִּי לְךָ שלשום [קרי: שָׁלִישִׁים] בְּמוֹעֵצֹת וָדָעַת׃

haṭ ʾoznəkhā ûšəmaʿ divrê ḥăkhāmîm wəlibbəkhā tāšît lədaʿtî … hălōʾ khātavtî ləkhā šlšwm [케레: šālîšîm] bəmōʿēṣōt wādāʿat

귀를 기울여 지혜로운 이들의 말을 듣고, 네 마음을 내 지식에 두어라. … 내가 너를 위하여 모략과 지식에 관한 (?)을 적어 두지 않았느냐.

잠언 22:17, 22:20. 레닌그라드 사본. 대괄호는 사본 여백의 케레

물음표로 남긴 자리에는 세 가지 읽기가 있다. 케티브의 자음 שלשום은 보통 "실숌"으로 읽히며 "그저께"라는 뜻이다. 이 읽기로는 문장이 통하지 않는다. 마소라의 케레 שָׁלִישִׁים(샬리심)은 "고관" 또는 "뛰어난 것"으로 풀이되어 왔고, 한국어 개역 계열 성경의 "아름다운 것"이 이 전통을 따른다. 에르만은 같은 자음을 "셸로심", 곧 "서른"으로 읽자고 제안했다. 그러면 22:20은 "내가 너를 위하여 서른 가지 교훈을 적어 두지 않았느냐"가 되고, 아메네모페가 결론 장에서 자신의 30장을 가리키는 방식과 맞아떨어진다. 이 제안은 자음을 한 글자도 바꾸지 않고 모음만 달리 읽는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크다. 게다가 22:17의 제목 "지혜로운 이들의 말"은 이 단락이 여러 현자의 격언을 모은 것임을 본문 스스로 밝힌다. 영향의 방향은 아메네모페에서 잠언으로 향했다는 쪽이 다수 견해다. 아메네모페의 작성 연대가 솔로몬 시대보다 앞선다는 연대 판단이 그 근거다.

대응은 문장 단위로 확인된다. 잠언 22:28 "옛 경계석을 옮기지 말라"(ʾal-tassēg gəvûl ʿôlām)와 23:5 "재물은 반드시 스스로 날개를 만들어 독수리처럼 하늘로 날아간다"(kî ʿāśōh yaʿăśeh-lô khənāfayim kənešer)가 대표적이다. 23:5의 둘째 행 "날아간다"도 케티브와 케레가 다르게 적힌 자리여서, 필사 과정에서 이 단락의 본문이 여러 필사 단계를 거쳤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전도서와 길가메시의 술집 여주인

「길가메시 서사시」에는 표준판보다 수백 년 오래된 고바빌로니아판이 있다. 그 가운데 시파르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진 토판에는 영생을 찾아 헤매는 길가메시에게 술집 여주인 시두리가 하는 말이 남아 있다. 시두리는 먼저 신들이 인간을 만들 때 인간에게는 죽음을 정하고 생명은 자기들 손에 쥐었다고 말한 다음, 이렇게 권한다.

길가메시 서사시 고바빌로니아판과 전도서 9:7–9

atta gilgameš lū mali karaška / urrī u mūšī hitaddu atta / ūmišam šukun hidûtam / … / lū ubbubū ṣubātūka / qaqqadka lū mesi mê lū ramkāta / ṣubbi ṣehram ṣābitu qātīka / marhītum lihtaddâm ina sūnīka

길가메시여, 너는 배를 채워라. 밤낮으로 즐겨라. 날마다 기쁨을 누려라. … 네 옷을 깨끗이 하고, 머리를 감고, 물로 몸을 씻어라. 네 손을 잡은 어린것을 바라보고, 아내가 네 품에서 기뻐하게 하여라.

