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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기록의 장기보존 — 수천 년 뒤에 남는 것은 오래 가는 매체가 아니라 누군가 계속 옮겨 담은 기록이다

2026년 9월 12일

점토판과 돌판과 필사본은 수천 년을 건너왔는데 하드디스크는 10년을 못 버틴다는 대비는 널리 통용된다. 이 대비는 결론이 맞고 이유가 틀렸다. 문자 기록도 거의 다 사라졌고, 남은 것을 남게 만든 힘은 재료의 내구성만이 아니었다. 재료가 무엇이었는지보다 누가 그것을 계속 옮겨 적었는지가 더 크게 작용했다. 이 기준을 데이터에 적용하면 답이 나온다.

문자 기록이 온전히 전해졌다는 전제는 사실과 다르다

고대 그리스의 비극 작가 소포클레스는 기원전 5세기 아테네에서 50년 가까이 극작 경연에 참가해 30번 나가 24번 우승했고, 2위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었다. 10세기 비잔티움의 백과사전 『수다』는 그가 123편을 썼다고 적었고, 오늘날 학계는 대략 120편 이상으로 본다. 완본으로 전하는 것은 7편이다. 생존율은 6퍼센트에 못 미친다. 나머지는 제목 90여 개와 다른 저자들이 인용해 둔 조각, 그리고 20세기 초 이집트에서 파피루스로 나온 사티로스극 「추적자들」의 400행 남짓으로만 남았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이 7편이 모두 작가의 후기 작품이며 중세 필사본 전통을 통과한 것이라고 정리한다. 같은 경연에 나가 소포클레스와 겨룬 다른 작가들의 작품은 한 편도 전하지 않는다.

점토판 쪽 사정도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 대영박물관이 소장한 니네베의 아슈르바니팔 도서관 점토판은 3만 점을 넘는다. 아슈르바니팔은 기원전 669년부터 631년경까지 신아시리아 제국을 통치했고, 수도 니네베는 기원전 612년경 불에 탔다. 이 점토판이 오늘날 남은 이유는 흙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도서관이 불탔기 때문이다. 말린 점토는 물에 닿으면 풀어지고 다시 반죽할 수 있다. 궁전에 붙은 불이 점토를 도자기처럼 구워 굳혔다. 대영박물관과 펜실베이니아대학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아슈르바니팔 도서관 프로젝트는 니네베 점토 도서관이 기원전 612년 약탈 때 불탄 덕분에 오늘까지 살아남았다고 서술한다. 그리고 같은 도서관이 보유했던 밀랍 서판은 유기물이라 한 점도 남지 않았다. 같은 장소, 같은 소장자, 같은 시기의 기록인데 재료가 결과를 갈라놓았다.

미케네 문명의 선형문자 B 점토판도 마찬가지다. 미케네의 서기들은 굽지 않은 점토에 그해의 재고와 세액과 배급을 적었고, 회계연도가 끝나면 부수어 다시 반죽해 쓸 예정이었다. 다트머스대학의 에게해 선사고고학 강의 자료는 오늘날 전하는 선형문자 B 점토판이 그 점토판을 보관한 건물이 불타면서 거칠게 구워진 결과로 남았다고 설명한다. 크노소스 궁전이 불탄 것이 기원전 14세기, 필로스 궁전이 불탄 것이 기원전 1200년 무렵이다. 영구 보존을 의도한 적 없는 임시 문서가 파괴 덕분에 3,000년을 건너왔고, 정작 장기 보존을 의도했을 파피루스나 가죽 문서는 흔적이 없다.

그러니 "글자로 적힌 것은 다 전해졌다"는 전제는 성립하지 않는다. 전해진 것은 두 개의 관문 중 하나를 통과한 기록에 한정된다.

기록이 후대에 닿는 경로는 두 가지였고 성질이 서로 다르다

첫째 경로에서는 돌보는 사람이 없는데도 물성 덕에 남는다. 구워진 점토판, 비석, 건조한 사막에 묻힌 파피루스, 화산재에 덮인 두루마리가 여기 해당한다. 이 경로의 특징은 관리 주체가 필요 없다는 점이다. 기록을 만든 사회가 사라지고 그것을 읽을 사람이 1,000년 동안 없어도 물체는 땅속에 그대로 있다. 발굴자가 언제 오는지는 물체의 생존과 무관하다.

둘째 경로에서는 누군가 계속 베껴 썼기 때문에 남는다. 소포클레스의 7편이 여기에 속한다. 파피루스 두루마리에서 양피지 코덱스로, 고대 서기에서 중세 수도원 필사자로, 필사본에서 인쇄본으로 옮겨 적는 작업이 2,000년 넘게 이어졌기 때문에 남았다. 이 경로의 특징은 첫째와 정반대다. 한 세대라도 옮겨 적기를 멈추면 그 자리에서 끝난다. 재료가 튼튼한지는 거의 중요하지 않고, 옮겨 적을 사람과 그 사람을 먹여 살릴 조직이 계속 있었는지가 전부다. 그리고 옮겨 적는 사람은 전부를 옮기지 않는다. 소포클레스의 7편이 남고 113편이 사라진 것은 이 편들이 후대의 학교 교재로 선택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고전학의 통상적 설명이다. 걸러낸 쪽은 사람의 선택이었다.

디지털 기록의 장기보존을 이야기할 때 이 구분이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이유는 뒤에서 다루겠지만 결론을 먼저 말하는 편이 이해에 도움이 된다. 데이터에는 첫째 경로가 아예 없다. 데이터가 후대에 닿을 수 있는 길은 둘째 경로뿐이고, 그 경로는 원래부터 관리 주체의 존속에 전면적으로 의존한다.

기록이 후대에 닿는 두 경로왼쪽은 물체로 남는 경로, 오른쪽은 세대마다 옮겨 적는 경로이며, 데이터에는 오른쪽 경로만 있다.기록이 후대에 닿는 두 경로경로 A · 물체로 남는 길경로 B · 옮겨 적는 길기록을 물체에 새긴다기록을 만든다손대는 사람이 없는 기간세대마다 새로 옮겨 적는다발굴해서 읽는다지금 읽는다관리 주체가 없어도 유지된다한 세대라도 멈추면 끝난다데이터가 쓸 수 있는 경로는 B 하나뿐이다
두 경로의 차이는 관리 주체가 필요한지에 있다. 왼쪽 경로는 중간에 아무 일이 없어도 성립하고, 오른쪽 경로는 매 세대의 작업으로만 성립한다.
비트스트림과 포맷 저장장치에 실제로 들어 있는 것은 0과 1의 배열이다. 이 배열을 비트스트림이라고 부른다. 비트스트림만 꺼내도 뜻은 생기지 않는다. 어느 자리부터 몇 비트가 한 글자인지, 압축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야 하는지, 색과 소리를 어떤 규칙으로 되살리는지를 정해 둔 약속이 따로 있어야 한다. 이 약속이 파일 형식, 곧 포맷이다. 종이에 적힌 글은 잉크 자체가 이미 글자 모양이지만, 데이터는 신호와 뜻이 분리되어 있고 그 사이를 포맷이 잇는다. 그래서 데이터 보존은 매체를 지키는 일과 포맷을 해석할 능력을 지키는 일로 나뉜다.

조선의 사고는 복제와 분산을 국가 제도로 만든 사례다

둘째 경로를 국가가 의식적으로 설계한 사례가 조선에 있다. 국가기록원이 정리한 실록 보관 연혁에 따르면, 조선 건국 초기에 『조선왕조실록』은 한양의 춘추관과 충주 두 곳의 사고(史庫, 실록을 보관하기 위해 국가가 설치한 서고)에 나누어 봉안되었다. 1439년(세종 21) 춘추관이 외사고 확충 계획을 올려 경상도 성주와 전라도 전주에 사고를 더 지었고, 1445년(세종 27)부터 춘추관·충주·성주·전주 네 곳에 나누어 보관하는 체제가 자리 잡았다. 실록 자체가 여러 부 제작되어 각 사고에 한 부씩 들어갔다.

