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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재앙을 자연현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 — 호르트의 연쇄 가설과 테라 화산 연대가 각각 어디서 무너지는가

나일강의 이상 범람 하나로 아홉 재앙을 잇는 설명이 60년 넘게 인용되어 왔다. 그 연쇄를 떠받치는 조류는 붉지 않고, 열째 재앙은 성경 본문을 고쳐야 들어맞으며, 방아쇠로 지목되는 화산은 연대가 맞지 않는다.

2026년 9월 12일

중세 영문학 연구자가 1957년에 낸 논문 한 편

출애굽기 7장에서 12장까지에 적힌 열 차례의 재앙을 자연현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오래되었다. 그 가운데 오늘날까지 성경 사전과 주석서에 인용되는 판본은 1957년과 1958년 두 해에 걸쳐 나왔다. 그레타 호르트가 독일의 구약학 학술지 『구약학 잡지』 69권 84쪽에서 103쪽, 70권 48쪽에서 59쪽에 나누어 실은 「이집트의 재앙들」이다. 호르트는 중세 영문학과 종교사를 전공한 연구자였고, 이집트학자나 생물학자가 아니었다.

이 논문이 널리 인용된 이유는 야심에 있다. 호르트는 아홉 또는 열 재앙 전부가 단 하나의 자연현상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했다. 그 현상은 나일강의 연례 범람이 비정상적으로 크게 일어난 일이다. 이 주장이 성립하면 성경 본문의 순서와 자연의 인과 순서가 맞아떨어지므로, 서사의 세부가 관찰의 기록이라는 결론이 따라온다. 호르트 본인은 결론을 조심스럽게 냈으나, 인용자들은 그 유보를 대개 옮기지 않았다.

이 글이 검토하려는 논지는 하나다. 열 재앙을 자연현상의 연쇄로 설명하는 시도는 생물학적 전제에서 무너지고 본문을 고쳐야 완성되며, 외부 방아쇠로 지목되는 테라 화산 폭발은 최근 연대 측정이 오히려 출애굽 시점에서 더 멀어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 설명들이 모두 성립한다 해도 본문이 주장하는 핵심은 건드리지 못한다.

하나의 범람으로 아홉 재앙을 잇는 방법

호르트가 세운 연쇄는 이렇게 이어진다.

에티오피아 고원에 폭우가 쏟아져 나일강이 유례없이 크게 범람한다. 이 물이 붉은 흙을 대량으로 실어 내려 강물이 붉어지고, 여기에 붉은 조류가 번식해 색이 짙어진다. 호르트가 지목한 조류는 헤마토코쿠스 플루비알리스와 유글레나 상귀네아 두 종이다. 이것이 첫째 재앙인 피다. 조류가 물의 산소를 빼앗아 물고기가 죽고, 호르트의 구성에서는 이 물에 탄저균이 들어와 동물과 사람을 감염시킨다. 개구리는 오염된 물에서 병들어 강을 떠나 육지로 올라오고, 이것이 둘째 재앙이다.

셋째 재앙인 모기는 범람이 남긴 물웅덩이에서 번식한 것이고, 넷째 재앙은 물어뜯는 파리인 스토목시스 칼키트란스로, 물이 빠진 뒤 썩은 식물 더미에서 번식한다. 이 곤충들이 병을 옮겨 다섯째 재앙인 가축 역병과 여섯째 재앙인 피부 종기를 일으킨다. 일곱째 재앙인 우박과 여덟째 재앙인 메뚜기는 범람을 일으킨 이상 기상에서 이어진다. 아홉째 재앙인 어둠은 범람이 남긴 진흙이 말라 고운 먼지가 되었다가 바람에 날려 하늘을 덮은 결과로 처리된다. 전체 기간은 여덟 달에서 아홉 달로 계산된다.

구성이 촘촘해 보인다. 그런데 이 연쇄의 각 고리는 검증을 따로 받은 적이 없었다. 브래드 스파크스가 2003년과 2004년 『성경과 삽』 16권 3호 66쪽에서 77쪽, 17권 1호 17쪽에서 27쪽에 두 차례로 나누어 실은 검토가 첫 본격적 반박이다.