「길가메시 서사시」 고바빌로니아판 VA+BM 토판 iii 6–13행. 조지(2003)에 따른 정규화, BAPLAR 수록본

לֵךְ אֱכֹל בְּשִׂמְחָה לַחְמֶךָ וּשֲׁתֵה בְלֶב־טוֹב יֵינֶךָ … בְּכָל־עֵת יִהְיוּ בְגָדֶיךָ לְבָנִים וְשֶׁמֶן עַל־רֹאשְׁךָ אַל־יֶחְסָר׃ רְאֵה חַיִּים עִם־אִשָּׁה אֲשֶׁר־אָהַבְתָּ

lēkh ʾĕkhōl bəśimḥâ laḥmekhā ûšăṯēh vəlev-ṭôv yênekhā … bəkhol-ʿēt yihyû vəgādêkhā ləvānîm wəšemen ʿal-rōʾšəkhā ʾal-yeḥsār. rəʾēh ḥayyîm ʿim-ʾiššâ ʾăšer-ʾāhavtā

가서 기쁘게 네 빵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셔라. … 언제나 네 옷을 희게 하고, 네 머리에 기름이 떨어지지 않게 하여라.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삶을 누려라.

전도서 9:7–9 발췌. 레닌그라드 사본

먹고 마시기, 옷을 깨끗이 하기, 머리를 씻거나 기름 바르기, 아내와 누리기라는 네 항목이 같은 순서로 나온다. 둘 다 죽음이 정해진 인간에게 주어진 몫을 말하는 맥락이다. 전도서는 9:7에 "하나님이 네가 하는 일을 이미 기뻐하셨다"는 이유를 붙이고, 9:9 끝에서 이것이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삶의 "몫"(헬레크)이라고 말한다. 시두리의 권고는 "이것이 인간의 운명"이라는 말로 끝난다. 두 본문은 권고의 목록을 공유하고, 그 목록을 받치는 근거를 한쪽은 신들이 생명을 독점했다는 사실에, 다른 쪽은 하나님이 인간의 일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에 둔다.

전도서 4:12의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wəhaḥûṭ haməšullāš lōʾ viməhērâ yinnātēq)도 수메르 문학에 짝이 있다. 수메르어 「빌가메스와 후와와」에서 빌가메스는 두려워하는 엔키두에게 이렇게 말한다.

lu2 2-e nu-uš2-e ĝišma2-da-la2 nu-su-su / tug2 3 tab-ba lu2 nu-kud-de3

두 사람은 죽지 않는다. 끌어 주는 배는 가라앉지 않는다. 세 겹으로 겹친 천은 아무도 자르지 못한다.

「빌가메스와 후와와」 A판 107–108행. ETCSL c.1.8.1.5

ETCSL은 수메르어 tug2를 "천"으로 판독한다. "세 겹 밧줄"로 옮기는 번역도 있어서, 전도서와의 대응에서 인용되는 "세 겹 밧줄"은 판독 하나를 택한 결과다. 두 본문이 공유하는 것은 "셋을 겹친 것은 잘리지 않는다"는 격언의 구조와, 그 앞에 둘이 하나보다 낫다는 말을 두는 배열이다. 전도서 4:9–12도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낫다"로 시작한다.

욥기와 바빌로니아의 의인 고난시

「루들룰 벨 네메키」는 첫 구절 "나는 지혜의 주를 찬양하리라"를 제목으로 삼은 바빌로니아 시다. 경건하게 살던 관리가 까닭 없이 병들고 몰락했다가 마르두크 신에게 회복되는 이야기로, 연구자들은 이 시를 "바빌로니아의 욥"이라 부르기도 한다.

루들룰 벨 네메키와 욥기 11:7

ayyu ṭēm ilī qirib šamê ilammad / milik ša zanunzê ihakkim mannu / ēkamma ilmadā alakti ilī apâti

하늘에 있는 신들의 뜻을 누가 배우겠는가. 지하 신들의 계획을 누가 헤아리겠는가. 사람들이 신의 길을 어디서 배웠겠는가.