이 체제가 실제로 작동한 기록이 남아 있다. 국사편찬위원회의 우리역사넷은 1538년(중종 33) 성주 사고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의 처리를 전한다. 각 사고에 서적을 나누어 보관해 두었기 때문에 보수가 가능했고, 조정은 춘추관 사고본을 저본으로 삼아 권수가 많은 『세종실록』과 『성종실록』은 활자로 다시 간행하고 나머지는 베껴 쓰게 했다. 한 곳을 잃었지만 다른 곳의 사본에서 복제해 되살렸다.

임진왜란에서는 네 곳 가운데 세 곳이 동시에 불탔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춘추관·충주·성주의 사고가 병화로 불타고 전주사고본만 화를 면했다고 기록한다. 전주사고본은 유생 안의와 손홍록 등의 노력으로 정읍 내장산으로 옮겨졌고, 이후 해로로 해주를 거쳐 영변 묘향산 보현사로 다시 옮겨졌다. 전쟁이 끝난 뒤 조선은 이 한 벌을 저본으로 1603년 7월부터 1606년 3월까지 2년 9개월 동안 실록을 다시 만들었다. 새로 만든 실록은 읍내를 떠나 깊은 산속에 나누어 보관했다. 그럼에도 1624년 이괄의 난으로 춘추관 사고본이 다시 소실되었고, 남은 것은 정족산·태백산·적상산·오대산 네 곳으로 재편되었다. 이 네 사고본은 대한제국기까지 전해졌으나 일제강점기에 일부가 반출되고 일부는 분단 이후 북한으로 넘어갔다.

조선왕조실록 사고의 수 변화1445년 네 곳으로 늘었고 임진왜란으로 한 곳만 남았으며 1606년 다섯 벌로 다시 만들었다.조선왕조실록을 나누어 보관한 사고의 수한 곳이 없어지면 남은 곳의 사본을 베껴 채웠다1곳2곳3곳4곳5곳1400년1450년1500년1550년1600년1650년1445년네 곳으로 늘려 분산 보관을 시작했다1538년성주사고 화재 · 춘추관본을 저본으로 복구했다1592년임진왜란으로 세 곳이 불타고 전주사고본만 남았다1606년전주사고본을 저본으로 다섯 벌을 다시 만들었다1624년이괄의 난으로 춘추관본이 소실되었다
세로축은 실록을 나누어 보관한 사고의 수다. 1538년과 1592년의 하강 구간에서 남은 사본을 저본으로 다시 부수를 채웠다. 연혁은 국가기록원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기술을 따랐다.

여기서 읽어야 할 것은 방어 수단이 하나뿐이었다는 사실이다. 조선은 종이의 품질을 높이는 쪽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부수를 늘리고 지리적으로 떼어 놓는 것이 유일한 대응이었고, 한 곳이 없어지면 남은 곳에서 다시 베껴 채웠다. 500년 동안 되풀이된 이 작업이 멈춘 적이 없었기 때문에 오늘 원문을 읽을 수 있다. 종이가 특별히 튼튼했기 때문이 아니다.

데이터 매체의 실제 수명은 개월과 십 년 단위로 규정되어 있다

저장 매체의 수명은 산업 표준에 숫자로 적혀 있다. 반도체 표준화 단체 JEDEC이 정한 SSD 내구성 표준 JESD218은 전원을 끊은 상태에서 데이터를 얼마나 유지해야 하는지를 규정한다. 일반 소비자용 SSD는 쓰기 수명을 거의 다 쓴 상태에서 30도 환경에 두었을 때 1년, 기업용 SSD는 40도 환경에서 3개월이다. 단위가 개월이다. 이유는 플래시 메모리의 동작 원리에 있다. 플래시는 셀에 전하를 가두어 0과 1을 표현하고, 전하는 시간이 지나면 새어 나간다. 전원이 들어와 있는 동안에는 컨트롤러 펌웨어가 배경 작업으로 전압을 다시 맞추지만, 전원이 꺼진 장치는 그 작업을 할 수 없다. IBM은 자사 스토리지 제품 고객에게 공식 경고를 내면서 기업용 SSD의 JEDEC 규격이 40도에서 최소 3개월이므로, 40도 이하 환경이라도 3개월 넘게 전원을 끈 시스템은 데이터 손실과 드라이브 고장 가능성이 있다고 안내했다. 2개월 이상 꺼 둔 시스템은 최소 2주 동안 전원을 올려 둘 것을 권고한다. 서랍에 넣어 둔 SSD는 보관 장치가 아니다.

보관용 자기테이프는 사정이 낫다. LTO(Linear Tape-Open)는 휴렛팩커드 엔터프라이즈, IBM, 퀀텀 세 회사가 공동으로 유지하는 개방 규격의 테이프 저장 기술이고, 권장 보관 조건에서 30년 이상의 보존 수명을 표방한다. 문제는 다른 데서 생긴다. LTO 컨소시엄이 공개한 세대 호환성 표에 따르면, 1세대부터 7세대까지의 드라이브는 두 세대 앞의 테이프를 읽고 한 세대 앞의 테이프에 쓸 수 있었다. 8세대 드라이브는 7세대와 8세대만, 9세대 드라이브는 8세대와 9세대만 읽고 쓴다. 그리고 10세대 드라이브는 10세대 매체만 읽고 쓴다. 이전 세대와의 호환이 남아 있지 않다.

이 사실이 뜻하는 바는 분명하다. 테이프 자체는 30년을 버티도록 만들어졌는데, 그 테이프를 읽을 드라이브는 두 세대가 지나면 시장에서 구할 수 없다. LTO는 대략 2~3년에 한 세대씩 올라왔다. 따라서 보관 담당자는 매체가 멀쩡한 상태에서 순수하게 호환성 때문에 데이터를 새 세대 테이프로 옮겨 써야 한다. 옮겨 쓰지 않으면 물리적으로 온전한 테이프를 손에 들고도 내용을 꺼낼 수 없게 된다.

매체별 보존 수명 비교전원을 끊은 SSD는 개월 단위, LTO 테이프는 30년, 필름과 금속판과 유리는 수백 년에서 1만 년이다.매체별 보존 수명 · 규격과 설계 목표가로축은 상용로그 눈금이다기업용 SSD · 전원 차단 상태3개월소비자용 SSD · 전원 차단 상태1년LTO 테이프 · 권장 보관 조건30년피클 필름 · ISO 기준 설계500년로제타 디스크 · 설계 목표2,000년니네베 점토판 · 실제 생존 기간2,638년프로젝트 실리카 · 설계 목표1만 년0.1년1년10년100년1천 년1만 년LTO는 두 세대가 지나면 드라이브가 사라져, 매체가 멀쩡해도 새 세대로 옮겨 써야 한다
SSD 두 항목은 JEDEC JESD218이 정한 전원 차단 후 유지 기간이고, LTO는 권장 보관 조건의 표방 수명이다. 필름·금속판·유리는 설계 목표이며, 니네베 점토판만 실제로 경과한 기간이다.
리프레시와 마이그레이션 디지털 보존 실무에서는 옮겨 담기를 두 층으로 구분한다. 리프레시(refresh)는 같은 종류의 새 매체로 비트스트림을 그대로 복사하는 작업이다. 5년 된 테이프의 내용을 새 테이프에 복사하는 작업이 여기 해당하고, 내용은 한 비트도 바뀌지 않는다. 마이그레이션(migration)은 포맷 자체를 새 포맷으로 바꾸는 작업이다. 옛 워드프로세서 파일을 현재 열리는 형식으로 변환하는 작업이 여기 해당하고, 이 과정에서는 원본에 있던 기능이나 서식이 일부 사라질 수 있다. 리프레시는 매체 수명에 대한 대응이고 마이그레이션은 포맷 진부화에 대한 대응이다. 둘 다 사람이 주기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며,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 상황을 가장 먼저 정확하게 진술한 사람은 랜드연구소의 제프 로젠버그였다. 그는 1995년 1월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 「디지털 문서의 장기 존속 보장」을 실었고, 그 글에서 널리 인용되는 문장을 남겼다.

digital information lasts forever—or five years, whichever comes first

디지털 정보는 영원히 남는다. 아니면 5년이다. 둘 중 먼저 오는 쪽으로.