조류가 붉지 않고, 탄저균은 강에 살지 않는다

스파크스가 지적한 첫 문제는 조류의 색이다. 호르트가 붉은 색소의 근거로 삼은 두 종은 탁하고 흐르는 물에서는 붉지 않고 녹색으로 보인다. 이 종들이 붉어지는 것은 정체된 물에서 휴면포자 상태로 들어갈 때이며, 범람한 나일강은 그 조건과 반대다. 색이 나오지 않으면 첫째 재앙의 서술과 연결되지 않는다.

두 번째 문제는 광합성이다. 호르트의 구성에서 아홉째 재앙의 어둠은 범람이 남긴 진흙이 만든 먼지다. 그 정도로 두꺼운 진흙층이 쌓이려면 강물에 떠 있는 흙의 농도가 아주 높아야 하는데, 그러면 물속으로 빛이 들어가지 못한다. 조류는 광합성으로 사는 생물이므로 빛이 차단되면 죽는다. 첫째 재앙을 설명하는 조건과 아홉째 재앙을 설명하는 조건이 서로를 지운다.

세 번째 문제는 탄저균이다. 탄저균의 포자는 토양에 있고, 강물을 매개로 퍼지는 병원체가 아니다. 호르트가 연쇄의 접착제로 쓴 감염 경로가 병원체의 생태와 맞지 않는다. 더해서 이집트와 동아프리카에서 호르트가 말한 형태의 조류 번성이 관찰된 기록이 없다는 점도 스파크스가 짚었다.

적조 바닷물이나 강물에서 특정 미세조류가 짧은 기간에 폭발적으로 늘어나 물빛이 바뀌는 현상이다. 종에 따라 붉은색, 갈색, 녹색으로 나타나므로 이름과 달리 언제나 붉지는 않다. 물속 산소를 소모하고 일부 종은 독소를 내어 물고기를 죽인다. 성경의 첫째 재앙을 적조로 설명하려면 그 자리의 물이 붉게 보였어야 하는데, 색은 종과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열째 재앙을 설명하기 위해 본문을 고친 자리

호르트의 구성에서 가장 큰 문제는 열째 재앙이다. 출애굽기 12장은 이집트의 모든 처음 난 것이 죽었다고 적는다. 자연 연쇄로는 이 선택성을 설명할 길이 없다. 호르트는 이 지점에서 자연현상 쪽을 고치지 않고 성경 본문 쪽을 고쳤다. 그가 1958년 논문 52쪽에서 54쪽에 제시한 해법은, 히브리어 본문이 전승 과정에서 훼손되었으며 원래 이 대목은 처음 거둔 것, 곧 수확의 맏물이 파괴된 사건을 가리켰다는 주장이다. 히브리어에서 맏아들을 뜻하는 베코르(בְּכוֹר)와 맏물을 뜻하는 비쿠르(בִּכּוּר)는 자음이 같고 모음만 다르다.

이 조치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분명하다. 자연 연쇄 가설은 성경 본문의 순서와 세부가 자연의 인과와 맞아떨어진다는 주장으로 설득력을 얻는데, 맞아떨어지지 않는 대목에서 본문을 고치면 그 설득력의 근거가 사라진다. 맞는 자리는 관찰의 기록으로 읽고 안 맞는 자리는 필사 오류로 읽는 규칙 아래에서는, 어떤 서사든 어떤 자연현상과도 맞출 수 있다.

전염병학자의 재구성과 그것이 남긴 같은 문제

1990년대에는 의학 쪽에서 비슷한 시도가 나왔다. 뉴욕시 역학 책임자를 지낸 존 마르와 커티스 맬로이가 1996년 학술지 『카두케우스』 12권 7쪽에서 24쪽에 실은 「이집트 열 재앙의 역학적 분석」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호르트의 조류 대신 피에스테리아 피스키키다를 후보로 올렸다. 1990년대 미국 동부 하구에서 물고기 떼죽음을 일으켜 주목받은 와편모조류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던컨 호이트가 1993년 『오스트레일리아 의학 저널』에 「이집트의 재앙들: 무엇이 가축과 맏아들을 죽였는가」를 실어 같은 문제를 다루었다.

마르와 맬로이의 구성에서 열째 재앙은 곰팡이 독소로 설명된다. 범람과 습기로 저장 곡물에 곰팡이가 피어 독소가 생겼고, 이집트 관습에서 맏아들이 곡물 배급에서 우선권을 가졌다면 그들이 먼저 많이 먹어 먼저 죽었으리라는 추정이다.