「루들룰 벨 네메키」 2토판 36–38행. 램버트(W. G. Lambert), 『바빌로니아 지혜 문학』(1960)에 따른 정규화, BAPLAR 수록본

הַחֵקֶר אֱלוֹהַ תִּמְצָא אִם עַד־תַּכְלִית שַׁדַּי תִּמְצָא׃

haḥēqer ʾĕlôah timṣāʾ ʾim ʿad-takhlît šadday timṣāʾ

네가 하나님의 깊은 것을 찾아낼 수 있느냐. 전능자를 끝까지 찾아낼 수 있느냐.

욥기 11:7. 레닌그라드 사본

두 본문은 인간이 신의 뜻을 알 수 없다는 같은 명제를 수사 의문문으로 말한다. 말하는 사람의 위치는 다르다. 「루들룰」에서는 고난받는 당사자가 이 말을 하며 자기 처지를 받아들인다. 욥기에서는 친구 소발이 욥을 꾸짖으려고 이 말을 하고, 욥은 그 논리를 끝까지 거부한다. 같은 명제가 욥기에서는 반박의 대상이 되는 자리에 놓였다.

리워야단과 우가릿의 로탄

1929년부터 시리아 해안의 라스 샴라에서 발굴된 고대 도시 우가릿에서는 기원전 14–12세기의 토판이 나왔다. 설형문자 모양의 알파벳으로 적은 가나안 계열 언어의 문헌이며, 폭풍의 신 바알이 바다와 죽음의 신과 싸우는 신화가 들어 있다. 이 신화에 나오는 괴물 로탄(ltn)은 "도망치는 뱀"(bṯn brḥ), "꿈틀거리는 뱀"(bṯn ʿqltn), "머리 일곱 달린 폭군"이라는 칭호로 불린다. 이 가운데 둘째 칭호는 토판이 깨진 부분에 걸쳐 있어 판독이 확실하지 않다.

בַּיּוֹם הַהוּא יִפְקֹד יְהוָה בְּחַרְבוֹ הַקָּשָׁה וְהַגְּדוֹלָה וְהַחֲזָקָה עַל לִוְיָתָן נָחָשׁ בָּרִחַ וְעַל לִוְיָתָן נָחָשׁ עֲקַלָּתוֹן

bayyôm hahûʾ yifqōd YHWH bəḥarbô haqqāšâ wəhaggədôlâ wəhaḥăzāqâ ʿal liwyātān nāḥāš bāriaḥ wəʿal liwyātān nāḥāš ʿăqallātôn

그날에 여호와께서 단단하고 크고 강한 칼로, 도망치는 뱀 리워야단, 꿈틀거리는 뱀 리워야단을 벌하실 것이다.

이사야 27:1 앞부분. 레닌그라드 사본

히브리어 "나하쉬 바리아흐"와 "나하쉬 아칼라톤"은 우가릿어 "bṯn brḥ", "bṯn ʿqltn"과 자음이 대응하는 같은 말이다. 리워야단(lwytn)과 로탄(ltn)도 같은 이름의 두 형태로 본다. 이사야는 가나안 신화의 괴물 이름과 수식어를 그대로 가져왔고, 그 괴물을 치는 주체를 바알에서 여호와로 바꾸었다. 싸움의 시점도 태초에서 "그날", 곧 종말의 날로 옮겼다. 이사야 19:1이 여호와를 "빠른 구름을 타고" 오는 분으로 그리는 것도 우가릿에서 바알의 칭호였던 "구름을 타는 자"와 비교된다.

같은 사건을 양쪽이 따로 적은 기록

여기까지의 대응은 문학적 관계, 곧 한 문헌이 다른 문헌의 소재나 형식이나 문장을 쓴 관계였다. 비문과 연대기에는 성격이 다른 대응이 있다. 같은 사건을 이스라엘과 그 상대편이 각자 기록한 경우다. 이런 대응은 차용으로 설명할 수 없고, 두 기록이 서로 다른 관점에서 같은 사실을 가리킨다.

모압 왕 메사의 비석

메사 비석은 1868년 요르단의 디반에서 발견된 현무암 비석으로, 기원전 840년경 모압 왕 메사가 세웠다. 34행의 비문이 가나안 계열 문자로 새겨져 있다. 발견 이듬해 비석이 여러 조각으로 깨졌지만, 그 전에 젖은 종이를 눌러 떠 둔 탁본 덕분에 본문 대부분이 복원되었다. 지금은 루브르 박물관에 있다.