Jeff Rothenberg, 「Ensuring the Longevity of Digital Documents」, Scientific American 272권 1호(1995), 42~47쪽

같은 글에서 로젠버그는 파일과 문서를 구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파일은 그 자체로 문서가 아니고, 그것을 만든 프로그램이 해석할 때 문서가 된다. 프로그램이 없으면 파일은 자기 부호 체계에 갇힌 상태로 남는다. 1998년에는 도서관정보자원위원회(CLIR)를 위해 「기술이라는 모래밭 피하기」라는 보고서를 써서 여러 보존 방식을 비교했다.

비트가 남아도 재생 장비가 없으면 읽지 못한다

매체와 포맷 다음 층은 장비다. 이 층의 위험이 어떤 모습인지 보여 주는 사례가 영국에 있다.

1986년 영국 BBC는 1086년 둠즈데이 북(정복왕 윌리엄이 잉글랜드 전역을 조사해 만든 토지 조사 기록) 900주년을 기념해 BBC 둠즈데이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전국 1만 개 학교의 학생들이 자기 동네를 조사해 사진과 글을 보냈고, 통계청과 육지측량부와 방송사와 대학이 참여했다. 영국 국립문서보관소가 발행하는 『아리아드네』 36호에 프로젝트 참여자들이 직접 쓴 회고에 따르면, 기여자는 약 100만 명이었다. 데이터는 필립스가 이 사업을 위해 새로 만든 LV-ROM이라는 레이저디스크 규격에 담겼다. 영상 신호의 음성 대역을 데이터 채널로 바꿔 쓴 방식이다. 재생에는 BBC 마스터 마이크로컴퓨터와 SCSI 카드, 전용 파일시스템 칩, 트랙볼, 그리고 필립스의 LV-ROM 플레이어가 모두 필요했다. 이 한 벌의 가격이 약 4,000파운드였고, 프로젝트 팀이 예상한 금액의 두 배를 넘었다. 그래서 팔린 대수가 적었다.

16년 뒤인 2002년, 영국 국립문서보관소는 이 디스크의 내용에 접근할 방법이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디스크는 멀쩡했다. 없어진 것은 플레이어였다. 값이 비싸 판매량이 적었고, 팔린 것들은 세월에 흩어졌다. 리즈대학 지리학과에 남아 있던 한 벌이 프로젝트 개시 무렵 고장 났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복구는 세 갈래로 동시에 진행됐다. 리즈대학과 미시간대학이 공동으로 수행한 CAMiLEON 프로젝트는 에뮬레이션 방식을 시험했고, 2002년 12월 2일 리즈대학에서 살아남은 LV-ROM 드라이브에 PC를 연결해 디스크에서 데이터를 꺼내 시연했다. 원 제작진의 영상 담당자였던 앤디 피니는 디스크를 찍어 내는 데 쓴 1인치 아날로그 마스터 테이프를 추적했고, 가장 이른 사본은 프로젝트 책임자 피터 암스트롱의 집 다락에서 나왔다. BBC 연구소가 이 테이프를 디지털로 옮겼다.

가장 많은 노력이 들어간 것은 세 번째 갈래였다. 브라이턴에 완전한 둠즈데이 시스템 한 벌이 보관되어 있었고, 애드리언 피어스가 그것을 이용해 데이터 구조를 역공학으로 풀었다. 기술 문서가 남아 있지 않았으므로 디스크의 파일 목록을 뽑는 것부터 시작했다. BBC 마이크로의 직렬 포트와 PC를 연결해 데이터 채널의 파일을 내려받았는데, 파일 하나에 50시간 넘게 걸린 것도 있었고 긴 전송을 반복하다 BBC 마이크로의 메인보드가 고장 났다. 다행히 메인보드와 SCSI 인터페이스 보드의 교체품을 구할 수 있었다. 이렇게 받아 낸 300메가바이트가 넘는 텍스트와 16진수 데이터를 16진 편집기로 들여다보며 트리 구조를 알아냈고, 1986년의 프로그래밍 언어와 자료구조 관행을 짐작해 가며 색인 구조를 복원했다. 검색 알고리즘은 마틴 포터가 최근 공개한 어간 추출 알고리즘의 C 구현을 기초로 다시 만들었다. 윈도우용 새 버전을 완성하는 데 16개월이 걸렸다.

같은 회고에서 참여자들이 남긴 두 문장이 이 사안의 성격을 보여 준다. 첫째, 이 복구는 시간과 개인의 기량과 집념이 있으면 거의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주지만 너무 늦기 전에 시작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그리고 이 방식은 다른 전자기록을 일상적이고 예측 가능하게 보존하는 모델로 쓸 수 없다. 둘째, 영상 자료를 옮겨 담은 디지털 베타캠 포맷에 대해 그들은 앞으로 10년쯤은 안전한 포맷일 것이라고 적었다. 보존을 위해 옮겨 담은 결과물의 안전 기한을 10년으로 잡은 것이다. 다음 이전 작업의 예정이 포함된 판단이었다.

에뮬레이션 없어진 옛 컴퓨터를 소프트웨어로 흉내 내어, 옛 프로그램이 그 위에서 그대로 돌아가게 만드는 방식이다. 마이그레이션이 파일을 새 형식으로 바꾸는 쪽이라면 에뮬레이션은 파일을 그대로 두고 그것을 읽던 환경을 다시 만드는 쪽이다. 화면과 조작감까지 원래대로 되살릴 수 있어서 초기 멀티미디어 저작물처럼 내용과 동작이 분리되지 않는 자료에 유리하다. 대신 옛 기계의 동작을 정확히 재현할 만큼 규격과 문서가 남아 있어야 하고, 에뮬레이터 자체도 누군가 계속 새 운영체제에 맞춰 고쳐 주어야 한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사례는 장비 의존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여 준다. 1966년과 1967년 NASA는 아폴로 착륙지를 정찰하기 위해 달 궤도선(Lunar Orbiter) 5기를 보냈다. 고해상도 카메라의 지상 분해능은 약 1미터로, 2009년 달 정찰 궤도선이 오기 전까지 이 기록이 깨지지 않았다. 이 영상의 원 신호는 지상국에서 2인치 아날로그 테이프에 기록됐고, 재생에는 암펙스 FR-900이라는 계측용 테이프 녹화기가 필요했다. 새것일 때 한 대에 30만 달러였고 냉장고만 한 크기였다. 1986년 이 기종은 현역에서 물러났다.