이 재구성에는 두 가지 약점이 있다. 하나는 전제의 출처다. 맏아들에게 곡물을 두 몫 배급하는 관습이 청동기 이집트에 있었다는 문헌 증거가 제시되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범위다. 출애굽기 12장 29절은 왕좌에 앉은 파라오의 맏아들부터 감옥에 갇힌 자의 맏아들까지, 그리고 가축의 처음 난 것까지 죽었다고 적는다. 배급 순서 가설은 가축을 설명하지 못하고, 계층 전체를 가로지르는 범위도 설명하지 못한다.

외부 방아쇠로 지목된 테라 화산

연쇄 가설의 약점을 메우려는 또 다른 경로가 화산이다. 에게해 남쪽 산토리니섬에서 일어난 청동기 시대의 대폭발은 지난 4천 년 사이 가장 큰 화산 분화 가운데 하나다. 이 섬의 옛 이름을 따 테라 분화라고 부른다. 화산재가 동지중해 전역에 퍼졌고, 크레타 해안에는 쓰나미 퇴적층이 남았으며, 섬의 미노아 도시 아크로티리는 화산재와 부석 아래 파묻혔다.

이 폭발을 성경의 재앙과 연결하는 논리는 단순하다. 화산재가 하늘을 가리면 어둠이 되고, 기후 교란이 우박과 이상 기상을 만들며, 화산성 물질이 물을 오염시킨다는 구성이다. 문제는 연대다.

눈금자가 평평한 구간에 사건이 놓였다

테라 분화의 연대는 수십 년째 두 갈래로 나뉘어 있다. 고고학 쪽은 이집트 왕조 연대기와 토기 편년을 근거로 기원전 16세기 중반에서 15세기 초를 제시했고, 방사성탄소 쪽은 기원전 17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초를 제시했다.

이 어긋남이 왜 쉽게 풀리지 않는지는 측정 원리를 알아야 이해된다. 방사성탄소 연대측정은 유기물 속에 남은 탄소14의 양을 재어 나이를 계산한다. 그런데 대기 중 탄소14의 농도는 시대마다 달랐으므로, 측정값을 실제 연대로 바꾸려면 나이테처럼 연대가 확실한 시료로 만든 보정곡선이 필요하다. 문제는 기원전 1620년에서 1540년 사이 구간에서 이 곡선이 거의 평평하다는 데 있다. 눈금이 평평한 자로는 위치를 좁힐 수 없다.

보정곡선의 평탄 구간 대기 중 탄소14 농도가 오랫동안 비슷하게 유지된 시기에는, 서로 다른 연대의 시료가 같은 측정값을 낸다. 이 구간에 걸친 시료는 방사성탄소만으로 연대를 좁히지 못하고 넓은 범위만 나온다. 청동기 동지중해 연대 논쟁이 오래 이어진 이유의 하나가 기원전 1620년에서 1540년 사이에 놓인 이 평탄 구간이다.

자료 자체를 두고도 논쟁이 있었다. 테라의 화산재 아래에서 올리브 나뭇가지 하나가 나왔고, 이것을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나누어 측정한 결과가 기원전 1600년 직전을 가리켰다. 그런데 이 측정은 가지에서 연륜을 셀 수 있다는 전제 위에 서 있었다. 파올로 케루비니 연구진이 2014년 학술지 『앤티쿼티』에 실은 반론은 올리브나무가 어린 단계를 지나면 해마다 하나씩 생기는 나이테를 만들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존재하지 않는 나이테를 세어 얻은 값은 정밀해 보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같은 호에서 스터트 매닝 연구진은 반대 방향의 논거를 제시하며 기원전 17세기 후반을 지지했다.

2018년 샬럿 피어슨 연구진이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발표한 연구는 접근을 바꾸었다. 연대가 확정된 나이테로 기원전 1700년에서 1500년 구간의 탄소14 곡선을 해마다 하나씩 다시 만들었더니, 국제 표준 보정곡선과 어긋나는 구간이 나왔고 테라의 보정 연대가 기원전 16세기 쪽으로 이동했다. 2023년 같은 연구진은 『사이언티픽 리포츠』에 테라시아섬에서 나온 올리브 관목 자료를 보고하며 기원전 16세기 중반 쪽 확률이 높아진다고 정리했다. 그러나 매닝은 2024년 『레이디오카본』 66권 2호 341쪽에서 370쪽에 실은 논문에서 같은 자료를 평탄 구간 문제를 고려해 다시 계산하면 기원전 17세기 말에서 16세기 초가 나온다고 반박했다.