메사 비석과 열왕기하 3:4–5

ʿmry . mlk . yśrʾl . wyʿnw . ʾt . mʾb . ymn . rbn

이스라엘 왕 오므리가 여러 날 동안 모압을 억눌렀다.

메사 비석 4–5행(KAI 181). 점은 비문의 낱말 구분점

וּמֵישַׁע מֶלֶךְ־מוֹאָב הָיָה נֹקֵד וְהֵשִׁיב לְמֶלֶךְ־יִשְׂרָאֵל מֵאָה־אֶלֶף כָּרִים … וַיְהִי כְּמוֹת אַחְאָב וַיִּפְשַׁע מֶלֶךְ־מוֹאָב בְּמֶלֶךְ יִשְׂרָאֵל׃

ûmêšaʿ melekh-môʾāv hāyâ nōqēd wəhēšîv ləmelekh-yiśrāʾēl mēʾâ-ʾelef kārîm … wayhî kəmôt ʾaḥʾāv wayyifšaʿ melekh-môʾāv bəmelekh yiśrāʾēl

모압 왕 메사는 양을 치는 사람이었는데, 이스라엘 왕에게 새끼 양 10만 마리를 바쳤다. … 아합이 죽자 모압 왕이 이스라엘 왕을 배반했다.

열왕기하 3:4–5 발췌. 레닌그라드 사본

두 기록은 모압이 오므리 왕조 아래 있다가 메사 때 벗어났다는 기본 줄거리에서 일치한다. 모압어 "억눌렀다"(wyʿnw)는 히브리어에서 "괴롭히다"를 뜻하는 동사 아나(ענה)와 같은 뿌리다. 두 언어가 얼마나 가까운지를 보여 주는 예다. 차이는 원인과 시점에 있다. 비석은 모압의 신 그모스가 자기 땅에 노해 이스라엘의 지배를 허락했다가 다시 메사를 도왔다고 설명하고, 해방을 오므리의 "아들" 시대에 둔다. 열왕기하는 반란을 아합이 죽은 뒤로 적는다. 비석은 이어서 느보 성을 빼앗아 주민을 신에게 "바쳤다"(ḥrm)고 쓰는데, 이 말은 여호수아서에서 성을 전멸시켜 하나님께 바치는 헤렘과 같은 개념이다. 모압과 이스라엘은 같은 전쟁 관습을 공유했고, 그 관습을 각자의 신에게 돌렸다.

산헤립의 예루살렘 포위

기원전 701년 아시리아 왕 산헤립은 유다를 침공해 라기스를 포함한 요새 도시들을 점령했다. 산헤립의 연대기는 히스기야가 금 30달란트와 은 800달란트, 보석, 상아를 박은 가구, 자기 딸들과 후궁들을 니네베로 보냈다고 적는다. 열왕기하 18:14는 같은 조공을 이렇게 적는다.

וַיָּשֶׂם מֶלֶךְ־אַשּׁוּר עַל־חִזְקִיָּה מֶלֶךְ־יְהוּדָה שְׁלֹשׁ מֵאוֹת כִּכַּר־כֶּסֶף וּשְׁלֹשִׁים כִּכַּר זָהָב׃

wayyāśem melekh-ʾaššûr ʿal-ḥizqiyyâ melekh-yəhûdâ šəlōš mēʾôt kikkar-kesef ûšəlōšîm kikkar zāhāv

아시리아 왕이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은 300달란트와 금 30달란트를 물렸다.

열왕기하 18:14 끝부분. 레닌그라드 사본

금 30달란트는 두 기록이 같고, 은은 800과 300으로 다르다. 1달란트는 약 30킬로그램이므로 은의 차이는 15톤에 이른다. 아시리아 연대기는 예루살렘을 포위했다고 쓰지만 함락했다고 쓰지 않는다. 열왕기하 19:35는 그날 밤 여호와의 사자가 아시리아 진영에서 18만 5000명을 쳤다고 적는다. 이 사건에는 세 번째 기록이 있다.