2009년 달·행성 과학 학회에 제출된 데니스 윙고와 키스 카우잉의 보고서에 따르면, 테이프를 관리하던 제트추진연구소의 낸시 에번스가 잉여 물자에서 FR-900 계열 드라이브 4대를 확보한 것이 복구 사업의 출발점이었다. 2008년 7월 NASA의 자금과 민간 후원으로 드라이브 정비가 시작됐다. 자료를 찾기 위해 스탠퍼드대학의 암펙스 기록물을 뒤지고, 당시 프로그램 참여자와 전직 암펙스 직원을 인터뷰했다. 팀은 나사 에임스 연구센터 근처의 폐업한 맥도날드 매장에 자리를 잡았고, 테이프 1,478개와 드라이브 4대를 트럭 두 대로 실어 왔다. 수십 년 동안 전원이 들어간 적 없는 회로를 하나하나 점검하는 데 3개월이 걸렸다.

비트를 꺼내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아날로그 신호를 영상으로 되돌리는 전용 복조 장비가 이미 세상에 남아 있지 않았다. 팀은 당대 문헌에 실린 수식을 찾아 복조기를 처음부터 다시 만들었다. 같은 보고서는 2009년 말이면 테이프 헤드를 재생해 주는 마지막 업체가 그 일을 접을 예정이었으므로 그 전에 정비된 헤드를 확보해야 했다고 적었다. 보고서가 후대를 위한 교훈으로 남긴 문장은 다음과 같다.

It is not enough to have 100 year recording medium.

100년을 버티는 기록 매체를 갖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D. R. Wingo, K. L. Cowing, 「Recovering High Resolution Lunar Orbiter Images from Analog Tape」, 제40회 달·행성 과학 학회(2009) 초록 2517

같은 대목에서 두 저자는 해당 시대의 장비를 함께 남겨 두지 않으면 후대가 옛 위성 자료를 되살리는 일이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썼고, 이것이 달 궤도선에 국한되지 않는 일반적인 문제이므로 중요 장비의 보존을 비행 사업의 요구사항으로 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리고 아폴로 11호의 원본 저속주사 영상은 이 점을 소홀히 한 결과 이미 사라졌다고 덧붙였다.

그 아폴로 11호 테이프의 경위는 따로 기록되어 있다. 1969년 7월 20일 달 표면에서 보낸 최고 화질의 영상 신호는 캘리포니아 골드스톤과 오스트레일리아의 허니서클크리크·파크스 지상국에서 1인치 계측 테이프에 기록됐다. 세계에 방송된 화면은 이 신호를 즉석에서 방송 규격으로 변환한 것이어서 원본보다 화질이 낮았다. 파크스 천문대의 운영과학자 존 사키시안은 2012년 학술 발표에서, 3년에 걸친 탐색 끝에 2009년 아폴로 11호 테이프 탐색팀이 그 기록 테이프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적었다.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에 비용 절감 조치로 지워져 재사용된 것으로 보인다는 판단이었다. NASA는 2009년 7월 16일 워싱턴에서 이 결과를 발표했다. 탐색 과정에서 각지의 기록보관소에 남아 있던 최상급 변환 사본들이 발견되어, 그것들을 이어 붙여 복원판이 만들어졌다.

포맷 진부화의 위험도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결론이 나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서술은 한 방향으로만 읽힌다. 그러나 포맷 층의 위험도에 관해서는 이 분야 안에서 오래된 반론이 있고, 그 반론을 제기한 쪽도 실무 경력이 두껍다.

반론의 대표자는 데이비드 로젠탈이다. 그는 스탠퍼드대학 도서관에서 LOCKSS(Lots of Copies Keep Stuff Safe, 사본을 많이 만들어 두면 자료가 남는다) 기술을 만들고 그 사업의 수석 과학자로 일했다. 여러 도서관이 각자 서버를 운영하며 같은 전자 학술지를 서로 대조해 보존하는 구조다. 2007년 5월 그는 포맷 진부화를 주제로 연속 글을 쓰면서, 어떤 포맷에 대해 공개 소스 재생기가 존재하는 경우 그 포맷을 재현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을 그럴듯하게 상정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응 방식을 두 가지로 나눴다. 진부화가 닥칠 때를 대비해 지금 최대한 미리 작업해 두는 적극적 방식과, 절대적으로 필요해질 때까지 미루면서 그때는 지금보다 좋은 도구가 나와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느슨한 방식이다. 그는 후자를 옹호했다.

2010년 논문에서 그의 주장은 실증 쪽으로 옮겨 갔다. 포맷 이전 전략을 주장하는 쪽에 로젠버그가 1995년에 그 주장을 내놓은 시점에 널리 쓰이던 포맷 중 그 뒤 15년 동안 실제로 읽을 수 없게 된 포맷을 하나라도 대 보라고 요구했을 때 아무도 대지 못했다. 그가 제시한 설명은 데이터 공유의 네트워크 효과다. 같은 포맷을 쓰는 사람이 많으면 그 포맷을 읽는 도구를 만들 유인이 계속 생기고, 웹이 지배적 매체가 된 뒤로는 파일 형식이 통신 규약처럼 작동해 잘 폐기되지 않는다. 2013년 글에서 그는 웹 아카이브들이 의존하는 소프트웨어 스택이 아스키 텍스트로 된 소스 코드 저장소에 여러 벌 보존되어 있고, 그 저장소는 과거 어느 시점의 상태로도 전체를 재구성할 수 있으며, 하드웨어 에뮬레이션도 같은 방식으로 아스키로 보존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에뮬레이션이 필요해지는 시점이 오면 에뮬레이션은 이미 준비되어 있을 것이고, 그 능력은 이제 컴퓨팅 기반 시설 자체에 내장되어 있다고 그는 적었다. 그는 먼 미래의 가정적 사건에 대비해 지금 큰 자원을 투입하는 것을 경제적으로 정당화하기 어렵다는 논거도 덧붙였다.

이 논쟁은 종결되지 않았다. 2012년 영국 도서관의 앤디 잭슨은 영국 웹 아카이브의 포맷 분포를 시기별로 분석한 논문에서, 소프트웨어 진부화의 존재 자체가 여전히 격렬하게 다투어지고 있으며 그 사실이 미래를 계획하는 능력을 떨어뜨린다고 적었다. 2020년 로젠탈은 다시 이 주제를 다루며 1995년 이후 웹이 지배적 매체가 된 세계에서는 포맷이 아주 느리게, 또는 거의 진부화하지 않는다는 자기 주장을 유지했다.

판단이 나뉘는 자리를 정확히 지목해 둘 필요가 있다. 두 쪽은 사실에서 다투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험의 본체로 보느냐에서 다툰다. 로젠버그 쪽은 포맷 해석 능력의 상실을 본체로 보고, 그래서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손을 쓸 수 없게 된다고 본다. 로젠탈 쪽은 비용과 유인 구조를 본체로 보고, 해석 능력은 시장과 공개 소스 생태계가 유지해 줄 것이므로 자원을 매체 관리와 사본 확보에 쓰는 편이 합리적이라고 본다. 그런데 두 주장은 한 가지에서 어긋나지 않는다. 어느 쪽도 관리 주체가 없어진 자료가 살아남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로젠탈의 논거는 오히려 관리 주체의 존속을 전제로 한다. 공개 소스 저장소가 계속 운영되고, 웹이 계속 돌아가고, 도서관들이 계속 서로 대조한다는 조건 아래에서만 포맷 진부화는 미뤄도 되는 문제가 된다.