2025년의 측정은 화산을 더 멀리 밀어냈다

가장 최근의 개입은 2025년에 나왔다. 헨드릭 브라윈스와 요하네스 판 데르 플리흐트가 학술지 『플로스 원』에 실은 연구는 방향을 뒤집어 이집트 쪽의 연대를 직접 쟀다. 대상은 제17왕조에서 제18왕조 초기에 걸친 박물관 소장 유물이다. 이들은 아흐모세 시기 흙벽돌에 섞인 짚과 샵티 인형 하나를 측정했다. 샵티는 사후 세계에서 죽은 이를 대신해 일하도록 무덤에 넣는 작은 인형이다.

결과는 아흐모세의 재위가 종래 추정보다 늦은 기원전 1539년 무렵이라는 것이었다. 신왕국의 시작을 늦게 잡는 쪽을 지지하는 값이다. 이 값을 테라 관련 시료들의 측정값과 맞대어 보니, 아크로티리의 탄화 씨앗, 화산재에 묻힌 올리브나무, 크레타 쓰나미층의 동물 뼈가 모두 아흐모세보다 오래되었다. 테라 분화가 신왕국이 시작되기 전, 곧 제2중간기에 일어났다는 결론이다.

이 결과가 재앙 논의에 무엇을 하는지는 계산해 보면 나온다. 출애굽의 이른 연대는 기원전 1446년이고 늦은 연대는 기원전 1250년 무렵이다. 분화를 기원전 16세기 중반으로 잡아도 이른 연대와 100년, 늦은 연대와는 300년이 벌어진다. 2025년의 측정은 분화를 그보다 더 앞으로 밀었으므로 간격은 늘어났다. 화산을 방아쇠로 쓰려면 이제 이집트 왕조 연대기 전체를 다시 짜야 한다.

폭풍 석비를 화산 기록으로 읽을 수 있는가

화산 가설을 지탱해 온 문헌 근거가 하나 있다. 카르나크에서 나온 아흐모세의 이른바 폭풍 석비다. 높이 약 1.8미터의 방해석 석판에 마흔 줄의 문장이 새겨져 있고, 하늘이 그치지 않고 폭풍 속에 있었으며 그 소리가 사람들의 울부짖음보다 컸다는 서술, 비와 어둠에 대한 서술, 무덤과 신전과 피라미드가 무너졌다는 서술, 시신들이 파피루스 조각배처럼 나일강을 떠내려갔다는 서술이 들어 있다.

로버트 리트너와 나딘 묄러는 2014년 『근동학 저널』 73권 1호 1쪽에서 19쪽에 새 번역과 해석을 실어, 이 이상 기상이 테라 분화의 여파라고 주장했다. 이 해석이 맞으면 아흐모세의 재위를 분화 쪽으로 30년에서 50년 당겨야 하고, 동지중해 청동기 연대기가 함께 움직인다.

2025년의 방사성탄소 결과는 이 연결을 끊는다. 아흐모세의 재위가 분화보다 늦다면, 그의 석비에 적힌 폭풍은 분화의 여파일 수 없다. 이 사례는 문헌 해석과 물리 측정이 부딪칠 때 어느 쪽이 먼저 흔들리는지를 보여 준다. 석비의 문장은 왕이 무질서를 바로잡았다고 선포하는 이집트 왕실 문서의 정형을 따르고 있어, 그 자체로는 특정 자연 사건을 지목하지 않는다.

자연 설명이 본문의 주장과 만나지 않는 자리

연대와 생물학을 모두 접어 두더라도 남는 문제가 있다. 자연 연쇄 가설이 설명하는 것과 본문이 주장하는 것이 서로 다른 대상이라는 점이다.