ἐνθαῦτα ἀπικομένοισι τοῖσι ἐναντίοισι αὐτοῖσι ἐπιχυθέντας νυκτὸς μῦς ἀρουραίους κατὰ μὲν φαγεῖν τοὺς φαρετρεῶνας αὐτῶν κατὰ δὲ τὰ τόξα, πρὸς δὲ τῶν ἀσπίδων τὰ ὄχανα, ὥστε τῇ ὑστεραίῃ φευγόντων σφέων γυμνῶν πεσεῖν πολλούς.

enthauta apikomenoisi toisi enantioisi autoisi epikhythentas nyktos mys arouraious kata men phagein tous pharetreōnas autōn kata de ta toxa, pros de tōn aspidōn ta okhana, hōste tēi hysteraiēi pheugontōn spheōn gymnōn pesein pollous.

적군이 그곳에 이르자 밤중에 들쥐 떼가 몰려와 그들의 화살통과 활, 방패 손잡이까지 갉아 먹었다. 그래서 이튿날 그들은 무기 없이 달아나다가 많은 수가 쓰러졌다.

헤로도토스, 『역사』 2권 141장. 고들리(A. D. Godley, 1920) 교정본, 페르세우스 디지털 도서관 그리스어 본문

헤로도토스는 기원전 5세기에 이집트 사제들에게서 이 이야기를 들었다. 그의 기록에서 "아라비아인과 아시리아인의 왕 사나카리보스"는 이집트를 치러 오고, 헤파이스토스 신전의 사제 출신 이집트 왕이 꿈에서 신의 약속을 받는다. 군대는 이집트 국경의 펠루시온에서 들쥐 떼 때문에 패한다. 헤로도토스의 기록은 2차 문헌이다. 사건이 일어난 뒤 약 250년이 지나 그리스인이 이집트 쪽 전승을 옮겨 적은 것이기 때문이다. 세 기록을 나란히 놓으면 아시리아 연대기는 예루살렘을 함락하지 못한 결과를 적지 않고 조공 목록을 길게 적으며, 열왕기하는 그 결과를 여호와의 개입으로 설명하며, 이집트 전승은 같은 퇴각을 이집트 신의 도움으로 설명한다. 세 기록 모두 산헤립 군대가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돌아갔다는 한 가지 사실에서 만난다.

데이르 알라 비문의 발람

1967년 네덜란드 발굴단은 요르단 계곡의 데이르 알라에서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를 조사하다가, 검은 잉크와 붉은 잉크로 글을 쓴 회벽 조각 119개를 찾았다. 층위와 글자 모양, 언어로 보아 기원전 800년경의 글이다. 첫머리는 "브올의 아들 발람, 신들의 선견자"라는 인물이 밤에 신들의 환상을 보고 이튿날 금식하며 울고, 동료들에게 닥칠 재앙을 알린다는 내용이다.

וַיִּשְׁלַח מַלְאָכִים אֶל־בִּלְעָם בֶּן־בְּעוֹר פְּתוֹרָה אֲשֶׁר עַל־הַנָּהָר

wayyišlaḥ malʾākhîm ʾel-bilʿām ben-bəʿôr pətôrâ ʾăšer ʿal-hannāhār

(모압 왕 발락이) 강가에 있는 브돌로, 브올의 아들 발람에게 사자들을 보냈다.