여기에 문자 기록에는 없던 소실 방식이 하나 더 붙는다. 암호화다. 파일이 암호화되어 있으면 비트가 온전히 남아 있어도 키 없이는 내용을 얻을 수 없고, 표본이 아무리 많아도 통계적 해독이 통하지 않는다. 로젠버그의 글이 나오고 2년 뒤인 1997년, 영국 합동정보시스템위원회의 디지털 보존 프로그램 책임자 닐 비그리는 CAMiLEON의 둠즈데이 에뮬레이션 성과를 두고 논평하면서 암호화와 기술적 보호 조치가 앞으로 디지털 보존을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2026년 현재 LTO-10 드라이브에는 AES-256 암호화가 내장되어 있고, 소비자 기기의 저장장치는 기본적으로 암호화되어 있다.

문명이 멀쩡한 상태에서도 복제는 수십 년 단위로 중단된다

지금까지의 사례는 모두 특수한 매체와 특수한 장비에 관한 것이었다. 일반적인 데이터는 어떤가. 이 질문에는 측정치가 있다.

퓨리서치센터는 2024년 5월 17일 「온라인 콘텐츠가 사라질 때」라는 분석을 냈다. 방법은 다음과 같다. 웹 전체를 긁어 공개하는 커먼 크롤 자료에서 2013년부터 2023년까지 각 연도의 웹페이지 표본을 뽑고, 2023년 10월 기준으로 그 페이지들에 실제로 접속해 보았다. 결과는 이렇다.

연도별 웹페이지 소실률2013년 페이지의 38퍼센트, 2021년 페이지의 약 20퍼센트, 2023년 페이지의 8퍼센트가 접속 불가였다.2023년 10월 기준으로 접속할 수 없게 된 웹페이지 비율퓨리서치센터, 「온라인 콘텐츠가 사라질 때」, 2024년 5월010203040퍼센트38퍼센트2013년에 있던 페이지약 20퍼센트2021년에 있던 페이지8퍼센트2023년에 있던 페이지2021년 수치는 2년 만에 약 5분의 1이 사라진 것을 가리킨다.같은 조사에서 2013~2023년 사이에 존재한 페이지 전체의 25퍼센트가 접속 불가였다.
정부 웹사이트 표본 약 50만 페이지에서 링크 4,200만 개를 조사한 결과 21퍼센트의 페이지가 깨진 링크를 하나 이상 포함했고, 뉴스 웹사이트에서는 그 비율이 23퍼센트였다.

소실의 주된 형태가 무엇이었는지가 중요하다. 사이트 전체가 문을 닫아서가 아니라,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사이트에서 개별 페이지가 지워지거나 치워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서버는 켜져 있고 회사는 영업 중이고 인터넷은 잘 돌아가는 상태에서 내용이 없어졌다. 같은 조사에서 트위터 게시물을 3개월 동안 추적한 결과 5분의 1 가까이가 올린 뒤 몇 달 안에 공개 상태에서 사라졌고, 없어진 게시물 중 절반은 게시 후 6일 안에 사라졌다.

규모가 큰 사례도 있다. 2019년 3월, 마이스페이스는 자사 음악 재생기 상단에 공지를 올려 서버 이전 작업의 결과로 3년 이상 전에 올린 사진과 영상과 음원이 더 이상 제공되지 않을 수 있다고 알리고, 이용자에게 백업 사본을 보관하라고 권했다. 개별 문의에 대한 답변에서는 서버 이전 과정에서 파일이 손상되어 새 사이트로 옮기지 못했고 복구 방법이 없다고 밝혔다. 회사가 직접 밝힌 것은 여기까지다. 손실 규모로 널리 인용되는 수치, 2003년부터 2015년 사이에 올라온 1,400만 명의 음원 5,000만 곡이라는 숫자의 출처는 개발자 앤디 바이오의 추산이다. 회사는 규모를 밝힌 적이 없다. 바이오는 사고였다는 설명에 회의적이라고 밝히며, 무능이 나쁜 홍보라 해도 5,000만 개의 오래된 음원을 옮기고 저장하는 비용과 수고를 감당할 수 없었다고 말하는 것보다는 낫게 들린다고 적었다. 어느 쪽이든 결과는 같다. 마이스페이스는 2003년 창업 이후 인디 음악가들이 데뷔 음원을 올리던 곳이었고, 그 음원의 사본을 따로 갖고 있지 않던 사람들은 그것을 잃었다.

웹에서 사라지는 것을 옮겨 담는 쪽도 있다. 인터넷 아카이브는 1996년부터 웹을 저장해 왔고, 2025년 10월 웨이백 머신에 보존된 웹페이지가 1조 건을 넘었다. 창립자 브루스터 케일은 10월 22일 샌프란시스코 본부에서 열린 기념 행사에서 이것을 전 세계 사람들이 자기가 아는 것을 다음으로 넘기려 한 결과라고 말했다. 이 행사에는 팀 버너스리와 빈트 서프도 참여했다. 저장 용량은 고유 데이터 기준 약 99페타바이트이고 사본과 이중화를 합치면 212페타바이트가 넘는다.

그런데 이 조직 자체가 안정적이지 않다. 2024년 10월 인터넷 아카이브는 조직 역사상 가장 심한 공격을 받았다. 10월 9일 archive.org에 침입자가 이용자 데이터베이스를 탈취했다는 메시지를 띄웠고, 이후 계정 3,100만 건의 이메일 주소와 사용자명과 비밀번호 해시가 유출된 것으로 확인됐다. 같은 기간 음악 저작권 소송이 진행되어 2025년 9월 비공개 조건으로 합의됐다. 웹을 옮겨 담는 작업을 실제로 수행하는 주체가 침입과 소송과 재정 압박에 동시에 노출되어 있다는 뜻이다.

이 진단은 새롭지 않다. 1997년 9월 코펜하겐에서 열린 제63차 국제도서관연맹(IFLA) 총회 워크숍에서 테리 쿠니는 「디지털 암흑기? 전자정보 보존의 과제」라는 발표문을 내놓았다. 그는 중세 수도원의 필사자들이 고대 그리스와 로마와 아랍의 저작을 베껴 쓴 덕분에 오늘의 지식이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해, 지금의 사서와 기록연구사를 다음과 같이 규정했다.

librarians and archivists, the monastic orders of the future

사서와 기록연구사, 곧 미래의 수도회.

Terry Kuny, 「A Digital Dark Ages? Challenges in the Preservation of Electronic Information」, 제63차 IFLA 총회 발표문(1997년 8월 27일 개정본)

같은 발표문에서 쿠니는 전자정보 보존의 과제를 사회학의 문제로 규정했다. 근거는 시장 구조였다. 제품의 진부화가 기업 생존의 수단인 경쟁 환경에서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불안정이 구조적으로 보장되고, 제품 차별화가 문서 규격 층위까지 내려오며, 독점 규격은 이익을 내지만 정적인 규격은 갱신 수요를 만들지 못한다. 그는 보존이 보전과 다르다고도 썼다. 보전은 물건을 처리해 두고 한동안 잊어도 되는 일이지만, 디지털 객체는 잦은 갱신과 새 매체로의 재복사를 요구하고, 그 재복사는 매체 이전에 그치지 않고 새 형식이나 구조로의 번역까지 포함하며, 그 번역은 불완전한 사본이 되기 쉽고 지속적인 비용이 되므로 예산에 반영해야 한다고 그는 적었다. 원본 디지털 파일을 보관하는 것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고 그는 적었다.

쿠니가 보존의 성립 조건으로 제시한 개념이 유용하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와 사람·조직이 함께 관계를 유지하는 동안에는 디지털 객체가 영원히 보존될 수 있는데, 시간과 돈이라는 힘이 이 세 요소를 서로 떼어 놓는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낡고, 정보 이전에 값비싼 재코딩이 필요해지고, 조직에는 그 일을 할 자원이 없어진다. 그러면 객체는 낡은 형식에 갇히거나 읽을 수 없는 매체에 담긴 상태로 남는다. 1997년에 쿠니가 꼽은 위험 목록은 정보기술의 18개월 주기 진부화, 문서 형식의 증식, 도서관 예산 감소, 갈수록 제한적인 지식재산권과 라이선스 체제, 보존 기능의 사유화였다. 2024년 퓨리서치센터의 측정치는 그 목록이 예측한 결과의 규모를 숫자로 보여 준다.