출애굽기는 재앙이 선택적이었다고 거듭 적는다. 8장 22절은 이스라엘 자손이 사는 고센 땅에는 파리가 없을 것이라고 하고, 9장 26절은 우박이 고센에는 내리지 않았다고 하며, 10장 23절은 사흘 동안 이집트 전역이 어두웠으나 이스라엘 자손이 사는 곳에는 빛이 있었다고 한다. 지리적으로 잇닿은 지역에서 기상 현상과 곤충 떼가 경계선을 지켰다는 서술이다. 자연 연쇄는 이 선택성을 설명할 수 없고, 설명하려 들면 그 선택성을 서사의 과장으로 처리해야 한다. 그런데 선택성이야말로 본문이 독자에게 납득시키려는 내용이다.

예고와 성취의 짝도 같은 구조다. 재앙마다 모세가 시점과 범위를 미리 말하고 그대로 일어난다. 9장 5절은 야훼가 정한 때를 명시하고, 9장 18절은 이튿날 이 시각이라고 시점을 명시한다. 자연 연쇄는 사건의 발생을 설명할 수 있어도 예고를 설명하지 못한다.

방법론 쪽의 문제도 있다. 결과를 알고 나서 원인을 배열하는 구성은 반증 조건을 내놓지 못한다. 어떤 관찰이 나오면 이 가설이 틀렸다고 할 수 있는지 물었을 때 답할 수 없다면, 그 설명은 검증의 바깥에 있다. 게다가 적조, 모래폭풍, 메뚜기떼, 가축 역병은 이집트에서 되풀이되어 온 현상이라, 이 조합이 특정한 한 해를 지목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결론 — 설명은 가능해졌지만 주장은 그대로 남았다

지금까지 검토한 것을 논지 기준으로 묶으면 세 갈래다.

첫째, 연쇄 가설은 생물학적 전제에서 무너진다. 호르트가 지목한 두 조류는 탁한 흐르는 물에서 붉지 않고, 어둠을 설명하는 진흙 농도는 조류의 광합성을 막으며, 감염 경로로 쓰인 탄저균은 토양에 사는 병원체다. 스파크스의 검토가 나오기까지 반세기 가까이 이 가설은 독립적 검증을 받지 않은 채 인용되었다.

둘째, 가설은 본문을 고쳐야 완성된다. 호르트는 열째 재앙을 맏아들의 죽음에서 맏물의 파괴로 바꾸었고, 마르와 맬로이는 문헌 근거가 제시되지 않은 배급 관습을 전제로 삼았다. 어느 쪽이든 본문과 맞아떨어진다는 근거가 스스로 약해진다.

셋째, 외부 방아쇠도 성립하지 않는다. 테라 분화의 연대는 논쟁 중이지만 어느 값을 택해도 출애굽의 두 연대안과 100년에서 300년이 벌어지고, 2025년 아흐모세 유물 측정은 분화를 제2중간기로 밀어 간격을 더 벌렸다. 화산의 문헌 근거로 쓰이던 폭풍 석비도 같은 측정에 의해 분리되었다.

판단이 나뉘는 자리를 확정해 두면 이렇다. 개별 재앙이 이집트에서 물리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인가라고 물으면 답은 그렇다이다. 적조와 모래폭풍과 메뚜기떼는 그 땅의 기록에 남아 있다. 그러나 본문이 서술하는 사건, 곧 예고된 시각에 시작되고 특정 지역만 비껴가며 마지막에 맏이만 골라 죽이는 일련의 사건이 자연현상의 연쇄였는가라고 물으면, 검토한 가설 가운데 어느 것도 여기에 닿지 못한다. 쟁점은 재앙의 물리적 가능성이 아니라 선택성이다.

이 결과는 신앙 쪽 판단과는 다른 층에 있다. 자연 설명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해서 초자연적 설명이 곧바로 성립하지는 않고, 자연 설명이 성립한다 해도 본문의 주장이 반박되지는 않는다. 물리적 가능성을 따지는 작업과 서사가 무엇을 주장하는지 읽는 작업은 서로 다른 질문에 답하며, 한쪽의 결과가 다른 쪽의 결론을 대신하지 못한다. 테라 분화의 연대는 계속 좁혀지는 중이므로 몇 년 안에 값이 다시 바뀔 수 있는데, 어느 방향으로 바뀌든 100년 이상의 간격이 사라지려면 이집트 왕조 연대기 전체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