민수기 22:5 앞부분. 레닌그라드 사본

데이르 알라 비문의 "발람 브르 브오르"(blʿm br bʿr)는 민수기의 "빌암 벤 브오르"와 이름, 아버지 이름, 직능이 모두 같다. 민수기 22–24장의 발람은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고용되었다가 축복하는 이방인 예언자다. 비문은 요단강 동쪽에서 이 인물이 이스라엘과 무관한 신들의 선견자로 따로 전해졌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이 대응은 인물 전승의 대응이다. 비문의 연대가 민수기가 배경으로 삼는 시대보다 수백 년 늦기 때문에, 비문은 발람이라는 인물의 실재를 증명하지 않고, 기원전 9–8세기 요르단 계곡에서 그의 이름으로 된 예언 문학이 읽혔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결론 — 유사성의 종류가 영향의 방향과 해석의 범위를 정한다

구약성경과 고대근동 문헌의 유사성은 한 가지 관계가 아니다. 원문을 나란히 놓으면 네 종류가 구별되고, 종류마다 원문이 확정해 주는 범위가 다르다.

문장 단위의 차용은 잠언 22:17–24:22와 「아메네모페의 교훈」, 전도서 9:7–9와 시두리의 권고, 이사야 27:1과 우가릿의 로탄 칭호에서 확인된다. 이 경우 연대가 확실한 쪽에서 성경 쪽으로 영향이 전해졌다고 볼 근거가 가장 강하고, 잠언은 스스로 "지혜로운 이들의 말"이라는 제목을 붙여 출처가 따로 있음을 밝힌다. 성경은 가져온 문장을 그대로 두지 않고, 여호와를 의뢰하라는 목적(잠 22:19), 하나님이 인간의 일을 받아들였다는 근거(전 9:7), 괴물을 치는 주체의 교체(사 27:1)를 덧붙였다.

공통 형식은 법과 조약에서 드러난다. 에슈눈나 법 53조와 출애굽기 21:35는 조문 하나가 통째로 같고, 신명기 28:23은 에살핫돈 계승 조약의 가뭄 저주와 같은 비유 쌍을 쓴다. 그러나 법 모음은 지역 전체에 수백 년 동안 퍼져 있던 판례 전통이어서, 특정 문서를 보고 베꼈다는 결론은 원문만으로 나오지 않는다. 같은 형식 안에서 생명의 값을 매기는 방식, 신분에 따른 차등, 법의 권위가 나오는 자리는 각기 다르게 정해졌다.

신화 소재의 재구성은 창조, 인간의 노동, 홍수에서 보인다. 태초의 물, 흙으로 빚은 인간, 새를 날려 보내는 장면, 향기를 맡는 신은 공유되고, 신들의 싸움과 신들의 굶주림은 창세기에서 빠진다. 원문 대조는 널리 알려진 몇몇 대응을 약하게 만들기도 한다. 닌티의 말놀이는 수메르어 안에서만 성립하고, 엔메르카르의 "하나의 언어"는 시제를 미래로 읽으면 언어 통합의 주문이 된다. 대응이 번역문에서 만들어졌는지 원문에 있는지를 가려야 하는 이유가 여기서 드러난다.

같은 사건의 다른 기록은 메사 비석, 산헤립 연대기, 헤로도토스의 기록이다. 이 경우 유사성은 차용이 아니라 공통의 사실에서 나오고, 차이는 각 기록자가 누구의 신과 누구의 승리를 앞세우는지에서 나온다. 은 300달란트와 800달란트의 차이, 반란 시점의 차이는 어느 한쪽을 거짓으로 만들기보다 각 기록이 무엇을 앞세웠는지를 보여 준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물음도 원문 대조에서 나온다. 철기 시대 유다의 서기관이 아카드어 문서에 어떤 경로로 접근했는지는 발굴 자료가 부족해 확정되지 않았다. 구약 본문이 언제 지금 형태로 정리되었는지에 대한 판단, 특히 기원전 6세기 바빌론 포로기를 어떻게 보는지에 따라 영향의 방향 판단도 달라진다. 비교 연구가 다룰 수 있는 범위는 문헌 사이의 관계까지다. 성경이 계시인가라는 신학의 물음은 이 방법으로 판정할 수 없다. 유사성은 그 물음을 부정하지도 증명하지도 않는다. 원문 대조가 확정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저자들이 주변 세계의 언어, 형식, 이야기 속에서 글을 썼고, 그 재료를 받아들인 자리와 고친 자리가 본문에 흔적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