수천 년을 목표로 잡는 순간 사람들은 데이터를 다시 물체로 만든다

보존 기간의 목표를 수백 년이나 수천 년으로 올려 잡으면 실제로 어떤 설계가 나오는지 보면 이 사안의 구조가 드러난다. 세 사례가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첫째는 노르웨이 스발바르 제도의 북극 세계 기록보관소(Arctic World Archive)다. 노르웨이 국영 광업회사와 초장기 보존 업체 피클(Piql)이 2017년에 함께 만든 시설로, 폐광이 된 탄광의 영구동토 아래 250미터 지점에 강철 벽 컨테이너를 두고 그 안의 밀폐실에 자료를 보관한다. 스발바르는 국제 조약으로 비무장 지대로 규정되어 있다. 2020년 2월 2일 깃허브는 자사의 활성 공개 저장소 전체를 스냅숏으로 떠서 이곳에 예치했다. 자료량은 21테라바이트, 피클이 감광성 보관용 필름 186릴에 기록했고, 2020년 7월 8일 예치가 완료됐다. 필름은 폴리에스테르 기재에 할로겐화은을 올린 것으로, 국제표준화기구 기준 500년 수명으로 설계되었고 가속 노화 시험 결과는 그 두 배를 시사한다고 깃허브는 설명했다.

기록 방식이 중요하다. 데이터를 자기 신호나 전하로 저장하지 않고, QR 코드에 가까운 무늬로 바꿔 필름에 인쇄했다. 그리고 깃허브는 모든 릴마다 「깃허브 코드 볼트 안내서」를 5개 언어로 넣었고, 보관 자료의 기술적 역사와 문화적 맥락을 설명하는 사람이 읽을 수 있는 별도의 릴을 함께 넣었다. 이 릴에는 기술 계보라는 이름을 붙였다. 데이터를 꺼내는 방법을 데이터와 같은 물체 위에 사람이 읽을 수 있는 형태로 새겨 둔 것이다. 이것은 로제타석이 하던 일과 같다.

둘째는 롱나우 재단의 로제타 디스크다. 1998년 롱나우 재단이 디지털 연속성 관리를 주제로 연 회의에서 인터넷 아카이브의 브루스터 케일이 로스앨러모스 연구소가 개발하고 노샘 테크놀로지스가 상업화한 기술을 초장기 저장의 해법으로 제안했다. 3인치 니켈 디스크에 35만 쪽을 미세 식각하며 수명이 2,000년에서 1만 년으로 추정된다는 기술이었다. 재단은 세계 언어의 문헌을 그 대상으로 골랐고, 2008년 1차 판을 완성했다.

완성된 디스크는 지름 3인치 순니켈 원판이고, 미세 식각한 실리콘 원형을 니켈로 떠낸 구조다. 한쪽 면에 1,500개 이상 언어를 다룬 1만 3,000쪽 넘는 문헌이 들어 있다. 한 쪽의 크기는 0.5밀리미터, 사람 머리카락 다섯 올 정도의 폭이며, 650배 배율 광학 현미경으로 책을 읽는 것처럼 읽을 수 있다. 재단은 이 디스크가 디지털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각 쪽은 0과 1의 부호로 저장되지 않고 문서를 축소해 새긴 상으로 저장되었으므로 플랫폼 의존도 포맷 의존도 없다. 읽는 데 필요한 것은 확대뿐이다.

반대 면의 설계가 이 사업의 핵심이다. 중앙에 지구 그림을 놓고 그 주위에 여덟 개 주요 언어로 같은 문장을 새겼다. 내용은 이렇다. 세계의 언어들, 이것은 서기 2008년에 모은 1,500개 넘는 인류 언어의 기록이며, 1,000배 확대하면 1만 3,000쪽 넘는 언어 문헌을 찾을 수 있다. 이 문장은 육안으로 읽히는 크기에서 시작해 나선을 그리며 현미경 크기까지 줄어든다. 디스크를 집어 든 사람이 최대한 많은 경우에 무언가를 즉시 읽을 수 있게 하고, 동시에 사용법을 알려 주는 설계다. 돋보기를 대면 더 있다는 뜻이 문자와 배열 자체에 들어가 있다.

셋째는 마이크로소프트의 프로젝트 실리카다. 사우샘프턴대학 연구진이 펨토초 단위의 초단 펄스 레이저로 석영 유리 내부에 나노 구조를 만들 수 있음을 보인 것이 이 기술의 출발점이다. 2013년 300킬로바이트 시연이 있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2016년 10월 이 기술을 클라우드용 저장 기술로 옮기는 사업을 시작했다. 2026년 2월 마이크로소프트 리서치가 공개한 진행 보고에 따르면, 두께 2밀리미터 붕규산 유리판 안에 수백 개 층으로 데이터를 쓰고, 1만 년 보존을 목표로 잡았으며, 유리 내부 기록 단위의 노화를 파괴 없이 확인하는 광학 방법을 새로 만들어 가속 노화 시험과 함께 그 목표를 뒷받침했다. 관련 연구는 2025년 미국컴퓨터협회 학술지 『트랜잭션스 온 스토리지』에 실렸다. 초기에 값비싼 용융 석영을 쓰던 것을 조리기구에 쓰이는 일반 붕규산 유리로 바꿨다는 것이 재료 쪽 성과다.

세 사례를 나란히 놓으면 구분이 하나 생긴다. 매체 수명의 문제를 푸는 것과 장비 의존의 문제를 푸는 것은 다른 일이다. 피클 필름과 로제타 디스크는 둘 다 푼다. 무늬와 글자를 물체 표면에 새겼으므로 광원과 확대 수단만 있으면 읽히고, 전용 재생기와 복호 소프트웨어가 필요하지 않다. 프로젝트 실리카는 앞의 것만 푼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설명에 따르면 유리에서 데이터를 되읽는 데는 전용 판독기와 기계학습 기반의 기호 복호 방법이 쓰이고, 내부 기록 단위를 읽어 내려면 현미경 광학계가 필요하다. 유리는 1만 년을 버티겠지만, 그 유리를 읽는 장비와 복호 모델은 앞에서 본 LV-ROM 플레이어와 암펙스 FR-900과 같은 범주에 속한다. 이 기술이 겨냥하는 문제도 다르다. 사우샘프턴대학의 피터 카잔스키는 현재의 기록이 계속 부식하는 자기 매체에 얹혀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 연구가 디지털 암흑기를 풀려는 시도라고 규정했다. 곧 수십 년 주기의 강제 이전 작업을 없애는 것이 목표이고, 문명이 붕괴한 뒤에 발굴될 상황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

한국의 기록관리 법령은 조선의 4사고와 같은 구조를 조문으로 다시 쓰고 있다

지금까지의 논의가 실무에서 어떻게 제도화되는지는 한국 법령에서 직접 읽을 수 있다.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은 전자기록물의 보존을 여러 조문으로 규정한다. 이 조문들을 순서대로 읽으면 앞에서 다룬 층들이 하나씩 나온다.

포맷 층은 장기보존패키지 개념으로 다룬다. 시행령 제2조 13호는 장기보존패키지를 전자기록물, 기록관리 메타데이터, 보존포맷, 행정전자서명 등 진본확인 정보를 함께 묶은 것으로 정의한다. 원본 파일만 보관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고 보고, 그것이 무엇이고 언제 어디서 생산되었고 위조되지 않았음을 어떻게 확인하는지까지 한 덩어리로 싸 두는 방식이다. 국가기록원은 이 형식을 NEO라는 이름으로 공공표준에 규정했고, 전자기록 원문과 문서보존포맷과 메타데이터와 전자서명을 XML로 묶는다. 문서보존포맷으로는 2008년 제정된 공공표준에서 PDF/A-1을 채택했다. 이 변환에서 손실이 생긴다는 점은 국가기록원 스스로 확인해 두었다. 2007년과 2013년 연구에서 여러 유형의 전자기록물을 PDF/A-1로 변환했을 때 많은 기능과 내용이 소실된다는 문제가 보고됐다. 쿠니가 1997년에 번역이 불완전한 사본을 낳는다고 쓴 대목이 한국 공공기록에서 그대로 관측됐다.

이전 주기는 조문에 기간으로 박혀 있다. 시행령 제36조 2항은 보존기간 30년 이상인 전자기록물을 기록관에서 10년 넘게 보존하게 되는 경우, 11년이 지나기 전에 진본확인 절차를 거쳐 장기보존패키지로 변환해 관리하도록 규정한다. 제46조 2항은 영구기록물관리기관이 메타데이터와 행정전자서명 등을 검증하고 장기보존패키지로 변환해 관리해야 한다고 정한다. 제50조는 상태검사를 규정하는데, 전자기록물의 경우 저장장치에 수록된 파일의 이용가능성과 손상 여부를 주기적으로 검사하고 저장장치의 이상 유무를 확인하며, 오류가 발견되면 즉시 복구하고 그 조치 내역을 관리하도록 한다. 장기보존패키지로 다시 수록한 경우에는 행정전자서명을 포함해 진본확인 절차를 다시 거쳐야 한다.

복제와 분산은 제52조에 있다. 영구기록물관리기관의 장은 매년 8월 31일까지 전년도에 제작한 보존매체 사본을 중앙기록물관리기관의 장에게 제출해야 한다. 기록관과 특수기록관의 장은 같은 날까지 전년도 보존매체 수록 목록을 제출하고, 중앙기록물관리기관은 그 목록에서 이중보존이 필요한 기록물을 골라 매년 10월 31일까지 송부 대상과 시기를 통보한다. 조문의 제목이 중요 기록물의 이중보존이다. 1439년에 사고를 두 곳에서 네 곳으로 늘린 결정과 구조가 같다.

장비와 부호 체계 층에 대한 대응도 있다. 제36조의2는 공공기관의 장이 전자기록물의 생산포맷 확장자와 소프트웨어명 등의 기술정보를 관리하도록 규정한다. 파일이 어떤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졌는지를 따로 기록해 두라는 조문이며, 로젠버그가 1995년에 지적한 문제를 행정 절차로 옮겼다.

그리고 제29조가 이 글의 논지를 법령의 언어로 진술한다. 3항은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기록물관리기관의 장은 보존가치가 매우 높은 전자기록물에 대하여는 마이크로필름 등 맨눈으로 식별이 가능한 보존매체에 수록하여 관리해야 한다. 2021년 1월 5일 개정으로 들어간 조문이다. 같은 조 2항은 원본을 폐기하고 보존매체만 남기는 방식을 택할 경우 보존기간 10년 이하는 보존용 전자매체 또는 마이크로필름, 보존기간 30년 이상은 마이크로필름으로 하도록 정한다. 30년 이상 남겨야 하는 기록에는 전자매체 선택지가 없다.

정부 문서가 이런 조문을 둔 이유는 앞의 사례들이 설명한다. 전자매체는 리프레시와 마이그레이션과 상태검사와 진본확인을 사람이 주기적으로 계속해야 유지되고, 그 작업은 예산과 인력과 조직의 존속에 달려 있다. 마이크로필름은 광원과 확대 수단만 있으면 읽힌다. 스발바르의 필름과 로제타 디스크를 만든 것과 같은 판단이 한국 대통령령에 들어 있다.

물체는 늦게 오는 기술에 두 번째 기회를 준다

물체로 남은 기록에는 데이터에 없는 성질이 하나 더 있다. 지금 읽지 못해도 나중에 읽을 수 있다.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면서 헤르쿨라네움의 한 저택에 있던 파피루스 두루마리 도서관이 화산 쇄설물에 덮여 탄화했다. 18세기에 발굴되어 수백 점이 나폴리의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데, 탄이 된 덩어리라 펼치려 하면 부서졌다. 읽으려는 시도가 곧 파괴였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 PHerc. 1667이라는 번호가 붙은 두루마리는 19세기와 1969년과 1980년대에 손으로 펼치려는 시도를 세 차례 겪으면서 외층이 파괴되었고, 원래 높이 19~24센티미터 가운데 안쪽 8센티미터만 남았다.

켄터키대학의 브렌트 실스 연구진이 X선 단층촬영으로 두루마리 내부의 감긴 면을 재구성해 가상으로 펼치는 방법을 개척했고, 헤르쿨라네움 두루마리의 탄소 잉크도 X선으로 검출할 수 있음을 보였다. 2023년 3월 실스는 자기 연구실의 촬영 자료와 소프트웨어를 공개하고 냇 프리드먼, 대니얼 그로스와 함께 베수비오 챌린지를 시작했다. 봉인된 두루마리에서 140자 분량의 문단 네 개를 복원한 첫 팀에게 그랑프리를 주는 방식이었다. 1년 안에 상금이 나갔다. 2024년 2월 5일 발표된 수상팀은 베를린의 대학원생 유세프 나데르, 네브래스카의 21세 대학생이자 스페이스X 인턴 루크 패리터, 취리히의 로봇공학 전공생 율리안 실리거였다. 이들이 복원한 것은 2,000자를 넘었고, 파피루스학자들은 그것을 쾌락의 본질을 논한 글로 읽었으며 에피쿠로스학파 시인 필로데모스의 알려지지 않은 저작으로 추정했다.

2026년 6월 25일에는 PHerc. 1667 전체가 읽혔다. 유럽방사광연구소(ESRF) BM18 빔라인의 고해상도 위상대조 X선 마이크로토모그래피로 촬영하고, 나폴리 국립도서관과 협력해 작업했다. 가상으로 펼친 기록면은 약 1.4미터, 그리스어 22단 남짓이다. 내용은 윤리학 저작이고 인간의 본성과 충동과 도덕적 진보를 다루며, 마지막으로 남은 단에 스토아 철학자 크리시포스의 조카이자 제자인 아리스토크레온의 이름이 나온다. 언어와 주제를 함께 보아 기원전 2세기 스토아학파 저작으로 판단됐다. 같은 발표에서 다른 두 두루마리의 성과도 공개됐다. PHerc. Paris 4에서는 더 높은 해상도로 촬영하자 잉크가 3차원 X선 자료 안에서 직접 보였고, 그것을 3차원으로 분리해 펼친 면에 투사한 결과가 2023년 그랑프리의 판독과 하나하나 일치했다. 더 좋은 자료로 앞의 판독을 독립적으로 검증했다. PHerc. 139에서는 표제와 저자 표시가 나와 필로데모스의 『신들에 관하여』 8권으로 확인됐다.

1,947년 동안 읽히지 않은 물체가 2026년의 방사광 가속기와 기계학습으로 읽혔다. 그 사이의 어느 세대도 이 두루마리를 옮겨 적지 않았고, 옮겨 적을 필요도 없었다. 물체가 거기 있었기 때문에 기술이 도착하기를 기다릴 수 있었다.

해독 쪽에도 같은 성질이 있다. 선형문자 B는 1878년 크레타의 크노소스에서 처음 나왔고 1900년부터 아서 에번스가 대량으로 발굴했지만 74년 동안 읽히지 않았다. 대조본이 없었다. 로제타석처럼 같은 내용을 이미 아는 문자로 함께 적어 둔 자료가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기호 체계 자체의 내부 구조만으로 풀어야 했다. 1952년 영국의 건축가 마이클 벤트리스가 존 채드윅과 함께 이것을 풀어, 87~90개의 기호로 적힌 언어가 기원전 1400년에서 1200년 무렵의 가장 오래된 형태의 그리스어임을 밝혔다. 이 작업을 가능하게 한 조건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표본의 양이다. 크노소스와 필로스를 중심으로 오늘까지 약 5,000점이 확보됐고, 반복되는 규칙을 통계적으로 추출할 만큼 많았다. 다른 하나는 검증 수단이었다. 1952년 칼 블레겐이 필로스에서 새로 발굴한 점토판 Ta 641에는 그릇 그림이 글자와 함께 그려져 있었고, 벤트리스의 표를 적용하자 세 발 솥 그림 옆의 글자가 ti-ri-po-de, 손잡이 네 개 달린 그릇 옆이 qe-to-ro-we로 읽혔다. 그림이 대조본 역할을 했다. 서기가 2차원 그림과 문자를 같은 표면에 나란히 새겨 두었기 때문에 3,100년 뒤의 해독이 검증됐다.

데이터에는 이 두 번째 기회가 없다. 비트가 사라진 뒤에 더 나은 기술이 와도 읽을 대상이 남아 있지 않다. 아폴로 11호의 저속주사 테이프에 대해 2009년 이후 어떤 영상 처리 기술이 나왔든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테이프가 지워졌기 때문이다.

결론 — 남는 것은 오래 가는 매체가 아니라 옮겨 담기를 멈추지 않은 쪽이다

수천 년 뒤의 사람들이 21세기를 데이터로 이해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은 매체의 성능표에서 나오지 않는다. 답을 결정하는 것은 그 데이터를 새 매체와 새 형식으로 계속 옮겨 담는 작업이 이어졌는지다. 이 글이 짚은 근거는 네 갈래로 묶인다.

첫째, 기록이 후대에 닿는 경로는 둘이었고 데이터에는 그중 하나가 없다. 니네베의 점토판과 미케네의 선형문자 B와 헤르쿨라네움의 두루마리는 관리 주체가 사라진 뒤에도 물체로 남아 있었다. 반면 저장장치의 내용물은 관리하지 않으면 개월과 십 년 단위로 없어진다. JEDEC 표준은 소비자용 SSD의 전원 차단 후 유지 기간을 1년, 기업용을 3개월로 정해 두었고, 30년을 표방하는 LTO 테이프조차 10세대 드라이브가 이전 세대를 아예 읽지 못하게 되면서 매체가 멀쩡한 상태에서 강제 이전을 요구한다. 데이터의 유일한 경로는 사람이 주기적으로 복제하는 쪽이다.

둘째, 그 복제 작업은 문명이 붕괴하지 않아도 중단된다. 2013년에 있던 웹페이지의 38퍼센트가 10년 만에 접속 불가가 되었고, 2013년부터 2023년 사이에 존재한 페이지 전체로 넓히면 25퍼센트가 없어졌다. 대부분은 정상 운영되는 사이트에서 개별 페이지가 치워진 결과였다. 마이스페이스는 서버 이전 작업 중에 12년 분량의 업로드 파일을 잃었고, 웹을 옮겨 담는 인터넷 아카이브 자체가 2024년 침입으로 계정 3,100만 건을 노출하고 소송에 대응하는 중이다. 쿠니가 1997년에 내린 진단, 곧 전자정보 보존의 과제가 사회학의 문제라는 진단은 이 측정치들과 어긋나지 않는다.

셋째, 판단이 나뉘는 자리는 해독의 난이도다. 로젠버그는 1995년에 파일이 그것을 만든 프로그램 없이는 자기 부호에 갇힌다고 보았고, 로젠탈은 2010년에 그 15년 동안 널리 쓰이던 포맷 가운데 실제로 읽을 수 없게 된 사례가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반대했다. 무엇을 위험의 본체로 보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진다. 해석 능력의 상실을 본체로 보면 지금 대비해야 하고, 비용과 유인 구조를 본체로 보면 미루는 편이 합리적이다. 그러나 이 쟁점은 이 글의 논지를 흔들지 않는다. 로젠탈의 낙관은 공개 소스 저장소와 웹과 도서관 연합이 계속 운영된다는 조건 위에 서 있고, 그 조건이 바로 관리 주체의 존속이다. 여기에 암호화가 더해지면 비트가 온전해도 키 없이 해독이 성립하지 않는다.

넷째, 목표 기간을 수천 년으로 올려 잡은 설계는 예외 없이 데이터를 물체로 되돌린다. 깃허브는 21테라바이트를 QR 코드에 가까운 무늬로 바꿔 필름 186릴에 인쇄하고, 릴마다 사람이 읽을 수 있는 안내서를 5개 언어로 넣었다. 롱나우 재단의 로제타 디스크는 각 쪽을 부호가 아닌 축소 이미지로 새겨 플랫폼 의존과 포맷 의존을 없애고, 사용법을 육안 크기에서 시작하는 나선 문장으로 표면에 적었다. 한국의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29조 3항은 보존가치가 매우 높은 전자기록물을 마이크로필름 등 맨눈으로 식별 가능한 보존매체에 수록해 관리하도록 규정하고, 같은 조 2항은 보존기간 30년 이상 기록물의 보존매체를 마이크로필름으로 한정한다. 물체로 되돌려도 남는 문제가 있다. 프로젝트 실리카의 유리는 1만 년 보존을 목표로 하지만 전용 판독기와 기계학습 복호 모델을 요구하므로 매체 수명만 해결하고 장비 의존은 남겨 둔다. 첫째 경로에 실제로 근접하는 것은 두 층을 동시에 해결한 설계뿐이다.

그러므로 처음의 질문에는 두 가지 답이 있다. 관리 주체가 계속 이어지는 경우, 수천 년 뒤의 사람들은 지금 우리가 고대를 아는 것보다 훨씬 상세하게 21세기를 알게 된다. 그러나 그때 남아 있는 것은 이 시대에 존재했던 모든 것이 아니라, 중간의 누군가가 계속 옮겨 담기로 고른 것이다. 관리 주체가 사라지는 경우, 발굴자가 21세기에서 얻을 증거는 콘크리트 구조물과 금속과 유리와 도자기와 종이책과 비석, 그리고 스발바르의 필름과 마이크로필름처럼 의도적으로 물체로 되돌려 둔 것뿐이다. 저장장치는 물리적으로도 버티지 못하고, 형체가 남아도 재생 장비와 부호 규칙이 함께 사라진다.

그러면 남는 문제는 무엇을 옮겨 담을지 고르는 판단이다. 이 판단은 이미 진행 중인 작업이다. 공공기록과 학술 문헌과 대기업 자료에는 옮겨 담을 주체와 예산과 법적 근거가 있다. 개인의 사진과 편지, 소규모 공동체의 기록, 문을 닫은 서비스의 게시물에는 없다. 편지와 일기와 사진 앨범이 종이로 남은 20세기 중반과 비교하면, 그것들이 계정 안으로 들어간 1995년부터 2015년까지가 후대에는 개인의 기록이 오히려 얇은 시기로 보일 수 있다. 니네베의 점토판은 남고 같은 도서관의 밀랍 서판은 한 점도 남지 않았다. 무엇이 중요했는지가 그 결과를 결정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